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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책임의 선언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19 06:58:50

위협은 예고로 끝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건우 앞으로 소송 예고 통지서가 도착했다.

허위 사실 유포 및 기업 이미지 훼손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이었다.

아직 언론에 공개된 것도 없었는데, 움직임을 감지한 쪽이 먼저 선을 긋고 나온 셈이었다.

건우는 통지서를 내려놓고 잠시 눈을 감았다.

이건 겁을 주기 위한 문서가 아니라, 움직이지 못하게 묶는 족쇄였다.

하나는 그 서류를 읽는 동안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종이를 잡은 손끝이 미세하게 굳었다.

“선제 봉쇄네.”

그녀가 낮게 말했다.

“언론 접촉까지 파악했다는 거야.”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시하고 있었다는 거지.”

하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제 개인을 치는 단계야.”

그녀는 차분하게 분석했지만, 그 안에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

사건의 진실을 막을 수 없다면, 사람을 겁줘 멈추게 만드는 방식.

그것은 법을 가장한 폭력이었다.

“그만하자.”

건우가 조용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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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수의 밤   82. 방향의 설정

    특별팀은 빠르게 움직였다.이관 발표 사흘 만에 공식 브리핑이 열렸고, 사건의 초점은 ‘기업 내부 보안 관리 미흡’으로 재정리되었다. 형의 사고는 직접적 타살 가능성이 아닌, 관리 소홀과 외주 계약자의 일탈 가능성으로 방향이 잡히고 있었다.하나는 화면을 조용히 껐다.“선이 바뀌었어.”그녀가 낮게 말했다.건우는 고개를 들었다.“어떻게.”“구조에서 개인으로.”그녀의 말은 차분했지만 날카로웠다.“외주 계약자 하나가 독단적으로 움직였다는 그림으로 가고 있어.”건우는 잠시 생각했다.“그럼 위는 깨끗해.”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빠르게 움직이는 거야.”특별팀은 분명 수사를 하고 있었다.문제는 방향이었다.형의 브레이크 절단 정황과 지하 통로 조명 제어 기록은 모두 ‘현장 단위’의 문제로 묶이고 있었다. 시스템을 흔드는 선은 의도적으로 건드리지 않는 느낌이었다.“이관이 정리가 될 수도 있겠네.”건우가 낮게 말했다.하나는 그를 바라봤다.“이대로 덮으려는 거야.”그 말은 단정이 아니라 우려였다.그날 저녁, 하나는 외부 감사관에게서 비공식 연락을 받았다.특별팀 내부에서 그녀가 남긴 기록 일부를 ‘감정적 판단’으로 분류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내용이었다.하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예상했어.”그녀는 담담히 말했다.“내 이름이 들어간 자료는 신뢰도에서 먼저 깎일 거야.”건우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묘하게 조여왔다.“그럼 네가 빠진 게 의미 없어지는 거잖아.”하나는 고개를 저었다.“아니.”그녀의 눈빛이 또렷해졌다.“내가 빠졌기 때문에 그쪽이 이렇게 정리하는 게 보여.”그녀는 테이블 위에 자료를 펼쳤다.“특별팀이 손댄 구간만 보면, 상층 연결 고리는 다 비켜가.”건우는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느꼈다.이건 단순 수사가 아니라, 방향 설정이었다.“다시 해야 할지도 몰라.”그가 낮게 말했다.하나는 그를 바라봤다.“무슨 뜻이야.”“처음부터.”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결이 달라졌다.“형 사고, 외주

  • 형수의 밤   81. 선택의 경계

    CCTV 영상 속 남자의 얼굴은 선명하지 않았지만, 체형과 걸음걸이, 휴대폰을 조작하는 손의 각도까지 분석한 결과 하나의 이름이 떠올랐다. 계열사 보안팀 외주 계약자 중 한 명, 사고 당시 형의 동선 근처에서도 기지국 위치가 겹쳤던 인물이었다.확정은 아니었지만, 우연이라 보기엔 겹침이 지나치게 많았다.하나는 자료를 정리하며 말했다.“이 사람, 형 사고 직전에도 근처에 있었어.”건우의 눈빛이 달라졌다.“그럼 연결선이 생겨.”“아직은 선이야.”그녀는 고개를 저었다.“점이 아니야.”그 말은 냉정했다.감정으로는 이미 확정이었지만, 법적으로는 아직 가설이었다.그 순간, 감사관에게서 연락이 왔다.외부 압력으로 사건의 관할을 상부 특별팀으로 이관한다는 통보였다.공식 이유는 ‘공정성 확보’였다.하나는 통화를 끊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이관이래.”그녀가 낮게 말했다.건우는 바로 이해했다.사건을 빼앗는 방식이었다.“그럼 넌.”그가 묻자, 하나는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난 완전히 빠져.”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눈빛은 흔들렸다.“기록은 넘어가. 내가 모은 자료도.”그 말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었다.이건 싸움의 주도권을 잃는다는 뜻이었다.건우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알고 있었다.이관은 수사를 정리하는 가장 깔끔한 방법이라는 걸.“넌 괜찮아?”그가 물었다.하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괜찮지.”그러나 그 한 단어에는 오래 붙잡고 있던 무게가 실려 있었다.“내가 계속 들고 있으면 더 흔들려. 저쪽은 나를 공격하는 걸 멈추지 않을 거야.”그녀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특별팀이 맡으면, 적어도 표면은 깨끗해져.”그녀의 선택은 전략이었다.그러나 그 전략은, 동시에 자신을 뒤로 빼는 일이기도 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 두 사람 사이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건우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말했다.“그럼 여기까지야?”그 질문은 사건을 향한 것인지, 감정을 향한 것인지 모호했다.하나는 운전대를

