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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화. 살아남은 값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6 16:16:55

· 작품 안내

《다시 고른 낭군》은 고려풍 가상 왕조를 배경으로 한 여성향 회귀 로맨스 판타지입니다.

실제 역사·인물·제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물그릇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사내는 그것을 오래 바라보았다.

일을 그르치면 값을 못 받는다. 그건 처음부터 알고 하는 일이었다. 접선이 끊기고, 다음 일이 들어오지 않고, 그 바닥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사라진 자들을 몇 봤다.

거기까지는 셈에 들어 있었다.

붙잡힌 뒤에 사람을 들여보내는 건 아니었다.

"저를 죽이려고 여기까지 사람을 넣었단 말입니까."

사내가 낮게 물었다. 대답을 바라는 물음은 아니었다.

이겸은 답하지 않았다.

"제가 뭘 압니까."

사내가 제 무릎께를 내려다봤다.

"의뢰한 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중간에서 주고받은 자 이름도 모릅니다. 얼굴도 제대로 못 봤고요. 저는 그냥 시키는 대로 들어왔다 나가는 놈입니다. 그런 놈을 굳이……"

말끝이 흐려졌다.

그러다 사내의 눈이 다시 물그릇 쪽으로 돌아갔다.

모른다고 생각한 건 자기 쪽이었다.

저쪽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저쪽이 보기에, 이 안에 무언가 위험한 것이 들어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사내 자신도 몰랐다.

"……하나 여쭙겠습니다."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제가 오늘 이 물을 마셨으면, 그쪽에서는 그걸로 끝이었겠지요."

"그랬겠지."

"그럼 저는 여기서 값을 다시 받아야겠군요."

이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내일은 제가 먼저 말하겠습니다."

사내가 그 등에 대고 말했다.

"밤에 좀 생각해볼 것이 있어서요."

이튿날 아침, 백우가 다시 명부를 들고 왔다. 표정이 굳어 있었다.

"주군. 어제 물을 나른 자를 찾았습니다만—"

백우가 잠시 뜸을 들였다.

"이미 자리에 없었습니다."

"차복 때와 같은 수법인가."

"아닙니다. 이번엔 이름을 지어내지 않았습니다. 원래 물 담당인 하인이 있는데, 그자에게 급한 전갈이 왔다며 자리를 비우게 했습니다. 그 틈에 다른 자가 들어와, 그 하인의 이름을 대고 물을 날랐습니다."

이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하인 이름을 댈 수 있으려면."

"예. 영안궁 안에서, 누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를 아는 자여야 합니다."

"본 사람은."

"셋입니다. 다들 물그릇을 든 자가 지나가는 걸 봤다고 하는데, 얼굴을 말해보라 하니 아무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복장은."

"평범했다고 합니다. 특별히 눈에 띈 게 없었다고요."

백우가 명부를 내려다봤다.

"물을 나르는 자를 유심히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셋의 말이 서로 어긋나는 데는."

"없습니다. 어긋날 만큼 본 것이 없어서요."

포로는 어제보다 자세가 달라져 있었다. 결박은 그대로였지만, 등을 벽에 기댄 채 앉아 있었다.

"물을 가져온 자 얼굴은 봤나."

사내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제대로는 못 봤습니다. 물만 내려놓고 나갔습니다. 그런 것까지 신경 쓰진 않았고요."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나."

"없습니다. 그냥 물 나르는 놈인 줄 알았지요."

사내가 짧게 웃었다.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제가 이러고 있는 거 아닙니까."

이겸은 그 말을 받지 않았다.

"어제 하지 않은 말이 있나."

"있습니다."

사내가 곧바로 답했다.

"어제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서 안 한 것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고요."

"말해보게."

"중개인 손 말입니다."

사내가 제 손을 내려다봤다.

"얼굴은 가렸어도 손은 못 가리더군요. 굳은살이 여기, 이쪽에 박혀 있었습니다."

사내가 자신의 검지와 중지 사이를 짚어 보였다.

"칼을 잡는 손은 아니었습니다. 손가락 마디에, 붓을 오래 쥔 흔적이 있었죠."

이겸도 서리도 그 말에 바로 대꾸하지 않았다. 붙잡아둘 만한 조각이었지만, 지금 당장 무엇과 이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어제는 왜 말하지 않았나."

