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9화

Author: 애니
서태우는 민도하가 분명 놀랄 거로 생각했는데, 통화기기 너머로 들려온 반응은 예상외로 차분했다.

“조규찬, 아직도 포기 안 했어?”

‘이 말투... 조규찬이 강서이한테 들이대는 게 한두 번이 아니구나.’

[응.]

민도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오히려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어차피 못 데려가. 강서이는 절대 조규찬 따라가지 않아.”

서태우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맞지. 강서이가 프라임로드투자를 왜 떠나겠어.’

‘다른 건 몰라도, 민도하가 프라임로드투자에 있는 이상... 강서이는 절대로 회사를 나갈 리 없지.’

서태우는 이미 모든 걸 꿰뚫고 있다는 듯한 말투로 농담을 이어갔다.

[내 생각엔 강서이가 일부러 조규찬을 ‘DAAL’로 불러낸 것 같아. 나한테 들키게 하려고.]

[그러고 나서 네 귀에도 슬쩍 흘려서, 너한테 강서이가 이직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거지. 그러면 네가 불러 붙잡을 테니까.]

서태우의 목소리엔 조롱이 한가득 섞여 있었다.

[아마 네가 요즘 아리를 챙기니까 강서이는 자기한테 좀 소홀해진 것 같다고 느낀 거겠지. 그래서 이런 잔재주 부리는 거야. 참 촌스러워. 눈치도 없고.]

[남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여자들끼리 질투하고 싸움 거는 거라는 걸 강서이는 모르나? 저렇게 티 내면 낼수록 널 더 멀어지게 한다는 것도 모르고.]

[자기가 뭔데? 아리랑 비교가 돼? 누가 봐도 답은 정해져 있는데?]

하지만 민도하는 이런 이야기에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다. 형식적인 대답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바로 책상 위 서류철을 펼쳤는데, 가장 위에 강서이의 사직서가 놓여 있었다.

민도하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곧바로 그 문서를 옆으로 밀어두고 아무렇지 않은 듯 다른 서류에 다시 사인했다.

...

그 시각, 강서이는 조규찬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기분 좋게 집으로 향했다.

집 근처 꽃집에서 스스로에게 꽃 한 다발을 사 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집 안에 놓인 수많은 ‘자기 것이 아닌 물건들’을 보며 방금까지의 들떴던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강서이는 종이상자를 꺼내 그동안 쌓아두었던 문서들을 전부 넣기 시작했다. 그제야 식탁이 제 모습을 찾았다.

집안을 둘러보던 강서이는 꽃을 꽂을 만한 물건을 발견했다.

트로피.

프라임로드투자의 ‘우수사원상’ 트로피.

민도하가 직접 강서이에게 건네준 상, 그리고 강서이는 그걸 보물처럼 간직해 왔다.

얼마 전 한지수가 술에 취해 강서이의 집에서 자다, 한밤중에 배탈이 나서 가까운 곳에 있는 그 트로피를 잡고 토하려 했다.

그 순간 강서이는 반사적으로 트로피를 낚아채며 한지수가 침대에 토하든 말든 트로피만은 지켜냈다.

강서이는 트로피에 물을 채우고 꽃을 꽂았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제야 좀 쓸모가 있네.”

잠들기 전 강서이는 새로운 습관을 실천했다.

잘 때는 핸드폰을 꺼두는 것.

덕분에 오랜만에 깊게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9시 정각, 강서이는 회사에 도착했다.

동료들은 이 시간에 강서이가 들어오는 걸 보고 모두 이상하게 여겼다. 평소라면 늘 강서이가 가장 먼저 출근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은 늘 입던 딱딱하고 수수한 정장 대신, 옅은 색감의 셔츠와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강 비서님, 오늘 뭔가 달라요.”

강서이는 미소 지으며 물었다.

“어디가요?”

“예쁜데요.”

정확히 말하자면, 굉장히 예뻤다.

오늘 강서이는 옅은 화장만 했을 뿐인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맑고 깨끗하면서도 우아했다.

남녀 모두가 시선을 뺏길 수밖에 없는 그런 느낌.

