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채이]
기사 밑 댓글이 천 개를 넘었다.
[예식장 직원이 재벌 노린 거네. 드라마 찍냐]
[언니 도망가게 해 놓고 자기가 들어감. 무섭다]
[저 예식장 어디임? 거르자]
마지막 댓글 밑에 누군가 봄빛 주소를 달았다. 좋아요 이백 개. 친절한 사람들이다. 길 찾기까지 해 준다.
"그만 봐."
은비가 휴대폰을 뺏었다. 뺏기는 대로 뒀다. 손이 차가웠다.
"그 사진, 누가 찍었을까."
"기자겠지."
"3층은 막았잖아. 엘리베이터 막고, 계단엔 준수 있었고."
은비가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동시에 음향실 쪽을 봤다.
그때 은비 손에서 내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강재헌». 어젯밤 그가 직접 저장해 준 이름이다. 성까지 붙어 있다. 거래처 같다. 은비가 두 손으로 공손히 돌려줬다. 무슨 상장 받는 줄.
"기사 봤습니다."
인사는 생략됐다. 폐백처럼.
"지금 거기 갑니다."
"오지 마세요. 앞에 카메라 세 대예요. 오시면 다섯 대 돼요."
"뒷문 있죠."
"……주방 쪽이요. 쓰레기 내놓는 데."
"이십 분."
끊겼다. 은비를 봤다.
"온대."
"누가."
"……남편이."
은비가 입을 틀어막고 소리 없이 발을 굴렀다. 그 등을 한 대 치고 음향실로 갔다.
음향실은 창고를 개조한 방이다. 모니터 네 대, 오래된 믹서, 벽에 붙은 식순표. 준수가 헤드폰을 목에 건 채 벌떡 일어났다.
"누나, 저 아니에요. 진짜로요. 3층 계단 제가 계속 지켰어요."
"알아. 의심해서 온 거 아니야. 토요일 거, 다 남아 있지?"
준수 눈이 반짝였다. 봄빛은 작은 홀이라 영상도 자체 촬영한다. 식 스케치 카메라 두 대, 층마다 CCTV. 전부 준수 담당.
"원본 다 있죠. 식 스케치는 어제 편집도 시작했어요. 누나 입장하는 거 진짜 잘 나왔어요. 아버님 입 모양도 보여요."
그 말은 못 들은 척했다. 아빠가 뭐라고 했는지는 나만 알면 된다. 가게 옷 다 뜯는다고 했다.
"CCTV 3층. 열두 시부터 한 시."
화면이 네 칸으로 갈라졌다. 오른쪽 위가 3층 복도.
12시 14분 07초. 원피스 차림의 언니가 대기실에서 나왔다. 한 손에 작약 부케, 한 손에 캐리어. 비상계단 문을 어깨로 밀고 사라졌다. 복도엔 아무도 없었다.
12시 20분. 무전기를 든 내가 대기실 문 앞에 섰다. 한참 서 있다가 들어갔다. 화면 속 나는 생각보다 오래 서 있었다. 삼, 이, 일을 몇 번 센 걸까.
12시 23분. 큰어머니. 내가 문을 등으로 막았다.
"여기요."
준수가 한쪽을 확대했다. 복도 반대편 끝, 비상구 표시등 아래. 회색 양복의 남자가 휴대폰을 가로로 들고 서 있었다. 이쪽을 향해.
"12시 16분에 비상계단으로 올라왔어요. 비상계단은 밖에서 못 여는데."
준수가 12시 14분으로 되감았다. 비상계단 문이 언니 등 뒤에서 닫히다가, 캐리어 바퀴에 걸려 한 뼘 열린 채 멈췄다.
우연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시간에 그 층에 휴대폰을 가로로 든 사람이 올라온 건 우연 같지 않았다.
"이 사람, 식 끝나고도 봤어. 대기실 앞 계단에서. 흰 이어폰."
준수가 오후로 돌렸다. 두 시 오 분. 같은 남자가 대기실 옆 기둥 뒤에 서 있었다. 휴대폰을 귀 쪽에 대고. 이 분 뒤 계단으로 빠르게 내려갔다.
