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계산대 밑에서 상자가 나왔다. 5월 셋째 주 목요일, 소정이 계산대 밑을 치우다가 꺼냈다. 종이 상자였다. 먼지가 앉아서 손자국이 났다.
"사장님, 이거 뭐예요?"
보라는 솥을 젓다가 돌아봤다. 상자를 보고 알았다. 아버지 외상장부였다. 돌아가시고 나서 계산대 밑에 넣어 두고 5년 동안 펴 본 적이 없었다. 뚜껑을 열 일은 있어도 장부를 펼 일은 없었다. 보라는 외상을 안 받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로 외상은 끝났다.
"장부야. 아빠 거."
"열어 봐도 돼요?"
"이따가. 손님 빠지면."
8시에 복순 할머니가 왔다. 솥 앞 둘째 자리에 앉아서 앞치마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명함만 한 종이. 할머니는 그걸 두 손으로 냈다. 보라도 두 손으로 받아서 계산대 옆 통에 넣었다. 통에는 그런 종이가 열 장쯤 들어 있었다. 소정은 그 통을 처음 봤다. 한 달 넘게 있으면서 처음 봤다. 계산대 옆에 늘 있던 통이었다. 소정이 그걸 보고 뭐냐고 물으려다가 할머니 앞이라 안 물었다. 할머니는 국밥을 받고 "오늘은 내 돈으로 먹는 거다" 했다. 보라가 "네" 했다. 할머니 돈이 아니었다. 그래도 할머니 돈이었다. 둘 다 맞았다.
손님은 9시에 빠졌다. 지운은 솥 앞자리에서 두 그릇을 먹고 "누나, 잘 먹었습니다" 하고 걸레를 들고 있었다. 보라는 "금지" 했다. 비번이었다. 보라는 상자를 창가 식탁에 올렸다. 뚜껑을 열었다. 공책이 수북했다. 다 똑같은 줄 공책이었다. 표지에 아버지 글씨로 «외상», 그 밑에 매직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하나. 그게 다였다. 몇 년 것인지는 안 적혀 있었다. 아버지는 그런 걸 안 적었다. 순서는 아버지 머리에 있었다.
보라는 한 권을 폈다. 아버지 글씨가 줄줄이 있었다. 눌러 쓴 글씨.
«황씨네 국밥 2 — 갚음»
«방앗간 — 떡으로»
«택시 김 씨 국밥 1»
«택시 김 씨 국밥 1 — 또»
«생선 미자 국밥 3 — 갈치로 받음»
소정이 옆에서 읽다가 웃었다.
"다 아는 사람들이네요."
"시장이니까."
"갈치로 받음이 뭐예요."
"돈 대신 갈치 받았다는 거지. 미자 이모가 돈이 없을 때 그랬어."
"그래도 돼요?"
"아빠는 됐어."
황복례가 멸치 상자를 들고 들어오다가 장부를 보고 상자를 내려놓았다. 와서 첫 줄을 읽었다.
"황씨네 국밥 2, 갚음. 봐라. 내가 갚았지."
"이모가 갚았는지 아빠가 갚음이라고 적었는지 몰라요."
"내가 갚았어. 멸치로."
"멸치로 받음이라고는 안 적혀 있는데요."
황복례는 장을 넘겼다. 넘기다가 어떤 이름에서 멈추고 "이 인간은 아직도 안 갚았네" 했다. 누군지 보라는 알았다. 창고에서 담배 피우는 그 하나였다. 황복례는 그 장을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창가에 가서 앉았다. 국밥을 시켰다. 시키고 나서 "니 아빠는 받을 생각이 없었어" 했다. 보라는 알았다고 했다.
소정이 다음 장을 넘겼다. 이름이 계속 나왔다. 보라가 아는 이름, 모르는 이름. 갚음이라고 적힌 것, 안 적힌 것. 안 적힌 것이 더 많았다. 보라는 그걸 보다가 공책을 덮었다. 아버지는 받을 생각으로 적은 게 아니었다. 적어 두면 먹은 사람이 덜 미안하니까 적었다. 보라는 그걸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알았다.
