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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붉은 눈동자

Author: 그림자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3-23 11:10:11

바람이 옅게 감돌던 루메데스의 밤.

은은하게 깔린 조명 아래에서 값비싼 가면을 쓴 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세레인은 손에 트레이를 든 채 구석에서 몸을 반 쯤 숨기듯 서 있었다.

정원 구석 나무 그림자 사이. 시선은 아래로, 숨소리는 얇게, 이제는 익숙해진 하녀의 자세였다.

그 순간.

귀족 몇몇이 허리를 숙이며 한 인물을 향해 길을 비켰고 그 틈으로 한 남자의 모습이 언뜻 스쳤다. 검은 천 위에 금빛 자수가 반짝이는 제국의 문장이 선명했다.

황제였다. 아무도 그를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도 그를 향해 눈을 맞추지 않는 가운데, 그의 붉은 눈동자는 정원 구석의 하녀 하나에게 닿아 있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저 바라보고 있었고, 그 시선은 살아있는 포식자의 것처럼 날카롭고 권태에 젖은 것처럼 느슨했다.

세레인은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단지 그 시선이 자신을 뼛속 깊이 파고드는 것 같았다.

…잘생겼다, 아마 그날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게 문제지. 그런 자리에서 그런 걸 보고 있을 때가 아니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고.

세레인은 떠오르는 무수히 많은 가설과는 달리 본능적으로 눈을 내려깔고 바닥만 바라봤다.

첫 날, 연회장 안. 손에서 미끄러진 잔이 바닥에 부딪히며 깨졌던 아찔한 순간.

설마 그 날의 책임을 다시 물으려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그 정도로 큰 소란은 아니었다. 금방 묻힌 소란이었다.

그럴 리가 없지. 고귀한 왕족들은 일개 하녀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법이다. 단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시선일 뿐일거야.

쿵. 쿵. 쿵.

심장 소리가 귀 안쪽에서 울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상했다.

세레인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세를 바로잡았다. 손에 힘을 주고 잔떨림을 눌렀다.

이틀만 더 지나면 끝이잖아.

그 생각이 들자, 더더욱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괜히 그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

황제는 아무 말도, 아무런 손짓도 없이 지나갔다.

***

화려했던 연회가 천천히 막을 내렸고, 하녀들의 업무는 계속되었다.

세레인도 그중 하나였다. 며칠 동안 철거와 뒷정리가 이어졌다.

"리나."

작은 가죽 주머니가 그녀의 손에 쥐어졌다.

와… 제국 돈이다! 발테리움에서 처음 받는 첫 급여! 세레인은 절대 이 돈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선물 가게?"

마사가 묻자 세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델렌 아주머니께 뭐라도 드리고 싶어서."

마사가 곧장 따라나서겠다고 했다. 점심 무렵 두 사람은 선물가게를 찾았고, 세레인은 신중하게 물건들을 골랐다.

“이 손수건이랑 책이랑 필통… 괜찮겠지?”

세레인은 포장된 선물을 챙겨, 우편 사무소로 향했다.

"칼데론의 베르나 마을, 식료품점 마델렌 아주머니 앞으로요."

“귀중품은 없으시죠?”

“네, 없어요.”

직원이 봉투를 받아들며 말했다.

“안전하게 보내드리겠습니다.”

***

“리나, 일어났어?”

세레인은 이불 속에서 눈만 내놓은 채 끄덕였다.

옆자리의 마사가 하품을 하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요즘 잠 못 자지? 계속 뒤척이던데.”

“생각이 많아서 그런가 봐.”

잠에서 덜 깬 티가 여실한 마사가 눈을 몇 번 느리게 깜빡였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는 듯, 세레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설마, 너 또 약초?”

“응… 숲에서 캐면 팔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하면서도 조금 허무했다. 이 곳의 풍경은 베르나와 현저하게 달랐으니까.

마사는 고개를 저었다.

“여긴 베르나가 아니라니까. 거의 다 귀족 땅이야.”

프로 약초꾼이 되어보겠다는 야무진 꿈이 사라졌다. 전부 귀족 땅이라면 나는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 이제 연회도 끝났는데 어디로 가야할 지가 막막했다.

“품삯 일을 알아보는 게 나을걸.”

“그럴만한 연줄이 없잖아…"

마사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음… 하나 있긴 해. 예전에 일했던 집인데 다시 사람 구한다고 하더라고.”

“정말?"

“응. 리베르츠 남작가. 아가씨 하녀 구한다던데, 말이 좀 많지만 일이 크게 어렵지도 않고.”

“내가 할 수 있을까…?”

“원하면 내가 같이 가줄게!”

세레인의 청금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며칠 후, 세레인은 마사와 함께 리베르츠 남작가 저택 앞에 섰다.

고풍스러운 백색 외벽에 붉은 지붕이 얹혀있고, 꽃이 가득한 정원과 분수까지 갖춘 귀족 저택이었다.

“괜찮겠어, 리나?”

“응. 잘해볼게.”

비장한 어조의 세레인이 대답했다.

이건 기회다. 놓치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기회.

세레인은 남작가 관리인 하이든과 전담 시녀 에밀리가 앉아 있는 넓은 서재로 안내되었다.

“리나 양. 업무와 관련된 몇 가지 질문을 할게요. 긴장하지 마시고 편하게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세레인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하이든이 이따금씩 질문을 던질 때마다 세레인은 긴장감을 숨기지 못한 채 대답했다.

“집안 일 경험은 얼마나 되나요?”

“8년 정도에요. 혼자 살아서 가사일은 능숙합니다.”

오... 나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말이 나오는데? 짧게. 길게 얘기하면 오히려 실수해. 너무 길게 말할 필요도 없지만 예의 있게.

에밀리가 노트에 조용히 적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의류나 물품 정리도 잘할 수 있나요?”

쾅-!

그 순간, 갑자기 문이 거칠게 열리면서 곱슬곱슬한 붉은 머리카락의 소녀가 안으로 들어섰다.

결이 고운 얼굴에 장밋빛 뺨.

또렷한 이목구비와 흰 피부에 진한 네이비색 눈동자를 지닌, 인형처럼 어여쁜 인상을 주는 소녀였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벌써 면접 중이야?”

벨라 리베르츠, 이 저택의 영애였다.

하이든과 에밀리는 잠시 놀란 듯 벨라를 바라봤다.

벨라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직접 볼거야! 나한테 얘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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