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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언론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3-10 06:27:10

녹음이 끝난 지 며칠 후, 내 이름이 인터넷 기사에 걸리기 시작했다.

“진심이 묻어나는 신예 싱어송라이터”,

“무대 위에서 눈물을 노래한 가수 남수정.”

기사를 보자마자 손끝이 떨렸다.

세상 어딘가에서 내 이름이 불리고 있다는 사실은 벅찼지만,

한편으론 설명할 수 없는 허전함이 따라왔다.

회사 사무실.

재운은 기자들과의 인터뷰 스케줄을 체크하며 말했다.

“좋은 반응입니다. 이번 주부터 프로필 사진 촬영 들어가고,

SNS 계정도 정식으로 열 겁니다.

인터뷰에서는 꼭 ‘타이틀곡은 대중과 호흡하려 썼다’는 말 잊지 마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사랑하는 이유는 따로 있는데,

세상에는 그것을 숨겨야 한다는 게 이상하게 아팠다.

회의가 끝나자 재운이 잠시 나를 불렀다.

“수정 씨.”

“…네?”

“당신은 오늘도 선택을 한 겁니다.

사람들에게 보일 얼굴과, 숨길 얼굴. 둘 다 지켜내야 살아남습니다.”

그의 말은 현실적이었지만, 마음 어딘가에는 작은 비수처럼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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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탑방의 멜로디   189. 사람들의 심장이 된 목소리

    “함께 노래해 주세요!”즉흥적으로 아카펠라를 시작했다. 밴드도 악기를 멈추고 내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놀랍게도 경기장 전체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이내, 수만 명이 하나가 되어 내 목소리를 따라 불렀다. 마치 거대한 합창단처럼.기술이 꺼져도, 조명이 꺼져도, 목소리 하나만으로 연결된 순간이었다.그 장면은 곧바로 온라인으로 퍼졌다. ‘기술이 꺼져도 멈추지 않는 공연’, ‘도쿄돔을 울린 아카펠라’라는 제목이 실시간 트렌드를 장악했다. 관객들은 오히려 이 사건 덕분에 더 큰 감동을 받았다고 열광했다.공연이 끝난 후, 대기실에 돌아오자 매니저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기술팀 쪽 확인했는데, 의도적인 방해가 맞아. 누군가 제어실에 침입해서 화면 송출을 끊은 거야. 또 서이란 쪽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재운은 분노를 숨기지 못했다.“이제는 증거까지 남기지 않고 흔적도 없이 흔드는 거네. 진짜 대담해졌다.”나는 그 말을 듣고도 차분하게 대답했다.“오히려 좋아. 방해가 있든 없든, 나는 계속 무대 위에서 노래할 거니까. 그리고 관객들이 증명했잖아. 기술이 없어도 내 목소리 하나로 충분하다는 걸.”그 말에 재운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에는 단순한 동료 이상의 감정이 스며 있었다.호텔로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도쿄의 네온사인이 강물처럼 흘렀다. 나는 공연 중간에 들렸던 낮은 목소리를 떠올렸다. 김한이었다.“잘 버텼다. 네 목소리는 이제 무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심장이야.”그 말은 들린 건지, 내가 만든 환상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가슴 한가운데에 새겨졌다.나는 기타를 꺼내 조용히 선율을 흘렸다. 그것은 공연에서 미처 부르지 못한, 김한을 향한 노래였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피곤했지만, 이상하게도 빛나 보였다.비행기가 샤를 드골 공항에 착륙하자, 창밖으로 황금빛 노을이 프랑스 대지를 붉게 물들였다. 파리의 공기는 낯설고 묘한 향을 품고 있었다. 호텔 앞에 도착하니 수십

