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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가시가 빠지는 가시두더지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8 21:44:47

탱자의 꼬리 끝에서 길어진 불씨가 유리문에 잠깐 비쳤다.

도경은 문을 닫고 손잡이에 묻은 털을 떼었다. 계산대에는 가영이 놓고 간 볼펜 뚜껑이 있었다. 보라가 뚜껑을 집어 분실물 바구니에 넣었다.

“다음 주에 오신댔죠?”

“전화부터 하라고 했어요.”

보라는 바구니를 계산대 안쪽으로 밀었다. 도경은 진료실로 돌아가 식은 쇠 받침을 치웠다.

■

3월 20일(금), 진료대 위에 하얀 가시 하나가 놓였다.

끝이 부러진 가시는 아니었다. 뿌리 쪽까지 길게 빠져 있었고, 손끝으로 건드리자 마른 소리가 났다.

“아침에 집 안을 닦는데 이게 나왔어요.”

50대쯤 된 남자가 작은 통을 열었다. 손등은 거칠었고, 오른쪽 손가락 두 개는 조금 굽은 채로 펴지지 않았다.

통 안에는 가시두더지 두 마리가 붙어 있었다. 몸집은 손바닥 둘을 나란히 댄 정도였다. 한 마리는 짙은 갈색 가시를 세우고 통 가장자리를 킁킁거렸다. 옆에 웅크린 두더지는 등이 희끗했고, 가시 사이로 드러난 피부가 넓었다.

도경은 남색 진료복 소매를 올렸다.

“언제부터 빠졌어요?”

“사흘쯤 됐어요. 처음엔 몇 개라 털갈이 같은 건가 했는데, 오늘은 이렇게 됐네요.”

남자가 작은 봉지를 내려놓았다. 바닥에 모아 온 가시가 여러 개 들어 있었다.

“어디서 다친 적은 없고요?”

“집에서만 지내요. 저도 이제 굴에는 안 들어가고.”

도경은 통을 돌려 아픈 두더지를 가까이 두었다. 건강한 쪽이 몸을 붙이자 아픈 쪽도 조금 움직였다. 걸음은 느렸지만 다리를 끌지는 않았다.

보라가 진료대에 수건을 깔았다.

“둘이 잠깐 떨어져 있어야겠네요.”

건강한 두더지를 옮기려던 남자의 손이 멈췄다.

“같이 있으면 안 됩니까? 떨어뜨려 놓으면 계속 찾아요.”

“바로 옆에 둘게요. 만지는 동안만요.”

보라가 작은 바구니를 가져와 수건을 깔았다. 건강한 두더지는 바구니 벽을 짚더니 진료대 쪽으로 코를 내밀었다.

도경은 손바닥을 세 번 비볐다. 가시가 비어 있는 옆구리에 손을 대자 두더지가 배를 낮췄다.

손이 닿은 곳 가까이 흐린 그림이 떠올랐다.

짙기는 했지만, 돌멩이의 등 아래에서 느낀 것처럼 한곳에 몰려 있지 않았다. 도경은 손을 조금 옮겼다. 어깨 가까이도 비슷했다. 배 쪽을 받쳐 보아도 흐리게 짙었다.

‘어디지.’

몸을 따라 손을 옮길 때마다 그 느낌이 이어졌다. 아픈 자리를 하나 짚을 수 없었다.

도경은 손을 떼고 빠진 가시를 다시 보았다.

“피부에 문제가 있는지부터 확인할게요.”

그림만으로는 가시가 빠지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

진료등 아래에서 도경은 가시 사이를 벌렸다.

붉게 벗겨진 상처는 없었다. 가시가 빠진 곳을 젖은 거즈로 닦아 보았지만 피나 진물이 묻어나지도 않았다. 다만 피부가 건조했고, 남아 있는 가시도 색이 고르지 않았다.

보라가 몸무게를 기록하는 동안 도경은 입안을 살폈다. 두더지가 얼굴을 돌리자 손을 멈췄다가 턱 밑을 다시 받쳤다.

“요즘 먹는 건 어떻습니까?”

