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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ผู้เขียน: 십일
재석은 한 걸음 뒤에서 정은을 따르고 있었다. 어젯밤의 불안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제는 차분함을 되찾은 것 같았다.

차를 몰고 온 재석이 문을 열어주자, 정은은 아무 말 없이 조수석에 앉았다. 목적지로 향하는 길에 과일 가게를 지나칠 때, 정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잠깐만 멈춰 줄 수 있을까요? 2분만요. 과일 좀 사려구요.”

“과일?”

“네, 교수님 드리려고요.”

재석은 핸들을 잡고 다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해?”

정은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선배님은 손님을 방문할 때 항상 빈손으로 가시나요?”

재석은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고 정은은 조용히 엄지를 세우며 감탄했다.

‘역시 대단한 사람들은 이런 사소한 것을 신경 쓰지 않는 건가 봐?’

하지만 이내 재석은 차를 길가에 세웠다.

...

오미선 교수의 집은 서비대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환산로에 위치한 작은 양옥집이었다. 서양식과 동양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 집은 단풍나무 숲 속에 자리 잡고 있어, 고요하면서도 깊은 인상을 주었다.

6년 만에 찾아온 이곳에서, 정은은 안절부절 못하며 발밑의 과일 바구니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용기가 사라진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 정은의 마음을 읽은 듯, 재석이 물었다.

“내리지 않을 거야?”

정은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렸다가요.”

재석은 긴장해 하는 정은을 몇 초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먼저 들어갈게.”

정은은 재석이 아무 말 없이 떠나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심호흡을 두 번 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

이맘때쯤이면 백화가 만발해 있었다. 작은 정원에 들어서자 부드러운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정은의 코끝에 스며들었다. 난간 옆에는 주인이 돌보지 못한 듯 시들어 버린 채소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 정은은 오미선 교수의 목소리를 들었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재석을 따라 걸었다.

“교수님.”

오미선 교수는 손에 들고 있던 최신 생물학 학술지를 내려놓고 돋보기를 올려 썼다.

“어? 재석이구나? 어떻게 왔니?”

재석은 오미선 교수를 부축하며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건강은 좀 어떠세요?”

“별거 아니야. 너희들이 이렇게 다들 찾아올 필요 없는데.”

오미선 교수는 재선의 손을 톡톡 쳤다.

“너희들이 신경 써줘서 고맙지만, 나는 괜찮아, 정말 아무 문제없어!”

재석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오늘 데리고 온 사람이 있어요.”

“누구?”

오미선 교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재석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정은이 현관에 서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오미선 교수의 표정이 놀라움과 반가움에서 차갑고 의도적으로 냉정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여기 왜 왔니?”

“교수님.”

정은은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오미선 교수는 목소리를 굳히고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때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버릴 수 있다고 말하던 아이가, 지금은 왜 온 거니?”

정은은 입술을 꽉 다물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교수님, 죄송해요, 실망하게 해드려서.”

“또 다른 할 말은 없고?”

오미선 교수는 드물게 이렇게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또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고 잠시 멈추고 나서 낮게 말했다.

“아직 늦지 않았나요?”

“드디어...”

오미선 교수는 한숨을 쉬며 얼굴이 서서히 풀어졌다.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니? 6년, 꼬박 6년이야.”

정은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몰랐어요.”

오미선 교수는 계속 기다렸다는 사실을 정은은 몰랐었다.

“지금이라도 이해해서 다행이야.”

오미선 교수의 얼굴에 마음 아픈 표정이 스며들자 정은은 코끝이 시큰해지며 참지 못하고 품에 안겼다.

“교수님.”

오미선 교수는 정은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마음이 조금씩 풀어졌다.

“그래, 그래. 그런데 이렇게 큰 사람이 울면 웃음거리가 될 거야.”

재석은 조용히 그 장면을 지켜보다가, 두 사람이 화해하는 모습을 보며 거실을 떠나 발코니로 나갔다. 두 사람만의 시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오미선 교수는 정은의 연애 이야기는 절대 언급하지 않았다. 오늘 정은이 잘못했다고 말한 것은, 그 당시 선택한 길, 아니면 그 사람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정은의 마음에 상처를 다시 들추고 싶지 않았다.

