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린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녀와 원나잇을 한 남자는 다름 아닌 그녀가 다니는 대학교의 교수님이었다. 게다가 더욱 아찔한 점은 그날 밤 그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덜덜 떨며 임신이라는 글이 적힌 결과지를 그의 앞에 내놓았을 때 주시우는 그녀에게 두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하나는 아이를 지우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와 결혼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신예린은 얼떨결에 교수님과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 후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에서 잤는데 어느 날 갑자기 주시우가 베개를 들고 그녀의 방문 앞에 섰다. “난방에 문제가 생겼나 봐. 내 방이 따뜻하지가 않아. 그래서 오늘 밤은 여기서 자도 될까?” 신예린은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그를 방 안으로 들였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주시우가 또다시 나타났다. “아직 수리가 덜 됐나 봐. 오늘도 신세 좀 질게.” 그렇게 주시우는 자연스럽게 그녀와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난방비를 아껴서 아이를 키우는 데 돈을 한 푼이라도 더 쓰겠다는 허울 좋은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 주경의 화정대 의대는 명문대였고 주시우는 화정대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화정대 의대의 최연소 교수였다. 그는 약지에 결혼반지를 끼고 있었지만 그의 곁에 여자가 있는 걸 본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 한 학생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수업 도중에 물었다. “교수님, 이미 결혼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언제 저희한테 아내분을 소개시켜줄 거예요?” 그런데 주시우가 갑자기 출석 체크를 하기 시작했다. “신예린.” 한 여자가 본능적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학생들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주시우는 부드러운 눈빛을 해 보였다. “여러분께 소개할게요. 제 아내 신예린이에요. 아주 훌륭한 심장외과 의사죠.”
ดูเพิ่มเติม송지유가 건네는 말들은 전부 스스럼없고 솔직했다. 몇 년간 자주 연락하지는 못했지만 두 사람의 정은 여전히 대학 시절처럼 따뜻했다.“아휴, 난 그냥 광대일 뿐이지 뭐. 됐어. 됐어. 그냥 다른 말 해. 민망해 죽겠어.”송지유가 민망한 듯 중얼거렸고 곧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예린아, 나 지금 촬영지에서 관광 홍보 영상 찍는 중이라 더는 못 떠들겠어. 이따 다시 연락할게.”“응. 그러면 먼저 일해. 나도 이제 집으로 갈 거야.”신예린이 대답하자 송지유가 장난스러운 웃음소리를 내며 또 끼어들었다.“너랑 주 교수님이 그렇게 오래 못 봤잖아. 혹시 집에 들어가자마자 불꽃이 튀는 거 아니야? 상상만 해도 짜릿하네.”신예린은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그만 좀 해.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워.”“아이고 결혼을 몇 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이렇게 순진해? 주 교수님은 얼마나 힘들었겠냐.”그러더니 송지유는 욕먹기 전에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어쨌든 난 일하러 갈게. 예린아, 환영해. 고생 많았어.”뚝 하고 전화가 끊기자 신예린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신예린은 택시를 잡아 기사 도움으로 짐을 싣고 차에 올랐다.