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0화

작가: 애니
강서이는 송이호의 격한 목소리를 제대로 달래지도 못한 채, 통화가 끊긴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다시 전화를 걸어보려는 찰나, 이번엔 민도하의 번호가 떴다.

강서이는 숨을 가다듬고 통화를 받았다.

[A시로 와.]

민도하는 짧게 그렇게 말한 뒤, 설명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언제나처럼 명령하듯 일방적이었다.

몇 초간 머뭇거리던 강서이는 결국 A시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유는 민도하가 아니었다.

엑스에이지와 송이호 때문이었다.

엑스에이지는 강서이가 발굴한 프로젝트였고, 초기 커뮤니케이션과 실사 정리까지 수없이 오간 것도 모두 강서이였다.

처음 송이호가 투자 유치에 소극적이었을 때, 여러 번 찾아가 협력 구조를 조정하고 설득한 것도 강서이였다.

‘내가 해온 일을 포기하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지.’

강서이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A시로 가는 결정은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하강진과의 진료 약속이었다.

결국 강서이는 약속을 취소했고, 하강진에게 한참 잔소리를 들었다.

그저 일이 정리되면 반드시 제대로 치료받겠다고 약속하며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

깊은 밤, 강서이가 A시에 도착했을 때 바깥은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급격히 내려간 기온 탓인지, 복부 깊은 곳이 쥐어짜듯 아렸다.

급하게 나온 탓에 얇은 외투 하나 걸친 채 공항을 빠져나왔고, 강서이는 떨리는 손으로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로 향했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강서이는 내일 송이호를 만나기 전에 민도하와 엑스에이지 관련 사안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의견 통일이 되지 않으면 협상에 차질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젖은 머리도 그대로 두고 강서이는 먼저 민도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길게 이어지고 난 뒤에야 통화가 연결됐다.

강서이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들려온 건 노아리의 목소리였다.

[도하야, 강 비서님 전화 왔어.]

민도하의 말소리는 물소리가 섞인 듯 흐릿했다. 구체적인 말은 알아듣기 어려웠다.

노아리가 다시 말했다.

[강 비서님, 도하 지금 샤워 중이에요. 나중에 다시 거는 게 좋지 않을까요?]

강서이의 목 안이 써늘하게 잠겼다.

“급한 건 아니니까요. 민 대표님 쉬시라고 전해주세요.”

말을 마치자마자 강서이는 전화를 끊었다.

늦은 밤, 호텔 방.

옆방인지 같은 방인지 모를 거리에서 들려오는 노아리의 목소리.

샤워 중이라는 민도하.

남녀 단둘이 출장.

‘둘이 같이 있는 게 당연한 건가?’

강서이는 스스로를 다그치며 생각을 정리하려 했지만, 창밖에서 떨어지는 빗소리가 머릿속을 더 어지럽혔다.

A시는 B시보다 훨씬 추웠다.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서자, 냉기가 그대로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때 복부가 더 강하게 조여왔다.

강서이는 몸을 접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가 피가 비친 걸 확인했다.

생리였다.

게다가 예상보다 거의 일주일이나 빨랐고 통증도 평소보다 훨씬 심했다.

강서이는 식은땀을 닦으며 호텔 프런트에 전화해 진통제와 위생용품을 요청했다.

잠시 뒤 문을 두드린 직원은 강서이의 얼굴색을 보고 놀란 듯했다.

“많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병원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강서이는 고개를 저었다.

“약 먹으면 좀 괜찮아질 거예요.”

직원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조금이라도 더 아프시면 바로 연락 주세요.”

“네.”

대답은 했지만, 강서이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아침이 되자 얼굴은 창백했고, 화장해도 티가 날 정도였다.

‘제발 오늘 민도하가 이걸로 뭐라고 하지만 않으면 좋겠다.’

강서이는 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민도하는 업무 중 컨디션이 좋지 않은 모습 보이는 것을 특히 싫어했다.

위장약을 먹어야 했기에 강서이는 시간에 맞춰 호텔 레스토랑으로 내려가 간단히 먹을 것을 챙겼다.

강서이가 호텔 로비에 들어섰을 때, 마침 민도하와 노아리가 나란히 조식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세 사람이 마주치자,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노아리였다.

“강 비서님 이제 나오셨어요? 레스토랑은 거의 비었더라고요.”

강서이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금 늦었습니다.”

민도하는 강서이 쪽을 보지도 않고, 호텔 정문 밖을 한 번 살핀 뒤 노아리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전 레스토랑에서 들리던 음성과는 확연히 다른, 부드러운 톤이었다.