“학교 근처에 집을 구했어요.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올해 말에 교수님 연구실에 들어가려고 준비 중이에요.”

그러자 오미선 교수의 눈이 반짝였고 생각 밖의 희소식에 굉장히 행복해했다.

“정말? 진짜로?”

오미선 교수는 놀란 나머지 두 번 확인했다.

“네.”

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는데 오미선 교수를 마주 볼 용기가 없었다.

“좋아! 좋아! 정말 잘했어! 네가 나에게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올해에 너를 위해 내가 티오 하나를 비워뒀으니까.”

정은은 놀랐다. 병문안을 가면서도 오미선 교수가 티오를 비워뒀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이렇게 확인되니 믿기 어려웠다.

“교수님, 제가 합격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죠.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그러자 오미선 교수는 말했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못 붙을 이유가 없어! 네 능력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아. 네가 일부러 망치지 않는 이상, 농담하는 거겠지!”

“그럴 리 없어요.”

정은은 눈가는 촉촉해졌지만 애써 웃었다.

“시간이 늦었구나. 재석이랑 너... 어? 재석이 어디 갔지?”

“교수님.”

재석이 발코니에서 들어왔다.

“마침 곧 점심시간이네, 오늘 둘 다 여기서 점심 먹고 가. 내가 직접 요리할게!”

정은은 얼굴이 변했고, 재석의 표정도 복잡해졌다.

“저기... 교수님, 그러면 제가 할게요.”

정은은 오미선 교수의 마음을 몰라서가 아니라, 오미선 교수가 요리하면 부엌이 엉망이 될까 봐 걱정했다. 오미선 교수는 약간 당황하며 기침했다. 자신의 요리 실력을 잘 알고 있기에 제자들 앞에서 체면을 잃을 수 없어 말했다.

“콜록콜록... 그래, 그래. 나는 요양 중이라 요리는 안 하는 게 좋겠지.”

정은은 재빠르게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으로 들어갔고 재석도 소매를 걷어붙이고 따라갔다.

“내가 도울게.”

오미선 교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입꼬리가 계속 올라갔다.

냉장고는 가득 차 있었고, 재료는 모두 신선했다. 오미선 교수는 막 퇴원해서 요양 중이었으니, 정은은 담백한 요리를 만들기로 했다.

“뭐 도와줄까?”

재석이 묻자 정은은 재료를 보며 물었다.

“야채 씻을 줄 알아요?”

그 말에 재석은 잠시 망설였다.

“어려운 건 아니지.”

정은은 자리를 내주었고, 재석은 서툴지만 정성껏 야채를 씻기 시작했다. 잎사귀에 묻은 흙과 모래를 꼼꼼하게 씻어내는 그의 모습에서 진지함이 엿보였다.

“먹지 못하는 거 있어요?”

“없어.”

“싫어하는 건요?”

“딱히 없어.”

“입맛 맞추기 쉽네요.”