◎
지운은 뚝배기를 들고 설거지통으로 가다가 창가 식탁 옆을 지났다. 보라는 둘째 권을 펴고 있었다. 지운이 지나가는 걸 보라는 안 봤다. 보라는 장부를 봤다.
소정이 봤다.
보라가 고개를 들었을 때 지운은 설거지통 앞에 있었다. 뚝배기를 내려놓고 물을 틀고 있었다. 소정이 창가 식탁 옆에 서서 지운 등을 보고 있었다. 보라가 "왜" 했다. 소정은 "아뇨" 했다. 아뇨 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뭐."
"나중에요."
소정은 그릇을 닦으러 갔다. 보라는 장부를 봤다. 둘째 권과 셋째 권 사이에 뭔가 끼여 있었다. 종이 뭉치였다. 고무줄로 묶여 있었다. 노란 고무줄. 아버지 거였다.
뭉치를 풀었다. 작은 종이들이었다. 명함만 한 크기. 보라가 찍은 거였다. 위에 «보라국밥», 가운데 «국밥 한 그릇», 아래에 가게 도장. 보라는 이걸 쿠폰이라고 불렀다. 아버지는 국밥표라고 불렀다.
"사장님, 이건 뭐예요? 아까 할머니가 낸 거랑 똑같은데요."
"쿠폰. 이거 들고 오면 국밥 한 그릇."
"누가 사요?"
"몰라."
"네?"
보라는 뭉치를 세었다. 열두 장이 남아 있었다. 지난달에 찍은 것 중에 경로당에 안 갖다 둔 거였다. 남는 쿠폰은 늘 이 상자에 던져 넣었다. 장부는 안 펴도 상자는 열었다.
"매달 25일쯤 되면 돈이 들어와. 가게 계좌로. 이름이 «밥값»이야. 그 돈만큼 쿠폰을 찍어서 경로당에 갖다 둬. 어르신들이 알아서 나눠 가져. 방앗간 할머니도 그걸로 와."
"할머니는 원래 안 내시잖아요."
"그래도 쿠폰 들고 와. 들고 오면 받아."
"누가 보내는데요?"
"모른다니까. 처음 들어왔을 때 은행에 물어봤는데 안 알려 줘. 익명이래. 그래서 나는 익명 손님이라고 해."
"몇 년째요?"
"몇 년 됐어."
소정이 쿠폰 한 장을 들어 봤다. 도장이 조금 번져 있었다.
"사장님, 그거 적지 않아요? 적으면 돈 아니에요?"
"적지 않아. 매달 그만큼 보내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적지 않은 거야."
보라는 뭉치를 다시 고무줄로 묶었다. 아버지 고무줄이 늘어나서 두 번 감아야 했다. 설거지통 쪽에서 물소리가 멈췄다가 다시 났다. 보라는 그쪽을 안 봤다.
◎
10시에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였다. 보라는 솥 뒤로 가서 받았다. 청솔리 전화는 늘 신호가 나빴다. 엄마 목소리가 끊겼다 이어졌다.
"장사는."
"해요."
"날 더워진다. 솥 조심해라."
"알아요."
"알긴 뭘 알아. 니 아빠도 안다고 하다가 여름에 솥 넘겨서 손 덴 게 세 번이다."
"그래서 아빠가 솥 가장자리를 짚었어요?"
"짚어서 덴 거야. 뜨거운 데를 자꾸 짚으니까."
"그런데 왜 자꾸 짚었대요."
"몰라. 그 사람은 뜨거운 걸 좋아했어."
"그건 아빠고."
"니가 아빠 딸이잖아."
