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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화. 회의 탁자

作者: Jino
last update 公開日: 2026-11-08 17:00:00

『오늘 일정: 10월 31일 금요일, 서진 본가 가족 회의』

이헌의 시선이 내 앞에서 멎었다. 나는 탁자 끝에 둔 젖은 손수건을 집어 들고 고개를 들었다.

탁자 건너 석진이 금색 손목시계를 봤다.

“이유를 물었다.”

이헌은 나를 보던 눈을 석진에게 돌렸다.

“해윤 부지 건으로 내부 감사를 요청합니다.”

석진의 안경 너머 눈이 가늘어졌다. 경란은 무릎 위에 모았던 손을 풀었다. 내 옆의 주원은 의자에 등을 붙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결혼 반대 이유가 감사라고?”

“이 결혼을 전제로 부지 관련 절차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절차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해윤이 빚을 갚지 못해서 협의하는 거다.”

“대출이 늘어난 과정과 부지 매각 절차를 함께 확인해 주십시오.”

회장은 만년필 뚜껑을 닫았다. 탁자에 닿는 소리가 났다.

“앉아서 해라.”

이헌이 앉았다. 내 맞은편에서 비어 있던 의자가 탁자 쪽으로 당겨졌다. 서류철 사이로 이헌의 접은 소매가 보였다.

나는 손수건을 탁자 가장자리로 옮겼다. 물을 먹은 모서리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걸 왜 지금 꺼내니.”

경란이 이헌을 봤다.

“애들 결혼 준비하는 자리잖아. 회사 일은 회사에서 하면 되지.”

“방금 형님이 해윤 부지 서류 일정을 결혼 준비에 넣으셨습니다.”

석진은 웃으며 앞에 놓인 종이를 넘겼다.

“일정이 겹치니 확인한 거야. 결혼식 전에 복잡한 일 끝내 주겠다는 뜻이고.”

“누구에게 복잡한 일입니까.”

탁자 밑에서 내 신발 앞코가 의자 다리에 닿았다. 나는 발을 조금 뒤로 뺐다.

이헌이 서류 한 장을 손끝으로 짚었다.

“혼인 일정 옆에 부지 의향서 제출 날짜가 있습니다. 따로 진행할 일이라면 이 표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네가 호텔 경영까지 살필 줄은 몰랐구나.”

“해윤 공장 부지는 호텔 소관이 아닙니다.”

석진이 넘기던 종이를 내려놓았다.

회장은 누구도 보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이헌이 일정표를 건넸다. 종이를 받는 회장의 손끝이 떨렸다. 나는 물이 남은 곳에서 회장 쪽 서류를 조금 밀어 냈다.

“의향서는 누가 받기로 했나.”

“실무진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석진의 대답은 빨랐다.

회장이 일정표를 내려다봤다.

“날짜를 누가 정했느냐고 물었다.”

석진이 은테 안경을 올렸다.

“제가 보고받고 승인했습니다.”

나는 손수건을 펴 남은 물을 눌렀다. 종이 아래까지 들어간 물은 없었다. 다만 일정표 끝에 내 손가락 자국이 남았다.

회장이 그 자리를 보고 내게 물었다.

“네 아버지도 아시나.”

“부지 의향서를 이날 내야 한다는 건 듣지 못했습니다.”

“나경아.”

석진이 처음으로 내 이름만 불렀다.

“어른들끼리 오가는 일을 네가 전부 알지는 못하지.”

“그래서 지금 확인하고 있습니다.”

손수건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물을 닦은 부분은 차가웠다.

“아버지께 직접 확인한 뒤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모르는 일을 알고 있다고 답할 수는 없습니다.”

주원이 내 앞에 놓인 빈 잔을 물기 없는 곳으로 옮겼다. 잔 밑바닥이 탁자에 닿았다.

“아버지, 확인하면 되는 일이잖아요.”

“넌 가만히 있어.”

“제 결혼 일정표예요.”

주원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저도 이 날짜는 오늘 봤습니다.”

경란이 주원의 팔을 눌렀다. 주원은 팔을 빼지 않았지만 말을 거두지도 않았다.

“나경 씨도 처음 들었다잖아요.”

석진이 입술을 다물었다. 이헌은 그 틈에 회장 앞으로 다른 종이를 밀었다.

“감사 범위를 적었습니다.”

처음부터 가져온 서류였다. 회장이 받아 들자 석진의 웃음이 없어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준비를 많이 했구나.”

“확인할 항목만 적었습니다.”

“밖에 있던 동안에도 집안 일에 관심이 많았어.”

“해윤 대출은 서진캐피털 업무입니다. 집안 일로 처리하면 안 됩니다.”

