LOGIN재계를 백 년간 주름잡아 온 부씨 집안은 약육강식을 가문의 신조로 삼았다. 그런 집에서 자라온 양자인 나 또한 26년 동안 뺏고 빼앗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후계자 발표회에서 아버지는 형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장남이 승계해야죠.” 자리를 가득 채운 인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내가 후계자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전부 쏟아부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기억이 나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비정상적으로 빡센 엘리트 교육을 한 치의 어김도 없이 수행해 왔다. 형이 싸움질을 하다가 정학을 당하는 동안, 나는 월반해서 최상위권 대학의 학·석·박사 통합 과정을 밟았다. 똑같이 1천만 원의 자금으로 창업했으나, 형은 도박에 빠져 2억 원의 도박 빚을 졌고 나는 사업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끝내 형은 파산해서 청산 절차를 밟았고, 나는 회사를 이끌고 해외 시장을 개척해 시가총액 20억 원을 훌쩍 넘기는 성과를 이뤘다. 나는 내가 강자이며, 왕관의 무게를 감당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BS그룹 후계자 자리도 내 것일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일으켜 세울 수 없는 형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일말의 흔들림 없이 형을 택했다. 형의 도발적인 웃음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너무 꽉 깨물었는지 입안에 번지는 피 냄새가 오히려 나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다. 이에 나는 문득 지난 26년의 노력과 모든 성과들이 그저 웃음거리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다. 내가 이룬 성과가 아무리 대단할지라도 아버지는 반드시 형에게만 회사를 물려줄 인물이었다. 기가 차는 상황에 나는 차갑게 웃었다. ‘이렇게 나온다는 거지? 그렇다면 앞으로 원망이나 하지 마.’
View More석 달 뒤.개인 소유의 섬에 부는 바닷바람에는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배어 있었다.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심채원이 쓰고 있는 면사포가 살짝 들썩였다.곧 손을 뻗어 면사포를 누른 채, 고개를 돌린 심채원은 나를 보면서 눈꼬리가 휘도록 웃었다.“뭐가 그렇게 긴장돼?”“아니, 긴장 안 했어.”“손이 떨리는데?”나는 고개를 숙여 샴페인 잔을 든 내 손을 한 번 보았다.잔 속의 술이 정말로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나는 웃음을 흘리며 잔을 옆 탁자에 내려놓았다.“결혼은 처음이라서... 이해해줘.”그 말을 달리 들었는지 심채원은 팔꿈치로 강하지 않게 나를 툭 쳤다.“재혼할 배짱 있으면 어디 한번 해 보든가.”나와 심채원의 옆에는 진씨 집안의 집사가 메인 테이블 옆에 서 있었다.주경호는 빳빳하게 다린 짙은 회색 정장을 입고 가슴에 은색 브로치를 달았고, 손에는 레드와인 잔을 들고 있었다.5년 전 처음 만났던 장면이 아직도 눈앞에 선했다.그날 주경호는 이렇게 말했다.“도련님, 진씨 집안 어르신이 임종하시며 도련님을 찾으라고 하셨어요. 도련님이야말로 진씨 집안의 유일한 핏줄이에요.”주경호가 나에게 한바탕 설명을 해 주자 그때의 나는 이렇게 말했다.“당장은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전 BS그룹에서 조금 더 해 보고 싶어요.”그 말에 주경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명함 한 장을 내 손에 쥐여 준 뒤 말없이 돌아서서 떠났다.그랬던 주경호가 지금 내 앞에 서서 잔을 들어 보이며 축하해줬다.“도련님.”“집사님.”주경호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힘은 세지 않았지만 꽤나 묵직했다.손바닥의 온기는 정장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전해져 왔다.주경호가 입을 열었다.“도련님, 어르신께서 이런 도련님을 보셨다면 아주 자랑스러워하실 거예요.”“도련님 나이였을 때의 어르신도 지금의 도련님과는 견줄 수 없어요.”“다만 이 길을 택하지 않으셨더라도 진씨 집안은 도련님을 먹여 살릴 수 있었고요.”그 말들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주
