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2화

Author: 강노을
이혼 이야기를 먼저 꺼낸 건 제헌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이람은 잠시 집을 나갔다가 금세 돌아왔다.

그러고는 더 열심히, 더 애처롭게 제헌에게 매달렸다.

그간 단 한 번도 예외는 없었다.

이번에도 당연히 이람이 전처럼 제헌에게 매달릴 줄 알았다.

제헌은 이람이 오늘따라 유난히 서둘러 나간 것이 잃은 아이 때문일 거로 생각했다.

‘아이...’

제헌의 눈빛이 차갑게 일그러졌다.

이람은 애초에 아이를 가질 자격조차 없는 여자였다.

그 아이가 생긴 것도 그저 우연일 뿐.

그러니 없어진 지금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

이람은 제헌과 이혼하면, 100억의 위자료를 받게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의 이혼 서류와 함께 놓여 있는 은행 계좌였다.

3년 전, 이람이 그때 바로 사인만 했다면 아무런 고생도 없이 그 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람은 그 3년 동안 끝없는 기대와 환상에 자신을 몰아넣었다.

심지어는 몸도, 마음도,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능력까지도.

‘이쯤에서 그만두자.’

인제 와서 후회하고 따지고 분노하는 건 다 소모일 뿐이었다.

그런 소모엔 미래가 없고,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리고 돈은... 없는 것보단 있는 편이 낫다.

이람은 조용히 은행카드를 챙겨서, 심야 택시에 올라탔다.

...

택시가 멈춘 곳은 ‘더 하이엘’ 아파트 단지.

이 도시에서도 손에 꼽히는 고급 아파트.

한 층에 두 세대뿐인 구조, 대형 평수.

그중 한 세대가 이람의 명의로 되어 있었다.

이 집은 이람 외삼촌의 소유였고, 이람의 어머니가 사고를 당한 후, 외삼촌은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그 후 자연스럽게 이 집은 이람에게 맡겨졌다.

이람은 이 집을 평생 쓸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계획보다 빠르게 뒤집힌다.

바로 지금, 이혼한 지금처럼.

7동, 펜트하우스 1호.

이람은 여행용 가방을 끌고 조용히 안으로 들어섰다.

오후에 미리 청소 업체를 불러 깨끗이 정리해 뒀기 때문에, 집은 깨끗했지만 150평 가까운 공간은 지나치게 텅 비어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큰 집에 이람이 혼자 있는 것이 적막하고 무서웠을 것이다.

하지만 제헌의 차가운 침묵을 3년이나 견디고 나니, 이제 그녀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 한켠에서 처음 느끼는 안정감이 들었다.

‘드디어... 끝났어.’

이람은 몸이 풀리자, 동시에 극심한 피로가 덮쳐왔다. 빠르게 씻고, 침대에 누워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띵-

새벽 6시.

익숙한 알람 소리가 울렸다.

‘남편 아침밥 준비’라는 알림이었다.

이람은 그대로 눈을 떴다.

제헌은 보통 아침 8시에 식사했고, 간단한 음식은 절대 입에 대지 않았다.

그래서 이람이 아침을 준비하려면 한두 시간은 기본이었다.

만약 제헌이 전날 밤 늦게까지 술자리를 가졌다면, 그녀는 남편이 잠든 걸 확인한 후 새벽 두세 시나 되어야 눈을 붙였다.

그런데도 다음 날 아침이면 가장 먼저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내가 그렇게 정성껏 차린 아침을, 제헌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결국 풍성한 상차림은 고스란히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이제는, 이람도 그렇게 남편을 위해 열심히 아침을 준비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고 더 이상 누군가의 기분에 휘둘리며 새벽에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자신의 수고가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당할 일도 없을 것이다.

이람은 조용히 알람을 삭제했다.

이어서 수면 안대를 쓴 채, 다시 이불을 당겼다.

잠이 안 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금방...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아침 8시.

지끈거리는 두통과 함께 제헌이 눈을 떴다.

