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가짜 연애 계약서 제3조: Kapitel 31 – Kapitel 40

40 Kapitel

31화. 봐주지 않는다

제2조(개정) 단서. 단, 회의에선 봐주지 않는다.(냅킨 계약서는 파기됐다. 이 단서만은 둘이 살려 두기로 했다. 명문화는 안 했다. 둘 다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돼지국밥집이 조용해졌다.오태주는 숟가락을 든 채 대답을 기다렸다. 농담처럼 던졌지만, 이 사람은 농담으로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는 사람이 아니었다. 작년에 이현에게 다섯 번째 제안을 했던 사람이었다.서윤은 국밥 그릇을 내려다봤다. 부산. 바다가 보이는 사무실. 반대를 배우기 시작한 착한 팀. 10초마다 도는 등대.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좋았다.그리고 옆을 봤다. 이현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둘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둘 다 서울에 끝까지 할 일이 있어서요."같은 문장이었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서윤은 입을 다물었다. 이현도 다물었다. 둘은 서로를 봤다. 연습한 적이 없었다.오태주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박수를 쳤다. 세 번."거절도 세트네예." 오태주가 웃었다. "알겠습니다. 이번엔 진짜 포기할게요. 대신 등대 편지는 끝까지 같이 해요. 세트로.""네.""네."또 동시였다. 오태주가 국밥을 한 숟가락 떠먹으며 중얼거렸다. "서울 회사에 이런 거 보는 방이 있다더니. 나도 들어가고 싶네.""……그 방 어떻게 아세요?""차 리드 거절 메일 받은 날, 거기 팀장님이 저한테 전화하셨어예. 사과하시면서. 끝에 그러시더라고요. '우리 애들 좀 봐주세요. 씨름 방 초대해 드릴까요?'"이현이 이마를 짚었다. 서윤은 웃음을 참다가 국밥 국물에 사레가 들렸다.그날 밤 이현은 막차로 올라갔다. 서윤의 부산 2주는 그다음 주에 끝났다. 등대 편지의 세계관과 편지 시스템이 맞물렸고, 파란등대 개발자는 이제 하루에 세 번씩 "안 됩니다"를 말했다. 오태주는 헤어질 때 서윤에게 컵 하나를 줬다. 등대 그림이 그려진 머그컵이었다. 옆면에 삐뚤빼뚤한 매직 글씨. '1/2'.서울역 플랫폼에는 이현이 서 있었다. 2주 전 손을 들고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였다. 서윤이 새 바퀴 달린 캐리어를 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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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냉전 이틀째

연애 기획서 v1.2 부칙 제1항. 싸우면 그날 안에 파라솔에서 끝낸다.(이 부칙은 싸움이 끝난 뒤에야 생긴다. 이틀 늦게.)[정서윤: 안 싸웠어요, 할머니.][이현: 안 싸웠습니다.]두 사람은 따로 답했다. 삼 분 간격으로. 할머니의 답은 한 번에 두 사람에게 동시에 왔다.[할머니: 둘다 거짓말][할머니: 목소리 안 들어도 안다]서윤은 휴대폰을 엎었다. 할머니한테는 문자로도 거짓말이 안 통했다. 받침은 틀려도 사람은 안 틀리는 분이었다.다음 날 아침, 서윤의 책상 위에 커피가 있었다. 아이스 바닐라라떼. '시럽 1/2, 얼음 조금'. 글씨는 여전히 반듯했다. 그 아래 다른 말은 없었다.서윤은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매직을 꺼내 컵에 답을 적으려다 멈췄다. 뭐라고 쓸지 몰랐다. 매직 뚜껑을 닫았다.오전 열 시, 까치 2차 업데이트 최종 점검 회의."냅킨색 적용 화면 확인 부탁드립니다." 서윤이 화면을 넘겼다."네. 좋은 것 같습니다." 이현이 말했다.회의실의 여섯 명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안내 문구는 '따뜻한 종이색'으로 가겠습니다.""네, 검토해 보니 괜찮습니다.""……출시일은 다음 주 수요일로 하겠습니다.""네, 일정 맞추겠습니다."개발팀 막내가 커피를 들어 올렸다. 마시지 않았다. 컵을 든 채로 굳어 있었다. 5년 동안 이 회의실에서 커피는 끼어들지 않겠다는 신호였다. 오늘은 끼어들 싸움이 없었다. 컵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정 선임님 기획 의도 잘 이해했습니다." 이현이 노트북을 열어 둔 채 말했다. 반쯤 덮지 않았다. 어제부터 한 번도."차 선임님 검토 감사합니다." 서윤이 말했다.선임님. 서로에게 '님'까지 붙인 건 5년 동안 처음이었다. 싸울 때도, 설 전에 냉랭하던 3주 동안에도 '선임'까지였다. 민지가 수첩에 '선임님???'이라고 적고 물음표를 세 개 그렸다.회의는 십 분 만에 끝났다. 역대 최단이었다. 아무도 기뻐하지 않았다.점심시간, 개발팀 막내가 팀장 자리로 갔다. 개발팀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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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주선자석

