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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화 거둔 손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6 20:04:59

· 작품 안내

《다시 고른 낭군》은 고려풍 가상 왕조를 배경으로 한 여성향 회귀 로맨스 판타지입니다.

실제 역사·인물·제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왕후전에는 향 하나가 옅게 타고 있었다.

"포로는 살아 있다 합니다."

상궁이 낮게 고했다.

"물에 손을 썼으나 실패했고, 영안궁에서 명부를 조이기 시작했다 합니다. 영안공이 직접 움직이고 있다고—"

왕후의 바늘이 아주 잠깐 멈췄다.

"깨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리 움직인단 말이냐."

"그리 전해 들었습니다."

"어디까지 닿았다더냐."

"명부를 고친 자까지는 이미 확인한 듯합니다. 그 위로 올라오는 중이라 합니다."

"그 위는."

"손영달입니다."

왕후의 바늘이 천을 한 번 통과했다.

"지금은 어디 있지."

"그날로 빠졌습니다. 거처도 비웠고, 영안궁 쪽에서 찾아갔을 때는 이미 없었다 합니다."

"그럼 거기서 끊기겠구나."

바늘이 한 땀 더 지나간 뒤에야, 손이 다시 멈췄다.

"더는 손대지 마라."

"예."

"쓰던 길은 닫고, 사람을 물려라. 통행표는 전부 회수하고, 연락하던 자들도 자리를 바꿔라."

"회수가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이미 밖으로 나간 것은—"

"나간 것은 두어라. 지금 거둬들이려 하면 그것부터 눈에 띈다."

왕후가 실을 한 번 당겼다.

"영안궁과 닿았던 자들은—"

"당분간 숨겨두어라."

왕후가 수틀을 다시 들며 말했다.

"말단은 버려도 좋다. 죽이지는 말고."

"포로는 어찌할까요."

"그냥 두어라."

상궁이 잠시 고개를 들었다.

"입을 열면—"

"열어봐야 아는 것이 없다."

왕후가 답했다.

"한 번 손을 댔다가 실패했으니, 또 손을 대면 그것이 답이 된다. 저쪽은 지금 그 답을 기다리고 있을 게다."

상궁은 고개를 숙인 뒤 물러갔다.

왕후는 다시 바늘을 놀리기 시작했다. 방 안에는 실이 천을 통과하는 소리만 남았다.

같은 날 아침, 영안궁이었다.

서리는 서안 아래에 넣어두었던 종이를 다시 꺼냈다.

세 번째로 그린 것이었다. 밤에 볼 때보다 선이 거칠어 보였지만, 모양은 그대로였다.

"감씨."

"예, 마님."

"이것을 본 적이 있느냐."

감씨가 종이를 받아 들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방향을 한 번 돌려 보기도 했다.

"……처음 봅니다."

"어느 가문 것인지도 짐작이 가지 않고."

"제가 아는 문장은 아닙니다."

감씨가 종이를 도로 내려놓았다.

"그런데 이게 문장 같지가 않습니다. 가문 것이라면 이렇게 단순하게 쓰지 않지요. 이건 뭐랄까, 보고 알아보기만 하면 되는 모양 같습니다."

서리도 같은 생각이었다.

"서가에서 곳간이나 거래를 오래 본 사람 중에, 이런 것을 알아볼 만한 이가 없겠느냐."

감씨가 잠시 말이 없었다.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고개를 들었다.

"있습니다."

"누구냐."

"백종길 영감입니다."

서리의 손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

기억에 있는 이름이었다. 곳간과 거래처를 도맡아 보던 사람이었고, 서리가 열다섯이 되던 해에 나이를 이유로 물러났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그때였다.

"살아 계시느냐."

"살아 계십니다."

감씨가 답했다.

"그 영감이라면 알 수도 있습니다. 서가 물건이 어디로 나가고 어디서 들어오는지를 이십 년 넘게 본 사람이니까요."

"지금은 어디 계시고."

"도성 외곽에 계십니다."

서리가 고개를 들었다.

"도성에."

"예."

감씨가 조금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마님 혼인 소식을 듣고 올라오셨습니다. 그 연세에 그 먼 길을요. 그런데 혼례에는 닿지 못하셨고요."

