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도경은 걸린 종이 모서리를 손끝으로 밀어 넣었다.
서랍이 닫히자 손잡이 아래에 얇은 종이 끝만 남았다. 다시 열어 반듯하게 넣으려다가, 진료실에서 보라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원장님, 다음 보호자분 오셨어요.”
도경은 남색 진료복 소매를 내리고 진료대로 돌아갔다.
■
3월 24일(화), 작은 이동장 안에서 긁는 소리가 났다.
발톱이 바닥을 긁는 소리는 짧게 끊겼다. 그 사이로 빠른 숨소리가 이어졌다.
이동장을 든 남자가 계산대 앞에서 멈췄다. 작업복 무릎에 마른 흙이 붙어 있었고, 목에는 접은 수건을 걸고 있었다.
“몬스터도 봐 주셨다고 해서 왔는데요.”
도경은 유리문 쪽을 보았다. 안내문은 그대로 붙어 있었다.
“어떤 아이예요?”
“번개다람쥐요. 아침부터 숨을 이렇게 쉽니다.”
남자가 이동장을 조금 들었다.
손바닥만 한 다람쥐가 구석에 엎드려 있었다. 앞발을 벌리고 턱을 든 채, 배까지 크게 움직이며 숨을 쉬었다. 꼬리는 옆으로 늘어져 있었다.
도경은 이동장을 받지 않고 진료실 문부터 열었다.
“이쪽으로 놓아 주세요. 문은 제가 열게요.”
보라가 진료대 위의 금속 쟁반을 옆으로 치웠다. 마른 수건을 넓게 깔고, 작은 산소 상자를 가까이 가져왔다.
남자는 이동장을 내려놓자마자 잠금쇠를 풀었다.
“꺼내도 될까요?”
“잠깐만요. 지금은 잡는 것도 힘들 수 있어요.”
도경은 문을 조금만 열고 안을 들여다봤다. 다람쥐의 앞발 위쪽에 작은 등록 고리가 있었다. 몸을 건드리지 않고도 가슴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보였다.
“언제부터 이랬습니까?”
“어젯밤엔 먹이를 남겼어요.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침에 보니 움직이질 않아서요.”
“떨어지거나 다른 몬스터한테 부딪힌 적은요?”
“어제 굴에는 저만 들어갔어요. 얘는 집에 있었습니다.”
남자는 이동장 손잡이를 쥔 채 말을 이었다.
“동생이 돌봐요. 고등학생인데 헌터가 되겠다고, 요즘은 제 장비보다 얘 먹이를 더 챙깁니다.”
도경은 다람쥐의 입가와 코를 살폈다. 콧물은 보이지 않았다. 입을 벌렸다 닫을 때마다 옆구리가 깊게 들어갔다.
“평소에도 숨이 빨라지는 일이 있었어요?”
“뛰고 나면요. 그러다 금방 멀쩡해졌는데, 오늘은 계속 이렇습니다.”
도경은 산소 상자로 옮길 준비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등록 내용도 보여 주세요. 평소 먹는 것하고 최근에 다녀온 곳도 확인하겠습니다.”
남자가 휴대전화를 꺼내는 동안 보라는 이동장 문 앞에 접은 수건을 댔다. 다람쥐가 그 위로 앞발을 내밀었다.
보라의 손끝이 털에 닿자 작게 딱 하는 소리가 났다.
“어, 시원하다.”
보라가 손가락을 털며 웃었다. 도경은 보라의 손을 살폈다. 붉어진 곳은 없었다.
남자가 급히 이동장 쪽으로 손을 뻗었다.
“죄송합니다. 손이 닿으면 따끔해요.”
“괜찮아요. 얘부터 옮길게요.”
보라는 마른 수건으로 몸 아래를 받쳤다. 다람쥐의 가슴을 누르지 않도록 양옆을 조금 띄운 채 산소 상자 안에 내려놓았다.
다람쥐는 수건을 움켜쥐었다. 발끝이 떨렸지만 놓지는 않았다.
■
산소를 공급하는 동안 도경은 보호자의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했다.
『번개다람쥐 · 손바닥 크기 · 주의』
남자의 헌터 등급은 E급이었다. 도경은 등록 내용과 앞발의 고리 번호를 맞춰 보고 진료 기록을 열었다.