두 시 오 분이면 내가 대기실에서 그와 약속을 하던 시간이다. 1년. 말로만.
등이 조금 서늘해졌다. 그런데 그때는 그 서늘함에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
[재헌]
주방 뒷문은 물바다였다. 누가 고무호스를 틀어 놓고 갔다. 구두가 젖었다. 괜찮다. 오늘 구두는 소모품이다.
주방을 가로질렀다. 흰 조리복을 입은 남자가 도마 앞에서 칼을 멈췄다. 이름표에 탁성만. 조리실장. 토요일에 떡을 세 번 돌린 사람이다.
그가 나를 위아래로 봤다. 젖은 구두에서 눈이 멈췄다.
"부사장님이 쓰레기통 쪽으로 오셨네."
"네."
"우리 채이 보러?"
"네."
그가 칼을 내려놓았다. 선반에서 마른 수건 한 장을 꺼내 던졌다. 받았다.
"구두 닦고 가요. 음향실 바닥 카펫이야. 준수가 청소 담당인데 걔 울어."
구두를 닦았다. 탁 실장은 다시 칼질을 시작했다. 등을 보인 채 말했다.
"토요일에 우리 채이가 떡 많이요, 할 때. 나 그 무전 듣고 알았어요. 쟤가 오늘 뭔 일을 치겠구나."
"……"
"잘 부탁해요. 떡은 내가 계속 돌려 줄 테니까."
무슨 뜻인지 정확히는 몰랐다. 대충은 알았다. 수건을 개어 선반에 올려 두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칼 소리가 조금 빨라졌다.
음향실 문을 열었다.
"찾았습니까."
막내가 일어나다 헤드폰 줄에 걸려 비틀거렸다.
"아, 안녕하세요. 음향 박준수입니다."
"압니다. 축가 두 곡을 앞으로 당긴 사람이죠."
"그건 누나가."
"누나가 시키고, 당신이 틀었죠. 한 박자도 안 늦게."
막내 귀가 빨개졌다. 그녀가 옆에서 웃음을 삼켰다. 왜 웃는지 모르겠다.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화면을 봤다. 12시 14분. 12시 16분. 회색 양복.
단추를 돌리던 손이 멈췄다.
"백 실장."
"네."
백 실장이 화면 가까이 몸을 숙였다. 수첩에 한 줄. 그리고 나를 봤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비슷한 사람을 압니다만."
"누군데요?"
그녀가 물었다.
"확실해지기 전엔 말 안 합니다. 틀리면 그 사람한테 억울한 일이니까."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내 얼굴을 봤다. 오래. 들킨 것 같았다. 짐작 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틀리길 바라는 얼굴. 그런 얼굴을 한 적이 있는지 몰랐다. 그녀가 보는 걸 보고 알았다.
[채이]
"공개합시다."
그가 말했다.
"12시 14분. 신부가 혼자 나가는 장면. 그다음 당신이 쪽지를 발견하는 장면. 기사 한 줄 뒤집는 데는 그 두 개면 됩니다."
"언니 얼굴은요."
바로 말했다.
"언니 얼굴 나가면 지금 제가 먹는 욕, 그대로 언니한테 가요."
"당신을 도망자 도우미로 만든 게 세라 씨입니다."
"알아요. 그래도 언니예요. 어릴 때 제 머리 땋아 준 사람이에요."
준수가 눈치를 보며 헤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음향실이 조용했다. 믹서의 작은 초록 불만 깜빡였다.
그가 단추를 한 바퀴 돌렸다.
"……얼굴은 가립니다. 시간만 남기죠. 12시 14분, 신부 측 인물 퇴장. 12시 20분, 담당 매니저 확인. 그리고 무전 기록 있습니까."
준수가 손을 번쩍 들었다. 학교에서도 저렇게 들었을 것이다.
"무전 채널 녹음돼요! 사고 나면 확인하려고요!"
