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연경은 모시는 마님에 의해 도련님의 통방이 되었다. 그저 고단한 첩의 삶일 줄 알았으나, 그녀가 모시는 두 주인은 악귀와 다름없었다. 결국 그녀는 추운 날,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환생하여 죽기 전으로 돌아온 그녀는 도련님의 양부인 손기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뜨겁게 그의 품에 안긴 그날 이후로 두 사람 사이에는 미묘한 변화가 찾아왔다. “어디 천한 것 따위가 감히 넘보지 못할 분을 넘봐?” 작은 마님이 늘 하는 말이었다. “넌 언젠가 내 사람이 될 거야.” 도련님이 탐욕스럽게 눈을 빛내며 했던 말이었다. 어차피 스스로 방법을 대서 이곳을 빠져나가지 않으면 다른 길이 없었다. 연경은 조심스럽게 판을 짜기 시작했다. 어려운 길이라도 가야만 하는 길이었다. 이 집안의 여주인이 되어 그 악귀 같은 것들의 머리 위에 군림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희들은 싫어도 날 어머니라 불러야 하겠지!’
View More그녀는 무덤덤한 얼굴로 무릎을 꿇더니 싸늘한 눈길로 송지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소인은 작은 마님에게 잘못한 일이 없는데 왜 저를 죽이려 하셨나요? 지연의 말이 모두 사실입니다. 악행을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요!”송지운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그게 무슨 뜻이지?”송지운은 유모가 다급한 상황에 채련마저 같이 처리하려 한 것을 알 길이 없었다.채련의 머리는 불에 타서 뭉텅 잘려나가 있었고 손과 얼굴도 크고 작은 화상을 입어 화끈거렸다. 채련은 이 모든 것이 송지운의 사주라고 확신하고 있었다.“노부인, 진상을 규명하여 주십시오. 작은 마님은 지연이 휘두른 꽃병에 맞아 낙태한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마님은 이대로 허무하게 아이를 잃을 수는 없다며 소인과 유모를 시켜 안방을 청소하게 하고 소인에게 가서 이랑을 불러오라고 명하였지요. 그리고 낙태의 모든 책임을 연 이랑에게 돌리려 하였습니다.”송지운은 당장 채련의 말을 끊고 싶었지만 채련은 신들린 듯이 사건의 경과를 줄줄 읊어댔다.송지운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이 천박한 것이! 감히 날 모함해? 내가 왜 이랑을 해하려 했겠어?”“그건….”채련과 지연 모두 연경의 출신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었다.송지운은 더 이상 채련이 계속 말하게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다급히 소리쳤다.“네 부모님 생각도 해야지!”채련과 지연의 부모님은 경양 후작가의 시종들이었다. 두 사람의 인신 계약서는 송지운에게 있고 부모님의 계약서는 경양백 부인이 가지고 있었다.채련은 순간 온몸에 한기가 들며 이성이 돌아왔고 입을 다물었다.연경은 냉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노부인, 부디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십시오. 소첩은 오늘 참 많은 걸 배웠네요. 본디 저는 매화당에서 성심성의로 나으리를 모셨는데 제 존재를 이토록 못마땅해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송씨는 저를 낙태의 범인으로 몰아가려 했지만 사실상 화는 나으리에게도 돌아갈 테지요. 차후에 무안 후작가의 모든 사람이 송씨에게 미안한 감정을 갖게 하고
검은 연기가 치솟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매캐한 연기에 눈조차 뜰 수 없게 되었다.불길은 빠른 속도로 그들을 향해 번지고 채련의 치마에 불이 달렸다. 절망한 채련은 비명을 지르며 문을 두드렸다.“저자들은 우리 모두를 죽여 입막음하려는 거야!”절망한 채련이 바닥에 주저앉았다.“비켜!”아현은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헛간에 버려졌던 이불을 찾아 뒤집어쓰고 문으로 돌진했다.그 모습을 본 채련도 살고자 하는 의지로 다시 일어나 아현과 함께 온몸으로 문을 쳤다. 그렇게 두 사람의 협력으로 드디어 문이 무너지고 출구가 열렸다.“흡!”손발이 묶이고 입에 헝겊을 문 지연이 다급한 신음을 흘렸다. 두 사람이 자신을 버리고 도망칠까 두려웠던 것이다.아현은 연경의 당부를 떠올리고 돌아가서 지연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었다.나가는 길에 불길에 그을리고 기둥에 부딪쳤지만 다행히도 세 사람 모두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아현은 뒤집어쓰고 나온 이불을 바닥에 던지고 사람들과 함께 불을 껐다.송지운의 유모는 살아서 나온 지연을 보고는 뾰족한 비녀를 빼들고 조용히 그녀에게 접근했다.지연은 다가오는 섬광을 보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비녀를 들고 다가오는 유모를 보았다.그녀는 순간 너무도 놀라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이때, 뒤에서 달려온 아현이 유모를 걷어차며 소리쳤다.“뭐 하시는 겁니까!”나이 든 유모는 바닥에 쓰러져 한참을 꼼짝도 할 수 없었다.장씨 어멈은 바닥에 떨어진 뾰족한 비녀를 보고 싸늘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일단 이 사람들을 모두 노부인에게로 데려가거라!”말을 마친 장씨 어멈은 바닥에 나뒹구는 수상한 이불을 발견했다. 질 좋은 비단 이불이 헛간에 버려진 것도 이상하고 다가가서 보니 짙은 피냄새가 나고 있었다. 어멈은 곧바로 시종을 시켜 타다 만 이불을 챙기게 하고 안방으로 돌아갔다.아현은 직접 지연을 이끌고 안방으로 향했고 송지운의 유모는 송학당 시종들에게 끌려갔다.“노부인, 장신구는 못 찾았고 지연을 찾았습니다.”사람들은 손발이 묶
