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493화

Author: 무안안
심미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정말 이렇게 기가 막히게 잘 맞아떨어질 수가 있나.’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둘씩 모두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한서윤은 남자를 보고 눈물을 주르르 흘리기 시작했다.

“현성 오빠, 심미연 씨가...”

조명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자 한서윤은 마치 가련한 여인처럼 보였고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약해지게 했다.

“일어나서 말해.”

육현성이 살짝 몸을 굽히며 손을 내밀었다.

한서윤은 망설임 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육현성이 온지유에 대한 깊은 감정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에는 온지유가 부러웠다.

강지한은 온지유의 말이라면 다 들어줬고 육현성 역시 그녀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오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게 뛰어난 남자들이 모두 그녀 주위를 맴돌며 정말 행복해 보였다.

육현성은 한서윤의 손을 잡아 그녀를 일으켰다.

“먼저 들어가.”

그 말은 한서윤에게 한 것이었다.

한서윤은 고개를 살짝 치켜들고 입술을 깨물며 그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마치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는 듯했다.

“유성 오빠, 오빠랑 같이 들어가고 싶어요.”

심미연은 두 사람의 쿵짝에 관심이 없었고 회원 가입을 하러 갈 준비를 했다.

그때 육현성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심미연 씨, 잠깐만요.”

심미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봤다.

“뭐죠?”

“일이 있어요.”

“미안해요. 지금 바빠요.”

심미연은 육현성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온지유를 향한 무조건적인 헌신. 온지유가 저지른 큰 죄를 알고도 그녀를 해외로 보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 모습.

그런 사람은 확실히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런 사람이 심미연에게 해를 끼치려 한다면 그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현성 오빠, 심미연이랑 무슨 얘기 하려고요?”

한서윤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혹시 육현성도 심미연을 마음에 두고 있는 거 아니야?’

육현성은 얼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다시, 너를 붙잡다   제494화

    그때 온지유에 대한 범죄 증거를 수집했을 때 그녀의 충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평소 강지한 옆에서 부드럽고 약한 모습을 보였던 온지유가 뒤에서는 그렇게 많은 나쁜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심미연 씨, 온지유를 안에 집어넣고 평생 고통을 받게 만든다고 해서 강지한의 마음에서 지유가 사라질 거라 생각하세요? 심미연 씨는 평생 강지한과 함께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 강지한은 눈에 살기를 띄우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심미연은 그의 얼굴에 시선을 두며 조용히 말했다. “육현성 씨, 굳이 그런 말 하지 않아도 알아요. 월래부터 강지한과 다시 시작할 마음은 없었어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바로 주제를 돌렸다. “오히려 육현성 씨는 이번 생엔 온지유와 함께하고 싶어도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겠네요. 정말 안타깝네요.”육현성의 얼굴은 불편하게 일그러졌고 눈빛은 흐릿했다. 오랜 방탕한 생활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며 그의 몸은 심각하게 지쳐 있었다. 그는 온지유 같은 여자를 위해 이렇게 스스로 자신의 몸을 망가뜨려왔고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미연의 말은 육현성의 가슴을 깊이 찌른 듯했다. 그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찢어지듯 일그러졌고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이 년이 죽고 싶냐?” 그는 손을 뻗어 심미연의 목을 조르려 했다. 이번 생에서 온지유와 함께할 수 없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큰 아픔이었다. 몇 년간 그는 그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심미연은 그 아픈 진실을 입 밖으로 꺼내려 했다. 심미연이 몸을 피하려던 순간 갑자기 옆에서 한 다리가 튀어나와 육현성의 몸에 정확히 차올랐다. 육현성은 뒤로 몇 걸음 밀려났고 몸을 간신히 가다듬은 뒤에야 강지한이 눈앞에 서 있는 것을 봤다. 강지한은 심미연을 뒤로 숨기듯 서서 위압적인 기운을 내뿜으며 육현성을 내려다보았다. “육현성, 내 여자를 때리는 장면 보라고 밥 먹자 했냐?”강지한의 얼굴에는 아무 감정이 없었고 목소리는 차