부상후가 얼마나 다급하게 부경태의 사무실로 뛰어왔는지, 문은 남자의 발길질에 힘없이 열렸다.“아버지! 이거 좀 보세요!”부상후가 맨 위에 놓인 종이를 가리켰다.손가락은 바들바들 떨려 금방이라도 종이를 뚫어버릴 듯했다.“예찬이 밖에 얼마나 숨겨 놨는지 보세요! 공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만 해도 6천억이 넘어요! 이런 걸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하는 거예요!”부경태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 종이 뭉치를 들고 한 장씩 넘겼다.그러다 네 번째 장 중 가운데에 있는 리스트에서 시선이 멈췄다.그 리스트에는 회사 이름 5개가 적혀 있었다.부경태는 한 줄 한 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 5개는 BS그룹의 가장 중요한 핵심 거래처이자, 해마다 BS그룹 매출의 30% 이상을 책임지던 바로 그 회사들이었다.이름 뒤에는 거래 기간까지 적혀 있었다.가장 짧은 곳이 7년, 가장 긴 곳은 무려 12년이었다.모두 부예찬이 정식으로 사업에 발을 들인 시기보다도 훨씬 이전부터 거래해 온 회사들이었다.그 순간, 부경태의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했다.손끝에서 서류 뭉치가 미끄러지면서 촤르륵 소리와 함께 책상 위에 흩어졌다.부경태는 떨리는 손으로 그중 한 줄을 가리켰다.“이, 이게 다...”그러나 부상후는 아직 뭐가 문제인지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한 걸음 다가가 흩어진 종이를 다시 한데 모은 뒤 부경태의 앞으로 들이밀었다.“맞아요! 전부 쟤 거예요! 밖에서 이렇게 큰 판을 벌여 놓고 모두를 속인 거예요!”“제가 알아보니까 걔가 인정받고 돌아간 건 2년 전인데, 이 회사들의 대규모 인사 변동은 전부 5년 전이에요.”“예찬이 그때 이런 회사들의 지분을 이렇게 많이 소유할 만한 자금력을 가졌을 리가 절대 없어요.”“그러면 가능성은 하나뿐이에요. 저는 걔가 공금을 횡령했거나 불법적인 수단으로 자금을 조달했다고 봐요.”“아버지, 우리가 지금 예찬이 약점을 잡은 거라고요!”그러나 부경태는 손을 들어 부상후의 말을 끊었다.그리고 그 손은 한참 동안 허공에 떠 있었다.마
그날 밤 부씨 저택 서재는 밤새도록 불이 켜져 있었다.물론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하지만 심채원이 보낸 사람이 부상후의 서재에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해 두었기에, 화면은 내 암호화 단말기로 실시간으로 전송되고 있었다.화면 속에서 부상후는 책장에 꽂혀 있던 골동품을 하나씩 바닥으로 내던지고 있었다.청화백자 화병 세 개가 산산이 깨졌고, 크리스털 재떨이는 유리창을 뚫고 아래로 떨어졌다.그때 문밖에서 부세아가 문을 두드렸다.“꺼져!”그 고함 한마디에 부세아는 문전박대를 당한 채 돌아가야 했다.날이 밝아 올 무렵, 부상후는 마침내 손을 멈췄다.그리고 폐허나 다름없는 서재 한가운데에 앉아서 전화를 걸었다.[조사해요. 심채원의 배경, 부예찬이 해외에서 벌인 모든 일들, 더럽고 썩은 건 전부 파헤쳐요.][돈은 상관없어요, 제일 실력 좋은 사람으로 찾아줘요.][씨발, 진짜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는 건지. 걔가 어떻게 해외에서 재벌로 유명한 진씨 집안 사람이에요?][걔가 우리 집안에서 그렇게 움츠리고 산 세월이 얼만데! 아무튼 나는 못 믿어요!]나는 찻잔을 들고 등받이에 기댄 채 부상후가 전화를 끊고 다시 두 번째 번호를 누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지호야, 너 아는 사람 많잖아. 가서 예찬이 그 별 볼 일 없는 회사 장부 좀 뒤져 봐. 나는 걔가 그렇게 깨끗할 리 없다고 봐.][약점만 잡으면 진씨 집안이든 나발이든 상관없어. 