솔뫼리 부속 합의서 제3조. 경조사는 둘이 같이 간다. 하나만 오면 둘째가 반드시 물어본다.(첫 적용 사례. 신랑은 치과 원장. 신부는 그 치과 간호사. 주선자는 본인 주장에 따르면 막내 이모.)예식장 입구에 막내 이모가 서 있었다.연분홍 투피스에 진주 목걸이. 머리는 아침에 미용실에서 했다고 했다. 신랑 어머니보다 화려했다. 그리고 가슴에 명찰을 달고 있었다. 직접 코팅한 명찰이었다.'주선자'."이모, 그거 누가 달라고 했어요?""내가 달았다. 내가 주선자니까.""이모가 주선한 건 저랑 원장님이잖아요.""그래서 원장이 대기실에서 간호사를 봤잖아. 너 스케일링 받는 동안.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내가 주선한 거지."옆에서 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과관계는 성립하네요.""편들지 마요.""사실관계예요."막내 이모가 이현의 팔을 톡 쳤다. "역시 차 서방은 말이 통해."둘째 이모도 와 있었다. 막내 이모의 운전기사 자격이었다. 솔뫼리에서 올라오는 세 시간 동안 막내 이모의 축사 연습을 들었다고 했다. 둘째 이모의 얼굴이 조금 지쳐 보였다. 그러나 눈은 여전히 반짝였다. 관찰형의 눈이었다."둘이 옷 색 맞췄네." 둘째 이모가 말했다.서윤은 자기 원피스를 내려다봤다. 남색. 이현의 넥타이를 봤다. 남색."안 맞췄어요.""그럼 더 무섭네."하객석은 원형 테이블이었다. 막내 이모는 신랑 측 앞쪽 테이블로 곧장 걸어갔다. 테이블 위에 이름표가 놓여 있었다. 네 장. 막내 이모, 둘째 이모, 정서윤, 차이현. 그리고 테이블 한가운데 작은 팻말.'주선자석'."이것도 이모가 만들었어요?""이건 원장이 만들었다." 막내 이모가 턱을 들었다. "내가 부탁은 했지만."식이 시작되기 전, 신랑이 테이블로 인사를 왔다. 백승우 원장이었다. 턱시도를 입으니 치과에서보다 훨씬 긴장해 보였다. 서윤을 보자마자 활짝 웃었다."정서윤 씨. 이 시린 건 괜찮으세요?""네, 덕분에요.""그리고……." 원장이 이현을 봤다. 이현이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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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여름휴가 기획서

