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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해윤 이사회

作者: Jino
last update 公開日: 2026-11-08 19:00:00

『오늘 일정: 11월 4일 화요일, 해윤 이사회』

편지를 넣을 보존 봉투를 접었다.

마지막 줄의 이헌 이름까지 한 번 더 읽고 편지를 봉투에 넣었다. 작업대에 놓인 주주명부 사본에는 내 이름이 있었다. 아버지가 어제 회사 도장을 받아 온 서류였다.

다은이 내 가방 옆에 확대경을 놓았다.

“이것도 가져가. 서류 본다며.”

“오늘은 글자 읽으러 가는 건데.”

“작은 글자는 글자 아니냐.”

나는 확대경을 천집에 넣었다. 가방 안쪽에는 주식 증서 사본과 오늘 회의 자료가 있었다. 원본은 작업실 서랍에 두고 잠갔다.

다은이 내 소매에 붙은 실을 떼었다.

“전화 못 받아도 돼. 손님한테는 내가 말할게.”

“급한 건 문자 줘.”

“알았어. 밥 거르지 말고.”

가방을 들자 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이헌에게 온 문자였다.

『공장에 먼저 와 있어요. 투자 검토 자료만 전달하고 나갈 겁니다.』

나는 답장을 쓰다가 멈췄다. 편지에 적힌 일을 물어볼 때마다 이헌은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오늘은 그 말을 꺼낼 시간이 없었다.

『끝나고 연락할게요. 회의는 제가 들어갈게요.』

답은 내가 계단을 내려가기 전에 왔다.

『네. 기다릴게요.』

◈

공장 계단에는 젖은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난간을 잡고 올라가자 염 반장이 걸레를 밀고 있었다. 작업복 바지 끝이 젖어 있었다.

“밑에서 손 씻고 올라온 놈이 물을 흘렸어. 조심해.”

“제가 할게요.”

“오늘 여기서 네 일은 이게 아니잖아.”

염 반장이 걸레를 벽에 세웠다. 가방에서 삐져나온 서류철을 보고는 회의실 쪽으로 턱을 들었다.

“안에 벌써 와 있어. 들어가기 전에 아버지부터 봐라.”

복도 끝 사무실 문이 열렸다. 아버지가 나오다가 나를 보고 멈췄다.

“왔니.”

“네. 명부 사본 잘 받았어요.”

아버지는 내 가방을 한 번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네가 오는 건 안다. 주주가 의견을 듣겠다고 했다고 전했어.”

“발언도 요청했어요.”

“그것도.”

아버지 손에는 회의 자료가 들려 있었다. 모서리가 접혀 있었다. 나는 손을 뻗었다가 거뒀다. 오늘 아버지가 쥐고 있어야 할 종이였다.

사무실 안쪽에서 이헌이 나왔다. 소매를 두 번 접은 셔츠 차림이었다. 책상에는 투자 검토 자료가 남아 있었고, 의자 등에는 재킷이 걸려 있었다.

“윤나경 씨.”

아버지 앞이라 이헌은 내 이름을 다 불렀다.

나는 문턱에서 멈췄다. 이헌과 내 사이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자료 주러 오셨다고 들었어요.”

“네. 회사 쪽에서 확인할 내용이 있어서요.”

아버지가 회의실을 돌아봤다.

“나는 먼저 들어가마. 금방 와라.”

문이 닫힌 뒤에도 우리는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회의실은 복도 하나 건너에 있었다.

이헌이 책상 위 봉투를 내 쪽으로 밀었다.

“오늘 매각안에 제 투자금을 넣어 놨더군요.”

“해윤이 받을 돈처럼요?”

“아직 계약도 안 했는데 잔금 마련 항목에 써 놨어요. 정정 요청했습니다.”

나는 봉투를 열었다. 이헌의 투자 검토 조건이 적혀 있었다. 종이 생산 라인에 쓰는 돈이며 부지 처분과 별개라는 문장에 표시가 되어 있었다.

“이거 회의에서 써도 돼요?”

“그러려고 남겼어요.”

서류를 받는 사이 손등이 닿을 거리까지 가까워졌다. 나는 봉투를 바로 당기지 않았다. 이헌도 손을 거두지 않은 채 나를 봤다.

“끝나고 전화할게요.”

“급하게 하지 말아요.”

문밖에서 구두 소리가 멎었다.

나는 봉투를 가방에 넣었다. 이헌이 먼저 물러나 재킷을 들었다. 문이 열리자 회의 자료를 든 직원이 고개를 숙였다.

“대표님이 들어오시랍니다.”

“지금 갈게요.”

나는 이헌보다 먼저 문을 나섰다.

◈

회의 탁자에 앉은 이사들이 내 쪽을 봤다.

아버지가 입구에서 가까운 의자를 빼 주려 하자 내가 직접 당겼다. 가방은 무릎 옆에 두었다. 탁자 가운데에는 부지 도면이 펼쳐져 있었다.