“고마워요.”

기분이 더 좋아진 강서이는 출근길에 이미 아침을 먹고 와서 사무실 도착 후 곧장 휴게실로 가서 물을 받고 위장약을 꺼냈다.

그런데 문 앞에 서자 안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얘기가 들려왔다.

“너희는 강 비서님이랑 노아리 본부장님이랑 누가 더 예쁘다고 봐?”

“둘은 완전히 다른 타입이라 비교가 어렵지.”

“예전 같으면 당연히 노아리 본부장님이 더 예뻤지. 근데 강 비서님은 너무 딱딱했잖아. 옷차림도 화장도 다 단정하다 못해 답답했어. 사람도 실제보다 열 살은 더 들어 보였고. 근데 원래 타고난 얼굴이 좋은 사람들은 조금만 손봐도 확 달라 보이더라니까?”

“맞아 맞아. 지금 완전 분위기 장난 아니야. 누나라고 부르고 싶어질 정도야.”

“외모만 놓고 보면 강 비서님이 약간 더 우위인데, 그래도 노아리 본부장님은 학벌이나 집안이 다 너무 뛰어나서... 그건 강 비서님이 못 따라가잖아.”

“그렇지. 머리랑 배경은 타고나는 거니까. 태어나는 것도 실력이야.”

“근데 강 비서님, 집안이 좀 그래서... 혼자 자랐다던데...”

“...”

그 순간, 강서이가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휴게실 안의 대화는 즉시 멈췄다.

“좋은 아침이에요.”

강서이는 아무 말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담담하게 물을 받고, 자연스럽게 인사하며 휴게실 안을 지나갔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어색하게 대답한 뒤 재빨리 흩어졌다.

...

강서이가 약을 먹고 자리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IB본부 3부 과장 심현수가 급하게 다가왔다.

표정이 잔뜩 급한 탓에 숨이 조금 가빠져 있었다.

“강 비서님, 엑스에이지 드론 프로젝트 평가보고서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민 대표님이 직접 요청하셨습니다.”

강서이는 정리해 둔 자료를 건네며 고개를 들었다. 그때 심현수가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강 비서님, 핸드폰 고장 났어요?”

“아뇨, 왜요?”

강서이는 영문을 몰라 눈을 깜빡였다.

“아침에 민 대표님이 출장을 나가셨는데, 이 평가보고서 급하게 필요하다고 여러 번 연락하셨거든요. 그런데 계속 연락이 안 돼서요.”

설명을 들은 강서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마 배터리가 다 되었나 봐요.”

너무 성의 없는 이유여서 믿기 힘든 답이었지만, 심현수는 더 묻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민 대표님이 노 본부장님이랑 같이 엑스에이지 드론 프로젝트 현장을 보러 가셨어요.”

“일정 보니 아마 다음 주쯤 사무실로 돌아오실 것 같고요. 이 자료는 제가 먼저 전달해 두겠습니다.”

강서이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모니터를 켜서 오늘 일정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엑스에이지 드론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강서이가 거의 단독으로 추진해 온 업무였다.

두 번의 현장 실사와 초기 실무 조율까지 모두 강서이가 직접 대응했으며, 민도하는 진행 과정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더구나 프라임로드투자 안에서 이 프로젝트는 그다지 큰 비중의 딜도 아니었다. 민도하가 직접 지방까지 내려가 실사를 할 유형의 건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직접 갔다.

누가 봐도 프로젝트 검사하러 간 것이 아니라, 노아리를 대동해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러 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좋네. 부부 역할 제대로 하네.’

강서이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했다.

민도하가 회사에 없으니 강서이의 업무량은 절반으로 줄었다.

게다가 IB본부 3부 관련 실무도 넘겨서 한결 여유가 생겼다.

겨우 숨통이 트인 듯한 기분이었다.

오늘은 퇴근 후 한의사 하강진과 진료 약속도 있었다. 속이 오랜 기간 좋지 않아 한약을 지어 먹어보려는 계획이었다.

강서이는 원래 체력이 약했고, 더 이상 방치했다간 큰 병이 올 것 같았다.

