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20

40 فصول

11화. 제4조 딜레마, 을의 사정

제4조. 서로에게 진짜로 빠지면 즉시 계약 파기.(갑과 을은 같은 주에, 같은 조항 때문에, 같은 결론을 내렸다.)화요일 오전 열 시. 안건은 까치 편지의 줄바꿈이었다."편지인데 줄을 못 바꾼다고요?" 서윤이 말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톤 높았다. 일부러 올렸다."100자에 줄바꿈까지 넣으면 화면이 깨져요." 이현이 노트북을 반쯤 덮었다."안 깨지게 만드는 게 개발 아니에요?""깨지는 걸 미리 말하는 게 개발이에요.""그럼 미리 말하지 말고 미리 고치세요."회의실의 여섯 명이 동시에 커피를 마셨다. 오랜만이었다. 뒷자리에서 민지가 조용히 주먹을 쥐는 게 보였다. 씨름 부활이었다.서윤은 속으로 안도했다. 잘하고 있었다. 5년 동안 하던 대로. 이 사람을 보면 짜증이 나야 했고, 지금 서윤은 짜증을 내고 있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줄바꿈은 세 번까지만 허용하죠." 이현이 말했다."다섯 번이요.""세 번이요.""할머니한테 편지 쓰는데 세 줄이 말이 돼요? 안부 한 줄, 건강 한 줄, 끝이에요?""할머니는 한 문장이면 충분하시던데요."서윤은 입을 다물었다. '손주며느리 곱다'. 둘 다 같은 문장을 떠올리고 있었다. 회의실에서 그걸 아는 사람은 둘뿐이었다."……네 번." 서윤이 말했다."네 번." 이현이 말했다.팀장이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지금 합의한 거지? 싸운 거 맞지?""싸웠습니다." 둘이 동시에 말했다.자리로 돌아오자 민지가 박수를 치는 시늉을 했다. 소리는 내지 않았다."선배, 돌아오셨군요. 정서윤 선배.""어디 갔었는데.""한동안 이상했잖아요. 차 선임님이 까치 열두 가지 준다니까 여섯으로 깎고. 그거 보고 씨름 방 사람들 반은 선배가 아픈 줄 알았어요.""안 아파.""네, 오늘 보니까 확실히 건강하세요. 목소리가 쩌렁쩌렁."서윤은 웃었다. 웃으면서 목이 조금 아팠다. 한 톤 올린 목소리를 한 시간 동안 유지하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그날 저녁, 이현은 자기 방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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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제2조 붕괴, 화면 공유

제2조. 사내에선 비밀.(비밀은 두 번 새면 비밀이 아니다. 한 번은 사진으로, 한 번은 할머니로.)금요일 오전 아홉 시 반. 열일곱 번째 사진의 조회 수는 이미 삼백을 넘었다."7조면." 탕비실에서 누군가 말했다. "정 선임이랑 차 선임 아니야?""에이, 설마. 그 둘이 우산을 같이 써?""사진 설명에 7조라고 써 있잖아.""비가 왔으니까 그랬겠지. 원수라도 비는 같이 피하잖아.""소매는? 소매 잡은 건?"탕비실 문 앞에서 서윤은 머그컵을 든 채 돌아섰다. 커피는 안 마셔도 됐다.자리에 앉자마자 민지가 의자를 굴려 왔다. 눈이 반짝였다. 그 반짝임이 무서웠다."선배.""우산이 하나였어.""아직 아무것도 안 물었는데요.""물어볼 거잖아.""딸기 아이스크림이요." 민지가 사진을 확대했다. 봉지가 선명했다. "그거 제가 사 달라고 한 거잖아요."서윤은 모니터를 켰다. 모니터가 켜지는 시간이 오늘따라 길었다."우산이 없어서 편의점에 갇혀 있었는데, 차 선임이 지나가다 씌워 준 거야. 인류애로.""인류애로 소매를 잡아요?""미끄러웠어.""선배, 저 그날 강당에서 봤는데요. 차 선임님 선배 나가고 삼 분 만에 우산 하나 들고 나갔어요. 강당 입구에 우산 열 개 있었는데 제일 작은 걸로 골라서요."서윤은 모니터를 보는 척했다. 제일 작은 걸로. 그건 몰랐다.책상 밑에서 휴대폰이 떨렸다.[차이현: 대응 방침. 비상 대피였다. 우산이 하나뿐이었다.][정서윤: 강당에 우산 열 개 있었대요. 민지가 봤대요.][차이현: ……][차이현: 그럼 인류애로 가죠.][정서윤: 저 이미 인류애 썼어요.][차이현: 잘하셨어요. 입 맞추죠.]서윤은 마지막 문장에서 휴대폰을 뒤집었다. 말을 맞추자는 뜻이었다. 알았다. 그런데도 뒤집었다.파티션 너머 개발팀 쪽에서도 비슷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막내의 목소리가 들렸다."선임님, 그 사진 선임님이죠?""비가 왔어.""알아요. 근데 우산이 하나뿐이었어요?""응.""강당에 열 개 있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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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제2조 개정, 사내 공개

