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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화 매듭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6 09:04:06

· 작품 안내

 《다시 고른 낭군》은 고려풍 가상 왕조를 배경으로 한 여성향 회귀 로맨스 판타지입니다.

  실제 역사·인물·제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백우가 명부를 든 채 이겸의 처소로 들어선 건, 해가 채 다 뜨기도 전이었다.

"확인했습니다, 주군."

백우가 명부를 내려놓았다.

"그날 밤 교대 명단에 '차복'이라는 이름이 하나 끼어 있었습니다. 영안궁 어디에도 그런 자는 없습니다."

"어떻게 끼어들었나."

"본래 교대였던 자는 위에서 하루 쉬라는 전갈을 받고 빠졌습니다. 그 빈자리에 차복이라는 이름이 들어갔고요."

이겸이 명부를 내려다봤다.

"누구 명으로 쉬게 했지."

"그건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차복이라는 자는 영안궁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겸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설픈 수는 아니었다. 안에서 손을 쓴 자가, 적어도 명부의 흐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포로는."

"아직 입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어젯밤 눈을 뜬 뒤로는 얌전합니다."

"이 일 이후로 별채에 드나드는 자와, 포로에게 오가는 물과 끼니는 전부 따로 명부에 적어두어라."

이겸이 덧붙였다.

"예."

"심문을 준비하라. 그 전에 명부를 고친 자부터 부르고."

명부를 맡은 자는 곧 들어왔다. 겁먹은 기색은 있었으나 감추는 것은 없어 보였다.

"차복이라는 자를 자네가 올렸나."

"예."

"어디서 왔나."

"제가 뽑은 자가 아닙니다."

그가 명부를 내려다봤다.

"원래 명부는 사흘 전에 짰습니다. 그때는 다른 자가 올라가 있었고요. 그날 낮에 교대가 바뀌었다는 전갈이 와서, 빠진 자리에 차복이라는 이름을 적었습니다."

"누가 전했나."

"사람을 거쳐 온 것이라 얼굴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전갈이 한둘이 아니라서요."

이겸은 그 말을 오래 붙들지 않았다. 교대가 바뀌는 일은 흔했고, 바뀐 대로 적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물러가라."

명부를 맡은 자가 나가자, 그날 밤 차복에게 자리를 넘긴 근무자가 들어왔다.

"차복이라는 이름을 전에 들어본 적이 있나."

"없습니다."

"얼굴은."

"처음 보는 자였습니다."

"교대할 때 무엇을 확인했지."

"명부와 호위패를 봤습니다."

그가 답했다.

"제 다음 자리에 차복이라 적혀 있었고, 호위패의 이름도 같았습니다. 시각과 복장에도 이상이 없었습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나."

"다른 데서 사람을 당겨 오는 일도 있습니다. 명부와 호위패까지 맞으니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근무 위치는."

사내가 잠시 말을 멈췄다.

"제가 말하기 전에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리도 일러주지 않았는데, 그쪽으로 그냥 걸어갔습니다."

이겸의 손끝이 명부 위에서 멈췄다.

"그때는 이상하다 여기지 않았나."

"여기지 않았습니다. 미리 듣고 왔으려니 했습니다."

그자가 물러간 뒤, 다음 시각의 근무자는 오래 붙잡지 않았다.

"차복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나."

"없습니다."

"명부에서 본 적은."

"그날이 처음이었습니다."

그가 자리에 왔을 무렵에는 이미 소란이 지난 뒤였다.

셋을 다 물린 뒤에도 이겸은 명부를 접지 않았다.

정상 교대자를 하루 쉬게 만들고, 그 빈자리에 이름을 하나 올리고, 호위패와 복장과 시각과 설 자리까지 맞춰 보냈다.

바깥에서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리가 그 자리에 나타난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저도 심문에 참여하겠습니다."

이겸은 잠시 서리를 바라보았다.

"부인의 사람을 조사할 때 함께하겠다는 약조였습니다. 저 포로는 부인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자가 노린 것이 저라면,"

서리가 곧바로 받았다.

"이건 제 일입니다."

"함부로 끼어들지 마십시오."

"끼어들지 않겠습니다. 다만 지켜보겠습니다."

이겸은 잠시 서리를 바라보다가, 말없이 몸을 돌려 별채 쪽으로 앞장섰다.

포로는 별채의 좁은 방에 결박된 채 앉아 있었다. 나이는 서른 안팎, 눈빛이 가벼웠다. 겁에 질린 얼굴이라기보다는, 상황을 재는 얼굴이었다.

"이름은."

이겸이 물었다.

"이름 대봐야 좋을 거 없지 않습니까."

사내가 씩 웃었다.

"그보다— 말해드릴 순 있는데, 저 살려는 주십니까?"

"붙잡힌 순간에는 스스로 죽으려 들더니,"

이겸이 사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제는 목숨값을 흥정하는군."

사내는 잠시 머쓱한 얼굴을 하다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땐 붙잡히면 끝인 줄 알았습니다. 고문당하다 죽느니 그편이 낫겠다 싶었죠. 근데 밤을 넘기도록 그런 것도 없더군요.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아직 팔 것이 남았다고요."

이겸은 대답 대신, 압수해둔 사내의 물건들을 바닥에 하나씩 늘어놓았다. 밧줄 한 뭉치, 재갈로 썼을 법한 헝겊, 짧은 단검 하나.

"흥정은 나중에."

이겸이 물건들을 눈으로 훑으며 말했다.

"죽이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이런 밧줄과 재갈까지 챙길 이유는 없지. 처음부터 죽이는 게 전부는 아니었다는 뜻이겠고."

