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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맹세의 끝에서
빛바랜 맹세의 끝에서
ผู้แต่ง: 새벽

제1화

ผู้เขียน: 새벽
00:59:59

00:59:58

강태준은 서은채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흐트러진 곳 하나 없이 정장을 차려입고, 긴 손가락으로 가볍게 테이블을 두드리는 모습은 마치 별것 아닌 계약서에 서명받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태연했다.

“서은채, 이제 59분 남았어.”

목소리는 차분했다. 다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해. 소희를 어디로 보냈어?”

서은채의 마음은 싸늘하게 식어 갔다. 누군가 목을 틀어쥔 듯 숨이 막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같은 질문을 들은 건 이번이 벌써 세 번째였다.

처음 이소희의 행방을 물었을 때는 침묵했다.

그러자 강태준은 턱을 붙잡고 엄지로 입술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달래듯 물었다.

“서은채, 이제 그만 고집부려.”

그리고 세 번째로 그 이름을 들은 지금, 강태준은 장모님과 장인어른의 목숨을 담보로 아내에게 대답을 강요하고 있었다.

“강태준...”

서은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당신한테는 장모님, 장인어른이고 나한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야...”

강태준의 입에서 서늘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서은채를 향한 눈빛은 섬뜩할 만큼 차가웠다.

“그래? 나 몰래 빼돌리기 전에 소희도 나한테 그만큼 소중한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어?”

강태준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서은채는 헛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소중한 사람?’

강태준은 분명 밖에서 만나는 여자들은 그저 잠깐 즐기는 상대일 뿐, 싫증 나면 언제든 버릴 수 있다고 말했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는 오직 나뿐이라고도 했었지.’

그런데 지금 강태준은 고작 이소희 때문에 서은채 부모님의 목숨을 담보로 그녀를 협박하고 있었다.

“강태준, 내가 끝까지 말하지 않으면 어떡할 건데... 정말 우리 부모님을 죽이기라도 할 거야?”

서은채는 잠긴 목소리로 겨우 물었다.

“직접 확인해 봐.”

상체를 살짝 기울인 강태준은 핏기 없이 창백해진 서은채의 얼굴을 무심히 바라봤다.

서은채는 온몸을 떨며 끝내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테이블 위로 뚝뚝 떨어졌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강태준은 분명 누구보다 진심으로 서은채를 사랑했던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서은채는 평범한 집안의 딸이었지만, 강태준은 제경에서도 손꼽히는 재벌가의 후계자였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가진 남자였다.

그래서인지 자존심이 강하고 오만했으며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는 법이 없었다.

그런 강태준이 서은채에게 첫눈에 반했다.

강태준의 구애는 제경 사교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무려 아흔아홉 번이나 고백했고, 그때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큼 큰 화제가 되었다.

서은채가 지나가듯 좋아한다고 말한 화가의 그림을 통째로 사들여 방 하나를 가득 채우기도 했고, 생일에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호텔 스위트룸 창밖에서 오직 그녀만을 위한 불꽃 쇼를 펼치기도 했다.

강태준의 끈질긴 구애에 결국 서은채는 마음을 열었지만, 서은채의 부모는 완강하게 반대했다.

재벌가의 결혼 생활이 어떤 것인지, 서은채의 부모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내를 집에 두고 밖에서는 다른 여자를 만나는 일이 흔한 세상에서, 권력과 돈을 가진 재벌 2세의 사랑을 마냥 동화처럼 믿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서은채의 부모는 딸을 집안 형편이 비슷한 남자와 결혼시키려 했다.

하지만 강태준은 서은채의 집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꼬박 하루를 버텼다.

평생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여 본 적 없던 강태준은 자존심까지 내려놓고 서은채와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결국 서은채의 부모는 그의 진심에 마음이 흔들렸고, 끝내 완강하던 반대를 거두었다.

결혼한 뒤에도 강태준은 서은채를 끔찍하게 아꼈고, 무슨 일이든 그녀에게 맞춰 주었다.

서은채가 생리통으로 힘들어하던 날에는 해외에 있다가도 밤새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 직접 찜질팩을 데워 배에 올려 줄 정도였다.

무심코 서문에서 파는 마들렌이 먹고 싶다고 하면 몇 시간을 운전해서라도 사 왔다.

서은채는 좋은 사람과 결혼했다고 믿었다. 처음으로 ‘이소희’라는 이름을 듣기 전까지는.

처음에는 비서에게서 우연히 들은 이름이었다.

강태준이 강연하던 자리에서 어떤 여대생이 일부러 넘어져 그에게 접근하려 했다는 이야기였다.

서은채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수법이라며 그냥 웃어넘겼다.

강태준에게 접근하려는 여자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는 결혼한 뒤 단 한 번도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린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두 번째로 그 이름을 들었을 때는 당황스러웠다.