제2조(개정). 사내에선 공개. 단, 회의에선 봐주지 않는다.(냅킨에는 더 쓸 자리가 없었다. 포스트잇에 써서 앞면 두 번째 줄 위에 붙였다.)"네, 사귑니다."이현이 다시 말했다. 이번엔 혼자였다. 서윤의 '아뇨'를 덮듯이, 천천히."서윤 씨는 회사에 알려지는 걸 싫어해서요. 그래서 반사적으로 아니라고 한 거예요. 제가 비밀로 하자고 약속했었거든요."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순서만 조금 바꿨을 뿐이다. 서윤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언제부터?" 팀장이 물었다."여름휴가 끝나고부터요." 서윤이 대답했다. 차 안에서 맞춘 설정이었다.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넉 달, 아니, 다섯 달이요."팀장이 테이블을 짚었다. 그리고 물을 찾았다. 테이블 위에 물은 없었다. 이현이 말없이 일어나 정수기에서 종이컵에 물을 받아 왔다. 팀장은 그걸 단숨에 마셨다."다섯 달 동안." 팀장이 컵을 내려놓았다. "그 다섯 달 동안 너희 회의에서 싸웠지. 줄바꿈 가지고. 식도 가지고.""네.""그것도 연기였어?"서윤과 이현이 서로를 봤다. 이번엔 대답이 맞았다."아뇨. 그건 진짜였어요."팀장이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엎어 두었던 휴대폰을 뒤집어 두 사람 앞으로 밀었다.화면에는 '명절 특집 씨름 중계석'의 관리자 메뉴가 떠 있었다. 맨 위에 '방장'이라는 글자가 선명했다."……팀장님?" 서윤의 목소리가 갈라졌다."내가 만들었어. 3년 전에." 팀장이 체념한 얼굴로 말했다. "너희 싸움 말리다 지쳐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즐기자고. 처음엔 다섯 명이었는데 지금은 스물아홉 명이야.""회의 중에 공지 올리신 것도…….""테이블 밑에서. 볼펜 떨어뜨린 척하고." 팀장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3년 동안 판을 깔았는데 결말을 몰랐다. 방장이."이현이 헛기침을 했다. 웃음을 참는 헛기침이었다. 서윤은 테이블 밑에서 그의 신발을 밟았다. 식탁 밑에서 무릎을 톡 치던 것보다 조금 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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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제1조 이전, 5년 전 3월