  • 형수의 밤   80. 결심의 눈빛

    CCTV 원본은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건물 관리 측은 이미 일부 자료를 내부 보관용으로 전환했다는 이유를 들었고, 감사관 협조 공문이 있어야만 열람이 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하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사건 당시 조명 고장 신고와 삭제된 구간이 일치한다는 점을 조목조목 짚으며, 기록 보존 의무를 환기시켰다.건우는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그는 말없이 서 있었지만, 시선은 단단했다.결국 원본 일부가 복구되었다.영상은 짧았지만 명확했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남자가 지하 통로 쪽으로 이동하는 장면, 조명이 꺼지기 직전 그가 휴대폰을 조작하는 모습, 그리고 그 이후 일정 시간대가 통째로 삭제된 흔적.하나는 화면을 멈추었다.“우연 아니네.”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손끝이 미묘하게 굳어 있었다.건우는 영상을 다시 재생했다.남자의 얼굴은 선명하지 않았지만, 동작은 분명히 계산되어 있었다. 조명은 단순 고장이 아니라 원격 제어에 가까운 방식이었다.“사고 재현이야.”건우가 낮게 말했다.하나는 시선을 돌렸다.“무슨 뜻이야.”“형 때처럼.”그의 목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았다.“빛을 꺼놓고, 움직임을 제한하고, 우연처럼 보이게.”하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그녀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형의 사고 현장 사진을 처음 봤던 날과 겹쳐지는 구조였다.“이번엔 실패했어.”그녀가 조용히 말했다.“기록이 남았으니까.”그러나 그 말의 뒤에는 다른 감정이 숨어 있었다.실패했기 때문에, 다음은 더 정교해질 수 있다는 생각.돌아오는 길, 하나는 평소보다 말이 없었다.운전석을 잡은 손이 평소보다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건우는 그걸 보았다.“무서워?”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하나는 대답하지 않았다.잠시 후, 아주 낮게 말했다.“응.”그 한 단어는 솔직했다.“나도 사람이라.”그녀는 억지로 웃지 않았다.“이번엔 그냥 협박이 아니라… 계획이었어.”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더 화나.”그는 덧붙였다.“너를

  • 형수의 밤   79. 선을 넘은 흔적

    엘리베이터 사건 이후 이틀 만에, 감사관 쪽에서 회신이 왔다.지하 통로 CCTV 일부가 삭제되어 있었고, 조명 고장 신고가 사건 발생 직전 접수되었다가 철회된 기록이 확인되었다.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정교했다.하나는 그 자료를 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이건 감정적 압박이 아니라, 의도된 설계였다.“계획이야.”그녀가 낮게 말했다.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움직임을 유도하려고.”그는 이해하고 있었다. 위협을 노출시켜 자신을 자극하고, 감정적 대응을 끌어내려는 방식. 그가 선을 넘는 순간, 저쪽은 법적 우위를 점한다.“이번엔 우리가 기록을 먼저 남겼어.”하나는 담담히 말했다.그러나 그 말의 끝에는 피로가 묻어 있었다.그날 저녁, 하나는 외부 감사관과의 추가 면담을 마치고 건물을 나섰다.이번에는 경비가 강화된 지상 출입구를 이용했다. 사람도 많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상한 시선을 느꼈다.주차장으로 향하던 순간, 휴대폰이 진동했다.건우였다.“지금 나와 있어?”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응. 왜.”“뒤 돌아보지 말고, 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하나는 잠시 멈췄다.“뭐야.”“검은 모자, 회색 재킷.”건우의 숨소리가 거칠었다.“네 뒤 20미터.”그녀는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돌아보지 않았다.경비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유리문 너머로 남자가 방향을 틀어 사라졌다.건우는 건물 맞은편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우연이 아니었다. 이틀 전 차량도 같은 번호 대역이었다.그는 이를 악물었다.“내가 간다.”그가 말하자, 하나가 즉시 끊었다.“오지 마.”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여기 CCTV 다 있어. 내가 처리할게.”건우는 주먹을 쥔 채 한동안 서 있었다.몸은 이미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머리가 그를 붙잡았다.이번에도 유도다.이번에도.집으로 돌아온 뒤, 건우는 말수가 적어졌다.하나는 서류를 정리하다가 그를 바라봤다.“왜 아무 말도 안 해.”그녀가 물었다.건우는 한참 후에야