“집에서는 어디에 둡니까?”
“큰 망 안에요. 동생 방에 있고, 저녁에는 문을 열어 놓습니다.”
“다른 동물과 같이 지내요?”
“아니요. 얘 하나뿐입니다.”
도경은 먹이 사진을 확인한 뒤 휴대전화를 돌려주었다. 보호자는 화면을 끄지 못하고 손바닥에 올려 두었다. 잠시 뒤 전화가 울리자 진료실 바깥으로 반걸음 물러났다.
“병원 왔어. 아직 보고 있어.”
목소리를 낮췄지만 도경에게도 들렸다.
“학교에 있어. 네가 온다고 빨리 끝나는 건 아니잖아.”
남자는 듣고 있다가 다람쥐 쪽을 보았다.
“사진은 나중에 보내 줄게. 지금은 찍지 말래.”
도경이 말한 적은 없었다. 다만 남자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더 꺼내지 않았다.
다람쥐의 숨은 여전히 빨랐다. 그래도 처음처럼 입을 크게 벌리지는 않았다.
도경은 손바닥을 세 번 비볐다. 고무장갑을 낀 뒤 산소 상자 문을 열었다. 보라가 수건을 받치고, 도경은 다람쥐의 어깨 아래에 손을 댔다.
장갑 너머로 아주 약한 따끔함이 닿았다.
그림이 떴다.
도경은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전에는 손을 댄 곳 가까이만 흐렸다. 이번에는 작은 머리와 등을 지나 꼬리까지 윤곽이 이어졌다. 가시두더지에게 손을 옮겨 가며 찾던 것과 달랐다.
그림이 조금 더 또렷해졌다.
다람쥐의 가슴 한쪽이 짙었다. 배 쪽은 그보다 옅었고, 짙은 부분은 숨을 쉴 때마다 좁아졌다가 다시 넓어졌다.
도경은 짙은 자리의 안쪽을 보려 했다. 그러나 무엇이 그곳을 채웠는지는 구분되지 않았다.
‘심장 쪽인가.’
위치만으로 정할 수는 없었다. 도경은 손을 떼고 산소 상자 문을 닫았다.
바위거북과 불여우, 작은 통에 붙어 있던 가시두더지 두 마리. 오늘 진료대에 오른 다람쥐까지 다섯째였다.
도경은 기록지에 가슴 쪽을 표시한 뒤 물음표를 붙였다.
“가슴 안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소리를 들어 볼게요.”
“많이 안 좋은 겁니까?”
보호자가 진료대 가까이 왔다.
“그래서 확인하는 겁니다. 아직은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나눠 봐야 해요.”
도경은 청진기를 집었다. 갈라진 고무줄이 손등을 스쳤다.
■
청진기의 차가운 쇠를 손바닥으로 잠깐 감쌌다.
도경은 다람쥐를 수건째 받쳐 상자 문 가까이 두었다. 처음에는 손을 밀어 넣지 않고 가슴이 움직이는 모양만 보았다.
작은 앞발이 수건 끝을 잡고 있었다.
도경은 가슴 양쪽에 번갈아 청진기를 댔다. 한쪽에서는 빠른 숨소리가 들렸다. 반대쪽은 소리가 작고 멀었다.
다시 위치를 조금 바꿔 들었다.
보라는 보호자가 말을 꺼내려 하자 손을 들어 잠깐 기다려 달라는 표시를 했다. 진료실 안에는 산소가 흐르는 소리와 다람쥐의 숨만 남았다.
도경은 청진기를 떼었다.
“한쪽에서 숨소리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가슴 안에 물이 차 있거나, 폐가 제대로 펴지지 않는 경우를 확인해야겠어요.”
“아까 가슴 안이라고…….”
“그 근처가 아픈 것 같다는 뜻이었습니다. 어느 쪽 문제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도경은 초음파 기기를 가까이 당겼다.
“지금은 눕혀서 사진을 찍는 것보다, 이 자세에서 먼저 보는 게 덜 힘들겠습니다.”
보라가 수건을 다시 접었다. 다람쥐가 몸을 세운 채 기대도록 받침을 만들었다. 도경은 털을 조심스럽게 나누고 가슴 옆에 작은 탐촉자를 댔다.
