ホーム / 로맨스 / 퇴사 사유: 대표님 / 11화. 휴가 신청서

共有

11화. 휴가 신청서

作者: Jino
last update 公開日: 2026-10-22 12:02:25

나는 스테이플러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이거 회사 비품이에요?”

“네. 비품함에서 가져왔습니다.”

“그럼 의장님이 챙기신 건 심이 아니라 제 서랍이네요.”

시환이 열린 서랍을 봤다.

“그렇습니다.”

‘아니. 인정이 너무 빨라.’

나는 서랍을 닫았다. 시환은 더 말하지 않고 가방을 고쳐 들었다.

“먼저 가겠습니다.”

“네. 내일 뵐게요.”

말이 나온 뒤에야 고개를 들었다.

시환이 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

“내일도 옵니다.”

오는지 물은 적은 없었다.

나는 묶어 놓은 서류를 괜히 한 번 더 맞췄다.

▲

6월 5일 금요일, 엄마는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전화했다.

“나 서울이야.”

나는 휴가 신청서에서 눈을 들었다.

오후 반차를 쓰려고 채 대표에게 올릴 서류였다. 엄마를 역에서 만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벌써? 도착하면 전화하라니까.”

“했잖아.”

“지금 역이야?”

“아니. 네 회사.”

나는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창문 아래로 큰 가방이 먼저 보였다. 짧은 파마머리와 익숙한 점퍼가 그 뒤에 있었다.

그리고 옆에 셔츠 소매를 걷은 사람이 서 있었다.

‘아니. 왜 둘이 같이 있어.’

“엄마, 거기서 기다려. 바로 내려갈게.”

“그러려고. 여기 직원분이 문도 열어 줬어.”

나는 휴가 신청서를 들고 채 대표 자리로 갔다.

“대표님, 오후 반차 신청한 거요. 엄마가 조금 일찍 오셔서요.”

채 대표가 서류를 받았다.

“어머님 오셨어요? 들어오시라고 해요.”

“밑에 계세요. 잠깐 모셔 올게요.”

“그럼 내가 이것부터 볼게요.”

신청서는 채 대표 손에 남았다.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급하게 내려가다가 마지막 계단에서는 속도를 줄였다. 숨이 찬 채로 나오면 엄마가 또 밥 안 먹고 다니냐고 할 게 뻔했다.

뒷문을 열자 엄마가 나를 발견했다.

“우리 딸.”

“길은 어떻게 찾았어?”

“네가 보내 준 거 보고. 우체국에서 일한 사람이 건물 하나 못 찾겠니.”

엄마가 내 팔을 잡았다. 시환은 엄마의 가방을 들고 있지 않았다. 대신 문이 닫히지 않도록 손으로 잡고 있었다.

엄마가 시환을 돌아봤다.

“그런데 누구야?”

나는 입을 열었다.

“여기 의장…….”

“원지유 씨를 따라온 사람입니다.”

내 말이 중간에서 멈췄다.

엄마의 손도 멈췄다.

시환은 문을 잡은 그대로였다. 엄마가 못 들은 줄 알았는지 고개를 조금 숙였다.

“우시환입니다.”

“아.”

엄마가 시환의 얼굴을 봤다. 내 얼굴을 봤다. 다시 시환을 봤다.

내 팔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잠깐 우리 딸 좀 데려갈게요.”

“네.”

엄마는 나를 건물 옆으로 끌고 갔다. 시환에게서 몇 걸음 떨어지자마자 목소리를 낮췄다.

“뭐야 저 사람, 왜 저렇게 솔직해.”

“엄마도 느꼈지.”

“느낀 게 아니라 들었지. 따라왔대잖아.”

나는 손목시계를 보는 척했다.

엄마가 내 손목을 눌러 내렸다.

“시계 보지 말고. 누구냐고.”

“전에 회사 대표님.”

“네가 그만둔 회사?”

“응. 지금은 여기 의장님이야.”

엄마의 시선이 내 어깨 너머로 갔다.

시환은 다른 직원이 드나들 수 있게 문 옆으로 비켜 서 있었다.

“네가 옮겼는데 저 사람도 여기 온 거야?”

