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플레이 가이드라인 (Play Guideline): Kapitel 591 – Kapitel 600

817 Kapitel

《591화 : 첫 번째 독자의 조건》

오후 9시 37분. 은서율은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기지개를 켰다. “주인님, 잠깐 읽어보실래요?” 최태혁은 소파에서 일어났다. “벌써 완성했어?” “아니요. 첫 장면만요.” 태혁은 그녀 옆에 앉아 화면을 읽었다. 존재하지 않는 역에서 내리겠다는 여자. 터널을 통과하자 승객 명단에서 사라진 좌석 번호. 그리고 아무도 그 여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열차. 태혁은 마지막 문장에서 시선을 멈췄다. “남자는 왜 여자를 기억하는 거야?” 서율이 웃었다. “그게 핵심이에요.” “그럼 질문 하나 해도 돼?” “네.” “여자가 실제로 탔다는 증거는 있어?” 서율은 눈을 깜빡였다. “아직 안 썼는데요.” “그럼 남자가 여자를 봤다는 사실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거네.” 서율은 화면을 다시 바라봤다. “그러네요.” 태혁은 의자를 조금 당겼다. “처음부터 남자를 믿어도 되는지 궁금하게 만들면 재미있겠어.” 서율의 눈이 반짝였다. “주인님, 생각보다 날카로우신데요?” “첫 번째 독자라며.” “맞아요.” 서율은 수첩에 그의 의견을 적었다. 오후 10시 4분. “그런데 주인님.” “응?” “첫 번째 독자에게는 조건이 있어요.” 태혁이 눈썹을 올렸다. “무슨 조건?” “재미없으면 재미없다고 말씀하시기.” “그건 당연하지.” “그리고 제가 좋아할 만한 말만 하지 않기.” 태혁은 그녀를 바라봤다. “그럼 너도 조건 하나 들어줘.” “뭔데요?” “내 의견이 마음에 안 들어도 무조건 고치려고 하지는 마.” 서율은 잠시 생각했다. “왜요?” “작품은 네가 쓰는 거니까. 나는 독자로서 이야기하는 거고.” 서율은 미소 지었다. “좋아요. 그럼 서로 솔직해지기.” 두 사람은 가볍게 손가락을 걸었다. 그때 태혁이 화면 아래쪽을 가리켰다. “그런데 이 장면은 조금 이상해.” “어디요?” “열차가 터널을 빠져나왔는데 남자가 바로 승무원을 찾아가잖아.” “네.” “그전에 여자가 정말 사라졌는지 확인하는 행동이 하나쯤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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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2화 : 사라진 승객의 거짓말》

다음 날 오전 10시 23분. “주인님, 준비되셨어요?” 은서율은 거실 테이블 위에 휴대전화를 세웠다. 최태혁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어디부터 시작해?” “여자가 사라지기 직전이요. 그런데 오늘은 제가 쓴 대본을 주인님께 안 보여드릴 거예요.” “그럼 내 대사는?” “즉흥으로 하시면 돼요.” 태혁은 웃었다. “작가가 배우한테 꽤 어려운 주문을 하는군.” “주인님이라면 가능하시잖아요.” 서율은 녹음 버튼을 눌렀다. “시작!” 그녀는 순식간에 표정을 바꿨다. “저는 다음 역에서 내려야 해요.” 태혁이 물었다. “승차권에는 종착역까지라고 적혀 있는데요?” “표를 잘못 샀어요.” “그럼 왜 아까부터 창밖만 보고 있습니까?” 서율은 잠시 멈칫했다. “누군가 기다리고 있어서요.” “누가요?” “말씀드릴 수 없어요.” 태혁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이상하군요.” “뭐가요?” “당신은 내게 먼저 말을 걸었어요. 그런데 정작 내가 묻는 건 하나도 대답하지 않는군요.” 서율은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태혁의 질문이 생각보다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시 연기에 집중했다. “당신이 저를 도와줄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럼 먼저 이름부터 말해보시죠.” 서율은 입술을 다물었다. 대본에 없는 질문이었다. 잠시 뒤 그녀가 대답했다. “제 이름은…… 없습니다.” 태혁의 눈썹이 올라갔다. “이름이 없다고요?” “누군가 제 이름을 가져갔거든요.” 그 순간 서율은 녹음을 멈췄다. “잠깐!” 태혁이 웃었다. “왜?” “방금 대사 너무 좋은데요?” “네가 한 말이잖아.” “그러니까요!” 서율은 노트북을 열었다. 《누군가 제 이름을 가져갔거든요.》 그녀는 문장을 저장했다. 오전 11시 6분. 태혁은 서율이 수정한 원고를 읽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왜 남자에게 접근한 거야?” “그건 아직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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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3화 : 주인님의 냉정한 평가》