"그런데 왜 아무 말이 없었느냐."

"제가 여쭤봤습니다. 그랬더니 됐다고 하시더군요."

감씨가 말끝을 흐렸다.

"아기씨가 이제 막 시집오셨는데, 늙은 사람이 불쑥 찾아가면 짐만 된다고요. 그래서 그냥 도성에 방 하나 얻어 계십니다."

서리는 종이를 다시 접었다.

"사람을 보내거라."

"예."

"오시라 하고, 급한 일이라 여쭙더라 전하고."

전갈이 닿은 것은 그날 낮이었다.

백종길은 마루에 앉아 있었다. 사람이 들어와 예를 갖추고 말을 전하자, 노인이 되물었다.

"뭐라고."

"아기씨께서 찾으십니다."

"아기씨께서?"

"예. 급한 일이라 하셨습니다."

백종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릎을 짚고 일어서는 데 잠깐 걸렸지만, 그다음은 빨랐다.

"잠깐 기다리게."

노인이 방으로 들어갔다. 궤를 열어 개어둔 옷을 꺼내고, 띠를 다시 맸다. 갓을 쓰고 나오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먼 길이시라 가마를 부르라 하셨습니다."

"됐네."

백종길이 지팡이를 짚었다.

"가세."

이헌이 그 소식을 들은 건, 다른 경로를 통해서였다.

"영안공께서 영안궁의 일들을 직접 살피고 계신다 합니다."

내관이 고했다.

"문병객과 왕실의 연락을 두 분이 함께 가려 받고 계신다고요."

이헌은 붓끝을 종이에서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서가에서 혼인을 물리겠다는 청은 없었나."

"아직은 없었다 합니다."

"영안공 쪽에서도."

"예."

"부인은 아직 영안궁에 있고."

"그렇습니다. 나가셨다는 말은 없습니다."

"둘이 함께 사람을 만난다고 했나."

"어제도 그리 들었습니다."

이헌은 그 대답을 곱씹었다. 서리의 지목은 애초에 진심일 리 없었다. 저를 향한 시위, 혹은 순간의 치기. 죽어가는 자를 고른 것도 그래서라 여겼다. 오래 갈 것 없는 혼인— 한때의 시위로 끝날 일이었다.

그런데 그자가 깨어났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서둘러 물리겠다는 청이 와야 했다. 영안공 쪽에서도, 제 뜻과 무관하게 맺어진 혼인을 붙들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둘 다 움직이지 않았다.

'체면 때문이겠지.' 이헌은 그렇게 생각했다가, 곧 스스로 그 생각을 지웠다. 체면만으로 왕실의 연락까지 함께 가려 받을 이유는 없었다.

'영안공이 서가의 것을 탐내는 건가.'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겸은 왕의 아우이자, 전공만으로도 이미 제 몫의 권세를 가진 자였다. 왕위를 넘볼 뜻이라도 품지 않은 이상, 굳이 서가의 재산과 가신까지 탐낼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왕실이 결정을 미루고 있는 건가.'

그것도 아니었다. 물릴 뜻이 없다는 건, 최소한 서리 쪽에서는 분명한 태도였다.

이헌은 붓을 다시 종이에 대었다. 어느 쪽으로 갖다 붙여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결국 붓끝에 힘이 들어갔고, 얇은 종이 한 귀퉁이가 먹물에 젖어 찢어졌다.

내관을 물린 뒤, 이헌은 낮게 혼잣말을 했다.

"병상에서 맺어진 혼인이, 오래갈 리 없다."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말이었다.

그 말을 뱉고 나서야, 서리가 이겸의 곁에 있다는 사실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아주 짧은 잔상 하나가 스쳤다. 계단 위, 돌아서는 여인의 뒷모습.

이헌은 짜증스럽게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잔상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요즘 잠을 잘못 자서 그런가.'

이헌은 그렇게 넘기고, 다시 붓을 들었다.

백종길이 영안궁에 든 것은 해가 기울 무렵이었다.

외부인의 출입이 드러나지 않도록, 백우가 직접 뒷문으로 그를 들였다. 후원 쪽 별당으로 드는 동안 노인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문이 열렸다.

