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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우천 시 실내 진행

Auteur: Jino
last update Date de publication: 2026-10-18 12:03:32

[재헌]

그날 밤 누룽지는 데우지 않았다.

그녀가 봄빛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식탁에서 태블릿을 보고 있었다. 신발 벗는 소리에 태블릿을 뒤집었다. 그리고 다시 바로 놓았다. 숨기지 않기로 했으니까.

"채이 씨. 이리 와 보세요."

그녀가 가방을 든 채 왔다. 화면을 보여 줬다. 안건 1호. 그 밑 작은 글씨.

대표 후보 혼인의 진정성에 관한 자료.

그녀가 두 번 읽었다.

"……진정성. 우리 결혼이 가짜라는 거죠. 그걸 증명하겠다는 거고."

"그런 뜻입니다."

"무슨 자료요?"

"모릅니다. 백 실장이 찾고 있습니다."

그녀가 의자를 끌어 앉았다. 가방을 무릎에 올렸다.

"재헌 씨. 우리 결혼, 가짜예요?"

그녀는 식탁만 봤다. 반지 낀 왼손을 오른손으로 덮은 채였다.

"……식은 진짜였습니다. 하객 이백 명 앞에서 했고, 서약도 했고, 반지도 끼웠습니다."

"그다음은요."

"그다음은."

다듬이 방망이 소리 사이에 뱉은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1년이 짧습니다. 지금 하면 이사회 때문에 하는 말처럼 들릴 것이다. 진정성 자료를 막으려고 급하게 꺼낸 말처럼.

삼켰다. 삼킨 말은 목에 걸린다. 마른 누룽지처럼.

"이사회 끝나고 말하겠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뭔가 말하려다 닫았다.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알았어요. 잘 자요."

방문이 닫혔다. 한참 식탁에 앉아 있었다. 버팀이를 봤다. 오늘은 아무도 물을 안 줬다. 일어나서 컵에 물을 받았다.

[채이]

그 주 내내 비가 왔다. 장마.

그는 매일 늦었다. 백 실장, 법무팀, 사외이사들. 나는 장마철 예식을 치렀다. 비 오는 날 신부들은 밑단을 걱정하고 하객들은 우산 둘 데를 걱정한다. 로비에 우산꽂이를 세 개 더 놓고 버진로드 입구에 수건을 깔았다. 봄빛 매뉴얼에 있는 항목이다. 우천 시 실내 진행. 우리 홀은 원래 실내라서 그 항목은 우산꽂이 얘기뿐이다.

우리는 새벽 두 시 부엌에서만 잠깐 마주쳤다. 누룽지는 데우지 않았다. 물만 마셨다. 그날 식탁의 대화가 조청처럼 끈적하게 남아 있었다.

화요일, 자문 날. 윤 팀장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손님이 찾으십니다. 라운지에서."

라운지 창가에 윤선희 여사가 앉아 있었다. 갈라에서 지퍼가 터졌던 분. 사외이사.

"앉아요. 커피 마셔요?"

"밤에 못 자서요. 차 마실게요."

윤 여사가 웃었다. 창밖 비를 한참 봤다.

"이사회 공고 봤죠. 나한테 벌써 전화가 세 통 왔어요. 강 전무 쪽에서. 자료가 있으니 기대하라고. 내용은 안 알려 주고."

찻잔이 내려놓였다.

"나는 그런 거 싫어해요. 기대하라는 말. 사람 일을 무슨 공연처럼. 그리고 나는 커튼 뒤에서 안전핀 세 개를 기억해요. 그거 꽂아 준 사람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내가 봐서 알아요."

"여사님. 저희 결혼, 처음엔."

"말하지 마요."

손이 올라왔다.

"처음이 어땠는지는 나한테 말할 필요 없어요. 이사회에서도. 처음 어땠는지 묻는 사람한테는 지금 어떤지만 말해요. 처음은 다들 엉망이야. 나도 우리 영감이랑 선 보고 석 달 만에 식 올렸어."

윤 여사가 내 어깨를 두드리고 일어섰다.

"금요일에 봐요. 비 그치면 좋겠네."

처음 어땠는지 묻는 사람한테는 지금 어떤지만. 수첩에 적었다. 적고 보니 문제가 하나 있었다. 지금 어떤지를 나도 모른다. 모르는 걸 적어 두는 칸은 수첩에 없었다. 여백에 물음표 하나를 그렸다.

수요일 점심. 소율이 봄빛에 왔다. 우비를 입고 김밥 두 줄을 들고.

"언니 밥 안 먹을 것 같아서."

