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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빤히 보지도 말고요.]

Author: silver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03 11:30:07

자신을 정교하게 뜯어보는 가계영의 날카로운 안광에 현신은 본능적으로 시선을 회피하며,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차갑게 정리해 나갔다.

현신은 늘 타인의 신분을 빌려 살아왔기에, 임무를 수행할 때는 항시 머리색과 눈동자 색을 위장하고 체격이 커 보이는 두꺼운 소재의 옷과 굽이 높은 군화를 애용했다. 

게다가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마스크까지 썼으니, 제아무리 가계영이라 해도 실체를 특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가슴을 조여오는 불안감에 자신은 가계영의 눈을 차마 마주하지 못한 채, 겁에 질린 가냘픈 소년의 배역에 몰입하기로 했다.

“자꾸··· 그렇게 보지 마세요. 무섭게···.”

“내 착각인가. 그 녀석이라기엔 몸이 너무 말라서 제대로 된 체력조차 없어 보이는군.”

그럼 그렇지. 현재 현신은 헐렁한 점퍼에 때 묻은 청바지, 굽 없는 캔버스화를 신고 있었기에 평소보다 훨씬 왜소하고 앳된 소년의 이미지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도대체 이 남자가 왜 초면인 자신에게 이토록 집착적인 관심을 쏟는지 의아했다. 가계영의 시선이 너무도 노골적으로 피부를 훑고 지나가는 탓에,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자 발걸음이 절로 뒤로 물러났다.

“눈동자 색이 금빛인가? 되게 특이하군.”

자신의 얼굴을 탐색하던 가계영은 아예 대놓고 코끝이 맞닿을 정도로 거리를 좁혀왔다. 전에도 느꼈지만, 가계영에게서는 체향인지 향수인지 모를, 지독하게 관능적이면서도 머리를 아찔하게 만드는 기분 좋은 향기가 풍겨 나왔다.

그때 뒤에 서 있던, 처음부터 위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경호원이 현신의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왜 이렇게 뻣뻣해? 형님들께 고개부터 숙여야 할 거 아냐!”

“읏!”

현신은 어깨를 잔뜩 움츠리며 연약한 소년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가계영이 자신의 가느다란 팔뚝을 단단히 붙잡자, 짐짓 놀란 척 허리를 굽히며 시선을 발끝으로 떨어뜨렸다.

“조심해.”

“······아,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인 채 그들을 면밀히 관찰하던 현신은, 머릿속으로 이 위험한 침입자들의 신분을 부감하며 가늠질했다.

‘금발 머리는 꽤 곱상하면서도 예쁘장하게 생겼네. 돈 많은 집안에서 귀하게 자란 한량 도련님 같고, 그 옆의 남자는 이지적이지만 표정 하나 없이 딱딱하네. 아마 의사 같은 전문직일 확률이 높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팔을 붙잡고 있는 남자, 가계영. 

그가 현신을 잡아채는 민첩함은 예사롭지 않았다. 지난번 대결에서도 느꼈지만 가계영은 고도로 단련된 육체를 지닌 실력자임이 분명했다. 어디 거대 조직의 우두머리라도 되는 걸까. 겉모습은 세련된 자산가처럼 보였기에 그 괴리감이 더욱 불길하게 다가왔다.

‘조직을 거느린 재개발 시행사인가? 아니면 건설업자?’

무엇이 되었든, 현재의 자신과 접점이 생겨서는 안 될 남자였다. 이 폐허 같은 보육원 부지를 탐내며 여기까지 찾아온 자라면 더더욱. 자신이 이곳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던 현신은, 겁에 질린 소년 연기를 위해 전신에 힘을 뺐다.

“저는··· 그만 가보겠습니다.”

“잠깐만! 귀염둥이. 너 그런데 여기는 왜 온 거야?”

싱글벙글 웃음을 흘리던 한규련이 현신에게 다가와 다정하게, 그러나 뱀처럼 교묘하게 말을 건넸다.

“좋은 차가 서 있길래··· 신기해서 구경한 거예요. 평소엔··· 사람들이 잘 안 오는 곳이라··· 궁금하기도 했고요. 형님들은··· 누구신데요?”