회색 머리의 이사가 자료를 덮었다.

“나경 씨가 회사 일에도 관심이 있었나?”

“제 이름으로 된 주식이 있어서 왔습니다.”

나는 주주명부 사본을 꺼냈다. 아버지 옆에 앉은 이사가 안경을 고쳐 썼다.

“연옥 씨 지분 말인가?”

“지금은 제 명의로 30퍼센트입니다.”

종이를 넘기던 손들이 멈췄다.

한 이사가 아버지를 봤다.

“증여가 끝난 거였어요?”

“오래전에 끝났습니다. 명부에도 그대로 있고요.”

아버지는 내 쪽을 보지 않고 답했다. 나는 가져온 사본을 탁자에 놓았다.

“저는 이사가 아니라 표결할 수 없다는 건 압니다. 다만 오늘 안건에 의견을 내고 싶습니다.”

안쪽에 앉은 이사가 펜을 내려놓았다.

“들어 봅시다. 주주가 반대하는데 듣지도 않고 끝낼 일은 아니니까.”

그때 옆자리 이사가 양복 주머니를 뒤졌다. 가슴 주머니를 보고, 빈 의자 아래도 살폈다.

“돋보기를 어디다 뒀지.”

“사무실에 두고 오셨습니까?”

“아까까지 있었는데.”

나는 가방에서 확대경을 꺼냈다.

“이걸로 보셔도 될까요?”

이사는 확대경을 받아 종이 위로 내렸다.

“글자가 다 보이네.”

이사는 작게 웃고 도면 아래의 설명부터 읽었다. 나는 서류철을 폈다. 확대경 아래에서 매각 대상 면적과 담보 내역이 커졌다.

아버지가 회의 시작을 알렸다.

담당 이사가 부지 매각안을 설명했다. 대출 상환을 위해 매각 절차를 시작하고, 공장은 인수자와 협의해 일정 기간 운영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마지막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공장 운영 기간은 어디 적혀 있나요?”

담당 이사가 자료 뒤쪽을 짚었다.

“그건 매수자하고 협의해야지.”

“직원 64명이 언제까지 일할 수 있는지 정하지 않은 채 절차부터 시작하는 건가요?”

“당장 문을 닫겠다는 뜻은 아니야. 빚을 막아야 공장도 있어.”

“그래서 상환표도 봤습니다.”

나는 받은 자료의 가운데를 펼쳤다. 매각 대금 사용 계획 옆에 이헌이 보내 준 문서를 놓았다.

“이 투자금은 부지 매각과 별개입니다. 아직 들어온 돈도 아니고요.”

아버지가 두 문서를 나란히 당겨 봤다.

담당 이사가 입술을 눌렀다.

“그쪽에서 투자하겠다고 했잖아.”

“종이 라인에 투자하겠다고 했습니다. 매각 비용을 메우겠다는 게 아니고요.”

“그 항목은 빼면 됩니다.”

맞은편 이사가 펜으로 줄을 그었다. 나는 다음 장을 넘겼다.

“매각 대금에서 갚는 빚도 확인해야 합니다.”

“75억 원. 그건 다 아는 금액이고.”

“원금 40억 원 외에 붙은 추가 대출 35억 원은 다툼이 있습니다. 서진 쪽에서도 내부 감사를 시작하기로 했어요.”

“감사한다는 말만 믿고 상환을 안 할 수는 없지.”

“안 갚겠다는 게 아닙니다. 확인되지 않은 서류를 기준으로 공장부터 넘기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확대경을 빌린 이사가 도면에서 눈을 들었다.

“그럼 오늘 전부 보류하자는 건가?”

“확인할 항목을 정하고 보류해 주세요.”

나는 준비한 종이를 가운데로 밀었다. 매각 가격 산정 근거, 고용 유지 조건, 추가 대출 원본 대조가 적혀 있었다.

담당 이사가 내 종이를 읽더니 의자를 당겼다.

“돈 빌려준 쪽이 기다려 주겠어요? 기한은 다가오는데 확인만 하다가 놓치면 누가 책임집니까.”

나는 손을 무릎에 내렸다가 다시 탁자 위에 올렸다.

“오늘 통과시키면 누가 책임지나요?”

이사가 나를 봤다.

“도장을 찍는 분들이요. 그래서 여쭙는 겁니다. 이 자료로 결정하실 수 있는지.”

아버지가 부지 도면을 접었다. 종이가 두꺼워 접힌 선이 완전히 눌리지 않았다.

“말씀대로 시간은 없습니다.”

아버지는 담당 이사를 보고 말했다.

“그런데 이대로 결의하면 나도 서명을 못 하겠습니다. 투자금부터 잘못 올라왔어요.”

회의실에서 펜 뚜껑 닫는 소리가 났다.

◈

탁자 끝의 이사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나경 씨. 지분이 30퍼센트라고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닌 거 알지요?”

“네.”

