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아티니스는 황제가 찾고 있는 그 마법사야.”
숨을 삼키는 클라루스를 향해, 세이런은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포르투릭스 대공가는 그녀를 어떤 위협으로부터든 지킬 거야. 그러니까 부탁한다. 황제와 노크스가 아티니스와 우리 가문을 의심하지 않도록 네가 도와줘.”
정적이 흘렀다.
방 안을 누르던 중압감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클라루스는 천천히 자리에 다시 앉았다. 오래도록 침묵하던
두 사람은 말을 타고 쉼 없이 달려, 가능한 한 빠르게 제국에 도착했다.황실의 문 앞에 이르렀을 때, 세이런이 아티니스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이며 낮게 속삭였다.“아티, 데런에게 말해 두었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대공작으로 가지 말고 마리카이드 후작가로 가. 아버지와 내가 없는 대공작보다 거기가 훨씬 안전할 거야.”그 말에 아티니스의 심장이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제발, 그런 일은 없기를—그녀는 두 손을 꼭 맞잡았다.‘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님과 세이런이 나 때문에 다치게 해서는 안 돼.’아티니스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짐했다.마치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황실에 들어서기도 전에 안내인이 나타나 고개를 숙였다.“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그를 따라 높고 긴 복도를 따라 걸을 때, 구두가 대리석 바닥에 닿는 소리가 음산하게 메아리쳤다.철컥.무거운 문이 열리며 차가운 공기가 알현실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황실의 알현실은 색을 잃은 듯 음울했다.그리고 그 한가운데—감금되었다던 가우디 대공이, 어디하나 다친 곳 없이 서 있었다.“세이런, 새아가…? 대공의 얼굴이 굳어졌다.“왜 여기에…?!”세 사람의 시선이 엇갈렸다.명백한 함정이었다. 가우디 대공의 시선이 곧장 황제 옆에 서 있던 노크스 후작에게로 향했다. 그의 눈빛이 살기로 번뜩였다. 당장이라도 후작의 목을 비틀어 버릴 듯한 분노였다.그 시선을 받은 노크스 후작은 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황제가 옆에 있다는 듯한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세이런의 눈빛 또한 얼음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자줏빛 눈동자에 짙은 어둠이 스며들었다.아티니스는 두 사람의 그 표정을 처음 보았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이미 이곳까지 들어와 버린 이상 그냥 돌아갈 수 없었다. 세이런은 곧장 몸을 움직여 아티니스가 황제의 시야에 잡히지 않도록 그녀를 등 뒤로 가렸다.낮고 무거운 발소리가 울리며 세이런과 아티니스는 대공의 옆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두 사람은 천천히 머
음악이 흐르고, 종이등 아래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 틈에서 마주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천천히 발을 맞췄다.아티니스는 즐거운 듯 환하게 웃고 있었고, 세이런은 그런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함께 춤을 추었다.시선에도, 생각에도, 마음에도— 그녀뿐인 채.‘아티. 나의 어두운 과거는 네가 평생 몰랐으면 좋겠어.’‘수많은 의사를 찾았었지만, 돌아오는 말은 늘 같았어. 고칠 수 없다, 방법이 없다. 그 말을 듣는 게 너무 싫었어. 또래보다 더디게 자라는 몸. 점점 힘을 잃어가는 육체. 날 보며 수군대는 시선들이, 어린 나에겐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어.’‘그래서 생각했었지. 그럴 바엔… 차라리 빨리 끝내는 게 낫지 않을까. 난 일부러 오러를 써 가며, 스스로 아픔을 불러들였어. 그러면 빨리 죽을 수 있을 줄 알았거든. 하지만 그럴수록 몸만 더 성장을 멈춘 듯 자라지 않았고 피폐해져만 갔지.’‘결국 죽지 못했어.’‘그날 분수대에 있었던 건,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을 피해, 세상 모든 시선을 피해 혼자일 수 있었던 날이었어. 분수대를 바라보며 생각하고 있었지. 얼마나 오래 얼굴을 물에 묻고 있어야 이 심장이 멈출까…?’‘그 순간, 네 목소리가 들렸어.’‘같이 분수대에 빠졌던 날. 네 눈동자를 마주친 순간, 나는 빠져나오지 못했어. 깊은 숲처럼, 숨 쉴 수 없을 만큼 고요하고 선명한 그 눈빛 속에— 나는 완전히 갇혀 버렸어.’