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엄마가 실수로 나를 행복한 우리 가족이라는 단체 채팅방에 초대했다. 방에는 엄마, 아빠, 그리고 우리 보물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된 낯선 남자애까지 세 사람만 있었다. 셋은 신이 나서 그 애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정작 내일은 두 분이 10 년째 잊고 지낸 내 생일인데. 엄마가 채팅방에 글을 남겼다. [장소는 동화 속처럼 꾸며 주세요. 진짜 왕자님이 된 기분을 느끼게요.] 아빠는 거액을 송금했다. [돈은 걱정하지 마. 형한테는 알리지 말고. 알면 심란해할 테니까.] 나는 말없이 화면을 캡처했다. 기회만 생기면 더는 좋게 넘어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때 공부도 잘하고 착하기까지 한 여동생이 개인 메시지로 캡처 화면 하나를 보내왔다. 엄마와 나눈 대화였다. [엄마, 오빠 생일 서프라이즈 파티는 다 준비하셨어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다시는 오빠 안 속이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View More부엌에서 나온 엄마는 나를 보자 곧바로 눈시울이 붉어졌다.방금 썬 과일이 담긴 그릇을 든 채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다."지훈아, 왔구나."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릇을 받아 들었다."배고파요. 밥 있어요?"엄마는 잠깐 멍하니 있다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있지, 있어! 금방 데워 줄게!"엄청난 선물이라도 받은 듯 돌아서서 부엌으로 뛰어갔다.서재에서 나온 아빠와 서유진도 나를 보고는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오빠..."나는 두 사람 앞으로 가서, USB 메모리를 엄마에게 건넸다."선물 감사해요."내가 말했다."전해 주시는 방식이 좀 독특하긴 했지만요."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USB 메모리를 받았다."지훈아, 너...""용서할게요."나는 말했다.그 파티 때문도, 뒤늦게 받은 선물 때문도 아니었다.CCTV 영상에서 두 분의 아픔과 후회를 봤기 때문이었다.사랑은 옳고 그름을 고르는 시험 문제와 달라서, 절대적으로 맞거나 틀린 답이 없다는 걸 이제야 알았기 때문이기도 했다.오히려 평생에 걸쳐 증명하고 고쳐 가야 하는 문제에 가까웠다.나는 두 분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대신 조건이 있어요.""첫째, 앞으로 우리 집에서 서프라이즈는 전부 금지예요. 특히 이런 식으로 사람 놀라게 하는 건요.""둘째, 할 말은 얼굴 보고 해요. 짐작하지도, 연기하지도 말고요.""셋째..."잠깐 말을 멈추고 부엌에서 움직이는 엄마와 곁에 선 아빠, 서유진을 바라봤다."앞으로 주말은 매번 가족과 함께하는 날이에요. 야근도, 일 때문에 사람 만나는 것도, 연락 없이 사라지는 것도 안 돼요."아빠와 서유진은 서로를 보더니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다 네 말대로 할게!"그날 저녁,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한 식탁에 둘러앉았다.비싼 와인도 고급 요리도 없었다. 평범한 집밥 몇 가지가 전부였다.엄마는 내 접시에 자꾸 음식을 덜어 줬고, 아빠는 젊었을 때 창피했던 일을 들려주며 우리를 웃겼다.옆에 앉은 서유진은 어릴 때처럼 내 접시에
"오빠가 어떻게 생각하든, 나한테는 영원히 하나뿐인 오빠야."달칵, 문이 닫혔다.탁자 위의 USB 메모리를 한참 바라봤다. 망설인 끝에 노트북을 집어 들었다.안에는 지훈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폴더 하나만 있었다.폴더를 열자 10 살부터 19 살까지 이름 붙인 하위 폴더 열 개가 나왔다.떨리는 손으로 10 살 폴더를 열었다.항공권 예약 화면을 캡처한 사진이 있었다. 목적지는 디즈니랜드였고, 날짜는 내 생일이었다.엄마가 카메라를 보며 내게 할 말을 연습하는 영상도 있었다."지훈아, 생일 축하해. 엄마랑 네가 제일 가고 싶어 하던 곳에 가자..."영상 속 엄마의 말투는 서툴고 긴장돼 있었다.예약은 결국 취소된 상태였다. 사유에는 [갑작스러운 긴급 출장]이라고 적혀 있었다.12 살 폴더를 열었다.내 공책에 그려 놓았던 운동복의 디자인 도안이 있었다.그 아래에는 디자이너와 주고받으며 세부 디자인을 거듭 수정한 메일이 남아 있었다.마지막은 창고 사진이었다. 그 운동복은 상자에 담긴 채 구석에 놓여 있었고,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마지막 메일은 엄마가 디자이너에게 보낸 것이었다.[죄송합니다. 아이가 필요 없다고 하네요. 주문은 취소해 주세요.]영상 속 엄마는 휴대전화를 든 채 지치고 막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여보, 지훈이가 또 싫대요... 우리가... 정말 뭔가 잘못한 걸까요?"...폴더를 하나씩 열어 봤다.콘서트 표도, 가족사진 촬영 예약 내역도 있었다. 최신 휴대전화와 내가 갖고 싶다고 했던 카메라도 있었다.두 분은 해마다 선물을 준비했다.그리고 해마다 그 선물은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지거나 취소되거나, 창고에서 잊혔다.