  • 옥탑방의 멜로디   188. 뉴욕, 불빛 아래의 그림자

    뉴욕의 밤거리는 언제나 불이 꺼지지 않는 듯 활기를 뿜어냈다. 브로드웨이의 전광판은 화려하게 번쩍였고, 도시는 그 자체로 거대한 무대 같았다. 그러나 공연을 앞둔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했다. 런던 공연에서의 성취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서이란의 그림자가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대기실은 낯선 공기와 긴장으로 가득했다. 매니저는 인터뷰 일정과 언론 브리핑을 체크하며 분주하게 움직였고, 밴드 멤버들은 악기를 조율하며 각자의 루틴을 지켰다. 재운은 드럼 스틱을 돌리며 무심한 듯 내 표정을 살폈다.“네가 흔들리면 우리 다 같이 무너져. 괜찮지?”나는 억지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무대에만 오르면 달라질 거야.”하지만 속으로는 확신이 없었다.무대에 오르자, 눈부신 조명과 함께 관객의 함성이 쏟아졌다. 런던보다 더 큰 규모, 더 뜨거운 열기였다. 수많은 팬들이 깃발을 흔들고, 휴대폰 불빛을 별처럼 반짝였다. 첫 곡은 무난하게 시작되었다.밴드의 리듬과 나의 목소리가 유려하게 맞물려 흐르자, 긴장은 조금씩 풀렸다.그러나 두 번째 곡 중반,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내 마이크에서 갑자기 음향이 끊겼다. 목소리가 객석에 닿지 않자 관객이 웅성거렸다. 나는 순간 얼어붙었지만, 재운이 드럼을 세게 두드리며 합을 끌어올렸다. 나는 곧바로 기타를 집어 들고, 마이크 없이 목청으로 불렀다.무대 위 스피커는 먹통이었지만, 객석에서 관객들이 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수천 명이 한 목소리로 가사를 읊조리자, 끊어진 마이크는 더 이상 필요 없었다. 거대한 합창은 도시의 소음을 뚫고 퍼져나갔다.그때 무대 뒤편, 스태프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내 시선 끝에 서이란이 나타났다. 검은 코트 차림으로 객석 사이에 서서 비웃듯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은 소리 없는 조롱을 흘렸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나는 의도적으로 눈을 돌렸다. 관객들의 목소리가 나를 지탱해주고 있었으니까.세 번째

  • 옥탑방의 멜로디   187. 세계로 향하는 발걸음

    파리 공연이 끝난 지 일주일, 우리 팀에게 날아온 메일은 충격적이었다. 유럽과 아시아, 미주 주요 도시에서 동시에 초청장이 들어온 것이다. 런던 로열 앨버트 홀, 뉴욕 카네기 홀, 도쿄돔, 그리고 서울까지. 이름만 들어도 숨 막히는 공연장들이었다.기획사 회의실에 모여 앉은 우리는 종이 더미와 전자 문서들을 마주했다. 매니저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기회이자 시험이에요. 단숨에 세계 투어로 직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체력적, 정신적 부담은 상상 이상일 거예요.”밴드 멤버들은 흥분과 불안을 동시에 내뱉었다. 드러머는 “꿈같다”라며 손을 부르르 떨었고, 베이시스트는 “우리 같은 신인이 감당할 수 있을까”라며 고개를 갸웃했다. 나 역시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동시에 불안이 몰려왔다. 무대를 준비할수록 김한이 옅어져 가는 현실이 머릿속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재운이 회의실 정적을 깨고 단호히 말했다.“받자. 이런 기회는 두 번 오지 않아. 우리가 준비되어 있든 없든, 지금이 아니면 영영 못 잡을 수도 있어.”모두가 숨을 고르는 사이, 내 시선은 유리창 너머 하늘을 향했다. 파리의 회색빛 구름이 엉켜 흐르고 있었고, 그 속에서 김한의 희미한 얼굴이 잠깐 겹쳐 보였다. 내가 이 길을 가는 게 옳은 걸까?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지만, 답은 쉽게 오지 않았다.결국 투어 일정은 확정됐다. 첫 무대는 런던이었다. 공항은 출국 소식을 들은 팬들로 가득했고, 플래시 세례가 눈을 부셨다. 손에 쥔 여권이 땀에 젖어 미끄러질 정도였다.탑승 게이트로 향하는 길, 재운이 옆에서 낮게 속삭였다.“네가 두려워하는 거 알아. 하지만 이번 무대는 너 혼자 짊어지는 게 아니야. 우리가 함께야.”나는 그 말이 위로가 되면서도, 어딘가 아프게 다가왔다. 김한의 사라져가는 모습이 겹쳤기 때문이다. 정말 함께라는 말이, 끝까지 가능할까?비행기 창밖으로 저녁 노을이 퍼졌다. 그 붉은 빛 속에서 순간적으로 기타 줄이 반짝이는 환영이 비쳤다. 나는 눈을 감