  • 다시, 너를 붙잡다   제495화

    박유진의 목소리가 들리자 심미연은 급히 고개를 돌려 그의 눈과 마주쳤다. 그의 눈은 여전히 변함없이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그 눈빛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유진 오빠, 왔어?” 그녀는 몸을 돌려 그에게 달려가며 목소리는 부드럽게 퍼져나갔다. 그녀의 그림자가 불빛에 길게 늘어지며 부드럽고 아련하게 흔들렸다. 강지한은 얼굴에 분노를 가득 담아 박유진을 노려보았다. 박유진은 미소를 띠고 고개를 숙여 품에 안은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 눈속에 숨길 수 없는 사랑이 가득했다. 강지한은 갑자기 가슴 한구석에서 뜨거운 통증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괴로움이 그의 가슴을 조여왔다. 그는 저도 모르게 깊은 숨을 들이켰다.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고 괴로움이 그의 가슴을 가득 채웠다. “미안, 방금 전화받느라 늦었어. 이제 가자. 우리 먼저 들어가자.” 박유진은 심미연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목소리는 따스했다. “응. 가자.” 심미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자연스럽게 그에게 맡겼다. 그녀와 강지한은 이미 이혼했고 이제 박유진과 당당히 함께할 수 있었다. “안 돼. 가지 마!” 강지한이 목소리를 높였다. 박유진은 그를 흘낏 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저희는 이미 약속이 있습니다. 강 대표님께서 급한 일이 있으시면 저희가 식사 후에 얘기하죠.”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차분하고 얼굴에는 변함없이 온화한 미소가 있었다. 심미연은 그를 올려다보며 그의 배려와 사랑이 떠오르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은은한 따뜻함이 밀려왔다. 그를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강지한의 시선 끝에서 심미연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마치 사랑하는 남자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 순간 강지한의 이성이 뚝 끊어졌다. ‘심미연이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고?’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다. 아무 생각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 그녀의 팔을 거칠게 붙잡았다. “아파!” 심미연이

  • 다시, 너를 붙잡다   제496화

    “응. 괜찮아.” 심미연은 새끼손가락으로 가볍게 그의 손가락을 걸었다. “시간을 이렇게 오래 끌어서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면 실례되는 거 아니야?” 박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가자.” 하지만 그의 마음속은 이미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미연이 또 우울증 기운이 생긴 것 같아.’ ‘내일은 꼭 병원에 데려가야겠다.’ ‘이번엔 내가 있어서 강지한에게서 바로 데리고 나왔지만 만약 다음엔 내가 없으면 어떻게 하지?’강지한은 자리에 서서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한참 후 육현성이 입을 열며 물었다. “지한아, 밥 안 먹을 거야?” 그가 강지한을 부른 이유는 사실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해서였다. 그런데 여기서 심미연을 만날 줄은 전혀 몰랐다. 시간을 이렇게 많이 끌게 된 것도 문제였고 무엇보다 강지한이 너무 불안해 보였다. ‘혹시 강지한이 사랑하는 여자는 온지유가 아니라 심미연일까?’ 그 생각에 육현성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럴 리가!’“먹자. 가자.” 강지한은 지금 머릿속에 방금 심미연이 떠난 모습이 그대로 맴돌고 있었다. 예전에도 그런 모습을 한 번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혹시 심미연이 이 몇 년 동안 계속 아팠던 거라서 경성에 돌아오지 못한 걸까?’“이쪽 이야.” 두 사람이 대문을 지나 조금 걸어가자 육현성은 강지한이 다른 쪽으로 걷고 있음을 발견했다. 강지한은 온통 심미연 생각에 빠져 정신이 조금 혼란스러웠고 육현성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두 사람이 멀리 가지도 못했을 때 그들은 박유진이 심미연의 손을 잡고 앞에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박유진이 무슨 말을 했는지 심미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옆모습에 웃음이 가득했다. 그 장면은 정말 달콤하고 따뜻했다. 강지한은 질투로 눈이 붉어졌다. 입을 열려던 순간 전에 심미연이 보였던 표정이 떠오르며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을 삼켜버렸다. ‘그래. 심미연의 상

  • 다시, 너를 붙잡다   제497화

    육현성은 강지한의 눈을 마주치고 잠시 멈칫했다. “사랑하지 않아?” ‘그럼 온지유한테 왜 그렇게 잘해준 건지?’ 강지한은 마치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온지유가 너한테 그런 얘기 했어?” ‘예전에 온지유는 내가 자기를 사랑한다고 말한 사람들만 해도 몇 명이나 될까.’ 그녀와 얽히는 생각만 해도 불쾌해졌다.“누가 말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네가 사랑하는지 아닌지야.” 육현성의 마음 속엔 언제나 풀리지 않는 매듭이 있었다. 예전엔 강지한이 온지유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는 항상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온지유에게 고백하지 못했다. 그저 한 여자 때문에 형제 간의 우정이 깨지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강지한과 원수가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지 않아.” 강지한은 단호하게 그 두 마디를 던지며 그대로 앞을 향해 걸어갔다. 육현성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바람에 휘날리며 혼란스러워했다. ‘강지한이 온지유를 사랑하지 않는다니.’ ‘세상에!’ ‘난 도대체 뭘 놓쳤던 거지?’심미연과 박유진이 방에 들어서자 식탁에 앉아 있는 두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누군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미연아, 이분은 이건명 아저씨야. 우리 경성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항상 청렴하고 공정한 원칙을 고수하시며 국민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고 계신 분이야.” 박유진은 심미연을 끌어다 놓으며 소개를 시작했다. “이분은 아저씨의 비서님이시고.” 심미연은 박유진의 소개를 듣고 문득 깨달았다. ‘아! 그래서 익숙했구나. 이 아저씨가 바로 이진영의 아버지 이건명이었네.’그저 항상 청렴하다고 들었을 뿐 진짜로 청렴한지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심미연은 두 사람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이건명의 시선이 심미연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박유진은 그녀를 자리에 앉혔고 음식이 차례대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술이 몇 차례 돌고