화면에 움직이는 윤곽이 나타났다.
도경은 각도를 바꿨다가 다시 처음 자리로 돌아갔다. 보라가 화면을 가리지 않도록 수액 걸이를 옆으로 밀었다.
가슴 안에 검게 보이는 공간이 있었다. 그 안쪽에서 폐가 좁게 움직였다.
그림의 짙은 자리를 떠올리며 보았지만, 도경은 화면에서 확인한 것만 기록했다.
“물이 차 있습니다. 폐 바깥쪽에서 누르고 있어요.”
보호자의 손이 진료대 모서리를 잡았다.
“그래서 숨을 못 쉬는 겁니까?”
“숨 쉴 공간이 줄어든 겁니다. 물을 조금 빼서 숨을 편하게 해 줘야 합니다.”
도경은 화면을 멈추고 보호자에게 보여 주었다. 손끝으로 폐와 그 바깥쪽을 따로 짚었다.
“다만 왜 찼는지는 더 봐야 합니다. 물을 뺐다고 원인까지 해결된 건 아니에요.”
남자는 화면과 다람쥐를 번갈아 봤다.
“제가 잡으면 됩니까?”
“몸을 누르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보라 씨가 받칠 거예요. 보호자분은 앞에서 보고 있어 주세요. 갑자기 움직이려 하면 말씀해 주시고요.”
남자는 진료대 모서리에서 손을 뗐다.
도경은 물음표 옆에 확인한 내용을 적었다. 짙게 보인 자리만 믿고 처치를 시작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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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가 포장을 벗긴 도구를 쟁반에 올렸다.
작은 바늘과 주사기, 연결 줄, 거즈가 나란히 놓였다. 도경은 연결된 부분을 하나씩 확인하고 장갑을 바꿨다.
“산소는 계속 유지해 주세요.”
“네. 그거 제가 할게요.”
보라가 다람쥐 앞쪽으로 산소 줄을 옮겼다. 수건으로 몸을 받친 손은 가슴을 누르지 않도록 그대로 두었다.
도경은 처치할 자리를 소독했다. 다람쥐가 어깨를 조금 움츠리자 손을 멈췄다. 숨이 이어지는 것을 보고 다시 거즈를 움직였다.
보호자의 작업화 끝이 바닥에서 한 번 미끄러졌다.
도경이 고개를 들었다.
“의자 가져다드릴까요?”
“괜찮습니다.”
말과 달리 남자의 무릎이 진료대에 닿아 있었다. 보라가 발끝으로 낮은 의자를 밀어 주었다.
“앉아서도 잘 보여요.”
남자는 잠깐 망설이다가 앉았다. 다람쥐의 앞발과 눈높이가 가까워졌다.
도경은 초음파로 자리를 다시 확인했다. 화면에서 보았던 공간을 짚고, 다람쥐의 몸이 움직이지 않는지 살폈다.
바늘을 든 손은 천천히 내려갔다.
보라가 수건을 받친 손에 힘을 더했다. 몸을 누르는 대신 옆으로 돌아가지 않게 막았다. 다람쥐의 발톱이 수건에 걸렸다.
도경은 바늘 위치를 확인한 뒤 주사기 손잡이를 조금씩 당겼다.
연결 줄 안으로 묽은 액체가 들어왔다.
도경은 손을 멈추고 다람쥐의 숨을 보았다. 다시 조금 당겼다. 액체가 모일 때마다 가슴의 움직임과 눈을 번갈아 확인했다.
그림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 도경이 보는 것은 주사기 안의 액체와 작은 몸의 움직임이었다.
다람쥐의 턱이 조금 내려왔다.
보호자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도경은 손을 멈춘 채 청진기를 다시 댔다.
처음보다 숨소리가 가까워졌다. 아직 빠르기는 했지만, 배를 크게 들썩이던 움직임은 줄었다.
도경은 필요한 만큼 확인한 뒤 바늘을 뺐다. 보라가 거즈를 건네자 손끝으로 자리를 눌렀다.
“이대로 잠깐 받쳐 주세요.”
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경은 뽑아낸 액체를 검사 용기에 나누어 담고 뚜껑을 닫았다. 겉모습만 보고 원인을 정하지 않도록 채취한 자리와 시간을 적었다.