‘젠장...’

술을 마신 다음 날, 숙취약을 먹지 않으면 늘 머리가 아팠다.

어젯밤엔 너무 피곤해서 해장국도, 숙취해소제도 다 잊고 그냥 곯아떨어졌다.

그런데 침대 머리맡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물 한 컵이 놓여 있었다.

제헌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조이람, 그렇게 단칼에 나가더니 결국 또 돌아온 거냐?”

물을 다 마신 후, 한결 나아진 머리로 지후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가 이겼다.]

곧바로 답장이 왔다.

[형수님은 진짜 한 번만이라도 튕겨볼 수 없는 거임?? 갈수록 형을 더 못 놓네 아주...]

뒤이어 또 온 메시지엔 억울함이 가득했다.

[아 진심 억울해서 잠도 안 옴. 아오아오아오.]

[형! 제발 저한테도 형수처럼 나한테 죽고 못 살 여자 좀 소개해 주세요. 인생 좀 누려보자고요 형님 복이라도 나눠줘요!]

제헌은 냉소적으로 입을 한쪽만 올리며 답장을 보냈다.

[개소리 그만하고 정신 차려.]

핸드폰을 툭 던진 제헌은 자리에서 일어나 씻으러 갔다.

1층으로 내려온 뒤, 익숙한 분주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조이람? 어디 있어?”

차갑게 물으며 거실을 둘러보던 제헌 앞에, 이순심이 식판을 들고, 주방에서 나왔다.

“대표님, 일어나셨어요? 아침 다 준비됐습니다.”

제헌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이모님이 왜 여기에 있어?”

“제가요? 사모님이 어젯밤에 오늘은 집에 없다고 하시면서 아침 일찍 와달라고 하셔서요.”

“그 물도 이모님이 가져다 놨어?”

이순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대표님께서 일어나셨을 때 드시라고...”

제헌은 순식간에 표정이 어둡게 변하고 말이 없어졌다.

눈치챈 이순심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대표님... 일단 식사 먼저 하시는 게...”

제헌은 한참을 서 있다가 무표정하게 식탁에 앉았다.

하지만 식탁 위엔 우유 한 잔, 토스트 두 장, 계란프라이 하나, 그리고 작은 치즈 한 통이 전부였다.

이람이 해주는 아침은 언제나 다양했다.

떡이든 죽이든 한식, 양식, 중식까지 매일 다른 메뉴에 정성 가득한 플레이팅.

한 상 가득 푸짐하게 차려졌고, 그 정성은 늘 과하다 싶을 정도였다.

오늘의 아침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겨우 가라앉았던 제헌의 분노가, 순식간에 다시 치밀어 올랐다.

“이게, 나 먹으라고 차려준 아침이라고?”

차가운 목소리에 이순심의 어깨가 움찔했다.

“죄... 죄송해요 대표님. 평소엔 사모님이 다 준비하셔서... 대표님 입맛을 잘 몰라서요...”

“모르면 전화라도 해서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전화했는데, 안 받으시더라고요...”

제헌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잘한다, 조이람. 진짜 어디까지 해보자는 거야?’

그렇다고 해도, 그는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이람은 언제나 돌아왔다.

가장 조용하고, 가장 은근하게.

어쩌면 점심쯤, 회사 앞으로 슬쩍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게 이람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만큼은, 최악이었다.

제헌은 숟가락도 안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쾅!

현관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순심은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왜 이래?”

그리고 곧장 이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러 번 시도했지만, 끝내 받지 않았다.

“이상하네...”

평소 같으면 이람이 제헌의 상황을 물어보려고 먼저 이순심에게 연락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타이밍을 잘 맞춰 곧장 돌아오곤 했다.

이람이 전화를 받지 않는 건 처음이었다.

“흠... 혹시 사모님... 밀당 좀 해보려는 건가? 오히려 잘됐네. 대표님도 사모님 없으면 얼마나 불편한지 좀 느껴봐야지.”