오후 1시 36분. “주인님, 다 썼어요!” 은서율은 노트북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최태혁은 식탁을 정리하다 그녀를 돌아봤다. “벌써?” “낭독극 초안이요. 15분 분량으로 줄였어요.” “그럼 읽어볼까?” 서율은 노트북을 건네며 소파에 앉았다. “대신 약속 기억하시죠?” “냉정하게 평가하기.” “네. 봐주시면 안 돼요.” 태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서율은 처음에는 얌전히 기다렸다. 그러나 5분쯤 지나자 그의 표정이 궁금해졌다. “주인님, 재미있어요?” “읽는 중.” “표정이 너무 진지하신데요.” “집중하고 있으니까.” 서율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10분 뒤, 태혁이 노트북을 내려놓았다. “다 읽었어.” “어때요?” “도입부는 좋아.” 서율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다음은요?” “중간부터 조금 헷갈려.” “어디가요?” 태혁은 화면을 돌려 보여줬다. “여자가 사라진 뒤 남자가 0번 열쇠를 발견하잖아. 그런데 그 열쇠가 왜 중요한지 알기도 전에 다른 단서가 3개나 나와.” 서율은 원고를 살펴봤다. “아…….” “낭독극이면 관객이 다시 읽을 수 없잖아. 중요한 단서 하나에 집중하는 편이 낫겠어.” 서율은 수첩을 꺼냈다. “또요?” 태혁은 잠시 망설였다. “결말도 조금 아쉬워.” 서율의 손이 멈췄다. “결말이요?” “남자가 여자를 기억해 내면서 끝나는데, 그 기억이 왜 중요한지 감정적으로 와닿지는 않아.” 서율은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장면이었다. “그럼 마지막 장면을 바꿔야 할까요?” 태혁은 고개를 저었다. “꼭 바꿀 필요는 없어. 앞부분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조금 더 보여주면 되겠지.” 서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오후 2시 8분. 서율은 수정할 부분을 표시하다가 펜을 내려놓았다. “주인님.” “응?” “저 조금 삐졌어요.” 태혁이 그녀를 바라봤다. “왜?” “결말이 아쉽다고 하셔서요.” “솔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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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4화 : 첫 번째 독자보다 먼저》

오후 8시 16분. “주인님, 저 결말 정했어요.” 카페를 나서던 은서율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차태혁은 그녀를 돌아봤다. “벌써?” “네. 그런데 집에 가서 보여드릴게요.” “왜 지금은 안 돼?” “이번에는 완성된 장면으로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태혁은 미소 지었다. “좋아. 기다리지.” 서율은 그의 팔짱을 꼈다. “대신 오늘은 제가 밤늦게까지 쓰더라도 잔소리하시면 안 돼요.” “몇 시까지?” “음…… 12시?” “내일 일정은?” “없어요.” “그럼 12시까지만.” 서율은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조건이 붙네요.” “약속한 시간은 지켜야지.” 오후 9시 4분. 집에 돌아온 서율은 곧바로 노트북을 켰다. 태혁은 따뜻한 차를 가져다주었다. “고마워요, 주인님.” “막히면 불러.” 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새로 쓰기 시작한 장면은 열차의 첫 번째 정차역이었다. 남자는 승객 명단에 없는 여자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는 여자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서율은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열차에 남아 있던 마지막 기억마저 사라진다.》 그녀는 문장을 읽고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야. 이건 너무 복잡해.” 문장을 지웠다. 이번에는 남자가 오래전 여자를 만났다는 설정을 넣었다. 하지만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으음…….” 그때 태혁이 서재 문을 두드렸다. “서율아, 괜찮아?” “네. 그런데 조금 막혔어요.” “들어가도 돼?” “네.” 태혁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디가 문제야?” 서율은 의자를 돌렸다. “남자가 여자를 찾아온 이유요. 너무 특별하게 만들려고 하니까 오히려 억지스러워져요.” 태혁은 화면 대신 그녀를 바라봤다. “그럼 가장 단순한 이유부터 생각해 봐.” “단순한 이유요?” “다시 만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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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5화 : 두 번째 독자의 질문》