사람들은 안쓰러운 눈길로 송지운을 바라볼 뿐이었다.노부인은 부드러운 말로 송지운을 다독인 후, 사람들을 이끌고 내실을 나왔다.“연 이랑, 네 죄를 알겠느냐?”따라나온 강씨 어멈은 그 모습을 보고 불만스럽게 노부인을 힐끗 바라보았다.그러나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찾아 앉았다.연경은 담담한 어투로 답했다.“소첩이 무슨 죄가 있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오늘 밤 벌어진 일을 차근차근 이야기해 볼까요? 모든 일에는 근거가 있어야 뒤탈이 없는 법입니다.”“송씨는 오밤중에 매화당에 사람을 보내 소란스럽게 대문을 두드리며 소첩을 이리로 불렀지요. 제가 금수원에서 지낼 때 자신의 장신구를 훔쳐 간 것 같다고 하면서요. 노부인, 사람을 시켜 장신구부터 찾고 소첩의 결백을 증명해 주십시오.”“장씨 어멈, 어멈이 직접 사람들을 데리고 금수원에서 찾아보십시오. 그래도 못 찾았다면 매화당으로 가서 수색하세요.”장씨 어멈은 난감한 얼굴로 노부인을 바라보았다. 연경의 말에 너무 빈틈이 없어서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큰댁 주씨가 큰소리로 말했다.“일리가 있는 말이군요. 한쪽 말만 듣고 속단하여서는 안 되지요. 모든 일에는 근거가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연경은 그런 주씨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주 부인은 역시 사리에 밝으신 분이군요.”주씨는 서란이 불러온 사람이었다. 노부인이 내실로 들기 전, 서란도 명월에게서 들은 자초지종을 연경에게 말해주었다. 그래서 연경은 장씨 어멈에게 수색을 부탁하여 지연을 발견하게 할 계획을 세웠다.지연만 찾으면 굳이 입 아프게 해명할 필요도 없이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칭찬을 들은 주씨는 입이 귀에 걸려서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고 둘째네도 뒤처질세라 장신구부터 찾자고 재촉했다.결국 노부인은 장씨 어멈에게 수색을 명했다. 송지운의 유모는 괜히 가슴이 철렁하여 사람들이 안 보는 틈을 타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한편, 채련은 지연이 갇혀 있는 헛간으로 왔다. 안에는 진한 피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채련은 긴 밧줄
어멈은 송지운을 위로해 주다가 옆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물었다.“아씨, 대체 무슨 생각이십니까?”송지운은 요즘 들어 자신이 후작가에서 기댈 곳 하나 없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던지라, 유모의 다정한 목소리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그녀는 울먹이며 생각을 말했다.“비록 아버지 어머니께서 날 가장 총애하신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경양백부가 풍 이랑 모자의 손에 들어가는 건 두고 볼 수 없어요! 제 아이는 헛되이 죽으면 안 돼요. 어차피 갔으니 이 기회를 잘 이용해야죠! 제가 연경에게 아이를 시해하였다는 죄명을 쓰게 하면 앞으로 그년은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없을 거고 어머니도 이 기회에 풍 이랑이 앞으로 아버지를 홀리지 못하게 기강을 잡을 수 있어요!”송지운은 이번에 이 일로 어머니를 도와주면 어머니도 자신의 마음을 알고 애정을 줄 거라 생각했다.유모는 광기에 사로잡힌 송지운의 눈빛을 보고 말리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정말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순조롭게 진행될까?반 시진 후, 노후작과 노부인이 도착했고 큰댁과 둘째 숙부네에서도 사람이 왔다.날이 밝기도 전에 금수원에는 사람들로 가득찼다.노부인은 불쾌한 눈으로 그들을 흘기며 호통쳤다.“대체 오밤중에 자지 않고 다들 뭘 하고 있었길래 여기까지 달려왔느냐?”송지운이 낙태하였다는 얘기는 이미 들었고 연경이 밀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노부인은 큰댁과 둘째네까지 이 일에 끼는 게 썩 달갑지 않았다.송지운과는 앙숙인 큰댁 손주며느리 주씨가 비아냥거리듯 말했다.“노부인,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가 섭하죠. 저희도 가족인데 말이에요.”안에서 송지운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노부인은 사람들을 제치고 안으로 들어갔다.