보라는 대답을 안 했다. 엄마는 그 사이에 감자 얘기를 했다. 올해 감자가 일찍 들었다고 했다. 상자로 보내 준다고 했다. 보라는 알았다고 했다. 2층 얘기는 안 했다. 하면 길어졌다. 엄마는 황복례와 통화하는 사이였다. 안 해도 알 거였다. 알면서 안 묻는 거면 그것도 엄마다웠다.
"밥은 먹고 하냐."
"국밥집인데요."
"국밥집 딸이 국밥 안 먹는 거 내가 모를 줄 아냐."
"먹어요."
"서서 먹지 말고 앉아서 먹어."
전화가 끊겼다. 신호 때문인지 엄마가 끊은 건지 몰랐다. 보라는 휴대폰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서서 먹지 말고 앉아서 먹으라는 말은 엄마가 아버지한테 하던 말이었다. 아버지는 안 앉았다. 보라도 안 앉았다. 지난달 비 오던 날에는 셋이 서서 먹었다. 「앉으면 손님이지.」
지운이 설거지를 끝내고 행주를 널었다. 그러고 솥 옆에 서서 보라를 봤다.
"어머니십니까."
"네."
"뭐라고 하십니까."
"솥 조심하래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운 씨가 왜요."
"솥이 뜨거워서요."
보라는 솥을 저었다. 지운이 솥 뚜껑 가장자리를 손으로 짚었다. 뜨거운 데를. 짚고 안 뗐다. 보라는 "앗" 소리를 기다렸다. 안 났다. 뜨거운 데를 잘 잡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아버지는 매번 "앗" 했다. 지운은 안 했다. 그게 다른 점이었다. 다른 점이 있어서 보라는 조금 괜찮았다.
◎
11시에 소정이 앞치마를 풀었다. 풀고 보라 옆으로 왔다. 지운은 2층에 올라가고 없었다. 둘째, 넷째.
"사장님. 아까 저분이요."
"응."
"장부 보고 손이 멈췄어요. 뚝배기 들고 가다가. 식탁 옆에서."
"뚝배기 뜨거웠겠지."
"행주로 잡고 있었어요."
보라는 솥을 저었다. 소정은 가방을 멨다.
"장부 표지만 봤는데요. «외상»이라고 적힌 것만. 그런데 멈췄어요. 한 2초요."
"그래서."
"그냥요. 보셔야 할 것 같아서요."
"내가 뭘 봐."
"모르겠어요. 사장님이 보셔야 하는 거예요."
소정은 갔다. 보라는 창가 식탁의 장부를 봤다. «외상»과 계절만 적힌 표지들. 보라는 그걸 상자에 도로 넣었다. 넣다가 셋째 권을 펴 봤다. 이름들. 갚음, 안 갚음, 떡으로, 갈치로. 2층 사는 사람 이름은 없었다. 있을 리가 없었다. 2층 사는 사람은 한 달 반 전에 처음 온 사람이었다.
「2초.」
보라는 상자 뚜껑을 닫았다.
◎
3시에 문을 닫고 바닥을 밀었다. 바닥을 밀고 나서 보라는 상자를 다시 열었다. 다 꺼내서 창가 식탁에 늘어놓고, 안에 적힌 날짜와 이름으로 순서를 맞췄다. 해가 안 적혀 있어서 한나절이 갔다. 맞추고 보니 갚음이 거의 다인 권은 몇 권 안 됐다. 나머지는 안 갚음이 더 많았다. 보라는 안 갚음이 많은 것들을 한 아름 들고 뒷문 옆 폐지 상자 앞으로 갔다. 폐지는 토요일에 나갔다. 황씨네 멸치 상자가 제일 많이 나갔다. 받을 생각 없는 장부를 5년 더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계단에서 소리가 났다. 보라는 세지 않았다. 뒷문 쪽을 보고 있었다.
"사장님."
지운이 계단 밑에 서 있었다. 보라 손에 든 장부를 보고 있었다. 한 아름. «외상».
"그 장부, 버리지 마세요."