“밖에 비 와. 더 추워질 것 같으니까 외투 먼저 챙기러 가자.”

“응.”

노아리는 강서이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민도하와 함께 걸어 나갔다.

‘민도하가 이런 배려도 할 줄 아네.’

강서이는 몇 초간 제자리에서 멈춰 섰다. 태어나 처음 보는 장면처럼 생경했다.

레스토랑엔 정말로 먹을 것이 거의 없었다.

강서이는 남아 있던 빵 두 개를 손에 들고 자리에 앉으려 했지만, 휴대폰이 울리며 움직임이 멈췄다.

민도하였다.

통화를 연결하자, 민도하의 목소리는 불과 몇 분 전과는 전혀 다른 온도였다.

차갑고 딱딱했다.

[나와.]

“지금?”

강서이는 손에 쥔 빵을 내려다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뭐 해? 설마 우리를 기다리게 할 거야?]

강서이는 짧게 숨을 들이쉬고 대답했다.

“곧 나갈게.”

빵을 가방에 넣은 강서이는 재빨리 정문 쪽으로 향했다.

도착했을 때, 민도하와 노아리는 이미 차에 타 있었다.

둘은 여전히 나란히 뒷좌석에 앉아 있었고, 강서이에게는 조수석만 열려 있었다.

강서이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린 채 조용히 조수석에 올랐다.

문이 닫히자마자 민도하는 운전기사에게 출발하라고 짧게 지시했다.

기다린 시간이 조금이라도 길었던 듯, 말투에는 성급함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가방 안의 빵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지만, 강서이는 먹을 수 없었다.

민도하는 차 안에서 누군가가 음식을 먹는 것을 유난히 싫어했다.

7년 동안 비서로 일하며 배운 민도하의 기호들은 이미 몸에 새겨진 습관처럼 굳어 있었다.

강서이가 위가 쓰리고 어지러웠지만,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먹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자리가 많았으니.

민도하는 곧장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너... 그동안 엑스에이지와 말을 어떻게 맞췄던 거야?”

질문이라기보단 추궁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마치 프로젝트 진행이 어긋난 게 강서이 때문이라도 되는 듯.

강서이는 감정 없이 사실만 말했다.

“이미 2차까지 실사했고 TF 협의도 마무리 단계였어. 비율도 합의된 부분이었고. 갑자기 줄여버리면 당연히 엑스에이지 측은 불만...”

끝까지 말할 틈도 없이 민도하가 말을 잘랐다.

“절차 끝나기 전엔 뭐든 바뀔 수 있는 거야.”

잠시 침묵 후, 민도하는 룸미러를 통해 강서이를 바라봤다.

찔러보듯 가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나랑 그렇게 오래 있었으면서, 이런 것도 몰라?”

강서이는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그럼 이유라도 말씀해 주시겠어요? 왜 비율을 줄이신 건지.”

이번에는 노아리가 대신 대답했다.

“제 경험상, 엑스에이지 드론은 상업성이 부족합니다. 시장 수요 전망이 프로젝트 문서만큼 나오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래서 비율을 조정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요.”

강서이는 반박 없이 설명을 이어갔다.

“엑스에이지는 오래된 브랜드고, 기술력과 A/S 체계가 탄탄합니다. 저희가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고요.”

노아리는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말을 잘랐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감정으로 움직이지 않아요. 결국 이익이 전부죠.”

그리고 노아리는 웃음을 머금은 채 민도하를 흘끗 봤다.

“도하야, 부하직원 교육을 너무 느슨하게 한 거 아니야?”

민도하는 짧게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러니까 비서만 하지, 본부장은 못 하고.”

노아리는 재미있다는 듯 부드럽게 웃었다.

“투자 일을 하려면 머리랑 감각이 있어야 하거든요. 강 비서님은 학력도 그냥 평범하시고, 프로젝트를 맡기엔...”