직원 휴게실. 은비가 지나가다 소율을 보고 반지 낀 손을 흔들었다. 소율이 소리를 질렀다. 은비는 청혼 얘기를 십 분 했다. 사십 일 화장 얘기에서 소율이 김밥을 뿜을 뻔했다.

은비가 나가자 소율이 목소리를 낮췄다.

"오빠 요새 집에 잘 안 들어가죠. 사무실 소파에서 자요. 근데 그거 말고도. 지난주에 오빠가 나한테 전화했어요. 밤 열한 시에. 오빠가 나한테 먼저 전화한 거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왜?"

"여자한테 뭘 주면 좋아하냐고. 꽃이요, 했죠. 무슨 꽃이냐고. 그래서 언니 부케가 무슨 꽃이었냐고 되물었어요. 오빠가 한참 말이 없다가."

소율이 목소리를 낮고 짧게 흉내 냈다.

"은방울꽃. 7번 테이블."

김밥을 삼키지 못했다. 7번 테이블. 그날 준수한테 무전으로 외친 번호. 나도 잊고 있던 번호.

"근데 은방울꽃은 봄꽃이래요. 칠월이라 꽃집에 없대요. 오빠가 그 말 듣고 엄청 시무룩했어요. 목소리로 알 수 있어요. 시무룩."

창밖에 비가 쏟아졌다. 그 사람이 지금 어디서 이 비를 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재헌]

수요일 밤 열한 시. 사무실. 이사회 자료 사이에 메모지 한 장이 끼어 있었다. 내 글씨.

은방울꽃.

꽃집 열두 곳에 전화했다. 백 실장한테 시키지 않았다. 시키면 백 실장은 찾아낸다. 찾아낸 꽃은 백 실장이 찾은 꽃이 된다.

열두 곳 다 같은 대답이었다. 봄꽃이에요. 오월에 끝나요. 지금은 없어요. 세 곳은 대신 안개꽃을 권했다. 두 곳은 은방울꽃 조화를 권했다. 한 곳은 웃었다.

열세 번째는 꽃집이 아니었다. 강원도 산골의 화훼 농장. 인터넷 구석에서 찾은 번호. 신호가 한참 가고 잠에서 깬 목소리가 받았다.

"은방울꽃이요? 이 철에?"

"네. 몇 줄기라도."

"……저온 창고에서 뿌리 재워 둔 게 있긴 한데. 억지로 깨우면 팔월 초쯤 몇 대 올라올지도 몰라요. 장담은 못 하고."

"팔월 초."

"근데 그거 뭐 하시게요. 이 한여름에."

대답을 고르는 데 오 초. 그 오 초 동안 창밖에 빗소리가 났다.

"……신부 부케를 제대로 못 해 줘서요. 테이블 장식으로 대충 묶었습니다. 그걸 다시 해 주고 싶습니다."

농장 주인이 한참 말이 없었다.

"팔월 첫 주에 전화 줘요. 올라오면 제일 예쁜 걸로 따 둘게."

끊었다. 메모지에 한 줄을 더 적었다. 팔월 첫 주. 그 옆에 물음표를 그리려다 말았다. 이사회가 칠월 마지막 금요일이다. 팔월 첫 주에 내가 이 꽃을 줄 자격이 남아 있을지는 모른다.

그래도 적었다. 물음표 없이.

[채이]

목요일 밤 여덟 시. 비가 제일 많이 온 날.

마지막 상담이 끝나고 로비 유리문 앞에 섰다. 우산이 없었다. 아침엔 그쳐 있었으니까. 우산꽂이엔 손님들이 두고 간 부서진 우산 두 개.

택시를 부르려는데 유리문 밖에 검은 우산 하나가 멈췄다. 그였다. 양복 바지 밑단이 다 젖었다.

"뒷문 아니에요?"

"쓰레기통 쪽은 물바다입니다."

우산이 내 쪽으로 기울었다. 들어갔다. 둘이 쓰기엔 조금 작았다.

주차장까지 오십 걸음. 걸으면서 알았다. 우산이 나한테만 기울어 있다. 옆을 봤다. 그의 왼쪽 어깨가 다 젖었다. 어깨선을 따라 빗물이 흘렀다.

"어깨 젖어요."

"괜찮습니다."

"거짓말."

우산대를 잡아 가운데로 밀었다. 그가 다시 기울였다. 또 밀었다. 우산이 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했다. 둘 다 조금씩 젖었다.

주차장 입구 웅덩이 앞에서 멈췄다. 우산대를 밀던 손을 봤다.

반지가 없었다.

