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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부서진 상자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6 18:59:51

클라리사가 기숙사 문을 두드린 건 저녁 종이 울리기 전이었다.

두드렸다기보다 때렸다. 루엔이 문을 열자 클라리사가 서 있었다. 머리가 반쯤 풀려 있었다. 늘 단단히 땋던 머리였다.

“같이 가 줘.”

“어디로 갑니까.”

“황색탑 도착 마당. 우리 상단 짐이 떨어졌어.” 클라리사가 숨을 삼켰다. “쿠르트 아저씨 다리가 부러졌어.”

루엔은 수첩과 쇠잔만 챙겼다.

*

황색탑 도착 마당은 도시 남동쪽 성벽 안에 있었다.

돌을 깐 둥근 마당. 바닥 한가운데 지름 스무 걸음쯤 되는 원진이 파여 있었다. 마당 둘레는 사람 키 두 배 되는 돌담이었다. 담 안쪽에 짚단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 먼 데서 온 짐이 튕겨 담에 부딪히는 일이 잦아서였다.

오늘은 짚단으로 모자랐다.

마당 북동쪽 구석에 나무 상자가 부서져 있었다. 쇠띠를 두른 두꺼운 상자였다. 쇠띠가 휘었다. 판자가 쪼개졌다. 안에 든 것이 돌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비단 두루마리, 은으로 된 작은 잔들. 보움 상단 일꾼들이 무릎을 꿇고 주워 담고 있었다.

그 옆에 사람이 누워 있었다.

마흔 가까운 사내였다. 왼쪽 다리가 무릎 아래서 이상한 쪽으로 꺾여 있었다. 황색탑 의원이 부목을 대고 있었다. 사내는 이를 악물고 소리를 내지 않았다.

클라리사가 그 곁에 무릎을 꿇었다.

“아저씨.”

“아가씨가 왜 여기를.” 쿠르트가 웃으려 했다. 잘 안 됐다. “짐은 괜찮소? 은잔이 몇 개 굴렀는데.”

“짐 얘기 하지 마.”

클라리사는 쿠르트의 손을 잡았다. 루엔은 조금 떨어져 섰다. 클라리사가 어릴 때부터 보움 상단 수레 곁에 늘 있던 사람이라고 했다. 첫 산가지 놓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도 쿠르트였다고.

*

마당 한가운데 원진 곁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마흔 중반의 사내. 키가 작고 배가 조금 나왔다. 이마가 넓었다. 황색탑 누런 옷 소매에 먹물 얼룩이 있었다. 허리에 가죽 끈으로 묶은 공책을 차고 있었다. 한쪽 무릎을 조금 절었다. 오늘 다친 걸음이 아니었다. 오래된 걸음이었다.

그 사람은 공책을 펴고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사람이 다쳤는데. 짐이 부서졌는데.

보움 상단 일꾼 하나가 그를 노려보았다. 그는 알아채지 못한 듯 계속 적었다.

“파비오 슈틸이야.” 클라리사가 루엔 곁으로 와서 낮게 말했다. 눈이 붉었다. “황색탑 여섯째 고리. 케른바흐에서 여기까지 짐을 옮겨 오는 사람. 우리 상단이 급한 짐은 늘 이 사람한테 맡겼어.”

“케른바흐에서 여기까지 몇 리입니까.”

“이백칠십 리 남짓. 수레로 엿새, 이 사람은 한 번.”

“몇 번 맡기셨습니까.”

“올해만 열한 번.” 클라리사가 입술을 깨물었다. “다친 건 처음이야. 우리 상단은.”

그 말에 루엔은 고개를 들었다.

“우리 상단은, 이라고 하셨습니다.”

클라리사가 루엔을 보았다. 그러다 눈을 돌렸다.

“다른 상단은 다쳤어. 가끔. 열 번에 한 번꼴이라고들 해. 그래서 삯이 비싸. 짐 한 상자에 말 스무 필 값.”

*

오틸리에 브라이트가 온 건 해 질 무렵이었다.

황색탑 건설원장. 일곱째 고리. 치마 끝에 돌가루가 묻어 있었다. 공사장에서 곧장 온 얼굴이었다. 오틸리에는 부서진 상자를 보고, 쿠르트를 보고, 파비오를 보았다.

“또 난류인가.”