정은은 작게 중얼거렸다. 까다롭지 않고 요구도 많지 않은 재석의 모습이, 어딘가 강도겸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조용히 요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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ความคิดเห็น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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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재미있어요여자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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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옥
앙대요..ㅋㅋ 다음화보여주세요...
goodnovel comment avatar
123 ABC
너무재미있어요 뒷얘기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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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민은 사시미를 좋아해서 신선한 연어와 평소에 자주 먹는 새우 등 해산물을 주문했다. 정은은 차가운 음식을 잘 못 먹기 때문에 라멘과 스시를 시켰다. 라멘 맛은 그저 그랬지만, 재료가 신선한 덕에 먹을 만했다. 수민은 정은이 꽤 잘 먹는 걸 보고 일부러 장난을 쳤다. “이 연어 진짜 신선하고 맛있는데, 한 번 시도해 볼 생각 없어? 새로운 세계를 열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자 정은이 웃으며 거절했다. “너도 알잖아, 나는 날 것을 심리적으로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는 걸. 그냥 라멘이나 먹을게.” 그 말에 수민이 웃으며 말했다. “정말 넌 한결같아.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도 말이야.” 수민은 정은이 좋아하는 것에는 항상 고집 있게 행동한다는 걸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았다. 마찬가지로,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도 항상 그랬다.“그러고 보니, 며칠째 스파를 못 갔더니 손이 거칠어졌어. 요즘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었거든.” 수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 아빠 탓이야. 요즘 자꾸 나 보고 소개팅을 하라고 하셔. 엄마도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아빠와 함께 나를 몰아세우고 있어.”“나를 못 먹여 살리는 것도 아니면서,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게다가 사촌 오빠도 아직 결혼 안 했는데,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수민이 조재석을 언급하자 정은은 그들이 비록 이웃이지만 각자 바빠서 거의 만날 시간이 없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에 함께 핫팟을 먹은 후, 삼각김밥을 한 번 가져다준 것 외에는 따로 만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수민은 정은의 생각을 읽지 못하고, 스시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그들이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그때 너 내 오빠랑 같이 오미선 교수님 만나러 간다고 했잖아, 그 후에는?” 정은은 고개를 숙여 면을 흡입하고 한동안 씹더니 이내 삼키며 말했다. “그게 말이야. 오미선 교수님께서 나를 위한 티오 이미 마련해주셔서, 올해는 반드시 통과해야 해.” 그 말에 수민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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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석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물리학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나름의 속도와 경로를 가지고 있으며, 당신이 멈추라고 한다고 해서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자 고승찬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냥 한번 말해본 것뿐입니다.” 두 사람은 화기애애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헤어졌다. 재석이 돌아섰을 때, 정은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네, 이웃.”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정은은 아까의 일을 피하려는 듯 가볍게 대화를 이어갔다. “지난번 도움 주신 덕분에, 요 며칠간 문제 풀이가 순조로웠어요.” 그러자 재석이 겸손하게 말했다. “그건 네가 잘 이해한 덕분이야. 오미선 교수님께는 다녀왔어?” 정은은 손을 뒤로 잡고, 발밑의 돌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다. “아뇨, 몇 번 전화만 했어요. 오미선 교수님 건강이 많이 회복되어서 곧 학교에 돌아오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재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오미선 교수님은 항상 자신의 교육 업무에 책임감을 가지고 계셔서, 이 며칠 쉬는 것도 아마 답답하실 거야.” 해가 점점 저물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이 균형을 잡지 못해 흔들거렸다. 정은은 마침 고르지 않은 돌판을 밟아 비틀거렸고, 균형을 잡지 못해 자전거와 부딪칠 뻔했다. 순간적으로 재석은 정은의 가느다란 손목을 붙잡고는, 조금 힘을 주어 정은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덕분에 정은은 자전거와 충돌하지 않고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괜찮아?” 재석의 따뜻한 손이 옷소매 너머로 정은의 손목을 꽉 잡고 있었다. 여름옷은 얇았기에 따뜻한 온기는 곧바로 전해졌고, 정은의 귀는 순간적으로 뜨거워졌다. “괜찮아요, 고마워요.” 두 사람은 너무 가까이 있었다. 호흡이 닿을 듯 가까웠다. 이 사실을 인지한 정은은 반 발짝 뒤로 물러섰다. 재석도 그제야 깨닫고, 손을 놓았다. 그 후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집까지 걸어갔다. 이윽고 집에 도착하자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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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54화