제1조. 본 계약의 기간은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자정까지로 한다.(계약은 그날 밤 시작됐다. 그런데 어떤 것들은 그보다 훨씬 먼저 시작돼 있었다.)이현의 휴대폰은 따뜻했다. 방금까지 주머니에 있던 온기였다.서윤은 연락처를 열었다. 민지가 어깨 너머로 목을 뺐다. 로비의 사람들 몇이 걸음을 늦췄다.ㅈ. 정. 정서윤.그냥 정서윤이었다. 괄호도, 하트도, 수식어도 없이."……이게 다예요?" 민지가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트도 없어요? 이모티콘 하나도?""이름이 제일 정확하니까요." 이현이 말했다."선배는 '공수'까지 붙였는데!""그건 서윤 씨가 정확한 거죠. 저 공수 얘기 많이 하니까."민지는 한숨을 쉬며 씨름 방에 무언가를 적었다. 로비에 멈춰 있던 사람들도 싱거운 표정으로 흩어졌다. 서윤은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돌려주면서 이상하게 조금 서운했다. 뭐를 기대했는지는 스스로도 몰랐다."공수." 회전문을 나서며 이현이 말했다."그건 입사 석 달째에 저장한 거예요. 그땐 진짜 공수 얘기밖에 안 했잖아요.""지금은요?""……지금도 해요.""그럼 계속 공수로 두세요."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공개 연애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첫 주에만 사람들이 자리로 찾아왔고, 둘째 주부터는 다들 익숙해졌다. 이현은 아침마다 서윤의 자리에 컵을 놓고 갔다. 옆자리 민지는 첫날 그 컵의 '1/2'을 보고 비명을 질렀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컵이 오기 전에 서윤의 책상 한쪽을 치워 두었다.한번은 개발팀 막내가 이현이 컵을 놓고 간 뒤 서윤의 자리로 슬금슬금 다가왔다."정 선임님, 그 컵에 적힌 거요. 선임님이 매일 직접 쓰시는 거예요?""응. 왜?""아뇨, 저희한테는 커밋 메시지도 세 글자로 쓰시는 분이라서요. '수정함'. 그게 다예요."서윤은 컵을 돌려 봤다. '시럽 1/2, 얼음 조금'. 그리고 그 밑에 오늘은 한 줄이 더 있었다. '오후 회의 자료 11쪽 오타'."……이건 업무 지시네.""그것도 컵에 쓰세요?" 막내가 경악했다.서윤은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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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제5조, 설까지 남은 날

제5조. 본 계약의 기간을 설 연휴 마지막 날 자정까지 연장한다.(냅킨 뒷면. 날짜를 세기 시작하면 계약서는 달력이 된다.)"파란등대 스튜디오요." 이현이 말했다.송년회가 끝나고 둘은 지하철역까지 걸었다. 12월 밤공기가 맵게 코끝을 찔렀다. 서윤은 목도리에 턱을 묻었다."들어 봤어요. 요즘 잘나가는 데잖아요.""개발 리드 자리래요. 새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맡기겠다고.""조건은요?""지금보다 연봉이 꽤 많아요.""위치는요?""본사가 부산이에요."서윤은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늦추면 안 될 것 같았다. 부산. 기차로 두 시간 반. 솔뫼리 본가보다 멀었다."언제까지 답해야 돼요?""1월 중에요. 입사는 3월이고."3월. 서윤은 머릿속으로 달력을 넘겼다. 1월, 2월 설, 그리고 3월. 제5조가 끝나고 한 달 뒤였다. 계약이 끝나고, 연수 첫날 같은 계절이 다시 오고, 그때쯤 이 사람은 부산에 있을 것이다."기획자 입장에서 보면요." 서윤이 말했다. 목소리가 평소와 같게 나와서 다행이었다. "좋은 조건이에요. 리드 자리에, 새 프로젝트에, 연봉까지. 커리어로 보면 안 갈 이유가 없죠.""그렇죠.""고민할 게 뭐가 있어요.""몇 개 있어요.""뭔데요. 말해 봐요, 정리해 줄게요. 장단점 표로.""표로요?""기획자니까요."이현이 짧게 웃었다. 입김이 하얗게 흩어졌다."하나. 까치 오픈이 설 일주일 전이에요. 제가 짠 구조라서, 오픈은 보고 가고 싶어요.""그건 3월 입사면 되잖아요. 오픈 보고 가면 돼요.""둘. 할머니요. 부산 가면 청매골이 더 멀어져요.""할머니는 요즘 문자를 잘하시니까요. 사진도 보내시고.""셋."이현이 말을 멈췄다. 서윤은 기다렸다. 셋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앞을 봤다."셋은요?""……아직 정리가 안 돼서요. 표에 넣기 어려워요."서윤은 더 묻지 않았다. 묻고 싶지 않았다. 셋이 무엇이든, 들으면 안 될 것 같았다.이현이 걸음을 멈췄다. 횡단보도 앞이었다. 빨간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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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제4조 옆, 아주 작은 글씨