사실 이순심은 그게 괜찮다고 생각했다.

제헌이 마음을 주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게다가 제헌은 재력도, 외모도, 능력도 완벽한 남자였기 때문에, 밖에서 그를 유혹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람이 마음을 다해 잡지 않으면, 어떻게 이런 남자 곁에 있을 수 있겠는가?

...

토요일, 이람은 출근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알람도 끄고, 낮이 훌쩍 지나서야 눈을 떴다.

집에 먹을 게 없어서 그녀는 배달 앱으로 점심을 주문했다.

거하게 한 상 배달받아 혼자 다 먹고 나자 이람은 노트북을 켜고 IT 커뮤니티 사이트를 한참 둘러봤다.

자신이 한때 친했던 닉네임의 소유자들은 이제는 업계 리더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정작 스승님 소식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직도 연구실에서 연구만 하시나?’

이람은 스승님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문득 떠올랐다.

엄마의 따뜻함과 닮은 그 눈빛.

그런데 자신은 그 기대를 배신했다.

뜨거운 기운이 여자의 눈가에 차올랐다.

잠시 망설이다가 이람은 연락처 목록을 스크롤 해 한 번호를 눌렀다.

“민서야, 우리... 한번 보자.”

진민서는 이람의 대학 동기였다.

예전 같으면 이람의 전화를 반가워했을 친구.

하지만 오늘, 민서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나랑 열 번 약속 잡으면, 너는 아홉 번을 깼잖아. 친구라도 이렇게 계속 당하면 지친다고.]

그 말에 이람은 말문이 막혔다.

민서는 덧붙였다.

[진짜로 볼 생각 있는 거야? 잘 판단해.]

이람은 결혼 후 거의 전업주부처럼 지냈다. 의도적으로 친구를 멀리한 건 아니지만, 민서를 소홀히 한 것도 사실이었다.

민서는 몇 년째 스타트업을 일궈내며 업계에서 주목받는 CEO가 되어 있었다.

그 화려한 커리어가 오히려 이람을 더 움츠러들게 했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다른 이유였다.

이람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조용히 말했다.

“나... 이혼했어.”

잠깐의 침묵.

그리고 민서의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시간, 장소 찍어. 바로 갈게.]

...

이람은 이혼 서류를 들고, 가정법원에 들러 정식으로 이혼 신청 서류를 넣었다.

이제 ‘이혼숙려기간’만 지나면 모든 게 끝난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나니 오후 3시도 채 되기 전이었다.

이람은 약속 시각보다 일찍, 민서와 만나기로 한 카페에 도착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반쯤 마시고 있던 그때였다.

이람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며, 커피잔을 쥔 손끝은 순간적으로 경직되었다.

불과 하루도 다 지나기 전에, 이람은 제헌과 마주치고 말았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   제434화

    그때, 서주연은 바쁜 일정 중 잠시 시간을 내, 어린 하준을 보러 왔다.어린 하준은 ‘엄마’라는 사람이 자신을 만나러 온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또래 아이들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 하준이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엄마’라는 존재는, 온전히 의지해도 되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그래서 기대도 컸고 동시에 긴장도 많이 했다.실제로 서주연을 처음 마주했을 때, 어린 하준은 먼저 압도당했다.‘엄마’라는 사람은 지나치게 아름다웠고, 화려하기까지 했다.다른 아이들의 엄마들과는 전혀 달랐다. 더 예쁘고, 더 크고, 더 멀리 있는 것 같았다.하준은 겁이 나서 말을 잃었다.조심조심 서주연 앞에 다가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누구예요...?”그때 서주연은 무릎을 굽혀 하준과 눈높이를 맞췄다.잠시 위아래로 훑어보는 시선이었지만, 세 살짜리 하준에게는 너무나 무서운 눈빛이었다.어린 하준은 본능적으로 도망치고 싶었다.하지만 그 순간, 서주연의 손이 하준의 볼을 세게 잡아당겼다.“이게 내 아들이야? 왜 이렇게 멍청해 보여? 엄마라는 말도 못 해?”놀람과 노골적인 불만이 섞인 목소리였다.그 한마디는 어린 하준을 바닥으로 푹 꺼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서주연은 그날 저녁에도 일정이 있다며 오래 머물지 않았다.모자는 그렇게,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첫 만남을 끝냈다.그 후로도 좋지 않은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그리고 하준이 일곱 살이 되어 서주연을 따라 J시로 가게 되면서,그곳에서 하준은 차마 사람이라 부르기 힘든 이들을 여럿 보게 되었다.그쪽 친구들과 비교해 보니, 제헌의 어린 시절 사소한 신경전들은 오히려 귀엽게 느껴질 정도였다.J시에서의 성장 과정은, 하준의 세계를 빠르게 넓혀 주었다.그와 동시에 하준은 분명히 깨달았다.서주연은 아들을 돌볼 줄 모르는 여자였고, 어떻게 엄마가 되어야 하는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그래서 모자의 관계는 늘 팽팽하게 굳어 있었다.그러다 하준은 성장했고, 혹은 서주연이 나이를 먹었고... 물

