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동안 지속된 배서준과의 혼인 관계는 남설아가 몸과 마음의 모든 존엄을 갈아먹으면서 이어온 악연이었다. 남설아는 사랑이 없는 이 관계에 적어도 정은 남아있을 거라 믿었다. 그렇게 버텨오던 어느 날이었다. 두 사람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었던 아이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지던 날, 그 사람이 자신의 첫사랑을 위해 거액의 돈을 썼다는 기사가 연예 뉴스 헤드라인에 실렸다. 두 비보가 눈앞에 놓인 순간부터 남설아는 배서준의 사모님 노릇을 때려치우기로 했다. 쓰레기 같은 그 남자는 모든 매체를 매수하여 눈이 쌓인 바닥에 무릎을 꿇고 붉어진 눈으로 첫사랑에게 돌아와 달라고 애원했다. 그 순간, 남설아는 다른 남자의 손을 잡고 모습을 드러냈다. 새로운 남자의 등장을 모두에게 알리는 순간이었다.
더 보기강연찬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났다.“사랑해, 난 너 없인 안 돼.”“사랑?”남설아는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비웃는 어조로 말했다.“강 대표님의 사랑, 나는 감당할 수 없어요.”“설아야...”강연찬이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남설아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천 비서님, 손님을 보내드려요.”그녀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 냉랭하게 말했다.천기준이 강연찬 앞에 다가가 손짓으로 문을 가리켰다.“강 대표님, 이쪽으로 나가시죠.”강연찬은 남설아의 단호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 찬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설아야...”그는 남설아의 이름을 낮게 중얼거리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사무실을 떠났다.남설아는 창가에 서서 멀어져 가는 강연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다.입술을 꽉 깨물며 울음을 참으려 했지만, 마음속 깊은 상처는 도무지 가라앉지 않았다.천기준은 강연찬을 배웅하고 돌아와 창가에서 조용히 울고 있는 남설아를 보고 깜짝 놀랐다.“남 대표님, 괜찮으신가요?”그는 조심스레 물었고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남설아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눈물을 닦고, 천천히 돌아서서 천기준을 바라보았다.“천 비서님, 각 부서장한테 알려줘요. 10분 뒤에 긴급회의 소집할 거예요.”“네, 대표님.”천기준은 곧장 고개를 끄덕이고 사무실을 나갔다.남설아는 책상 앞으로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자신을 억누르며 침착함을 되찾으려 애쓰고 다시 업무에 몰두하기 시작했다.10분 후, 이설 그룹의 긴급회의가 열렸다.남설아는 회의실에 앉아 있었고 얼굴에는 굳은 표정이 감돌았으며 눈빛은 날카로웠다.“오늘 여러분을 부른 건 중요한 발표가 있어서입니다.”그녀는 냉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오늘부로 이설 그룹은 화승 그룹과의 모든 협력을 전면 종료합니다.”“네?”“남 대표님,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화승 그룹은 저희의 최대 파트너인데요!”회의실은 곧 술렁이기 시작했고 각 부서
늦은 밤이 되어서야 남설아는 호텔로 돌아왔고 그녀는 호텔 방에서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그녀는 침대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은 채 텅 빈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머릿속으로는 강연찬과 함께했던 순간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그녀는 왜 강연찬이 자신을 속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다음 날, 남설아는 부은 눈을 하고 회사로 돌아왔다.그녀가 사무실로 들어섰을 때, 예전의 빛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온몸에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천기준은 배건 그룹을 떠난 뒤 남설아를 매우 존경하게 되었고 그녀의 요청으로 회사에 남게 되었다.200억을 받은 이후, 그는 남설아에게 더욱 충성을 다하게 되었다.그는 남설아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남 대표님, 무슨 일이 있으신 겁니까?” 그는 다급히 물었고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묻어났다.남설아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책상 앞으로 가서 앉은 뒤 곧바로 서류를 처리하기 시작했다.사무실 전체가 무거운 긴장감에 휩싸였고 숨조차 쉬기 어려운 분위기가 감돌았다.강연찬은 남설아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를 보고 싶다는 마음을 참을 수 없어 이설 그룹의 휴게실에서 밤을 새웠다.남설아가 회사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휴게실을 뛰쳐나왔다.남설아의 사무실 문 앞에 도착한 그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문을 두드렸다.“들어오세요.”남설아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고 그 말투는 차갑고 냉담했다.강연찬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남설아는 책상 앞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서류를 보고 있었다.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빛은 싸늘했으며 온몸에서 냉기가 느껴졌다.“설아야...”강연찬이 그녀 앞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그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불안이 가득 담겨 있었다.남설아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그 눈빛은 차갑고 무표정했으며 감정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강 대표님, 무슨 일로 오셨어요?”그녀는 냉정하게 물었고 말투 또한 서늘하고
