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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작가: 루니
last update 게시일: 2026-08-05 11:45:09

강준혁은 아내에게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세라의 회사 로비에서는 반지 상자를 들고 47분째 출입을 구걸하고 있었다.

서윤이 그 모습을 본 건 세라가 보낸 23초짜리 CCTV 영상에서였다.

준혁은 출입선을 막은 경호원에게 명함을 내밀었다가 거절당하자 반지 상자를 꺼냈고,

직원들이 지나갈 때마다 통화하는 척 얼굴을 돌렸다.

곧이어 세라에게 전화가 왔다.

“당신 남편 좀 데려가요.”

“경찰을 부르세요.”

“그 전에 들어야 할 말이 있어요. 강준혁이 당신과 딸을 버리겠다고 약속하는 말.”

“왜 나한테 들려주죠?”

“내가 저 인간 때문에 직원들 앞에서 망신당하고 있으니까요.

오후 3시까지 와요. 안 오면 경호팀이 끌어낼 거예요.”

누아벨은 강림그룹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건물 전체가 문세라의 소유였다.

로비 전광판에는 세라가 직접 모델로 선 속옷 광고가 걸려 있었고,

준혁은 그 아래에서 대표실 출입 허가만 기다리고 있었다.

서윤은 그를 지나 전용 엘리베이터에 탔다. 준혁은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느라 아내를 발견하지 못했다.

대표실 책상 위에는 반지 상자 3개가 놓여 있었다.

“강준혁이 준 거예요?”

“처리하기 귀찮아서 모아둔 거예요.”

첫 번째 반지의 주문일은 하은의 돌잔치 다음 날이었다.

준혁은 딸의 첫 생일을 치른 뒤 세라에게 결혼하자고 매달렸다.

두 번째는 서윤이 산후우울증 진단을 받은 날이었다.

세 번째 반지의 결제일은 10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그날 준혁은 야근이라며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서윤에게는 꽃 한 송이 보내지 않았다.

반지 안쪽에는 같은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내 마지막 여자에게.

“3번이나 청혼했네요.”

“3번이나 거절했죠.”

“그러면서 계속 만났고요?”

“필요할 때 불렀어요. 필요 없을 때 돌려보냈고.”

세라는 휴대전화 연락처를 열어 책상 위로 밀었다. 준혁은 본명으로 저장돼 있지 않았다.

금요일-강.

“사람 이름도 아니네요.”

“사람으로 저장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당신은 장난감처럼 썼다고 생각하겠죠.”

“틀렸어요?”

“저 인간이 묻힌 쓰레기는 전부 내 집과 내 아이한테 돌아왔어요. 당신도 깨끗하지 않아요.”

세라는 변명하지 않았다.

“깨끗하다고 한 적 없어요. 유부남인 걸 알면서 불렀고, 그 책임은 피하지 않아요.

다만 사랑해서 그랬다는 싸구려 변명은 안 한다는 거죠.”

세라의 휴대전화에는 준혁이 보낸 메시지가 46개 쌓여 있었다.

[서윤하고 끝낼게.]

[하은도 포기할 수 있어.]

[네가 싫다면 애도 필요 없어.]

서윤이 화면을 찍자 세라는 막지 않았다. 그러나 자료를 보내주지도 않았다.

“봤으면 됐죠. 나머지는 당신이 알아서 찾아요.”

세라는 준혁에게 전화를 걸어 스피커를 켰다.

“왜 왔어요?”

“세라야, 한 번만 보자. 서윤이 그 씨발년 때문에 일이 다 꼬였어.”

“무슨 일?”

“집에 여자들 불렀는데 애까지 데리고 처들어와서 파티 망쳤잖아. 이제는 이혼하겠다고 지랄이고.”

“이혼하면 딸은요?”

“돼지년한테 던져주면 되지. 네가 애 딸린 남자 싫다며.”

“정말 하은이도 필요 없어요?”

“네가 싫다면 필요 없어. 씨발, 애가 뭐 대단해? 다시 낳으면 되잖아.”

서윤은 그 말을 녹음했다.

세라는 한 번 더 물었다.

“아내한테 돈은 줄 거예요?”

“한 푼도 안 줘. 집도 회사도 다 우리 집 명의고,

그년 정신과 기록 까면 양육권이고 재산분할이고 끝이야.

먹고 토하는 미친년이 법원에서 뭘 주장하겠어?”

“그런데 왜 아직 같이 살아요?”

“밥하고 빨래하고 우리 엄마 상대할 년은 필요하니까. 너한테 그런 좆같은 일 시킬 순 없잖아.”

“나는 뭐예요?”

“내 여자지.”

“아니요. 다시 생각해봐요.”

준혁은 다급하게 말을 쏟아냈다.

“너 때문에 여자도 줄였어. 10명 넘던 걸 5명으로 줄였다고.

네가 결혼하자고 하면 다 끊을 수 있어.”

“아내와 딸도?”

“당장 버릴게.”

세라는 통화를 끊었다.

서윤은 녹음 파일의 이름을 바꿨다.

강준혁_양육포기_재산은닉발언_원본.

“그걸 어디에 쓰려고요?”

“당신을 용서하는 데 쓰지는 않을 거예요.”

“그건 다행이네요.”

“하지만 저 인간을 무너뜨리는 데는 전부 쓰겠습니다.”

대표실 문이 열리자 준혁이 출입선을 넘어오려 했다.

“세라야, 서윤이 여기 왜 있어? 저년이 무슨 개소리를 했는데?”

경호원 2명이 막아서자 그는 아내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너 당장 집에 가. 남의 회사까지 처기어와서 또 무슨 개망신을 시키려고 해?”

조금 전까지 세라에게 아내와 딸을 버리겠다고 매달리던 남자가

아내를 보자 다시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세라야, 쟤 말 듣지 마. 처먹고 토해서 대가리가 온전하지 않은 년이야.

내가 집에 끌고 가서 조용히 시킬게.”

세라는 준혁이 들고 온 반지 상자를 경호팀장에게 건넸다.

“폐기하세요.”

“세라야.”

“강준혁 씨는 앞으로 예약 없이 건물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세요.”

“이 씨발, 내가 누군지 몰라?”

“그래서 출입금지시키는 거예요.”

경호원들이 준혁을 유리문 밖으로 끌어냈다.

그는 끝까지 서윤을 향해 집에 가서 기다리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세라는 그런 준혁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한서윤 씨.”

“네.”

“남편 관리 좀 해요.”

세라는 유리문을 두드리며 결혼하자고 소리치는 준혁을 가리켰다.

“나한테 자꾸 결혼 얘기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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