"그게 뭐 대단한 겁니까."

사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손에 굳은살 있는 놈이 한둘도 아니고요. 어제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지금은 제가 뭘 알고 있는지 저도 모르겠으니까요."

"몇 번이나 만났나."

"이번 일까지 세 번입니다."

"매번 같은 자였나."

"목소리는 같았습니다. 얼굴은 늘 가리고 있었고요."

"몸집은."

"보통이었습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고요."

사내가 잠시 생각하다 덧붙였다.

"지금 떠올려보려니 그것도 잘 안 잡힙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세 번이나 봤는데."

"말이 많은 자였나."

"아닙니다. 필요한 것만 말합니다."

사내가 덧붙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습니다."

이겸의 시선이 들렸다.

"평소에는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오라, 그 정도입니다. 이번에는 영안궁 안 이야기를 꽤 했습니다. 어느 문으로 들어가서 어느 쪽으로 돌고, 몇 시에 누가 어디 서 있는지까지요."

"그걸 어떻게 안다고 하던가."

"그런 건 안 묻습니다."

사내가 답했다.

"다만 종이를 보고 읽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외우고 있는 사람처럼 말하더군요."

심문이 끝난 뒤, 세 사람은 다시 명부를 펼쳐놓고 앉았다.

"명부는 계속 맞춰보고 있습니다만,"

백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가려낼 실마리가 마땅치 않습니다. 안에서 길을 내주는 자가 있다는 것 말고는."

"그자를 어떻게 가려낼 겁니까."

서리가 물었다.

"동선이 겹치는 자들부터 하나씩 줄여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백우가 답했다.

"다만 그러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시간을 줄일 방법이 있다면."

이겸이 말했다.

"누가 흘렸는지보다, 누가 알아낼 수 있었는지부터 좁혀야겠지."

서리는 잠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사람을 바꿔 끼우는 수법이, 조금 낯익습니다."

이겸의 시선이 서리에게로 향했다.

"이런 건 살림을 아는 자의 솜씨예요. 어느 시각에 누가 어디를 지나는지, 그건 경비를 서는 자보다 안살림을 도는 사람이 더 잘 압니다."

서리가 손끝으로 상 위에 선을 그어 보였다.

"교대를 하나 비우려면 그 자리에 누가 있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물을 나르는 자를 바꿔 끼우려면 그날 누가 그 일을 맡았는지를 알아야 하지요. 그 둘은 다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호위 쪽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호위 쪽이면 제 조가 아닌 곳의 물 담당까지는 모릅니다."

서리가 답했다.

"사람을 붙이고 빼는 것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자리여야 합니다. 그런 자리는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백우가 명부를 다시 끌어당겼다.

"안살림 쪽 전갈을 내려보내는 자리라면……"

"명부를 고친 자부터 다시 짚어라."

이겸이 말했다.

"그자는 전갈을 받고 적었을 뿐이다. 그 전갈이 어디서 왔는지를 따라 올라가."

전갈은 사람을 거쳐 왔다고 했다. 그 사람을 찾는 데 하루가 걸렸다. 찾고 보니 그자 역시 전달만 했다. 그 위로 한 번 더 올라갔다.

거기서 이름이 하나 나왔다.

"손영달입니다."

백우가 이겸 앞에 기록을 펼쳤다.

"영안궁에서 삼 년 가까이 일했습니다. 안살림 쪽 일을 봤고, 사람 오가는 것을 정리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교대가 바뀌는 전갈을 내려보낼 만한 자리입니다."

서리가 그 기록을 들여다봤다.

"물 담당을 정하는 것도 그 자리에서 합니까."

"합니다."

백우가 답했다.

"근무 기록은."

"그날도 정상적으로 나왔습니다. 그다음 날은 원래 쉬는 날이었고요."

백우가 다음 장을 넘겼다.

"급료도 받아 갔습니다. 그 뒤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거처는."

"가봤습니다."

손영달의 방은 저자 뒷골목의 셋집이었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안에는 이불이 개어져 있었고, 그릇 몇 개가 시렁에 올라 있었다. 옷가지도 몇 벌 남아 있었다.

뒤엎은 흔적은 없었다.

"급히 나간 사람 방은 이렇지 않습니다."