“먹기는 해요. 전보다 좀 남기고요.”

“뭘 먹이세요?”

“밥하고 반찬 조금씩이요. 잘게 썰어 주면 좋아합니다.”

도경이 고개를 들었다.

“사람 드시는 반찬을요?”

남자는 통 뚜껑에 놓아 둔 작은 먹이통을 열었다. 잘게 썬 채소와 밥알이 붙어 있었다.

“제가 먹는 것 중에 덜 짠 걸로 골라 줬어요. 고기도 가끔 줬고요. 전에는 던전에서 주워 온 걸 먹였는데, 이제 갈 일이 없으니까.”

도경은 먹이통 안을 살핀 뒤 뚜껑을 닫았다.

“반찬으로는 이 아이한테 필요한 걸 다 채우기 어렵습니다.”

“옆에 있는 놈은 멀쩡한데요?”

“한 가지를 먹어도 먹는 양이나 몸에 남는 양은 다를 수 있어요. 지금은 피 검사로 확인해 봐야 합니다. 피부만 보고 영양 문제라고 정할 수는 없고요.”

남자는 바구니 속 두더지를 보았다. 건강한 쪽은 수건 끝을 앞발로 당기고 있었다.

“그럼 둘 다 먹이를 바꿔야겠네요.”

“결과를 보고 맞춰 드릴게요. 오늘은 아픈 아이부터 확인하겠습니다.”

보라가 장갑을 끼고 수건을 접었다. 가시를 눌러 잡지 않도록 배 아래를 받치고, 몸이 돌아가지 않게 양옆을 둘렀다.

도경은 털이 적은 다리 안쪽을 살폈다. 소독약을 묻힌 거즈로 닦자 두더지가 발끝을 오므렸다.

“움직이면 잠깐 놓을게요.”

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사기 안에 피가 조금씩 들어왔다. 도경은 바늘을 빼고 거즈를 눌렀다. 보라는 두더지의 몸을 받친 손을 그대로 두었다.

남자는 고개를 가까이 가져왔다가 뒤로 물러났다.

“제가 잡아야 할 건 없습니까?”

“지금은 괜찮아요. 끝나면 통에 새 수건 좀 깔아 주세요.”

남자는 곧장 통을 비웠다. 바닥에 떨어진 가시를 손으로 모으려 하자 보라가 작은 집게를 건넸다.

“손에 박혀요. 이걸로 하세요.”

남자는 집게를 받아 가시를 하나씩 봉지에 넣었다.

검사기가 돌아가는 동안 도경은 두더지의 가슴에 청진기를 댔다. 숨을 듣고, 잇몸과 눈을 다시 확인했다. 몸을 덮은 수건 아래로 앞발이 조금 나왔다.

그때 대기실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

은테 안경을 쓴 남자가 서류 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셔츠는 맨 윗단추까지 잠겨 있었다. 남자는 유리문에 붙은 안내문을 본 뒤 진료실 문 앞에서 멈췄다.

“임도경 원장님 맞으십니까?”

“네.”

“이계생물관리원 북부지소 동행몬스터과 노상필 주임입니다.”

노상필이 신분증을 꺼내 보였다. 도경은 거즈를 누르던 손을 보라에게 맡기고 신분증을 확인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동행 몬스터 진료 여부를 확인하러 왔습니다.”

도경은 진료대 위의 두더지를 내려다봤다. 수건 틈으로 하얗게 바랜 가시가 드러나 있었다.

“지금 이 아이를 보고 있습니다.”

노상필은 가방에서 얇은 서류철을 꺼냈다.

“진료 신고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수의사 면허와 별개로 동행 몬스터 진료 신고를 하셔야 합니다.”

“계속 볼 생각으로 받은 건 아니었어요.”

도경은 장갑을 벗었다.

“앞에 둘도 급해서, 저도 모르게…….”

말을 멈췄지만 노상필의 펜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앞서 두 마리를 진료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바위거북하고 불여우요.”

“원칙대로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

가시두더지 보호자가 빈 통을 안고 도경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제가 모르고 데려온 겁니다. 문에 적힌 것도 들어와서 봤고요.”

