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어머니는 평생 작은 병원을 운영하셨다. 감기약을 한 번 처방해 주고도 단돈 1,000원밖에 받지 않으셨다. 병원을 물려받은 뒤에도 나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지키며 동네 사람들을 정성껏 치료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인플루언서에게 약값 6,000원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악덕 병원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돈에 눈이 멀어서 사람 목숨을 가지고 장사한다는 말까지 들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병원 앞을 막아섰고, 그동안 부당하게 받은 돈을 전부 돌려 달라고 몰아붙였다. 나는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했다. 그동안 받은 진료비를 모두 돌려준 뒤, 내 손으로 병원 문을 닫았다. “원하신 대로 병원은 문을 닫겠습니다. 앞으로 머리가 아프거나 열이 나면 시내 종합병원에 직접 가서 접수하세요. 다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마을 사람들이 또다시 내 집 앞을 막아섰다. 다만 이번에는 병원 문을 다시 열어 달라고 애원하기 위해서였다.
View More그 사이 나는 새 병원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기본기도 탄탄했고, 마을에서 5년 동안 수많은 환자를 직접 진료한 경험도 큰 도움이 됐다.처음에는 수술 보조부터 다시 시작했지만 금세 실력을 인정받았다.그리고 3개월 뒤.복잡한 관상동맥 우회술 도중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급박한 순간, 내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해 대처하면서 수술은 무사히 마무리됐다.그 일을 계기로 병원에서도 내 실력을 확실히 인정하기 시작했다.원장은 나를 주요 수술팀에 정식으로 합류시켰고, 급여도 두 배로 인상했다. 성과에 따라서 병원의 지분도 일부 받을 수 있게 됐다.이곳에서는 누구도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희생을 요구하지 않았다.환자들도 의료진의 판단과 치료를 존중했다.“강 선생님, 고생 많으셨습니다.”진심으로 건네는 그 한마디를 들을 때마다 내가 왜 의사가 됐는지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그 마을 사람들과 다시 마주칠 일은 없을 줄 알았다.그런데 어느 날,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왔다.마을 이장을 앞세운 사람들이 건물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창밖을 보니 울면서 자기 뺨까지 때리는 사람도 있었다.“강 선생, 우리가 잘못했어!”“그때는 우리가 제정신이 아니었어. 한 번만 용서해 줘!”나는 커튼 뒤에서 그저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어머니가 옆으로 다가와 조용히 한숨을 쉬셨다.“이제 와서 안됐다고 하기도 그렇구나.”“내가 그 마을에서 40년 동안 사람들 치료했고, 네가 또 5년을 했잖니.”“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힘들 때 사람들이 우리를 조금 도와준 건 고마운 일이지만, 우리도 45년이면 충분히 갚았어.”나는 더 이상 그 이야기를 이어 가지 않았다.대신 어머니를 보며 웃었다.“어머니, 우리 여행이나 갈까요?”“바다 한번 보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마침 저도 아직 못 쓴 휴가가 있으니까 같이 다녀와요.”어머니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웃으셨다.어머니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그래.”(끝)
하지만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일주일쯤 지나자 지역 커뮤니티와 라이브 방송 댓글창에서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오민수 선생님은 왜 종합병원보다 더 비싸요? 진료비만 해도 만 원부터잖아요.][그러니까요. 약도 너무 비싼데 먹어도 아무 효과가 없어요. 우리 애는 열이 더 심해졌어요.][그래도 강 선생이 있을 때가 좋았지. 약값도 얼마 안 들었는데...]이런 댓글은 올라오는 족족 정유아의 방송 관리자에게 삭제됐다.그날 저녁, 정유아는 라이브 방송에서 울먹이며 말했다.[여러분, 오민수 선생님한테 들었어요. 지금 다들 쉽게 낫지 않는 건 강지훈이 그동안 질 낮은 약을 써서 몸을 망쳐 놨기 때문이래요.] [지금 비싼 약을 쓰는 건 몸에 쌓인 나쁜 걸 빼내는 과정이라고요.]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마을 사람들은 또다시 그 말을 믿었다.결국 화살은 다시 나를 향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조사에 협조해 달라는 연락에 이어 법원에서 소장까지 날아왔다.마을 사람들이 단체로 나를 고소하고 손해배상 소송까지 제기한 것이었다.내가 질 낮은 약을 사용해서 몸을 상하게 했다며 거액의 배상금까지 요구했다.서류를 보고도 화조차 나지 않았다.그저 어이가 없었다.나 역시 그동안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오민수가 처음 방송에 나온 뒤 사람을 통해 그의 이력을 알아봤다.마을 사람들에게 처방한 ‘특효약’도 몇 상자 구해 전문 검사기관에 보냈다.결과는 이미 모두 받아 둔 상태였다.재판 당일, 정유아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선임한 변호사는 내가 얼마나 악질적인 의사였는지 한참을 주장했다.이철수와 미숙 할머니도 피해자라며 나서서 자신들이 당한 일을 호소했다.오민수와 다른 마을 사람들은 방청석에 앉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나는 준비해 온 자료를 그대로 제출했다.“첫 번째는 약품 검사 결과입니다.”서류를 들어 보이며 차분히 설명했다.“오민수 씨가 특효약이라고 판매한 제품의 주성분은 밀가루와 소량의 비타민입니다. 원가는 200원도 되지 않습니다.”“그런 제품을