  • 다시, 너를 붙잡다   제498화

    심미연은 박유진의 얼굴색이 좋지 않자 급히 물을 따르고 그에게 건넸다. “따뜻한 물 좀 마셔.” 이건명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저 어린 부부가 얼마나 사이가 좋은지...’박유진은 술잔을 쥔 채로 마음속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예전에 외부 회식을 나가면 아무도 그가 힘든지 아픈지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심미연이 곁에 있어 그가 힘들 때마다 관심을 주고 돌봐주었다. 비록 두 사람은 아직 진정한 부부는 아니지만 박유진은 정말로 만족스러웠다.심미연은 이건명에게도 물 한 잔을 따라 조심스럽게 그의 앞에 놓았다. “아저씨, 물 드세요.” 이건명이 눈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 “너가 바로 은성의 대표인가?”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심미연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는 부총재예요.” 은성의 대표는 신하린이었지만 심미연은 이 말을 하지 않았다. “전에 유진이가 입찰에 관해 얘기했었어. 내가 사람을 보내 처리하도록 했고 내일쯤 소식이 올 거야. 너희는 입찰 제안서 빨리 준비해.” 이건명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심미연은 진지하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건명은 미소 지으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박유진은 시정 건설을 위해 50억 원을 기부했다. 그가 도와주는 일은 그저 손쉬운 일이었지만 그 끝에 어떤 결과가 있을지는 그의 손에 달려 있지 않았다. 박유진은 이건명에게 술을 따랐고 두 사람을 계속 마셨다. 심미연은 조용히 한쪽에 앉아 있었다. 이건명이 간간히 그녀에게 질문을 던지면 심미연은 매우 진지하게 대답했다. 식사가 끝날 무렵 박유진은 이미 술기운에 취해 있었다. 이건명은 비서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를 떠났다. 헤어지기 전 이건명은 여전히 박유진에게 이진영에게 결혼에 대해 얘기하라고 당부했다. 박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이건명의 비서가 차를 몰고 떠난 후에야 심미연은 박유진을 부축해 자신의 차에 앉혔다. “힘들어?” 심미연은 그

