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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화 깨어난 뒤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5 01:06:39

· 작품 안내

《다시 고른 낭군》은 고려풍 가상 왕조를 배경으로 한 여성향 회귀 로맨스 판타지입니다.

 실제 역사·인물·제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혼례가 끝난 지 일주일 남짓 지난 밤, 태자궁.

이헌은 정전에서의 그 순간을 몇 번이고 되짚었다. 자신의 명패 앞을 지나, 서리의 시선이 맨 끝자리로 향하던 짧은 순간.

그럴 이유가 없었다. 서리가 언젠가 제 정비가 되리라는 것을 이헌은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의심할 이유조차 없었다.

그런데 서리는 제 앞을 지나쳤다.

그리고 맨 끝자리의 이겸을 골랐다. 눈을 뜨지 못하고 누워 있는 사람을.

'곧 후회하겠지.'

이헌은 그렇게 정리하며 붓을 다시 들었다. 글자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 짧은 순간으로 돌아와 있었다.

같은 줄을 세 번째 읽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이헌은 붓을 내려놓고 자리에 들었다.

몸이 물속으로 끌려 들어가듯 무겁게 가라앉았다. 평소의 얕은 잠과는 달랐다.

그 끝에서, 짧은 장면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자신을 보던 어떤 여인의 눈빛. 원망도 애원도 아닌, 다 타버린 재 같은 지친 눈이었다.

이헌은 눈을 번쩍 떴다. 심장이 제멋대로 빠르게 뛰고 있었다.

'무슨 꿈이지.'

며칠 잠을 설친 탓이라 여기고, 더 붙잡지 않았다. 다만 이유 모를 불안이 가슴 한구석에 옅게 남았다.

이헌은 당장이라도 이 선택을 되돌리고 싶었다. 그러나 왕이 이미 윤허한 공식 연택이었다. 태자가 나서서 뒤집으려 든다면, 왕실이 공신가에 허락한 권리를 스스로 거두어들이는 모양이 될 뿐이었다.

 

 

 

 

그로부터 얼마간 지난 아침, 이헌은 문안 인사차 왕후의 처소에 들러 있었다.

"영안궁에서 급보가 왔습니다."

 

내관이 고했다.

 

"영안공께서 혼백을 되찾으셨다 합니다. 간밤에 침전에 침입자가 들었는데, 직접 제압하셨다고……"

찻잔을 든 왕후의 손이 멈췄다.

석 달을 누워 있던 사람이었다. 의관들도 올해를 넘기기 어렵다 했고, 궁 안에서 그 이름은 이미 지난 이야기처럼 오갔다.

이헌의 얼굴에는 놀람보다 먼저 다른 것이 스쳤다. 죽어가는 남자를 골랐다고 여겼다. 곧 후회하리라 여겼다.

 

그런데 그 남자가 스스로 침입자를 제압하며 눈을 떴다.

"직접 가서—"

이헌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앉아라."

 

왕후가 제지했다.

 

"습격 다음 날 태자가 달려가면, 사람들이 무엇을 궁금해하겠느냐."

"영안공의 안위를 묻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 집 혼사에 태자가 어지간히 마음을 두고 있다고 볼 테지."

이헌이 다시 앉았다.

왕후는 그 얼굴을 잠깐 보았다. 평소의 아이라면 그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을 것이었다.

 

무엇이 급해서 그러느냐고 물어볼 수도 있었으나, 왕후는 묻지 않았다.

왕에게도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는 전갈이 뒤따랐다. 왕이 그 소식을 어떤 얼굴로 받았는지는,

 

이헌도 왕후도 알 수 없었다.

왕후는 말없이 찻잔을 다시 들었다. 아직은, 지켜볼 때였다.

 

 

 

 

서리가 침전 밖으로 나온 것은 날이 밝고 나서였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동안 마주친 시종이 셋이었다. 어제 이 시각에는 아무도 없었다.

 

행랑 쪽에서 짐을 옮기는 소리가 났고, 대문께에는 서신을 든 자들이 서 있었다.

 

문병을 청하는 것도 있었고 그저 안부를 묻는 것도 있었다. 어제까지는 오지 않던 이름들이었다.

이겸은 대부분을 물렸다. 몸이 회복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거짓은 아니었다.

대문께에서 시종 하나가 서신을 받아 들고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그 뒤로 또 한 사람이 섰다.

감씨가 그 틈으로 다가왔다.

"마님. 좀 누우셔야 합니다."

"밤사이 우리 쪽에 별일은 없었느냐."

"없었습니다. 다들 놀라기는 했습니다만."

"오늘은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 이르거라. 맡은 자리에만 있으라 하고."

"예."

"누가 무엇을 묻거든, 답하기 전에 나에게 먼저 알려라. 사소한 것이라도."

감씨의 얼굴이 굳었다.

"조사가 있겠습니까."

"있겠지."

"저희가 의심을 받겠습니까."

"받을 수도 있다. 그러니 각자 그날 밤 어디에 있었는지 정리해두라 이르거라.

 

없는 말을 지어내라는 것이 아니다. 있었던 대로만 적어두면 된다."

감씨가 물러간 뒤에도 서리는 마당에 서 있었다.