이 작품을 무료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최신 챕터

  •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제450화

    강서이는 소문난 일벌레답게 식사 내내 업무 이야기만 했다.식사가 끝난 뒤 서한승이 두 사람을 차까지 직접 배웅했다.차가 한참 멀어진 뒤에도 서한승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한지수는 룸미러로 그 모습을 계속 지켜봤다.서한승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된 뒤에야 감탄하듯 말했다.“진짜 지독하게 한결같다.”“뭐가?”강서이는 정말 무슨 말인지 모르는 얼굴이었다.한지수가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설마 서한승이 너 좋아하는 거 모른다고는 하진 마.”강서이는 한지수에게 숨기는 게 거의 없었다.그래서 솔직하게 인정했다.어느 정도는 느끼고 있었다.한지수가 바로 물었다.“그럼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난 별다른 생각 없어.”한지수는 답답해서 대신 속이 탈 지경이었다.“너 진짜 사람한테 느끼는 욕구는 다 사라지고 돈 벌 욕심만 남은 거야? 민도하한테 한 번 크게 데였다고 모든 남자를 피할 필요는 없잖아.”“그 정도로 극단적인 건 아니야. 그냥 아직 내가 다른 생각을 할 만큼 마음 가는 사람이 없는 거지.”강서이가 무슨 옛날 사람도 아니었다.누구 한 사람 때문에 평생 마음을 닫고 살 생각도 없었다.다만 7년이나 이어진 관계를 끝낸 뒤라 지쳤다.당분간은 쉬고 싶었다.자신을 식물처럼 생각하며 물을 마시고, 밥을 먹고, 햇볕을 쬐는 그런 삶.누군가를 사랑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햇빛과 양분만 흡수하며 조용히 살아 보고 싶었다.꽃을 피우지 않아도 되고 열매를 맺지 않아도 됐다.잎이 지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뿌리를 단단히 내리는 데 집중해야 더 잘 자랄 수 있었다.실패한 관계를 지나오며 강서이는 한 가지를 확실하게 깨달았다.끝까지 자신과 기쁨도 고통도 함께할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뿐이었다.자신이 든 우산 하나가 남의 집 처마보다 더 든든할 때도 있었다.강서이는 남자에게 꽤 실망한 상태였다.“남자들이 어떤지 너도 알잖아.”한지수도 그 말에는 반박하지 못했다.한지수 역시 제대로 된 남자를 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주변에는 이상한 남자만

  •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제449화

    민도하의 눈빛이 약간 날카로워져 있었다.노아리의 표정이 곧 어두워졌다.기분이 상했다.그때 서한승이 늦게 도착했다.“서이야, 많이 기다렸어? 아는 사람을 만나서 얘기가 좀 길어졌어.”“아니요.”강서이는 서한승에게 웃어 보인 뒤 구정태에게 인사했다.“총장님, 저 먼저 가볼게요. 오늘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제가 식사 한 번 살게요.”“그래요.”구정태가 흔쾌히 대답했다.서한승도 다른 사람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강서이와 나란히 걸어갔다.“뭐 먹고 싶어?”“저는 아무거나 괜찮아요.”“너 예전에 능이백숙 좋아했잖아. 그 집 아직도 하나 모르겠네.”강서이가 조금 놀라며 서한승을 봤다.“그걸 아직도 기억해요?”“당연하지. 네가 좋아하는 건 전부 다 계속 기억하고 있었어.”서한승은 말을 하며 또 강서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눈빛과 손길 모두 다정했다.멀리서 보면 오래 사귄 연인처럼 보일 정도였다.구정태는 두 사람이 멀어지는 모습을 잠깐 바라보다 윌리엄 교수 일행에게 말했다.“저희도 식사하러 가시죠.”노아리가 조심스럽게 민도하를 불렀다.“도하야.”민도하는 잠깐 시선을 멈췄다가 담담하게 강서이에게서 시선을 돌렸다.“가자.”그제야 노아리는 마음을 놓았다.민도하가 강서이에게 흔들린 건 아니었다.강서이가 유명 경영대학원의 입학 허가를 받았다는 사실은 분명 의외였다.하지만 그 정도로 민도하가 마음을 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강서이가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성과를 내든 민도하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애초에 강서이라는 사람 자체를 마음에 두지 않았으니까.그렇게 생각하자 노아리의 기분도 조금 풀렸다.다시 민도하의 팔에 팔짱을 끼고 오늘 행사에서 얻은 성과에 대해 이야기했다....반가운 일은 강서이가 좋아했던 능이백숙집이 아직도 영업 중이라는 점이었다.강서이는 간판을 바라보며 감탄했다.“이 집이 아직까지 있을 줄은 몰랐어요.”서한승이 담담하게 말했다.“사장님이 꾸준한 사람인가 보지.”강서이도 같은