“회사가 인수됐어. 원래 검토하던 회사였대. 그걸 좀 빨리 진행한 거고.”

“그래서 따라왔다는 말도 맞고?”

나는 입술을 눌렀다가 뗐다.

“둘 다 맞대.”

엄마는 한동안 나를 봤다.

“불편하면 말은 할 수 있고?”

“응. 내가 싫다고 하면 안 해.”

“그건 잘하네.”

“엄마, 아직 아무것도 안 했어.”

엄마가 내 팔을 놓았다.

“내가 뭘 했다고 하니.”

‘아니. 내가 먼저 설명했다. 괜히.’

건물 쪽으로 돌아가자 시환이 물었다.

“가방은 사무실에 두시겠습니까?”

엄마가 가방 끈을 고쳐 잡았다.

“제가 들게요. 안에 반찬이 있어서 세우면 안 돼요.”

“그러면 문을 잡겠습니다.”

“고마워요.”

시환은 가방에 손을 뻗지 않았다.

나는 엄마 뒤로 들어가며 말했다.

“의장님, 아까 설명은 제가 할 수 있었는데요.”

“네.”

“너무 짧게 하셨어요.”

시환이 나를 봤다.

“틀린 부분은 없습니다.”

‘맞아. 없지. 그래서 문제지.’

▲

엄마는 사무실에 올라오자 먼저 내 책상을 찾았다.

“여기 앉는 거야?”

“응. 지금은 이쪽 자리.”

“책상 넓네.”

엄마가 서류 받침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나는 얼른 빈 의자를 가져왔다.

은채가 자기 머리의 색 핀을 한번 눌러 보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김은채예요. 지유 대리님이랑 같이 일해요.”

“우리 딸 잘 부탁해요.”

“제가 부탁드려야 하는데요. 일정 놓칠 것 같으면 먼저 알려 주세요.”

엄마가 나를 봤다.

나는 엄마 눈을 피하고 의자를 밀어 줬다.

채 대표도 작업물을 내려놓고 다가왔다.

“채보경입니다. 지유 씨 덕을 많이 보고 있어요.”

“석춘희예요. 아이가 여기 오고 싶다고 얘기를 많이 했어요.”

나는 엄마를 봤다.

“많이는 아니고.”

“명절에 다이어리 들고 와서 이것 좀 보라고 했잖아.”

은채가 웃었다.

채 대표는 자기 책상에서 판매용 다이어리 견본을 가져왔다. 엄마는 가방에서 안경을 꺼내 쓰고 한 장씩 넘겼다.

“종이가 좋네. 글씨 써도 뒤에 덜 비치겠어.”

“그거 신경 많이 썼어요.”

은채가 바로 대답했다.

엄마는 끝까지 넘긴 뒤 다이어리를 덮었다.

“이걸로 3권 살 수 있어요? 우리 딸 회사 거라고 동네 사람들 주려고.”

“제가 아래에서 가져올게요.”

나는 재고표를 확인했다. 엄마는 벌써 가방에서 지갑을 찾고 있었다.

“엄마, 직원 할인 돼. 그걸로 계산하면 돼.”

“너한테 주는 할인인데 내가 써도 돼?”

“가족 구매도 확인하면…….”

“어머님은 공짜.”

채 대표가 먼저 계단으로 향했다.

“대표님, 잠깐만요.”

나는 뒤따라갔다.

“선물로 주시는 건 감사한데, 출고 기록은 남겨야 해요.”

채 대표가 계단 중간에서 돌아봤다.

“그럼 어떻게 적어요?”

“대표님 증정으로요. 판매랑은 나눠서 적고요.”

“그렇게 해요. 예쁜 걸로 드릴게요.”

“엄마가 고른 색으로 가져갈게요.”

“그렇지. 색을 안 물었네.”

채 대표가 웃으며 다시 올라갔다.

나는 창고에서 포장된 다이어리를 꺼냈다. 엄마가 고른 색을 확인하고 수량을 적었다.

내가 들고 올라가자 엄마는 채 대표와 서로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그래도 물건인데 돈 받아야죠.”

“제가 드리는 거예요. 대신 끝까지 써 주세요.”

엄마가 포장을 받았다.

“그러면 그렇게 전할게요. 쓰라고 받은 거라고.”