그 말에 사람들이 돌아봤다.“강 선생 맞네!”“아이고, 잘됐다. 강 선생, 이것 좀 봐 줘. 여기 병원은 너무 비싸!”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와서 내 앞을 막았다.며칠 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왔다.정유아도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마침 잘 만났네요. 이정재 씨 아들부터 좀 봐 주세요. 애가 열이 심한데 여기선 한참 기다리게만 하잖아요.”이정재가 곧바로 아이를 내 쪽으로 데려왔다.“강 선생, 우리 애가 이틀째 열이 안 떨어져. 여기서는 계속 검사부터 하자고 하고 아직 약도 안 줬어.”“강 선생이 제일 잘 알잖아. 한번 보고 약 좀 처방해 줘.”미숙 할머니도 구겨진 CT 결과지를 내밀었다.“나도 이것 좀 봐 줘. 의사가 뼈에 뭐가 자랐다면서 물리치료를 받아야 한다는데 괜히 돈 받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예전처럼 몇 번만 치료해 주면 되는 거 아냐?”나는 한 걸음 물러섰다.“저는 지금 의사가 아니라 어머니 보호자로 여기 와 있습니다. 진료가 필요하시면 이 병원 의료진한테 받으세요.”지나쳐 가려는데 정유아가 앞을 막았다.“강지훈 씨, 사람들이 좋게 부탁하잖아요. 마을 사람들 진료해 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예전에 우리한테 돈도 그렇게 받아 갔으면서 이 정도도 못 해 줘요? 이건 당신이 해 줘야 하는 거잖아요.”이영자까지 내 소매를 붙잡았다.“아니, 강 선생. 우리가 남도 아니고 다 한동네 사람이잖아. 잠깐 봐 주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그래?”“놓으세요.”나는 붙잡힌 팔을 빼냈다.이영자가 휘청거리며 정유아 쪽으로 한 발 물러났다.더 이상 길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제 병원의 문을 닫게 만든 건 여러분입니다. 인터넷에 악덕 의사라고 올리고, 환자 볼 자격도 없다고 한 것도 여러분이고요.” “그런데 이제 와서 왜 저한테 진료를 부탁하시는 겁니까?”“여기는 병원이고 정해진 절차가 있습니다. 비싸다고 생각하든, 번거롭다고 생각하든 그건 여러분 사정입니다. 저와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지금 우리
“교수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제 마을을 떠났고 병원도 문을 닫았습니다.”[잘했어. 진작 그랬어야지.]교수님의 목소리가 한결 누그러졌다.[이제 거기서 나왔으니 그쪽 일은 그만 생각해. 인터넷에서 뭐라고 떠들든 실력만 있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마침 내 제자 하나가 시내에서 병원을 운영하는데 요즘 사람을 구하고 있어. 네 얘기를 해 봤더니 한번 와 보라고 하더구나.]잠시 뜸을 들인 교수님이 다시 말을 이었다.[다만 지훈아, 네가 기본기는 탄탄해도 시골 마을에서 5년이나 있었잖아. 요즘 큰 병원 시스템하고는 조금 멀어졌을 테고, 인터넷 여론도 좋지 않고.][그래서 당장 주요 수술을 맡기기는 어렵대. 우선 레지던트로 들어가 수술 보조부터 다시 시작했으면 한다는데 괜찮겠어?]“네. 하겠습니다.”망설일 이유가 없었다.“감사합니다, 교수님. 이런 상황에서도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지금 내게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고 불편한 시선도 감수해야 하겠지만 상관없었다.실력으로 다시 인정받으면 됐다.그 뒤로 이틀 동안 쉴 틈 없이 움직였다.낮에는 시내를 오가며 살 집을 알아보고 병원 면접을 준비했다.저녁이면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챙겼다. 몸을 닦아 드리고 식사도 도왔다.며칠 사이 잠도 제대로 못 잔 내 얼굴을 보던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보이셨다.“지훈아, 엄마 때문에 네가 고생만 하는구나. 나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왔다 갔다 할 일도 없을 텐데...”나는 웃으며 이불을 정리해 드렸다.“어머니,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저는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잖아요. 좀 바빠도 괜찮아요.”“면접에 붙으면 우리 시내로 이사 가요. 집도 새로 구하고요. 이제 저 사람들 때문에 속 끓일 일도 없을 거예요.”병실을 나와 수납하러 가던 중 로비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정유아와 미숙 할머니, 이정재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안내 데스크 앞에 몰려 있었다.“아니, CT 한 번 찍는데 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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