다음 날 오후 2시 14분.“주인님, 저 너무 긴장돼요.”은서율은 카페 창가에 앉아 원고를 가지런히 정리했다.최태혁이 맞은편에서 웃었다.“어제 무대에서도 잘했잖아.”“그거랑은 다르죠. 오늘은 제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시는 거잖아요.”“그럼 더 좋은 기회지.”그때 카페 문이 열렸다.전날 낭독 모임에서 질문했던 여성이 들어왔다.“은서율 작가님 맞으시죠?”서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네! 안녕하세요.”“저는 정하린이에요.”서율은 태혁을 소개했다.“제 남편이에요. 원고를 가장 먼저 읽어준 사람이기도 하고요.”하린이 웃었다.“그럼 오늘은 제가 두 번째 독자네요.”오후 2시 37분.하린은 원고를 읽는 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서율은 괜히 물잔만 만지작거렸다.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하린이 펜을 내려놓았다.“작가님, 재미있어요.”서율의 얼굴이 밝아졌다.“정말요?”“네. 특히 여자가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장면이 좋았어요.”하린은 원고의 중간 부분을 펼쳤다.“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말씀하세요.”“이 남자는 왜 여자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까지 감수하면서 편지를 돌려주려고 했을까요?”서율은 잠시 생각했다.“그 편지가 여자에게 중요한 물건이니까요.”“그건 이해했어요. 그런데 남자에게도 그만큼 중요한 이유가 있으면 좋겠어요.”태혁은 아무 말 없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하린이 덧붙였다.“남자가 단순히 착한 사람이라서 도와주는 것보다, 자기에게도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더 궁금할 것 같거든요.”서율은 수첩에 그 말을 적었다.“그 부분은 생각 못 했어요.”오후 3시 6분.하린이 돌아간 뒤 서율은 원고를 다시 펼쳤다.“주인님, 오늘 질문도 어렵네요.”“그만큼 깊게 읽었다는 뜻이겠지.”“남자에게도 잃어버린 게 있어야 한다…….”서율은 마지막 페이지를 바라봤다.그러다가 펜으로 한 문장을 적었다.《남자는 여자의 이름을 기억했지만, 정작 그녀와 함께했던 자신의 시간을 잊고 있었다.》태혁이 문장을 읽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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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6화 : 혼자 완성한 마지막 장면》

오후 5시 18분.은서율은 원고의 마지막 페이지를 다시 읽었다.남자는 여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하지만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은 기억하지 못했다.서율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문장을 지웠다.“설명하지 말고 보여주자.”그녀는 새로운 장면을 입력했다.남자가 0번 열쇠로 보관함을 열자 낡은 승차권 2장이 나타났다.그중 1장에는 남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다른 1장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여자는 그 빈 승차권을 집어 들었다.“당신이 지운 건 제 이름이 아니에요.”“그럼 뭡니까?”“우리가 함께 내리기로 했던 약속이요.”서율은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이번에는 마음에 들었다.오후 6시 2분.“서율아, 저녁 먹자.”서재 밖에서 최태혁의 목소리가 들렸다.“네! 지금 나가요.”서율은 문서를 저장하고 거실로 나왔다.식탁에는 따뜻한 국과 반찬이 놓여 있었다.“주인님이 다 준비하셨어요?”“응. 오늘은 네가 바빠 보이길래.”서율은 자리에 앉았다.“저 드디어 결말 고쳤어요.”“잘됐네.”“안 궁금하세요?”태혁은 웃었다.“궁금하지. 그런데 네가 완성할 때까지 안 보여주겠다고 했잖아.”서율은 숟가락을 들다가 멈췄다.“주인님은 제가 말한 걸 정말 잘 지키시네요.”“그게 약속이니까.”서율은 미소 지었다.“그럼 식사 끝나고 보여드릴게요.”오후 7시 11분.태혁은 수정된 대본을 읽고 있었다.서율은 맞은편에서 그의 표정을 살폈다.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태혁이 물었다.“이번에는 남자가 스스로 기억을 지운 거야?”“네. 여자를 보호하려고요.”“그런데 여자는 보호받는 걸 원하지 않았고?”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함께 결정하고 싶었던 거죠.”태혁은 대본을 내려놓았다.“이전보다 두 사람의 갈등이 분명해졌어.”서율의 얼굴이 밝아졌다.“정말요?”“응. 다만 마지막에 여자가 남자를 용서하는 건 조금 빠른 것 같아.”서율은 잠시 생각했다.“그럼 바로 화해하지 않는 게 나을까요?”“그건 네가 판단해.”태혁은 원고를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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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7화 : 처음 만나는 남자》