그는 뒤따라 나갔지만, 남설아의 차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그저 눈뜨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강연찬은 방으로 돌아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음은 뒤죽박죽 엉켜 있었고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남설아에게 전화를 걸고 또 걸었지만 끝내 받는 이는 없었다.그는 수없이 많은 문자를 남설아에게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강연찬은 이번에 정말로 남설아가 화가 났고 그가 쉽게 용서받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는 이용진을 떠올렸다. 모든 건 이용진이 보낸 그 문자 하나 때문이었다. 그 문자를 통해 남설아가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이다.강연찬은 이 대표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목소리는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이 대표, 당신이 한 짓이야!”전화를 받은 이 대표님은 깜짝 놀랐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어 급히 물었다. “도련님, 무슨 일이죠?”“무슨 일이냐고?” 강연찬이 고함쳤다. “당신이 보낸 그 문자, 설아가 봤다고!”이 대표님은 그 말을 듣자마자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도련님, 전... 전 일부러 그런 게 아닙니다...” 그는 급히 해명했다. “설아 씨가 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이제 와서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야?” 강연찬이 말을 끊었다. “당신 때문에 설아가 나랑 헤어졌다고!”“헤... 헤어졌다고요?” 이용진이 놀라 외쳤다. “그렇게 심각한 일이었나요?”“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강연찬이 분노했다. “지금 당장 설아를 찾아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찾아야 해!”“예, 도련님. 바로 찾겠습니다.” 이용진은 서둘러 대답했다.강연찬은 전화를 끊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초조하고 불안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박차고 나갔다. 차를 몰고 도심을 이리저리 떠돌며 설아를 찾아다녔다.남설아의 회사에도 가보고 그녀의 집도 가보고 두 사람이 함께 갔던 모든 장소를 다 찾아봤지만,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강연찬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이제 더는 어디서 그녀를 찾아야 할지조차 알 수
밤이 되자 두 사람은 객실로 돌아왔다.샤워를 마친 남설아가 욕실에서 나오자 강연찬은 거실 쪽의 통유리 앞에 서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남설아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다가갔다.강연찬은 그녀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한 듯 여전히 통화에 집중하고 있었다.그녀가 불과 몇 걸음 거리까지 다가섰을 때 그가 통화 중 언급한 단어들, ‘화승 그룹’, ‘이 대표님’ 등이 또렷하게 들렸다.남설아의 심장이 순간적으로 쿵 하고 내려앉았다.강연찬은 전화를 끊고 돌아섰고 자신의 바로 뒤에 서 있는 남설아를 발견하자 눈에 띄게 놀란 기색을 보였다.“설아야... 언제 나왔어?”그가 묻는 목소리에는 미세한 당황이 묻어 있었다.남설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그 시선 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강연찬은 그녀의 눈빛에 마음이 불안해졌고 뭔가 해명하려는 듯 그녀에게 다가갔다.“설아야, 그게...”“설명하지 마.”남설아가 그의 말을 끊었다.“아까 오빠 휴대폰에 온 문자도 봤어.”강연찬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그녀가 그 문자를 봤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남설아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물었다.“왜 이 대표님은 오빠를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거야?”공간 전체가 정지된 듯 공기가 얼어붙었다.강연찬의 미소가 굳었고 그 따뜻했던 눈빛 속에도 당황이 스쳐 지나갔다.남설아는 이미 많은 것을 눈치챘고 그의 침묵은 곧 사실의 인정이었다.그녀의 눈빛에는 실망과 배신감이 뚜렷이 맺혀 있었다.“연찬 오빠, 내가 묻고 있잖아. 왜 이 대표님이 오빠를 도련님이라고 부르냐고!”남설아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고 점점 높아졌다.“설아야, 제발... 내 말 좀 들어봐.”그는 다급히 해명하려 했다.“듣기 싫어!”하지만 남설아가 또다시 그의 말을 자르며 외쳤다.“해명 말고 진실을 말해!”그녀는 거짓말을 견디지 못했다. 특히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서였다.강연찬은 그녀를 마주 본 채 고개를 숙였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