여름휴가 기획서 제1조. 목적지는 양측 합의로 정한다.(기획서는 두 부. 작성자 둘. 목적지 둘. 합의는 없었다. 큰이모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7월 셋째 주 토요일, 서윤의 오피스텔 거실.테이블 위에 A4가 두 부 놓여 있었다. 둘 다 회사 기획서 양식이었다. 서윤이 만든 양식을 이제 둘 다 썼다.왼쪽은 서윤의 것. 문서명 '여름휴가 기획서 v1.0'. 목적지 제주. 4박 5일. 일정표가 30분 단위로 짜여 있었다. 오름 두 개, 해변 세 곳, 카페 여섯 곳, 시장 하나. 이동 동선에 형광펜.오른쪽은 이현의 것. 문서명 '여름휴가 기획서 v1.0'. 목적지 강원도 산속 펜션. 3박 4일. 일정표에는 한 줄뿐이었다.'일정: 없음.'"이게 기획서예요?" 서윤이 종이를 들어 올렸다."네.""일정이 없잖아요.""그게 기획이에요. 쉬는 거요.""쉬는 것도 기획이 있어야죠. 몇 시에 일어나고, 뭘 먹고, 어디서 쉬는지.""그건 가서 정하면 돼요.""가서 정하면 결국 아무것도 안 해요.""아무것도 안 하는 게 목표예요."서윤은 이현의 기획서를 뒤집었다. 뒷면도 비어 있었다. 그녀는 빨간 볼펜을 들었다. 이현이 재빨리 기획서를 도로 가져갔다."검토 요청 안 했어요.""제 기획서는 검토하시려던 거 아니에요?"이현이 서윤의 제주 기획서를 들여다봤다. 30분 단위 일정표. 그의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첫날 오후 두 시 오름, 세 시 반 해변, 다섯 시 카페, 여섯 시 반 시장. 이동 시간이 비현실적이에요. 렌터카로 오름에서 해변까지만 사십 분이에요.""빠르게 가면 돼요.""휴가 때 빠르게 가면 그건 출장이에요.""차이현 씨 기획은 그냥 잠자기예요.""차이현 씨요?" 이현이 서윤을 봤다. "성 붙었어요."서윤은 입을 다물었다. 싸울 때는 성이 자꾸 돌아왔다. 설 이후로 다섯 달, 호두과자 줄에서 뺀 성이 회의실과 휴가 기획서 앞에서만 슬그머니 되살아났다."……이현 씨 기획은 잠자기예요.""고치셔도 늦었어요. 들었어요."씨름은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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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친구 얘기

제4조 해당 여부 판단 기준표(참고용). 부록. 본 기준표는 필요한 사람에게 물려줄 수 있다.(작성자 정서윤. 작년 11월 작성, 12항목. 올해 8월, 처음으로 양도.)8월의 국숫집은 에어컨이 약했다.민지는 냉국수를 시켜 놓고 한 젓가락도 먹지 않았다. 젓가락으로 오이채만 옮기고 있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서윤은 그 동작을 알았다. 작년 가을, 이 자리에서 그녀가 빨대를 씹던 동작과 같은 종류였다."선배.""응.""제 친구 얘기인데요."서윤은 국수를 삼키다 멈췄다.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국물 한 숟가락으로 막았다. 1년 전 그녀가 한 말이었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응. 친구.""제 친구가요, 회사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요. 그 사람이 회의 때 제 친구가 말할 때만 노트북을 덮는대요."서윤은 이번엔 국물로도 못 막았다. 웃음이 새어 나왔다."왜 웃으세요.""아니야. 계속해.""다른 사람 말할 땐 계속 타자 치거든요. 근데 제 친구가 말하면 딱 덮어요. 반쯤." 민지가 오이채를 또 옮겼다. "그리고 제 친구가 뭘 제안하면 맨날 '안 됩니다'부터 해요. 이유는 그다음에 말하고요.""그래서 친구는 그 사람이 싫대?""아뇨." 민지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문제래요. 안 싫대요. '안 됩니다'를 듣는 게 좀 좋대요. 그 사람이 자기한테만 제대로 반박하는 것 같아서."서윤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이제 웃을 수가 없었다. 너무 잘 아는 얘기였다."민지야. 그 사람, 키 크고 개발팀이지."민지의 귀가 빨개졌다. "……친구 얘기라니까요.""그 사람 파란등대랑 회의할 때 '안 됩니다' 제일 먼저 가르쳐 준 사람이 나야. 부산 가기 전에 그 사람이 나한테 물어봤거든. 기획자한테 반박 어떻게 하냐고. 그 사람 이름 두 글자지. 윤재하."민지가 냉국수에 얼굴을 묻을 뻔했다."선배 어떻게 알아요!""너한테 배웠어. 촉은 옮는 거래."민지는 한참 오이채를 노려보다가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화면을 서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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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구겨진 냅킨