스피커에서 토요일의 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준수야, 3층 신부대기실. CCTV. 신부님 나가신 시간.]
[사회자님, 식순 바꿀게요. 축가 두 곡 앞으로.]
[탁 실장님, 다과 한 바퀴 더요. 떡 쪽으로요. 네, 떡 많이요.]
귀를 막고 싶었다. 녹음된 내 목소리는 늘 남의 목소리 같다. 조금 더 높고, 조금 더 빠르다. 그는 끝까지 들었다. 떡 많이요, 에서 아주 짧게 웃었다. 코로. 흥, 하고.
"이 목소리면 됩니다. 도망자를 도운 사람은 이렇게 안 뛰어다니죠."
오후 세 시. 도원호텔 홍보팀 이름으로 입장문이 나갔다. 세 줄.
[토요일 예식에서 원래 신부 측 인물이 예식 46분 전 스스로 자리를 떠났습니다. 봄빛웨딩홀 담당 매니저는 이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예식을 수습했습니다. 신부 교체는 신랑 강재헌의 요청이었으며, 모든 책임은 신랑에게 있습니다.]
밑에 얼굴 흐린 영상 두 개, 무전 녹음 일 분.
한 시간 만에 제목이 바뀌었다.
[도원가 신부 교체, 신랑이 직접 요청… "책임은 내게"]
[40분 만에 결혼식 살린 예식장 매니저… 무전 녹음 공개]
은비가 댓글을 읽었다. 읽다가 목이 메어서 두 번 멈췄다.
[떡 많이요 에서 웃음 터짐]
[사람 배부르면 덜 궁금해한다는 거 현장 사람 말이다]
[저 예식장 어디임? 여기서 결혼하고 싶음]
마지막 댓글 밑에 누군가 또 주소를 달았다. 좋아요 사백 개. 같은 친절, 반대 방향.
다섯 시쯤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원장님이 받았다. 한참 듣다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김 씨 댁. 아침에 취소한 그 댁. 다시 하겠대. 날짜 그대로. 담당은 꼭 하채이 매니저로."
은비가 소리를 질렀다. 준수가 음향실에서 뛰어나왔다. 탁 실장이 국자를 든 채 주방 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웃었다. 웃다가 손등으로 눈가를 한 번 훔쳤다. 파우치 안쪽 주머니에서 안전핀 일곱 개가 짤랑거렸다.
[재헌]
봄빛 뒷골목. 차에 오르기 전 백 실장을 돌아봤다.
"확인했어?"
"사진으로만입니다. 방준기 과장. 강민혁 전무 수행비서. 토요일에 전무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하객 명단엔 없고요."
간판을 올려다봤다. 봄 자 받침이 깜빡였다. 켜졌다 꺼졌다. 결정을 못 하는 간판이다.
"휴대폰을 가로로 든 사진 하나로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기사 쪽은 제보자를 안 밝힐 거고요."
"알아."
"하채이 씨께는."
"아직 말하지 마."
단추를 돌렸다. 흰 매듭이 손끝에 걸렸다.
"형이 왜 그랬는지 알기 전까진. 그 사람을 더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
백 실장이 수첩에 한 줄을 적었다. 이번엔 뭐라고 적었는지 짐작하지 못했다.
[채이]
밤. 31층.
버팀이에게 물을 줬다. 어제보다 흙이 덜 말라 있었다. 이상하다. 나는 어제 저녁에 한 컵 줬을 뿐인데. 올리브나무는 원래 물을 오래 머금나 보다.
그가 서재에서 나왔다. 셔츠 차림. 왼쪽 소매에 흰 매듭 그대로.
"고마워요. 오늘."
"약속했으니까요. 봄빛이 욕먹는 일 없게."
"그래도요."
그가 버팀이 옆에 섰다. 가지 끝을 내려다봤다.
"……한 장 늘었네요."
정말이었다. 두 장 옆에 쌀알만 한 잎 하나.
"버팀이도 오늘 이겼나 봐요."
그의 눈만 웃었다. 그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을 본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창가로 몇 걸음 떨어져 받았다. 네. 네. 알겠습니다. 세 번.