  • 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   제433화

    “알겠어요.”이람은 하준이 그렇게 말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그 뒤로 하준의 추가적인 말이나 당부가 이어지지 않았다. 잠시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고 이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그럼... 끊을까요?”그때, 하준이 불쑥 말을 이었다.[강제헌이 이람 씨를 왜 찾은 거예요?]이람은 순간 멈칫했다.예전 같았으면, 하준이 제헌을 경계하는 걸 단순히 두 사람 사이의 오래된 앙금 때문이라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람은 하준의 질문에 담긴 의도를 다시 생각했다.‘서하준... 혹시 질투하는 건가?’그동안 이람은 하준과 지내면서 경계가 명확하다고 느꼈다. 제헌의 일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었고, 굳이 하준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일부러 짐처럼 얹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하지만 지금의 하준은 분명히 한 발 더 깊이 들어왔다.이람은 그 ‘의미 있는 관심’을 느꼈다.그리고 그걸 애매하게 넘기면, 하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이람은 진심으로, 하준이 불편해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강제헌이요? 강수철 회장님 생신 참석 관련해서 얘기하자고 했어요. 지난번처럼 난리 치지도 않았고요. 큰 문제는 없어서 굳이 하준 씨에게 말하지는 않았어요.”이람은 제헌이 재결합을 언급했다는 사실만은 말하지 않았다.사흘 뒤, 이람은 강수철 회장 앞에서 제헌의 부모와 여동생, 그리고 강씨 집안의 친지들까지 모두 모인 자리에서 두 사람이 이미 이혼했다는 사실을 직접 밝힐 생각이었다.차라리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관계를 정리하는 게 가장 깔끔했다.제헌은 체면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람이었다.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혼 사실이 공개된 뒤에도 다시 붙잡겠다고 나서는 건, 곧 자신이 후회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제헌의 자존심이 그걸 허락할 리 없었다.이번에 제헌이 고개를 숙일 수 있었던 건... 이람 단 한 사람 앞이었기 때문이다.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제헌