보호자는 그제야 길게 숨을 내쉬었다.
“물을 다 뺀 겁니까?”
“숨을 쉬는 데 도움이 될 만큼 뺐습니다. 무리해서 계속하지는 않을 거예요. 남은 상태는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도경은 거즈를 들어 처치 자리를 살폈다. 피가 번지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작은 보호 덮개를 붙였다.
다람쥐는 앞발을 수건에서 떼었다. 발가락이 펴졌다가 다시 오므라들었다.
보라가 도경의 손을 보며 말했다.
“원장님 손 안 떨리네요.”
도경은 쟁반 위에 사용한 도구를 내려놓았다.
“안쪽을 확인하고 했으니까요.”
그다음에는 다람쥐의 숨을 한 번 더 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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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를 산소 상자로 옮긴 뒤 보라가 젖은 거즈와 포장을 정리했다.
처치실 문 옆에서 도경은 새 장갑을 꺼내다 말고 보라를 보았다.
“아까 따끔했을 때, 놀라지 않았어요?”
“조금 놀랐죠.”
“손부터 넣길래요. 겁 안 나요?”
보라는 빈 도구 쟁반을 들었다.
“저 굴 옆 동네에서 컸어요. 저런 거 밤에 담장 위로 다녔어요.”
“번개다람쥐가요?”
“네. 빨래 걷다가 마주치기도 하고요.”
보라는 쟁반을 씻는 곳에 내려놓고, 산소 상자 문이 잘 닫혔는지 확인했다.
“그래도 오늘은 장갑 끼고 만질게요. 두 번 따끔한 건 별로예요.”
도경은 고무장갑 상자를 가까운 선반으로 옮겨 두었다.
보호자는 의자에 앉아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휴대전화를 귀에 대기 전 도경에게 물었다.
“숨이 조금 편해졌다고 말해도 됩니까?”
“네. 다만 지켜봐야 한다고도 말씀해 주세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 빼고 나서 좀 나아졌어.”
잠깐 듣던 남자가 산소 상자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울기는 왜 울어. 지금 앞발도 움직여.”
도경은 상자 안의 수건이 발에 걸리지 않게 끝을 접었다. 남자는 통화를 마치고 두 손으로 휴대전화를 감쌌다.
“동생이 오늘 아침에 학교를 안 가겠다는 걸 제가 보냈거든요.”
“내려놓으신 이동장도 챙겨 두겠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좀 더 보겠습니다.”
남자는 이동장을 내려다보다가 손잡이를 접었다.
그때 창문 밖에서 가벼운 두드림이 들렸다.
표말순 할머니가 세탁물 봉지를 든 채 서 있었다. 도경과 눈이 마주치자 할머니는 진료대 쪽을 가리켰다.
도경이 창문을 조금 열었다.
“무슨 일이세요, 할머니?”
“아니, 불 켜져 있길래. 오늘도 그 애들 왔어?”
“지금 처치하고 쉬는 중이에요.”
할머니는 산소 상자를 멀리서 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면 안 들어갈게. 임 원장, 밥은 먹고 해.”
세탁물 봉지를 고쳐 든 할머니가 창문에서 물러났다. 보라는 간식 서랍을 열어 과자 봉지를 꺼냈다.
보호자에게 하나를 건네고, 다른 하나는 도경의 책상에 놓았다.
도경은 봉지를 조금 뜯은 뒤 다시 내려놓았다. 산소 상자 안에서 다람쥐가 고개를 움직였다.
작은 코가 수건의 접힌 곳을 더듬었다.
■
밤에는 다람쥐의 호흡이 한결 고르게 이어졌다.
도경은 가슴에 물이 다시 늘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보호자에게 검사 결과와 앞으로 확인할 항목을 설명했다. 다람쥐는 병원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남자는 이동장 안에 들어 있던 작은 천을 꺼냈다.
“이거 집에서 덮고 자던 건데 넣어도 됩니까?”
도경은 천에 딱딱한 장식이나 풀린 실이 없는지 살폈다.
“몸을 덮지는 말고 옆에 놓아 둘게요.”
남자는 천을 넘겨주고 산소 상자 앞에 잠깐 서 있었다. 다람쥐가 코를 움직이자 상자 바깥에 손가락을 댔다. 이번에는 털에 닿지 않았다.