‘나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진 너는, 나와 달리 너무나도 빛났어. 그래서 단 한 번만이라도, 다시 보고 싶었어.’‘수소문해서 널 찾았고,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렸어. 죽어가던 심장이 오랜만에 설렘을 느꼈어. 하지만 돌아오는 건 늘 거절뿐이었어. 남들과 다른 이 몸이 흉측해서, 네가 나를 거절한다고 생각했어.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어. 곧 죽더라도, 너의 그 환한 미소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었거든.’‘그래서 자해를 멈췄고, 먹어도 소용없을 줄 알면서도 몸에 좋다는 음식과 쓴 약들을 삼켰고, 포기했던 훈련도 다시 시작했어. 그
“오— 팀 5 커플, 아주 달아오르고 있네요!”사회자의 외침에 아티니스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얼굴을 붉혔다.“저, 이제 내려 주세요.”조금만 더— 안고 있을 수 있었는데.세이런은 사회자를 힐끗 노려보다가, 결국 아티니스를 조심스럽게 내려주었다.곧 사회자가 목소리를 높였다.“마지막 게임은 ‘영혼의 파트너 퀴즈’입니다!! 서로 질문에 동시에 답해 맞추지 못하면 탈락!!”현재 남은 팀은 단 두 팀, 팀 1과 팀 5. 먼저 팀 1이 첫 번째 질문을 통과했다.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티니스와 세이런에게로 쏠렸다.“첫 번째 질문! 두 사람의 첫 만남 장소는? 하나, 둘, 셋!”“분수대!”“분수대.”
“와-! 세이런! 이것 봐요!”처음 보는 축제에 아티니스는 아이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눈에 들어오는 것마다 신기하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알록달록한 종이등이 하늘을 수놓고, 달콤한 향이 골목마다 가득 퍼진 거리.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노래소리가 어우러진 날이었다.그저 흔한 축제일 뿐인데도 아티니스는 모든 것이 마냥 특별하고 신기한 듯 즐거워했다.그리고 세이런의 눈에는 그 어떤 장식보다도 그녀가 더 눈부시게 보였다.“와, 이건 뭔가요? 냄새가 너무 좋아요.”아티니스가 꼬치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자, 세이런은 망설임 없이 가게 주인에게 말했다.“이거 하나 주세요.”곧 건네받은 꼬치에는 노릇하게 구워진 닭고기와 채소가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불에 살짝 그을린 윤기가 은은하게 빛났고, 고소한 향이 바람을 타고 코끝을 간질였다.아티니스는 한입 크게 베어 물더니, 눈이 동그래졌다.
저택으로 돌아온 후, 세이런은 잠시 집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데런이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찾았어?”세이런이 묻자, 데런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번에 새로 고용한 정원사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기사들이 도착했을 땐, 이미 숨을 거둔 뒤였습니다. 독살로 보입니다.”데런의 보고에 세이런의 표정이 굳어졌다. 차가운 분노가 그의 눈동자를 가득 채웠다.“그 말은 노크스 후작이 우리의 결혼식 소식이 알려지기 전부터 이미 의심하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거군.”그가 한숨이 섞인 목소리로 내뱉었다.“그 자의 신분은?”“정원사라는 건 가짜였던 것 같습니다. 가족도 없고, 빈민가에서 데려와 신분을 위장시킨 것 같습니다. 진짜 그 이름을 가진 정원사를 찾아가 보니,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서류와 기록은 모두 진짜였지만, 사람만 바꿔치기되어 있었습니다.”“하—.”
젖은 흰 천이 살결에 바짝 달라붙어 세이런의 단단한 가슴과 선명하게 갈라진 복부의 근육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빗물에 젖은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물방울 하나하나가 지나치게 또렷해, 시선이 붙잡힌 채 쉽사리 떨어지질 않았다.‘어떻게… 몸이 저렇게 좋은 거지? 몸이 약하다면서….’“흠—, 언제 나를 덮치려나, 무섭운데.”세이런이 눈썹을 들어올리며 장난스럽게 물었다.“더, 덮치긴 누가 덮쳐요!”“엄청 뚫어지게 바라보길래.”“아, 아니거든요!”움찔하며 반박하는 그녀의 모습이 세이런의 눈에는 몹시 귀여워 보였다.쏟아지는 빗소리가 나뭇잎을 두드리는 사이, 차가운 공기가 두 사람의 젖은 피부를 스쳤다.아티니스의 몸이, 자각도 없이, 서서히 떨리기 시작했다. 그걸 알아챈 세이런은 잠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가 다시 그녀를 바라보며, 낮고 느리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