  • 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   제432화

    이람은 화면 속에서 하준이 카메라를 옮기는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있었다.어깨가 넓은 편이라 그런지, 카메라를 조금 멀리 당겼는데도 그의 어깨가 화면 안에 온전히 다 들어오지는 않았다.하지만 그 뒤쪽으로 보이는 좌석들 덕분에 이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하준은 지금 공항에 있었다.그제야 이람은 조금 전에 하준이 했던 말을 제대로 인식했다.심장이 순간적으로 크게 뛰었다.‘서하준의 어머니가... 드디어 오시는구나.’이람은 예전에 하준에게 서주연의 사진을 보여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때 하준의 휴대폰에는 어머니 사진이 없었다.서주연은 한때 H시에 미리 와서 하준과 잠시 함께 지내며 모자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그러나 하준은 그 제안을 거의 생각할 틈도 없이 거절했다.여자친구 집에서 지내고 있다며 선을 그었고, 결국 서주연은 그때 오지 않았다.그리고 지금 강수철 회장의 생일을 앞둔 시점이 되자 비로소 H시로 오게 된 것이다.이람은 이 일련의 흐름을 보며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하준과 서주연의 모자 관계는 아주 가깝다고 하긴 어려워 보였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끊어진 사이도 아니었다.하준이 직접 공항에 나가 마중을 나왔다는 것만 봐도, 그는 어머니를 가볍게 대하지 않았다.적어도 기본적인 존중과 책임은 분명히 지키고 있었다.그래서 더 어려웠다.서주연 앞에서 ‘연인 역할’을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할지, 이람은 감이 잘 오지 않았다.“그럼... 제가 공항으로 갈까요?”말을 꺼내고 나서야, 이람은 자신이 조금 긴장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하준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지금은 괜찮아요.][제가 먼저 어머니께 상황을 설명드릴게요. 어머니가 이람 씨를 직접 보고 싶어 하시면, 그때 이람 씨 일정도 보고 결정하면 되고요. 절대 무리하게 부탁하거나, 이람 씨에게 부담 주는 일은 없을 거예요.]하준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마치 어떤 비교 대상이 떠오른 듯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저는 이람 씨를 제 여자친구라고 생각하고 있

  • 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   제431화

    이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대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제헌은 주먹을 꽉 쥔 채 이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냉소 섞인 목소리로 내뱉었다.“내가 쓰레기라며. 그런데도 넌 나를 3년이나 사랑했잖아?”이람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고, 다시 문을 닫았다.문이 닫히는 소리는 마치 뺨을 세게 후려치는 소리처럼, 제헌의 얼굴에 그대로 꽂혔다.어릴 때부터 제헌의 머릿속에는 늘 딱 한 가지만 있었다.어떻게 더 잘될 것인가, 어떻게 서하준보다 우위에 설 것인가?그 외의 것들은 담을 자리가 없었다.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인 적도 없었다.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이람에게 쏟았는데... 돌아오는 게 이런 태도라고?제헌은 이를 악물었다.‘조이람. 나... 너 줄 선물도 준비했어.’‘하유리한테 준 것보다 훨씬 신경 써서, 직접 경매까지 가서 산 거야. 집에 놔뒀어.’‘오늘 만나서, 네가 다시 같이 살겠다고 하면, 집에 돌아가서 너한테 주려고 했어.’‘그런데 이렇게 가버린다고? 나를 여기 혼자 버려 두고?’제헌의 얼굴은 분노로 새파랗게 굳었다.하지만 그는 이람에게 그 사실을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예전에도 설명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럴 생각은 없었다.먼저 식사를 제안하고, 고개를 숙인 것만으로도 제헌에게는 이미 자존심이 크게 깎인 일이었다.거기에 그 선물까지 꺼내는 건...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넘는 일이었다.제헌은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차를 부르곤, 혼자 전통찻집으로 향했다.기분이 어지러울 때면, 제헌은 늘 혼자 조용히 있는 걸 택했다.어릴 때부터 몸에 밴 습관이었다.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을 때마다 억울해도 누구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삼키며 버텼다.지금도 마찬가지였다.이 장소를 아는 사람은 고지후뿐이었다.지후에게서 전화가 왔지만, 제헌은 받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지후가 직접 찾아왔다.지후는 맞은편에 앉아 제헌을 잠시 살폈다.“형, 좋은 소식 있다고