백우가 말했다.

"이건 나갈 자리를 미리 알고 나간 방입니다."

"가족은."

"없습니다. 혼자 살았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동료들은."

"얼굴은 다들 압니다. 말수가 적었고, 일은 꼼꼼했다고요. 어디로 갔느냐고 물으니 아무도 모릅니다."

이겸이 방 안을 한 번 더 둘러보았다.

차복이라는 이름은 처음부터 없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손영달은 있었다. 이름이 있었고, 얼굴을 아는 자들이 있었고, 급료를 받아 간 기록이 있었다.

거기까지는 다 남아 있었다.

그다음이 끊겼다.

"우리가 쫓기 시작해서 사라진 게 아니군요."

서리가 그렇게 말했다.

"처음부터 빠져나갈 자리까지 잡아둔 겁니다."

그날 밤, 서리는 자신의 처소에서 종이 한 장을 펼쳤다.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옮겨둘 생각이었다. 포로가 허공에 그려 보였던 표식이었다.

붓을 들었다가, 한 획을 긋고 멈췄다.

그때 사내의 손끝이 어느 쪽으로 돌았는지가 잘 잡히지 않았다. 서리는 종이를 옆으로 밀어두고 새 장을 폈다.

두 번째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 번째에 이르러서야 눈에 익은 모양이 나왔다. 완전히 같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래도 이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알아볼 만은 했다.

서리는 그 종이를 접어 서안 아래에 넣었다.

어느 가문의 것인지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다만 이런 것은 아무 데서나 쓰는 물건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이 모양을 알고 있을 터였다.

별채의 좁은 방에서, 사내는 물그릇이 놓여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저쪽이 절 버렸으니,"

사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다음 값은, 비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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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 안내 《다시 고른 낭군》은 고려풍 가상 왕조를 배경으로 한 여성향 회귀 로맨스 판타지입니다. 실제 역사·인물·제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감씨는 빗을 들기 전에 서리의 무릎 위에 놓인 문서부터 보았다."그것은 내려놓으세요.""읽고 있지 않아.""제가 들어올 때까지는 읽고 계셨지요."서리가 문서를 접었다. 감씨는 그것을 받아 거울 옆에 놓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등 뒤로 모았다.빗이 머리 끝에서 잠깐 걸렸다. 감씨가 손가락으로 엉킨 곳을 풀었다."어젯밤에는 언제 누우셨어요.""그리 늦지 않았어.""궁에 다녀오셨으면 좀 쉬셔야지요. 옷만 갈아입고 곧장 문서를 찾으셨다면서요.""기다리던 것이 와 있어서.""그 기다리던 것들 때문에 저녁상도 두 번이나 데워 올렸습니다."서리는 거울 속 감씨를 보았다."먹기는 했다.""얼마나 드셨는지도 물어보았어요."빗질이 다시 이어졌다. 서리가 옆에 놓인 문서로 손을 뻗자 감씨는 팔꿈치로 가볍게 막았다."머리 다 빗을 때까지만이라도 가만히 계세요."서리는 손을 무릎 위로 돌려놓았다."아침은 다 먹을게.""그 말씀은 기억하겠습니다."감씨는 빗에 걸린 머리카락을 걷어내고 다시 목덜미부터 천천히 빗어 내렸다."한집에 계셔도 두 분 다 각자 일만 붙들고 계시니, 누가 누구더러 쉬라고 하겠어요. 영안공께서는 탕약이라도 드시지요. 이러다 마님께서 먼저 앓아누우시겠습니다.""걱정도 많네.""앓기 전에 하는 말씀입니다."서리는 더 대꾸하지 않았다. 감씨가 머리를 한데 모으는 동안 거울 옆의 문서 모서리만 손끝으로 눌렀다.감씨가 빗질을 마저 하며 낮게 말을 얹었다."영안공께서 기력을 많이 되찾으셨다 들었어요. 그러면 마님께서도 이제 슬슬, 앞날을 생각하셔야—""그래서 박가 객주에게 사람을 보낸 것이 아니냐."서리가 담담히 받았다."가문의 앞날이라면, 이미 생각하고 있어."감씨의 손이 잠시 멈췄다."……제가 말씀드린 앞날은, 그 앞날이 아닙니다.""그럼 무슨 앞날이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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