“네. 그럼 좋죠.”

나는 증정 출고 기록을 채 대표에게 보여 줬다. 채 대표가 확인하고 이름을 썼다.

엄마는 그 모습을 가만히 봤다.

“너 여기서도 꼼꼼하게 하는구나.”

“안 적어 두면 나중에 수량이 안 맞아.”

“알지. 엄마도 우체국에서 물건 하나 비면 퇴근 못 했어.”

엄마는 다이어리를 가방에 넣다가 다시 꺼냈다.

반찬통 위에 얹으면 눌릴까 봐 따로 들겠다고 했다.

은채가 작은 빈 상자를 가져왔다.

“여기 넣으세요. 들고 가시기 편해요.”

엄마는 상자 바닥을 손으로 눌러 보고 고맙다고 했다.

시환은 창가에서 서류를 보다가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노트북을 닫았다.

엄마가 먼저 말을 걸었다.

“내일 저녁은 시간 있어요?”

나는 상자 손잡이를 놓칠 뻔했다.

“엄마.”

“너한테 물은 거 아니야.”

시환이 나를 먼저 봤다.

“팀장 대행께서 괜찮으시면 있습니다.”

엄마도 나를 봤다.

은채는 빈 상자 뚜껑을 접는 일을 갑자기 아주 열심히 했다.

‘아니. 왜 내 결재야. 저녁도.’

“저는 괜찮아요.”

시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있습니다.”

엄마가 만족한 얼굴로 지갑을 넣었다.

“저녁은 내가 살게요. 오늘 우리 딸 반차 썼으니까 이제 데려가도 되죠?”

채 대표가 결재한 신청서를 내밀었다.

“네. 다녀와요.”

나는 남은 업무를 은채에게 짧게 알려 줬다. 확인 중인 품목은 회신이 오면 내 자리 서류 받침에 두기로 했다.

엄마는 먼저 계단으로 내려갔다.

시환이 문 쪽에서 비켜섰다.

“잘 다녀오십시오.”

“의장님은 내일 퇴근 시간 같은 거 생각 안 하셔도 돼요. 쉬는 날이니까요.”

“약속 시간만 알려 주시면 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계단을 내려갔다.

엄마는 벌써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네가 시간 정해 주면 오나 보네.”

“저녁 약속은 원래 시간을 정하잖아.”

“알아.”

엄마가 가방을 내게 넘겼다.

“얼굴은 왜 빨개.”

“계단 내려와서.”

“내려왔는데?”

나는 가방을 고쳐 들고 먼저 걸었다.

▲

6월 6일 토요일, 엄마는 내 오피스텔에서 반찬통을 전부 확인한 뒤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연근 반찬은 냉장고 앞줄에 있었다.

“잘 보이는 데 둬. 뒤에 넣으면 또 잊어.”

“응.”

“용기째 먹지 말고 덜어 먹고.”

“알았어.”

내 식사 지침은 식당 앞까지 이어졌다.

시환은 먼저 와 있었다. 셔츠 소매는 평소처럼 걷혀 있었지만 가방은 없었다.

엄마가 손을 들어 인사했다.

시환은 식당 문을 열어 주고 우리가 들어간 뒤 따라왔다.

자리에 앉자 엄마가 메뉴를 펼쳤다.

“못 먹는 거 있어요?”

“없습니다.”

“지유는 연근 있으면 좋아하고.”

“압니다.”

엄마가 메뉴에서 눈을 들었다.

나는 물잔을 들었다.

시환이 짧게 덧붙였다.

“같이 식사할 때 봤습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직원이 차를 고를 수 있다고 해서 엄마는 옥수수차를 골랐다. 시환도 그걸로 부탁했다.

“커피는 안 마셔요?”

“네.”

“속이 약한가.”

“속은 괜찮습니다. 옥수수차를 마십니다.”

나는 메뉴로 입가를 가렸다.

엄마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럼 잘됐네. 여기 따뜻하게도 준대요.”

차가 나오자 시환은 잔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 엄마는 뜨거운지 먼저 손을 대 봤다.

“나이가 어떻게 돼요?”

“서른넷입니다.”

“우리 애보다 다섯 살 많네.”

