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바람이 옅게 감돌던 루메데스의 밤.
은은하게 깔린 조명 아래에서 값비싼 가면을 쓴 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세레인은 손에 트레이를 든 채 구석에서 몸을 반 쯤 숨기듯 서 있었다.
정원 구석 나무 그림자 사이. 시선은 아래로, 숨소리는 얇게, 이제는 익숙해진 하녀의 자세였다.
그 순간.
귀족 몇몇이 허리를 숙이며 한 인물을 향해 길을 비켰고 그 틈으로 한 남자의 모습이 언뜻 스쳤다. 검은 천 위에 금빛 자수가 반짝이는 제국의 문장이 선명했다.
황제였다. 아무도 그를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도 그를 향해 눈을 맞추지 않는 가운데, 그의 붉은 눈동자는 정원 구석의 하녀 하나에게 닿아 있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저 바라보고 있었고, 그 시선은 살아있는 포식자의 것처럼 날카롭고 권태에 젖은 것처럼 느슨했다.
세레인은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단지 그 시선이 자신을 뼛속 깊이 파고드는 것 같았다.
…잘생겼다, 아마 그날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게 문제지. 그런 자리에서 그런 걸 보고 있을 때가 아니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고.
세레인은 떠오르는 무수히 많은 가설과는 달리 본능적으로 눈을 내려깔고 바닥만 바라봤다.
첫 날, 연회장 안. 손에서 미끄러진 잔이 바닥에 부딪히며 깨졌던 아찔한 순간.
설마 그 날의 책임을 다시 물으려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그 정도로 큰 소란은 아니었다. 금방 묻힌 소란이었다.
그럴 리가 없지. 고귀한 왕족들은 일개 하녀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법이다. 단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시선일 뿐일거야.
쿵. 쿵. 쿵.
심장 소리가 귀 안쪽에서 울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상했다.
세레인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세를 바로잡았다. 손에 힘을 주고 잔떨림을 눌렀다.
이틀만 더 지나면 끝이잖아.
그 생각이 들자, 더더욱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괜히 그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
황제는 아무 말도, 아무런 손짓도 없이 지나갔다.
***
화려했던 연회가 천천히 막을 내렸고, 하녀들의 업무는 계속되었다.
세레인도 그중 하나였다. 며칠 동안 철거와 뒷정리가 이어졌다.
"리나."
작은 가죽 주머니가 그녀의 손에 쥐어졌다.
와… 제국 돈이다! 발테리움에서 처음 받는 첫 급여! 세레인은 절대 이 돈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선물 가게?"
마사가 묻자 세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델렌 아주머니께 뭐라도 드리고 싶어서."
마사가 곧장 따라나서겠다고 했다. 점심 무렵 두 사람은 선물가게를 찾았고, 세레인은 신중하게 물건들을 골랐다.
“이 손수건이랑 책이랑 필통… 괜찮겠지?”
세레인은 포장된 선물을 챙겨, 우편 사무소로 향했다.
"칼데론의 베르나 마을, 식료품점 마델렌 아주머니 앞으로요."
“귀중품은 없으시죠?”
“네, 없어요.”
직원이 봉투를 받아들며 말했다.
“안전하게 보내드리겠습니다.”
***
“리나, 일어났어?”
세레인은 이불 속에서 눈만 내놓은 채 끄덕였다.
옆자리의 마사가 하품을 하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요즘 잠 못 자지? 계속 뒤척이던데.”
“생각이 많아서 그런가 봐.”
잠에서 덜 깬 티가 여실한 마사가 눈을 몇 번 느리게 깜빡였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는 듯, 세레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설마, 너 또 약초?”
“응… 숲에서 캐면 팔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하면서도 조금 허무했다. 이 곳의 풍경은 베르나와 현저하게 달랐으니까.
마사는 고개를 저었다.
“여긴 베르나가 아니라니까. 거의 다 귀족 땅이야.”
프로 약초꾼이 되어보겠다는 야무진 꿈이 사라졌다. 전부 귀족 땅이라면 나는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 이제 연회도 끝났는데 어디로 가야할 지가 막막했다.
“품삯 일을 알아보는 게 나을걸.”
“그럴만한 연줄이 없잖아…"
마사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음… 하나 있긴 해. 예전에 일했던 집인데 다시 사람 구한다고 하더라고.”
“정말?"
“응. 리베르츠 남작가. 아가씨 하녀 구한다던데, 말이 좀 많지만 일이 크게 어렵지도 않고.”
“내가 할 수 있을까…?”
“원하면 내가 같이 가줄게!”
세레인의 청금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며칠 후, 세레인은 마사와 함께 리베르츠 남작가 저택 앞에 섰다.