추석 이벤트 시즌2 기획서 제2항. 편지 글자 수는 40자로 제한한다.(1년 전 이 조항 때문에 회의실이 두 번 뒤집혔다. 올해는 발의자와 반대자가 바뀌었다.)8월 마지막 주 월요일, 12층 대회의실.화면에는 슬라이드 첫 장이 떠 있었다. '추석 이벤트: 달토끼의 소원 편지 시즌2'. 작년 슬라이드와 똑같은 폰트, 똑같은 달토끼. 달만 조금 더 컸다."편지 글자 수는 40자로 가겠습니다." 서윤이 말했다.회의실의 여섯 명이 동시에 커피를 들었다. 작년에 이 조항으로 두 시간을 싸웠다. 그때 40자를 밀어붙인 건 이현이었다. 서버에 저장하니까요, 라고. 서윤은 문자도 그보다 길다고 버텼다. 결국 40자로 갔다. 이현이 이겼다. 그리고 유저 게시판 추천 1위는 '40자로는 할머니한테 안부도 다 못 쓴다'였다.그런데 올해는 서윤이 먼저 40자를 꺼냈다.이현이 노트북을 반쯤 덮었다. "왜 40자예요?""짧아야 계속 생각나니까요.""작년엔 40자는 짧다고 하셨잖아요.""작년엔 몰랐어요. 짧은 게 좋은 거.""저는 80자를 제안합니다."회의실이 술렁였다. 개발팀 막내 윤재하가 커피를 마시다 사레가 들렸다. 민지가 그의 등을 두드렸다. 두드리는 손이 조금 오래 머물렀다."……차이현 씨가 80자요? 공수 늘어나는데요?""등대 편지에서 80자 해 봤잖아요. 유저 반응이 제일 좋았던 게 긴 편지였어요. 기다리는 80초가 설렘이라면서요. 정 선임이 부산에서 그렇게 말했어요.""그건 등대고요. 달토끼는 보름달이 차오르는 연출이라 짧아야 돼요.""긴 편지가 차오르면 더 보기 좋죠.""길면 읽는 사람이 무서워해요.""누가 그래요?""제가 그래요."팀장이 두 손을 들었다. 작년과 똑같은 자세였다. 다만 표정이 달랐다. 작년에는 지친 얼굴이었고, 올해는 즐거운 얼굴이었다."자, 자. 60자로 가자. 중간. 됐지?""네.""네."동시였다. 둘은 서로를 노려봤다. 그리고 동시에 웃었다. 작년 이 회의가 끝나고 탕비실에서 엄마 문자가 왔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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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거사 준비위원회

추석 거사 준비위원회 회칙 제1조. 정서윤에게는 비밀로 한다.(방장: 큰이모. 회원 여덟 명. 개설일: 여름휴가 마지막 날 밤, 평상에서 아빠가 보고한 직후.)이현의 휴대폰에는 단톡방이 하나 더 있었다.방 이름은 '추석 거사 준비위원회'. 알림은 무음으로 해 두었다. 무음으로 해도 하루 이백 개가 쌓였다. 서윤 앞에서 휴대폰을 뒤집는 횟수가 여름 이후로 세 배가 됐다. 그 사람은 눈치가 빨랐다. 아마 이미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쓰레기통 속 냅킨까지 봤을 리는 없지만.회원은 여덟 명이었다. 큰이모, 둘째 이모, 막내 이모, 서윤 어머니, 서윤 아버지, 할머니, 이현 어머니. 그리고 이현.방장은 큰이모였다. 첫 공지는 이랬다.[큰이모: 회칙 제1조. 서윤이한테는 비밀. 어기면 고추장][큰이모: 회칙 제2조. 방장 퀴즈 통과 못 하면 거사 불허][막내 이모: 제3조 추가 요청. 주선자석 확보][큰이모: 기각]9월 첫째 주 수요일 밤, 이현은 퇴근하고 집에 와서 식탁에 앉았다. 식탁 위에는 회사 앞 편의점 냅킨이 한 묶음 쌓여 있었다. 아이보리색. 스무 장쯤 남았다. 처음엔 오십 장이었다.그는 볼펜을 쥐었다. 셔츠 주머니에 늘 꽂혀 있던 볼펜. 6년 전 입사 연수 때 받은 사은품 볼펜이었다. 1년 전 이맘때 그 밤, '자정까지'를 쓰다 한 번 번진 그 볼펜.냅킨 한 장을 펼쳤다. 썼다.'제1조. 본 계약의 기간은'거기서 멈췄다.또였다. 서른 번째였다. 그는 기간을 쓸 수 없었다. 공수를 따지는 머리가 자꾸 숫자를 요구했다. 기간은 날짜로 끝나야 했다. 끝이 없는 기간은 사양서에 쓸 수 없는 문장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끝이 있으면 안 됐다. 막내 이모의 제5조. 이번엔 기간 없이.'평생'이라고 써 봤다. 너무 컸다. 과장 같았다. 서윤은 과장을 싫어했다. 기획서에 '최고의'라는 말이 들어가면 빨간 줄을 그었다.'무기한'이라고 써 봤다. 너무 딱딱했다. 계약 해지 조항 같았다.'영원히'는 쓰다가 스스로 구겼다.냅킨이 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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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역제안