제4조. 서로에게 진짜로 빠지면 즉시 계약 파기. (을은 예외)(괄호 안 네 글자는 을의 글씨다. 갑은 석 달 동안 그걸 접힌 주름인 줄 알았다.)맨눈으로는 읽을 수 없었다.서윤은 휴대폰 카메라를 켰다. 냅킨을 스탠드 아래에 펴 놓고 화면을 최대로 확대했다. 추석 밤 작은방에서 이현이 사진첩을 확대하던 것과 똑같은 손짓이라는 건, 그녀는 알 수 없었다.초점이 흔들렸다가 잡혔다.괄호. 그 안에 네 글자.(을은 예외)볼펜 잉크가 거의 날아가 있었다. 첫날 밤 파라솔 아래, 맥주 캔에서 흘러내린 물기가 이 자리를 적셨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글씨는 반듯했다. 오해할 수 없을 만큼 그 사람 글씨였다.서윤은 기억을 되감았다. 편의점. 땅콩 봉지. 그녀가 '갑 정서윤'이라고 쓰고 볼펜을 넘겼다. 이현이 '을 차이현'이라고 썼다. 글씨가 의외로 반듯했다. 그녀는 그 서명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냅킨을 반으로 곱게 접어 내밀었다.접기 전에, 볼펜이 한 번 더 움직였을까. 서명을 하면서, 손목만 살짝 옮겨서."을은 예외."소리 내어 읽어 봤다. 방이 조용해서 제 목소리가 낯설었다.기획자는 문장을 두 번 읽는다. 쓴 사람이 의도한 뜻과, 읽는 사람이 받아들일 뜻. 서윤은 휴대폰 메모장을 열고 적었다. 손가락이 차가웠다.해석 A. 을은 이 조항에서 제외. 을은 빠질 일이 없으니까. 애초에 해당 사항 없음.해석 B. 을이 빠져도 계약은 깨지지 않는다. 을은 빠져도 계속 옆에 있겠다.B를 적고 나서 서윤은 한참 화면을 봤다. B라면. B가 맞다면, 그건 서명하던 그 순간 이 사람이 이미.그녀는 B 밑에 근거를 적었다.번호 저장일 2021년 3월 2일. 비밀번호 0302. 단체사진의 시선.그리고 A 밑에도 적었다.제4조를 말했을 때의 웃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질투냐고 물었을 때, '계약 관리예요.' 스카우트 얘기에 '상관없네요.' 인수인계 문서. 매직 네 자루. '제가 없어도 쓰실 수 있게요.'B의 근거는 전부 5년 전이었다.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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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제5조 만료 예정, 계약이니까

제5조. 본 계약의 기간을 설 연휴 마지막 날 자정까지 연장한다.(남은 날, 38일. 둘 다 세고 있었다. 서로 모르게.)새해 첫 회의는 십오 분 만에 끝났다."까치 오픈 문구 최종안입니다." 서윤이 말했다."확인했습니다. 이견 없습니다." 이현이 말했다."오픈 시각은 오전 열 시로 하겠습니다.""네. 서버 준비하겠습니다.""이상입니다.""이상입니다."회의실의 여섯 명이 커피를 들었다. 마실 타이밍이 오지 않았다. 싸움이 없으니 끼어들지 않겠다는 표시를 할 일도 없었다. 다들 컵을 든 채 어정쩡하게 앉아 있었다.팀장이 헛기침을 했다. "……끝이야?""네." 동시였다. 그것만은 여전했다.회의실을 나서며 개발팀 막내가 민지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저 이런 회의 처음 봐요. 무서워요.""나도.""싸워 주셨으면 좋겠어요. 제발."씨름 방의 공지는 3주째 바뀌지 않았다.[휴전 중. 방장은 기다린다.]민지가 점심때 조심스럽게 말했다."선배, 요즘 차 선임님을 '차 선임'이라고 부르시는 거 알아요?""원래 그렇게 불렀어.""아니요. 작년 가을부터는 '차이현 씨'였어요. 회의 때도. 사귄다고 공개하고 나서는 더 자주요." 민지가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차 선임님도 선배를 '정 선임'이라고 불러요. 요즘."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 이름이 직함으로 돌아가는 데 사흘이 걸렸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둘은 여전히 같이 퇴근했다. 공개 연애였으니까. 로비를 지날 때는 손을 잡았다. 로비에 사람이 있었으니까. 회전문을 지나면 손을 놓았다. 거기서부터는 필요 없었으니까.지하철역까지의 오 분 동안, 둘은 필요한 말만 했다."설에 솔뫼리는 몇 시에 출발할까요.""추석 때처럼 아침 여덟 시요.""선물은 제가 준비할게요. 배랑 한과, 막걸리.""네. 계약이니까요.""네. 계약이니까요."가족 단톡방은 그런 사정을 몰랐다.[둘째 이모: 설에 이현이 한복 입힌다. 치수 보내라][큰이모: 윷놀이 판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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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제4조 발동, 계약 파기합니다