보라는 장부를 든 채로 돌아섰다.
"왜요?"
지운은 대답을 안 했다. 반 박자가 아니었다. 반 박자보다 길었다. 보라는 그 긴 걸 세다가 그만뒀다. 지운은 장부를 보고 있었다. 보라를 안 보고 장부를 봤다.
"……그냥요."
보라는 폐지 상자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그냥이라는 말이었다. 보라가 못 이기는 말. 지운은 그걸 알고 쓴 게 아니었다. 알고 쓴 거면 더 못 이겼을 거였다. 보라는 장부를 안고 창가 식탁으로 돌아갔다. 맞춰 놓은 순서대로 상자에 넣었다. 뚜껑을 덮었다. 덮으면서 소정 말이 생각났다. 사장님이 보셔야 하는 거예요. 뭘 보라는 건지 보라는 아직 몰랐다. 상자를 계산대 밑에 도로 밀어 넣었다. 5년 들어 있던 자리였다.
지운은 그걸 다 보고 나서 걸레를 집었다. 바닥은 보라가 벌써 밀었다. 지운은 그래도 닦았다. 닦는 손이 평소보다 느렸다.
(9화 끝)
기일에는 가게를 닫았다. 5년 동안 그랬다. 유리문에 종이를 붙였다. «오늘 쉽니다.» 그 종이는 한 해에 한 번만 붙었다.새벽 4시 50분에 보라는 그래도 솥 앞에 섰다. 불은 안 올렸다. 뚜껑만 열었다. 어제 끓인 국물이 식어서 위에 기름이 굳어 있었다. 보라는 그 솥을 보고 작게 말했다. 매일 하는 그 말을. 오늘은 그 말 뒤에 "다녀올게" 하나가 더 붙었다.보온통에 국밥을 담았다. 두 그릇. 밥 따로, 국물 따로. 청솔리까지 두 시간이면 식을 거였다. 식어도 국밥이었다. 어떤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지운이 계단을 내려왔다. 셋째 계단을 넘었다. 검은 셔츠에 검은 바지였다. 보라도 검은 옷이었다. 둘이 가게 안에 서 있으니까 가게가 상갓집 같았다. 보라는 그 생각을 하고 보온통 뚜껑을 세게 닫았다."비번 맞아요?""성준이랑 바꿨습니다.""그 떠버리가 바꿔 줬어요?""소정 씨한테 잘 보이고 싶다고요."보라는 보온통을 들었다. 지운이 받아 들었다. 보라는 안 줬는데 지운 손에 가 있었다. 그 손이었다. 손등 반이 다른 색인 손.휴대폰이 울렸다. 소정이었다. «사장님, 잘 다녀오세요. 가게는 제가 한 번 들여다볼게요.» 닫은 가게를 뭘 들여다본다는 건지 몰랐다. 보라는 «고마워» 하고 보냈다. 짧은 답이었다. 보라 문자는 늘 그랬다.◎첫차는 6시였다. 터미널까지 걸었다. 시장은 아직 셔터가 내려와 있었다. 황씨네 앞을 지나는데 셔터 밑으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황복례가 안에서 "다녀와라" 했다. 셔터를 안 올리고 말했다. 보라는 "네" 했다. 지운이 고개를 숙였다. 셔터한테.터미널 매점 앞에서 지운이 가방을 열어 보였다. 소주 한 병이 들어 있었다."산소에 뭘 가져가는지 몰라서요. 사장님이 저녁에 한 잔씩 하셨