청혼 기획서 v1.0. 작성: 정서윤. 검토: 없음. 제1조. 본 계약의 기간은 정하지 않는다.(작성 기간 2주. 수정 횟수 열일곱 번. 제1조는 한 번도 고치지 않았다. 고친 건 전부 마지막 한 문장이었다.)"선배, '결혼해요'예요, '결혼할래요'예요?"민지가 물었다. 국숫집이 아니라 회사 소회의실이었다. 점심시간. 문에는 '회의 중'이 걸려 있었다. 화면에는 슬라이드가 떠 있었다. 청혼 기획서 v1.0. 열일곱 번째 수정본."그게 지금 제일 큰 이슈야.""청유형이냐 의문형이냐.""청유형은 확신이 있어 보이는데, 상대한테 선택권이 없어 보여. 의문형은 선택권을 주는데, 자신 없어 보이고.""차 선임님이라면 뭐라고 반박하실까요?"서윤은 레이저 포인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현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1년 동안 들어서 토씨까지 외운 목소리."'청유형은 유저가 부담스러워해요. 의문형은 유저가 거절할 수 있어요. 거절 확률이 있는 문장은 공수 낭비예요.'"민지가 박수를 쳤다. "똑같아요. 소름.""그럼 그 사람은 뭐라고 할 것 같아?""그냥 '네' 하실 것 같은데요. 어느 쪽이든."서윤은 슬라이드를 봤다. 마지막 장. 문장이 두 개 나란히 있었다. 결혼해요. 결혼할래요. 둘 다 빨간 줄이 한 번씩 그어졌다가 지워진 흔적이 있었다."……그러니까 더 어려운 거야. 뭘 해도 '네' 할 사람한테 뭘 물어야 할지."민지의 휴대폰이 울렸다. 민지는 화면을 보더니 귀가 빨개졌다. 윤재하였다. 둘이 사귄 지 3주째였다. 컵에 쓰는 글씨는 매일 한 줄씩 길어지고 있다고 했다."선배, 제 친구가요, 아니 제가요." 민지가 휴대폰을 엎었다. "재하 씨한테 청유형이랑 의문형 중에 뭐가 좋냐고 물어봤거든요. 어떤 선배 얘기라고 하고.""……민지야.""이름은 안 말했어요! 근데 재하 씨가 그러더라고요. 개발자는 의문형을 좋아한대요. 반환값이 있으니까.""반환값.""네. '네'라는 반환값이요."서윤은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웃었다. 이 회사 개발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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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추석 연휴 전날

