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는 분명 인재였다. 진국과 여국 사이의 전쟁이 끝난 뒤, 대황자는 사람을 보내 진방옥을 오래도록 찾게 했지만 끝내 행방을 알 수 없었다.그런데 이렇게 수고 들이지 않고 스스로 굴러 들어올 줄이야.“그를 본황자의 처소로 데려오너라.”하인이 곧바로 대답했다.“명 받들겠습니다.”진방옥은 꿈에도 몰랐다. 연기준 곁을 잠시 떠난 사이, 자신에게 이런 일이 닥칠 줄은.진 가에 있을 때 호신술 하나 제대로 익혀두지 않은 것이 이제 와서 뼈저리게 후회되었다.예정임의 시신은 사람들에 의해 들려 경성의 절반을 돌아다녔다. 그는 야랑국의 팔황자였고 본래는 곧 야랑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그런 인물이 대황자부에서 갑작스럽게 죽자 경성 안에는 소문이 들끓으며 온갖 말이 떠돌았다.대황자는 이 일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아예 사실을 공개했다.그날 이후, 경성 사람들은 모두 알게 되었다. 예정임이 색심에 눈이 멀어 대황자의 측비를 범하려다 시위에게 음적으로 오인되어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을.마침 얼마 전, 예정임은 사람들 앞에서 대낮에 민가의 여인을 거의 능욕할 뻔한 일이 있었던 터라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말에 백성들은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대황자를 탓하는 이는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그대로 예정임의 시신 위로 쏟아졌다. 그가 민녀를 범하려 했던 바로 그 거리를 지날 때 상인들과 백성들은 썩은 달걀과 상한 채소 잎을 시신 위로 던졌다.야랑국 사신들의 호위 앞에 시신이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온몸이 더럽혀져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 지경이었다.옥사 안.야랑국의 호위병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주군과 잠시 떨어져 있던 사이, 사람이 이렇게 허망하게 목숨을 잃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그들은 입을 모아 외쳤다. 야랑국이 군사를 일으켜 진국을 치고 반드시 주군의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고.그때, 열셋 째 황자는 아직도 옥사 안에 있었다.그는 형부상서 앞에서, 한 시진 전 예정임이 어떻게 거리 한복판에서 진국 백성을 모욕하고 민녀를 희롱했는지를
대황자는 잠깐 망설였다. 조금 전 태의가 진가이의 맥을 짚어 회임 시기를 확인했는데 분명 그가 그녀와 자주 잠자리를 함께하던 때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솔직히 말해 그는 이 아이 자체에 큰 집착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훗날 황위에 오르면 후궁은 차고 넘칠 테니 그때 가서 아이를 가지는 일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하지만 황제는 이 아이 때문에 요즘 들어 유독 그를 자주 불러들였다. 캐묻고 확인하듯 했다. 그러니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아이가 그에게 쓸모 있다는 뜻이었다.그러나 예정임이 저지른 짓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다. 야랑국 팔황자 주제에 감히 그에게 이런 치욕을 안기다니. 이 일을 그냥 넘긴다면 그는 평생 조롱거리로 남게 될 것이다.“야랑국 팔황자 예정임. 대황자부를 무단으로 침입해 측비를 범하려 했으니 즉시 처형하거라.”“감히! 나는 야랑국의…!”말이 끝나기도 전에 허공을 가르며 여덟 발의 화살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단 한 발도 빗나가지 않고 모든 화살이 예정임의 몸을 정확히 꿰뚫었다.치명적인 한 발은 그의 목을 관통했다. 화살촉이 목 뒤로 튀어나오는 순간,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예정임은 끝내 눈을 감지 못한 채, 진가이를 똑바로 바라보며 쓰러졌다.그 끔찍한 장면에 자극받은 진가이는 참지 못하고 토악질을 했고 대황자는 그런 그녀를 무심하게 한 번 흘겨보았다.“오늘부로 진 측비를 부 안에 유폐한다. 평생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거라.”진가이는 알고 있었다. 아이 덕분에 당장은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을.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자신의 운명은 여전히 안갯속이라는 것도.단여월은 이를 악물었다. 기껏 잡은 약점으로도 진가이를 죽이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분했다.“그럼 언니는요?”그녀가 차갑게 물었다.“다른 사내에게 더럽혀져 몸도 마음도 망가진 여자를 대황자께서는 정말 계속 이 부에 두실 생각입니까?”대황자는 단여월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오늘부터 부의 살림은 본황자가 맡는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그