“내일 동생 데리고 오겠습니다.”
“오기 전에 전화 주세요. 밤중에 상태가 달라지면 제가 연락드릴 거고요.”
도경은 연락처를 다시 확인했다.
남자가 나간 뒤 보라는 산소 상자 옆에 관찰 기록을 붙였다. 도경은 마지막으로 숨소리를 듣고 대기실 불을 줄였다.
책상 위의 과자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도경은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진료대 서랍을 열었다. 길게 접힌 신고서 모서리가 다시 걸렸다.
이번에는 거즈 봉지를 들어 내고 종이를 꺼냈다.
시설을 적는 칸부터 천천히 읽었다. 진료실과 처치실, 검사 장비를 적는 자리가 있었다. 비어 있는 줄 옆에 병원에서 쓰는 도구 이름을 메모했다.
산소 상자 쪽에서 수건이 바스락거렸다.
도경은 펜을 놓고 다람쥐를 보았다. 몸을 옆으로 조금 돌렸지만 숨은 고르게 이어졌다.
책상으로 돌아와 신고서를 폈다.
이름 칸에 펜 끝을 댔다.
『임도경』
도경은 마지막 글자의 획을 마저 긋고 펜을 내려놓았다.
유리문에는 대기실의 낮은 불빛이 비쳤다. 안내문 아래쪽이 조금 들떠 있었다.
『몬스터는 받지 않습니다』
도경은 문 앞까지 갔다. 종이의 들뜬 모서리를 손끝으로 잡았다가 놓았다.
뒤에서 산소 상자의 작은 문이 달칵거렸다. 보라가 잠금쇠를 확인하는 소리였다.
도경은 안내문을 그대로 두고 돌아섰다.
책상 위에는 이름만 채운 신고서가 펼쳐져 있었다.
『환자: 번개다람쥐(손바닥 크기 · 주의)』
『진단: 가슴 안에 물이 차 폐를 누르는 상태, 호흡 곤란, 원인 추가 검사 중』
『처치: 산소 공급, 청진과 초음파 확인, 고인 물 빼기와 채취액 검사, 입원 관찰』
(4화 끝)
도경은 병원 유리문 쪽으로 돌아섰다. 안에서 물그릇을 내려놓던 보라가 전화기를 보고 문을 조금 열었다.“네. 몬스터도 진료합니다. 어떤 아이인가요?”“모래게입니다. 먹기만 하면 토해서요.”전화 너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도경은 차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지금도 계속 토하나요?”“먹은 걸 뱉고 나면 가만히 있습니다. 걷기도 하고요. 그런데 다음 끼니에 또 그래요.”“숨 쉬는 모습은 평소와 같고요?”남자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멀어진 목소리로 바위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전화가 가까워졌을 때는 말이 조금 빨라져 있었다.“같습니다. 지금 저한테 오네요.”도경은 보라가 열어 준 문으로 들어갔다. 계산대에서 메모지를 가져와 모래게라고 적었다.“억지로 먹이지 마세요. 입을 벌려 보려고 손을 넣지도 마시고요. 언제부터 그랬는지 알려 주세요.”도경은 먹이 종류와 토한 뒤의 움직임을 물었다. 남자는 물을 마시는지 살펴보겠다고 했다. 통화를 마치기 전에 도경은 바로 와야 할 때를 짚어 주었다.남자가 적는 동안 전화 너머로 펜 끝이 종이에 닿는 소리가 들렸다.■4월 14일(화), 대기실에서 단단한 것이 바닥을 두드렸다.도경은 씻은 손의 물기를 닦으며 나왔다. 낮은 운반 상자 앞에 축구공만 한 모래게가 서 있었다. 모래색 껍질 아래로 다리가 차례로 움직였다. 양쪽 집게는 몸 앞에 모아져 있었다.상자를 들고 온 남자의 왼팔에는 보조기가 채워져 있었다. 남자는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내려놓은 뒤 몸을 조금 숙였다.“전화드렸던 사람입니다.”&l