노부인은 느긋하게 앉아 차나 마시고 있는 연경을 보고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쳤다.“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냐!”연경은 이미 자초지종도 안 들어보고 욕을 먹는 건 적응했는지라 당황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행했다.“노부인, 소첩은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작년에 노부인께서 선물하신 거라면서 동네방네 자랑하던 비녀와 귀걸이가 사라진 상태였다.“근래 이 상자를 만졌던 사람은 너뿐이야! 잘 보관한 내 장신구가 왜 사라진 거지?”연경은 멀찌감치 서서 담담한 눈빛으로 송지운을 바라보며 물었다.“증거가 있는가?”송지운은 연경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자 씩씩거리며 연경에게 다가섰다.“네가 훔친 게 맞는지 여부는 수색을 해보면 알겠지!”말을 마친 그녀는 다짜고짜 연경의 옷을 벗기려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민이 팔을 들어 송지운의 손길을 막아냈다.그런데 송지운은 갑자기 비명을 지르더니 연신 뒤로 뒷걸음질 쳐 허리를 탁자에 부딪쳤다.“악! 아파! 누구 없느냐? 당장 의원을 불러다오! 내 아이가…”아민은 당황한 눈길로 연경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랑, 저는 살짝 밀쳤을 뿐입니다.”연경은 아민의 손을 다독이고는 송지운에게로 다가갔다. 이때 소리를 들은 채련과 유모가 안으로 들어왔다.어멈은 다짜고짜 연경을 밀치며 소리쳤다.“이랑, 억울한 게 있다면 해명을 하면 될 일이지, 왜 작은 마님을 밀쳤습니까!”비틀거리는 연경을 아민이 다가와 부축했다.이때, 송지운이 울음을 터뜨렸다.“하… 하혈을 하는 것 같아!”그 말을 들은 어멈과 채련은 덩달아 비명을 지르더니 연경을 싸잡아 욕하기 시작했다.아민은 당황하고 겁이 났지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이랑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제가 밀쳤어요!”연경은 재빨리 아민의 입을 틀어막았다.“아무 말도 하지 말고 상황을 지켜보자꾸나.”그녀는 연극을 벌이고 있는 송지운 일당을 싸늘하게 바라보다가 명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명월은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로 고개만 흔들고 있었다.연경은 이 일이 자신과 무관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말했다.“작은 마님을 계속 찬 바닥에 두실 참이냐? 서란과 명월은 같이 송학당에 다녀오거라. 난 희운각으로 가서…”“어딜가? 어멈, 당장 저년을 잡아서 가두세요!”송지운이 악에 받쳐 명령을 내렸다.아민은 연경의 앞을 든든히 가로막고 누구의 접근도
송지운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어루만졌다.의원을 부를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대로 허무하게 아이를 잃을 수는 없었다.풍 이랑이든 연경이든 헛된 꿈을 꾸는 미천한 것들을 이 기회에 지옥으로 보내줄 것이다!송지운은 고통을 참으며 명월과 유모를 시켜 침상을 깨끗이 정리하게 했다. 피 묻은 이불은 어멈이 채련을 시켜 헛간에 일단 가져가게 했다.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준 뒤, 방 안은 곧바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의 모습을 되찾았다.한편, 채련은 어둠을 틈타 매화당으로 와서 문을 두드렸다.매화당 대문은 진작에 닫혀 있었고 문지기를 서던 어멈들도 방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채련이 끈질기게 두드린 끝에, 당직을 서던 시종이 결국 소리를 듣고 다가왔다.“금수원의 채련입니다. 연 이랑을 꼭 뵈어야겠어요!”“작은 마님이 회임 중이십니다! 혹여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 있나요?”채련은 눈을 굴리다가 적절한 핑계를 생각해냈다.“작은 마님이 아끼는 장신구가 사라졌습니다. 연 이랑이 금수원에서 일할 때 가져간 것 같아서 꼭 불러오라고 하셨습니다!”결국 시종의 부름을 들은 태복이 나왔다.채련의 말을 들은 그는 불쾌한 얼굴로 호통쳤다.“허튼소리 하지 말고 당장 돌아가거라! 볼일이 있으면 내일 얘기하면 될 것을! 지금 오경이 넘은 시각에 여기가 어디라고 소란이냐! 당장 쫓아버리거라!”“작은 마님께선 회임 중이시라 최근 들어 많이 예민하십니다. 이랑께서 억울하시다면 가서 해명만 하시면 될 일이죠! 태복님도 작은 마님의 성격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네가 극구 말리지 않았더라면 작은 마님은 지금쯤 송학당까지 찾아갔을 겁니다.”그 말을 들은 태복은 가슴이 철렁했다.두 사람이 대치하고 있는 사이 연경이 하품을 하며 나와 자초지종을 묻고는 돌아갔다.잠시 후, 머리를 대충 틀어올리고 나온 연경이 말했다.“태복, 한번 가봐야겠으니 문을 열어주게.”그녀는 작은 소리로 태복의 귓가에 대고 당부했다.“절대 나으리의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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