8월 첫 토요일 밤 9시에 «퇴근.»이 왔다.보라는 가게 안에 있었다. 닫은 지 여섯 시간이 지난 가게였다. 솥에는 국물이 두 그릇 남아 있었다. 남긴 거였다. 보라는 «국밥 남았음» 하고 보냈다. 점은 안 찍었다. 저쪽은 찍고 이쪽은 안 찍는 게 이제 보통이었다.야시장 밤 뒤로 일주일이 갔다. 보라는 그날 밤 둑길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돌아왔다. 지운이 뒤에서 따라왔다. 둘 다 말을 안 했다. 가게에 오니까 국자가 바닥에 그대로 있었고, 솥은 황복례가 뚜껑을 덮어 놨고, 소정이 돈통을 안고 앉아 있었다. 그 뒤로 일주일 동안 시장 사람들은 보라를 볼 때마다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황복례도 그랬다. 황복례가 입을 닫는 건 국밥 앞에서뿐이었는데, 이번 주는 보라 앞에서도 닫았다.지운은 똑같이 왔다. 당번 다음 날 5시 40분, 두 그릇. 비번 날 설거지. "누나, 잘 먹었습니다." 똑같이. 보라는 똑같이 "누나 아니에요" 했다. 그 말이 이번 주에는 잘 안 나왔다.보라는 일주일 동안 세 번 물으려고 했다. 뭘 갚는다는 건지. 한 번은 솥 앞에서, 한 번은 설거지통 앞에서, 한 번은 계단 밑에서. 세 번 다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소정이 수요일에 "사장님, 왜 안 물어봐요" 했다. 보라는 "뭘" 했다. 소정은 "뭘, 이라뇨. 시장 사람들이 다 궁금해하는 그거요" 했다. 보라는 "물어서 나올 거면 벌써 나왔어" 했다. 소정은 "그래도 물어봐야 나오죠" 했다. 보라는 파를 썰었다.「물어서 나올 거면.」그렇게 믿고 넉 달을 안 물었다. 믿은 게 아니라 무서웠는지도 몰랐다. 나오면 뭐가 나올지.9시 20분에 유리문이 열렸다. 지운이 들어왔다. 훈련복 차림이었다. 땀 냄새가 났다. 두 그릇 자리에 앉았다. 보라는 한 그릇을 떴다. 뚝배기를 돌리고, 숟가락을 세우고, 세 번."늦었네요.""훈련이 길
야시장은 한 해에 하루였다. 7월 마지막 토요일 저녁. 상인회에서 골목에 전구 줄을 걸고, 가게마다 좌판을 밖으로 냈다. 아버지 때부터 보라국밥은 그날 솥을 골목으로 내놨다. 솥째로. 종이 그릇에 국밥을 담아 팔았다. 한 해에 하루만 보라국밥이 저녁 장사를 했다.새벽에 보라가 지운한테 말했다. 두 그릇째를 먹을 때였다."오늘 야시장이에요. 저녁에 솥 내놔야 돼요.""네.""솥 무거워요. 상인회에 사람 불러야 되는데.""제가 들겠습니다.""혼자 못 들어요.""성준이 옵니다.""벌써 불렀어요?""지난주에요."보라는 지난주에 야시장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지운이 어디서 들었는지는 안 물었다. 시장에서는 뭐든 다 들렸다.솥을 옮기는 게 일이었다. 아버지 살아 있을 때는 아버지와 황씨네 남자들이 들었다. 아버지 돌아가신 뒤로는 상인회 젊은 사람들을 불렀다. 올해는 안 불렀다. 지운이 들었다. 성준이 반대쪽을 잡았다. 둘이 솥을 들고 유리문을 나가는데 성준이 "이거 몇 킬로야" 했고, 지운이 "말하지 마" 했다. 보라는 뒤에서 국자를 들고 따라 나갔다."거기요. 전구 밑에."솥이 내려앉았다. 