어제까지 이 집은 사람이 죽기를 기다리는 곳이었다. 그래서 조용했다.

오늘은 달랐다.

서리 역시 밤을 거의 새운 참이었다. 이겸이 석 달 내내 깨어 있었을 가능성을 지우지 못했다.

 

어젯밤의 그 움직임은 오래 누워 있던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확신할 증거는 없었다.

이겸이 자신을 구했다는 사실에는 분명한 고마움을 느꼈다.

 

동시에— 서리가 이 혼인을 택했던 이유 하나가 하룻밤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눈을 뜨지 않는 남편.

그 조건이라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할 일이 없었다.

 

영안공부인이라는 이름만 걸어두고, 서리는 제 일을 할 수 있었다.

지난 생의 영안공은 혼백을 잃은 채로 한 해를 더 버티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뒤로 누구도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서리는 그것을 알고 이 자리에 섰다.

그런데 채 열흘도 지나지 않아 눈을 떴다.

 

 

 

의관이 다녀간 뒤, 이겸이 서리를 청했다.

침전 앞에서 백우가 문을 열어주었다. 어제까지 이 문 앞에는 사람이 없었다.

안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이겸은 침상에 반쯤 기대앉아 있었다.

 

어젯밤보다 더 창백해 보였다. 몸을 고쳐 앉을 때 숨이 한 박자 끊겼다.

"내가 의식이 없는 동안, 연택례와 혼례가 모두 끝났더군요."

 

이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왜 나를 골랐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나라를 위해 싸운 분을 병들었다는 이유로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서리가 답했다.

 

"서가의 이름을 걸고, 그분을 지키겠다고 말씀드렸지요."

정전에서 했던 것과 같은 말이었다.

"그게 전부입니까."

서리의 손끝이 무릎 위에서 멈췄다.

"전부입니다."

이겸은 그 대답을 오래 바라보았다. 더 캐묻지 않았다.

"어젯밤 일도 묻고 싶습니다."

 

서리가 먼저 화제를 돌렸다.

 

"석 달을 누워 계셨던 분치고, 움직임이 지나치게 정확했습니다."

"급하면, 몸이 먼저 움직이는 모양입니다."

처음과 같은 답이었다. 서리는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

이겸이 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혼인을 무를 생각입니까. 내가 깨어났으니."

서리는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조건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영안공부인이라는 자리는 이제 자신이 서 있는 자리였다.

 

서가의 것을 지키려면 딛고 설 곳이 필요했다.

"거둘 뜻은 없습니다."

"이유를 물어도."

"영안공부인이 된 이상,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서리가 무릎 위의 옷감을 가볍게 눌렀다가 놓았다.

"서가의 것을 탐낼 생각은 없습니다."

 

이겸이 말했다.

 

"그 권리는 온전히 부인의 것으로 남을 겁니다."

서리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시선을 들어 이겸을 보았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요."

이겸의 눈매가 좁아졌다.

"믿지 않으시는군요."

"믿을 이유가 아직 없으니까요."

이겸은 그 말에 답하지 않았다. 창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가 다시 돌렸다.

"어젯밤 그자는 침상보다 먼저 부인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제가 표적이었다는 뜻이군요."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서가의 권리를 흔들려는 자들일 수도, 영안궁과 서가의 결합 자체를 막으려는 자들일 수도 있습니다."

"영안궁 안에도 협조자가 있었을 거라는 뜻이겠군요."

"당분간 몸조심하십시오."

"그뿐입니까."

"당장은, 그뿐입니다."

서리는 이겸이 무언가를 더 감추고 있다는 걸 느꼈다. 묻지 않기로 했다. 대신 스스로 알아볼 생각이었다.

"한 가지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겸이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부인의 사람이라 해서 예외로 둘 수는 없습니다."

서리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었다.

"제 사람들이라 하시면."

"감씨를 비롯해, 서가에서 데려온 이들도 포함됩니다. 습격이 벌어진 곳이 영안궁인 이상, 누구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그들은 서가에서부터 저를 따르던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살펴야 합니다."

서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제 사람을 함부로 다루신다면, 저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함부로 다룰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조사는 피할 수 없습니다."

서리는 이겸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제 사람을 조사하실 때는, 제가 함께합니다. 그건 양보하지 않겠습니다."

이겸의 시선이 예상보다 오래 서리에게 머물렀다.

"그리하십시오. 대신—"

"제 쪽 조사에는 관여하지 마십시오. 그것도 마찬가지로."

"좋습니다."

서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겸이 더 붙잡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였다.

 

 

같은 시각, 영안궁 경비를 살피던 백우 앞으로 젊은 군관 하나가 명부를 들고 달려왔다.

백우는 그날 밤의 교대표와 출입 기록을 몇 번째 맞춰보던 참이었다. 담을 넘은 흔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문으로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백우님."

 

그가 다급히 명부를 펼쳐 보였다.

 

"그날 밤 교대자 명단을 다시 맞춰봤는데…… 이 이름이, 영안궁 어디에도 없는 자입니다."

백우의 시선이 명부 위의 낯선 이름에 오래 머물렀다.

진유의 서랍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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