“네.”

“전에 회사에서는 같이 일한 지 오래됐어요?”

“원지유 씨가 입사한 때부터입니다.”

“5년?”

“네.”

엄마는 밥그릇을 받으며 나를 봤다.

“그러면 얘가 일할 때 어떤지는 잘 알겠네.”

“잘합니다.”

내가 수저를 놓으려는데 시환이 말을 이었다.

“확인하지 않은 일은 약속하지 않습니다. 사람도 잘 기억하고요.”

엄마가 웃었다.

“어릴 때도 그랬어요. 엄마 손님 얼굴을 나보다 먼저 알아보고.”

“엄마, 밥 먹자.”

“먹고 있어.”

엄마는 정말 밥을 먹고 있었다. 질문 사이에 반찬도 챙겼다.

시환의 앞접시가 비어 있자 엄마가 반찬을 권했다. 시환은 직접 덜어 먹고 고맙다고 했다.

나는 어제 그 말을 또 할까 봐 기다렸다.

따라온 사람.

그 말을 식당 한가운데서 다시 들을 준비는 안 돼 있었다.

엄마는 뜻밖에 다른 걸 물었다.

“여기서는 우리 애 일에 직접 지시하는 건 아니죠?”

“네. 업무 지시는 하지 않습니다.”

“그럼 회사 일은 누구한테 물어봐요?”

“채 대표께 여쭙니다.”

엄마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네가 하던 얘기랑 같네.”

“그렇다니까.”

“확인한 거야.”

엄마가 수저를 내려놓고 시환을 봤다.

“어제 따라왔다고 했잖아요. 지유가 부담스러워하면요?”

내 손이 밥그릇 옆에서 멈췄다.

시환은 바로 대답했다.

“물러납니다.”

“서운하다고 우리 애한테 뭐라고 하지는 않고?”

“안 합니다.”

엄마는 시환의 얼굴을 잠깐 살폈다.

나는 앞접시의 연근을 집었다가 다시 놓았다.

시환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 내 쪽을 보며 대답을 보태 달라는 표정도 짓지 않았다.

엄마가 다시 수저를 들었다.

“그럼 됐어요. 둘이 얘기할 건 둘이 하고.”

나는 엄마를 봤다.

“그걸 지금 물어봐야 했어?”

“궁금했으니까.”

엄마가 내 앞접시를 가리켰다.

“연근은 왜 놓고 있어. 먹어.”

‘아니. 중요한 얘기 끝. 반찬으로 복귀.’

나는 연근을 먹었다.

시환도 자기 밥그릇을 당겼다.

엄마는 이번에는 시환에게 반찬이 짜지 않은지 물었다. 시환이 괜찮다고 하자 그제야 편하게 밥을 먹었다.

▲

식사를 마친 뒤 시환은 계산대로 나서지 않았다.

엄마가 사겠다고 한 말을 그대로 지켰다.

대신 식당 밖에서 말했다.

“잘 먹었습니다.”

“다음에는 내가 얻어먹을게요.”

“네.”

나는 엄마 옆에서 가방을 받았다.

역까지는 우리끼리 가기로 했다. 엄마가 시환에게도 집에 가 쉬라고 하자 시환은 짧게 인사했다.

“조심히 가십시오.”

엄마는 몇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봤다.

시환은 우리가 길을 건너기 전까지 식당 앞에 있었다. 건너편에 도착하자 고개를 한번 숙이고 돌아섰다.

엄마가 말했다.

“말은 짧은데 대답은 다 하네.”

“안 하는 것도 있어.”

“그건 너한테 할 얘기겠지.”

나는 가방 끈을 고쳐 잡았다.

엄마가 내 손을 보고 자기 가방을 가져갔다.

“엄마는 네가 싫은데 참는지만 알면 돼.”

“참는 건 아니야.”

엄마는 더 묻지 않았다.

역에 도착해서는 다이어리 상자를 한번 열어 봤다. 포장이 잘 있는 걸 확인한 뒤 다시 닫았다.

“하나는 옆집 주고, 하나는 전에 같이 일한 사람 주고.”

“남은 하나는?”

“내가 쓸 거야.”

“동네 사람들 준다며.”

“나도 동네 사람이잖아.”