하강진은 B시에선 꽤 유명한 경력 많은 한의사라 평소엔 진료 예약 잡기가 힘들다.

예전에 강서이가 고객 가족을 챙기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병원 앞에서 번호표를 받는 일이 잦았고, 그 덕에 자연스레 하강진과 인연이 생겼다.

하강진은 강서이가 무리하는 것을 여러 번 봐 왔기에, 늘 건강을 챙기라고 당부하곤 했다.

‘젊다고 몸으로 함부로 소모하면 나중에 반드시 대가 치른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했었다.

오늘은 하강진도 특별히 퇴근을 늦추며 강서이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러나 강서이는 병원으로 향하던 중, 엑스에이지 대표 송이호에게서 전화받았다.

“강 비서님, 큰일 났습니다. 지금 바로 좀 와주셔야겠어요!”

갑작스러운 말투에 강서이는 걸음을 멈추고 상황을 물었다.

송이호는 격앙된 목소리로 설명했다. 프라임로드투자 측이 프로젝트 실사를 진행하러 왔고, 분위기도 처음에는 괜찮았다고 한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딜 논의를 하는 자리에서, IB본부 3부의 노아리 본부장은 이미 합의되어 있던 밸류에이션 과정에서 주가를 3퍼센트를 더 깎으려 들었다는 것이었다.

덧붙여 엑스에이지의 드론이 산업용 비중이 크고, 상업적 확장성이나 점유율이 경쟁사 대비 떨어진다는 이유까지 들며 가격을 낮추려 했다는 것이다.

[강 비서님, 저희가 프라임로드투자를 선택한 건 강 비서님 때문이었어요. 다른 투자사들도 많이 제안했지만, 강 비서님이 제시한 협력 구조랑 미래 구상이 가장 현실적으로 맞았기 때문에 결정한 거라고요.]

송이호의 목소리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떨렸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식이면 협력하기 힘들어요. 저희는 강 비서님하고만 얘기하겠습니다. 강 비서님이 안 오시면, 이번 프로젝트는 여기서 접겠습니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제364화

    그제야 강서이는 민도하가 자기 뒤를 따라 별실 안으로 들어왔다는 걸 알아차렸다.“네.”“아니요.”두 사람의 대답은 정반대였다.심진호가 웃었다. “두 분, 미리 말을 맞추신 건 아닌가 봅니다.”강서이는 민도하가 왜 저러는지 알 수 없었고, 굳이 이유를 짐작하고 싶지도 않았다.“강 대표님, 한잔 받으시죠. B시 여성 자산가 1위에 오르신 거 축하를 해야죠.”손규원은 기분 좋게 웃으며 강서이에게 잔을 들었다.“손 대표님은 소식이 조금 늦으셨네요. 순위가 벌써 바뀌었습니다. 지금 1위는 민 대표님 약혼자인 노아리 본부장이에요.”심진호가 옆에서 알려 줬다.손규원은 정말 모르고 있었다. 순위가 바뀐 게 오늘 아침이었으니 그럴 만했다.“아이고, 제가 소식이 늦었습니다. 그래도 이 잔은 강 대표님께 꼭 드려야죠.”손규원은 웃으면서 사과했다.강서이는 차를 몰고 왔으니 술은 어렵다고 말하고 차로 대신 건배하려고 했다.그런데 누군가 먼저 손을 뻗어서 강서이 앞의 술잔을 가져갔다.강서이는 그 손에 아직 압박용 장갑을 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민도하가 말했다. “강 대표는 차를 가지고 왔을 겁니다. 이 술은 제가 대신 마시겠습니다.”강서이는 잠깐 멈칫한 뒤 민도하를 제대로 바라봤다.‘대체 무슨 생각이야?’‘내 술을 대신 마시겠다고?’‘지금 사람 잘못 본 거 아니야?’강서이가 거절할 틈도 없이 민도하는 잔을 들어 단숨에 마셨다.하지만 강서이는 전혀 고맙지도 않았다. 오히려 쓸데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누가 자기 대신 술을 마셔 줄 필요도 없었다.“도하야, 여기 웬일이야?”강서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노아리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지나가다가 민도하를 본 모양인지 노아리도 별실 안으로 들어와서 인사했다.‘둘이 같이 온 것도 아니었네.’“마침 노아리 본부장님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직접 오셨네요. 그러면 민 대표님도 노아리 본부장님과 같이 오신 겁니까?”심진호는 노아리에게 앉을 자리까지 내줬다.노아리는 웃으며 설명했다. “아니에