나는 이헌의 손을 봤다. 종이를 놓은 손이 탁자 위에 그대로 있었다.

회장이 종이를 읽는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났다가 멀어졌다. 문은 닫혀 있었다.

이헌과 나는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고개만 들면 눈이 닿았지만 나는 감사 항목이 적힌 종이의 뒷면을 봤다. 이 자리에서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 이헌뿐은 아니었다.

“대출 원본, 추가 대출 승인 기록, 담보 평가 자료.”

회장이 항목을 읽었다.

“원본까지 볼 이유가 있나.”

이헌이 대답하기 전에 내가 손수건을 내려놓았다.

“있습니다.”

석진이 나를 봤다.

나는 회장에게만 얼굴을 돌렸다.

“사본에서는 서명 가장자리가 뭉개집니다. 펜이 종이에 닿아 남긴 자국도 확인하기 어렵고요.”

“네가 봤느냐.”

“아버지 서명으로 된 자료를 봤습니다. 다른 서류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위조라는 뜻이냐?”

석진의 말이 들어왔다.

나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손수건에 눌려 있던 손가락을 폈다.

“그래서 원본 확인을 요청하는 겁니다. 사본만 보고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회장이 종이에서 눈을 들었다.

“어디가 다르던.”

“획이 이어지는 자리와 멈추는 자리입니다. 종이에 남은 눌림도 봐야 합니다. 감사팀에서 전문가에게 확인을 맡겨 주십시오.”

내가 찾은 흔적과 그 흔적을 증거로 인정하는 일은 달랐다.

석진이 의자 팔걸이를 두드렸다.

“책 고치는 아이가 금융 서류까지 판단하는 세상이 됐군.”

“판단해 달라는 게 아닙니다.”

이헌이 말했다.

“확인하게 해 달라는 겁니다.”

이헌의 눈이 잠깐 내 손에 머물렀다. 나는 젖은 손수건을 접었다. 손끝이 자꾸 어긋나 접힌 선이 맞지 않았다.

옆에서 주원의 손이 내려왔다.

“줘요.”

나는 고개를 돌렸다. 주원은 탁자 아래로 손을 내밀고 있었다.

“옷에 물 떨어져요.”

내 무릎에 떨어진 물방울을 그제야 봤다. 손수건을 넘기자 주원은 마른 귀퉁이가 바깥으로 오도록 다시 접었다. 경란이 보고 있었지만 별말은 하지 않았다.

회장이 감사 요청서를 탁자에 놓았다.

“감사를 하면 결혼은 왜 멈춰야 하지?”

이헌의 대답이 조금 늦었다. 나는 탁자 모서리 아래로 손을 내렸다.

“약혼을 이유로 대출 상환 기한을 연장했습니다. 이번에는 결혼 전에 부지 처분 서류를 받으려 합니다. 대출에 문제가 있다면 나경이 혼인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석진이 이헌을 보며 웃었다.

“나경이?”

경란의 시선이 내게 왔다. 나는 손을 무릎 위에 그대로 뒀다.

이헌은 호칭을 고치지 않았다.

“당사자 의사를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 며느릿감 걱정을 네가 참 세심하게 하는구나.”

“제가 질문받아서 답하는 겁니다.”

회장이 만년필을 들었다. 뚜껑을 열려다 멈추고 내 쪽을 봤다.

“네 생각은.”

“결혼 준비와 부지 처분을 따로 진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결혼은 하겠다는 거냐.”

주원의 손이 탁자 아래에서 멎었다. 손수건을 접던 움직임도 멈췄다.

나는 회장의 얼굴을 봤다.

“오늘은 해윤 서류부터 확인받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동의하지 않은 처분 날짜가 여기 적혀 있습니다. 그 날짜를 그대로 두고 결혼 준비를 계속할 수는 없습니다.”

“날짜 하나 고치면 될 일을 크게 만드는구나.”

석진이 말했다.

나는 일정표를 내 쪽으로 당겼다. 종이 끝을 엄지로 쓸자 복사한 면의 가장자리가 손에 닿았다.

“제 몫으로 표시된 칸에도 부지 의향서 제출이 적혀 있습니다. 저는 이 서류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경란이 몸을 기울여 표를 봤다. 석진은 종이를 가져가려다 회장이 손을 얹자 멈췄다.

“감사해.”

회장의 말에 석진이 손을 거뒀다.

“아버지.”

“캐피털 대출부터 부지 서류까지. 감사팀에 직접 보고하라고 해.”

“진행 중인 거래입니다. 지금 감사를 붙이면 밖에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밖에서 묻기 전에 안에서 보자는 거다.”

회장은 이헌에게 종이를 돌려줬다.