약지에 흰 실 자국만.

"……잠깐만요. 반지가."

돌아섰다. 걸어온 길. 빗물 흐르는 보도블록. 가로등 불빛에 번들거리는 웅덩이들.

"우산대 밀다가 빠졌나 봐요. 실이 요즘 보풀었었는데."

우산 밖으로 뛰어나갔다. 쪼그려 앉아 블록 틈을 더듬었다. 빗물이 목덜미로 흘렀다.

"채이 씨, 비."

"찾아야 돼요. 그거 언니 반지인데, 아니 이제 제 반지인데, 할머니가 실 열 바퀴 감은 거 봤다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안전핀을 열려는데 손가락까지 젖어서 미끄러지기만 했다.

머리 위로 비가 멈췄다.

[재헌]

우산을 그녀 머리 위에 씌우고 옆에 쪼그려 앉았다. 나는 우산 밖. 머리부터 비를 맞았다. 차가웠다. 상관없었다.

휴대폰 손전등을 켰다. 블록을 한 칸씩 비췄다.

"하나씩 봅시다. 뭐가 남아 있는지."

그녀가 숨을 멈추는 게 들렸다. 그녀 규칙이었다. 빌려 쓴 건 돌려줘야 한다. 오늘 돌려준다.

세 번째 웅덩이 가장자리. 반짝. 손을 넣어 건졌다.

반지. 안쪽 흰 실이 다 풀려 한쪽 끝만 걸린 채 늘어져 있었다.

손바닥에 올려 내밀었다. 앞머리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찾았습니다."

그녀가 반지를 받지 않았다. 내 얼굴만 봤다.

"……바보예요? 우산을 나한테 씌우고 자기는 다 맞으면 어떡해요. 감기 걸려서 다음 주 이사회에서 코 훌쩍이면서 발표할 거예요?"

"반지 찾는 사람이 젖으면 안 되니까요."

"찾은 사람은 젖어도 돼요?"

"네."

망설임 없이. 그녀가 웃었다. 울음 같은 웃음.

차 안. 그녀가 파우치를 열었다. 반짇고리. 젖은 실을 떼어 내고 새 실을 끊었다. 감으려는데 손이 떨렸다.

"제가 해도 됩니까."

반지와 실이 내 손으로 왔다.

감기 시작했다. 서툴렀다. 다듬이질보다 훨씬. 실이 자꾸 미끄러졌다.

"하나."

그녀가 셌다.

"둘. 셋."

손가락이 조금씩 익숙해졌다.

"넷. 다섯. 여섯. 일곱."

빗소리 사이로 그녀 목소리만.

"여덟. 아홉. 열."

매듭. 이로 끊었다. 식장에서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손."

그녀가 왼손을 내밀었다. 약지에 끼웠다. 딱 맞았다. 식장에서처럼.

반지 낀 손을 놓지 않았다. 빗소리만 났다.

"채이 씨. 이사회 끝나고 말하겠다고 한 거. ……지금 하면 안 됩니까."

그녀가 숨을 멈췄다. 입을 열었다.

대시보드 위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백 실장. 받지 않으려 했다. 끊겼다가 다시. 세 번째에 문자가 먼저 떴다.

[부사장님. 자료 찾았습니다. 지금 들으셔야 합니다.]

눈을 감았다. 받았다. 스피커로.

"말해."

"방준기 과장 쪽에서 나온 녹음 파일입니다. 이사진 몇 분께 이미 돌았습니다. 날짜는 결혼식 당일 오후 두 시. 봄빛웨딩홀 신부대기실 앞 복도."

그녀의 손이 내 손 안에서 굳었다. 결혼식 날 오후 두 시. 계단참의 회색 양복. 흰 이어폰.

"틀어 드리겠습니다."

잡음 섞인 소리. 문틈으로 녹음한 듯 먹먹한. 그런데 목소리는 또렷했다.

내 목소리였다.