노상필은 남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보호자분께 책임을 묻는 절차는 아닙니다.”

그러고는 서류 한 장을 도경에게 펼쳐 보였다. 신고 항목과 과태료 안내가 함께 적혀 있었다.

“신고 없이 계속 진료하시면 과태료 대상이 됩니다. 오늘 확인한 내용도 남길 겁니다.”

도경은 종이를 읽었다. 개와 고양이의 진료 기록만 쌓이던 서랍이 떠올랐다. 이틀 사이에 몬스터 기록이 그 위에 얹혔다.

검사기에서 짧은 소리가 났다.

도경이 진료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사 결과부터 보고 말씀 나눠도 될까요?”

노상필은 서류를 거두고 벽 쪽으로 한 걸음 비켰다.

“진료 마치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

도경은 출력된 검사지를 받아 들었다.

보라가 옆에 몬스터 진료 자료를 펼쳤다. 도경은 가시두더지의 항목을 찾아 검사 결과와 나란히 놓았다. 한 줄을 짚었다가, 다른 검사 항목까지 확인했다.

온몸이 흐리게 짙었던 그림은 피부 한곳의 병을 가리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그림에 영양 부족이라는 말이 적혀 있던 것도 아니었다.

도경은 먹이통과 몸무게 기록을 가까이 당겼다.

“몸에 필요한 영양이 부족해진 걸로 보입니다. 먹이를 바꿔야겠어요.”

남자가 검사지를 들여다봤다.

“반찬을 잘못 줘서요?”

“종에 맞는 먹이가 아니었던 게 큽니다. 최근에 남기는 양도 늘었고요. 수분도 부족해서 오늘은 수액을 주면서 상태를 볼 겁니다.”

“가시가 다시 납니까?”

“회복하면 새로 날 수 있어요. 다만 색이 돌아오고 가시가 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먹는 양하고 몸무게부터 확인할게요.”

도경은 진료 자료에서 먹이 항목을 펼쳐 보여 주었다. 남자는 돋보기를 꺼내 코끝에 걸쳤다.

“이런 걸 따로 파는군요.”

“동행 몬스터용 중에서도 가시두더지에 맞는 걸 고르셔야 해요. 포장만 보고 사지 마시고, 적힌 성분과 대상 종을 확인하세요.”

보라가 필요한 내용을 종이에 옮겨 적었다.

남자는 먹이통을 가방 깊숙이 넣었다.

“굴 들어가던 손이 이제 두더지 먹이나 썰어요.”

웃으며 손가락을 폈지만 두 손가락은 끝까지 펴지지 않았다.

“썰어 주면 잘 먹어서 그걸로 된 줄 알았습니다.”

도경은 통 안에 새 수건이 잘 깔렸는지 확인했다.

“먹기 좋게 해 주신 건 맞아요. 이제 무엇을 먹일지 바꾸면 됩니다.”

남자는 통 가장자리를 닦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라가 낮은 보온 상자를 준비했다. 도경은 두더지를 옮겨 몸을 받치고, 다리에 수액 줄을 고정했다. 가시가 줄을 누르지 않도록 수건 사이로 길을 냈다.

작은 방울이 일정하게 떨어졌다.

두더지가 앞발을 움직이자 도경은 고정한 테이프를 다시 살폈다. 피부가 당기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손을 놓았다.

건강한 두더지가 바구니 안에서 코를 내밀었다. 보라가 바구니를 보온 상자 옆으로 옮기자 아픈 쪽도 고개를 조금 들었다.

두 마리의 코가 각각 벽 가까이에 머물렀다.

■

보라가 종이컵에 커피를 담아 노상필 앞에 놓았다.

“기다리시는 동안 드세요.”

“감사합니다.”

노상필은 서류철에서 컵이 닿을 만한 곳을 비웠다. 보라는 도경이 쓴 진료 기록 옆에 빠진 가시 봉지를 놓았다.

“주임님은 왜 그렇게 꼼꼼하세요? 보호자분 얘기도 빠짐없이 적으시네요.”