나는 웃다가 상자 손잡이를 바로 세워 줬다.

엄마는 기차를 타기 전에 내 재킷 깃을 눌러 줬다.

“너는 네 일 잘해. 오늘 보니까 잘하고 있더라.”

“응. 도착하면 전화해.”

“할게.”

엄마가 들어가는 걸 보고도 나는 잠깐 서 있었다.

휴대폰를 꺼내 시환과의 대화창을 열었다.

엄마 잘 보내 드렸다고 쓰려다가 손을 멈췄다.

그 말을 왜 보고하려고 했는지부터 생각했다.

‘업무 아님. 보고도 아님. 그러면.’

대화창을 닫지 못한 채 역 밖으로 나왔다.

휴대폰가 짧게 울렸다.

『우시환 대표이사: 어머님께 거짓말은 안 했습니다. 다만 다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다 말할 날은 당신이 정하세요.』

(11화 끝)

この本を無料で読み続ける
コードをスキャンしてアプリをダウンロード

最新チャプター

  • 퇴사 사유: 대표님   40화. 품의서

    나는 알림을 누르고 첨부된 파일이 있는지 확인했다.없었다.‘아니. 품의서라며. 올렸다며.’화면을 조금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 결재자 이름도, 기한도 그대로였다. 정작 결재할 서류만 없었다.나는 답장을 쓰려다 손을 멈췄다.확인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어디인지 물으면 대답할 사람이었다.그런데 지금 물으면 잠은 더 못 잘 게 뻔했다.휴대폰를 내려놓고 이불을 당겼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혼자 이러는 거 좀 억울한데.’나는 옆에 놓인 다이어리를 펼쳤다. 어제 일정의 마지막 줄은 집 앞이었다. 다음 장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손끝으로 빈칸을 눌렀다.토요일 일정은 내가 정하면 됐다.«▲»11월 21일 토요일 아침, 나는 혼자 종이달로 걸어갔다.검정 재킷 위에 외투를 걸쳤다. 가방에는 평소 쓰던 다이어리를 넣었다. 일할 때 쓰는 안경은 두고 왔다.서류 한 장 읽으러 가는 데 안경까지 챙기면 너무 준비한 사람으로 보였다.‘재킷은 입었잖아. 이미 준비했네.’솔숲길은 평일보다 조용했다. 종이달 앞에 도착하자 2층 창가에 불이 켜져 있었다.나는 손목시계를 봤다.8시 40분이었다.계단을 올라가면서 가방 끈을 짧게 잡았다. 사무실 문을 열자 창가 책상에 앉아 있던 시환이 일어났다.셔츠 소매가 걷혀 있었다. 평소처럼.그런데 책상 위에는 노트북도, 온빛 서류도 없었다.“일찍 왔네요.”“서류 확인하러 왔어요.”“네.”시환은 내 자리 쪽으로 눈을 돌렸다.내 책상 위에 결재판이 놓여 있었다. 평일에는 출시 일정과 거래처 주문서가 꽂혀 있던 자리에 오늘은 종이 한 장만 놓여 있었다.나는 가방을 의자에 내려놓았다.외투를 벗어 등받이에 걸고, 결재판 앞에 섰다. 손바닥을 재킷에 한 번 문지른 다음 종이를 들었다.『품의서』『건명: 혼인.』나는 첫 줄 아래에서 멈췄다.‘아니. 예상은 했는데. 이렇게 바로.’시환은 창가 책상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읽었는지 묻지도, 다음 줄을 설명하지도 않았다.나는 종이를 조금 더