  • 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   제430화

    ‘오늘 굳이 여기까지 와서, 자존심도 다 버리고 조이람한테 고개까지 숙였는데... 그게 안 통한다고?’제헌은 이람이 다시 내민 다이아몬드 반지를 내려다보며 눈빛을 잔뜩 가라앉혔다.제헌이 원하는 건 늘 같았다.말 잘 듣고,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며 자신에게 다 맞추던 이람.지금처럼 사사건건 맞서고, 제헌의 말을 거부하고, 명령을 따르지 않는 이람은 애초에 제헌이 좋아하던 모습이 아니었다.하지만 제헌은 안다. 이람은 아직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다.조금만 시간을 주면, 예전처럼 마음도 시선도 다 ‘강제헌에게만 향하던 해바라기 같은 여자’로 돌아올 거라고.제헌은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이제야 명확히 알게 된 걸 다행이라 여겼다.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이람의 태도에 이미 폭발했을지도 모른다.‘조금만 더 참으면 돼... 조이람이랑 다시 결혼만 하면...’‘그다음엔 적당히 흉내만 내도... 조이람은 나를 떠나지 못할 거야.’제헌은 반지를 다시 집어넣으며, 이람의 차가운 눈매를 바라봤다.“그래. 하루 줄게.”이람은 곁눈질로 핸드폰 화면에 뜬 알림을 보았다.하준에게서 온 메시지였다.하지만 지금은 확인하지 않았다.이람의 시선은 제헌에게 향해 있었다.예전의 이람에게는 제헌을 바라볼 때 항상 콩깍지가 씌워져 있었다.제헌이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었다.그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고 행복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콩깍지가 벗겨진 자리에는 제헌의 오만함과 냉담함만이 선명하게 보였다.제헌은 고개를 숙여 재결합을 말하면서도, 진짜로 내려오지는 않았다.그 말투는 부탁이 아니라, 마치 크게 인심쓰는 척에 가까웠다.게다가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다시 함께 살고 싶은 이유가 ‘사랑’도 ‘후회’도 아닌, 그저 이람이 자신을 잘 챙겨주던 그 편안함 때문이라고.보통 사람이라면, 과거로 돌아가고 싶을 때 최소한 감정적인 미련 정도는 있지 않나?그래서 이람은 오히려 제헌이 대단하다고 느꼈다.다른 사람이 고개를 숙였다면, 최소한의 연기라도 했을 것이다.

  • 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   제429화

    제헌의 머릿속에서는 경고음이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다.‘그만 말해. 너 진짜 이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잖아, 여기서 멈춰.’‘그런데 이게 아니면 대체 뭐 때문인데?’과거의 제헌은 이람의 생각 같은 건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그는 늘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했고, 지금처럼 고개를 숙이는 일은 제헌에게 있어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이 정도면 이미 엄청 양보한 거잖아.’‘도대체 내가 어디까지 내려가야 해?’‘조이람을 사랑한다고 거짓말하라고?’‘말이 되냐, 그게.’제헌은 머릿속의 경고를 억지로 눌러버렸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앞으로는 너한테 좀 더 잘할게. 예전처럼은 안 할게.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이람은 그 말에 또 한 번 깊게 베였다.제헌에게 아직 기대가 있어서가 아니었다.그 말은 이람이 과거에 받았던 상처의 감각을 그대로 끄집어냈다.제헌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었다.그리고 매번 이람에게 그 사실을 똑똑히 각인시켰다.이람은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솔직히 말할게, 강제헌. 난 이제 더 이상 바보 같은 짓 안 해.”제헌은 이람이 거절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완전히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낮게 물었다.“무슨 뜻이야?”“말 그대로야. 난 더 이상 너랑 살고 싶지 않아. 그리고 이제 내가 뭘 원하는지도 알아.”이람의 미래에 제헌의 자리는 없었다.그런데 어떻게 다시 돌아갈 수 있겠는가?제헌의 머릿속이 잠시 하얘졌다.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그럼 넌 뭘 원하는데?”이람이 입을 열려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테이블 위에 놓인 핸드폰을 두 사람 모두 바라봤다.발신자 이름은 ‘서 대표님’이었다.제헌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그는 팔을 뻗어 단번에 핸드폰을 낚아채 전화를 받았다.“서하준, 지금 내 아내는 나랑 같이 있으니까 꺼져.”그는 하준의 반응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이람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다.제헌은 또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