“난류입니다.” 파비오가 공책을 덮었다. 목소리가 조용했다. “이번엔 유난히 셌습니다. 도착하는 순간 옆으로 끌렸고, 발이 땅에 박히듯 무거웠습니다. 저는 무릎을 풀었습니다. 쿠르트 씨는 못 풀었습니다.”

“미리 말해 주지 않았나.”

“말씀드렸습니다. 다들 듣습니다. 그래도 몸이 먼저 굳습니다.”

오틸리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부서진 상자 쪽으로 걸어갔다. 쇠띠를 손바닥으로 두드려 보았다. 들보를 두드리듯이.

“이백칠십 리에 이 정도면 말이 한껏 달리다 담에 부딪힌 셈이군.”

그녀가 돌아섰다. 그러다 루엔을 보았다. 눈이 멈췄다.

“하르트 학생.”

“예.”

“여기서 뭘 하나.”

“보움 상단 짐입니다. 클라리사 님과 왔습니다.” 루엔은 부서진 상자 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보고 있었습니다. 상자가 어느 쪽으로 튕겼는지.”

“어느 쪽인가.”

“해 뜨는 쪽으로, 조금 북쪽. 원진 한가운데서 저 구석까지 스물두 걸음입니다. 떨어진 조각들도 다 그쪽으로 흩어졌습니다. 쿠르트 님도 같은 쪽으로 넘어지셨다고 들었습니다.”

오틸리에가 한참 루엔을 보았다.

“그걸 왜 보나.”

루엔은 수첩을 펴려다 말았다. 지난해 여름에 텔레포트 교관에게 들은 말이 있었다. 그 표 버리지 마라.

“지난해 여름에 세 리를 텔레포트해 봤습니다. 북쪽으로 갈 때마다 해 뜨는 쪽으로 반 발짝 밀렸습니다. 여섯 번 다. 오늘 짐은 케른바흐에서 왔습니다. 여기서 보면 남쪽, 조금 동쪽입니다. 북쪽으로 온 짐이 해 뜨는 쪽으로 튕겼습니다.”

파비오의 고개가 돌아갔다. 처음으로 공책에서 눈을 뗐다.

“같은 쪽입니다.” 루엔이 말했다. “세 리에는 반 발짝, 이백칠십 리에는 스물두 걸음과 부러진 다리. 멀수록 셉니다. 제멋대로가 아닙니다.”

*

오틸리에는 마당 가장자리 돌 의자에 앉았다. 치마의 돌가루를 털지도 않았다.

“하르트 학생. 재작년에 대마법진 결함 둘을 짚었지. 새김 규격을 사겠다고 내가 말했던 거 기억하나.”

“기억합니다. 대답은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 오늘은 다른 걸 사겠네.” 오틸리에가 부서진 상자를 턱으로 가리켰다. “황색탑이 먼 데 텔레포트로 먹고사는 건 알 거야. 짐, 사람, 편지. 삯은 비싸고 열에 하나는 다치지. 탑 어른들은 백 년 동안 난류라고 불렀네. 먼 길엔 마나가 거칠게 흐르는 데가 있다고.”

“예.”

“난 스무 해 동안 그 난류가 뭔지 설명하는 사람을 못 봤어. 이름만 있고.” 그녀가 무릎에 팔꿈치를 얹었다. “후원을 하겠네. 황색탑이. 한 해 얼마인지는 나중에 셈하고. 조건은 하나야.”

“사고의 까닭을 찾는 것.”

오틸리에가 눈썹을 올렸다. 그리고 크게 웃었다. 마당의 황색탑 일꾼들이 돌아볼 만큼.

“셈이 빠르군.”

“셈이 아닙니다. 그것 말고 황색탑이 저에게 살 게 없습니다.”

“찾으면 계약. 못 찾으면 없던 일.”

“까닭이 제가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어떻게 됩니까.”

“그럼 그렇다고 적어서 가져오게. 못 찾는다는 것도 찾은 거니까.” 오틸리에가 일어섰다. “자네 수첩에 그런 칸이 있다고 들었네.”

루엔은 대답하기 전에 하나를 청했다.

“기록을 보여 주십시오. 먼 데 텔레포트 기록. 누가 어디서 어디로 가서 어느 쪽으로 튕겼는지 적은 것.”

오틸리에가 고개를 돌렸다. 원진 곁의 파비오에게.

파비오는 허리의 공책을 한 손으로 쥐고 있었다.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런 기록은,” 파비오가 천천히 말했다. “한 사람이 적은 것밖에 없습니다.”