  • 퇴사 사유: 대표님   39화. 연차 결재

    나는 출고표를 놓고 시환을 봤다.“3년 만에 내는 연차를 제 생일에 쓰시는 거예요?”“네.”“그날 급한 일이 생기면요?”“담당자가 있습니다.”“전화는요?”“급한 건 받습니다. 나머지는 다음 날입니다.”나는 시환의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를 봤다. 화면이 꺼져 있었다.“저한테도 적용돼요?”“무슨 뜻입니까?”“종이달에서 연락 오면 제가 받아도 되는지요.”“내가 정할 일이 아닙니다.”시환이 내 출고표를 가리켰다.“팀장이 정하면 됩니다.”‘확인. 연차를 내도 팀장이네.’나는 출고표를 파일에 넣었다.“급한 건 받을게요. 나머지는 다음 날로요.”“좋습니다.”시환은 창가 책상으로 돌아가 다이어리를 폈다. 내가 가까이 가자 펼친 쪽을 손으로 가렸다.“업무 서류예요?”“아닙니다.”“그럼 안 볼게요.”나는 가방을 들었다. 시환의 손이 종이 위에서 조금 움직였다. 손바닥 아래로 작은 글씨가 빽빽했다.일정표 같은데.나는 묻지 않고 먼저 계단으로 향했다.«▲»11월 20일 금요일 아침,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떴다.침대에서 손부터 뻗었다. 휴대폰를 들고 시간을 확인한 다음, 평소처럼 출고 담당자에게 보낼 말을 생각했다.‘아니. 연차. 오늘 연차.’나는 화면을 내려놓았다.잠을 더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 현관 벨이 울렸다.배송이었다.문 앞 상자에는 내 이름과 남란희의 이름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상자를 식탁에 놓고 포장을 열었다. 진하게 볶은 옥수수가 든 봉지와 작은 거름망, 뚜껑이 있는 잔이 들어 있었다.봉지 옆에 접힌 종이가 있었다.『지유 씨, 생일 축하해요. 오늘은 끓이지 말고 얻어 마셔요.』나는 잔을 꺼내 손잡이를 잡아 봤다. 손가락이 편하게 들어갔다.구내식당에서 차를 끓이던 날, 뜨거운 잔을 내려놓느라 손잡이를 자꾸 바꿔 잡았었다. 그때 내 손을 보고 있던 작은 눈이 떠올랐다.휴대폰가 울렸다.엄마였다.영상통화를 받자 화면 아래에서 엄마의 턱이 먼저 나왔다.“엄마. 조금만 위로.”“이만큼?”“너무 위로.

  • 퇴사 사유: 대표님   38화. 면담 기록

    나는 방문 일정표와 시환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버릇 설명을 회장님께 맡기신다고요?”“네.”“의장님이 말하면 제가 왜 안 믿는데요?”시환이 종이 모서리에서 손을 완전히 뗐다.“믿고 나면 내가 일을 못 할 것 같아서요.”‘아니. 설명이 하나 더 필요해졌는데.’나는 가방 끈을 어깨에 걸었다.“그럼 다음 주까지는 일하실 수 있겠네요.”“그럴 예정입니다.”시환은 내 책상에 남은 파일을 가리켰다.“이건 꽂아 둡니까?”“제가 할게요. 순서가 있어요.”“알겠습니다.”손을 내밀던 시환이 바로 물러났다. 나는 파일을 서류장에 넣고 문을 닫았다.일정표는 책상 위에 그대로 뒀다.다음 주 수요일.회사 방문 일정 아래에 질문 하나가 더 생겼다. 따로 적지는 않았다.«▲»11월 11일 수요일, 은채가 내 재킷 깃을 보고 손을 들었다.“팀장님. 잠깐만요.”“뭐 묻었어요?”“실이요.”은채는 내 대답을 기다렸다가 깃 끝에 붙은 짧은 실을 떼었다. 검정 재킷 위에 흰 실 하나가 있었다.“됐어요.”“고마워요.”“오늘은 옷을 너무 자주 확인하세요.”나는 손목시계에서 손을 내렸다.‘아니. 시간 확인이었다. 절반은.’“출고 시간 보고 있었어요.”“출고표는 저쪽인데요.”은채가 규민의 책상을 가리켰다. 규민은 배송지 확인을 마친 서류를 들고 일어났다.“창고 먼저 내려가 있을게요. 회장님 오셔도 작업은 그대로 하겠습니다.”“네. 통로만 확인해 주세요.”“상자 치우려고요?”“아뇨. 지나갈 자리요. 나갈 물건을 숨길 필요는 없죠.”규민이 고개를 끄덕이고 내려갔다.채 대표는 작업복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에 묻은 잉크를 닦았다. 닦다가 멈추더니 손바닥을 나한테 보였다.“이건 안 지워지네.”“그대로 계셔도 돼요.”“의장님도 그랬어요. 그런데 내가 악수하다가 묻힐까 봐.”채 대표는 손수건으로 손가락 끝을 한 번 더 눌렀다.창가에서 시환이 일어났다. 셔츠 소매는 오늘도 걷혀 있었다. 책상에는 읽던 서류가 뒤집혀 놓였고, 옆에는 빈 찻잔