고풍스러운 백색 외벽에 붉은 지붕이 얹혀있고, 꽃이 가득한 정원과 분수까지 갖춘 귀족 저택이었다.
“괜찮겠어, 리나?”
“응. 잘해볼게.”
비장한 어조의 세레인이 대답했다.
이건 기회다. 놓치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기회.
세레인은 남작가 관리인 하이든과 전담 시녀 에밀리가 앉아 있는 넓은 서재로 안내되었다.
“리나 양. 업무와 관련된 몇 가지 질문을 할게요. 긴장하지 마시고 편하게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세레인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하이든이 이따금씩 질문을 던질 때마다 세레인은 긴장감을 숨기지 못한 채 대답했다.
“집안 일 경험은 얼마나 되나요?”
“8년 정도에요. 혼자 살아서 가사일은 능숙합니다.”
오... 나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말이 나오는데? 짧게. 길게 얘기하면 오히려 실수해. 너무 길게 말할 필요도 없지만 예의 있게.
에밀리가 노트에 조용히 적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의류나 물품 정리도 잘할 수 있나요?”
쾅-!
그 순간, 갑자기 문이 거칠게 열리면서 곱슬곱슬한 붉은 머리카락의 소녀가 안으로 들어섰다.
결이 고운 얼굴에 장밋빛 뺨.
또렷한 이목구비와 흰 피부에 진한 네이비색 눈동자를 지닌, 인형처럼 어여쁜 인상을 주는 소녀였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벌써 면접 중이야?”
벨라 리베르츠, 이 저택의 영애였다.
하이든과 에밀리는 잠시 놀란 듯 벨라를 바라봤다.
벨라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직접 볼거야! 나한테 얘기해.”
“사실 매우 이례적이긴 합니다.”시릴이 손을 떼어내자, 위험도, 국가적 재난, 집착 따위 같은 단어들이 즐비하게 칠판에 적혀있었다.“폐하와 이 기사는 나이대가 비슷한 거 외에는 신분부터 기질, 성격 뭐 하나 비슷한 점이 없습니다. 그리고 시녀 또한 그에게 상당히 의지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그래. 차라리 저쪽이 황제보다야 가능성이 높지. 리베르츠 남작은 뒤집어지겠지만.“카르안은 아쉔 쪽으로 시선조차 돌리지 않고 응수했다.”아니. 국경 넘어올 때부터 제국 소속이니 내 것이다. 원래부터 내 시녀인 걸 저자가 뺏어간 거지. 시릴, 계속 말해.”시릴은 고개를 왼쪽으로 젖히며 판서를 훑기 시작했다.“흠흠, 문제는 저렇게 다쳐와서 시녀에게 동정심을 유발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서적 안정감 이런 것이 다비안 경이 가진 것들이고요. 아, 눈웃음도 있네요.“”기사가 실실 눈웃음이나 치고 다니는 건 정신이 해이한 거지. 폐하, 자고로 남자의 매력은 내 여자를 지키는 듬직함에서……”“나한테 없는 게 죄다 저 놈한테 있다고?”카르안이 반듯한 이마를 찡그리며 팔짱을 꼈다.시릴은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두 사람의 눈치를 보다 이내 결론을 적어내렸다.[폐하께서 다비안 경의 행동을 모방]신입 기사의 행동 모방이라니. 하지만 헛소리라 일축해 버리기엔, 머릿속에서 세레인이 저를 앞에 두고 그 기사를 바라보던 눈빛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그녀가 무엇에 흔들리고, 무엇에 약한지 명확했다. 카르안은 한참 내용을 바라보다가 시릴에게 질문했다."시릴, 지금 내가 무섭게 생겼나?""음…… 무섭다기보다는요, 폐하. 아니 무서운 게 사실입니다. 워낙 용모가 출중하고 키가 크시니, 보통의 시녀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맹수 앞에 놓인 토끼처럼 겁을 먹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조금만 더 다정하게 다가가시는 건 어떻습니까?"다정함. 타인의 비위를 맞추고 부드러운 언사를 골라 쓴다라. 자신이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면 그것은 곧 목을 쥐기 위함이었는데 말이지.스스로의 입꼬리를 비틀어 올