  •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제448화

    노아리는 줄곧 강서이를 학력도 별것 없고 머리도 뛰어나지 않은 데다가, 집안 배경까지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그런 사람은 애초에 자신의 경쟁 상대가 될 자격조차 없다고 여겼다.그래서 늘 강서이를 낮게 봤다.예전에 이예수가 ‘한 남자 곁을 7년이나 지킨 여자라면 가볍게 보면 안 된다’고 충고한 적이 있었다.그때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강서이가 민도하 곁에 7년이나 있었던 이유는, 스스로 감동하는 희생을 계속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런 건 너무 값싼 방식이었다.남자들은 그런 희생만 보고 마음을 주지 않는다고 믿었다.예쁘고 속이 꽉 차 있고, 좋은 집안에서 자랐기에.사업에도 도움을 줄 수 있고 사람들 앞에 함께 나가도 자랑스러운 여자를 좋아한다고 여겼다.강서이처럼 겉모습만 번듯하고 속은 빈 여자는 아니라는 게 노아리의 생각이었다.그런데 강서이도 WT비즈니스대학교 입학 허가를 받은 적이 있었다니.노아리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성이남도 마찬가지였다.성이남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사장을 나오던 중이었다.구정태가 윌리엄 교수를 위해 식사 자리를 마련했고 성이남도 초대를 받은 참이었다.강서이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도 성이남이었다.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피했다.찔리는 마음이 있었다.그런데 구정태가 일부러 멈춰서 강서이에게 인사를 건넸고, 몇 마디 안부를 나누다가 예상 밖의 과거까지 꺼냈다.성이남도 이전에는 노아리와 비슷하게 생각했다.강서이는 내세울 게 별로 없는 여자라고 여겼다.지금의 성공도 어딘가 떳떳하지 못한 수단을 써 얻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날 강서이는 몇 번이나 성이남의 판단을 뒤집었다.성이남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강서이가 다른 사람의 관계에 끼어든 여자라고 단정했었다.그런데 오늘 역시 제삼자의 자리에서, 그것도 강서이에게 직접 지목까지 당한 채 강서이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오히려 이전 관계에서 상처를 받은 쪽은 강서이였다.강서이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는, 자신이 던진 말이 되

  •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제447화

    “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강서이의 목소리는 담담했다.다만 긴장한 탓인지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맞았다. 강서이는 그날 그렇게 말했다.두 사람 모두의 체면을 지키려고 만들어 낸 거짓말이었다.민도하가 그 말을 기억하고 있다가 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 꺼낼 줄은 몰랐다.강서이의 마음이 잠깐 흐트러졌다.하지만 오래가진 않았다.머릿속에 또 다른 문장이 떠올랐다.관계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쪽이 내연녀라는 말.강서이는 다시 평정을 찾았다.민도하가 조금 전 던진 질문도 떠올랐다.예전에 서한승을 좋아했냐고 물었던 그 질문.강서이는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천천히 대답했다.“당연하지.”민도하의 심장이 갑자기 거세게 꽉 조여 들었다.강서이는 예전 그날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 위로 내려온 머리를 쓸어 넘겼다.“그렇게 오래된 일을 왜 이제 와서 다시 물어? 모르는 사람이 보면 네가 아직 못 놓은 줄 알겠어.”민도하가 눈을 가늘게 떴다.속에서 뜨거운 초조함이 번졌다.“그 뒤에는? 그다음 몇 년 동안은 한 번도...”“민도하.”강서이가 말을 끊었다.“지금 그런 걸 묻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아니면 계속 사람들한테 내가 당신이랑 노아리 사이에 끼어든 사람이라고 오해하게 만들고 싶은 거야?”민도하의 목이 흠칫하며 굳어졌다.강서이는 그 틈에 손을 거세게 빼냈다.차가운 눈으로 옆쪽을 향해 말했다.“성 대표님, 이번에는 제대로 들으셨죠? 누가 먼저 남의 관계에 끼어든 사람인지.”성이남은 우연히 이 길을 지나던 참이었던 듯했다.두 사람이 다시 실랑이하는 모습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멈췄다.아무도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성이남이 나타났을 때부터 강서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성 대표님’이라는 말에 성이남의 표정이 굳었다.고개를 들자 담담한 강서이의 시선과 바로 마주쳤다.가슴속을 가느다란 바늘이 찌르는 듯했다.감정이 복잡하게 뒤엉켰다.성이남은 강서이의 거리낌 없는 눈길을 오래 마주하지도 못했다.어색하