  • 퇴사 사유: 대표님   37화. 재인쇄 발주서

    나는 바뀐 이름을 한 번 더 눌러 봤다. 사진도, 연락처도 그대로였다.토마토 담당만 새로 붙었다.‘아니. 담당 작물은 다 땄는데. 다음 업무는 언제 생기나.’화면을 끄려는데 냉장고에 넣어 둔 잼이 생각났다. 나는 작은 병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어제 조금 기울게 붙은 이름표는 내가 고쳐 놓은 자리에서 잘 붙어 있었다.한 숟가락을 덜어 맛을 봤다.달았다.시환이 붙인 이름표까지 보고 있는 건 맛을 확인하는 데 필요한 절차는 아니었다.‘확인. 업무 아니다.’나는 병을 다시 냉장고에 넣었다.«▲»11월 4일 수요일, 내 책상에는 잼 병 대신 재인쇄 발주서가 놓여 있었다.『도담 다이어리 2차 인쇄. 발주 수량: 1만 부.』규민이 서류 옆에 인쇄소 견적을 내려놓았다.“표지는 초도하고 같은 사양입니다. 모 사장님이 종이 확보해 두셨대요.”“인쇄 들어가기 전에 최종 견본만 다시 볼게요. 은채한테 넘겨 주세요.”“도담 이름이 붙으니까 제가 더 자주 보게 되네요.”규민은 서류의 제품명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나는 검토란에 표시하다가 고개를 들었다.“집에서도 보시잖아요.”“집에 있는 도담은 새벽에도 봅니다.”자리에서 들리던 은채의 웃음이 짧게 끊겼다.“그럼 회사에 있는 도담이 더 얌전하네요.”“여기 있는 도담은 울지는 않으니까요.”나는 발주 수량을 다시 확인했다.초도 1만 2천 부를 보낼 때는 창고를 내려갈 때마다 남은 상자부터 셌다. 이번에는 들어올 상자를 어디에 둘지 먼저 정해야 했다.“창고에 입고 자리도 잡아 주세요. 직거래 출고분하고 글벗 납품분은 섞이지 않게요.”“네. 재주문서 기준으로 나누겠습니다.”규민이 서류를 챙겨 내려갔다. 나는 발주서에 붙일 근거 자료를 순서대로 놓았다. 재주문 집계, 입금 확인, 판매 정산.결재판에 끼우기 전에는 빠진 서류가 없는지 한 번 더 넘겼다.창가에서 시환이 물었다.“인쇄 들어갑니까?”“채 대표님 결재받고요.”“잘됐습니다.”“아직 견본 검수가 남았어요.”“그것도 잘하실 겁니다.”