노상필의 펜이 멈췄다.

도경은 검사지를 정리하다가 그 손을 보았다. 노상필은 대답 대신 안경을 밀어 올렸다. 잠깐 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기록한 종이의 아래쪽을 다시 확인했다.

보라는 더 묻지 않았다. 간식 서랍에서 작은 과자 봉지를 꺼내 두더지 보호자에게 건넸다.

“아침 드셨어요?”

“나오느라 못 먹었네요.”

“이건 보호자분 드시는 거예요.”

남자가 봉지를 받으며 웃었다.

“오늘은 구분해서 먹겠습니다.”

도경은 수액 줄 아래에 접은 거즈를 더 받쳤다. 두더지의 눈이 조금 더 크게 떠 있었다. 아직 먹이를 받아먹지는 않았지만, 남자가 통을 가까이 대자 코를 움직였다.

“수액 끝나고 조금 먹여 보겠습니다.”

남자는 과자 봉지를 열다가 손을 멈췄다.

“천천히 해 주세요. 저는 오늘 갈 데 없습니다.”

도경은 보라에게 지켜볼 항목을 짚어 주고 노상필과 계산대 쪽으로 나왔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말씀드려야 할 게 있습니다.”

노상필이 펜을 들었다.

도경은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몬스터에 손을 대면 이상한 게 보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건 아니고, 머릿속에 흐리게요.”

“언제부터 그렇습니까?”

“월요일 밤부터요.”

“개나 고양이도 그렇습니까?”

“아니요. 몬스터만요. 아픈 데 같기는 한데, 틀릴 때도 있습니다.”

노상필은 잠시 도경의 손을 보았다.

“발현 검사를 받으셔야겠습니다.”

■

가시두더지는 수액을 마친 뒤 준비한 먹이를 조금 받아먹었다.

도경은 삼키는 것을 확인하고 줄을 뺐다. 거즈를 눌러 피가 멎는 동안 남자는 다시 보기 날짜를 휴대전화에 적었다.

통으로 돌아간 두더지 옆에 건강한 쪽이 붙었다. 남자는 뚜껑을 닫기 전에 먹이 안내서를 한 번 더 확인했다.

“빠지는 가시도 모아 올까요?”

“새로 얼마나 빠지는지 볼 수 있게 사진을 찍어 주세요. 밥을 얼마나 먹었는지도 적어 주시고요.”

남자는 통을 두 손으로 들었다.

도경은 문턱까지 배웅한 뒤 보라에게 진료실을 부탁했다. 오후 진료 전까지 관리원에 다녀오기로 했다.

북부지소까지는 차로 20분이 걸렸다.

노상필을 따라 들어간 검사실에서 도경은 그 설명을 다시 했다. 손을 대야 느낄 수 있고, 몬스터가 아니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검사는 몇 차례 이어졌다. 지시받은 대로 손을 올리고 기다려도 진료실에서 보았던 그림은 뜨지 않았다. 도경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검사를 마친 뒤 노상필이 결과서를 가져왔다.

『F급 미만 · 비전투』

도경은 적힌 글을 내려다봤다. 공격이나 신체 강화와 관련된 항목 옆에는 표시가 없었다.

“제가 본 건 여기에 안 나옵니까?”

“오늘 측정한 항목에서는 잡히지 않았습니다. 설명하신 내용은 따로 기록했습니다.”

노상필은 결과서 뒤에 붙은 종이를 넘겼다.

“능력이 본다는 분은 처음 봅니다.”

“저도 뭘 보는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도경은 의자 옆에 둔 가방을 당겼다. 안에 넣어 온 진료 기록 끝이 구겨져 있었다.

“오늘도 피 검사까지 해 보고 알았어요. 손을 댔을 때는 어디 한곳이 아픈 줄 알았고요.”

“그림만으로 처치하신 건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노상필은 그 말도 적었다.

도경은 펜이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복도에서는 서류를 넘기는 소리와 번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노상필이 새 양식을 꺼내 두 손으로 건넸다.

첫 장 위에 제목이 적혀 있었다.