제4조. 서로에게 진짜로 빠지면 즉시 계약 파기.(발동 조건: 충족. 발동권자: 갑.)1월의 편의점 파라솔은 추웠다. 파라솔 아래 테이블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당연했다. 영하 오 도였다.서윤은 일곱 시 오 분 전에 도착했다. 편의점에 들어가 냉장고 앞에 섰다. 복숭아 맛 맥주 하나. 그리고 온장고에서 캔 커피 하나. 뜨거운 블랙. 이 사람은 여름에도 뜨거운 걸 마시니까.계산대에서 직원이 물었다. "밖에서 드시게요? 추운데.""네. 회의가 있어서요."직원은 이상한 얼굴을 했지만 봉투를 건넸다.파라솔 아래 의자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서윤은 목도리를 한 번 더 감고 앉았다. 휴대폰이 울렸다.[민지: 선배 오늘 칼퇴하셨네요][민지: 친구분 오늘 뭐 하시는 날이에요?][정서윤: 회의.][민지: 파이팅. 친구분도, 선배도.]서윤은 휴대폰을 뒤집어 테이블에 놓았다. 입속으로 첫 문장을 한 번 굴려 봤다. 기획 발표 전에 늘 하던 일이었다. 5년 동안 수백 번 발표했는데, 이번 발표는 청중이 한 명이었다. 그리고 반박당하면 끝이었다.일곱 시 정각에 이현이 왔다. 코트 깃을 세우고, 손에는 남색 텀블러를 들고. 뚜껑의 '뜨거운 거, 식혀서'가 편의점 불빛에 반짝였다."커피 사 놨는데." 서윤이 캔을 밀었다."텀블러도 있어요. 둘 다 마실게요."그는 맞은편에 앉았다. 첫날 밤과 같은 자리였다. 파라솔 위로 가로등 불빛이 번졌다. 계절만 달랐다.탁. 서윤이 캔을 땄다. 복숭아 향이 차가운 공기 속에 퍼졌다. 한 모금 마셨다. 볼이 금방 뜨거워졌다. 추위 탓인지 술 탓인지, 오늘은 굳이 구분하지 않았다.그녀는 지갑에서 냅킨을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쳤다. 넉 달 동안 접혔다 펴지며 천처럼 보드라워진 냅킨. 노란 포스트잇. 밑줄 두 번. 뒷면에 비치는 제5조."안건은 하나예요.""네.""제4조 발동합니다. 계약 파기해요."이현은 움직이지 않았다. 텀블러를 쥔 손도, 얼굴도. 회의실에서 반박을 들을 때처럼 고요했다. 다만 눈이 한 번,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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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새 계약서, 조항은 하나