골목 바닥이 울렸다. 황복례가 건너편에서 "저 힘 봐라" 했다. 미자 이모가 "둘이 드는 건데요" 했다. 황복례가 "그래도 저쪽이 더 드는 거 안 보이냐" 했다. 성준이 "저도 들었는데요" 했다. 아무도 대답을 안 했다.소정이 종이 그릇을 쌓았다. 소정은 오전 알바인데 오늘은 저녁까지 나왔다. 돈을 더 주겠다고 했더니 "안 받아요" 했다. 안 받는 이유를 보라는 알았다. 성준이 전구 줄을 고치고 있었다.6시에 전구가 켜졌다. 하나가 안 켜졌다. 보라국밥 솥 바로 위 전구였다. 성준이 사다리를 가져왔고 지운이 올라갔다. 전구를 돌렸다. 켜졌다. 황복례가 "저 키면 사
엄마는 토요일 9시에 왔다. 장마가 그 전날 끝났다.새벽에 지운이 두 그릇을 먹을 때 보라가 말했다. 솥을 저으면서, 지운을 안 보고."오늘 엄마 와요.""네."네, 가 평소보다 늦게 나왔다. 보라는 그걸 들었다. 지운은 숟가락을 든 채로 유리문을 한 번 봤다. 아직 캄캄한 유리문이었다. 거기 아무도 없었다. 지운은 다시 먹었다. 먹는 속도가 느려졌다가 다시 빨라졌다. 보라는 그것도 들었다. 숟가락 소리로."비번이죠, 오늘.""네.""그럼 나가 있어도 돼요. 엄마 있으면 불편할 텐데.""안 불편합니다.""지운 씨가 아니라 엄마가요.""……그래도 있겠습니다."보라는 엄마가 오는 걸 유리문 너머로 먼저 봤다. 아니, 황복례가 먼저 봤다. 골목 저쪽에서 "옥순아!" 하는 소리가 났고, 그다음에 엄마가 보였다. 양손에 보따리를 하나씩 들고, 등에는 배낭을 메고, 모자를 쓴 채였다. 밭에서 쓰는 모자였다. 그걸 쓰고 버스를 두 시간 타고 왔다.황복례가 엄마 보따리 하나를 뺏어 들었다. 미자 이모가 생선가게에서 나와서 다른 하나를 뺏었다. 엄마는 빈손으로 유리문을 열었다. 셋이 한꺼번에 들어와서 가게가 좁아졌다."왔다.""왔네."보라는 솥 뒤에서 나오지 않았다. 엄마도 솥 쪽으로 오지 않았다. 둘은 그렇게 인사했다. 5년 동안 그렇게 인사했다.엄마가 가게를 둘러봤다. 솥, 테이블 여섯 개, 메뉴판, 벽 달력. 7월 달력 생선은 민어였다. 엄마 눈이 달력에서 설거지통으로 갔다. 거기 지운이 있었다. 비번이었고, 소매를 걷고, 뚝배기를 닦다가 멈춘 채였다.엄마가 지운을 봤다.오래 봤다. 보라가 세어 보지 않았는데도 길었다. 황복례가 입을 열려다가 미자 이모한테 팔을 잡혔다. 소정이 뚝배기를
화요일 저녁 6시 10분에 휴대폰이 울렸다.보라는 솥을 닦고 있었다. 손에 물이 묻어서 앞치마에 닦고 휴대폰을 집었다. 모르는 번호였다. 보라는 모르는 번호는 안 받는 사람인데, 이건 전화가 아니라 문자였다.«퇴근.»두 글자에 점 하나. 보라는 그걸 한참 봤다. 누군지 묻지 않아도 알았다. 퇴근이라는 말을 보라한테 할 사람이 그 사람밖에 없었다. 보라는 번호를 저장했다. 이름 칸에 뭐라고 쓸지 몰라서 «2층»이라고 썼다.답을 쓰려고 자판을 열었다. 뭐라고 쓸지 또 몰랐다. 퇴근했으니 오라는 건지, 퇴근했다고 알리는 건지, 퇴근했으니 밥을 달라는 건지. 보라는 솥을 봤다. 점심 지나고 남은 국물이 반 솥 있었다.