  • 다시, 너를 붙잡다   제499화

    심미연은 그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웃긴 말을 들은 것처럼 말했다. “그 사람이 나랑 재혼한다고? 미쳤나 봐.” 강지한은 절대로 그녀와 재혼할 리가 없다. 게다가 강지한이 정말로 재혼하자고 해도 심미연은 절대로 원하지 않았다. 예전에 겪었던 그 고통을 떠올릴 때마다 지금도 그 당시 자신이 얼마나 아팠을지 생각만 해도 절로 안쓰러웠다. ‘왜 또 그 고통 속으로 되돌아가야 해.’ “정말 강지한과 재혼할 생각 없지?” 박유진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항상 심미연이 자신을 떠날까 봐 걱정이 많았다. “당연히 없지.” 심미연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머리가 이상하지 않은 이상 다시 그 길을 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박유진은 심미연을 바라보며 눈빛에 약간의 빛이 스쳤다. “아까 너 별로 못 먹는 것 같던데 다른 거 먹으러 갈까?” 예전에 그는 법정에서 심미연을 봤었다. 날카롭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그녀의 매력이었고 기세 넘치고 카리스마 있는 그 모습이 자주 떠올랐다. 그때의 심미연은 정말 멋졌었다. 하지만 이제는 법정을 떠난 심미연. 특히 심태하를 낳고 나서 그녀의 성격은 한층 부드러워졌고 예전처럼 강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심미연이 어떤 모습이든 그에게는 가장 아름다워 보였다. “괜찮아. 그냥 집에 가자.” 심미연은 박유진이 힘들어할까 봐 걱정하며 서둘러 집으로 향할 생각을 했다. 박유진은 순순히 입을 다물었다.강지한은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배 한 갑을 벌써 다 피웠지만 기분은 여전히 복잡하고 답답했다. 그 이유조차 알 수 없었다. 그때 육현성이 차 문을 열고 들어오자 강하게 배어든 담배 냄새가 그의 목구멍을 자극했다. 육현성은 당장 기침을 쏟아냈다. 강지한은 그 소리를 듣고 찌푸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차에 왜 타는 거야?” “지한아, 제발 온지유 좀 도와줘.” 육현성은 오늘에서야 강지한이 온지유에게 아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00화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건 날 거절하는 거겠지?’ “나한테서 떨어져.” 육현성은 단 한 마디의 배려도 없이 차갑게 말했다. 한서윤은 입술을 꽉 물며 고개를 돌려 떠났다. 육현성은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나 데리러 와.] 그러나 전화는 바로 끊어졌다. 육현성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가슴 속에서 불길처럼 치솟는 화를 느꼈다. ‘이 여자가 내 전화를 끊어? 대담하군.’ 그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여자의 냉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애인들이 데리러 가게 해. 난 바빠.][이다은! 감히 내 전화를 끊어?]육현성은 분노로 몸을 떨며 소리쳤다. [육현성, 나 너랑 이혼할 거야.] [이혼? 네가 감히?] [당연히 할 수 있지. 시간 되면 다시 얘기해.] [못 참겠으면 집에 가서 살아. 난 절대 이혼 안 해.] 육현성은 말을 끝내자마자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다은은 거칠고 버릇없지만 회사 관리에는 확실히 능력이 있었다. 그녀와 결혼한 후 그는 그녀를 회사로 데려와서 자신의 비서로 임명했다. 이 몇 년 동안 그는 밖에서 방탕하게 살았고 이다은은 회사의 운영을 책임졌다. 회사는 매년 꾸준히 돈을 벌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이렇게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돈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이다은을 육현성은 절대 놓칠 리 없었다. 전화 너머에서 이다은은 전화를 꽉 쥐고 몸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를 참았다. ‘육현성, 이 쓰레기 같은 인간.’ 그는 매일 다른 여자들과 놀면서도 집에 돌아오면 그녀를 괴롭혔다. 정말 병적이다.그녀는 이런 생활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그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아버지의 이름을 보고는 급히 눈물을 닦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받았다. [아빠.] [방금 육현성이 다른 여자랑 있는 걸 봤어. 대체 뭐 하는 거냐? 남편 하나 제대로 관리 못 해?] 이건명은 마치 폭탄을 던지듯이 그녀에게 비난을 쏟아냈다. 그는 경성에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01화

    이다은은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 사람이 내 아버지라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부모는 아이들에게 의지가 되고 기댈 곳이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그저 그녀를 탓하는 데만 집중했다. 마치 육현성의 잘못이 전부 그녀 때문인 양 말이다. 아버지 앞에서의 그녀는 먼지처럼 비참하게 여겨졌다. [이다은, 경고한다. 만약 육현성과 이혼하려고 한다면 다시는 집에 들어오지 마라.] 이건명은 차갑게 말을 끝내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는 이 체면을 잃을 수 없었다. 이다은은 고개를 들고 눈물을 삼키며 이미 끊어진 전화를 향해 말했다. “그 집. 나도 더 이상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부모는 그녀를 하나의 도구로 취급했다. 오직 오빠만이 그녀에게 진심으로 좋은 사람이었다. 이혼을 잘 끝내려면 오빠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유일한 방법인 것 같았다. 정말 힘든 순간 이진영의 전화가 울렸다. 이다은은 급히 눈물을 닦고 전화를 받았다. [오빠.] 말을 꺼내기 전에 이미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음이 아파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육현성과 이혼할 생각 해본 적 있어?] 이진영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강지한이 전화를 걸어 육현성이 그를 초대해 식사를 하며 온지유를 구해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했다. 강지한의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뜻을 이진영은 곧바로 파악했다. 몇 년 전 육현성은 강지한과 적이 되더라도 온지유를 도와 해외로 탈출시키려 했었다. 지금은 또 강지한에게 온지유를 구해달라고 부탁하는 꼴이었다. 정말 애틋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와 온지유를 영원히 묶어두면 된다. 이진영은 자기 여동생을 구해내야 했다. 이진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소리내어 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에 이진영의 가슴도 아파왔다. 하지만 급하게 말을 하지 않고 이다은이 울음을 충분히 털어놓을 때까지 기다렸다. 울음을 그친 이다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빠, 도와줘. 나

