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아들 생일날 남편은 아들을 픽업하러 자기 첫사랑을 집에 보냈다. 나는 끝까지 물고 늘어졌고, 내연녀와 대치하던 중 복도에 갑자기 불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천장에서 떨어진 파편에 부딪혀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아들이 다칠까 봐 품에 꼭 끌어안았다. 하지만 소방관 남편이 구조하러 왔을 때 하나뿐인 방독면을 챙기더니 자기 첫사랑에게 건네주었다. “아빠, 몸이 안 좋은 연서 이모부터 구해줘요. 엄마는 다른 아저씨가 와서 구해줄 테니까 잠깐 기다려요.” 멀리 떠나가는 부자를 바라보자 쓴웃음이 저절로 떠올랐다. 아마도 새까맣게 잊은 것 같은데 난 천식이 워낙 심해서 방독면이 없으면 죽을지도 모른다.
view more그러나 육상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늘 침착하다고 생각했던 남자가 갑자기 화를 버럭 냈다.이내 씩씩거리며 신동호의 멱살을 잡더니 주먹을 뻗었다.“꺼져. 우리 집안일에 네가 무슨 자격으로 끼어들지?”막무가내가 따로 없는 모습에 나는 분노가 차올랐다.‘짝’하는 소리와 함께 주위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육상준은 얼굴을 가린 채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나는 앞으로 다가가 신동호의 손을 잡고 미소를 살짝 지었다.“소개가 늦었네. 내 남자친구 신동호라고 해. 그래서 끼어들 자격이 있을 거라고 보는데?”육상준은 두 손을 들어 눈을 가리고 내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다.이혼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사실 그가 후회하는 모습을 상상한 적이 있었다.그런데 막상 찌질하게 우는 전남편을 목격하자 예상 외로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어쩌면 이미 사랑이 식어서 상대방이 무엇을 하든 타격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떠나기 전, 육상준이 끌어안으려고 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앞으로 다시는 나타나지 마. 나도 이제 조용히 살고 싶거든. 알았지?”육상준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육준서를 데리고 몸을 돌렸다.녀석은 끌려가면서도 내 다리를 꼭 붙잡고 제발 같이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했다.심지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펑펑 울면서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했다.“엄마, 진짜 절 버릴 거예요? 앞으로... 다시는 말대꾸하지 않을게요. 숙제도... 열심히 하고, 제발... 절 쫓아내지 마세요.”육상준은 어두운 얼굴로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더니 질질 끌고 갔다.그리고 앞만 주시한 채 엘리베이터에 올라탔고, 문이 닫힐 때까지 눈길조차 안 줬다.이 또한 지나갈 것이며 이제 각자의 삶을 살면 그만이다.6개월 후 신동호는 나한테 청혼했다.한쪽 무릎을 꿇고 반지를 꺼내는 남자를 바라보며 나는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다이아몬드는 유독 컸고, 디자인도 예뻤다.예전에 매장에서 봤던 반지보다 훨씬 더 화려했다.그가 떨리는 손으로 나에게
송지유는 뿌듯한 얼굴로 손목에 찬 스마트 워치를 보여주었다.“엄마, 방금 하린한테 위치를 공유했는데 동호 삼촌이 벌써 오셨네요.”신동호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손을 뻗어 송지유의 머리를 쓰다듬고 몰래 눈짓을 주고받았다.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누군가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내가 비에 젖을까 봐 그는 외투를 벗어서 머리 위로 씌워주었고, 매너손으로 차까지 에스코트해서 태웠다.뒷좌석에 앉아 송지유와 웃고 떠드는 모습을 바라보자 나는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집에 도착하자 신동호는 기어코 장바구니를 들고 가져다주겠다고 했다.나는 딱히 거절하지 않았고 송지유가 가운데 서서 양손으로 각각 우리를 붙잡았다.이때, 빗물에 비친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이대로 세 식구가 함께 살아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올라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육준서가 정교한 상자를 들고 우리 집 앞에 서 있었고, 곁에는 만면에 미소를 띤 육상준이 보였다.신동호를 발견하는 순간 육상준의 얼굴에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이내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리며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라희야, 요즘 잘 지냈어?”“그럭저럭.”나는 무심하게 대답하며 육상준 부자를 피해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신동호는 송지유의 손을 잡고 내 뒤를 따랐다.육상준도 육준서를 끌고 집으로 들어오려고 했지만 나는 팔을 뻗어 막아섰다.“딱히 볼 일 없으면 이만 돌아가.”육상준의 발걸음이 우뚝 멈추더니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육준서는 내 말을 못 들은 척 팔 밑으로 허리를 숙여 지나가려고 했다.하지만 육상준에게 목덜미를 잡혀 다시 현관 밖으로 끌려왔다.육상준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라희야, 오늘 무슨 날인지 기억 안 나?”어리둥절한 내 얼굴을 보자 육준서가 뾰로통한 목소리로 외쳤다.“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이잖아요.”그리고 활짝 웃으며 손에 든 선물 상자를 들어 올렸다.“아빠가 엄마