    “언니, 이건 굳이 우리 의견 물을 필요도 없지 않아요? 언니가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가는 거죠. 저희한텐 뭐든 시키기만 하세요. 무조건 따라갈게요!”민지가 단호하게 말하자, 서준도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맞아요, 저흰 누나 믿고 가는 거예요. 결정은 누나가 해요.”정은은 그 말에 잠시 멍해졌다가, 결국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너희들... 나 그렇게 믿어도 돼? 나도 가끔 실수하거든?”민지는 마치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정은 언니가 실수했다면, 그건 100% 저랑 서준 오빠가 뭔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뜻이에요.”“그건 좀 과장이지만...”‘그래도... 이런 믿음을 받는다는 게 참 따뜻하네.’세 사람은 그렇게 식사를 마쳤다.계산은 서준이 맡았고, 정은과 민지는 먼저 주차장으로 향했다. “언니, 먼저 가요. 전 서준이 데리러 갈게요.”“응? 굳이?”“우리 집이랑 방향이 같잖아요. 서준이는 차도 없으니까, 그냥 태워다 주는 거죠, 헤헤.”“그래, 알겠어. 그럼 조심히 가. 운전 천천히 하고.”“네. 언니도 잘 들어가요!”...두 ‘파트너’와 방향을 맞춘 정은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자료 조사부터 시작해 ‘신소재 최적화 계획안’을 정리하고, 모든 내용이 빠짐없이 정리됐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확인했다.벌써 밤 10시. 정은은 핸드폰을 들고 조심스레 메시지를 보냈다.[장은혁 씨, 시간 돼요? 상의드릴 게 하나 있어요.]그 시각, 은혁은 거실 소파에 앉아 어머니인 황희숙 여사의 ‘진실 공방’에 시달리고 있었다.“너 외할아버지한테 전화 왔어. 오늘 도시락 들고 회사 갔다며? 근데 그냥 말도 없이 두고 사라졌다고 난리야. 게다가 누가 너랑 어떤 여자가 같이 있는 걸 병원 약국에서 봤다던데? 솔직히 말해봐. 너, 여자 친구 생겼지?”은혁은 억울함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아니 외할아버지는 왜 또 엄마한테 바로 전화해요? 진짜 너무하신다니까요...”“이 자식 봐라, 말버릇 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53화

    진욱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렇게 마음이 있는 거면, 왜 정은이한테 솔직하게 말 안 해?”“겁나는 거지, 재석아? 말 꺼냈다가 거절이라도 당하면... 그땐 친구로도 남을 수 없을까 봐, 무서운 거잖아.”진욱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재석을 똑바로 바라봤다.“그건 너답지 않아. 내가 아는 재석이는, 망설이지 않고 결정하는 사람이었어. 결과가 불확실하다고 물러서는 사람 아니었잖아.”“정은이가 ‘지금은 연애 생각 없다’고 했지? 중요한 건 ‘지금은’이라는 거야. 사람 마음은 바뀌는 거고, 그때 거절했다고 지금도 똑같을 거란 보장은 없어. 알겠냐?”재석은 말없이 진욱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 말이 생각보다 깊게 박혔다. ‘지금도 똑같을까? 아니, 혹시... 지금은 조금 다를 수도 있는 걸까...’진욱은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야, 진심으로 말하는 건데, 너 계속 질질 끌면, 정은이 뺏긴다. 그리고 뺏기고 나서 울어봤자, 소용없을 거야.”“우리 정은이 인기 많은 거 너도 알잖아. 예전에도 정은이 두고 싸운 애들 있었잖아. 그리고 오늘 그 남자 봤지? 얼굴 잘생겼지, 젊지, 에너지 넘치지, 옷차림 보니까 집도 잘 사는 거 같던데?”재석은 이런 말을 아주 듣기 싫었다.“닥쳐.”진욱도 더 이상 말하기 싫었다. “칫. 드디어 위기감이 좀 드나?”‘그래, 긴장 좀 해라. 맨날 냉정한 척만 하지 말고... 이번엔 너도 좀 불안해져 봐야지.’...한편, 정은은 봉수진을 집에 바래다준 뒤, 약을 가정부에게 전달하며, 복용 방법까지 하나하나 직접 설명했다. 봉수진은 저녁까지 먹고 가라며 붙잡았지만, 정은은 이미 서준, 민지와의 약속이 있었다.“외할머니, 며칠 안에 다시 올게요. 오늘은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어서요.”“그래그래, 알았어. 젊을 땐 많이 만나고 다녀야지.”정은은 웃으며 고개를 숙였고, 곧 차에 올랐다.약속 장소인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땐, 서준과 민지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테이블 위에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52화