토요일 오후 2시 16분. “주인님, 오늘은 절대 아는 척하시면 안 돼요.” 은서율은 연기 스튜디오 앞에서 최태혁의 셔츠 깃을 정리했다. “알겠어.” “그리고 저한테 여보라고 하시면 탈락이에요.” 태혁이 웃었다. “탈락하면?” “커피 사기요.” “그 정도면 괜찮겠는데.” “일부러 틀리시면 2잔이에요.” 서율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먼저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오늘 수업의 주제는 \*\*《낯선 사람과의 첫 만남》\*\*이었다. 강사는 참가자들에게 상황 카드를 나눠주었다. “상대방의 실제 성격이나 관계는 잊으세요. 카드에 적힌 인물로 처음 만나는 겁니다.” 서율은 자신의 카드를 펼쳤다. 《약속 장소를 잘못 찾아온 여자. 낯선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다.》 태혁의 카드에는 다른 내용이 적혀 있었다. 《기다리던 사람이 오지 않은 남자. 상대방에게 먼저 말을 건다.》 서율은 웃음을 참았다. ‘이거 재미있겠는데?’ 오후 2시 38분. 작은 무대에는 카페 테이블과 의자 2개가 놓였다. 서율이 먼저 들어왔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시늉을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여기라고 했는데…….” 태혁은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누구 찾으십니까?” 서율은 경계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쪽한테 말씀드릴 이유는 없는데요.”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태혁은 태연하게 말했다. “그렇군요. 그럼 제가 잘못 물었습니다.” 서율은 잠시 당황했다. 당연히 계속 말을 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일부러 옆 테이블에 앉았다. “혹시 여기 처음 오셨어요?” 이번에는 서율이 먼저 물었다. 태혁이 고개를 돌렸다. “아니요. 자주 옵니다.” “그럼 이 근처에 다른 카페도 있나요?” “있습니다.” “어디요?” 태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알려드리면 믿으실 겁니까?” 서율은 웃음이 나올 뻔했다. “글쎄요. 아직은요.” “그럼 직접 확인하시는 편이 낫겠군요.” 강사가 손뼉을 쳤다.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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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8화 : 예상 밖의 상대역》

토요일 오후 2시 12분. “주인님, 오늘은 제가 이길 거예요.” 은서율은 연기 스튜디오로 들어서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최태혁이 웃었다. “연기에 승패가 있었어?” “주인님을 먼저 당황하게 만들면 제가 이기는 거죠.” “그럼 열심히 해봐.” 서율은 장난스럽게 그의 팔을 툭 쳤다. 그때 강사가 참가자들을 불렀다. “오늘은 즉흥 상황 전환 수업입니다. 지난 시간과 달리 상대역을 현장에서 무작위로 정하겠습니다.” 서율의 걸음이 멈췄다. “네?” 강사는 번호표가 담긴 상자를 내밀었다. “익숙한 상대에게 의존하지 않는 연습이에요.” 서율은 태혁을 돌아봤다. “주인님, 우리 따로 하는 거예요?” “그런 모양인데.” 태혁은 태연하게 번호표를 뽑았다. 12번. 서율은 7번이었다. “아…….” 태혁이 웃었다. “왜?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며.” “그건 다음 기회에요.” 오후 2시 36분. 서율의 상대는 연기 수업에 여러 번 참여했다는 남자였다. 강사가 상황을 발표했다. “두 사람은 같은 식당을 예약했지만, 예약 기록에는 한 사람의 이름만 남아 있습니다.”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먼저 예약했습니다.” 서율은 곧바로 대답했다. “저도 예약 확인 문자가 있는데요?” “그럼 누가 잘못된 정보를 받은 걸까요?” 서율은 잠시 생각했다. “직원에게 확인해 보면 되겠죠.” 그때 강사가 카드를 들어 올렸다. 《상황 변경 : 식당은 이미 문을 닫았다.》 남자가 웃었다. “이제 확인할 직원도 없네요.” 서율은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곧 주변을 살피는 시늉을 했다. “그럼 예약 문제는 내일 해결하고, 지금은 다른 식당을 찾죠.”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서율은 그를 바라봤다. “문 닫았다니까요?” “누군가는 돌아오겠죠.” 서율은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 상대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다. 그녀는 새로운 상황을 만들었다. “그럼 제가 옆 가게에서 의자라도 빌려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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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9화 : 다시 사랑하게 되는 이유》