안에 있는 서리를 본 순간, 백종길의 걸음이 멎었다.

"백종길입니다, 아기씨."

목소리가 조금 잠겨 있었다.

서리가 일어서서 예를 받았다.

노인은 곧바로 앉지 않았다. 한동안 서리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열다섯 때였다. 그때는 아직 아이 티가 남아 있었고, 곳간에 따라 들어와 무엇이 얼마나 들어왔느냐고 묻던 나이였다.

"……많이 크셨습니다."

서리가 짧게 웃었다.

"이제 아기씨라 불릴 나이는 지났습니다."

"압니다."

백종길이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제게는 그때 모습이 마지막이라서요."

"혼례 때 도성에 계셨다 들었습니다."

백종길의 어깨가 조금 굽었다.

"……늦었습니다."

"먼 길이셨겠지요."

"나흘을 잡았는데 엿새가 걸렸습니다. 도착해보니 이미 다 끝난 뒤더군요."

노인이 제 무릎께를 한 번 문질렀다.

"젊었으면 사흘에 왔을 겁니다."

"그런데 돌아가지 않으셨군요."

백종길이 잠시 답하지 않았다.

"조금 더 있다 가고 싶었습니다."

그것뿐이었다.

서리는 그 말을 더 캐묻지 않았다.

"그동안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들었습니다."

노인이 답했다.

"곳간이 비었다는 말도, 사람들이 나갔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무령후 대감 일도요."

말이 거기서 한 번 끊겼다.

"저는 이미 물러난 사람이라, 나선다고 무엇이 되겠나 싶었습니다. 괜히 끼어들어 누가 될까 싶기도 했고요."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그게 잘한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서리는 답하지 않았다.

"그때 한 번 찾아갔어야 했나, 그 생각을 요 몇 해 자주 했습니다."

노인이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오늘 사람이 왔을 때, 솔직히 말씀드리면 반가웠습니다. 늙은 것이 못됐지요. 아기씨께 무슨 일이 생겼다는 말인데 반가웠으니."

서리가 종이를 꺼냈다.

"오늘 오시라 한 것은, 여쭐 것이 있어서입니다."

"말씀하십시오."

서리가 종이를 펴서 앞에 놓았다.

"이 표식을 본 적이 있으신지요."

백종길이 종이를 받아 들었다.

노인은 그것을 눈에서 조금 멀리 두었다가, 다시 가까이 당겼다. 등불 쪽으로 기울여 보고, 종이를 한 번 돌려 방향을 바꿨다.

선 하나를 손끝으로 따라가다 멈췄다.

"이것을 어디서 보셨습니까."

"사람에게서 들었습니다. 직접 그린 것은 아니고, 그자가 그려 보인 것을 제가 옮겨 그렸습니다."

"그리면서 틀린 데는 없으셨고요."

"세 번을 그렸습니다. 이것이 제일 가까웠습니다."

백종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종이로 눈을 내렸다.

한참이었다.

"정식 가문의 문장은 아닙니다."