    은혁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그러게요... 나야 뭐, 그랬으면 좋겠지만...”하지만 정은의 태도는 그리 확신을 줄 만큼의 호감은 아니었다.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분명히 좋아한다는 표시도 없는 애매한 선이 보이는 듯했다.‘그래서 더 미치겠어. 기대도 못 하고,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고... 이러니까 계속 마음이 붕 떠 있잖아...’그렇게 속으로 앓고 있었지만, 정은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봉수진의 약에 모든 관심을 쏟고 있었다.VIP 약국답게, 일 처리는 정말 빨랐다. 정성스럽게 달인 약이 곧바로 팩 단위로 나뉘어 밀봉되었고, 음용 방법까지 깔끔하게 안내되었다.냉장 보관 후, 따뜻한 물에 데워 마시면 된다는 안내였는데, 이 정도면 환자도 거부감 없이 약을 먹을 수 있을 것이었다. 약을 다 받은 후, 약 한 시간쯤 지나 두 사람은 병원을 나섰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은의 전화가 울렸다.“여보세요? 외할머니? 네, 약 다 받아놨어요.”“병원에서 달여줬어요. 네, 거기 계세요. 지금 바로 갈게요.”전화를 끊은 정은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은혁을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오늘 고마웠어요. 외할머니 모시러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아, 어... 그래요! 잘 가요!”은혁은 여자의 뒷모습이 멀어질 때까지 멍하니 서 있었다.심지어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후에도 한참을 그렇게 바라본 후에야 아쉬움 가득한 시선을 거두었다.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고, 화면엔 ‘황기' 두 글자가 떴다.“여보세요?”[야 이놈아! 도시락 던져놓고 도망가듯 나가버리면 어떡해?! 말도 못 붙였잖아! 뭐가 그렇게 급해? 뭐가 외할아버지보다 중요한 거냐고?!]“죄송해요... 헤헤.”황기는 순간 당황했다. ‘얘 지금 뭐야? 미쳤어? 웃음은 왜 이렇게 정직하게 새어 나오는 건데...?’...한편, 정은은 봉수진을 태우고 병원을 나서는 중이었다. 바로 그때, 재석은 약을 수령하고 외래 진료실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51화

    정은도 여기서 재석을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선배님, 병원엔 무슨 일로 오셨어요?”재석은 그제야 시선을 거둬들였다. 눈길이 정은에게 닿는 순간, 표정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난...”“날 데려다주러 온 거야.” 그 순간, 전진욱이 배를 감싸 쥐며 천천히 다가왔고, 재석 대신 대답을 건넸다.정은은 진욱을 바라보다가 눈이 살짝 커졌다. “교수님, 어디 아프세요?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요.”“하... 뭘 잘못 먹었는지, 아침부터 배탈이 나서... 약도 안 듣고... 이 사람이 막 끌고 오더라니까... 검사라도 받아보라고.”정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하셨어요. 괜히 방치하다가 더 심해질 수도 있잖아요. 미리 체크하면 마음도 편하고요.”“어우, 너희 둘 미리 맞췄냐? 말이 어쩜 그렇게 똑같냐?” 진욱이 짐짓 장난스러운 말투로 투덜댔다.정은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재석을 바라봤다. “그랬어요?”재석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눈빛 속 어딘가 알 수 없는 감정이 일렁였다. ‘저 말투, 저 표정... 나만 아는 게 아닐 텐데...’“정은 씨, 이제 가야죠.” 그때, 은혁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아, 네.” 정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희 먼저 갈게요.”그렇게 말한 후, 은혁과 나란히 병원 복도를 걸어 나갔다.재석은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두 사람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눈빛 속 감정은 복잡하고도 묘했다. ‘뭔데, 저 둘은 저렇게 자연스러워...’“재석아? 야, 재석아!”진욱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재석은 고개를 돌렸지만, 눈빛 속 싸늘함은 여전했다. 진욱은 그 눈빛에 소름이 돋아 어깨를 움찔거렸다.“너... 왜 그래?”“방금 정은이가 ‘저희’라고 했어.”“어...?”진욱은 멍한 표정으로 재석을 바라봤다. 몇 초간 멍하던 그는 그제야 이해가 된 듯 말했다. “아... 그 ‘저희’? 그게 뭐 어때서? 같이 왔으니까 ‘저희’지. 그럼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50화