도경은 서류를 끝까지 넘긴 뒤 먹이 항목이 있는 쪽을 다시 펼쳤다. 빈칸은 그대로였다.“관리원에 먹이 자료도 부탁해 볼게요. 지금은 수액부터 마저 보고요.”보라는 간식 서랍 위에 올려 둔 봉지를 치웠다. 대신 작은 메모지를 붙이고 이끼곰 먹이라고 적었다.입원 칸에서 담요를 긁는 소리가 났다. 새끼 이끼곰이 앞발을 당겨 턱 밑에 놓고 있었다. 도경은 그 앞에 앉아 수액 줄이 눌리지 않았는지 살폈다.“조금 움직이네요.”“네. 먹을 수 있을 만큼 기운이 돌아오는지 봐야죠.”도경은 기록지 아래에 다음 관찰 시간을 적었다.■4월 10일(금), 보라가 작은 접시를 들고 입원실에서 나왔다.접시 한쪽에는 얇게 자른 사과가 놓여 있었다. 다른 쪽은 비어 있었고, 그 자리에 물기 묻은 자국이 남았다.“사과 먹어요.”도경은 접시를 내려다봤다.“스스로요?”“처음엔 냄새만 맡더니 앞발로 가져갔어요. 조금만 줬어요.”관리원에서 보내 준 사육 자료에는 사과를 포함한 몇 가지 과일이 적혀 있었다. 앞서 내민 먹이는 냄새만 맡고 고개를 돌렸는데, 이번에는 달랐다.도경은 입원 칸 앞에 쪼그려 앉았다.이끼곰은 담요 위에 배를 대고 있었다. 턱 아래에 사과 부스러기가 붙어 있었다. 도경이 거즈를 가까이 가져가자 코가 먼저 움직였다.“이건 먹는 거 아니야.”입가를 닦은 뒤 배를 가볍게 살폈다. 호흡은 고르게 이어졌고, 손이 닿자 앞발을 조금 옮겼다. 창고에서처럼 턱을 떨어뜨리지는 않았다.보라가 남은 사과를 담은 그릇을 들어 보였다.“더 주면 먹을 것 같은데요.”“조금 기다려 보죠. 먹고 나서 불편해하지 않는지도 봐야 해요.”보라는 그릇을 이끼곰의 눈에 띄지 않는 선반으로 옮겼다.그때 대기실 문이 열렸다.도경은 손을 씻고 진료실로 나왔다.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작은 이동 상자를 두 손으로 받치고 있었다. 옆에는 책가방을 멘 여자아이가 붙어 서 있었다.상자는 투명한 덮개에 공기구멍이 나 있었다. 안쪽 천 위로 얇은 날개 하나가 비스듬히 솟아 있었다.“유
도경은 철창 사진을 뒤집어 빈 곳에 월요일이라고 적었다. 그 아래에 가져갈 물건을 하나씩 써 내려갔다.보라는 처치실 불을 끄려다 말고 종이를 보았다.“왕진 가방 꺼내 놓을까요?”“네. 수액하고 보온 담요도 챙겨 주세요.”도경은 휴대전화에 답장을 보낸 뒤 사진을 기록지 사이에 끼웠다. 입원실에서는 물그릇 가장자리를 긁는 작은 소리가 났다.■4월 6일(월) 아침, 도경은 창고 앞에 흰 소형 승합차를 세웠다.노상필은 철문 옆에 서 있었다. 은테 안경 너머로 도경을 확인하고 서류 가방을 내려놓았다. 관리원 직원 둘은 차량 뒤에서 이동장을 꺼내고 있었다.회색 후드를 입은 탁인호가 다가와 왕진 가방을 받아 들었다. 가영은 휴대전화와 얇은 서류 봉투를 양손으로 쥐고 있었다.“선생님, 저쪽에 차 대시면 나중에 애들 싣기 편하대요.”도경은 차를 조금 옮긴 뒤 노상필에게 갔다.“돌두꺼비 셋과 물결뱀은 병원에 있습니다. 오늘 아침 상태도 적어 왔어요.”“확인하겠습니다. 안에서는 먼저 개체 상태를 봐 주십시오.”노상필이 기록지를 받아 서류철에 넣었다.창고 철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엄기철이 셔츠 단추를 채우며 나왔다. 금목걸이가 열린 깃 사이로 보였다.“월요일 아침부터 이렇게까지 와야 해요?”“사육 상태 확인에 앞서 방문 목적은 전화로 안내했습니다.”노상필이 신분증을 보이고 문 앞에 섰다.“현재 보관 중인 개체와 사육 기록을 확인하겠습니다.”엄기철은 직원들이 들고 있는 이동장을 보았다.“아직 확인도 안 했는데 저건 왜 가져왔어요?”“진료가 필요한 개체가 있으면 옮겨야 합니다.”도경은 왕진 가방을 받아 들었다. 엄기철이 도경의 남색 진료복을 보고 입술을 다물었다가 옆으로 비켰다.문을 넘자 축축한 냄새와 먼지 냄새가 함께 났다.철창은 벽을 따라 놓여 있었다. 몇 개는 천으로 덮여 있었고, 바닥에는 마른 먹이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었다. 가까운 철창의 물그릇을 관리원 직원이 들어 보았다.그릇 바닥에 얇은 자국만 남아 있었다.도경은 안쪽에서 들
