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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مؤلف: 은소이
며칠간 몸을 추스른 뒤, 나는 평소 안면이 있던 명품 매입 업자를 불러 드레스룸의 옷과 가방, 보석들을 전부 처분했다.

“대표님이 정말 사모님을 끔찍이 아끼시네요. 어제 막 이번 시즌 신상들을 주문하셨다더니, 오늘 바로 드레스룸을 비우게 하네요.”

업자의 너스레에 나는 그저 옅은 미소로 대답했다.

손가락으로는 무심하게 임혜리의 SNS를 훑었다.

시선이 멈춘 곳은 오늘 아침에 올라온 게시물이었다.

사진 속에는 따끈따끈한 신상 가방이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신상들은 이미 제 주인을 찾아간 모양이었다.

업자를 보내고 난 뒤, 친한 친구 한서진을 불러 집 보러 갔다.

우리는 차를 타고 교외로 향했고, 다름 아닌 공동묘지의 입구에 멈춰섰다.

한서진은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별다른 설명 없이 그녀의 손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산 좋고 물 맑은 곳에 자리 잡은 이곳은 부유층들이 선호하는 공동묘지였다.

직원의 열띤 설명을 들으며 한 바퀴를 둘러본 뒤,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 곧장 계약금을 치렀다.

부모님도 일찍 여의고 형제자매도 없는 처지니, 죽어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을 대비해 차라리 눈이라도 즐거운 곳에 미리 터를 잡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지난 세월 동안 신강우는 막대한 부를 쌓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고생해서 번 돈이 아까워 선뜻 쓰지도 못하고 악착같이 모으기만 했다.

그랬던 내가 드디어 돈 쓰는 법을 깨달았는데, 쓰임처가 고작 내가 누울 자리라니.

역시 남자를 가엽게 여기면 인생이 고달파진다는 말은 틀린 게 하나 없다.

직원이 묘지의 주인이 누구인지 물었다.

“저예요. 제가 쓸 자리를 미리 보러 온 거예요.”

나는 신청서 위에 내 이름을 정갈하게 적어 내려갔다.

경악과 동정이 뒤섞인 직원들의 시선을 뒤로한 채 한서진의 손을 끌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한서진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다그쳤다.

“구하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네가 왜 무덤을 보러 오냐고!”

한서진의 눈동자에는 걱정과 공포가 가득했다.

나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순수한 두려움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신강우가 떠올랐다.

만약 오늘 내 옆에 있던 사람이 그였다면 똑같이 겁을 먹었을까?

“구하윤!”

한서진의 목소리에 나는 상념에서 벗어났다.

“암이래. 췌장암. 의사가 길어야 한 달이라더라.”

이내 창밖을 응시하며 마치 타인의 부고를 전하듯 덤덤하게 말을 내뱉었다.

원래는 혼자 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홀로 감당하기엔 내 삶이 너무 처량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나중에 뒷수습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기도 했다.

한서진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자 묘한 해방감과 함께 기쁨이 일었다.

‘거 봐, 신강우가 아니더라도 이 넓은 세상에 여전히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이 있잖아.’

복부를 난도질하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다시금 밀려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발작적인 진통에 온몸은 비 오듯 쏟아지는 식은땀으로 젖어 들었다.

한서진은 당장이라도 응급실로 향할 기세였지만, 나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집에 가자고 했다.

사실 나 역시 겁이 났다.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는 차가운 병실에 홀로 버려지는 것도, 비좁은 철제 침대 위에서 초라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도 죽기보다 싫었다.

친구를 안심시키려 필사적으로 정신의 끈을 붙들었으나, 결국 한계를 넘어선 통증에 쓰러지고 말았다.

의식이 가물거리는 와중에 한서진의 격앙된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신강우, 이 개자식아! 당장 집으로 튀어 오라고!”

신강우가 돌아왔을 때, 한서진은 이미 떠난 뒤였다.

나는 홀로 거실 소파에 앉아 식어가는 컵을 두 손으로 간신히 움켜쥐었다.

불과 며칠 사이 몰라보게 야윈 탓에 즐겨 입던 옷들은 헐렁하게 겉돌았다.

병마란 이토록 처절하게 사람을 갉아먹는 것이었다.

“또 무슨 연극이야? 작작 좀 해. 나 바쁜 거 몰라?”

신강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뱉었다.

대꾸할 기운조차 없어 입을 다문 그때, 문이 다시 열리며 과일 봉지를 든 임혜리가 걸어 들어왔다.

경악한 내가 따져 묻기도 전에 그녀가 선수 치듯 입을 열었다.

“사모님, 제가 오고 싶어서 온 거예요. 오후에 대표님이랑 쇼핑하다가 사모님이 쓰러지셨다는 얘기 듣고 너무 걱정돼서 같이 가보자고 졸랐거든요.”

그러니까 ‘바쁜 일’이라는 게 고작 상간녀와의 쇼핑이었다니.

허탈함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태도는 뭐야?”

신강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구하윤, 너 언제부터 이렇게 버릇이 없는 거지?”

“아내를 두고 밖에서 바람이나 피우는 게 네가 말하는 버릇이니?”

나는 서늘한 눈길로 그를 쏘아붙였다.

신강우는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다물었다.

“사모님, 제발 화 푸세요. 다 제 잘못이에요. 대표님 탓하지 마세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 가련한 목소리였지만, 나를 응시하는 임혜리의 눈동자엔 승리감이 일렁였다.

“제가 불편하시면... 지금 바로 갈게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신강우의 호통이 터져 나왔다.

“아니, 나랑 같이 가. 이런 악다구니만 남은 여자가 있는 곳은 더 이상 집도 아니니까.”

악에 받쳐 소리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우리가 처음 이 집에 발을 들이던 날을 떠올렸다.

텅 빈 집 안 구석구석을 내 손을 잡고 돌더니, 소파에 기댄 채 나직이 속삭였다.

“네가 숨 쉬는 곳이 곧 나의 집이야.”

그런데 이제 와서는 집도 아니란다.

나는 손에 든 컵을 꽉 움켜쥐었다. 쏟아지려는 눈물을 삼키기 위해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신강우는 임혜리의 손을 잡아끌며 나가려 했다.

그때, 휴대폰이 울리자 잠시 망설이더니 전화를 받으러 테라스 쪽으로 걸어갔다.

신강우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임혜리도 가식적인 태도를 버리고 거만하게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녀는 식탁 위 꽃병을 빤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백합으로 바꿨네요? 그쪽, 원래 데이지 좋아하잖아요.”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설마 내가 여길 처음 왔다고 생각한 건 아니죠?”

임혜리가 피식 웃으며 거실을 느릿하게 훑었다.

“소파, 주방, 서재... 심지어 당신들 침실까지. 난 그쪽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이곳 구석구석이 익숙하죠.”

머리 위로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온몸이 차갑게 굳어버렸다.

내 취향과 정성을 담아 고른 가구들이 이제는 상간녀의 체취가 밴 쓰레기처럼 느껴져 구역질이 치밀었다.

“아, 참. 서재 의자는 바꿨어요? 그거 좀 불편하던데...”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이성을 잃고 손을 휘둘러 그녀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

임혜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부어올랐다.

그녀는 짧게 헛웃음을 짓더니 곧바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사모님, 죄송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찰나의 순간, 엄청난 힘이 나를 거칠게 밀쳐냈다.

“구하윤, 너 미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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