끊고 돌아선 그가 말했다.
"어머니가 보자고 하십니다. 토요일, 가족이 전부 모이는 자리에서."
[채이]문이 열렸다.길은 길었다. 열두 걸음씩 두 번. 열두 달 전과 같은 길이. 그런데 이번엔 다 보였다. 면사포가 한 겹이라서. 보고 싶어서.앞줄에 할머니. 지팡이를 무릎에 눕히고. 그 옆에 부회장님과 작은어머님. 그 옆에 아버님과 관장님. 나란히. 같은 쪽을 보며. 좌석 배치는 내가 짜지 않았다. 은비가 짰다. 오 년 동안 옆에서 보더니 똑같이 짰다.두 번째 줄에 전무님. 빨간 크레파스를 준 사람. 방 과장님이 옆에 있었다. 이어폰 없이. 휴대폰도 없이. 두 손을 무릎에 올리고.반장님과 하우스키핑 여섯 명. 연분홍, 하늘색, 연두색 한복. 유니폼 아닌 날. 지호가 벨보이 모자를 쓰고 왔다. 벗으라고 했는데 안 벗었다고 은비가 전했다.윤 여사님. 엄 셰프. 탁 실장님과 폐백 이모님. 언니와 진우 씨.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채훈. 소율. 백 실장님은 맨 끝자리에 수첩을 펴고.그리고 뒤쪽 벽 가까이. 휠체어 한 대. 촛불 예식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 옆에 처음 보는 할아버지. 잠옷 대신 양복. 조끼는 그대로. 강원도 농장 주인이었다. 새벽에 은방울꽃을 직접 들고 왔다고 했다. 제철 꽃. 오월 은방울꽃.내 손에 그 꽃이 있었다. 부케. 흰 리본. 매듭 한쪽 고리가 더 컸다. 오늘 아침 그가 묶었다. 세 번 풀었다 묶었다고 했다. 다시 묶지 않았다.아빠가 팔에 힘을 줬다. 작게 속삭였다."천천히. 우리 딸 넘어지면.""가게 옷 다 뜯는다며.""……오늘은 안 뜯는다. 오늘 입은 옷이 다 우리 집 옷이야."웃음이 터질 뻔했다. 입술을 깨물었다. 앞치마 끈이 아빠 양복 밑에서 흔들렸다.[재헌]길 끝에 섰다. 기다렸다. 신랑은 기다린다. 이번엔 제대로.그녀가 걸어왔다. 앞치마 끈이 흔들리는 장인어른 팔을 잡고. 면사포 한 겹 너머로 그녀 얼굴이 보였다. 웃음을 참는 얼굴. 입술을 깨문.장인어른이 내 앞에 섰다. 고개를 숙였다. 나도 숙였다. 열두 달 전엔 내가 먼저 숙였다. 오늘은 동시였다.장인어른이 그녀 손을 내 손 위에 올렸다.떨렸
[채이]일곱 달은 생각보다 짧았다. 예식장 사람한테 일곱 달은 식 백 건이다. 백 건을 치르고 나니 오월이었다.십일월, 은비가 봄빛에서 결혼했다. 도경 씨가 찍은 신부 삼백 명 중 백이십 명이 왔다. 부케는 약속대로 정조준이었다. 이번엔 피하지 않았다. 무전기를 옆구리에 끼고 두 손으로 받았다. 은비가 버진로드 위에서 만세를 불렀다.십이월 스무날, 봄빛 부부의 날. 사진 벽이 이백십 장으로 늘었다. 백 쌍 넘게 왔다. 촛불 예식 할아버지가 휠체어를 밀고 왔다. 할머니는 그날도 사진 속 신부를 가리키며 나다, 라고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 손을 잡았다. 처음이라고 했다. 요양원에 들어간 뒤로.그날 원장님이 등기부 한 장을 로비 사진 벽 한가운데 꽂았다. 할머니 결혼사진 바로 밑에. 건물주 변정숙. 삼십 년 할부. 첫 회는 복주머니로 갚았다. 