노인이 종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다만, 이 표식을 쓰는 곳은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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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 안내 《다시 고른 낭군》은 고려풍 가상 왕조를 배경으로 한 여성향 회귀 로맨스 판타지입니다. 실제 역사·인물·제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남문 밖 옛 가마터는, 듣던 것보다 더 오래 버려진 자리였다.무너진 가마 아궁이 위로 마른 덩굴이 뒤엉켰고, 깨진 기왓장이 잡초 사이에 반쯤 묻혀 있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잔 기와가 부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사람이 오간 자국을 찾기에는, 비도 바람도 너무 여러 번 지나간 뒤였다.서리는 포로가 그린 약도를 펼쳤다. 남문에서 갈라진 길을 되짚고, 종이를 돌려 가마터가 있는 쪽과 맞추었다."갈림길은 맞습니다. 이쪽으로 들어왔다면 가마 앞을 지나게 되고요."이겸은 그들이 올라온 길을 돌아보았다. 언덕 아래에서는 가마의 윗부분만 보였다. 몇 걸음 더 안으로 들어가자 무너진 담장 너머로 다른 비탈이 드러났다."뒤쪽도 살펴라. 내려갈 수 있는 곳이 있는지."백우가 데려온 자들을 나누어 보냈다. 둘은 담장을 따라 돌고, 나머지는 가마 안쪽과 터 가장자리를 훑었다.포로가 가마터를 알려주며 함께 짚어준 표식 자리는 길목에 있었다. 담장 끝에 박힌 쇠고리는 비어 있었다. 백우가 고리 아래에 엉킨 마른 풀을 걷어냈다."이 자리입니다."고리 아래 벽면에 얕게 쓸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서리가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무언가 매달려 벽에 닿았던 듯했으나, 남은 끈이나 조각은 없었다."걸려 있던 것은 없군요.""주변에도 떨어진 것은 없습니다."이겸은 고리를 살피고 손을 거두었다."언제 거둔 것인지는 모르겠군."서리는 약도 위에 손가락을 짚었다가 종이를 접었다. 길과 표식을 보았다는 자리는 포로의 말과 맞았다.가마 앞은 기왓조각이 촘촘히 박힌 단단한 땅이었다. 백우가 몸을 낮추고 움푹 팬 곳을 살폈다. 그 안에도 잘게 부서진 기와와 흙이 가득 차 있었다."발뒤꿈치 자국 같기는 합니다만, 가장자리가 다 무너졌습니다. 언제 생겼는지 알 수 없습니다."서리는 가마 곁의 평평한 돌을 살폈다. 잠시 앉아 기다리기

  • 다시 고른 낭군   제 11화 값

    · 작품 안내 《다시 고른 낭군》은 고려풍 가상 왕조를 배경으로 한 여성향 회귀 로맨스 판타지입니다. 실제 역사·인물·제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감씨는 빗을 들기 전에 서리의 무릎 위에 놓인 문서부터 보았다."그것은 내려놓으세요.""읽고 있지 않아.""제가 들어올 때까지는 읽고 계셨지요."서리가 문서를 접었다. 감씨는 그것을 받아 거울 옆에 놓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등 뒤로 모았다.빗이 머리 끝에서 잠깐 걸렸다. 감씨가 손가락으로 엉킨 곳을 풀었다."어젯밤에는 언제 누우셨어요.""그리 늦지 않았어.""궁에 다녀오셨으면 좀 쉬셔야지요. 옷만 갈아입고 곧장 문서를 찾으셨다면서요.""기다리던 것이 와 있어서.""그 기다리던 것들 때문에 저녁상도 두 번이나 데워 올렸습니다."서리는 거울 속 감씨를 보았다."먹기는 했다.""얼마나 드셨는지도 물어보았어요."빗질이 다시 이어졌다. 서리가 옆에 놓인 문서로 손을 뻗자 감씨는 팔꿈치로 가볍게 막았다."머리 다 빗을 때까지만이라도 가만히 계세요."서리는 손을 무릎 위로 돌려놓았다."아침은 다 먹을게.""그 말씀은 기억하겠습니다."감씨는 빗에 걸린 머리카락을 걷어내고 다시 목덜미부터 천천히 빗어 내렸다."한집에 계셔도 두 분 다 각자 일만 붙들고 계시니, 누가 누구더러 쉬라고 하겠어요. 영안공께서는 탕약이라도 드시지요. 이러다 마님께서 먼저 앓아누우시겠습니다.""걱정도 많네.""앓기 전에 하는 말씀입니다."서리는 더 대꾸하지 않았다. 감씨가 머리를 한데 모으는 동안 거울 옆의 문서 모서리만 손끝으로 눌렀다.감씨가 빗질을 마저 하며 낮게 말을 얹었다."영안공께서 기력을 많이 되찾으셨다 들었어요. 그러면 마님께서도 이제 슬슬, 앞날을 생각하셔야—""그래서 박가 객주에게 사람을 보낸 것이 아니냐."서리가 담담히 받았다."가문의 앞날이라면, 이미 생각하고 있어."감씨의 손이 잠시 멈췄다."……제가 말씀드린 앞날은, 그 앞날이 아닙니다.""그럼 무슨 앞날이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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