제1조. 정서윤과 차이현은 서로에게 계속 빠진다.(기획서 양식, A4 한 장. 조항은 이것 하나. 이번엔 밑줄이 두 번이다.)월요일 오전 열 시, 까치 오픈 전 마지막 점검 회의."오픈 공지 문구에 '까치가 당신의 마음을 전합니다'는 좀 과해요." 이현이 노트북을 반쯤 덮었다."과한 게 이벤트예요.""과하면 유저가 부끄러워해요.""부끄러운 게 설렘이에요.""설렘이랑 부끄러움은 다르죠.""결과는 같죠."회의실의 여섯 명이 동시에 커피를 마셨다. 3주 만이었다. 개발팀 막내는 커피를 마시다 말고 눈을 감았다. 뭔가에 감사하는 얼굴이었다.팀장이 두 손을 들었다. "자, 자. 문구는 중간으로. '까치가 편지를 전합니다'. 됐지?""네.""네."동시였다. 둘은 동시에 서로를 노려봤다. 그리고 동시에, 아주 조금,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건 5년 동안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민지가 테이블 밑에서 휴대폰을 두드리는 속도가 빨라졌다.회의가 끝나고 씨름 방 공지가 바뀌었다.[휴전 종료. 씨름 재개. 방장은 기쁘다.][추가: 차 선임 파란등대 거절 메일 오늘 아침 9시 2분 발송 확인. 주말 내내 썼다고 함. 출처는 비밀.]"출처가 팀장님이잖아." 서윤이 민지의 휴대폰 화면을 보며 말했다."선배, 그건 말하면 안 되는 거예요. 방장 보호 원칙."오후에 팀장이 이현을 불렀다. 문이 닫힌 회의실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다만 나올 때 팀장은 코를 한 번 훌쩍였고, 이현의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씨름 방에는 그 장면이 '방장 눈물 목격담'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왔다가 삼 분 만에 삭제됐다.점심때 민지가 국숫집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선배, 친구분은요? 그 약속 저주 걸린 친구분."서윤은 젓가락을 멈췄다. 그리고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은 다음에 말했다."잘 됐어.""진짜요?""약속을 깼대. 먼저.""오." 민지가 눈을 크게 떴다. "상대방은요?""상대방은 처음부터 깨고 있었대. 몰래."민지는 한참 서윤을 보다가 지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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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제3조 개정

제3조. 스킨십은 손잡기까지만. 그것도 필요할 때만.(네 조항 중 끝까지 개정되지 않은 조항. 설 연휴 첫날 밤까지는.)설 연휴 첫날 아침 여덟 시. 이현의 차가 서윤의 오피스텔 앞에 섰다.서윤은 조수석 문을 열다 멈췄다. 뒷좌석에 선물 상자 세 개가 쌓여 있었다. 배, 한과, 막걸리. 추석과 똑같았다.그리고 상자 옆에,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손주며느리 왔나.""……할머니?""어제 올라왔다. 이놈 집에서 잤어. 집이 너무 반듯해서 잠이 안 오더라."할머니 무릎 위에는 보자기가 하나 놓여 있었다. 분홍색. 안에서 떡 냄새가 났다."떡국 떡이다. 두 되."서윤은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컵홀더에는 컵이 하나 꽂혀 있었다. 아이스 바닐라라떼. 뚜껑 옆에 반듯한 글씨. '시럽 1/2, 얼음 조금'.서윤은 가방에서 종이컵 하나를 꺼냈다. 오는 길에 산 뜨거운 아메리카노. 옆면에 검정 매직으로 적혀 있었다. 조금 삐뚤게.'뜨거운 거, 식혀서'.이현이 그 컵을 받아 들고 한참 봤다."……이거 직접 쓰신 거예요?""카페 사장님이 바빠 보여서요."뒷좌석에서 할머니가 혀를 찼다. "둘이 뭐 하는 거냐. 커피에 편지를 쓰냐."고속도로는 추석보다 덜 막혔다. 할머니는 가는 내내 퀴즈를 냈다. 이현이 몇 살에 걸음마를 뗐는지, 처음 한 말이 뭐였는지, 초등학교 때 반장 선거에서 몇 표를 받았는지. 서윤은 하나도 맞히지 못했다. 이현은 운전하며 귀가 계속 빨갰다."두 표." 할머니가 말했다. "지 표랑, 짝꿍 표. 짝꿍이 여자애였다.""할머니.""그 짝꿍 이름이 뭐였더라.""할머니, 그만."서윤은 창밖을 보며 웃었다. 빨대를 물었다. 씹지 않았다.솔뫼리 대문 앞에는 이모 셋이 서 있었다. 나란히. 팔짱을 끼고. 면접관처럼.차가 서자 할머니가 제일 먼저 내렸다. 그리고 이모들 쪽으로 걸어가, 이모 셋 옆에 나란히 섰다. 팔짱을 꼈다.면접관이 넷이 됐다."……할머니, 왜 그쪽에 서세요." 이현이 말했다."나도 물어볼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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