예정임은 몸을 돌려 밖으로 달아났다. 문을 여는 순간, 날카로운 파공음을 가르며 화살 하나가 날아들었다. 귀 옆을 스치듯 지나간 화살은 그대로 뒤편 기둥에 깊숙이 박혔다. 귀 언저리에서 화끈한 통증이 치솟았다. 예정임은 반사적으로 손을 올려 만졌고 손가락 끝에 선혈이 묻어났다.고개를 들자, 마당 한가운데에 대황자가 시위들을 거느린 채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 뒤에는 득의만면한 단여월과 밧줄에 결박된 채 입까지 막힌 진가이가 끌려와 있었다.진가이의 얼굴은 그와 다르지 않게 잿빛으로 질려 있었다.“예정임!”대황자가 이를 갈며 외쳤다.“본황자는 당신을 형제라 여겼습니다. 헌데 감히 제 측비와 간통해 본황자에게 이런 치욕을 안기다니요! 오늘 당신들을 직접 지옥으로 보내주겠습니다!”“화살을 쏘거라!”시위들이 일제히 활을 들어 올렸다. 시위대의 화살촉이 한 방향으로 정렬되며 차가운 살기가 예정임을 겨눴다.이번 만남이 밀회일 거라 여겼던 예정임은 아무도 데려오지 않았다. 서늘하게 빛나는 화살을 마주한 순간, 그는 완전히 겁에 질렸다.“설명할 기회를 주십시오!”그가 다급히 외쳤다.“측비가 먼저 유혹한 겁니다! 본황자는 억울합니다!”진가이는 이미 이런 결말을 예상하고 있었다. 예정임이 대황자부로 들어오는 순간, 그녀는 모든 게 끝났다는 걸 알았다. 대황자는 얼굴에 분노를 눌러 담은 채, 돌아서서 진가이의 뺨을 거세게 후려쳤다.“말하거라. 네 배 속 아이, 대체 누구의 씨냐?”단여월이 앞으로 나서며 진가이 입에 물려 있던 천 조각을 뽑아냈다.“언니, 이제라도 사실을 말하는 게 좋아요. 더 이상 대황자 전하를 속이지만 않으면 제가 대신 빌어볼게요. 아이만큼은 죄가 없잖아요.”진가이는 끝까지 버텼다.“이 아이는 대황자의 친혈육입니다. 폐하께서도 줄곧 기대해 오신 장자이자 장손이지요. 부디 저를 믿어주십시오.”“그럼 저자는 무엇이냐?”대황자가 예정임을 가리켰다.진가이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그자가 저를 협박해 첩자로 쓰려
부황은 붕어하시기 전 연기준을 창가로 불러 세웠다. 그리고 평생 황제를 보좌하겠다고 맹세하게 했다. 그의 요구는 두 가지였다.천하 만민을 저버리지 말 것, 그리고 연 씨 황실을 배반하지 말 것.그동안 연기준은 그것이 부황의 신임이라 믿어왔다. 그래서 그는 그날의 맹세를 이루기 위해 가진 힘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하늘에 계신 부황의 혼령이 지켜보고 계신다면 이 아들을 보며 흡족해하시길 바라는 마음 하나로.그 뒤 연기준은 실제로 연 씨 황실을 위해 혁혁한 공을 세웠고 열셋 째 황숙과 나란히 열국이 경계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쯤이면 부황도 자신의 행보에 만족하셨으리라 생각했다.그러나 맹경운의 말을 듣는 순간, 연기준 역시 어딘가 어긋나 있음을 느꼈다. 그는 찻잔을 꽉 쥔 채 말없이 침묵했다.맹경운은 그가 마음에 담지 않은 줄 알고 다시 입을 열었다.“경성을 떠난 지 오래되지 않아 예전의 부하들은 아직도 왕야를 따르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움직이기 가장 좋은 때입니다. 게다가 지난번 맹은영이 벌인 일로 가짜 상왕부를 둘러싼 소문은 끊이지 않고 있어요. 문턱이 닳을 틈도 없던 방문객들조차 요즘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그 모자가 완전히 자리를 잡기 전에 서두르셔야 합니다.”연기준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잠시 생각한 뒤, 얼굴에는 다시 평정이 깃들었다.“네가 이렇게까지 애써 본왕에게 반역을 권한다는 걸, 맹국공께서 알게 된다면 네 다리부터 부러뜨릴 게다.”맹경운은 말문이 막혔다.“전 농담이 아닙니다.”연기준이 담담히 답했다.“본왕도 농담이 아니다. 이 일이 마무리되면 본왕은 서인경과 함께 잠시 자리를 비울 것이다. 상왕인 내가 진짜로 죽어야만 몇몇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쉬워진다.”맹경운은 그가 무엇을 밝히려는지 알 수 없었다.다만 연기준에게 분명한 계산이 있다는 걸 보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그 말도 맞군요. 세 식구가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제는 제대로 함께할 때도 됐지요. 당신이 살아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열셋 째 황자는 결코
