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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Author: 애니
서태우는 민도하가 분명 놀랄 거로 생각했는데, 통화기기 너머로 들려온 반응은 예상외로 차분했다.

“조규찬, 아직도 포기 안 했어?”

‘이 말투... 조규찬이 강서이한테 들이대는 게 한두 번이 아니구나.’

[응.]

민도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오히려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어차피 못 데려가. 강서이는 절대 조규찬 따라가지 않아.”

서태우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맞지. 강서이가 프라임로드투자를 왜 떠나겠어.’

‘다른 건 몰라도, 민도하가 프라임로드투자에 있는 이상... 강서이는 절대로 회사를 나갈 리 없지.’

서태우는 이미 모든 걸 꿰뚫고 있다는 듯한 말투로 농담을 이어갔다.

[내 생각엔 강서이가 일부러 조규찬을 ‘DAAL’로 불러낸 것 같아. 나한테 들키게 하려고.]

[그러고 나서 네 귀에도 슬쩍 흘려서, 너한테 강서이가 이직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거지. 그러면 네가 불러 붙잡을 테니까.]

서태우의 목소리엔 조롱이 한가득 섞여 있었다.

[아마 네가 요즘 아리를 챙기니까 강서이는 자기한테 좀 소홀해진 것 같다고 느낀 거겠지. 그래서 이런 잔재주 부리는 거야. 참 촌스러워. 눈치도 없고.]

[남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여자들끼리 질투하고 싸움 거는 거라는 걸 강서이는 모르나? 저렇게 티 내면 낼수록 널 더 멀어지게 한다는 것도 모르고.]

[자기가 뭔데? 아리랑 비교가 돼? 누가 봐도 답은 정해져 있는데?]

하지만 민도하는 이런 이야기에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다. 형식적인 대답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바로 책상 위 서류철을 펼쳤는데, 가장 위에 강서이의 사직서가 놓여 있었다.

민도하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곧바로 그 문서를 옆으로 밀어두고 아무렇지 않은 듯 다른 서류에 다시 사인했다.

...

그 시각, 강서이는 조규찬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기분 좋게 집으로 향했다.

집 근처 꽃집에서 스스로에게 꽃 한 다발을 사 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집 안에 놓인 수많은 ‘자기 것이 아닌 물건들’을 보며 방금까지의 들떴던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강서이는 종이상자를 꺼내 그동안 쌓아두었던 문서들을 전부 넣기 시작했다. 그제야 식탁이 제 모습을 찾았다.

집안을 둘러보던 강서이는 꽃을 꽂을 만한 물건을 발견했다.

트로피.

프라임로드투자의 ‘우수사원상’ 트로피.

민도하가 직접 강서이에게 건네준 상, 그리고 강서이는 그걸 보물처럼 간직해 왔다.

얼마 전 한지수가 술에 취해 강서이의 집에서 자다, 한밤중에 배탈이 나서 가까운 곳에 있는 그 트로피를 잡고 토하려 했다.

그 순간 강서이는 반사적으로 트로피를 낚아채며 한지수가 침대에 토하든 말든 트로피만은 지켜냈다.

강서이는 트로피에 물을 채우고 꽃을 꽂았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제야 좀 쓸모가 있네.”

잠들기 전 강서이는 새로운 습관을 실천했다.

잘 때는 핸드폰을 꺼두는 것.

덕분에 오랜만에 깊게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9시 정각, 강서이는 회사에 도착했다.

동료들은 이 시간에 강서이가 들어오는 걸 보고 모두 이상하게 여겼다. 평소라면 늘 강서이가 가장 먼저 출근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은 늘 입던 딱딱하고 수수한 정장 대신, 옅은 색감의 셔츠와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강 비서님, 오늘 뭔가 달라요.”

강서이는 미소 지으며 물었다.

“어디가요?”

“예쁜데요.”

정확히 말하자면, 굉장히 예뻤다.

오늘 강서이는 옅은 화장만 했을 뿐인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맑고 깨끗하면서도 우아했다.

남녀 모두가 시선을 뺏길 수밖에 없는 그런 느낌.

“고마워요.”

기분이 더 좋아진 강서이는 출근길에 이미 아침을 먹고 와서 사무실 도착 후 곧장 휴게실로 가서 물을 받고 위장약을 꺼냈다.

그런데 문 앞에 서자 안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얘기가 들려왔다.

“너희는 강 비서님이랑 노아리 본부장님이랑 누가 더 예쁘다고 봐?”

“둘은 완전히 다른 타입이라 비교가 어렵지.”

“예전 같으면 당연히 노아리 본부장님이 더 예뻤지. 근데 강 비서님은 너무 딱딱했잖아. 옷차림도 화장도 다 단정하다 못해 답답했어. 사람도 실제보다 열 살은 더 들어 보였고. 근데 원래 타고난 얼굴이 좋은 사람들은 조금만 손봐도 확 달라 보이더라니까?”

“맞아 맞아. 지금 완전 분위기 장난 아니야. 누나라고 부르고 싶어질 정도야.”