민혁이 받아 갔다. 엄마가 자투리 비단으로 지은 복주머니 하나. 영수증에 바느질삯이라고 적어서.일월, 신혼여행. 제주. 진우 씨 공방이 있던 마을. 백 실장님이 방을 두 개 잡았다. 제주 펜션 사건 이후 백 실장님의 신조가 됐다고 했다. 부부 출장에도 방은 두 개. 우리는 하나만 썼다. 나머지 하나는 사흘 내내 비어 있었다. 백 실장님은 청구서를 보고 수첩에 한 줄을 적었다고 했다. 안 보여 줬다.삼월, 버팀이에 봉오리가 올라왔다. 이번엔 제철이었다. 두 사람이 물을 주는데도 헷갈리지 않았다. 봄인 줄 제대로 알았다.그리고 오월. 셋째 토요일.[채이]오전 열 시. 봄빛 신부대기실.문고리를 잡으려다 멈췄다.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은비였다."신부님. 들어오세요. 매니저가 문 열어 드릴게요."문이 안에서 열렸다. 은비가 서 있었다. 검정 정장. 허리에 무전기. 가슴에 명찰. 봄빛웨딩홀 매니저 고은비. 그리고 허리에, 남색 파우치.내 파우치였다."그거 내 거야.""오늘은 내 거야. 너 신부야. 신부는 파우치 안 차.""은비야, 지퍼 반쯤 고장 났어. 손으로 벌려야 돼.""알아. 오 년 동안 봤어."
[채이]토요일 밤 열한 시. 볼룸. 갈라가 끝났다.샹들리에는 일곱 시에 켜졌다. 전무님 말대로 해가 지고 나서. 흰 테이블보가 검은색으로 바뀌었고, 들꽃 옆에 장미가 섰다. 외국 연주단, 샴페인 타워. 투자자와 외신. 민혁이 무대에서 영어로 인사했다. 마지막 한 문장만 한국어였다. 이 호텔은 복주머니 삼백 개로 시작했습니다.외신 기자가 그 문장을 통역해 달라고 했다. 방 과장이 했다. 복주머니를 뭐라고 번역했는지는 모른다.나는 볼룸 구석 의자에 앉아 있었다. 구두를 벗고. 발이 퉁퉁 부었다. 하루에 잔치 두 번. 예식장 매니저 오 년에도 이런 날은 없었다.그가 옆에 앉았다. 넥타이를 풀고. 나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댔다. 이제 묻지 않고 댄다."할머니가 정하셨어요. 결혼식 다시.""네.""할머니가 정하시면 끝이잖아요. 찻잔 내려놓으셨으니까."그가 한참 말이 없었다. 단추를 한 바퀴 돌렸다."……식장은 할머니가 정하십니다. 늘 그러셨죠.""네.""청혼은 제가 정합니다."머리를 들었다. 그를 봤다. 그는 볼룸 천장의 샹들리에를 보고 있었다. 모르는 척하는 옆얼굴. 귀 끝이 빨갰다.목요일부터 숨기던 그것. 일요일까지만이라던 그것.내일이 일요일이었다.[채이]일요일. 봄빛. 은비가 이상했다."채이야, 연회 뒷정리 우리 홀도 해야 돼. 호텔에서 빌려 온 우산꽂이 세 개 닦아야 되고, 사진 벽 액자 틀 다시 가져와야 되고, 장부 정리도.""은비야. 장부 정리는 원장님이 하시잖아.""오늘은 네가 도와드려야 돼. 원장님이 허리 아프시대."원장님은 원장실에서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 계셨다. 장부를 펼친 채. 볼펜을 쥔 채. 내가 들어가자 장부를 덮었다. 또.준수는 안 보였다. 음향실 문이 잠겨 있었다. 탁 실장님은 주방에서 뭔가를 굽고 있었다. 고소한 냄새가 났다. 누룽지 굽는 냄새. 엄마 누룽지. 봄빛 주방에서 누룽지를 굽는 건 처음이었다.폐백 이모님이 폐백실 문을 반만 열고 나를 봤다. 그리고 닫았다.여섯 시. 일곱 시. 은비가
