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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헷갈리게 하지 마

مؤلف: 지호
last update تاريخ النشر: 2026-07-29 08:51:09

캠핑장에서 돌아온 날 밤, 지호는 평소보다 훨씬 일찍 침대에 누웠다.

며칠째 이어진 병간호와 낯선 환경 때문이었는지, 몸은 녹초가 되어 있었다. 따뜻한 이불을 끌어당겼는데도 어딘가 으슬으슬했다.

눈을 감자마자 잠은 금세 쏟아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피곤해서 쓰러지듯 잠들었는데, 꿈속은 이상할 만큼 선명했다.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차가운 밤공기와 장작 타는 냄새, 희미하게 들려오던 웃음소리까지 생생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휘웅이 있었다.

꿈속의 휘웅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운 밤인데도 이상하게 얼굴만 또렷했다.

그가 천천히 손을 뻗어 자신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주는 순간, 지호는 숨을 삼켰다.

곧이어 커다란 손이 허리를 감쌌고, 뜨거운 체온이 가까워졌다.

입술이 닿을 듯한 거리.

지호는 꿈이라는 것도 잊은 채 눈을 질끈 감았다.

“……!”

다음 순간, 지호는 이불을 걷어찬 채 벌떡 몸을 일으켰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이었다.

머리는 지끈거렸고, 얼굴은 뜨거웠다.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던 지호는 이마를 짚었다.

“...미쳤나 봐.”

그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분명 꿈이었다.

그런데 너무 생생했다.

휘웅의 손끝이 닿았던 감각도, 숨결도, 심지어 어렴풋한 향기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지호는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몸부림쳤다.

“아, 진짜 왜 이래.”

평생 남자친구 한 번 제대로 사귀어 본 적 없었다.

작가 지망생답게 대본 속에서는 여러 번 키스 장면을 써 봤지만, 정작 현실의 자신은 뽀뽀 한 번 해 본 적 없는 스무 살이었다.

그런데 키스하는 꿈이라니...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지호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다음 날.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지하철을 타는 내내 머릿속은 어젯밤의 꿈으로 가득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그 꿈이 조금도 흐려지지 않고, 오히려 점점 선명해져 가고 있다는 거였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괜히 붉어 보였다.

'설마 진짜 음란마귀가 씐 건 아니겠지.'

지호는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 화면만 만지작거렸다.

휘웅에게서 온 메시지는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도착하면 연락해.]

딱 한 줄.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문장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심장을 간질였다.

카페 문을 열자 먼저 와 있던 휘웅이 보였다.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검은 니트 위로 걸친 회색 코트, 아무렇게나 넘긴 머리, 길게 뻗은 다리까지.

언제 봐도 잘생겼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왔어?”

휘웅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네.”

지호는 괜히 어색해져 가방끈만 만지작거렸다.

자리에 앉고 나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각했다.

휘웅이 컵을 들어 커피를 마실 때마다 자꾸만 시선이 입술로 향했다.

커피를 머금는 입술. 무표정하게 다물려 있는 입술. 가끔 피식 웃을 때 살짝 올라가는 입꼬리.

오늘따라 유독 눈에 들어왔다.

'미쳤다, 진짜.'

지호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몇 분 지나지 않아 다시 그쪽을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왜?”

휘웅이 불쑥 물었다.

“네?”

“아까부터 계속 보고 있잖아.”

“...누가요?”

“윤지호.”

너무 자연스럽게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지호는 괜히 컵을 들어 올렸다.

“안 봤거든요.”

“그래?”

휘웅이 턱을 괸 채 웃었다.

분명 평소와 똑같은 말투였다.

그런데 오늘따라 괜히 사람을 더 민망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지호는 괜히 창밖만 바라봤다.

그때 휘웅이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캠핑은 어땠어?”

“...좋았죠.”

“그게 끝?”

“뭐가요.”

지호는 머뭇거렸다.

좋았다. 분명 좋았다.

하지만 왜 좋은지 설명하려고 하면 자꾸만 기억나지 않는 밤이 떠올랐다.

“그냥… 오랜만에 바람도 쐬고.”

“머리도 식히고.”

휘웅이 피식 웃었다.

지호는 괜히 시선을 피했다.

정작 자신이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어젯밤. 정확히는 자신이 잃어버린 기억. 그리고 그 꿈.

그런데 차마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순간, 휘웅이 낮게 중얼거렸다.

“나는 꽤 특별한 밤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지호의 손이 멈췄다.

“...특별한 밤이요?”

“응.”

휘웅은 여전히 느긋한 얼굴이었다.

오히려 너무 태연해서 더 수상했다.

“저는 술에 취해서 잘 모르겠어요.”

“그래?”

“...네.”

휘웅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그럼 다행이네.”

“뭐가요?”

“혹시 기억을 통째로 잃어버린 줄 알고 걱정했거든.”

지호는 눈을 깜빡였다.

“기억을 잃어버리면 안 되는 일이 있었어요?”

휘웅은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그 웃음이 대답보다 더 많은 걸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지호는 점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설마 진짜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겠지?'

하지만 아무리 떠올려도 기억나는 건 모닥불과 밤공기뿐이었다.

결국 지호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저기… 진짜로요.”

휘웅이 컵을 내려놓았다.

“응?”

“제가 어제 뭐 실수한 거 아니죠?”

잠시 정적이 흘렀다.

휘웅은 그런 지호를 빤히 바라보더니, 아주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글쎄.”

“아, 진짜.”

지호가 얼굴을 붉히며 투덜거렸다.

“헷갈리게 하지 마세요.”

그 말에 휘웅이 작게 웃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몸을 조금 기울이며 말했다.

“그럼 다음에 또 캠핑 가자.”

“...갑자기요?”

“응.”

“왜요?”

휘웅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그때는 네가 안 잊어버릴 만큼 더 기억에 남는 추억 만들어 주려고.”

순간, 지호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오, 오빠는 그런 말을 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해요?”

“내가?”

“네.”

휘웅은 웃으며 다시 커피를 마셨다.

붉은 입술이 컵에 닿았다가 천천히 떨어졌다.

지호는 또다시 괜히 그 입술만 바라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대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는데, 꿈속에서조차 그 사람의 얼굴이 선명한 걸까.

창밖에서는 캐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다가오는 연말을 기다리며 들떠 있었고, 카페 창문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반짝였다.

하지만 지금 지호의 머릿속에는 캐럴도, 크리스마스도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강휘웅.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 그 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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