“외모만 놓고 보면 강 비서님이 약간 더 우위인데, 그래도 노아리 본부장님은 학벌이나 집안이 다 너무 뛰어나서... 그건 강 비서님이 못 따라가잖아.”

“그렇지. 머리랑 배경은 타고나는 거니까. 태어나는 것도 실력이야.”

“근데 강 비서님, 집안이 좀 그래서... 혼자 자랐다던데...”

“...”

그 순간, 강서이가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휴게실 안의 대화는 즉시 멈췄다.

“좋은 아침이에요.”

강서이는 아무 말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담담하게 물을 받고, 자연스럽게 인사하며 휴게실 안을 지나갔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어색하게 대답한 뒤 재빨리 흩어졌다.

...

강서이가 약을 먹고 자리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IB본부 3부 과장 심현수가 급하게 다가왔다.

표정이 잔뜩 급한 탓에 숨이 조금 가빠져 있었다.

“강 비서님, 엑스에이지 드론 프로젝트 평가보고서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민 대표님이 직접 요청하셨습니다.”

강서이는 정리해 둔 자료를 건네며 고개를 들었다. 그때 심현수가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강 비서님, 핸드폰 고장 났어요?”

“아뇨, 왜요?”

강서이는 영문을 몰라 눈을 깜빡였다.

“아침에 민 대표님이 출장을 나가셨는데, 이 평가보고서 급하게 필요하다고 여러 번 연락하셨거든요. 그런데 계속 연락이 안 돼서요.”

설명을 들은 강서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마 배터리가 다 되었나 봐요.”

너무 성의 없는 이유여서 믿기 힘든 답이었지만, 심현수는 더 묻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민 대표님이 노 본부장님이랑 같이 엑스에이지 드론 프로젝트 현장을 보러 가셨어요.”

“일정 보니 아마 다음 주쯤 사무실로 돌아오실 것 같고요. 이 자료는 제가 먼저 전달해 두겠습니다.”

강서이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모니터를 켜서 오늘 일정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엑스에이지 드론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강서이가 거의 단독으로 추진해 온 업무였다.

두 번의 현장 실사와 초기 실무 조율까지 모두 강서이가 직접 대응했으며, 민도하는 진행 과정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더구나 프라임로드투자 안에서 이 프로젝트는 그다지 큰 비중의 딜도 아니었다. 민도하가 직접 지방까지 내려가 실사를 할 유형의 건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직접 갔다.

누가 봐도 프로젝트 검사하러 간 것이 아니라, 노아리를 대동해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러 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좋네. 부부 역할 제대로 하네.’

강서이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했다.

민도하가 회사에 없으니 강서이의 업무량은 절반으로 줄었다.

게다가 IB본부 3부 관련 실무도 넘겨서 한결 여유가 생겼다.

겨우 숨통이 트인 듯한 기분이었다.

오늘은 퇴근 후 한의사 하강진과 진료 약속도 있었다. 속이 오랜 기간 좋지 않아 한약을 지어 먹어보려는 계획이었다.

강서이는 원래 체력이 약했고, 더 이상 방치했다간 큰 병이 올 것 같았다.

하강진은 B시에선 꽤 유명한 경력 많은 한의사라 평소엔 진료 예약 잡기가 힘들다.

예전에 강서이가 고객 가족을 챙기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병원 앞에서 번호표를 받는 일이 잦았고, 그 덕에 자연스레 하강진과 인연이 생겼다.

하강진은 강서이가 무리하는 것을 여러 번 봐 왔기에, 늘 건강을 챙기라고 당부하곤 했다.

‘젊다고 몸으로 함부로 소모하면 나중에 반드시 대가 치른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했었다.

오늘은 하강진도 특별히 퇴근을 늦추며 강서이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러나 강서이는 병원으로 향하던 중, 엑스에이지 대표 송이호에게서 전화받았다.

“강 비서님, 큰일 났습니다. 지금 바로 좀 와주셔야겠어요!”

갑작스러운 말투에 강서이는 걸음을 멈추고 상황을 물었다.

송이호는 격앙된 목소리로 설명했다. 프라임로드투자 측이 프로젝트 실사를 진행하러 왔고, 분위기도 처음에는 괜찮았다고 한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딜 논의를 하는 자리에서, IB본부 3부의 노아리 본부장은 이미 합의되어 있던 밸류에이션 과정에서 주가를 3퍼센트를 더 깎으려 들었다는 것이었다.

덧붙여 엑스에이지의 드론이 산업용 비중이 크고, 상업적 확장성이나 점유율이 경쟁사 대비 떨어진다는 이유까지 들며 가격을 낮추려 했다는 것이다.

[강 비서님, 저희가 프라임로드투자를 선택한 건 강 비서님 때문이었어요. 다른 투자사들도 많이 제안했지만, 강 비서님이 제시한 협력 구조랑 미래 구상이 가장 현실적으로 맞았기 때문에 결정한 거라고요.]

송이호의 목소리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떨렸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식이면 협력하기 힘들어요. 저희는 강 비서님하고만 얘기하겠습니다. 강 비서님이 안 오시면, 이번 프로젝트는 여기서 접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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