    얼마 지나지 않아 황 원장은 처방전을 프린트해서 정은에게 건넸다.“수고 많으셨습니다, 원장님.”정은이 공손히 인사하자 황 원장은 손을 휘저었다.“아이구, 무슨... 이 아가씨는 인사도 참 반듯하게 잘하네요. 말도 예쁘게 하고, 얼굴도 예쁘고. 이런 손녀가 있으면, 어디 내놔도 자랑이겠네요.”봉수진은 바로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그럼요. 우리 손녀는 어디 하나 빠지는 데가 없어요.”황 원장은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장난스럽게 물었다.“이렇게 예쁜 아가씨한테 남자 친구가 없을 리 없는데? 그렇죠?”봉수진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없어요! 보통 남자애들은 우리 정은이랑 안 어울려요.”“허허, 그래도 우리 손자 정도면 꽤 괜찮은데...?”황 원장이 살짝 떠보자 봉수진은 손사래를 쳤다.“아이구, 그 얘긴 그만해요. 정은이 아직은 시집 안 보낼 거예요. 지금이 제일 곁에 두기 좋을 때라니까요.”‘아이고, 또 시작이다...’정은은 속으로 헛웃음 치며 처방전을 가방에 쏙 넣고 눈치껏 자리에서 일어났다.“저, 약 지으러 먼저 다녀올게요!”...진료실 문을 나서는 순간, 정은은 누군가와 부딪혔다.“아, 죄송해요!”고개를 돌려 상대방을 본 순간 정은의 걸음이 멈췄다.“은혁 씨?”은혁은 보온 도시락 통을 들고 서 있었다.“정은 씨! 또 보네요. 우리 진짜 인연인가 봐요? 하하...”“여긴... 병원인데? 누가 입원하셨어요?”정은이 도시락을 보며 물었다.“아, 아니에요. 저 입원실 온 거 아니고요! 외할아버지가 이 병원 의사세요. 오늘 외래 당번이라 저희 어머니가 직접 도시락을 싸주셨는데, 제가 대신 가져다드리러 온 거예요.”“혹시 외할아버지 성함이 황 씨?”“네! 황기 원장님이세요. 한약재 이름에서 따오셨대요, 혹시... 아는 분이세요?”‘어머나, 진짜 인연인가?’정은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오늘 저희 외할머니 진료도 황 원장님한테 받은 거예요.”“정말요? 세상에... 진짜 대박. 어쩐지 자꾸 마주치네요.”은혁은 정은 손에 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49화

    아침 햇살이 창문 틈 사이로 스며들었다. 부드럽게 퍼진 빛이 정은의 잠든 옆얼굴을 은은하게 감쌌다.살랑이는 바람에 커튼 끝자락이 가볍게 흔들렸고, 고요한 침실에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여보세요? 외할아버지?”이춘재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직 자고 있었구나? 그럼 내가 이따가 다시...]“아뇨, 괜찮아요. 이제 깼어요. 요즘 집에서 쉬고 있어서요, 실험실을 좀 멈췄거든요.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전화기 너머에서 이춘재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어젯밤에... 내 친구 하나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단다. 병원에서 못 버티고... 그냥 그렇게.]‘헉...’[오늘 아침에 그 집 식구한테 연락이 왔어. 장례 준비도 해야 하고, 남은 가족들도 어찌할 바를 모르니 내게 좀 도와달라고 하더구나. 그 친구는 진짜, 훅 떠났지만 남겨진 식구들은... 참 마음이 아프지.]이춘재는 말을 멈췄고, 한참 후에 덧붙였다.[원래는 오늘 네 외할머니가 병원 가는 날이라 내가 같이 가기로 했는데... 현빈이는 출장이란다. 생각해 보니까 내가 부탁할 사람은 너밖에 없더라.]정은은 웃으며 말했다.“외할아버지, 그게 어떻게 부탁이에요. 당연히 제가 가야죠. 외할머니랑 병원 가는 건 제 몫이에요. 외할아버지는 마음 놓고 다녀오세요.”[그래, 그래. 고맙다, 정은아.]...오전 9시. 정은은 외할머니댁 앞에 도착했다. 봉수진은 이미 외출 준비를 마치고 작은 가방을 손에 든 채 문 앞에 서 있었다.그 옆엔 이춘재가 말없이 함께 서 있었고, 두 사람은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당신 진짜 왜 그래요? 정은이는 실험실에서도 바쁜 애인데, 이런 일까지 시켜서 되겠어요? 괜히 애 걱정하게 만들고, 또 미안하게 만들고...”봉수진의 잔소리가 이어졌고, 이춘재는 구겨진 어깨로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맞아, 당신 말이 다 맞아. 근데 정은이가 요즘 쉰다길래... 그냥 부탁한 거지 뭐...”“쉰다고 병원까지 같이 가야 해요? 그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48화