“이계생물관리원 노상필입니다.”도경은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물그릇을 보았다. 돌두꺼비 한 마리가 턱을 들었다가 옆에 붙어 있는 몸 위에 내려놓았다.“주임님, 느티나무 동물병원 임도경입니다. 오늘 돌두꺼비 셋을 진료했는데, 사육 상태도 확인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보호자와 등록 번호부터 말씀해 주십시오.”도경은 선반의 서류를 가져왔다. 엄기철의 이름과 고리 번호를 읽자 전화 너머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현재 병원에 있습니까?”“네. 셋 모두 탈수가 있고 등 피부가 손상됐습니다. 철창과 처음 왔을 때 상태를 찍어 뒀어요.”“사진과 진료 기록을 보내 주십시오. 확인한 사실과 보호자가 한 말은 나눠 적어 주시고요.”도경은 기록지 옆에 빈 종이를 놓았다.“관리 상태가 나빴다고 제가 단정해도 됩니까?”“진료에서 확인하신 상태를 적으시면 됩니다. 사육 환경은 저희가 확인하겠습니다.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전화를 끊고 도경은 철창 사진을 다시 열었다. 사진 아래에 물그릇 없이 내원했다고 적었다. 아침에 물을 줬다는 엄기철의 말은 따로 옮겼다.보라가 물그릇 옆 받침을 바로 놓았다.“돌아가서 또 저 안에 들어가는 건 아니겠죠?”“확인해 보겠다고 하셨어요.”도경은 마른 배설물이 붙어 있는 바닥 사진을 골랐다. 전송 화면에 사진이 한 장씩 올라가는 동안 보라는 돌두꺼비들의 머리가 물에 잠기지 않는지 살폈다.■4월 3일(금), 도경이 입원실 물그릇을 갈고 나왔을 때 유리문이 열렸다.엄기철이었다.어제 두고 간 철창보다 길쭉한 철창을 양손으로 들고 있었다. 금목걸이 아래 셔츠 앞섶에 작은 물자국이 났다.“원장, 이것도 좀 봐 줘요.”철창 바닥에 팔 길이의 뱀이 몸을 접고 있었다. 옅은 물결무늬 사이로 젖은 거즈가 보였다. 꼬리 끝에 감아 놓은 거즈였다.도경은 진료대 위를 비웠다.“무슨 일이 있었습니까?”“철창 문에 끼였어요. 직원이 닫다가.”엄기철이 철창을 내려놓자 뱀이 머리를 들었다. 입을 벌리지는 않았지만 몸을 움직일 때마다
“어떤 아이들이 있는지 먼저 알려 주세요.”도경은 펜을 든 채 청년을 보았다.청년이 이동장을 내려놓으려다 안쪽을 살피고는 그대로 받쳐 들었다.“두꺼비도 있고, 뱀도 있어요. 제가 맡는 날에는 물을 갈아 주는데 다른 날은 잘 모르겠어요.”“행사장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아픈 아이는 여기로 데려와야 해요.”“사장님한테 말은 해 볼게요.”청년이 이동장 손잡이에 감긴 천을 고쳐 잡았다. 도경은 진료 시간 아래에 병원 연락처를 적어 건넸다. 청년은 종이를 접지 않고 작업복 안주머니에 넣었다.유리문이 닫힌 뒤에도 도경의 펜은 잠깐 들려 있었다.보라가 진료대의 수건을 걷었다.“행사장에 물그릇은 있겠죠?”“그것부터 물어봤어야 했네요.”도경은 기록지 아래에 물 공급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적었다.■4월 2일(목), 점심을 먹고 돌아온 보라가 간식 서랍을 닫을 때 유리문이 열렸다.