다비안의 시야에서 황제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즈음, 그는 세레인을 내려다보았다."팔……!"세레인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의 팔을 응시했다. 당장이라도 치료실로 달려가야 할 듯 했다. 하지만 그녀는 걸음을 채 옮기지 못한 채, 카르안이 사라진 복도 저편을 불안한 눈빛으로 힐끔거렸다.통로 멀리에는 아직 자리를 뜨지 않고 있던 아쉔 대공과 시릴 베르탄이 서 있었다. 아쉔은 시릴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리며 말했다."공작, 따라와라."아쉔이 발걸음을 옮기고, 시릴은 그 뒤를 따랐다.세레인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고 겨우 정신을 차린 듯, 다비안을 부축하듯 이끌기 시작했다. 기사단 치료실로 향하는 길, 다비안은 여전히 제 팔을 붙잡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세레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너…… 아무리 그래도 폐하께 그렇게 말하면 안 돼. 다음부터는 그러지마.""……제가 좀 심했으려나요?"세레인은 그제야 이곳이 황궁 안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것도 황제의 친위대와 아쉔 대공, 시릴 베르탄 공작까지 지켜보는 앞에서 황제의 명령을 거부했으니."공자님이야말로…….""응."오늘 자신이 없었다면 다비안 공자님이 어떤 끔찍한 꼴을 당했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내가 그분 성정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렇지만 난 회복되는 대로 다시 북부로 갈 거고, 넌 또다시 혼자 남는 걸. 네가 제일 걱정 돼.""저는 이제 익숙해져서 괜찮아요. 그리고 아마도 저를 해하시진 않을 거예요. 공자님, 이리로."다비안의 겉옷을 벗기기 위해 세레인은 이마에 땀을 흘려가며, 아픈 팔에 자극이 가지 않도록 조심스레 움직였다.그리고 그녀는 두터운 붕대를 풀기 위해 손을 가져다 대었다."공자님, 아프면 바로 말해주세요."세레인은 다비안의 팔을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리며 감겨 있던 붕대를 한 겹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원래 며칠 전 입었던 화살 상처가 아물어 가던 중이었으나, 아까 카르안이 뿜어낸 마력 압박 때
카르안이 다가올수록, 길게 뻗은 복도에는 누구 하나 입을 열기 힘든 압박감이 서리기 시작했다.그는 그들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의 모욕적인 언사에 세레인은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폐하아...! 잠시 얘기를 나눈 것 뿐인데 벌레라니요. 말이 너무 지나치십니다......"제 생각보다 대담하게 맞서는 세레인의 모습에 다비안이 그녀를 숨기려는 듯 자신의 몸을 틀어 그녀를 가렸다.그리고 그 행동은 같은 남자가 보기에 명백히 보호 행위로 느껴졌다.카르안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며, 다비안을 내려다봤다."다비안 경, 세레인과 무슨 관계지?"다비안은 잠시 침묵했다. 황제가 세레인을 마음에 들어하고 있다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니 별다른 명분 없이 남작가의 하녀를 갑작스럽게 이관시켰을테고. 머릿속에 여러 계산이 스쳐 지나갔지만, 작고 여린 여자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모든 생각을 잠재워버렸다."저희 가문에 있던 아이입니다."그 한마디는 카르안의 인내심을 조용히 바닥냈다. 과거형임에도 다비안이 여전히 그녀를 놓지 못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마치 카르안 자신과 리베르츠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 것처럼."그 이상으로 보고 있는게 아닌가?"다비안은 다시 한번 침묵했다. 그리고 그는 세레인에게 시선을 던졌다.자신을 위해 울먹이는 맑은 눈동자,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의 리나.접경지에서도, 훈련장에서도 몇 번이고 떠올랐던 해사한 얼굴.그래, 나는 어쩌면 너를 처음부터 가문의 아이로 보고 있던게 아닐거다. 그리고 그걸 이 이상 숨기는 게 의미가 있을까?"제가 좋아했습니다."그 한마디에 세레인의 눈이 벙찐 듯이 커졌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다비안의 연한 푸른색 눈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다비안은 쐐기를 박듯 덧붙였다.“그리고, 지금도 그 마음은 같습니다.”“......네?”세레인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공자님.”예상했던 상대의 마음이었지만, 그로 인해 둘 사이에서 애틋한 연인의 기류가
