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오후.유럽 총괄 주간회의가 끝난 뒤에도 화면 하나만 꺼지지 않았다.서울.차도현.회사에서는 세림홀딩스 대표.집에서는 남편.그리고 어떤 밤에는 내가 주도권을 맡기는 사람.“한 총괄.”“네, 대표님.”“파리 쪽 수정안 확인했습니다.”“문제 있나요?”“없습니다.”“그럼 오늘은 일찍 끝나겠네요.”도현의 눈빛이 아주 조금 달라졌다.“집에 몇 시쯤 옵니까?”“일곱 시 전에는요.”“좋습니다.”나는 괜히 웃었다.“왜요?”“그냥.”“대표님이 그냥이라고 말하는 날도 있네요.”“사람은 변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300화에서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바람에 웃음이 났다.“맞네요.”회의 화면을 끄려는데 도현이 불렀다.“한서윤.”직함이 사라졌다.그 짧은 변화만으로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왜요?”“집에 오면.”그가 잠깐 말을 멈췄다.“회사에서 쓰던 호칭은 전부 금지입니다.”나는 눈썹을 올렸다.“대표님도?”“특히 그거.”“왜요?”“오늘은 회사에서 이어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그 말이 조금 의외였다.도현은 늘 회사와 사생활의 경계를 명확히 했지만, 결국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까지 지우지는 못했다.그런데 오늘은 달랐다.“그럼 뭐라고 불러요?”“집에 와서 정하세요.”“또 제가 정해요?”“이번에는 시작만.”그의 입가에 아주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그다음은 내가 할 테니까.”화면이 꺼졌다.나는 한동안 검어진 모니터를 바라봤다.301화의 빈칸과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어제는 내가 원하는 걸 문장으로 채웠다.오늘은 반대로—회사에서 쓰던 것을 하나씩 벗겨내는 날 같았다.---집에 도착했을 때 도현은 이미 와 있었다.현관에 익숙한 구두가 놓여 있었다.거실 조명은 평소보다 조금 어두웠지만, 일부러 꾸민 흔적은 없었다.상자도 없고.카드도 없고.종이도 없었다.도현은 주방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셔츠 소매는 팔꿈치까지 걷혀 있었고, 넥타이는 이미 풀어둔 상태였다.“왔어요?”“네.”
ปรับปรุงล่าสุด : 2026-08-29 อ่านเพิ่มเติ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