«국밥 남았음»쓰고 나서 보냈다. 보내고 나서 위에 뜬 «퇴근.»을 다시 봤다. 점이 있었다. 보라 것에는 없었다. 보라는 자판을 다시 열어서 점 하나를 쳤다. 점만 따로 보내는 건 더 이상해서 지웠다.「뭐 하는 거야.」휴대폰을 엎었다. 엎어 놓고 솥을 닦았다. 바깥에 비가 왔다. 장마가 그날 시작됐다. 유리문에 빗방울이 붙었고, 골목 셔터들이 일찍 내려갔다.20분 뒤에 유리문이 열렸다. 지운이 젖어서 들어왔다. 머리에서 물이 떨어졌다. 보라는 수건을 던졌다. 지운이 받았다. 받아서 머리를 닦고, 두 그릇 자리에 앉았다."남았다고 하셔서요.""남았어요."보라는 국밥을 떴다. 한 그릇이었다. 저녁이니까. 지운이 뚝배기를 돌리고 숟가락을 세우고 세 번. 보라는 그 앞에 서서 봤다. 저녁에 가게에 손님이 앉아 있는 게 두 달 만이었다. 그때는 성준도 있었다. 지금은 하나였다."지운 씨는 문자에 점을 꼭 찍네요."보라가 말했다. 솥 뚜껑을 닫으면서. 지운이 숟가락을 든 채로
7월 첫 토요일 새벽, 사이렌이 세 번 지나갔다.보라는 솥 앞에서 세 번을 다 들었다. 새뜰소방서 쪽에서 나와서 큰길로 빠지는 소리였다. 하나가 아니라 셋이 줄줄이. 보라는 국자를 든 채로 유리문을 봤다. 아직 캄캄했다. 4시 55분이었다. 손목시계로는 5시였다.사이렌은 새벽에도 났다. 늘 나는 소리였다. 그런데 셋이 줄지어 가는 건 드물었다. 보라는 솥을 저었다. 저으면서 시계를 봤다. 5시 40분이 됐다. 두 그릇 자리는 비어 있었다. 지운은 어제 당번이었다. 당번 다음 날 아침이면 5시 40분에 유리문이 열려야 했다.6시가 됐다. 안 열렸다.새벽 배달 기사 둘이 와서 창가에 앉았다. 하나가 두 그릇 자리를 보고 "오늘은 안 왔네" 했다. 보라는 "네" 했다. 다른 하나가 "아까 소방차 나가던데" 했다. 보라는 두 그릇을 떠다 주고 깍두기를 놓았다. 손이 평소보다 느렸다.5시 반부터 와 있던 소정이 그 말을 듣고 휴대폰을 꺼내 보더니 보라 앞에 내밀었다."사장님, 산불이래요. 옆 시 뒷산이요. 밤에 났대요. 바람이 세서 안 꺼진대요. 새뜰소방서도 지원 나갔다고 나와요."보라는 화면을 봤다. 산 하나가 벌겋게 찍힌 사진이 있었다. 밤 사진이었다. 벌건 선이 산등성이를 따라 길었다. 보라는 그 선을 보다가 휴대폰을 소정한테 돌려줬다."가게 하자.""사장님.""손님 와."손님이 왔다. 보라는 국밥을 떴다. 두 그릇 자리에는 손님을 앉히지 않았다. 소정이 그 자리로 손님을 안내하려고 하자 보라가 "거긴 안 돼" 했다. 소정이 "왜요" 했다. 보라가 "안 돼" 했다. 소정은 손님을 창가로 보냈다.◎황복례가 10시에 들어왔다. 멸치 상자 없이, 휴대폰을 들고."보라야, 48시간이란다.""뭐가요.""지원 나간 거. 이틀 꼬박 있다 온다고. 미자가 소방서 앞에 가서 물어봤어. 구조대 다 갔대. 그 떠버리 총각도 갔고, 니네 총각도 갔고.""우리 총각 아니에요.""그럼 누구 총각이냐."보라는 솥을 저었다. 복순 할머니가 유리문을 반만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