침대 위에서 강태준은 서은채를 품에 안은 채 사랑을 나누던 중, 나지막이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불렀다.

“소희야...”

순간 서은채는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따져 묻자, 강태준은 그녀를 품에 끌어안고 해명했다.

이소희에게 마음이 간 건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밖에서 잠깐 만나다 끝낼 여자일 뿐이라고 했다.

“이쪽 세계에서는 다들 그렇게 살아. 은채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너야. 그건 평생 변하지 않아.”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강태준의 행동은 점점 더 대담해졌다.

값비싼 보석과 고급 주택을 사 주는 것도 모자라, 사적인 모임에까지 이소희를 데리고 다녔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제경 전체로 퍼졌다.

서은채는 울면서 따져 보기도, 화를 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강태준은 더 이상 예전처럼 그녀를 달래지 않았다. 대신 차갑게 한마디만 내뱉었다.

“억지 좀 그만 부려.”

결국 참다못한 서은채는 이소희를 해외로 내보냈다.

강태준이 이토록 극단적으로 나올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이소희의 행방을 알아내겠다는 이유 하나로 서은채의 부모를 납치해 몸에 폭탄까지 설치했다.

“스위스에 있어.”

서은채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취리히에 있는 내 명의 별장으로 보냈어.”

강태준은 몇 초간 서은채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진위를 가늠하더니, 곧바로 휴대전화를 들어 전화를 걸었다.

사실임을 확인한 그는 곧장 재킷을 집어 들고 서둘러 이소희를 데리러 나가려 했다.

“우리 부모님은?”

서은채가 다급히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말하면 풀어 준다고 했잖아!”

강태준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눈빛에는 아무런 온기도 없었다.

“남문로 폐공장. 가서 직접 찾아.”

서은채는 비틀거리며 밖으로 뛰쳐나가 차를 몰고 곧장 남문로로 향했다.

겨우 부모님을 찾아냈을 때, 폭발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다.

의자에 단단히 묶인 부모님의 입에는 테이프까지 붙어 있었다.

서은채를 발견한 두 사람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서 도망치라는 뜻이었다.

서은채는 곧장 달려가 떨리는 손으로 끈을 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폭탄의 타이머는 초 단위로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전자음이 죽음을 재촉하듯 귓가를 파고들었다.

00:03:21

00:03:20

아무리 애를 써도 끈은 풀리지 않았다. 다급해진 서은채의 눈에서는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그 순간, 서은채의 아버지 서동만이 온 힘을 다해 서은채를 밀쳤다.

충격에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난 순간, 서동만은 그대로 폭탄 위로 몸을 던졌다.

“아빠!”

귀를 찢는 폭발음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서은채를 집어삼켰다.

서은채는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눈앞은 순식간에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서은채는 병원에 누워 있었다.

서은채의 부모님은 모두 크게 다쳤지만 다행히 목숨은 건진 상태였다.

서은채는 병상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쏟으며 사과했다.

“미안해요... 제가 사람을 잘못 봤어요...”

서은채의 어머니 윤정희가 힘겹게 손을 들어 서은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다시 시작하면 돼.”

서은채는 고개를 저었다.

“강태준이 쉽게 놔주지 않을 거예요.”

이소희의 존재를 알았을 때, 서은채도 이혼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은채가 이혼 합의서를 내밀 때마다 강태준은 눈앞에서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강태준은 이소희와의 관계는 그저 잠깐 즐기는 것뿐이고 싫증이 나면 알아서 정리할 거라며,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는 서은채뿐이니 절대로 이혼해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때 서동만이 서은채의 손을 꼭 잡았다.

“아니야, 은채야. 네가 모르는 일이 하나 있어. 강태준도 아마 까맣게 잊고 있을 거다. 결혼을 허락했던 날 밤, 나랑 네 엄마가 강태준에게 혼전 계약서 한 장을 받아 뒀어.”

서은채가 놀란 눈으로 서동만을 바라보았다.

“강태준이 너를 배신하는 순간...”

서동만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계약은 효력이 생겨. 그러면 강태준의 동의 없이도 이혼할 수 있어. 이혼하고 나면 우리 가족은... 다시는 강태준이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는 거야.”

서은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물만 하염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부모님은 오래전부터 혹시 모를 날을 대비해 서은채가 빠져나갈 길을 마련해 두었던 것이었다.

...

다음 날, 서은채는 두 가지 일을 처리했다.

먼저 부모님과 함께 강태준이 서명한 혼전 계약서를 들고 법률사무소를 찾아갔다.

변호사는 계약서를 꼼꼼히 살펴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공증까지 받으셨으니,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 계약서입니다. 이대로 절차를 밟으면 이혼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 서은채는 부모님과 함께 신분 말소 절차를 밟았다.

‘모든 절차가 끝나면 세상 어디에도 더 이상 나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게 돼. 그리고 강태준은 평생 나를 찾을 수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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