  • 옥탑방의 멜로디   186. 파리 공연 당일

    루브르 박물관 옆 대형 공연장 앞은 아침부터 사람들로 가득했다. 수많은 국적의 팬들이 각자의 언어로 내 이름을 적은 플래카드를 흔들었고, 전광판에는 오늘 밤 공연의 생중계가 전 세계로 송출될 예정이라는 안내 문구가 떠 있었다.대기실은 긴장으로 얼어붙어 있었다.밴드 멤버들은 악기를 점검하고 또 점검하며 말을 아꼈다. 재운은 음향 엔지니어와 직접 부딪치며 모든 라인을 다시 확인하고 있었고, 나는 화장대 앞에 앉아 손가락을 꼼꼼히 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공연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심장이 빨라졌다. 서이란이 먼저 무대에 올랐다. 대형 스크린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자 객석은 불꽃놀이처럼 환호로 터졌다. 화려한 무대 장치와 폭죽이 쏟아졌고, 그녀의 목소리는 강렬하게 홀을 가르며 퍼져나갔다. 불꽃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내 차례가 다가왔다. 무대 뒤에서 기타를 매만지며 심호흡을 했지만 손끝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재운이 옆으로 다가와 짧게 속삭였다.“장비는 문제없다. 네가 흔들리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해.”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가슴 속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드디어 무대에 올랐다. 스포트라이트가 나를 비추자 수천 명의 시선이 동시에 쏟아졌다. 마이크 앞에 서자 귀가 먹먹해질 만큼의 정적이 흘렀다. 기타 첫 음을 튕기는 순간, 모든 게 멈춘 듯 고요했다.하지만 두 번째 음을 치자마자 모니터 스피커가 다시 불안하게 흔들렸다. 소리가 늘어지고 잡음이 섞였다. 순간 관객석에서 술렁임이 일어났다. 나는 당황했지만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목소리를 얹자 이번엔 마이크가 간헐적으로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했다.객석 앞줄에 앉은 기자들의 눈빛이 번쩍였다. 실시간 중계 화면에도 그대로 송출될 게 분명했다. 손끝이 떨리며 순간적으로 노래가 흔들렸다.그때, 무대 뒤에서 재운이 엔지니어를 밀치고 직접 장비에 달려들었다. 그의 손놀림이 빠르게 움직였지만, 이번엔 단순한 장비 문제가 아니었다. 누군가

  • 옥탑방의 멜로디   185. 무대는 네 거야

    호텔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기타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손끝이 자꾸 흔들려 제대로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내가 과연 세계 무대에서도 울림을 만들 수 있을까, 불안이 목까지 차올랐다.그때, 창문 너머에서 희미한 기운이 일렁였다. 김한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거의 투명에 가까워, 불빛 뒤에 겹쳐 보이는 그림자처럼 희미했다.“김한… 이렇게까지 옅어지면… 곧 사라지는 거예요?”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네가 점점 더 큰 무대에 설수록, 나는 여기에 머물 수 없어. 하지만 그건 네가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나는 눈을 꾹 감았다.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치밀어 올라 숨조차 막혔다.“당신 없는 무대가 두려워요. 나는 아직 당신의 힘에 기대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김한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이제 네 목소리는 네 힘으로 울리고 있어. 나를 잊지 말되, 붙잡으려 하지는 마라.”그의 말은 바람처럼 가볍게 흩어졌지만, 내 마음에는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나는 무릎 위에 기타를 올려놓고 떨리는 손끝으로 코드를 잡았다. 김한이 남긴 마지막 울림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음 날, 파리 공연을 앞두고 언론과 기획사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수십 개의 카메라와 수백 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질문은 날카로웠고, 대답 하나하나가 기사 제목으로 뽑힐 수 있는 상황이었다.“불꽃과 울림, 둘 중 누가 세계 무대를 장악할 것 같습니까?”사회자가 던진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나와 서이란으로 향했다.서이란이 먼저 입을 열었다.“불꽃은 눈을 사로잡고, 무대를 지배합니다. 저는 그걸 보여드릴 겁니다.”자신감 가득한 목소리에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내 차례가 되자, 나는 심호흡을 하고 마이크를 잡았다.“울림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저는 그 울림을 전할 겁니다.”순간, 플래시가 번쩍이며 기자들의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두 선언은 전혀 달랐고, 그 차이가 앞으로의 대결을 더욱 선명하게