“네가 자료 넘겨라. 결론은 감사팀에서 내고, 내게 직접 보고해.”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경이 네가 본 것도 같이 내.”

“네. 사본과 확인한 위치를 정리해서 드리겠습니다.”

석진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이번에는 소리 내지 않고 웃었다.

“알겠습니다. 다만 해윤 쪽 자료도 빠짐없이 받아야겠지요. 우리 서류만 보고 끝낼 수는 없으니까요.”

“필요한 건 요청해.”

회장은 만년필을 손가락 사이에서 돌렸다.

“원본은 손대지 말고 보관해. 바꿔 끼우는 일 없게.”

나는 손가락을 오므렸다. 맞은편 이헌이 나를 봤다. 이번에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2초쯤 지났을 때 경란이 찻잔을 들었다.

나는 잔이 놓이는 곳으로 시선을 내렸다.

석진이 일정표를 모았다.

“결혼 준비는 예정대로 하겠습니다.”

“부지 서류 날짜는 빼.”

회장이 말했다.

“감사하는 동안 결혼을 이유로 도장 받지 마라.”

석진의 손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이헌은 더 요구하지 않았다. 무릎 위에 놓인 내 손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결혼을 멈추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 이 표에 따라 내야 했던 서류는 멈췄다.

탁자 밑으로 주원의 손이 다가왔다.

접힌 손수건이 내 손등에 닿았다. 나는 손을 펴서 받았다. 손수건의 마른 귀퉁이가 위로 올라와 있었다. 젖은 부분은 안쪽으로 접혀 있었다.

“여긴 안 젖었어요.”

주원이 낮게 말했다.

나는 손수건을 받아 무릎에 놓았다.

“고마워요.”

“주머니에 넣지는 말고.”

주원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탁자 위로 손을 올렸다. 흰색 휴대폰은 꺼내지 않았다. 주원은 앞에 놓인 일정표에서 부지 관련 칸을 접어 가렸다.

경란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양가 인사는 어떻게 하고.”

“그건 나중에 확인해.”

회장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려다 팔걸이를 짚었다. 이헌이 먼저 일어났지만 회장은 손을 들어 막았다.

“아직 일어날 수 있다.”

이헌은 한 걸음 물러났다. 회장이 문 쪽으로 가다가 돌아봤다.

“내가 모르는 서류가 더 있으면 이번에 다 내.”

석진은 고개를 숙였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문이 닫히고도 아무도 바로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손수건을 든 채 가방을 열었다. 갈색 가죽 안쪽에 따로 둔 봉투가 있었다. 손수건은 넣지 않고 가방 손잡이에 걸쳤다.

경란은 내 가방을 보다가 주원에게 말했다.

“차 같이 타고 가.”

“나경 씨한테 물어볼게요.”

“물어볼 게 뭐 있어.”

주원이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그건 제가 할게요.”

경란은 입을 다물었다. 석진은 서류철 모서리를 맞춰 탁자에 세웠다. 종이 끝이 가지런해질 때까지 두 번 내리쳤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에 남은 일정표를 집었다.

석진이 손을 뻗었다.

“그건 두고 가거라.”

“제게 주신 자료잖아요.”

“수정해서 다시 줄 테니.”

“수정 전 것도 갖고 있겠습니다. 제가 내야 한다는 서류가 적혀 있으니까요.”

석진이 내 손에 든 종이를 내려다봤다. 나는 접지 않고 가방 안에 넣었다.

이헌은 탁자 반대편에 서 있었다. 내게 가까이 오지 않았다. 경란이 의자를 밀어 넣는 동안 이헌의 손이 의자 등받이에 머물렀다.

나는 가방 손잡이를 쥐었다. 이헌의 눈이 손잡이에 걸린 손수건을 지나 내 얼굴에 닿았다.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이헌은 잡고 있던 의자에서 손을 뗐다.

“감사 자료는 제가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남들 앞에서 쓸 수 있는 말이었다.

“네. 준비해 두겠습니다.”

경란이 먼저 문을 열고 나갔다. 주원은 문 옆에 서서 내가 나가기를 기다렸다. 문밖에서 경란이 주원을 불렀다. 주원이 복도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탁자 끝을 돌아 나왔다. 이헌 쪽으로 곧장 걸으면 의자 사이를 지나야 했다. 대신 빈 잔이 놓인 쪽으로 돌아 문을 향했다.

석진이 서류철을 옆구리에 끼고 일어났다.

내가 통로를 비키자 석진이 바로 옆으로 지나왔다. 소매가 닿을 만큼 가까워 나는 가방을 몸 앞으로 당겼다. 석진은 열린 문 쪽을 보며 걸음을 늦췄다.

“너도 같이 묶여 들어갈 거다.”

(8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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