『동행 몬스터 진료 신고서』

“내시든 안 내시든 다음 주까지 결정하세요.”

도경은 양식의 병원 이름 칸에 손가락을 올렸다. 비어 있는 칸 아래로 시설과 장비를 적는 자리가 이어졌다.

“계속 진료하실 거면 신고부터 하셔야 합니다.”

도경은 양식을 받아 가방에 넣었다.

■

병원으로 돌아오자 보라가 진료대 수건을 갈고 있었다.

도경은 가방에서 결과서와 신고서를 꺼냈다. 결과서는 책상 위에 놓고, 신고서는 잠깐 손에 들고 있었다.

대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유리문에 붙은 안내문 아래로 오후 햇빛이 들었다.

보라가 수건을 접어 도경 쪽에 놓았다.

“두더지 보호자분이 먹이 샀다고 전화하셨어요. 적어 드린 거랑 맞는지도 물어보셨고요.”

“맞았어요?”

“네. 원장님 오시면 말씀드린다고 했어요.”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고 진료대 서랍을 열었다.

거즈 봉지와 집게 포장 사이에 신고서를 넣었다. 종이가 길어서 끝을 조금 접어야 했다.

서랍을 밀자 양식의 모서리가 걸렸다.

도경은 손잡이를 놓았다.

서랍이 다 닫히지 않았다.

『환자: 가시두더지(손바닥 둘 크기 · 온순)』

『진단: 종에 맞지 않는 먹이로 인한 영양 부족과 수분 부족, 가시 변색과 빠짐』

『처치: 피 검사 확인, 수액, 종에 맞는 먹이로 바꾸기, 먹는 양과 몸무게 다시 확인』

(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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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경은 철창 사진을 뒤집어 빈 곳에 월요일이라고 적었다. 그 아래에 가져갈 물건을 하나씩 써 내려갔다.보라는 처치실 불을 끄려다 말고 종이를 보았다.“왕진 가방 꺼내 놓을까요?”“네. 수액하고 보온 담요도 챙겨 주세요.”도경은 휴대전화에 답장을 보낸 뒤 사진을 기록지 사이에 끼웠다. 입원실에서는 물그릇 가장자리를 긁는 작은 소리가 났다.■4월 6일(월) 아침, 도경은 창고 앞에 흰 소형 승합차를 세웠다.노상필은 철문 옆에 서 있었다. 은테 안경 너머로 도경을 확인하고 서류 가방을 내려놓았다. 관리원 직원 둘은 차량 뒤에서 이동장을 꺼내고 있었다.회색 후드를 입은 탁인호가 다가와 왕진 가방을 받아 들었다. 가영은 휴대전화와 얇은 서류 봉투를 양손으로 쥐고 있었다.“선생님, 저쪽에 차 대시면 나중에 애들 싣기 편하대요.”도경은 차를 조금 옮긴 뒤 노상필에게 갔다.“돌두꺼비 셋과 물결뱀은 병원에 있습니다. 오늘 아침 상태도 적어 왔어요.”“확인하겠습니다. 안에서는 먼저 개체 상태를 봐 주십시오.”노상필이 기록지를 받아 서류철에 넣었다.창고 철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엄기철이 셔츠 단추를 채우며 나왔다. 금목걸이가 열린 깃 사이로 보였다.“월요일 아침부터 이렇게까지 와야 해요?”“사육 상태 확인에 앞서 방문 목적은 전화로 안내했습니다.”노상필이 신분증을 보이고 문 앞에 섰다.“현재 보관 중인 개체와 사육 기록을 확인하겠습니다.”엄기철은 직원들이 들고 있는 이동장을 보았다.“아직 확인도 안 했는데 저건 왜 가져왔어요?”“진료가 필요한 개체가 있으면 옮겨야 합니다.”도경은 왕진 가방을 받아 들었다. 엄기철이 도경의 남색 진료복을 보고 입술을 다물었다가 옆으로 비켰다.문을 넘자 축축한 냄새와 먼지 냄새가 함께 났다.철창은 벽을 따라 놓여 있었다. 몇 개는 천으로 덮여 있었고, 바닥에는 마른 먹이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었다. 가까운 철창의 물그릇을 관리원 직원이 들어 보았다.그릇 바닥에 얇은 자국만 남아 있었다.도경은 안쪽에서 들