문득 눈앞의 이 사람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점심 식사 후, 강연찬이 리조트 내 온천에 다시 들어가자고 제안했고 남설아는 거절하지 않았다.그녀에게는 지금, 차분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온천탕 안은 따스한 물안개로 가득했다.남설아는 가장자리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은 채 온천의 온기를 느꼈다.강연찬은 그녀 곁에 앉아 조용히 손을 잡았다.“설아야,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조금 안 좋아 보여.”그가 부드럽게 물으며 걱정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남설아는 조용히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눈빛은 복잡했다.입술이 움직이려다 멈추고 무언가를 묻고 싶어 하면서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결국 그녀는 침묵을 택했다. 지금 이 조용한 순간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당장은 그가 자신의 변화를 눈치채지 않길 바랐다.“아니야,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남설아는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온천에서 쉬면 좀 나아질 거야.”강연찬은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푹 쉬어.”남설아는 다시 눈을 감았다.하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의심의 씨앗은 이미 뿌려졌고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관계 안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이다.“연찬 오빠, 화승 그룹이 이번에 동쪽 지역에서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 규모가 꽤 크더라?”남설아는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시선은 강연찬의 얼굴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있었다.강연찬은 찻잔을 들던 손을 잠시 멈추더니 곧 미소 지었다.“그래? 난 잘 몰랐어. 화승 그룹 쪽은 내가 거의 관여 안 하니까.”그의 말투는 자연스러웠고, 표정도 태연했다.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같았다.“그래?”남설아는 끝을 살짝 끌며 되물었다.“내가 봤을 땐 이 대표님이랑 꽤 친해 보이던데. 지난번 자선 만찬에서도 둘이 꽤 오래 이야기하던데?”강연찬은 그녀에게 차를 따라주며 태연히 말했다.“비즈니스 모임에서 누구랑 이야기 좀 했다고 다 친한 건 아니지. 이 대표님은 원래 누구한테나 말 잘 거
남설아의 심장이 갑자기 요동쳤다. 마치 가슴을 뚫고 튀어나올 듯한 격렬한 박동.‘이 대표님? 화승 그룹의 이 대표님? 왜 이 대표님이 강연찬에게 문자를 보낸 거지?’게다가 조금 전 강연찬이 통화할 때의 모습, 아무리 봐도 화승 그룹 관련 일이었다.불안함과 알 수 없는 기대감이 뒤섞인 채 남설아는 조심스럽게 그 문자를 열었다.내용은 단 몇 글자로 아주 짧았다.하지만 그 문장을 보는 순간, 남설아는 마치 벼락을 맞은 듯 몸이 굳어버렸다.“도련님, 분부대로 진행했습니다.”‘도련님...?’그 두 글자는 남설아의 뇌리에 벼락처럼 내리꽂혔다.순간, 지금까지 희미하게 느껴왔던 의문들이 또렷하게 하나로 모이기 시작했다.‘화승 그룹의 이 대표가 강연찬을 ‘도련님’이라 부른다?’그동안 화승 그룹과의 협력이 너무도 순조로웠던 이유, 그리고 화승 그룹이 배건 그룹의 프로젝트에 과도하게 우호적이었던 점, 심지어 강연찬이 단 한 번도 자신과 함께 화승 그룹 관련 일정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사실까지 퍼즐 조각들이 전부 맞춰졌다.강연찬은 자신이 생각했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남설아는 손에서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혼란스러운 감정이 뇌리를 휘감았고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멀리 있는 강연찬을 바라보았다.햇살이 그의 얼굴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다.그는 평소처럼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그 모습은 여전히 완벽해 보였지만 지금은 너무도 낯설고 위태로워 보였다.‘나는... 강연찬을 안다고 생각했는데.’그가 자신에게 보여준 웃음, 다정함, 신뢰... 모든 게 진심인 줄 알았다.하지만 그 밑에 숨겨진 진짜 얼굴을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그녀는 소름이 돋았다.놀람, 분노, 배신, 의심... 모든 감정이 그녀를 뒤흔들었지만, 그녀는 겨우겨우 평정을 유지했다.핸드폰을 원래 자리에 조용히 되돌려 놓고 얼굴을 정리한 후 아무 일도 없었던 듯한 표정으로 강연찬에게 다가갔다.“연찬 오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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