Latest chapter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4화

    심미연은 흩날리던 생각을 차분히 거두고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궁금한 듯 물었다.“우리 태하 진짜 똑똑하네.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거야?”아직 겨우 세 살이지만 심태하의 마음은 놀랄 만큼 세심하고 예민했다. 또렷한 눈망울은 마치 세상의 감정 흐름을 꿰뚫어 보는 듯했고 그렇게 꼼꼼히 살피는 모습에 심미연은 종종 놀라곤 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박유진이 심태하를 정성스럽게 길러온 시간이 아이를 이토록 똑똑하고 배려 깊게 자라게 만든 것이다.“아까 아빠랑 통화할 때 엄마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어요. 뭔가 걱정하는 게 있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저한테 말 걸었을 때도 평소처럼 웃고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엄마가 혹시 슬픈 건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어요.”심태하의 말은 또렷하면서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단어 하나하나에 엄마를 향한 깊은 애정과 이해가 담겨 있었다.심태하가 보기에 박유진이 집에 있을 땐 심미연은 늘 기분이 좋아 보였고 환하게 웃는 얼굴이 참 예뻤다.“엄마가 안 웃었어?”심미연은 웃음을 터뜨렸다.‘녀석, 정말 못 말려.’겨우 세 살에 이 정도인데 나중에 더 크면 얼마나 영리해질지.“네, 안 웃었어요.”심태하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심태하의 목소리는 여전히 앳됐지만 말투는 왠지 어른스러웠다. 꼭 사람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기라도 한 듯했다.심미연의 마음은 그 말 한마디에 확 풀렸다. 그녀는 아들의 코끝을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자, 얼른 아침 먹자.”그녀의 말투엔 아낌없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이 아이는 정말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다.“아빠가 보고 싶으면 아빠한테 전화하면 되죠!”심태하가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윙크했다.‘나도 아빠가 보고 싶은데 엄마가 안 보고 싶을 리가 없지. 맞아, 분명 그럴 거야!’심미연은 그 말에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네 말대로 할게.”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물론 박유진이 보고 싶지만 그에게 전화하진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3화

    하지만 그 깊은 애정과 놓기 싫은 마음은 오히려 박유진을 현실이라는 갈림길 앞에서 망설이게 만들었다.그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심미연만 괴로운 상황에 빠질 것이라는 걸. 그 맑고 투명한 눈동자가 자신의 망설임으로 인해 흐려지는 건, 그녀의 세상이 자신 때문에 흔들리는 건 차마 보고 있을 수 없었다.그렇다고 그녀를 놓아버리면 영원히 잃게 될 텐데... 그 아픔을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지 박유진 본인조차 알 수 없었다.“아빠, 왜 말이 없으세요? 허락한 거죠?”심태하의 목소리는 천진난만하게 들떴다. 마치 머릿속에 따뜻한 한 가족의 그림이 그려지기라도 한 듯.‘아빠가 돌아오면 엄마랑 나랑 셋이 모여 저녁 먹고 같이 웃고 얘기하고...’심태하의 마음속에서 그려낸 가장 순수한 행복의 모습이었다.그러나 그 순수한 소망 앞에서 박유진의 마음은 송곳에 찔린 것처럼 아팠다.그는 알고 있다. 이번 결정을 가볍게 내려서는 안 된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게 하려면 정말 신중해야 했다.하지만 사랑과 책임 사이에서 그가 걸어갈 수 있는 길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그는 지금 사랑을 저버리지 않으면서 심미연과 아이를 지킬 방법을 찾고 있다.하지만 그런 길이 과연 있을까? 이 선택은 너무나도 어려웠다.“아빠, 나 이렇게 열심히 얘기하고 있는데 왜 아무 말도 안 해요?”심태하는 고개를 갸웃하며 미간을 찌푸렸다.평소 같았으면 박유진은 재밌는 얘기도 해주고 자기 말에 웃어주었을 텐데, 오늘따라 너무 이상했다.‘혹시... 내가 말실수했나?’그때 박유진의 다급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가 심태하의 귀에 들려왔다.“태하야, 곧 비행기가 이륙해서 아빠가 휴대폰을 꺼야 돼. 오늘 밤에 다시 이야기하자. 꼭이야.”박유진은 심미연을 당장이라도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고 말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네! 알겠어요, 아빠! 그럼 오늘 밤에 꼭 통화해요. 약속했으니까 안 하면 안 돼요!”심태하의 목소리에 눈치채기 힘든 외로움이 살짝 섞여 있었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2화