“아가씨, 외국에 오래 계셨던 모양이네. 짐이 묵직하구먼.”“네. 유학 마치고 막 돌아왔어요. 아, 근데 전 이제 아가씨는 아니에요. 스물여섯이에요.”택시 운전기사는 감탄을 터뜨렸다.“에구, 전혀 그렇게 안 보여. 내가 국제선에서 손님 태운 게 한두 번이 아닌데 요즘은 유학 마치고 돌아오는 젊은 사람들이 참 많더라고. 잘했어. 아무리 해외가 좋다 해도 우리나라만 한 데가 없지. 우리 나라에서도 다들 아가씨 같은 젊은이들이 필요하고.”신예린은 미소를 머금은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차창 밖으로 건물들이 쏜살같이 스쳐 지나갔다.‘그래. 아무래도 이곳이 최고지. 여기에 내 아이가 있고... 교수님도 있으니까.’신예린은 주시우를 곧 만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고 피가 뜨겁게 끓어올랐다.“주 교수님.”“주 교수님.”캠퍼스 한복판을 긴 그림
5년 후.비행기 한 대가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공항 도착 게이트 앞은 가족이나 친구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다.그때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신예린의 얼굴에는 더 이상 어린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까만 눈동자에는 자신감이 가득했고 길게 늘어뜨렸던 머리칼은 단정한 단발로 변해 있었다. 가녀린 체구에 고운 얼굴빛, 맑은 눈매는 가을 물처럼 투명했다. 걸음걸이조차도 한결 여유롭고 단정해 보였다.신예린은 한 손에는 여행 가방을 끌고 다른 손에는 휴대폰을 귀에 댄 채 걷고 있었다.“예린아, 너 귀국하는 거 남편이랑 아기한테도 말 안 했다고?”전화기 너머로 송지유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신예린은 입술을 살짝 굽히며 미소 지었다.“응, 나 먼저 들어왔어.”졸업식은 보름 뒤였지만 기다릴 수가 없어 서류를 마무리하자마자 곧장 비행기에 올랐다.“그럼 나야말로 네 귀국 사실을 제일 먼저 아는 사람이네?”송지유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맞아, 네가 첫 번째야.”“어머, 너무 큰 영광이네. 이렇게 멋진 신 박사님이 제일 먼저 생각해 준다니. 하필 내가 지금 외지 촬영이라 같이 못 있는 게 아쉽네. 아니었으면 당장 공항으로 달려갔을 텐데. 우리 도대체 얼마나 못 본 거야. 오늘 밤에는 꼭 껴안고 자야겠다.”“안 돼.”신예린은 단호하게 잘랐다.“뭐라고?”송지유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되물었고 곧 신예린이 덧붙였다.“오늘 밤은 내 남편이랑 아기를 안아야지.”“어머나 세상에.”송지유는 닭살 돋는 표정이 그대로 전해질 만큼 과장된 반응을 했다.“신예린, 너 정말 달라졌네. 예전에는 얼마나 점잖고 절제된 애였는데 이런 닭살 멘트를 다 한다니. 역시 해외 나가더니 완전히 탈바꿈했어. 좋아. 네 체력은 충만하다 치자. 근데 주 교수님은 이제 나이가 좀 있는데... 과연 굶주린 널 버텨낼 수 있을까?”신예린은 미간이 절로 좁혀졌다.“누가 나이가 많다는 거야?”송지유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아니야. 내가 잘못 말
“마침 이런 기회가 생겼어요.”주시우의 시선은 어둡고 먼 곳을 향해 있었다.“그럼 아기는 어떻게 할 거야?”주혁재의 목소리가 따라왔다.“학교에 1년간 휴직을 신청했어요.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그때는 다른 사람 도움을 받을 겁니다.”“하지만 너 혼자서...”“우리나라 가정 중에서 아버지가 사실상 없는 존재처럼 지내는 경우가 거의 80%는 돼요. 어머니가 아이를 키워내는데... 어머니가 할 수 있다면 아버지도 할 수 있죠.”“물론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있는 게 제일 좋지 않겠니.”주혁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건 사랑을 얼마나 받느냐에 달려 있어요. 저는 아이한테 사랑을 충분히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예린이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도 아니잖아요.”“하지만...”주혁재가 다시 말하려 했으나 곁에 있던 김수희가 끊었다.“보내요. 저는 예린이의 선택을 지지할 거예요.”