“누구입니까.”

파비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게 대답이었다.

*

쿠르트는 들것에 실려 나갔다. 황색탑 의원이 다리를 잘 맞췄다고 했다. 석 달이면 걷는다고.

보움 상단 일꾼들이 은잔을 세었다. 스물넷 가운데 스물셋. 하나는 끝내 찾지 못했다. 짚단 속 어딘가에 박혔을 것이었다. 루엔은 그 하나가 날아간 쪽도 물었다. 일꾼은 모른다고 했다. 루엔은 모른다고 적었다.

클라리사는 들것이 마당 문을 나갈 때까지 곁에서 걸었다. 그리고 문 앞에서 돌아왔다. 루엔 앞에 섰다.

한참 말이 없었다.

클라리사는 루엔의 장부를 검산하러 올 때 늘 말이 빨랐다. 틀린 곳을 짚을 때는 더 빨랐다. 지금은 입을 몇 번 열었다가 닫았다.

“루엔.”

“예.”

“이건 장부 일이 아니야.” 클라리사가 말했다. 목소리가 작았다. “상단 일도 아니고. 아저씨가 그랬어. 다리가 부러지는 순간에, 짐 얘기부터 했어. 은잔 몇 개가 굴렀냐고.”

“들었습니다.”

“다음에 또 떨어지면 아저씨는 또 짐 얘기부터 할 거야.” 클라리사가 루엔을 똑바로 보았다. 눈이 다시 붉어졌다. “까닭 찾아 줘. 부탁이야. 내가 너한테 처음 하는 부탁.”

루엔은 셈하지 않았다. 셈할 게 없었다. 이미 오틸리에에게 하겠다고 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오틸리에의 일이었고, 이건 클라리사의 일이었다. 같은 일이 두 사람 몫이 되었다.

“며칠 안에 말입니까.”

클라리사가 멍하니 루엔을 보았다.

그리고 울었다. 소리 없이, 얼굴을 찡그리고. 두 손으로 눈을 누르며.

루엔은 당황했다. 무엇이 틀렸는지 셈이 나오지 않았다.

“기한을 정하시면 거기 맞추겠습니다. 정하지 않으시면 제가 셈해서—”

클라리사가 울다가 웃었다. 눈을 누른 손 사이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코가 막힌 웃음이었다.

“너 진짜.” 클라리사가 손등으로 눈을 닦았다. “다들 ‘해 볼게’라고 하거든. ‘애써 볼게.’ 그런데 너는 기한부터 물어.”

“기한이 있어야 셈을 나눌 수 있습니다.”

“알아.” 클라리사가 코를 훌쩍였다. “그래서 우는 거야. 해 준다는 뜻이니까.”

*

그날 밤 루엔은 지난해 여름의 텔레포트 표를 꺼냈다.

학교에서 언덕으로, 북쪽. 해 뜨는 쪽으로 반 발짝.

언덕에서 학교로, 남쪽. 해 지는 쪽으로 반 발짝.

학교에서 방앗간 언덕으로, 서쪽. 북쪽으로 반 발짝, 발이 무겁게.

그 아래에 새 줄을 적었다.

「케른바흐에서 아스테른. 이백칠십 리 남짓. 북쪽 조금 서쪽으로 옴. 해 뜨는 쪽 조금 북으로 스물두 걸음. 사람 다리 부러짐 — 발이 땅에 박히듯 무거웠다고 함. 파비오 슈틸 말.」

루엔은 그 줄을 오래 보았다. 여름의 세 줄과 같은 방향이었다. 다만 셌다. 반 발짝이 스물두 걸음이 되었다.

세 리와 이백칠십 리. 반 발짝과 부러진 다리.

그 사이를 이을 점이 없었다. 루엔에게는 점이 넷뿐이었다.

한 사람이 적은 기록이 있다고 했다. 파비오 슈틸은 그게 누구인지 끝내 말하지 않았다. 대신 들것이 나간 뒤, 원진 곁에서 허리의 공책을 풀어 한참 쥐고 있었다.

루엔은 수첩에 적었다. 「파비오 슈틸 — 공책. 허리에 늘 찬다. 오늘도 적었다. 다친 사람 옆에서.」

그리고 그 아래 한 줄.

「사람이 다친 자리에서도 적는 사람은 둘 중 하나다. 차가운 사람이거나, 까닭을 찾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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