  • 형수의 밤   78. 지켜보는 힘

    위협은 점점 대놓고 드러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었다.타이어 훼손 사건 이후, 하나의 동선은 누군가에 의해 꾸준히 관찰되고 있었다. 직접적인 접촉은 없었지만, 그녀가 나오는 건물 입구에 같은 차량이 반복적으로 서 있었고, 감사관과 면담한 날에는 모르는 번호로 공백 전화가 여러 차례 걸려왔다.하나는 그 모든 것을 정리했다.시간, 위치, 차량 번호 일부, 통화 기록. 감정은 여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그러나 배제되어 있을 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그날 저녁, 그녀는 사건 관련 자료를 외부 서버로 백업한 뒤 늦게 건물을 나섰다.지상 주차장 대신 지하 통로를 택했다. CCTV가 더 많은 쪽이었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누군가 손을 끼워 넣었다.문이 다시 열렸다.정장을 입은 남자였다.얼굴은 낯설었지만, 눈빛은 낯설지 않았다. 계산된 침착함.“늦으셨네요.”그가 웃으며 말했다.하나는 대답하지 않았다.엘리베이터는 천천히 내려갔다.정적은 길지 않았지만 무거웠다.“괜히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남자가 조용히 말했다.“사건은 조직이 정리할 겁니다.”그 문장은 협박이 아니라 권유처럼 들리도록 설계되어 있었다.하나는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당신이 조직입니까.”남자는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조직은 얼굴이 없습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는 먼저 내렸다.지하 통로는 평소보다 어두웠다. 몇 개의 조명이 꺼져 있었다.하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그러나 그 남자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그녀의 앞을 막았다.“지금이라도 기록을 거두시면.”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다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그 순간, 손이 그녀의 팔을 스쳤다.세게 잡은 것은 아니었지만, 명백한 선 넘기였다.하나는 즉시 팔을 빼며 말했다.“손 치워.”그녀의 눈빛이 차가워졌다.남자의 표정이 아주 미묘하게 굳었다.“경고했습니다.”그는 낮게 말하고 돌아섰다.그녀는 몇 초간 서 있었다.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지만, 얼굴은 굳지 않았다.그녀는 휴대폰

  • 형수의 밤   77. 멈추지 않는 밤

    감사 기록이 접수된 지 사흘째 되던 날, 예상대로 반격이 들어왔다.언론에는 또 다른 익명 제보가 흘러나왔고, 이번에는 하나의 개인 생활을 들추는 방식이었다. 수사와 직접 관련은 없었지만, 판단의 공정성을 의심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한 구성으로 짜여 있었다.하나는 화면을 조용히 닫았다.“이번엔 나를 흔드는 게 목적이네.”그녀의 말은 담담했지만, 건우는 그 이면을 읽었다.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건 공격이 아니라 반복이다.“멈출 생각은 없어?”건우가 물었다.하나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지금 멈추면, 저쪽은 확신할 거야. 이렇게 하면 꺾인다고.”그녀는 이미 선택한 사람의 얼굴이었다.그날 저녁, 하나는 감사관과의 추가 면담을 마치고 늦게 건물을 나섰다.주차장에는 평소보다 차량이 적었고, 조명이 일부 꺼져 있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공간의 어색함을 느꼈다.차에 올라 시동을 걸려던 순간, 뒷좌석 쪽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몸이 먼저 반응했다. 문을 열고 내려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다시 운전석에 앉아 백미러를 조정했다.그리고 그제야 보았다.타이어 한쪽이 미묘하게 내려앉아 있었다.펑크는 아니었지만, 날카로운 물체에 긁힌 흔적이 선명했다.단순한 장난이라고 보기엔 위치가 교묘했다.하나는 핸들을 잡은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이건 경고다.그리고 이번엔 노골적이다.그녀는 건우에게 바로 전화하지 않았다. 대신 견인 업체를 부르고, 상황을 사진으로 남겼다. 모든 것은 기록이다. 감정은 뒤로. 건우는 그녀가 늦는 걸 이상하게 여겼다.연락이 닿지 않자, 그는 차를 몰고 그녀의 건물 쪽으로 향했다.주차장 입구에서 견인차를 발견한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괜찮아?”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거칠었다.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타이어 긁어놨더라.”그녀는 차분히 말했다.“누군가 일부러.”건우의 턱이 굳었다.“이번엔 나야.”그가 중얼거렸다.하나는 그를 바라봤다.“아니. 이번에도 우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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