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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계약 남남, 오늘부터 1일]

Author: silver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05 00:05:22

그날 밤.

장하늘과 유환은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대신, 텅 빈 그라운드의 고요가 내려앉은 더그아웃에 나란히 앉았다. 차가운 금속 벤치 위로 스며드는 밤의 냉기보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가 훨씬 더 날카롭게 피부를 파고들었다.

둘의 숨소리가 뒤섞이며 팽팽한 긴장감이 폭발 직전까지 치달았다. 12월 24일. 그날이 지나면 정말 모든 게 끝날 것처럼, 장하늘의 눈동자에는 절박하다 못해 처연한 진심이 서려 있었다. 그래서 이번 생에 더 이상의 후회를 남기지 않겠노라 굳게 다짐했다.

자신이 먼저 죽든, 유환이 먼저 죽든, 혹은 기적적으로 둘 다 살아남든 간에 중요하지 않았다. 설령 살아남는다 해도 명문가 재벌 3세로서 혈육과 후계를 중시하는 유환의 집안에서 남자 연인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존재였다.

어떤 미래가 닥치든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찰나처럼 짧을 터였다. 그렇기에 1분 1초, 상대에게 온전히 충실해야 한다는 애틋하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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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SS'의 퍼펙트 배터리(The SS-Class Perfect Battery)   #75. [시한 폭탄이 된 예쁜 거짓말쟁이]

    장하늘은 평생 병원 신세를 질 일이 거의 없었는데, 누워 있는 상태로 제 생사를 저울질하는 대화들을 듣고 있자니 기묘한 갈증이 목구멍을 태웠다.깊은 수면 아래 갇힌 와중에도, 지독한 격통을 잠재워 줄 진통제나 저를 기절시켜 줄 강력한 수면제라도 처방해 주길 바라며 의사의 입술 끝에 온 신경을 잔뜩 곤두세웠다.“강 원장. 은인은 무슨 유난이야. 젊은 놈이 갑자기 저 모양으로 고꾸라진 건 분명 숨기는 지병이나 이유가 있을 텐데.”유도완의 가시 돋친 음성이 병실 벽을 날카롭게 때렸고, 주치의는 차트를 거칠게 넘기는 소리를 내며 조심스럽게 설명을 이어갔다.“MRI도 찍고 정밀 혈액 검사도 방금 마쳤습니다만. 사실, 이 환자는 운동선수를 하기에는 모든 신체 수치가 평균치에 한참 못 미칩니다. 백혈구 수치는 비정상적으로 무너져 있고 혈압도 지나치게 낮습니다. 언제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빈혈이 심각하고, 간 수치 또한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습니다.”이게 대체 무슨 헛소리인가. 뇌리를 강타하는 진단에 장하늘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이번 생은 참혹한 사고사가 아니라, 속에서부터 서서히 갉아먹히는 병사(病死) 시나리오였단 말인가.순간 모골이 송연해졌다. 늘 예측할 수 없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생을 마감했기에, 질병으로 쓰러진다는 가능성은 아예 배제하고 있었다.만약 오늘 혼자 있을 때 쓰러졌더라면, 차가운 방 안에서 누구의 구원도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 버둥거리다 그대로 고독사했겠구나 싶어 선득한 소름이 척추를 타고 내달렸다.“아, 이것 보세요! 이 녀석 이렇게나 비실비실하잖아요! 박사님, 그럼 이제 어떻게 됩니까? 고칠 수는 있는 건가요? 예?”유환이 이성을 잃고 비명 섞인 다급한 소리를 질렀다. 곁에서 할아버지와

  • '도SS'의 퍼펙트 배터리(The SS-Class Perfect Battery)   #74. [서늘한 거인들의 밤]