    심미연은 멍해졌고 아까 자신이 박유진에게 연락을 시도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날아온 건 단 한 줄의 차갑고 무미건조한 메시지. 기대했던 목소리는 끝내 들을 수 없었다.그런데 지금 아들 심태하가 전화를 걸자 박유진은 놀랍게도 전화를 받았다.“아빠, 지금 어디예요? 이틀 뒤면 제 생일이에요! 아빠가 놀이공원 같이 가자고 했던 거 잊으시면 안 돼요!”심태하의 말투엔 아이 특유의 해맑은 기쁨이 가득 담겨 있었고 단어 하나하나가 살아서 튀어나오는 듯했다.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박유진의 목소리는 한겨울 얼음도 녹일 만큼 다정했다.“아빠 지금 진성으로 가는 비행기 타러 가는 중이야. 곧 이륙이라 휴대폰 꺼야 해. 진성에 도착하면 바로 전화할게. 약속!”그 말에는 미안함과 애틋함이 가득 실려 있었다.사실 박유진은 심태하가 생일 이야기를 할 줄은 전혀 예상 못 했다. 어젯밤에 워낙 정신이 없어 그런 중요한 약속마저 깡그리 잊고 있었던 것이다.“아빠가 보내준 선물 잘 받았어요!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요, 고마워요!”심태하는 아직 다 하지 못한 말이 많은 듯 아빠에게 털어놓고 싶은 게 가득한 눈치였다.박유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햇살이 쏟아져 내려 유난히 눈부셨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가늘게 떴고 그 강렬한 빛이 속눈썹 아래에 그림자를 드리웠다.그 순간 그의 마음속엔 오로지 한 사람, 심미연의 얼굴만이 떠올랐다. 그녀와 떨어져 있는 모든 시간이 하나같이 그리움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그리움이 너무 커서 박유진은 당장이라도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달려가고 싶을 만큼 벅찼다.“아빠... 지금 너무 힘들죠? 그럼 회사 팔고 그냥 집으로 돌아와요. 제가 돈 많이 벌어서 아빠랑 엄마 다 먹여 살릴게요!”심태하의 순수한 눈빛에 진심 어린 다짐이 담겨 있었다. 그에겐 돈을 많이 벌어서 가족을 지킬 거라는 꿈이 있었다.심미연은 그런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통통한 볼살에 아직 아기 티가 남았지만 심태하의 마음속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1화

    심미연 역시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이지연이 잘못 알아본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지연 씨, 다시 한번 제대로 확인해 봐요. 결과가 똑같은지 꼭 잘 봐요.”혹시라도 착오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그럼 제가 다시 확인해 볼게요! 뭐든 나오면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보스, 그럼 끊을게요!”이지연은 말 끝나기가 무섭게 전화를 뚝 끊었다.심미연은 휴대폰을 쥔 채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까 이지연이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이건명과 문소영이 예전에 그런 사이였다고?’그런데 왜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걸까? 아무도 깊게 파고들지 않았기에 묻혀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결혼 전에 누굴 만나든 그건 사생활인데 그걸 굳이 숨긴 이유가 뭘까?심미연이 이 모든 게 어딘가 석연치 않다고 느끼고 있을 즈음, 밖에서 누군가 소리쳤다.“엄마! 나 배고파요! 우리 빨리 아침 먹으러 가요!”심미연은 생각을 접고 고개를 들어 활짝 웃는 아들을 바라봤다.“그래, 가자.”심태하가 달려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엄마, 며칠 뒤면 제 생일이잖아요. 생일 파티에 상미도 초대하고 싶은데, 그래도 돼요?”심미연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젯밤의 친자 확인 결과가 떠올랐다. 강상미는 그녀의 딸, 즉 심태하와 쌍둥이였다. 그래서 둘의 생일도 당연히 같았다.심태하의 생일 파티에 강상미가 온다면 그건 곧 둘이 같이 생일을 보내게 되는 셈이다.“엄마, 안 돼요?”심미연이 대답하지 않자 심태하가 다급히 물었다.그녀는 웃으며 아이를 안심시켰다.“그럼, 당연히 초대해야지. 너희 둘이 같이 생일 파티하면 되겠네.”“정말요? 엄마 최고! 사랑해요!”심미연은 아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태하야, 너 엄마가 어제 말한 거 잊은 거 아니지? 상미가 바로 태영이야. 너랑 똑같이 엄마 배에서 나왔고 너희 둘은 쌍둥이야. 그래서 생일도 똑같아.”강상미에 관한 일은 이미 방원호에게 조사를 맡긴 상태였다. 꼭 알아내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0화