    수민은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손을 올려 한 대 갈겼다.짝!동건은 피하지 못하고 정통으로 이마를 맞았다.“야! 미쳤어?!”수민은 인상을 팍 구기며 외쳤다.“너 귀신이야 뭐야? 소리도 없이 뒤에서 들이대고... 맞을만 하니까 맞은 거지.”“뭐? 지금 그딴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뭐야? 딴 남자 생각하다가 놀란 거 아냐? 장은혁? 그 잘난 척하는 새끼?”수민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맞아. 잘생겼지, 말도 잘해, 심지어 마술도 하지. 매력 넘치는데?”“푸... 마술? 그건 여자들 꼬시려고 배운 거지. 허세로 가득 찬 새끼야.”“오히려 더 좋지 뭐... 허세라도, 적어도 표현은 하잖아. 넌 뭐 있어?”동건은 이를 악물었다.“그런 애가 뭐가 그렇게 좋다고. 딱 봐도 겉멋만 잔뜩 든 애송이잖아.”“내가 좋으면 된 거지. 근데... 잠깐만. 너,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수민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다.“그냥.”“고동건!!!”“야, 소리 좀 그만 질러. 힘 좀 아끼라고. 이따가 쓸 데가 있을 테니까.” “꺼져.”수민은 문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동건은 한 발도 움직이지 않았다.대신, 그녀를 천천히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너 요즘... 왜 이렇게 자꾸 도망치는데? 솔직히 말해봐. 내가 그리웠지?”“웃기지 마.”“아닌데... 지금도 눈 흔들리는 거 보이거든.”수민은 숨을 고르며 조용히 말했다.잠시 후, 그녀는 동건에게 그대로 안겨 침대 위로 내던져졌다.동건은 셔츠 단추를 풀며 천천히 그녀 쪽으로 다가갔다.“한다고 했잖아. 내가 농담하는 사람으로 보여?”수민은 몸을 살짝 일으키며,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너 하나로 되겠어?”“해보면 알겠지.”밤은 길었고, 봄기운처럼 뜨거웠다.누군가는 그 열기를 마음껏 즐겼고, 누군가는 답답한 숨을 눌러 삼켰다....불 꺼진 침실. 어둠 속,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창문 너머로 달빛만이 희미하게 커튼 틈 사이로 비스듬히 들어왔다.재석은 거실 창 앞에 서 있었다. 등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47화