겉으로 보면 고요해보이는 호숫가. 다비안은 청력에 집중했다.긴 수풀이 옷에 스치는 소리 그리고 간헐적으로 들리는 발자국 소리는 점점 자신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다비안은 바위 뒤에 몸을 밀착한 채, 거친 숨을 억지로 삼켰다.대략 열명 안팍.통신도 끊긴 채 고립된 곳에서 그의 결정은 명확했다. 살아 돌아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땅에 묻힌 것의 정체를 제국에 전달하는 것.다비안은 반사적으로 상체를 틀었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든 검이 그의 뺨을 스쳤다. 카앙!마찰음이 울리자마자 다비안은 상대의 팔을 세게 가격했다. 중심이 무너진 적의 급소에 단검을 박아넣었다.시체가 바닥에 닿기도 전, 등 뒤에서 창이 찔러 들어왔다. 다비안은 바닥을 박차고 도약했다. 그리고 장검을 뽑아 등을 베었다.두 번째."놈이다!"숨어있던 나머지 적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화살 두 발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다비안은 바닥을 구르며 피했지만, 한 발이 그의 오른쪽 팔뚝에 깊게 꽂혔다.푹!선명한 핏줄기가 옷을 적셨다. 다비안은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아냈다.나무가 많은 숲에서는 숫자가 오히려 독이었다. 그는 아군과 뒤엉키게 만들어 적들의 시야를 가리는 전략을 택했다.하지만 팔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팔이 저릿해지며 시야가 조금씩 흔들렸다.아직 둘 남았다.다비안은 비틀거리며 검을 쳐내고, 몸을 회전시키며 적의 옆구리를 베었다. 콱!거대한 대검이 적의 상체를 동강 냈다. 부단장 칼릭스였다. 그를 뒤이어 기사단이 몰려왔다.칼릭스는 피투성이가 된 다비안을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흘렸다."다비안! 괜찮냐?"다비안은 이미 자신의 옷을 찢어 팔을 단단히 묶고 있었다. 지혈을 마친 그의 목소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침착했다."괜찮습니다. 부단장님, 땅 속을 보십시오."다비안은 땅 속을 가리켰다. "넌 아프지도 않냐? 일단 한 명 와서 부축해라."칼릭스는 흙을 파헤치고 파편을 집어 들었다."스읍...... 이건 에레브노스의 흔적인데."젊은 축에
커튼 사이로 새벽빛이 스며들어 침실 안은 희뿌연 빛이 감돌고 있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세레인은 카르안의 몸에 기댄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카르안은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댄 채, 세레인의 허리를 감싸 쥐고, 제 안쪽으로 더 바짝 끌어당겼다. "폐하아...! 너무 버겁다니까요......!" 부피감 때문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세레인이 그의 아랫배를 꾹 밀어냈지만, 카르안은 오히려 엉덩이를 더 단단하게 붙잡았다. "하아, 이제 적응할 때도 되지 않았어?" 세레인은 그의 탄탄한 배를 찰싹찰싹 때리며 투정을 부렸다. "도무지 적응이 안되는데 뭘 어떻게 적응해요?! 폐하, 이러다 우리 밤 새겠어요. 이제 그만 쉬어요......!" 카르안은 그 대답이 귀엽다는 듯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자신의 품에 가두었다. 세레인은 어깨에 이마를 가볍게 기댄 채, 카르안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제국의 고귀한 공녀도 아닌 타국 출신인 자신을 향한 이상할 정도로 과한 집착. 그의 의중을 읽어보려 눈을 맞추던 세레인이 잠시 고민하다 카르안의 볼에 짧게 입을 맞췄다. 카르안은 화답이라도 하는 듯이 고개를 돌려 그녀의 동그란 뺨을 혀로 훑어내렸다. 세레인이 간지러워서 '꺄악'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에 카르안의 입가도 호선을 그렸지만, 이내 레이나가 그녀의 뺨을 때렸던 일이 떠오르며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별난 귀족 영애들 틈에서 얕보이지 않으려면 무엇부터 가르쳐 줘야 할까? 카르안은 품 안에 얌전히 안긴 그녀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햇살이 좀 더 길게 드리워지고, 먼저 눈을 뜬 카르안은 한동안 말없이 세레인을 내려다보았다. 금빛 속눈썹 아래 고른 숨결과 베개 위로 흐트러진 머리카락. 함께 잠든 어젯밤 내내 이상하리만치 불안했다. 그녀를 안고 있고, 온기를 느끼고 있어도 그랬다. 더 가까이 곁에 두고 싶다는 마음은 이미 자신이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커져 있었다. 정말 이것뿐인가? 사람 하나에 이렇게 신경을 곤두세우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다비안 경이, 다비안 경이 아직 복귀하지 않았습니다!"히아트가 땀에 젖은 채 내달려 왔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부단장 칼릭스는 지휘봉을 책상에 툭툭 치며, 시계를 확인했다. 해가 저물어 붉은 노을이 내려앉은 지 오래였다."시간이 몇 신데 아직 복귀를 안 해? 