    심미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아한 기색을 담아 물었다.“무슨 일이길래 그래요?”이지연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 일부러 속도를 늦추며 차분하게 말했다.“온지유 씨가 도망쳤어요.”“언제요?”심미연의 눈빛이 반짝이며 날카로워졌다. 누가 이 일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건지 의심이 스쳤다.“어젯밤에요.”이지연의 목소리는 한껏 가라앉아 있었고 자책감이 가득 배어 있었다.“죄송해요. 제가 방심했어요.”심미연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미안해하지 마요. 이건 지연 씨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이지연은 입술을 꼭 깨문 채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제가 당장 찾아올까요?”심미연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휴대폰을 천천히 만지며 생각했다.“잠깐만 생각 좀 해볼게요.”어젯밤 강지한이 교통사고를 당한 장면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맴돌았다. 혹시 온지유의 실종과 강지한이 관련 있는 걸까? 만약 강지한이 온지유를 구한 거라면 도대체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은 거지? 끝도 없이 밀려드는 의문들이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참, 보스. 어젯밤에 스승님 못 보셨어요?”이지연이 물었다.심미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사실은 봤었다. 그녀는 진운혁이 차를 몰고 떠나는 걸 보고 따라붙었다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는 걸 말하지 않았다.“그럴 리가요? 제가 분명히 확인했는데... 스승님께서 이진영 씨랑 같이 식사하고 계셨어요!”이지연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심미연은 다시 한번 미간을 찌푸렸다.문득 이전에 마주쳤던 진운혁의 모습들이 떠올랐고 그 순간 한 가지 의심이 그녀의 마음속을 훑고 지나갔다.‘그때 내가 본 스승님은... 정말 스승님이 맞았을까? 만약 누군가가 스승님을 사칭하고 있었다면 그 목적은 대체 뭘까?’그때 이지연의 흥분한 목소리가 심미연의 생각을 끊어냈다.“보스! 새로운 정보를 발견했어요!”“무슨 정보예요?”심미연은 본능적으로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귀를 기울이자 이지연의 들뜬 목소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9화

    백선영이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진은숙의 팔을 살짝 끌어당기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이제 가요.”진은숙은 손바닥 위에 놓인 봉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망설이면서 입을 열었다.“이건... 어쩌죠?”백선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 난처한 상황을 심미연에게 넘기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봉투를 조심스럽게 심미연 앞에 내려놓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모님, 마음은 충분히 받았지만... 이 돈은 받을 수가 없어요.”심미연은 미소를 지으며 눈길을 봉투 위로 흘렸다.“오빠가 직접 드린 건데 마음 편히 받으세요. 저한테 돌려주실 필요는 없어요. 자, 얼른 가서 일 보세요. 저 벌써 배가 고파졌는걸요.”그러나 말하다가 알 수 없는 서운함이 스르르 마음 한쪽에 올라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박유진은 예전에 밤하늘을 보며 수없이 약속했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그녀와 아이를 평생 지키겠다고. 그런데 지금 그 약속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금세 꺼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오빠, 나랑 약속한 거 잊은 거야?’“정말 감사합니다, 사모님! 사모님과 사장님 두 분 다 참 요즘 보기 드물게 좋은 분들이세요. 두 분, 좋은 일만 가득하시고 영원히 행복하시길 빌게요!”진은숙은 기쁜 얼굴로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 백선영의 팔을 붙잡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오늘 정말 행운이 따랐다 싶었다.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다니.심미연도 가볍게 한숨을 쉬고 나서 주방으로 들어가 컵에 따뜻한 물을 따라 목을 축였다. 어쩐지 목이 바싹 마른 게, 감정이 몰려서 그런 걸까.막 물을 다 마셨을 무렵 문밖에서 귀엽고 여린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 어디 있어요?”그 소리는 마치 봄날에 막 피어난 꽃처럼 듣는 사람 마음을 몽글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심미연은 표정이 풀렸고 얼른 얼굴을 내밀며 따뜻하게 웃었다.“우리 태하, 엄마 여기 있어!”심태하는 쏜살같이 달려와 그녀 품에 안겼다.“엄마, 아빠가 나 버렸어요!”심미연은 깜짝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8화

    백선영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모깃소리만큼이나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사장님께서 떠나시기 전에... 집에 안 계시는 동안 꼭 사모님과 도련님을 잘 챙기라고 당부하셨습니다.”진은숙도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맞아요, 맞아요! 사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바로 캐리어 들고 곧장 나가셨거든요.”심미연은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음속으로 박유진의 말뜻을 곱씹어 보았지만 마치 안개 속을 걷는 듯 선명하게 와닿지 않았다.“그런데요, 사모님...”진은숙이 심미연을 흘끗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눈빛에는 망설임과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왜 그러세요?”심미연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지만 말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언제나 그래왔듯 도우미 아주머니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법이 없었고 태도가 마치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너그러웠다.진은숙은 잠시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더니 마음을 굳힌 듯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어젯밤에 제가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러 나왔는데 계단 모퉁이에서 사장님을 마주쳤었어요. 사장님도 물 마시러 나오신 것 같았어요.”곁에 서 있던 백선영도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저도요!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길래 문 열고 나왔더니 사장님이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계셨습니다.”심미연은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어젯밤에 오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진은숙은 마음을 가다듬고 이어서 말했다.“불빛이 비쳐서 얼핏 봤는데 사장님 눈가가 벌겋게 부어 있더라고요. 꼭 방금 울기라도 한 사람처럼요. 아마 제가 눈치챌까 봐 인사만 툭 하고는 곧장 자리를 피하셨어요. 전 그냥 물만 마시고 방으로 돌아갔는데 보니까 사장님은 그 자리에 그대로 멍하니 서 계셨어요. 제가 방에 들어간 뒤에도 안 들어오시더라고요.”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덧붙였다.“오늘 아침에 사장님께서 나가신 뒤에 서재를 청소하러 들어갔는데 휴지통에 담배꽁초가 가득 쌓여 있었어요. 어젯밤 내내 잠도 못 주무시고 담배만 피우셨던 것 같아요..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7화