    살려달라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고통이 전신을 난도질했다.장하늘은 콘크리트 바닥 위로 쓰러지듯 엎어졌다. 밀폐된 지하 주차장의 시린 냉기가 뺨에 닿았고, 그 서늘함의 끝자락에서 피비린내 나는 죽음의 냄새가 짙게 배어 나왔다.저 멀리서 제 몸을 부축하며 피를 토하듯 절규하는 유환의 목소리가 점차 아득한 점이 되어 멀어지기 시작했다.“······아버지? 할아버지까지? ······여긴 왜 오셨어요?”유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라면 유도완과 유준철이 온 건가.오장육부를 쥐어짜는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장하늘은 피가 맺힌 눈을 간신히 치켜떴다.지하 주차장의 흐릿한 불빛 아래, 검고 매끄러운 고급 가죽 구두를 신은 형상이 저승사자처럼 다가오는 것을 확인한 순간—.장하늘의 세계는 닫혀가고 있었다.***지금 장하늘에게는 세상의 모든 소리가 먹먹한 수면 아래의 소음처럼 아득하게만 들렸다.빨리 검사해 달라고, 제발 살려달라고 의사들의 덜미를 쥐고 흔들며 절규하는 짐승 같은 목소리. 분명 유환의 것이었다.괜찮다고, 여기 곁에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입술은 굳어 떨어지지 않았다.그저 잠깐 감은 눈이라 생각했거늘, 지독한 피로와 정체 모를 한기가 골수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전신의 근육을 흐물거리게 녹여 내리는 것 같았다. 무겁고 탁한 기운이 신체의 모든 구멍으로 스며들더니, 이내 뱃속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격통이 장하늘의 육체를 사정없이 조각냈다.‘왜 내가····

  • '도SS'의 퍼펙트 배터리(The SS-Class Perfect Battery)   #73. [핏빛의 전조]

    “전생은······ 후우,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아요. 물론, 우리가 노력하는 만큼 미래가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비틀어지기는 하지만요.”골반을 잘게 흔들며 노골적으로 자극을 재촉하는 서정우의 젖은 속삭임에, 유경호는 낮게 으르릉거리며 그의 골반을 뼈가 으스러질 듯 꽉 움켜쥐었다.“다 거슬려.”여전히 전생이라는 단어는 유경호에게 그저 침대 위에서 분위기를 한껏 달구는 발칙하고 귀여운 농담 정도로 치부되는 눈치였다. 거칠게 몰아치는 그의 롱테이크 속에서 서정우는 쾌락에 허덕이면서도, 문득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던 불길한 잔상을 지워내지 못했다.“그런데······ 오늘 장하늘 말이에요. 아까부터 휴대폰만 계속 보던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요? 하흣!”이토록 모든 게 완벽한 날에 대체 무슨 근심이 끼어든 건지, 서정우는 밀려드는 쾌감 사이로 자신도 모르게 장하늘에 대한 걱정을 흘렸다. 유경호는 질투 어린 숨을 내쉬며 서정우의 허리를 더 깊숙이 받쳐 올렸다.“보나 마나 뻔하지. 조기범 선배가 또 연락해서 쑤셔놨겠지.”조기범. 그 역시 전생의 파편을 쥐고 있는 회귀자임이 분명했기에 이토록 집요하게 장하늘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리라. 서정우는 생각했다. 하지만 유경호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현실적인 궤도 위에 서 있는 인간이었기에, 오히려 그의 앞에서 전생을 말할 때만큼은 기묘한 안전함을 느꼈다.“일단······ 앗, 계속 이기고 나서 생각해요!

  • '도SS'의 퍼펙트 배터리(The SS-Class Perfect Battery)   #72. [사람 녹아 내리게]

    유환은 이상하게 조금전부터 신경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날카로웠다.그는 묵직하게 운전대를 잡은 채, 옆자리에서 유령처럼 굳어 있는 장하늘의 창백한 안색을 간헐적으로 살폈다.조기범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부터였나. 닭갈비를 포장해 차에 올라타는 내내, 장하늘은 무언가에 지독하게 홀린 사람처럼 제 손안의 휴대폰 화면만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손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단말기를 꽉 쥔 채, 액정이 꺼지면 다시 켜고, 또다시 들여다보는 기묘한 반복. 오늘 오후 내내 이어진 그 무겁고 이질적인 침묵은 유환의 오장육부를 부드럽게 짓이기는 것 같았다. 장하늘은 지금 차가 어디로 향하는지, 제 곁에 누가 앉아 운전을 하고 있는지조차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모양새였다.지독한 초조함이 유환의 내부에서 끓어올랐다. 마침내 교차로에서 붉은 신호가 걸린 순간, 유환은 거침없이 안전벨트를 풀었다.삐걱거리는 가죽 시트 소리와 함께 그의 커다란 몸이 장하늘의 영역을 침범했다.“장하늘.”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동시에, 유환의 두꺼운 손이 장하늘의 얇은 어깨를 거칠게 붙잡아 제 쪽으로 돌려세웠다.거부할 틈도 주지 않는 군더더기 없는 동작이었다. 유환은 큼지막한 손가락으로 장하늘의 턱을 거칠게 추켜올렸다. 단단한 손아귀에 잡힌 턱끝이 미세하게 굳어갔다. 유환은 그대로 고개를 숙여, 제 안에서 들끓던 뜨겁고 축축한 숨결을 장하늘의 입술 위로 사정없이 불어넣었다.“읍, 하······.”갑작스럽고 노골적인 침입에 장하늘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위태롭게 일렁였다. 사정없이 얽혀드는 숨결 속에서 짓눌리던 시선이 그제야 유환에게 오롯이 맞닿았다.“너 뭐야? 도대