[채이]"네, 할머니. 뭐든요."할머니가 지팡이 끝으로 볼룸 앞쪽을 가리켰다. 무대 옆. 식순상 민혁의 사 분이 있는 자리."오늘 민혁이가 말할 때. 내 옆에 서 있어라.""……네?""늙은이가 울면 누가 휴지를 줘야지. 소율이는 같이 울 거고, 재헌이는 단추만 돌릴 거다."할머니가 내 허리를 봤다. 남색 파우치. 반쯤 열린 지퍼."네 파우치에 있지? 휴지.""네. 있어요. 안전핀도 있어요.""안전핀은 네 거 해라. 휴지만 빌리자."옆에서 그가 헛기침을 했다. 단추를 돌리다 멈춘 손. 할머니 말이 정확했다.[채이]오전 열 시. 바람이 세졌다. 로비 회전문이 덜컹거렸다.방 과장이 한 시간마다 문자를 보냈다. 한 줄씩.[열 시. 풍속 초속 십이. 회전문 막습니다. 옆문 개방.][열한 시. 비 강해짐. 우산 백 개 옆문 비치. 지호 씨 배치.]지호가 옆문 앞에서 우산을 받아 꽂았다. 봄빛 우산꽂이 세 개를 준수가 트럭으로 가져왔다. 우천 시 실내 진행. 봄빛 매뉴얼이 호텔에서 일을 했다.열한 시 반부터 손님이 들어왔다. 하우스키핑 이순옥 님 가족. 손주 셋. 지호 어머니. 돌잡이 때 마이크 잡은 아들을 보고 웃었다. 봄빛 부부 스무 쌍. 흑백 사진을 들고. 휠체어 한 대. 요양원에서 모셔 온 할머니. 촛불 예식. 정전 이십 분. 신부가 제일 예뻤던 날.할아버지가 휠체어를 밀고 사진 벽 앞으로 갔다. 자기 결혼사진 앞. 촛불 속 신부.휠체어의 할머니가 사진을 봤다. 오래. 할아버지를 못 알아본다던 할머니. 그러다 손가락을 들어 사진 속 신부를 가리켰다."……나다."할아버지가 무릎을 꿇었다. 휠체어 옆에서. 울었다. 소리 없이. 이 나라 할아버지들은 다 소리 없이 운다.엄마 아빠가 옆문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한복. 아빠는 양복. 삼 센티 늘린. 비닐 뜯은 지 사흘 된. 실밥은 없었다. 엄마가 옆문 앞에서 한 번 더 떼 줬다. 아빠가 옆문 앞에서 서성였다. 호텔 볼룸에 들어가도 되나 하는 얼굴.그가 옆문으로 걸어갔다. 아빠 앞에
[재헌]목요일 밤 열한 시 오 분. 식탁. 그녀가 안전핀을 한 번 여닫은 뒤로 오 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치도만 봤다.나는 백 실장 흉내를 냈다. 수첩 대신 냅킨. 볼펜으로 적었다."뭐가 남아 있는지부터."그녀가 고개를 들었다."실내 공간. 그랜드볼룸. 밤 갈라 세팅이 금요일부터 들어갑니다. 형 쪽. 로즈룸, 백 명. 스카이라운지, 팔십 명. 로비, 서서 이백 명.""낮 잔치 하객이 몇이에요.""삼백 이십.""그럼 볼룸밖에 없어요.""볼룸은 형 겁니다. 밤 갈라. 샹들리에, 샴페인 타워, 외국 연주단. 금요일 오후부터 세팅."그녀가 배치도를 뒤집었다. 뒷면에 볼펜으로 선을 그었다. 시간표였다. 열두 시부터 세 시, 낮 잔치. 세 시부터 여섯 시, 전환. 일곱 시, 갈라."같은 방을 두 번 써요. 봄빛은 토요일마다 그랜드홀 하나로 식을 세 번 해요. 식 끝나면 사십 분 만에 꽃이랑 의자 다 바꿔요. 