  •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제363화

    “양 사장님.”성이남은 들어오자마자 노아리에게 양정원을 소개했다.“아리 선배, 전에 말했던 양 사장님이야.”노아리도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잠시 어색해했다.하지만 곧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양 사장님과는 이미 아는 사이예요.”노아리는 먼저 손까지 내밀었다. “오랜만입니다, 양 사장님.”성이남은 오히려 반가워했다. “서로 아는 사이면 더 잘됐네.”양정원은 예의를 지켜 노아리와 악수했지만, 표정에는 별다른 반가움이 없었다.성이남은 온 신경이 노아리에게 쏠려 있어 양정원의 냉담한 태도를 알아차리지 못했다.“양 사장님, 전에 전화로 말씀드렸던 사람이 노아리 본부장님입니다. 해외에서 금융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대형 항만 인수 건도 직접 이끈 경험이 있어요.”“경력도 충분하고 실무 경험도 많습니다. 그래서 세 사람이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양 사장님이 기술을 맡고, 제가 자금을 대고, 아리 선배가 사업 운영을 맡는 겁니다. 그러면 이 프로젝트는 반드시 잘될 겁니다.”성이남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양정원은 듣고 나서 가볍게 웃기만 했다.“성 대표님이 전화에서 말씀하신 좋은 방안이 이거였군요.”그 말에 깔린 차가움을 알아차리지 못한 성이남은 노아리를 더 적극적으로 추천했다.“아리 선배는 성공시킨 사업이 많습니다. 최근 출시된 모바일게임 ‘꿈결’도 아리 선배가 처음부터 운영을 맡았어요.” “사업을 운영하는 능력은 확실합니다. 인맥이나 자원 쪽도...”성이남은 말을 잠깐 멈췄다.민도하를 꺼내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개인 감정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결국 성이남은 말을 이었다.“인맥이나 자금 네트워크도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리 선배 뒤에는 프라임로드투자의 민 대표가 있으니까요.”노아리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부분도 바로 그것이었다.양정원과 예전에 마찰이 있었다고 해도 사업하는 사람은 결국 이익을 따지게 마련이었다.성이남이 강하게 추천하고 민도하까지 뒷받침해 주는 상황이라면, 합리적인

  •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제362화

    “왜 그래?” 강서이가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김설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오늘 아침에 자산 순위가 갱신됐는데, 여성 자산가 1위가 바뀌었어요!”강서이는 손가락 두 개를 굽혀 김설의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근무 시간에 또 딴짓했어? 비공식 순위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했잖아.”“원래는 안 보려고 했는데 새로 1위 된 사람이 너무 싫어요!”“노아리지?”김설이 멈칫했다. “어떻게 아셨어요?”아직 이름도 말하지 않았는데.강서이는 전혀 놀라지 않은 표정으로 오히려 농담까지 했다. “벌써 지분 이전 절차를 다 끝낸 걸 보면, 화상도 그렇게 심한 건 아니었나 보네.”‘다친 와중에도 영승반도체 지분을 넘기는 일부터 처리했다니...’‘민도하의 사랑은 참 대단하네.’강서이는 나가기 전에 김설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일이나 제대로 해. 나 나갔다가 오늘은 회사에 다시 안 들어와.”“술 드실 거면 저도 데려가세요.”“안 마셔.”김설이 안도하며 말했다. “그럼 다행이고요. 아, 대표님 며칠 안에 생리 시작하실 것 같으니까 찬 음식 너무 드시지 마세요. 생리대는 가방 안쪽 주머니에 넣어 뒀어요.”“확인.”강서이는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는 습관이 있어서 이번에도 가장 먼저 자리에 도착했다.차를 몇 가지 주문한 뒤 느긋하게 사람들을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미닫이문이 밖에서 열렸다.양정원인 줄 알고 미소를 지었던 강서이는 들어온 사람이 성이남인 걸 보고 표정을 거뒀다.별실 안의 강서이를 발견한 성이남의 반듯한 눈매에 차가운 불쾌감이 스쳤다.안으로 들이려던 발을 다시 문밖으로 빼더니, 위를 올려다보며 별실 이름부터 확인했다.방을 잘못 찾은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한 뒤, 강서이를 다시 볼 때는 눈빛이 더욱 냉랭해져 있었다.강서이는 그 반응만으로도 대강 누군지 짐작했다. 예의를 지키며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양 사장님은 조금 늦으신다고 했습니다. 성 대표님, 들어오세요.”성이남은 강서이를 무심하게 바라봤다. 강서이가