  • 옥탑방의 멜로디   184. 파도처럼 밀려온 후폭풍

    밀라노 무대가 끝난 다음 날, 호텔 로비는 작은 전쟁터가 되어 있었다. 아침부터 몰려든 기자들과 팬들이 현관을 가득 메웠고,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 스태프들은 사람들을 막아내느라 분주했고, 우리 팀은 호텔 측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뒷문을 통해 이동해야 했다.차에 오르자 재운은 곧장 휴대폰을 꺼내 내게 화면을 내밀었다. 전 세계 주요 음악 매체들이 일제히 내 무대를 기사로 다루고 있었다.“불꽃보다 더 오래 남는 울림”“어둠이 빚어낸 목소리, 남수정”“밀라노의 밤을 삼킨 기타와 노래”기사 제목 하나하나가 현실 같지 않았다. 나는 화면을 바라보다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날 무대에서 느낀 두려움과 흔들림이 고스란히 떠올라 가슴이 다시 요동쳤다. 내가 정말 그런 반응을 불러일으켰단 말인가.재운은 흥분을 숨기지 못한 채 말했다.“이제 상황이 달라졌어. 단순한 신인으로만 취급되던 게 아니야. 네 목소리를 기억할 거고, 더 큰 무대에서 확인하고 싶어 할 거야.”그 말대로였다. 도착하자마자 매니저는 전 세계 공연 기획사와 방송국에서 쏟아지는 섭외 요청서를 보여주었다. 파리, 런던, 뉴욕, 도쿄까지. 이름만 들어도 숨이 막히는 도시들의 초청장이 책상 위에 쌓였다. 그 중 일부는 서이란에게 들어온 요청을 아예 내게 돌리고 싶다는 제안까지 포함되어 있었다.그 소식을 들은 서이란은 가만있지 않았다. 그날 저녁, 같은 호텔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그녀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축하해. 이제 네 이름도 기사에 실리게 됐네.”말은 축하였지만, 톤은 싸늘했다.“하지만 잊지 마. 사람들은 언제나 불꽃을 먼저 찾는다. 네 울림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불꽃이 터지는 순간 눈길은 다시 내게 돌아올 거야.”나는 굳이 맞서지 않았다. 대신 단호히 대답했다.“사람들은 눈을 사로잡는 불꽃만 보는 게 아니라, 마음에 남는 울림을 기억하기도 해요. 무대가 끝난 뒤에도 남는 건 결국 그 울림이니까.”서이란의 미소가

  • 옥탑방의 멜로디   12. 무대 전날

    무대 전날 밤, 서울 하늘은 유난히 흐렸다.비가 오려는 듯 축축한 바람이 옥탑방 창문 사이로 스며들었다.나는 바닥에 악보를 펼쳐놓고, 한 장씩 손으로 눌러가며 훑어보았다.연필로 빼곡히 적힌 가사들, 빨간 펜으로 재운이 남긴 수정 표시,그리고 옆 여백에 내가 적어둔 작은 단어들.손끝이 어느 부분을 스칠 때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더 단순하게. 힘 있게.” - 재운.“네 마음이 먼저야. 흐려져도 괜찮아.” - 김한.두 목소리가 부딪히며 방 안을 가득 채웠다.나는 결국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무섭구나.

  • 옥탑방의 멜로디   11. 개입

    녹음실에서 돌아온 뒤, 나는 하루 종일 멍하니 기타를 껴안고 있었다.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창문 너머로 반짝였지만, 내 안에서는 자꾸만 어두운 그림자가 번졌다.노래를 부를수록 빛나야 할 텐데, 이상하게 그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며칠 뒤, 재운에게서 연락이 왔다.“수정 씨, 마지막 곡… 후렴을 조금 더 고쳐봅시다.”“고치자고요?”“좋은 곡이지만, 전달력이 부족해요. 청중이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가 필요합니다.”나는 침묵했다.내겐 그 곡이 단순한 노래가 아니었다.김한이 허밍으로 꺼내준, 내 마음의 가장 깊은

  • 옥탑방의 멜로디   57. 심판의 무대

    서울 시내 한복판, 방송국 대형 홀 앞은 이미 인산인해였다.검은색 중계차들이 줄지어 서 있고, 외신 기자들까지 몰려와 렌즈를 겨누고 있었다.관객들은 입장하기 전부터 구호를 외쳤다.“우린 그녀의 목소리를 믿는다!”“속임수라면 퇴출하라!”맞은편에서는 반대파가 피켓을 흔들며 고성을 질렀다.한 공간에 모인 수천 명의 목소리가 서로를 삼키며 요동쳤다.홀 안으로 들어가자, 차갑게 다듬어진 조명이 눈부시게 번쩍였다.화려한 스크린 위에는〈남수정, 진실을 노래하다〉라는 문구가 떠올랐고, 그 밑에는 작게 〈심판의 밤, 전 세계 생중

  • 옥탑방의 멜로디   15. 반응

    쇼케이스가 끝나고도 공연장 안은 여전히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다른 신인들이 무대를 이어가고 있었지만,대기실 문틈 사이로 들려오는 소리들은 내 노래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분장실 문이 열리자 재운이 들어왔다.그의 얼굴은 평소처럼 단정했지만, 눈빛만큼은 묘하게 빛나 있었다.“수정 씨.”나는 의자에 앉은 채 손을 모았다.“네.”그는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많은 사람이 당신을 기억할 겁니다.”“정말요…?”“네. 기자들도, 관계자들도 다 주목했어요.물론 제가 지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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