제1조. 본 계약의 기간은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자정까지로 한다.(1년 전 이맘때, 추석을 며칠 앞둔 밤에 편의점 냅킨에 쓴 조항. 지금은 파기됐고, 지갑 카드칸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자정까지'의 번진 자국도 그대로.)"그러니까 차이현 씨 말은, 이 기능을 넣자는 거죠."회의실 화면에는 서윤이 2주 밤을 새운 기획서가 떠 있었다. 슬라이드 제목은 '추석 이벤트: 달토끼의 소원 편지 시즌2'. 최종 점검 회의였다. 오픈은 내일 0시."넣자는 게 아니라." 테이블 맞은편에서 이현이 노트북을 반쯤 덮었다. "이미 넣었다는 겁니다."서윤은 레이저 포인터를 멈췄다."……뭘요?""보름달 차오르는 연출이요. 유저가 편지를 쓰면 달이 한 칸씩 차오르는 거."회의실의 여섯 명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1년 전 이 회의실에서 서윤은 그 연출이 이벤트의 핵심이라고 했다. 이현은 연휴 전에 못 넣는다고 했다. 못 넣는 거랑 안 넣는 거랑은 다르죠. 결과는 같죠. 팀장이 간소화 버전으로 정리했다. 달은 끝내 차오르지 않았다. 대신 그날 밤 편의점에서 냅킨 계약서가 생겼다."시즌2 기획서엔 그 연출 없었잖아요. 제가 뺐어요. 작년에 안 된다고 하셔서.""그래서 제가 넣었어요. 따로.""언제요?""작년 추석 끝나고부터요. 틈틈이.""1년 동안요?""공수가 많이 들었어요. 1년 걸렸어요." 이현이 화면을 넘겼다. 테스트 영상이었다. 유저가 편지를 한 통 쓸 때마다 까만 하늘의 달이 가장자리부터 차올랐다. 은은하게, 천천히. 마지막 편지가 들어가자 보름달이 꽉 찼다. 달 속에서 토끼가 고개를 들었다.회의실이 조용했다. 개발팀 막내 윤재하가 커피 잔을 든 채 굳었다. 옆에서 민지가 조용히 그의 컵을 받아 테이블에 내려놓아 줬다.서윤은 화면을 봤다. 1년 전 그녀가 사흘 밤을 새워 그린 연출이었다. 그대로였다. 아니, 더 좋았다. 그녀가 그렸던 것보다 달이 천천히 찼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다."……이거, 제 원래 기획서 그대로예요.""네. 원본 남겨 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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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제1조, 기간은 정하지 않는다

제1조. 본 계약의 기간은 정하지 않는다.(편의점 냅킨. 아이보리색. '않는다'에서 볼펜이 한 번 번졌다. 1년 전과 같은 볼펜이었다.)"제가 먼저 할게요." 서윤이 말했다."제가 먼저 왔는데요." 이현이 말했다."반차 쓰고 먼저 온 건 반칙이에요.""예약은 양쪽이었다면서요. 직원분이.""그걸 어떻게 알아요?""서윤 씨는 제가 예약한 거 어떻게 알았는데요?"둘은 캔 네 개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노려봤다. 이 파라솔은 회의가 끝나는 곳이었지 시작되는 곳이 아니었다."둘째 이모요." 서윤이 먼저 털어놓았다. "양쪽 다, 라고 했어요. 그리고 편의점 직원분이 양쪽 예약이라고 했고, 팀장님이 양쪽에서 같은 걸 부탁한다고 했어요. 세 군데서 양쪽이 나오면 결론은 하나예요.""……저는 쓰레기통이요.""네?""쓰레기통 뚜껑이 제가 닫은 방향이랑 반대로 닫혀 있었어요. 8월 마지막 토요일에요. 그날 서윤 씨 그릇을 세 번 헹궜어요."서윤은 입을 벌렸다. 이 사람은 쓰레기통 뚜껑 방향까지 봤다."그럼 부칙으로 해요." 이현이 말했다."무슨 부칙이요.""원래 부칙이요. 위반한 쪽은 한 번 져 준다. 우리 둘 다 야근이라고 거짓말했잖아요. 둘 다 위반이에요. 근데 제 거짓말이 더 말이 안 됐어요. 반차 쓰고 야근이라니.""……그건 인정해요.""그러니까 제가 질게요." 이현이 손바닥을 서윤 쪽으로 펼쳤다. "먼저 하세요."서윤은 그를 봤다. 1년 전 이 자리에서 이 사람은 부칙을 제안했다. 위반한 쪽은 회의에서 한 번 져 준다. 그때는 그게 싸움의 규칙인 줄 알았다. 이제는 알았다. 그건 이 사람이 지는 법을 만들어 둔 거였다. 그녀한테만.서윤은 지갑을 꺼냈다. 카드칸에서 A4를 꺼냈다. 네 번 접힌 종이를 테이블 위에 펼쳤다. 냅킨 옆에. 아직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이현의 아이보리색 냅킨 옆에."청혼 기획서 v1.0입니다."이현이 숨을 멈췄다. 이 사람이 숨을 멈추는 건 처음 봤다.서윤은 발표를 시작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원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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