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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리르카의 숲(2)

Author: 하민오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25 07:00:58

에녹의 환영 속에는 네리나 자신이 울고 있었다. 에녹이 네리나의 환영에게 다가가려 하면 할수록 점점 멀어졌다. 에녹이 손을 툭 떨구고는 고개를 숙였다.

“에녹!”

에녹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느새 그의 눈 앞에 네리나가 서 있었다.

“에녹, 정신차려봐요!”

에녹이 환하게 웃었다. 다시 손을 들어 그녀의 눈꼬리 쪽을 훑고는 만족했다는 듯 눈을 감았다가 번쩍 떴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요.”

네리나가 불퉁하게 말했다. 왜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는 시늉을 했는지, 겁에 질린 자신을 골리는 것만 같았다.

“어쩄든, 여기는 현실이 아니라 환영이에요. 자, 일어납시다.”

“환영? 아아… 그렇군.”

주변이 챙강챙강 소리를 내며 깨지기 시작했다. 네리나는 속으로 왜 자신이 에녹의 환영 속에 있는지 궁금했지만,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뭔가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자자, 일행이 다 모였구만, 요호-.”

“우 위르케 위르카 오! 됐죠? 으휴 저 영감 계속 저 말을 덧붙이고 있어.”

“말이 아니라 노래라네, 젊은 긴이여.”

“그게 더 이상하잖아요, 영감.”

“리르카를 화나게 하지 말게. 리르카는 화가 나면 무서워진다네.”

“요호 우 위르케 위르카 오! 됐죠?”

“빨리 익히기도 하는군.”

정신을 차려보니 긴과 리르카가 잡담을 하고 있었다. 리르카가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밤은 우리 집에서 묵고 내일 아침에 출발하시게.”

“그런데요 리르카”

“음?”

“당신은 누구예요? 그러니까… 뭐예요?”

“나는 모든 숲의 주인이라네.”

리르카가 짐짓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그렇게 정했어요?”

“정한게 아니야. 그렇게 태어난 거지, 오래된 것들의 약속아!”

“왜 저를 그렇게 부르세요?”

네리나는 이 모험을 시작한지 이틀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궁금한 게 너무 많아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조세르는 왜 멀쩡한지, 에녹은 자기를 알고 있던 건지, 눈앞의 리르카는 대체 어떤 존재인건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리르카는 말없이 웃고는 주머니에서 거대한 나무 썰매를 꺼내 모두를 태울 뿐이었다.

일행은 숲 한 가운데 서 있는 거대한 저택에 발을 들였다. 시녀와 시종들로 보이는 이들은 눈을 가리고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 저거 꼬…”

움직이는 그들 뒤로 꼬리 같은 것이 보였다.

“네리나양, 무시해요.”

오르하가 다정하게 말했다.

“보아하니 이들은 우리들을 위해 친절히… 변신을 한 것 같군요.”

“인간의 지각범위는 시야를 벗어날 수 없는 법. 리르카는 배려한다네.”

리르카가 인자하게 웃었다. 네리나가 문득 중요한 질문을 떠올렸다.

“리르카! 그러면 용이 어디있는지도 알아요?”

리르카가 몸을 뒤집으며 박장대소를 했다. 한참을 낄낄거리며 웃던 그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일 아침에 이야기하세.”

일행은 따뜻한 물에 몸도 녹이고, 온갖 맛있는 야채와 과일들로 준비된 식사를 음미하며 밤을 대비했다. 일행들은 뭔가 멍해보였다.

‘그럴 만도 하지. 나도 아직 환영 속 벤자민이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걸.’

잘 채비를 마친 네리나가 방으로 들어가자 조세르가 침대 한가운데 누워 있었다. 네리나는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조세르! 뭐예요! 당장 내려와요!”

“우리 네리나가 나에 대해 덜 궁금해하는 것 같아 말이지.”

그는 퉁명스러워 보였다.

“자기, 벌써 내가 쉬워졌어?”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정체를 알 수 없어서 경계하는 거라구요!”

“아하, 그런거면 차라리 다행이군.”

네리나가 입을 오므렸다. 경계하는 중이라고 말하면 더 의심할텐데 싶었다.

“이리로 와서 앉아.”

“….”

이상하게 조세르의 말에는 사람을 따르게 하는 힘이 있었다. 네리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침대 끝에 조심히 걸터앉았다.

“얼굴을 보여줘. 늘 너의 등만 바라봤어.”

“무슨 말이에요?”

“무슨 말인지 알잖아.”

“….”

“나는 너의 유일한 친구, 조세르. 경계하지 마. 나는 오롯이 너의 것이다.”

그의 말에 네리나가 뺨을 발그레 붉혔다. 조세르는 그 솔직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리고는 그녀의 뺨을 한 번 쓸고 밖으로 나갔다.

네리나는 침대에 누워 허공을 향해 발길질을 해댔다.

다음날 아침, 리르카가 조세르를 비롯한 일행들에게 따라오라며 저택을 나섰다. 리르카가 집을 나서자마자 우르릉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큰 저택이 작은 초가집으로 변했다. 새와 다람쥐, 여우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이 보였지만, 네리나는 애써 눈 앞에만 집중하려 했다.

한참을 걸었을까, 리르카의 집 뒷편 숲 한가운데 고대 석판이 놓여 있었다.

“자네 것이야, 조세르. 리르카는 이것을 지켜왔다네, 요호 우 위르케 위르카 오!”

“…고맙군.”

조세르가 석판을 쓸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석판에서 빛이 나오더니 서쪽을 가리켰다.

“숲의 왼편이 맞긴 했나 보군.”

“어이 아가씨, 이제 우리는 저쪽으로 가면 되는 거요?”

“그렇게 건달처럼 말하지마 긴.”

“너는 엘프랍시고 그렇게 건방떨지마.”

“엘프가 건방을 떨다니? 물의 신이 웃을 말이로군.”

“그렇게 알 수 없는 말도 좀 하지 마. 물의 신은 뭔 물의 신이야!”

긴과 오르하가 틱틱거렸다. 에녹은 묵묵히 일행을 따라왔고, 톰은 겁이 나는지 네리나의 팔꿈치를 살짝 잡은 채로 움직였다.

곧 그들의 눈앞에 강이 나타났다.

리르카가 몸을 산만큼 크게 부풀려 일행의 시선을 차단했다.

“절대 망자들과 눈을 마주치지 말게. 절대. 여기서부터는 리르카가 도와줄 수 없어.”

일행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도 하지 못한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리르카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지자 강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강 속에 수많은 시신들이 눈도 감지 못하고 죽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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