“부지 처분이라고 전부 주주총회 사항도 아닙니다. 범위를 따져 봐야 하고.”

“그래서 이사회에 와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검토 없이 제 뜻대로 하시라는 게 아니에요.”

나는 준비해 온 마지막 종이를 꺼냈다.

“필요하면 주주총회 소집도 정식으로 요청하겠습니다. 이 부지가 해윤 영업에서 어떤 비중인지, 매각 뒤에 회사가 뭘 하는지 주주들에게 설명해 주세요.”

이사는 종이를 가져가지 않고 나를 봤다.

“연옥 씨도 이 자리에 오면 꼭 자료부터 달라고 했는데.”

아버지가 물잔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나경이가 요청한 겁니다.”

나는 아버지를 봤다. 아버지는 회의 자료의 투자금 항목을 가리켰다.

“틀린 수치를 고치고, 빠진 조건을 받아서 다시 합시다.”

담당 이사가 탁자에 팔을 기댔다.

“기다리는 동안 채권자가 조치에 들어가면요?”

“그쪽에도 확인 중인 사항을 알리겠습니다.”

내가 답하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가 공문을 보내겠습니다.”

확대경을 빌린 이사가 고개를 들었다.

“여기, 매각 뒤 생산 설비 처리는 추후 협의라고 돼 있네. 땅만 파는 게 아니잖아.”

담당 이사가 그 줄을 찾아 손가락을 댔다.

“설비를 옮기든 임대를 하든 정해야 합니다.”

“그게 있어야 가격도 판단하지. 나는 보류에 찬성해요.”

안쪽에서 다른 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의견을 차례로 물었다. 나는 펜을 들지 않고 손을 모았다. 내 앞에는 결의서가 없었다.

담당 이사는 끝까지 반대했다. 나머지 이사들이 보류에 동의하자 기록을 맡은 직원이 문장을 읽었다.

“부지 매각안은 자료 보완 후 재심의. 보완 사항은 매각 가격 산정 근거와 고용 유지 조건, 담보 채무 확인, 생산 설비 처리 계획입니다.”

“투자금 항목 정정도 넣어 주세요.”

내 말에 직원이 한 줄을 더 적었다.

아버지가 기록을 확인하고 펜을 놓았다.

“오늘 매각안은 보류하겠습니다.”

나는 그제야 가방 위에 얹혀 있던 손을 내렸다. 손바닥에 서류철 모서리 자국이 남아 있었다.

회의가 끝나자 확대경을 빌린 이사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고맙네. 덕분에 작은 글씨까지 봤어.”

“계속 쓰셔도 돼요. 다음에 받을게요.”

“아니야. 쓰는 물건은 주인한테 있어야지.”

이사는 확대경을 천집에 넣어 건넸다. 일어서다가 웃옷 안주머니를 짚더니 돋보기를 꺼냈다.

“여기 있었네.”

나도 웃으며 확대경을 가방에 넣었다. 이사는 돋보기를 끼고 내가 낸 요청서를 다시 펼쳤다.

“이건 두고 가요. 다음 자료 받을 때 확인하게.”

나는 사본을 한 장 더 꺼내 드렸다.

◈

아버지는 다른 이사들을 보내고 회의실로 돌아왔다.

나는 기록 사본을 받아 누락된 항목이 없는지 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준비 많이 했구나.”

“다은이가 글자 작은 것도 챙기라고 했어요.”

아버지가 부지 도면을 말아 고무줄을 끼웠다.

“막았다고 끝은 아니다.”

“알아요. 보완 자료 받으면 저도 볼게요.”

“회사에서 보내게 하마.”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이헌에게 쓰려던 문장이 화면에 남아 있었다. 지우고 짧게 적었다.

『매각안은 보류됐어요. 잘못 들어간 투자금 항목도 고쳤고요.』

전송한 뒤 가방을 닫았다. 아버지가 탁자에 남은 물잔을 쟁반으로 옮겼다.

나는 회의 자료를 챙겨 일어났다. 문 앞에 직원이 서 있었다. 봉투를 가슴에 붙여 들고 있어 지나갈 자리가 좁았다.

“대표님, 방금 온 겁니다.”

아버지가 쟁반을 내려놓았다.

직원은 봉투를 내밀면서 회의 탁자를 봤다. 서진캐피털에서 보낸 등기였다. 아버지가 봉투 끝을 뜯다가 종이에 손이 걸렸다.

“제가 꺼낼게요.”

나는 찢어진 입구를 벌려 공문을 뺐다. 첫 장 뒤에 채무 내역이 붙어 있었다. 아버지가 내 옆으로 왔다.

제목 아래에는 약혼이나 부지 매각에 관한 말이 없었다. 채무액과 이행 기한만 따로 적혀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가방 안에서 나는 소리를 두고 마지막 줄을 읽었다.

『채권 회수 통보. 본 통보 수령일로부터 일주일 이내 상환을 요구합니다.』

(8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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