  • 던전 수의사, 몬스터 진료 예약 받습니다   8화. 꼬리가 잘린 물결뱀

    “이계생물관리원 노상필입니다.”도경은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물그릇을 보았다. 돌두꺼비 한 마리가 턱을 들었다가 옆에 붙어 있는 몸 위에 내려놓았다.“주임님, 느티나무 동물병원 임도경입니다. 오늘 돌두꺼비 셋을 진료했는데, 사육 상태도 확인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보호자와 등록 번호부터 말씀해 주십시오.”도경은 선반의 서류를 가져왔다. 엄기철의 이름과 고리 번호를 읽자 전화 너머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현재 병원에 있습니까?”“네. 셋 모두 탈수가 있고 등 피부가 손상됐습니다. 철창과 처음 왔을 때 상태를 찍어 뒀어요.”“사진과 진료 기록을 보내 주십시오. 확인한 사실과 보호자가 한 말은 나눠 적어 주시고요.”도경은 기록지 옆에 빈 종이를 놓았다.“관리 상태가 나빴다고 제가 단정해도 됩니까?”“진료에서 확인하신 상태를 적으시면 됩니다. 사육 환경은 저희가 확인하겠습니다.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전화를 끊고 도경은 철창 사진을 다시 열었다. 사진 아래에 물그릇 없이 내원했다고 적었다. 아침에 물을 줬다는 엄기철의 말은 따로 옮겼다.보라가 물그릇 옆 받침을 바로 놓았다.“돌아가서 또 저 안에 들어가는 건 아니겠죠?”“확인해 보겠다고 하셨어요.”도경은 마른 배설물이 붙어 있는 바닥 사진을 골랐다. 전송 화면에 사진이 한 장씩 올라가는 동안 보라는 돌두꺼비들의 머리가 물에 잠기지 않는지 살폈다.■4월 3일(금), 도경이 입원실 물그릇을 갈고 나왔을 때 유리문이 열렸다.엄기철이었다.어제 두고 간 철창보다 길쭉한 철창을 양손으로 들고 있었다. 금목걸이 아래 셔츠 앞섶에 작은 물자국이 났다.“원장, 이것도 좀 봐 줘요.”철창 바닥에 팔 길이의 뱀이 몸을 접고 있었다. 옅은 물결무늬 사이로 젖은 거즈가 보였다. 꼬리 끝에 감아 놓은 거즈였다.도경은 진료대 위를 비웠다.“무슨 일이 있었습니까?”“철창 문에 끼였어요. 직원이 닫다가.”엄기철이 철창을 내려놓자 뱀이 머리를 들었다. 입을 벌리지는 않았지만 몸을 움직일 때마다