“여보, 왜 이렇게 마음이 바뀐 거야?”김수희는 주혁재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또렷한 목소리로 덧붙였다.“예린이의 인생도 인생이야. 아직 젊은데 엄마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앞길을 포기하면 안 되지. 너희 할머니도 늘 말했잖아. 여자는 자기 일을 가져야 하고 꼭대기에 올라가야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감사합니다. 어머니.”주시우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아기 돌보는 건 우리도 할 수 있어. 어쨌든 예린에게 이런 좋은 기회가 왔으니 무조건 응원해야지.”“아이는 제가 책임질 겁니다. 제 아이니까 제 곁에서 함께 자라게 하고 싶습니다.”주혁재는 두 사람이 이미 결정을 내렸음을 알아차리고 더는 반대하지 못한 채 긴 한숨만 내쉬었다.전화를 끊은 뒤, 주시우는 한참 동안 발코니에 서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그러다 몸을 돌리자 발걸음이 굳었다.거실 한가운데 잠옷 차림의 신예린이 눈물을 흘리며 주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희미한 불빛이 신예린의 윤곽을 감싸고 있었고 눈가에 고인 눈물은 마치 부서진 보석 같았다.“당신... 이제 날 원하지 않
신예린은 지금껏 들어본 말 중 가장 아름다운 표현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눈가가 금세 젖어 들었지만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그날 밤, 주시우는 신예린을 품에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머리맡의 조명이 은은히 빛을 내고 있었지만 주시우는 좀처럼 눈을 감지 못한 채 눈앞의 신예린만 바라보고 있었다. 출산 후 많은 생각에 사로잡힌 탓인지 며칠 사이 체중이 부쩍 줄어 턱선은 또렷해졌고 오뚝한 콧날 아래 긴 속눈썹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신예린이 몸을 옆으로 돌리며 눈을 뜨자 두 사람의 시선이 그대로 맞닿았다. 주시우의 시선은 먹빛처럼 짙고 깊어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왜 그래요?”신예린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예린아.”주시우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다.“난 널 정말 사랑해. 알지?”왠지 모르게 가슴이 눌린 듯 답답해진 신예린은 얼굴을 주시우의 가슴팍에 파묻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알아요.”주시우는 더는 말을 잇지 않고 그저 신예린을 끌어안았고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는 끝내 내뱉지 못한 말이 남아 있었다.‘미안해. 네 인생을 내 마음대로 결정해 버려서.’산후조리원에 머무는 동안에도 신예린과 주시우는 매일 아기를 보러 갔다.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는 작은 아기는 날이 갈수록 건강해졌다.어느 날, 아기가 공중에 작은 팔을 흔들며 마치 손을 흔드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신예린은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작은 몸에서 삶의 기적이 빛나고 있었다.반 달이 지나자 드디어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이제 아기는 퇴원해도 됩니다.”소아과 의사 소지훈은 어깨를 으쓱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제가 괜히 소아과 최고의 명의라는 소리를 듣는 게 아니죠. 혹시 실패라도 했다면 제 명성이 땅에 떨어졌을 겁니다.”신예린은 눈물이 차올라 고개를 끄덕였다.“정말 감사해요.”“당연히 제 아이처럼 신경 써야죠. 그렇게까지 감사할 필요 없어요.”그 말에 신예린은 눈을 크게 떴다.‘언제부터 지훈 씨의 아이가 된 거지?’그러자 주시우가 곧장 소지훈한테 날카로운 눈