나한테 약점을 잡히면 어떻게 되나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화면 속 부상후의 얼굴은 상태가 이상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검붉게 달아올라 있었다.이마에 핏줄까지 툭 튀어나온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곧 부상후는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소파에 내던졌다.휴대폰은 몇 번 튕기면서 파편 더미 속으로 굴러 들어갔다.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키보드로 네 글자를 쳤다.[정보 흘려.]옆에 서 있던 심채원이 손에 든 만년필을 빙글빙글 돌리며 물었다.[얼마나?][30%.]나는 엔터 키를 눌렀다.[맘대로 뒤지도록 놔둬. 깊이 팔
사무실에 잠시 숨 막힐 듯한 정적이 흘렀다.문가에서 기어 일어난 부세아는 무릎에 묻은 먼지를 털 새도 없이 단숨에 내 앞으로 달려왔다.그러고는 내 소매를 붙잡고 흔들며 어리광을 부렸다.“작은오빠, 그날 한 말은 전부 홧김에 한 거야. 오빠가 나를 제일 아끼는 거 알아. 그러니까 나한테 화내지 마.”이 일을 겪지 않았더라면 나는 당연히 부세아를 계속 아꼈을 것이다.‘그런데 세아야, 너는 이미 나를 실망시켰어.’나는 고개를 숙이고 내 소매를 움켜쥔 그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손톱에는 막 네일을 받았는지 말린 장미색으로 곱게 칠해져 있었다.“어제 올린 SNS 게시물, 지웠어?”그 질문 하나에 부세아의 웃음이 그대로 굳어버렸다.부세아는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하고 그저 입만 벙긋거렸다.그 모습은 마치 물 밖으로 건져 올려진 물고기와도 같았다.“작은오빠, 난, 난 그때 철이 없었어. 지금 바로 지울게, 바로 지울게!”부세아는 허둥지둥 휴대폰을 꺼냈다.잠금을 풀면서 손가락이 떨렸는지 비밀번호를 잘못 입력했다.그러자 화면에는 정확한 비밀번호를 입력하지 않았다는 경고문구가 떴다.“잠깐만, 내가...”그러나 나는 부세아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그저 부세아의 손가락 사이에서 옷소매를 빼냈다.내 손끝이 손바닥을 스치자 부세아는 뭔가에 데기라도 한 것처럼 손을 움츠렸다.그리고 휘몰아치는 이런 상황에서도 부경태는 책상 앞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그저 시선만 바닥에 떨어진 채찍에서 내 얼굴로, 내 얼굴에서 다시 심채원의 얼굴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시 내 얼굴로 이동했다.입술을 달싹이는 걸 보니 뭔가 삼키기 힘든 걸 애써 삼키려는 것 같았다.“예찬아.”부경태는 한참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그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낮았고 심지어 보기 드문 온화함까지 배어 있었다.“사실 그때 너를 여기로 보낸 건 전적으로 너를 하드 트레이닝 시키려던 거였어. 너는...”부경태는 마른침을 한 번 삼켰는지 목젖이 크게 움직였다.“그리고 너는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굿노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굿노벨에 등록하시면 우수한 웹소설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한 세상을 모색하는 작가도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맨스, 도시와 현실, 판타지, 현판 등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읽거나 창작할 수 있습니다. 독자로서 질이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고 작가로서 색다른 장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어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성한 작품들은 굿노벨에서 더욱 많은 관심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