  • 던전 수의사, 몬스터 진료 예약 받습니다   7화. 철창에 갇혀 온 돌두꺼비

    “어떤 아이들이 있는지 먼저 알려 주세요.”도경은 펜을 든 채 청년을 보았다.청년이 이동장을 내려놓으려다 안쪽을 살피고는 그대로 받쳐 들었다.“두꺼비도 있고, 뱀도 있어요. 제가 맡는 날에는 물을 갈아 주는데 다른 날은 잘 모르겠어요.”“행사장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아픈 아이는 여기로 데려와야 해요.”“사장님한테 말은 해 볼게요.”청년이 이동장 손잡이에 감긴 천을 고쳐 잡았다. 도경은 진료 시간 아래에 병원 연락처를 적어 건넸다. 청년은 종이를 접지 않고 작업복 안주머니에 넣었다.유리문이 닫힌 뒤에도 도경의 펜은 잠깐 들려 있었다.보라가 진료대의 수건을 걷었다.“행사장에 물그릇은 있겠죠?”“그것부터 물어봤어야 했네요.”도경은 기록지 아래에 물 공급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적었다.■4월 2일(목), 점심을 먹고 돌아온 보라가 간식 서랍을 닫을 때 유리문이 열렸다.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배가 나온 남자가 철창을 한 손에 들고 들어왔다. 셔츠 목 안쪽에서 굵은 금목걸이가 흔들렸다. 철창이 문 옆 선반을 스치자 남자는 손잡이를 높이 들어 올렸다.“여기가 몬스터 봐 준다는 데죠?”도경은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철창 바닥에 자갈 같은 덩어리 셋이 붙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중 하나가 눈을 떴다. 주먹 크기의 돌두꺼비였다.등은 희끗했고 눈 주위는 움푹 들어가 있었다. 철창이 기울었는데도 몸을 바로 세우지 않았다.“진료대에 내려놓으세요.”남자가 철창을 놓았다. 철창 안에 있던 돌두꺼비 한 마리가 옆으로 밀렸다. 보라가 손잡이를 받아 바닥을 수평으로 맞췄다.“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밥을 안 먹어요. 행사에 나가면 움직여야 하는데 가만히만 있고.”남자는 바지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관리원에 등록한 개체 번호와 돌두꺼비 셋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도경은 종이를 펴고 철창 안의 등록 고리를 확인했다.“보호자 성함이 엄기철 씨 맞으세요?”“네. 엄가네 몬스터 체험 해요. 우리 알바가 여기 괜

  • 던전 수의사, 몬스터 진료 예약 받습니다   6화. 눈이 흐려진 쇠부엉이

    보라는 문 옆의 낮은 선반을 비웠다.도경이 큰 담요를 접어 올려놓자 보라가 끝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유리문을 여닫아도 담요가 걸리지 않았다.“이 정도면 바로 꺼낼 수 있겠네요.”“바닥에 닿으면 갈아 주세요.”보라는 선반 위를 한 번 더 닦았다. 도경은 처치실로 돌아가 고정대에 남은 물기를 확인했다. 마른 거즈를 채우고 나니 진료대 아래 서랍이 조금 뻑뻑하게 닫혔다.■3월 31일(화), 문 옆의 담요는 작은 이동장을 받치는 데 쓰였다.점심이 지난 뒤였다. 작업복 차림의 청년이 이동장을 양손으로 들고 들어왔다. 한쪽 소매에 흙이 말라붙어 있었고, 이동장 손잡이는 천으로 여러 번 감겨 있었다.“몬스터도 보시는 거 맞죠?”도경은 계산대 밖으로 나왔다.“네. 어떤 아이예요?”“쇠부엉이요. 눈이 좀 이상해요.”이동장 안에서 쇳빛 깃이 움직였다. 팔뚝 길이의 부엉이가 낮은 횃대에 앉아 있었다. 몸을 돌리지 않고 고개만 틀어 도경을 보았다.눈 가장자리에 마른 분비물이 조금 붙어 있었다. 오른쪽 눈을 자주 감았다 떴다.“언제부터 그랬어요?”“사흘쯤 됐어요. 밤에 자꾸 벽에 부딪혀요. 전에는 불을 꺼도 잘 날았거든요.”도경은 이동장 아래에 담요를 깔았다. 청년이 손잡이를 놓고도 손을 떼지 않았다.“떨어뜨릴까 봐 감아 놨어요. 들고 오는데 안에서 자꾸 움직여서요.”“잘하셨어요. 지금은 문을 열지 말고 잠깐 볼게요.”도경은 이동장 옆으로 몸을 낮췄다. 부엉이는 횃대를 발톱으로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날개는 양쪽 모두 접혀 있었고, 숨을 쉴 때 꼬리가 크게 들썩이지는 않았다.“밥은 먹습니까?”“주면 먹어요. 그런데 바닥에 놓으면 못 찾을 때가 있어요.”청년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등록 내용에는 위험 단계 주의가 적혀 있었다. 발목의 등록 고리 번호도 맞았다.“직접 데리고 일하세요?”“저는 D급 헌터고요. 평일에는 체험 행사장에서 아르바이트해요. 얘 먹이 주고 청소하는 건 제가 합니다.”도경은 접수 칸에 들은 내용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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