신예린이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자 주시우의 눈썹도 풀렸다.“조금만 더 해도 되지? 오래도록 네 입술을 못 맞춘 것 같아.”주시우의 말끝에 담긴 투정 섞인 애교가 신예린의 귀를 붉히게 했다.주시우는 이미 여러 번 입을 맞췄으면서도 모른 척했다.신예린은 핑계를 찾듯 작게 중얼거렸다.“문을 안 닫았잖아요. 누가 볼지도 몰라요.”“이렇게 하면 안 보이지.”주시우는 신예린을 소파에 살짝 눕히며 몸을 기울였다.등받이가 둘의 몸을 가려 주었고 두 사람의 입술은 곧 깊숙이 맞닿았다.서로의 숨결이 섞이는 키스는 오래도록 갈망했던 듯 뜨겁고도 애틋했으며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마음까지 겹치는 듯했다.신예린은 가슴이 따뜻하게 감싸이는 걸 느꼈지만 어딘가 허전한 구멍이 함께 남아 있었다.그때,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주시우 씨, 신예린 씨?”직원의 목소리에 신예린은 눈을 번쩍 떴다.주시우는 신예린을 바로 놓고 눈빛을 주고받았다. 둘 다 꼼짝도 하지 못했다.직원은 고개를 갸웃하며 안을 살폈다.“이상하네... 분명히 안 나가셨을 텐데...”점점 다가오는 발걸음에 신예린은 다급히 주시우를 밀었다.하지만 주시우는 오히려 태연하게 일어나 직원 앞에 섰다.예상 못 한 등장에 직원이 깜짝 놀라 목소리를 높이려는 순간, 주시우는 입술에 손가락을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주시우는 소파 쪽을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제 아내가 잠들었어요.”순간 신예린은 눈을 감아 버렸다.직원이 고개를 내밀어 보니 신예린이 곤히 누워 있는 것처럼 보였다.“무슨 일이시죠?”주시우가 속삭였다.“오후 3시에 산후 심리 강의가 있어요. 혹시 두 분께서 관심이 있으시면 참석하셔도 됩니다.”“네. 아내가 깨나면 같이 가 보겠습니다.”“알겠습니다. 편히 쉬세요.”직원이 조용히 나가며 문을 닫았고 발소리가 멀어지자 신예린은 천천히 눈을 떴다.“우리 여보, 잘 잤어?”주시우는 내려다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신예린은 얼굴이 달아올라 주시우를 발끝으로
“이 일은 마누라랑 말했어?”“아직이요.”주시우가 잠시 뜸을 들였다.“교수님 쪽에서 먼저 피드백이 오면 그때 얘기하려고요. 괜히...”주시우가 끝내지 않은 말의 의미를 앤드루는 금세 알아차렸다.“알았어. 내가 한번 노력해 볼게.”“폐를 끼쳐 죄송합니다.”“괜찮아.”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신예린은 통화 내용까지는 들을 수 없었지만 주시우의 시선이 틈틈이 자신에게 머무는 걸 느낄 수 있었다.마치 지금 나누는 이야기가 자신과 관련된 듯한 기분이었다.게다가 주시우는 평소 전화할 때 한 번도 신예린을 피해 멀리 떨어진 적이 없는데 이번엔 유난히 거리를 두고 있었다.통화를 마친 주시우가 다가오는 걸 보자 신예린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누구 전화였어요?”“앤드루 교수님이야.”이번만큼은 거짓이 아니었다.“무슨 얘기를 그렇게 길게 했어요?”“별거 아니야. 그냥 안부 묻고 아기가 태어난 것도 말씀드렸지.”신예린은 선뜻 믿기지 않았지만 주시우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기에 작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왜 그래?”주시우가 시선을 느끼고 되물었다.“아니에요.”신예린은 고개를 저었다.“가자. 병실로 돌아가야 해. 의사 선생님이 곧 상처 소독을 다시 할 거라고 했어.”주시우가 손을 잡아 이끌자 신예린은 조용히 따라 걸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가 들어와 거즈와 거름망을 걷어냈다.꽉 붙은 피딱지가 함께 떨어지며 상처가 당겨지는 순간, 신예린은 숨을 고르며 날카롭게 들이켰다.주시우는 손을 꼭 잡아 주며 엄지로 손등을 천천히 문질러 주었다.“좀 아플 거예요. 조금만 참으세요.”의사가 차분히 말했다.배 위에 난 상처는 대략 10센티미터 남짓했고 붉은 선 위로 까맣게 박힌 실밥이 마치 흉측한 벌레처럼 보였다.신예린은 고개를 돌려 차마 바라보지 못했다.“회복은 안정적입니다. 몸 상태도 빠르게 돌아오고 있어요. 내일이면 퇴원하셔도 됩니다.”의사가 소독을 마치고 정리하며 말했다.“퇴원...이요?”신예린은 순간 다급해졌다.“혹시 며칠만 더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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