맹경운은 얼굴을 찡그리며 구역질 나는 표정을 지었다.“아까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예정임 같은 자는 머리통을 산산조각 내버렸을 겁니다!”연기준은 창문을 닫고 탁자쪽으로 걸어가 앉았다.“기다려라. 이런 일은 누군가가 대신 해줄 것이다.”맹경운은 속으로 불만이 컸지만 그보다 더 걱정되는 건 연기준이었다.“정말 열셋 째 황자를 믿는 겁니까? 순성어사를 시켜 군사까지 붙여주며 기세를 키워줬다가 정말로 황위에 오르는 순간 토사구팽을 당하면 어쩌려고요?”연기준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본왕은 올려줄 수도 있고 끌어내릴 수도 있다. 다만 열다섯 째 황자가 너무 어려 조정 안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점만 아니었다면...”연기준은 잠시 말을 끊었다. 뒤이어 무언가를 삼킨 듯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황자들 중 가장 무해한 건 열다섯 째 황자뿐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아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줄곧 서 가와 한편이었고 마음은 늘 한결 같았으니 말이다.하지만 열다섯 째 황자는 아직 열 살도 채 되지 않았기에 조정에 기반이 없었다. 연기준이 억지로 그를 올리면 자신들이 경성을 떠난 뒤 조정에서 그의 안정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그러니 이 상황에서 열셋 째 황자는 오히려 뜻밖의 기회를 얻은 셈이었다.맹경운은 연기준을 바라보며 뭔가 말하고 싶으나 망설이는 듯했다.“말할 게 있으면 하거라. 우리 사이에 무슨 주저할 이유가 있느냐?”맹경운은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지금의 황제는 덕이 부족하고 공신을 해칩니다. 그리고 왕야의 죽음을 예상한 대신들은 이미 큰 불만을 품고 있지요. 요즘 황제는 조정 업무를 등한시하고 장생불사 약 연구에만 매달립니다. 심지어 태의들만 해도 몇 명이 이유 없이 사라졌다고 하지요. 황제가 불러들인 뒤,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오래가면 조정은 혼란에 빠지고 열국이 이를 틈타 움직일 것이며 결국 피해 보는 건 백성들이 될 겁니다. 열셋 째 황자가 대황자보다 낫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는 수년간 조정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인
열셋 째 황자가 부채를 접으며 눈빛을 번뜩였다.“잘못했다고요? 아버지께서 어리석을지 몰라도 본황자는 아닙니다! 우리 진국의 상왕께서 무고하게 당신 야랑국에서 죽임을 당했으니 그 책임은 야랑국에 있지요. 그런데도 당신은 감히 우리 진국 땅에서 제멋대로 행패를 부리고 백성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러니 본황자는 절대 그쪽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예정임은 열셋 째 황자를 바보 보듯 비웃었다.“따르지 않는다? 좋습니다. 본황자는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당신 같은 폐물이 어떻게 저를 막는지 한 번 보자고요.”그는 즉시 연노랑 치마를 입은 여자를 붙잡았다. 눈빛에는 음탕한 기운이 가득했다.“지금 당장 벗거라! 여기서 누가 감히 본황자를 막을 수 있는지 보자꾸나!”예정임의 도발적인 시선이 열셋 째 황자와 마주치자 그는 손짓 하나로 양쪽에서 달려온 긴 행렬을 불러들였다. 순성어사들이 성을 지키는 장수들과 함께 나타나 단단히 진을 치고 서자 현장은 숨조차 죽은 듯 고요해졌다.진국 백성들은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양쪽 병력의 숫자는 야랑국을 압도했다.이 상황에서 야랑국 사람들이 어떻게 설칠 수 있겠는가?연노랑 치마를 입은 여자는 겁에 질려 멍하니 서서 꼼짝하지 못했다.그러자 열셋 째 황자가 그녀를 향해 손짓했다.“오거라! 본황자가 있으니 아무도 너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여자는 갑자기 용기를 얻어 예정임의 손을 뿌리치고 달려와 열셋 째 황자 뒤에 숨었다. 그 순간, 백성들의 눈에 열셋 째 황자는 단연 위엄 있는 존재로 보였다.예전에는 오직 대황자만 눈에 띄었다. 그런데 오랜 세월 황릉에 묻혀 있던 열셋 째 황자가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졌을 거라고 누구 예상이나 했겠는가?“순성 장수들, 명을 받들거라!”열셋 째 황자가 갑자기 명령을 내리자 장수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예!”“야랑국 팔황자가 마을 사람을 능욕하고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오늘 감히 공공연히 우리 진국 백성을 괴롭혔으니 죽어도 마땅한 죄다! 모두 붙잡아라!”“예!”사십 명의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