호텔은 세 시간이면 돼요.""형이 허락할까요.""물어봐야죠."그녀가 휴대폰을 들었다. 건물주, 라고 저장된 번호. 밤 열한 시 십 분.[채이]신호가 한 번 가고 받았다."매니저님.""전무님. 태풍이요.""봤어요. 지금 볼룸 배치도 보고 있었어요."이 사람도 안 자고 있었다. 형제가 같은 시간에 같은 배치도를 보고 있었다."낮 잔치를 볼룸으로 옮기고 싶어요. 열두 시부터 세 시까지. 세 시부터 여섯 시까지 전환하고, 일곱 시에 갈라. 갈라 세팅이 세 시간 늦어져요."전화 너머가 조용했다. 삼 초."……그래요.""그래요요?""샹들리에는 원래 늦게 켜는 거예요. 해 지고 나서. 낮에 켜면 촌스러워요."웃음이 났다. 그도 웃었다. 전화 너머로."갈라 세팅팀 금요일 출근 취소할게요. 토요일 세 시에 들어가라고 하고. 그리고 매니저님.""네.""전환 세 시간. 우리 팀 인력 다 쓰세요. 내 갈라 인력이지만 낮에도 쓰세요. 복주머니 나르게."전화를 끊었다. 그가 나를 보고 있었다. 냅킨을 든 채."……형이 뭐라
[채이]"조건이요?"민혁이 원장님 찻잔을 내려놓았다. 두 손으로. 이 사람은 오늘 모든 걸 두 손으로 했다."토요일 연회. 식순에 제 순서 하나 넣어 주세요.""……무슨 순서요.""삼 분이요. 할머니 앞에서. 직접 말할 기회. 기자 없이, 이사 없이. 매니저님이 식순 짜시잖아요."매니저님. 제수씨가 아니었다.수첩을 폈다. 연회 식순. 낮 열두 시 개회, 할머니 인사말, 개관 연회 메뉴 소개, 봄빛 사진전, 직원 가족 소개, 복주머니 나눔. 빈칸이 없었다."식순은요, 원래 양가 합의가 필요해요. 신랑 측, 신부 측.""……농담이죠.""반은요. 반은 진짜예요. 할머니 인사말 앞에 넣을게요. 할머니가 말씀하시기 전에. 할머니가 대답하실 수 있게."민혁이 나를 봤다. 그리고 원장님을 봤다. 원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순은 매니저 권한이다. 원장님이 오 년 전에 그렇게 정했다."삼 분이면 되겠어요?""……모르겠어요. 삼십 년 치 말이라.""그럼 사 분 드릴게요. 예비로 일 분."예식장에서는 늘 예비를 둔다. 예비일, 예비 부케, 예비 안전핀. 사람 말에도 예비 일 분이 필요하다.[재헌]수요일 오후 세 시. 할머니 전화. 이번엔 본론이 늦게 나왔다."재헌아.""네."오 초. 할머니가 오 초 넘게 말을 안 하는 건 드물다. 결혼식 날 이후 두 번째."네 작은아비가 왔다 갔다. 아침 일곱 시에. 혼자 운전해서.""……네. 형한테 들었습니다.""쉰다섯 해 만에 물었다. 어머니, 제 돌잔치를 하셨습니까."할머니 목소리가 흔들렸다. 두 번째로 듣는 흔들림."그래서 말해 줬다. 했다고. 영감 몰래 봄빛 작은 방에서. 내 혼례 치마를 뜯어 입혔다고. 한복집 새댁이 돌복 삯을 안 받았다고. 지갑에서 사진을 꺼내 줬다. 쉰다섯 해 만에 주인한테 갔다.""……작은아버지는요.""울더구나. 쉰여섯 살짜리가. 내 앞에서. 그리고 버선을 한 켤레 얻어 신고 갔다. 네 처가 두고 간 무명 버선. 발에 꼭 맞는다더라."전화 너머에서 찻잔 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