그보다 더 잦은 이유는 내 한마디였다."필요 없어요."USB 메모리의 마지막에는 어젯밤 CCTV 영상이 있었다.내가 떠난 뒤의 연회장이었다.엄마가 울며 아빠 품으로 무너졌다. 아빠는 엄마를 안고 등을 연신 두드리며 중얼거렸다."내 잘못이에요. 다 내 잘못이에요..."서유진은 주먹으로 벽을 한 번 내리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잔인하게 상처받았을지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채.두 분은 여전히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만 사랑을 표현했다.지난 10 년 동안 바쁘다는 이유가 모든 걸 설명해 준다고 믿으며 내가 자라는 모습을 외면했던 것처럼."지훈아,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니?"엄마가 울면서 물었다."말해 줘. 어떻게 해야 우릴 용서해 줄 수 있어?"나는 엄마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요.""지쳤어요."그 말만 남기고 돌아섰다. 나를 위해 꾸몄다면서 정작 숨조차 쉴 수 없게 만드는 동화 속 세상을 빠져나왔다.뒤돌아보지 않았다.세 사람의 시선이 등 뒤에 꽂히는 게 느껴졌다.그래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연회장을 나서니 어느새 밤이 깊었다.찬바람을 맞고서야 얼굴이 이미 눈물로 젖어 있다는 걸 알았다.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호텔에 방을 잡았다.가방 안에서 휴대전화가 끊임없이 진동했다. 확인도 하지 않고 전원을 껐다.푹신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연회장에서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서 자꾸 되풀이됐다.성대한 파티, 가슴을 후벼 파던 영상, 그리고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던 내 차가운 말.어처구니없다는 생각과 갑자기 쏟아진 사랑에 대한 당혹감이 뒤엉켰다. 숨이 막힐 만큼 어지러웠다.나를 속여 분노하게 만들더니, 더 거창한 거짓으로 이게 사랑이라고 했다.'이런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알 수 없었다.그저 지쳤다.천장만 바라보며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다음 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호텔 직원인 줄 알고 문을 열었는데 서유진이 서 있었다.눈 밑은 검게 내려앉았고, 손에는 아침 식사가 들려 있었다."오빠."동생이 잠긴 목소리로 불렀다.나는 몸을 비켜 안으로 들였다.서유진은 음식을 탁자에 놓고 조심스럽게 나를 봤다."엄마가 끓이셨어. 작은 만두 넣은 국. 오빠가 제일 좋아하는 거잖아."나는 대꾸 없이 소파에 앉았다.방 안에 침묵이 흘렀다.한참 뒤에야 서유진이 입을 열었다."엄마 아빠 밤새 한숨도 못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으니까.그런데 오늘 두 분은 너무도 잔인한 방식으로 그 벽을 들이받았다. 절대 무너지지 않으리라 믿었던 벽을.벽이 무너진 자리에는 이미 상처투성이면서도 여전히 사랑받고 싶어 하는 내가 있었다.세 사람을 바라봤다. 얼굴에 드러난 고통이 고스란히 보였다.'난 어떻게 해야 하지?''이긴 사람처럼 바보 같은 짓을 했으니 당연한 대가라고 비웃어야 하나?''아니면 철든 아들처럼 품에 안겨, 행복한 가족인 척해야 하나?'마음이 어지러웠다.손님들은 어느새 조용히 자리를 떠난 뒤였다. 넓은 연회장에는 우리 가족과, 옆에서 난처해하는 파티 플래너와 그 아들만 남아 있었다.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엄마 아빠, 서유진의 얼굴을 차례로 바라봤다.마침내 입을 열었다."파티도 훌륭하고, 서프라이즈도 잘 준비하셨네요.""그런데 저는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아요."세 사람의 눈에 겨우 되살아났던 기대가 내 말 한마디에 사라졌다.아빠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엄마는 더 서럽게 울었다.서유진은 어쩔 줄 모르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나는 그 반응을 뒤로한 채 돌아서서 흰 피아노 앞으로 한 걸음씩 걸어갔다.새 건반에는 조명이 은은하게 비쳤다.몸체에 새겨진 S.J.H.가 유난히 선명했다.손을 뻗어 차가운 건반을 가만히 쓸었다. 연주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두 분은 아세요?"작게 물었다. 두 분에게 묻는 것 같기도, 나 자신에게 묻는 것 같기도 했다."10 살 때 원한 건 곰 인형이 아니었어요. 단 10 분이라도 엄마 아빠랑 같이 불꽃놀이를 보고 싶었어요.""12 살 때도 운동복 같은 걸 바랐던 게 아니에요. 학교 발표회 때 객석에서 두 분 얼굴을 보고 싶었을 뿐이에요.""15 살 생일에는 가족사진을 찍게 해 달라고 빌지도 않았어요. 제 생일을 기억하고 전화 한 통 해 주셨으면 했어요. 생일 축하한다고요. 그런데 밤 12 시까지 기다려도 전화는 한 번도 울리지 않았어요."이미 지나가 버린 일을 천천히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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