“당신은 왜 오늘 저를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대하기로 했습니까?” 최태혁의 질문에 은서율은 잠시 말을 잃었다. 연기라는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건…….” 서율은 잡고 있던 손을 천천히 놓았다. “당신이 저를 기억하지 못하니까요.” “그 이유뿐입니까?” “아니요.” 서율은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10년을 함께 살았다고 해서 앞으로의 당신까지 전부 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태혁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럼 다시 알아가겠다는 겁니까?” “네. 오늘 좋아하는 음식부터 물어보고, 내일은 싫어하는 걸 물어볼 거예요.” “그렇게 오래 걸려도 괜찮습니까?” 서율은 미소 지었다. “우리에겐 시간이 많잖아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태혁이 손을 내밀었다. “그럼 오늘 저녁부터 함께하시겠습니까?” 서율은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좋아요. 대신 계산은 각자 해요. 오늘 처음 만났으니까요.”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강사가 손뼉을 쳤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오후 4시 12분. “주인님, 마지막에 계산은 각자 하자는 말 어땠어요?” 스튜디오를 나오며 서율이 물었다. “너답던데.” “왜요?” “감동적인 분위기에서도 현실적인 문제는 확실히 하잖아.” 서율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오늘 저녁도 각자 계산할까요?” “아니. 오늘은 내가 살게.” “왜요?” 태혁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처음 만난 은서율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서율은 웃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주인님, 우리 진짜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하세요?” “기억하지.” “그때 저한테 무슨 생각 하셨어요?” “생각보다 말이 많다고.” “네?” “그리고 표정에 생각이 다 드러난다고.” 서율은 그의 팔을 가볍게 때렸다. “좋은 얘기는 없어요?” 태혁은 웃었다. “계속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었어.” 서율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그건 마음에 드네요.” 오후 6시 28분. 저녁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서점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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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화 : 주인님이 처음 받아본 지시》

일요일 오전 9시 12분.“주인님, 오늘 준비물 확인하셨어요?”은서율이 현관에서 물었다.최태혁은 작은 가방을 들어 보였다.“운동화, 편한 옷, 물. 전부 챙겼어.”“좋아요. 그럼 출발!”“어디 가는지는 아직도 비밀이야?”“네. 도착하면 알려드릴게요.”서율은 태혁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그는 그녀가 평소보다 신나 보인다는 사실에 웃음을 지었다.오전 10시 26분.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실내 체험장이었다.입구에는 커다란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블라인드 미션 하우스 — 역할 교환 협동 체험》태혁이 안내판을 읽었다.“협동 체험?”“네. 오늘은 제가 주인님을 안내할 거예요.”“어떻게?”“직접 해보시면 알아요.”직원이 두 사람을 맞이했다.“이번 체험은 한 분이 안내자, 다른 한 분이 탐험자가 됩니다. 탐험자는 일부 구간에서 눈가리개를 착용하고 안내자의 말에 따라 이동하게 됩니다.”태혁은 서율을 돌아봤다.“그래서 운동화를 챙기라고 했구나.”서율은 웃었다.“맞아요.”직원이 덧붙였다.“진행 중 언제든 중단하실 수 있고, 장애물 구간에는 안전요원이 함께합니다.”태혁은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오전 10시 41분.첫 번째 공간은 작은 미로였다.태혁이 눈가리개를 착용하자 서율은 그의 옆에 섰다.“주인님, 준비되셨어요?”“응.”“그럼 앞으로 3걸음만 걸으세요.”태혁이 천천히 움직였다.“이제 오른쪽으로 돌아주세요.”그는 방향을 바꿨다.“잘하고 계세요.”“서율아.”“네?”“생각보다 네 목소리에 집중하게 되네.”서율은 미소 지었다.“그럼 계속 제 말만 들으세요.”그녀는 바닥의 표시를 확인했다.“앞에 낮은 턱이 있어요. 발을 조금 높이 들어주세요.”태혁은 안내에 따라 턱을 넘었다.그런데 다음 구간에서 서율이 갑자기 말을 멈췄다.“어…….”태혁도 걸음을 멈췄다.“왜?”“길이 2개예요.”“어느 쪽이 맞는데?”서율은 벽에 붙은 설명을 읽었다.“왼쪽은 빠른 길이고, 오른쪽은 돌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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