“그래, 3일 뒤에 가정법원에서 기다릴게.”나는 송지유와 함께 차에서 내렸고, 육준서는 빨개진 눈으로 같이 가려고 악을 썼지만 육상준에게 제지당했다.그리고 발버둥 치면서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울며불며 외쳤다.“엄마, 제가 잘못해요. 제발 절 버리지 마세요. 앞으로 게임도 안 하고 장난감도 필요 없으니까 곁에 있어 줘요.”차 문이 쿵 하고 닫히고, 유리창 너머로 육상준에게 꽉 붙잡힌 육준서의 모습이 보였다.송지유는 내 손을 살포시 잡았다.“왜?”나는 고개를 숙이고 최대한 무덤덤하게 물었다.하지만 울컥하는 목소리까지 감출 수 없었다.그는 까치발을 들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엄마, 속상해하지 마세요. 전 절대 말썽을 피우지 않기로 약속할게요.”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얼굴을 가린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아낌없이 퍼준 적이 있었기에 갑자기 모든 것을 놓아버리게 되는 순간 이루 형언하기 힘든 고통이 밀려왔다.하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이 또한 지나갈 테니까.3일 뒤, 나는 육상준과 이혼 수속을 마치고 곧바로 송지유를 데리고 입양 절차를 밟았다.신고를 마치고 나서 우리는 법적으로 한 가족이 되었다.그리고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게를 얻어 작은 꽃집을 차렸다.사실 나의 오래된 꿈이었고, 그동안 육준서를 돌보느라 바쁜 것도 있지만 허연서와 기 싸움을 하느라 미처 실현하지 못했다.이제 구속에서 벗어난 이상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뭐든지 할 수 있다.물론 장사가 잘되는 편은 아니지만 송지유와 나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그렇게 평범한 나날이 이어졌다.꽃집에 찾아오는 손님은 대부분 이웃이고, 점차 단골도 생겼다.송지유는 학교에서 착한 친구들도 사귀었다. 그중에서 유독 친하게 지내는 한 여자아이가 있는데 매일 하교하면 가게에 와서 한참 놀다가 갔다.그리고 여학생의 아버지가 매번 데리러 오면서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분홍색 장미 한 송이를 샀다.어느 날 나는 무심코 아이 엄마에게 선물하는 거냐고 물었고, 남자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
시종일관 침착하던 육상준도 당황하기 시작했고, 내 손을 잡으려고 팔을 뻗었지만 냉큼 피하는 바람에 허공에 덩그러니 멈춰 있었다.아마도 자신의 손길을 거절하는 날이 오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지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살짝 떨리는 목소리는 분노를 애써 억누르는 듯싶었다.“진심으로 하는 얘기 맞아? 만약 이혼하면 육준서는 내가 키우고 앞으로 다시는 못 만나게 할 거야.”나는 고개를 숙이고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그래. 어차피 허연서의 아들이 되면 나를 보고 싶어 하지도 않을 테니까.”하지만 예상외로 육준서는 울면서 내 품에 뛰어들었다.“아니에요. 엄마! 전 단지 간섭당하는 게 싫었을 뿐, 연서 이모의 아들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그래도 피붙이라서 나는 망설임 끝에 아들의 어깨를 살포시 끌어안았다.육준서는 내 품에서 서글프게 울었고, 두 손으로 소매를 꼭 붙잡았다. 마치 이대로 놓치면 영영 사라질까 봐 두려운 듯했다.대체 얼마 만에 나한테 응석을 부리는 거지? 한동안 만지는 것조차 꺼렸는데 말이다.스킨십할 때마다 아들은 쌀쌀맞게 말했다.“엄마, 전 이제 꼬맹이가 아니라서 함부로 만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짜증 나니까.”하지만 허연서만 보면 품에 안겨 애교를 부렸다.예전에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무뎌졌고, 단지 납득하기 힘들어 마음이 울컥했을 뿐이다.어릴 때만 하더라도 육준서는 분명 나를 제일 좋아했다.옹알이를 시작해서 제일 먼저 엄마라고 불렀고, 걸음마를 떼자마자 뒤뚱거리며 내 품에 안겼다.육상준이 내가 싫은 나머지 소방서에서 밤을 지새울지언정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나날, 아들은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그때만 해도 조잘거리며 이 세상에서 엄마를 제일 사랑한다고 했다.게다가 반짝이는 눈동자에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나중에 허연서가 돌아왔다.육상준이 시간이 없어서 픽업하러 허연서를 보냈던 초반에는 같이 가기 싫다고 떼를 썼다.그러다가 진짜 갖고 싶었지만 내가 사주지 않았던
Reb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