  • 퇴사 사유: 대표님   36화. 송년 행사 기획안

    “제 생일에 뭘 하시려고요?”시환은 내가 들고 있던 가방을 받아 들지 않고, 계단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내려가자는 뜻이었다.“일정 짜고 있습니다.”“누가요?”“내가요.”나는 가방 끈을 어깨에 올렸다.“혹시 제가 검토해야 해요?”“그날은 일 안 합니다.”“일정 검토도요?”“안 합니다.”‘아니. 검토 없는 일정이라니. 저 사람 입에서.’시환이 계단 불을 켰다. 나는 먼저 내려가다가 뒤를 돌아봤다.“그럼 그날은 비서 안 해요.”“팀장입니다. 지금도.”발을 헛디딜 뻔했다. 난간을 잡고 아무 일도 없는 척 내려갔다.뒤에서 시환이 말했다.“천천히 가십시오.”“알아요.”‘안다. 계단인 것도. 지금 팀장인 것도.’그런데 저 사람은 내가 자꾸 잊는 쪽만 정확히 짚었다.«▲»10월 23일 금요일, 내 책상에는 생일 일정표 대신 송년 행사 기획안이 놓여 있었다.다음 인쇄를 기다리는 동안 직거래처의 재주문 의사를 확인하고, 온빛몰 문의를 정리하고, 행사까지 준비해야 했다. 연말은 아직 멀었는데 할 일은 먼저 와 있었다.나는 행사 날짜 후보를 적은 서류를 규민에게 건넸다.“창고 출고하고 겹치는 날부터 빼 주세요. 거래처 납품일도요.”“행사는 근무시간 안에 끝내는 쪽으로요?”“네. 참석 못 하는 사람한테 따로 업무를 얹지는 말고요.”규민이 서류 위에 손을 올렸다.“그럼 저는 참석하겠습니다.”“아직 날짜도 안 정했는데요.”“일단 의사 표시부터 하는 겁니다.”은채가 자기 자리에서 고개를 들었다.“저도요. 그리고 장기 자랑은 빼 주세요.”“아직 넣지도 않았어요.”“넣기 전에 말씀드리는 거예요.”나는 기획안의 빈칸을 내려다봤다.『진행 내용』그 아래에는 아직 아무것도 없었다. 종이가 벌써 직원들의 반대를 받았다.‘확인. 빈칸도 조심하자.’창가에서는 채 대표가 토마토를 따고 있었다. 작은 그릇에 마지막 남은 열매를 옮긴 뒤, 옆 화분을 향해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의장님, 이것도 따도 돼요?”시환의 곁가지 화분에는 토마

  • 퇴사 사유: 대표님   35화. 완판 보고서

    나는 휴대폰를 내려놓고 집계판의 빈칸에 온빛몰 출고 수량을 적었다.『2,200부』규민이 그 아래에 선을 그었다. 은채는 상품 사진이 제대로 올라갔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했고, 채 대표는 창고 열쇠를 챙겼다.“월요일에 다 나갈까.”채 대표가 숫자를 보며 말했다.“나가는 만큼 확인하고 보내면 돼요. 아직 주문 안 들어온 수량을 먼저 지우지는 말고요.”나는 집계판 옆에 확인할 항목을 붙였다. 결제 완료, 주문 취소, 출고 대기.‘확인. 할 일은 있다. 걱정은 집에 가서.’가방을 들자 시환이 사무실 불을 하나씩 껐다. 집계판 위의 불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 껐다.«▲»10월 12일 월요일, 나는 평소보다 먼저 출근해서 창고 수량부터 확인했다.직거래 주문 상자에는 가게 이름이 붙어 있었다. 그 옆에는 온빛몰로 나갈 물량이 따로 쌓여 있었다.포장 담당 직원이 명단을 가져왔다.“직접 찾으러 오시는 분들도 오늘부터죠?”“네. 약속 시간 적어 뒀어요. 주문서 확인하고 드리면 돼요.”나는 상자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가 뗐다. 손에 묻은 먼지를 털고 2층으로 올라갔다.은채는 자기 자리에 앉자마자 판매 화면을 열었다.“팀장님, 저 이거 계속 보고 있어도 돼요?”“상품 문의도 같이 봐 주세요.”“네. 그건 제가 만든 거니까 제가 답할게요.”나는 주문 관리 화면을 켰다. 채 대표는 옆에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시환이 창가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았을 때, 첫 주문 알림이 떴다.8시 40분이었다.채 대표가 내 팔을 잡았다.“들어왔어.”“네. 결제 확인됐어요.”“진짜로?”“지금 여기 보시면 돼요.”나는 화면을 조금 돌렸다. 채 대표는 안경을 썼다가 벗었다가 다시 썼다.은채가 자리에서 고개를 내밀었다.“대표님, 안경 문제 아니에요.”“알아. 나도 알아.”채 대표는 내 팔을 놓았다. 이번에는 자기 무릎 위에 손을 가지런히 올렸다.알림이 다시 떴다.나는 주문서를 내려받고 주소 누락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사이 은채가 문의에 답했고, 규민은

続きを読む
無料で面白い小説を探して読んでみましょう
GoodNovel アプリで人気小説に無料で!お好きな本をダウンロードして、いつでもどこでも読みましょう!
アプリで無料で本を読む
コードをスキャンしてアプリで読む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