[1년만 해 주세요. 부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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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헌]목요일 밤 열한 시 오 분. 식탁. 그녀가 안전핀을 한 번 여닫은 뒤로 오 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치도만 봤다.나는 백 실장 흉내를 냈다. 수첩 대신 냅킨. 볼펜으로 적었다."뭐가 남아 있는지부터."그녀가 고개를 들었다."실내 공간. 그랜드볼룸. 밤 갈라 세팅이 금요일부터 들어갑니다. 형 쪽. 로즈룸, 백 명. 스카이라운지, 팔십 명. 로비, 서서 이백 명.""낮 잔치 하객이 몇이에요.""삼백 이십.""그럼 볼룸밖에 없어요.""볼룸은 형 겁니다. 밤 갈라. 샹들리에, 샴페인 타워, 외국 연주단. 금요일 오후부터 세팅."그녀가 배치도를 뒤집었다. 뒷면에 볼펜으로 선을 그었다. 시간표였다. 열두 시부터 세 시, 낮 잔치. 세 시부터 여섯 시, 전환. 일곱 시, 갈라."같은 방을 두 번 써요. 봄빛은 토요일마다 그랜드홀 하나로 식을 세 번 해요. 식 끝나면 사십 분 만에 꽃이랑 의자 다 바꿔요. 호텔은 세 시간이면 돼요.""형이 허락할까요.""물어봐야죠."그녀가 휴대폰을 들었다. 건물주, 라고 저장된 번호. 밤 열한 시 십 분.[채이]신호가 한 번 가고 받았다."매니저님.""전무님. 태풍이요.""봤어요. 지금 볼룸 배치도 보고 있었어요."이 사람도 안 자고 있었다. 형제가 같은 시간에 같은 배치도를 보고 있었다."낮 잔치를 볼룸으로 옮기고 싶어요. 열두 시부터 세 시까지. 세 시부터 여섯 시까지 전환하고, 일곱 시에 갈라. 갈라 세팅이 세 시간 늦어져요."전화 너머가 조용했다. 삼 초."……그래요.""그래요요?""샹들리에는 원래 늦게 켜는 거예요. 해 지고 나서. 낮에 켜면 촌스러워요."웃음이 났다. 그도 웃었다. 전화 너머로."갈라 세팅팀 금요일 출근 취소할게요. 토요일 세 시에 들어가라고 하고. 그리고 매니저님.""네.""전환 세 시간. 우리 팀 인력 다 쓰세요. 내 갈라 인력이지만 낮에도 쓰세요. 복주머니 나르게."전화를 끊었다. 그가 나를 보고 있었다. 냅킨을 든 채."……형이 뭐라

  • 대타 신부   35화. 예비일 지정

    [채이]"조건이요?"민혁이 원장님 찻잔을 내려놓았다. 두 손으로. 이 사람은 오늘 모든 걸 두 손으로 했다."토요일 연회. 식순에 제 순서 하나 넣어 주세요.""……무슨 순서요.""삼 분이요. 할머니 앞에서. 직접 말할 기회. 기자 없이, 이사 없이. 매니저님이 식순 짜시잖아요."매니저님. 제수씨가 아니었다.수첩을 폈다. 연회 식순. 낮 열두 시 개회, 할머니 인사말, 개관 연회 메뉴 소개, 봄빛 사진전, 직원 가족 소개, 복주머니 나눔. 빈칸이 없었다."식순은요, 원래 양가 합의가 필요해요. 신랑 측, 신부 측.""……농담이죠.""반은요. 반은 진짜예요. 할머니 인사말 앞에 넣을게요. 할머니가 말씀하시기 전에. 할머니가 대답하실 수 있게."민혁이 나를 봤다. 그리고 원장님을 봤다. 원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순은 매니저 권한이다. 원장님이 오 년 전에 그렇게 정했다."삼 분이면 되겠어요?""……모르겠어요. 삼십 년 치 말이라.""그럼 사 분 드릴게요. 예비로 일 분."예식장에서는 늘 예비를 둔다. 예비일, 예비 부케, 예비 안전핀. 사람 말에도 예비 일 분이 필요하다.[재헌]수요일 오후 세 시. 할머니 전화. 이번엔 본론이 늦게 나왔다."재헌아.""네."오 초. 할머니가 오 초 넘게 말을 안 하는 건 드물다. 결혼식 날 이후 두 번째."네 작은아비가 왔다 갔다. 아침 일곱 시에. 혼자 운전해서.""……네. 형한테 들었습니다.""쉰다섯 해 만에 물었다. 어머니, 제 돌잔치를 하셨습니까."할머니 목소리가 흔들렸다. 두 번째로 듣는 흔들림."그래서 말해 줬다. 했다고. 영감 몰래 봄빛 작은 방에서. 내 혼례 치마를 뜯어 입혔다고. 한복집 새댁이 돌복 삯을 안 받았다고. 지갑에서 사진을 꺼내 줬다. 쉰다섯 해 만에 주인한테 갔다.""……작은아버지는요.""울더구나. 쉰여섯 살짜리가. 내 앞에서. 그리고 버선을 한 켤레 얻어 신고 갔다. 네 처가 두고 간 무명 버선. 발에 꼭 맞는다더라."전화 너머에서 찻잔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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