“하하, 귀엽네. 우리 차가 좀 눈에 띄긴 하지. 역시 사내자식이라 바퀴 달린 거엔 사족을 못 쓰는구먼?”

“가계영, 그런데··· 네가 말했던 그 라ON 출신 요원이랑 이 아이를 비교해 본 거야?”

아이고. 

현신은 김강무의 입에서 나온 예기치 못한 단어에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 남자조차 '라ON'에 대해 알고 있단 말인가? 그때 김강무가 팔짱을 풀고 천천히 자신에게로 다가왔다. 

저들이 임무에 대한 세세한 정보까지 공유하는 사이라는 사실이 지독하게 거슬렸다. 현신은 그들이 다가오는 거리만큼 뒷걸음질을 치며 필사적으로 거리를 벌렸다.

“우리 김강무, 눈치 하나는 끝내주네. 가계영이 신경 쓰인다던 그 소년? 미모의 간호사로 분장했다던 그 독종이··· 설마 이 녀석일 리가 있겠어? 풉! 이렇게 겁먹은 토끼 같은 애를 두고 무슨······.”

현신이 물러난 만큼 세 남자가 다시 그녀에게 밀착해 얼굴을 샅샅이 살폈다.

‘이런 제길······.’

자신이 목숨 걸고 확보한 의료 비리 증거를 사회 정의를 위해 터뜨린 장본인들이 바로 저들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사비를 들여 사회악을 처단하려는 자들이라면 본질적으로 나쁜 자들은 아니겠지만, 요원으로서 정체가 드러나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수치였다. 도둑이 제 발 저린 심정으로 현신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그 녀석은 키가 더 컸어. 눈동자 색도 확연히 달랐고.”

“그런 외적인 건 얼마든지 바꿀 수 있지. 요원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때. 꼬마야, 뭐가 됐든 인생 그렇게 위험하게 살지 마라. 알겠지?”

예리하게 상황의 본질을 꿰뚫는 김강무의 충고에 현신은 대답 없이 쭈뼛거리며 그들의 눈치만 살폈다.

“김강무, 자꾸 그렇게 잔소리하면 요즘 애들은 꼰대라고 질색해. 귀염둥이, 어서 가 봐.”

한규련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꾸벅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 찰나, 김강무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으며 눈을 번뜩였다.

“잠깐!”

그의 눈동자에 투영된 현신의 모습 위로, 김강무의 입가에 걸려 있던 여유로운 미소가 서서히 굳어갔다.

“너 몇 살이지? 이름은 뭐고? 갑자기 널 그냥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는데.”

김강무의 목소리 끝자락에 묻어난 날카로운 의구심이 자신의 목덜미를 서늘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네?”

그러자 곁에 있던 가계영이 다가와 김강무의 옆에 섰다.

“김강무, 너 그거 범죄다. 애 겁먹었으니 그냥 보내줘.”

그러자 한규련은 한술 더 떠 뒤에 서 있던 수하들에게 손짓하며 은밀하게 사람을 불렀다.

“가계영, 네 그 말에 애가 더 놀라겠다. 진짜 귀여워서 확 잡아갈까 싶기도 한데? 그런데 이 녀석, 자기 집 안마당처럼 너무 당당하게 여길 불쑥 들어왔단 말이지. 나도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어.”

말속에 뼈를 심은 한규련의 목소리에 가계영은 곧바로 자신의 수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마동현 실장, 이 녀석 신원 확실하게 조사해 봐. 우리 셋은 부지를 좀 더 둘러보고 올 테니까, 그때까지 여기서 절대 놓치지 말고 잡아둬.”

그의 서슬 퍼런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아까 맨 처음 현신을 위협했던 마동현 실장을 비롯한 건장한 경호원들이 자신을 포위하듯 다가왔다.

“저기요! 저 나쁜 사람 아니에요! 그냥 구경 온 거라니까요!”

현신은 본인이 이 땅의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침입자들에게 도리어 수상한 취급을 받자 황당함에 목소리가 저절로 높아졌다. 

그러나 가계영과 그 일행은 현신의 외침 따위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채, 차가운 잔상을 남기며 불타 뼈대만 남은 보육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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