  •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제361화

    하지만 강서이는 이미 홀에 없었다.다시 별실로 돌아간 뒤였다....저녁이 돼서야 남유환은 강서이에게 메시지를 보내 민도하의 상태를 짤막하게 전했다.[왼손 화상이 꽤 심하대요. 그래도 초기에 처치를 잘해서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알겠습니다.]강서이는 짧게 대답했다.남유환은 한동안 핸드폰 화면을 바라봤지만 두 번째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정말 도하한테 아무 관심도 없는 건가?’전날 술자리에서 꽤 많이 마신 서태우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곯아떨어져서, 민도하가 다쳤다는 사실을 몰랐다.다음 날 소식을 듣자마자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병실에는 노아리만 있었다. 밤새 자리를 지킨 모양이었다.“아리야, 집에 가서 좀 쉬어. 나 오늘 할 일 없으니까 도하는 내가 보고 있을게.”노아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민도하도 말했다. “가서 좀 쉬어.”“알았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해.” 노아리는 나가면서도 민도하에게 주의할 점을 몇 번이나 당부하고, 서태우에게도 잘 돌봐 달라고 말했다.노아리가 떠나자 서태우는 소파에 몸을 던지며 혀를 찼다. “이야, 아리가 너 진짜 많이 좋아하네.”민도하는 대꾸하지 않고 침대에 비스듬히 기댄 채 눈을 감고 쉬었다.하지만 호기심을 못 참는 서태우가 결국 물었다. “어제 사람 잘못 구했다며? 원래 아리 잡으려다가 엉뚱하게 강서이를 구했다던데?”“시끄러워.” 민도하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싸늘했다.서태우는 눈치도 없이 계속 떠들었다. “강서이는 반응이 어땠어? 엄청 감동했겠지? 네가 아직 자기한테 마음 있는 줄 알았을 것 같은데.”“오늘 분명 핑계를 만들어서 병문안 올걸?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간호하려고 할 거야.”민도하는 여전히 무심한 말투였다. “너 혼자 상상하지 마.”서태우는 자신만만했다. “안 믿기면 두고 봐. 무조건 와. 이런 기회를 강서이가 놓칠 리가 없지.”그에게는 나름 근거가 있었다. 예전의 강서이는 실제로 늘 그런 식이었으니까.하지만 서태우는 하루 종일 기다리고도 강