    부재중 10통 중 9통은 고동건, 그리고 나머지 1통...‘어? 우리 조재석 교수님?’수민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톡 알림도 확인했다.읽지 않은 메시지 42개.대부분은 역시나 고동건.수민은 손가락으로 휙휙 넘기며 대충 읽었다.[야, 또 남자랑 밥 처먹냐?][여사친 모임엔 남자 안 끼운다며?][그 장은혁, 꽃미남 새끼 남자 아니냐?][조수민 너 진짜 표리부동이다?] [답장 안 해?][전화도 안 받아? 10초 준다!][기다려, 오늘 밤에 너 좀 혼나야겠어!!]수민은 손가락으로 한 번에 쭉 밀어내고, 심드렁하게 한 마디만 보냈다.[꺼져!!!]10초도 안 돼서 동건한테서 바로 또 메시지가 왔다.[답장할 줄은 몰랐네...][넌 진짜 사람 마음 찢어놓고 아무렇지 않지?] [아냐, 넌 원래 마음이 없지.][...]수민은 무표정하게 창을 닫았다. ‘이 인간은 진심으로 질린다...’그리고 재석과의 메시지함을 열었다.단 두 줄.[정은이랑 어디서 밥 먹었어?][장은혁도 함께였어?]수민의 눈썹이 절로 올라갔다.‘어라...?’‘우리 조재석 교수님이? 이런 문장을? 이렇게 빠르게? 이렇게 직접적으로?’‘우리 조 교수님... 평소에 ‘응’ 하나 치는 데도 심장 박동 조절하듯 하던 사람이었는데...’게다가 이 두 문장, 보통 사람이 보냈다면 ‘그냥 궁금했나 보다’ 하고 넘겼을 거다.하지만, 그게 ‘조재석’이라는 이름으로 오면 느낌이 전혀 달랐다.‘이거... 약간... 삐쳤다고 읽어야 하나?’수민의 눈이 반짝였다.‘뭐야, 이거 진짜네?’그녀는 살짝 웃으며 미용실에서 찍어둔 사진을 열었다.정은과 은혁이 나란히 앉은 각도, 분위기도 꽤 그럴싸한 장면.‘자, 실험 들어가자.’사진을 톡에 업로드. 손끝으로 부드럽게 터치.전송 완료.바로 이어 핸드폰에 내장된 스톱워치를 켰다.“시... 작!”1초, 2초, 3초... 5초...띵-[지금 어디야?]수민은 피식 웃으며 핸드폰을 내려놨다.‘오케이, 확정. 조재석 교수님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46화

    “은혁아, 우리 먼저 가볼게.”은혁이 손을 흔들며 인사하려던 찰나, 정은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은혁 씨, 같이 식사하시죠? 어차피 저도 아직 안 먹었는데요.”“마침 예약도 해뒀으니까 괜찮다면 같이 가요.”“정, 정말요?! 괜찮을까요?”은혁은 말끝이 떨릴 정도로 들뜬 기색이었다.수민은 표정으로 정은에게 물었다. ‘진심이야?’정은은 눈빛으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수민은 한숨 쉬듯 웃으며 말했다.“좋지 뭐... 사람 하나 늘어난다고 달라질 거 없잖아. 같이 가자.”은혁은 기뻐서 입꼬리를 다 못 내렸다. ‘정말 같이 가는 거야...? 나 지금 약간... 꿈꾸는 거 아냐?’...레스토랑에 도착하자 직원이 안내한 자리로 세 사람이 들어갔다. 따로 마련된 룸이라 분위기도 아늑했다.음식이 나오기 전, 은혁이 갑자기 말했다.“기다리는 김에... 작은 마술 하나 보여드릴까요?”수민은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마술도 해? 그러고 보니, 정은이 외할머니 생신 때도 뭐 하나 보여줬었지.”“이번엔 새로 배운 거예요.” 은혁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그럼 해봐, 해봐!” 수민은 벌써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 준비 완료 상태로 들고 있었다.“도구 필요해?” 그녀가 묻자, 은혁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옆 캐비닛에서 종이 티슈 한 팩을 꺼냈다.그중 다섯 장을 쏙쏙 뽑아냈다. 마침 티슈에 프린트된 꽃무늬가 하나하나 다 달랐다.그는 정은을 향해 말했다.“정은 씨, 가장 마음에 드는 거 하나 골라주세요.”정은은 망설이지 않고 무심하게 한 장을 집어 들었다.은혁은 그걸 받아 조심스럽게 반으로 접고 말했다.“잘 봐요.”다시 펴서 말한 뒤, 조용히 티슈를 손안에서 뭉쳤다. 그리고 그 주먹을 천천히 펴자 손안에는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선물이에요.”은혁은 웃으며 그 꽃을 정은에게 건넸다.“진짜 꽃이에요?”정은은 놀란 듯 꽃을 받았다. 손에 올려놓고 한참을 들여다봤다.‘이거... 어떻게 한 거지?’수민은 슬쩍 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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