마지막으로 같이 있었던 곳이 어디야?"히아트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지도를 짚었다. "북쪽 자레니 호숫가입니다. 다비안 포함 여섯 명이서 인근을 순찰하고 저희는 돌아왔는데, 그는 지형을 더 살피겠다며 자리를 옮겼습니다. 분명 해 지기 전에는 돌아오겠다고 했는데……."칼릭스가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호숫가는 고요했다. 다비안은 짧은 단검을 꽉 쥐고 숨을 죽였다.며칠 전부터 새벽에 간혹 보이던 작은 인영. 지난 번의 선제 도발은 물론이고, 접경지의 분위기로는 호의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호수 근처, 흙이 뒤집힌 자리에 다가서자 주머니 안에 늘 넣고 다니던, 전령구가 지직 소리를 내며 연결이 끊겼다."함정인가?"다비안의 연한 푸른 눈이 어렴풋한 어둠 속에서 빛났다. 그는 아카데미 시절 익혔던 마력 반응을 떠올리며 지면 쪽에 코를 가까이 댔다. 흙냄새. 폭발물 특유의 화학적인 향이 아주 희미하게 감돌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단검으로 땅을 파헤쳤다. 한참을 파내니 깊은 구덩이에서 그을린 금속 파편이 드러났다. 다비안이 반듯한 미간을 구기며, 천천히 파편을 살펴봤다.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형체. 그 찰나였다. 슉-!등 뒤에서 날아든 화살이 그의 옆을 스쳤다. 다비안은 본능적으로 몸을 날려 큰 바위 뒤로 숨었다. 긍지 높은 기사로서, 적의 기습에 굴할 수는 없었다. 그는 적의 동태를 살폈다. 설령 기습으로 제 몸이 이번에 죽는다 해도, 어떻게 해서든 이 침략의 증거는 제국에 알려야만 했다.*** 세레인의 숙소.세레인은 카르안의 눈치를 보며 빨래감 속에 제 속옷과 옷가지들을 재빨리 숨겨버렸다."폐하, 왜 자꾸 이곳으로……. 폐하의 궁
“우와... 너무 예쁘다.”세레인은 연회장의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벽의 눈부신 장식들은 베르나의 조용한 돌담과는 너무도 다른 결이었다.천장이 어찌나 높고 반짝이는지 마법 조명도 너무 신기해 한참이나 바라봤다.여러 계절이 뒤섞인 듯한 공기와 자연의 향기가 섞여 숨이 막힐 정도로 화려했다. 연회 전후로 이곳을 통과하는 인원들이 많아 하녀들은 대부분 이곳에 배치되었다.세레인은 홀 바깥, 연회장을 드나드는 입구 쪽에서 하녀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다. 그녀가 금빛 천을 정리하고, 식기를 옮기며 바삐 움직이던 와중이었
“괜찮아?”“피, 피는 안 나?”하녀장 펠타가 헐레벌떡 달려와 상황을 수습했다.세레인은 얼굴이 새하얘진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다리에선 감각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왜 하필 이런 타이밍에...아 난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한 거야.“나… 어떡해…?”작게 중얼거렸다.다른 사람도 아니고 황제 폐하 입장 중이었는데… 이런 실수를…황제의 입장 도중 일어난 소란에 숨을 죽이고 있던 모든 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으로 쏠렸다.반 쯤 열린 장막 사이로 느껴지는 날 선 기류.황제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잠시 장막
세레인은 입을 쩍 벌린 채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방금 전까지 야생동물이 나올까 봐 쫄깃했던 마음은 어디 가고, 이제는 눈앞에 펼쳐질 기회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자, 정신 차려! 일단 배부터 채우고… 그다음엔 일자리를 알아봐야지.”그녀는 바구니 속 마델렌이 싸준 빵 덩어리를 꺼내들었다.“음, 제국은 부유하니까 하녀 월급도 훨씬 셀 거야. 운 좋으면 귀족가 대저택에 취직할 수도 있고!”세레인은 머릿속으로 장밋빛 미래를 그렸다. 큰 저택의 하녀가 되어 따뜻한 방에서 잠들고 남는 시간에는 맛있는 제국 음식
“황제 폐하께서 시녀님을 호출하셨습니다.”눈을 뜬 세레인은 그 말에 피가 서늘하게 식는 걸 느꼈다. 입술이 말라붙고 메모장에 적어놓은 욕지거리가 한꺼번에 떠올랐다.나 좀 부르지 말라고……황제의 시선은 여전히 찻잔 위에 머물러 있었다. 은빛 테두리에 붉게 비친 찻물이 이상하게도 피를 연상케 했다. 세레인은 눈 앞의 잔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어제, 손으로 시중드는 건 그만두라 했었지.”그 짧은 문장에 세레인의 손이 움찔했다. 그녀는 얼른 두 손을 뒤로 감췄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숙였지만 황제는 그저 담담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