  •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제360화

    강서이는 대꾸할 생각이 없어 그냥 돌아서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노아리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도하야, 왔어? 한참 기다렸잖아. 안에 들어가서 엄마랑 지인들한테 인사하고 갈래?”강서이는 낮게 코웃음을 치고 다시 별실 쪽으로 걸어갔다.멀리하고 싶다는 기색을 굳이 감출 생각도 없었다.노아리도 강서이를 발견했지만 오래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정확히는 강서이를 상대할 가치조차 없다고 여겼다.민도하의 마음에는 자기밖에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강서이는 노아리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데 신경을 쓸 이유도 없었다.두 사람이 스쳐 지나가려던 때, 직원 하나가 펄펄 끓는 뚝배기 소갈비찜을 들고 별실 쪽으로 가고 있었다.“잠시 비켜 주세요. 뜨겁습니다.”말이 끝나자마자 직원의 발이 뭔가에 걸렸다. 균형을 잃은 몸이 그대로 앞으로 쏠렸다.뚝배기는 막 불에서 내린 참이라 겉면부터 뜨거웠고, 안의 갈비찜도 여전히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저게 사람 몸에 쏟아지면 심한 화상을 피할 수 없었다.직원 바로 앞에는 강서이와 노아리가 서 있었다.한 사람은 직원을 보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등을 돌린 상태였다.노아리는 직원과 마주 보고 있어 피할 여지가 있었다.반면 강서이는 등을 돌리고 있어서 뒤에서 벌어진 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별실에서 강서이를 찾으러 나왔던 남유환이 마침 그 장면을 보자, 표정이 굳어지면서 바로 소리쳤다.“강 대표! 조심하세요!”강서이가 의아해할 틈도 없이 누군가 팔을 거칠게 잡아당겼다.몸이 크게 돌아가면서 강서이는 그대로 누군가의 품에 부딪혔다. 코끝이 상대의 몸에 닿았다.익숙한 우디 계열의 서늘한 향기가 가까이에서 밀려왔다.머리 위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오자 노아리도 놀라 외쳤다. “도하야, 데였어?”남유환도 급히 달려와 강서이를 살폈다.“괜찮으세요?”강서이는 민도하의 품에서 물러난 뒤에야 뜨거운 국물이 민도하의 오른손에 쏟아졌다는 걸 알아차렸다.손등의 꽤 넓은 부위가 벌겋게 부어 있었다.강서이는 미간을

  •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제359화

    “당연하지. 여기 너무 재미없어. 앉아 있는 게 고역이야.”“못 데려갈 건 없지. 너도 아는 사람이니까.”서태우가 호기심을 못 참고 물었다. “누군데?”“강서이.”서태우가 입을 다물더니 표정도 바로 바뀌었다. “그럼 난 그냥 돌아가서 재미없는 사업 얘기나 들을래.”“말해 줘도 싫다고 할 거면서 꼭 물어보더라.” 남유환이 놀리듯 웃었다. “강서이 평판이 이 정도야?”서태우가 짧게 말했다. “내가 방해했네.”강서이에게 몇 번 크게 데인 뒤로는 이름만 들어도 움찔하는 수준이었다....남유환이 월하정에 도착했을 때 노아리도 막 들어서고 있었다.남유환을 발견한 노아리의 눈이 밝아지면서 반가운 목소리로 불렀다.“유환아, 왔네? 일이 있어서 못 온다며?”남유환은 잠깐 말문이 막혔다.이렇게 공교롭게 노아리와 마주칠 줄은 몰랐다.어색함을 넘기려고 아무 말이나 꺼냈다. “도하는 왜 같이 안 왔어?”“집에 일이 좀 있대. 조금 늦게 와서 나 데리러 온다고 했어.” 노아리가 설명했다. “안에서는 벌써 시작했어. 같이 들어가자.”“미안한데 나 오늘 여기서 사람을 만나기로 했어. 어머님께 안부만 전해줘.” 남유환은 자연스럽게 거절했다.노아리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지만 곧바로 말했다. “그럼 이따 잠깐이라도 얼굴 비춰. 알잖아. 난 계속 너를 친구라고 생각해.”“상황 봐서.” 남유환은 확답하지 않은 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갔다.멀어지는 남유환의 뒷모습을 보던 노아리의 눈길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식당 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곧장 이예수가 있는 별실로 가지 않았다. 남유환이 향한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그는 문을 두드리고 들어간 뒤 문은 완전히 닫혀 있지 않았다.노아리는 그 앞을 지나가면서 안쪽에 앉아 있는 강서이를 어렵지 않게 발견했다.노아리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금세 표정을 다잡았다. 남유환을 향한 실망만 짙어졌다.남유환의 등장은 강서이에게도 뜻밖이었지만, 곧 변수린이 알려 줬겠거니 짐작했다.하지만 남유환은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