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배가 나온 남자가 철창을 한 손에 들고 들어왔다. 셔츠 목 안쪽에서 굵은 금목걸이가 흔들렸다. 철창이 문 옆 선반을 스치자 남자는 손잡이를 높이 들어 올렸다.“여기가 몬스터 봐 준다는 데죠?”도경은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철창 바닥에 자갈 같은 덩어리 셋이 붙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중 하나가 눈을 떴다. 주먹 크기의 돌두꺼비였다.등은 희끗했고 눈 주위는 움푹 들어가 있었다. 철창이 기울었는데도 몸을 바로 세우지 않았다.“진료대에 내려놓으세요.”남자가 철창을 놓았다. 철창 안에 있던 돌두꺼비 한 마리가 옆으로 밀렸다. 보라가 손잡이를 받아 바닥을 수평으로 맞췄다.“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밥을 안 먹어요. 행사에 나가면 움직여야 하는데 가만히만 있고.”남자는 바지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관리원에 등록한 개체 번호와 돌두꺼비 셋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도경은 종이를 펴고 철창 안의 등록 고리를 확인했다.“보호자 성함이 엄기철 씨 맞으세요?”“네. 엄가네 몬스터 체험 해요. 우리 알바가 여기 괜
보라는 문 옆의 낮은 선반을 비웠다.도경이 큰 담요를 접어 올려놓자 보라가 끝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유리문을 여닫아도 담요가 걸리지 않았다.“이 정도면 바로 꺼낼 수 있겠네요.”“바닥에 닿으면 갈아 주세요.”보라는 선반 위를 한 번 더 닦았다. 도경은 처치실로 돌아가 고정대에 남은 물기를 확인했다. 마른 거즈를 채우고 나니 진료대 아래 서랍이 조금 뻑뻑하게 닫혔다.■3월 31일(화), 문 옆의 담요는 작은 이동장을 받치는 데 쓰였다.점심이 지난 뒤였다. 작업복 차림의 청년이 이동장을 양손으로 들고 들어왔다. 한쪽 소매에 흙이 말라붙어 있었고, 이동장 손잡이는 천으로 여러 번 감겨 있었다.“몬스터도 보시는 거 맞죠?”도경은 계산대 밖으로 나왔다.“네. 어떤 아이예요?”“쇠부엉이요. 눈이 좀 이상해요.”이동장 안에서 쇳빛 깃이 움직였다. 팔뚝 길이의 부엉이가 낮은 횃대에 앉아 있었다. 몸을 돌리지 않고 고개만 틀어 도경을 보았다.눈 가장자리에 마른 분비물이 조금 붙어 있었다. 오른쪽 눈을 자주 감았다 떴다.“언제부터 그랬어요?”“사흘쯤 됐어요. 밤에 자꾸 벽에 부딪혀요. 전에는 불을 꺼도 잘 날았거든요.”도경은 이동장 아래에 담요를 깔았다. 청년이 손잡이를 놓고도 손을 떼지 않았다.“떨어뜨릴까 봐 감아 놨어요. 들고 오는데 안에서 자꾸 움직여서요.”“잘하셨어요. 지금은 문을 열지 말고 잠깐 볼게요.”도경은 이동장 옆으로 몸을 낮췄다. 부엉이는 횃대를 발톱으로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날개는 양쪽 모두 접혀 있었고, 숨을 쉴 때 꼬리가 크게 들썩이지는 않았다.“밥은 먹습니까?”“주면 먹어요. 그런데 바닥에 놓으면 못 찾을 때가 있어요.”청년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등록 내용에는 위험 단계 주의가 적혀 있었다. 발목의 등록 고리 번호도 맞았다.“직접 데리고 일하세요?”“저는 D급 헌터고요. 평일에는 체험 행사장에서 아르바이트해요. 얘 먹이 주고 청소하는 건 제가 합니다.”도경은 접수 칸에 들은 내용을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