    휴대폰 화면이 켜지고 그 익숙하면서도 가슴을 죄는 번호가 뜨는 순간, 박유진의 심장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움켜잡힌 듯 조여들었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속에서 일렁이며 축축한 솜처럼 뭉쳐져 목덜미를 틀어막았고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말은 더더욱 나올 리 없었다.그 번호는 마치 꿈결 속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은 유령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 그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의 고통과 갈등을 다시 불러냈다.박유진은 손을 떨며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다가 한참을 망설인 끝에 결국 전화를 받지 않기로 했다.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공기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과 묘한 압박이 가득했다. 박유진은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고 손끝으로 천천히 휴대폰 키보드를 두드려 문장을 써 내려갔다.[진성에 가서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돌아가면 다시 이야기하자. 그래도 되지?]그 메시지엔 그의 복잡한 심경이 담겨 있었다. 현실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언젠가 다시 마주하길 바라는 희미한 기대도 모두 그 짧은 문장 안에 섞여 있었다.메시지 전송을 마친 박유진은 망설임 없이 전원을 꺼버렸고 휴대폰을 한쪽으로 툭 던졌다. 마치 그렇게 하면 마음속 어지러운 생각들까지 함께 던져버릴 수 있을 것처럼.주변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텅 빈 공간엔 그의 심장 뛰는 소리만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규칙적이고도 묵직한 박동이 마치 그 존재를 스스로 확인하려는 듯했다.박유진은 눈을 감았다. 피로한 몸은 본능적으로 가장 편한 자세를 찾아갔고 그 짧은 정적 속에서 조금이나마 위로를 찾고자 했다.비록 밤새 한숨도 못 잤고 눈은 충혈되어 있었지만 정신만큼은 유난히 또렷했다.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지탱해 주듯 그는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하지만 피하고 싶을수록 심미연의 모습은 그의 머릿속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그녀의 미소는 때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순수하고 따스했으며 때로는 눈빛 하나로도 사람 마음을 뒤흔드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또 부끄러워하던 그 순간순간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6화

    박유진은 자신의 앞날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심미연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는 언제나 그녀의 편이 될 것이란 사실.만약 그녀가 아이를 데려오겠다고 마음먹는다면 그는 가진 것을 다 내어주어서라도 그녀를 돕고 그 아이를 보살필 것이다. 마치 자신의 친딸인 양 지극정성으로.박유진은 자신의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은 심미연을 사랑하고 그녀의 아이와 그녀가 지닌 모든 것을 함께 안아줄 준비가 되어 있음을.심미연의 눈가는 어느새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녀의 두 손은 마치 물에 빠진 이가 살고 싶어서 지푸라기를 붙잡고 있는 것처럼 박유진의 옷깃을 꼭 움켜쥐었다. 수많은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그녀가 박유진에게 진 빚은 너무나도 많고 무거웠다. 그 빚을 다 갚기 위해서는 평생이라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몰랐다.“시간이 늦었으니까 이젠 좀 쉬어. 나도 방으로 돌아갈래.”박유진의 목소리엔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한 떨림이 묻어났다. 그는 본능적으로 심미연을 더욱 꼭 안았다. 마치 그녀를 자신 뼛속 깊이까지 끌어안고 다시는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이.어쩌면 이 다정함이 그들 사이 마지막 남은 따뜻함이 될지도 모른다...박유진의 마음속은 쓸쓸함으로 가득했다. 머릿속 이성은 매서운 바람처럼 그를 휘감으며 이제는 놓아줄 때라며 끊임없이 속삭였다.하지만 감정은 뿌리 깊은 덩굴처럼 박유진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얼마나 바랐던가. 단 한 순간이라도 더 심미연의 곁에 머물 수 있기를. 이 찰나의 시간이 남은 생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만 있다면...심미연은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박유진의 얼굴을 어루만졌고 그녀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박유진의 마음속 한기를 모두 녹이는 듯했다.심미연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부드럽게 말했다.“이생에 오빠를 만나 알아가고 수많은 인파를 뚫고 함께 걸을 수 있었던 건... 정말 큰 복이었어. 앞으로 어떤 길을 가더라도 우리 손 놓지 말고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