  • '도SS'의 퍼펙트 배터리(The SS-Class Perfect Battery)   #71. [정교한 꿈의 경계]

    장시간 버스 이동에 지루함을 느끼던 부원들은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휴게소 곳곳으로 흩어졌다. 날씨는 쾌청했고, 경기의 대승으로 팀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어 있었다.다가오는 연휴와 달콤한 휴식 뒤에 이어질 본선 경기에 대한 기대감은 모두를 들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장하늘은 웃음을 머금고 이 풍경을 즐겼다.“진짜 우리가 계속 이기다니! 꿈이냐? 하하!”앞서 걷던 최우현의 외침에 뒤따르던 부원들의 입꼬리가 일제히 치솟았다.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한 덕분에 대학 측에서도 ‘마구마구’를 향한 지원의 고삐를 당기기 시작한 것이다.“선배들! 이왕 이렇게 된 거 다음 경기도 시원하게 이겨서, 김강무 선배님이랑 최우현 선배님 모두 프로팀 입단 확정 지으셨으면 좋겠네요!”서정우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밝았다.“그래, 결과로 증명해야지.”김강무 역시 이번 예선에서 4번 타자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기에 대답에는 자신감이 넘쳤다.물론 아직 정식 계약서를 쓴 단계는 아니었기에 구두 약속은 언제든 번복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일단 승리는 이어가는 것이 중요했다.“너희들 쉬는 동안 허투루 보내지 말고 꼭 병원 가서 물리치료도 받아라. 계속 이겨 보자! 학교에서도 제대로 지원해 주니까!”대학 측은 관광버스와 식사, 숙소 제공은 물론이고 서울대 병원 협력 정형외과 진료까지 연결해 주었다. 다른 엘리트 야구부가 있는 학교라면 당연한 처사였겠지만, 동아리 수준에서 시작한 S대에겐 파격적인 대우였다. 이 모든 길을 ‘마구마구’ 멤버들이 스스로 개척해 낸 셈이었다.“우현아, 그동안 우리 팀 유지하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 방금

  • '도SS'의 퍼펙트 배터리(The SS-Class Perfect Battery)   #70. [이게 꿈일까 봐, 두려워.]

    전생이라니. 무슨 소리를 저리도 진지하게 나누나.유환은 헛웃음이 흘러나왔다.“나 너무 신비로워. 그런 게 사실일까? 전생, 회귀, 그딴 거 말이야.”무슨 오컬트적인 성격의 이야기를 나누나, 쓸데없는 소리도 참 진지하게 하네 싶은 유환은 코웃음만 작게 흘렸다.“그래서 두려워요. 빨리 죽을까 봐요. 그리고 제 전생에서 가장 빨리 죽는 게 장하늘이라 그것도 걱정돼요.”그 순간 유환은 잠깐 몸이 돌처럼 멈칫거렸다.그리고 퍽-.앞자리를 주먹으로 거칠게 치고는 낮지만, 위협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그게 무슨 소리야?”서정우가 소스라치게 놀라 어깨를 움츠리고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유환아, 깜짝이야. 뭐?”당황한 서정우가 눈썹을 움츠리듯 추켜올리더니 의자 사이의 좁은 틈으로 고개를 돌렸다.***유환은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농담이라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불길하고 거북한 단어들의 나열이었다.장하늘이 빨리 죽는다니. 게다가 전생이니 천기누설이니 하는 해괴한 소리는 또 무엇인가.하지만 본능적으로 그것이 놓쳐서는 안 될 파편임을 직감했기에, 유환은 형안을 번뜩이며 서정우를 무섭게 노려보았다.“무슨 소리냐고. 장하늘이 왜 죽어?”서정우는 당혹스러운 듯 눈을 깜빡이며 유경호를 응시하다가 마른침을 삼키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유경호가 대신 어깨를 으쓱하며 유환의 기세를 가로막았다.“우리 정우 놀라겠다. 유환아, 말 좀 살살 해. 장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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