  •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제446화

    강서이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순간 굳어졌다.민도하는 여전히 강서이의 팔을 잡고 있었다.평소처럼 느슨한 말투가 아니라 사람을 누르는 듯 차갑고 단정한 목소리였다.“우리 처음 잤던 날, 네가 분명히 말했어. 마음에 둔 사람이 있으니까 나더러 부담 갖지 말라고.”민도하는 말을 잠깐 끊었다가 낮은 목소리로 이어 갔다.“그 사람이 서한승이었지?”강서이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민도하가 그날 자신이 했던 말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두 사람의 첫 관계는 사고에 가까웠다.그 전에도 강서이는 민도하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려고 먼저 다가간 적이 있었다.하지만 민도하는 거절했다.그때 강서이는 순진하게도 민도하가 다른 남자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여자의 외모에 쉽게 흔들리지도 않고, 상대가 약해졌을 때 틈을 노리지도 않는 사람이라고 믿었다.그래서 어렵게 얻은 해외 유학 기회를 포기하고 민도하 곁에 남아서 창업을 함께했다.처음 1년 동안 두 사람은 같은 목표를 보며 달렸다.힘든 일도 많았고 성과를 얻는 기쁨도 함께 맛봤다.강서이는 매일같이 부딪치며 일하는 사이 민도하에게 마음을 빼앗겼다.그렇다고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었다.선을 지키며 자신이 해야 할 일만 했다.조금이라도 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평생 그 마음을 숨긴 채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아무도 모르는 깊은 밤에만 조심스럽게 마음을 꺼내 볼 뿐이었다.달빛 아래에서 한 번 들여다보고, 민도하 때문에 생긴 흔적을 손끝으로 더듬어 본 뒤.날이 밝기 전 다시 단단히 감춰 두었다.그 외로운 짝사랑의 균형을 무너뜨린 게 바로 그날의 사고였다.프라임로드투자는 설립 1년 만에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민도하는 회사의 사회적 평판과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 성적이 우수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대거 후원했다.학교 측에서는 장학생들이 감사의 뜻을 전한다는 취지로 후원 감사 행사를 마련했다.원래 강서이도 민도하와 함께 참석해 사람들을 상대할 예정이었다.하지

  •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제445화

    윌리엄 교수가 답했다.“Moli는 제가 WT비즈니스대학교에서 가르칠 때 지도했던 박사과정 제자입니다.”기자가 놀라며 말했다.“노아리 사장님이 윌리엄 교수님의 제자였군요. 전혀 몰랐습니다.”윌리엄은 노아리를 아낌없이 칭찬했다.“Moli는 아주 뛰어나고 능력도 좋아요. 자랑스러운 제자입니다.”그 이력 때문에 다른 기자들까지 노아리 쪽으로 몰렸다.그중에는 낯익은 얼굴도 있었다.이사랑이 미리 섭외한 사람들이었다.정확히는 노아리와 이사랑이 함께 세운 계획이었다.윌리엄 교수의 전화를 받았던 날부터, 노아리는 자신의 이미지를 어떻게 회복할지 계산해 두었다.재벌가에서 며느릿감을 볼 때 흔히 따지는 조건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비슷한 집안 배경을 갖췄거나, 학력과 능력이 뛰어나거나.첫 번째 조건은 노아리에게 어려웠다.민씨 집안과 비슷한 배경을 가진 집안 자체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그러니 두 번째 조건을 최대한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예전에 이예수가 바로 그 점을 깨닫고, 큰돈을 들여서 노아리의 유학과 학업을 지원했다.높은 학력과 뛰어난 두뇌를 가진 며느리를 좋은 조건으로 보는 상류층의 인식을 이용한 것이었다.그 부분이야말로 노아리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장점이었다.‘강서이는 애초에 내 상대가 안 돼.’노아리는 자신만만하게 강서이가 있는 쪽을 봤다.강서이는 이쪽에 관심이 없는 듯 서한승과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정말 신경을 쓰지 않는 건지, 신경 쓰이면서 아닌 척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노아리는 후자라고 생각했다.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자존심을 지키는 것뿐일지도 몰랐다.“Moli, 이쪽을 봐 주세요.”한 기자가 노아리의 영문 이름을 불렀다.조금 전 윌리엄 교수가 그렇게 소개했기 때문이다.노아리는 활짝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봤다.서한승과 이야기를 나누던 강서이도 소리를 듣고 이쪽을 봤다.‘Moli?’‘노아리 영문 이름이었나?’‘이런 우연도 있네.’강서이가 예전에 WT비즈니스대학교에 지원했을 때 사용한 영문 이름도

더보기
좋은 소설을 무료로 찾아 읽어보세요
GoodNovel 앱에서 수많은 인기 소설을 무료로 즐기세요! 마음에 드는 작품을 다운로드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앱에서 작품을 무료로 읽어보세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