사내의 눈빛이 흔들렸다.

"데려가라는 명을 받았나."

사내는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다만 숨이 아주 잠깐 멎었다가, 다시 이어졌다.

"……그렇습니다."

사내가 마지못해 인정했다. 씩 웃던 낯빛을 거두고, 앉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죽이란 말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도구는 어디서 났나."

"직접 준비했습니다. 그쪽은 흔적 남을 물건은 주지 않습니다."

"그럼 받은 것은."

사내가 잠시 뜸을 들였다.

"……옷하고, 패하고, 시각하고, 설 자리입니다."

이겸의 눈이 가늘어졌다.

"호위패를 받았나."

"받았습니다. 옷도 같이요. 어디로 들어가서 어느 쪽으로 도는지도 들었고요. 저는 들은 대로만 걸었습니다."

"그것을 준 자가 누구냐."

"모릅니다. 얼굴 가린 자였습니다."

"그자가 영안궁 안 사람인가."

"그건 아닐 겁니다."

사내가 답했다.

"안에 있는 자면 저를 쓸 까닭이 없지요. 다만 안에 아는 자가 있으니 그런 것까지 알았겠지요. 누군지는 저한테 말해주지 않습니다."

서리는 바닥에 늘어놓인 물건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기절시켜도 안 되었던 겁니까."

사내의 시선이 서리에게로 옮겨갔다.

"……예?"

"여기 어디에도, 사람을 재우는 약은 없군요."

서리가 물건들을 가리켰다.

"이런 일에는 보통 정신을 흐리는 약부터 챙기지 않나요."

사내는 잠시 서리를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쓰지 말라 했습니다."

사내가 답했다.

"깨어 있는 채로 데려오라고요. 정신 흐린 꼴도 안 되고, 상처 하나 내도 값을 못 받는다 했습니다. 왜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러라니까 그런 거죠."

"그자와는 어떻게 닿나."

이겸이 다시 물었다.

"표식이 뜹니다."

사내가 손끝으로 허공에 문양을 그려 보였다. 서리는 그 형상을 눈에 새겼다. 어느 가문의 것인지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어디에 있나."

"그때그때 다릅니다. 제가 다니는 길목 어딘가에 나 있어요. 어디에 할지는 저쪽이 정합니다. 그게 보이면 일이 들어온 거고, 안 보이면 그냥 지나가는 겁니다."

"보고 나면."

"가서 만납니다."

"어디서."

사내가 이번에는 답하지 않았다.

"선금은 얼마였나."

사내는 잠시 망설이다가 액수를 말했다. 적지 않은 돈이었다.

"어디 있나."

"제 봇짐 안에 있을 겁니다. 어차피 뒤져보셨을 텐데요."

더 캐물어도 같은 답만 돌아왔다. 최종 명령자가 누구인지, 왜 굳이 생포를 고집했는지— 사내는 정말로 모르는 눈치였다.

포로가 다시 방으로 끌려간 뒤, 이겸과 서리만 남았다.

"산 채로."

서리가 낮게 되뇌었다.

"그것도 정신이 온전하고, 상처 하나 없는 상태로."

이겸은 잠시 말이 없었다.

"죽이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저런 조건을 붙일 이유가 없었겠지요."

"데려간 뒤에 제게 무엇인가를 시키려 했다는 뜻일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서리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모르는 것이 더 많군요."

"예."

누가 자신을 원했는지보다, 왜 살아 있는 자신이 필요했는지가 남았다.

서리는 봇짐에서 나온 소지품을 살폈다. 낡은 단검 하나, 따로 굴러다니던 은 조각 몇 개, 그리고 손대지 않은 선금 꾸러미.

꾸러미를 열어보던 서리의 손이, 문득 멈췄다.

"이 매듭."

서리가 꾸러미를 들어 보였다.

이겸이 그것을 받아 들고, 실 끝을 뒤집어 보았다. 손이 그대로 멈췄다.

천과 겉으로 드러난 묶음은 흔한 것이었다. 낯선 것은 실 끝을 안으로 감아 숨긴 마지막 마감뿐이었다.

"북방의 병영에서 이런 마감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서리가 말했다.

"물자를 꾸리던 이들의 손에서요."

"상단이나 용병들도 종종 쓰는 방식입니다."

이겸이 실 끝의 마감을 다시 짚어보며 답했다.

두 사람 다 그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이겸은 꾸러미를 품 안에 챙겨 넣었다.

해 질 무렵, 백우가 처소로 들어섰다. 표정이 굳어 있었다.

"주군. 포로에게 물을 나른 자가 아침에 정해둔 사람과 다릅니다."

이겸의 시선이 들렸다.

"본래 맡은 자가 몸이 좋지 않아 대신 왔다고 했다는데, 확인해보니 교대를 지시한 사람도, 바뀌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백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채로 간다."

이겸이 먼저 문을 나섰고, 백우와 서리가 뒤따랐다.

물그릇은 아직 손대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백우가 품에서, 탕약 사건 이후 갖춰둔 검사용 은침을 꺼내 물에 담갔다. 잠시 후 침 끝이 평소와 다른 빛으로 탁해졌다.

"적어도, 마실 물은 아닙니다."

백우가 낮게 말했다.

포로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저를…… 치우려 한 겁니까."

사내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물그릇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낮게 명했다.

"오늘 별채에 드나든 자들을 전부 다시 적어와라. 물을 나른 자부터, 그 앞뒤로 손을 거친 자까지 빠짐없이."

"예."

백우가 명부를 챙겨 서둘러 물러갔다.

진유의 서랍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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