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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작업실 응접 탁자

作者: Jino
last update 公開日: 2026-11-01 19:00:00

『오늘 일정: 9월 26일 금요일, 복원본 점검』

“들어오세요. 문턱이 조금 높아요.”

나는 문을 더 열고 옆으로 비켰다. 회장은 지팡이를 안쪽에 짚은 뒤 발을 들였다. 계단을 올라오는 동안 풀렸는지 구두 끈 한쪽이 바닥에 끌렸다.

“잠깐만요.”

의자를 당겨 드리고 앞에 무릎을 굽혔다. 회장의 손이 내려오다 멈췄다.

“내가 하겠네.”

“끈이 작업대 바퀴에 걸릴 수 있어요.”

나는 대답을 기다렸다. 회장이 발을 조금 앞으로 내밀었다. 끈을 묶고 일어나자 회장은 벗어 둔 장갑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응접 탁자에는 납품표와 종이 견본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견본을 상자에 넣고 탁자를 비웠다.

“위층도 자네 작업실인가?”

“네. 재단 책은 위에서 작업해요.”

“잘됐군.”

회장은 창가 프레스기를 보고 나서 내 뒤에 놓인 의자로 눈을 옮겼다. 나는 의자를 밀지 않고 물컵을 가지러 갔다.

“물 드릴까요?”

“그러지.”

물을 담는 동안 지팡이 손잡이가 탁자 끝에 닿았다. 회장은 지팡이를 다시 세우고 가져온 가죽 가방을 열었다.

나는 물컵을 앞에 놓았다.

가방에서 나온 것은 천으로 싼 책 한 권이었다.

◈

회장이 매듭을 풀었다. 갈색 표지의 모서리가 닳아 속에 댄 판지가 드러나 있었다. 책등 아래쪽에는 천이 떨어진 자리가 있었다.

나는 손을 씻고 돌아와 맞은편에 앉았다.

“잠깐 봐도 될까요?”

“그래서 가져왔네.”

책을 받침 위에 올렸다. 표지가 뒤로 넘어가지 않게 받치고 겉부터 살폈다. 등 위쪽을 묶은 실이 끊어져 있었다. 아래쪽은 아직 붙어 있었지만 그대로 펼치면 그쪽에 힘이 몰릴 상태였다.

“책장은 빠진 적 없으세요?”

“몇 장은 벌어졌지. 가방에 들어 있던 건 모아 끼워 뒀네.”

“그럼 먼저 순서부터 확인할게요. 풀로 붙이신 곳도 있나요?”

회장이 표지 안쪽을 짚었다.

“오래전에 한 번. 그 뒤로는 손 안 댔어.”

나는 손전등을 켜서 가리킨 곳을 비췄다. 누렇게 굳은 풀이 면지 가장자리에 남아 있었다. 종이와 표지 사이가 들떠 있었지만 억지로 벌리지는 않았다.

“이건 떼기 전에 상태를 더 봐야 해요. 오래된 풀이라 종이까지 같이 떨어질 수 있어요.”

“시간은 걸려도 괜찮네.”

회장이 무릎에 둔 장갑을 접었다가 다시 폈다.

“내 일기장이야.”

나는 책에 대려던 손을 거뒀다.

“젊어서부터 썼지. 매일 쓴 건 아니고.”

“보관하실 상자도 같이 만들어 드릴게요. 고친 뒤에도 그냥 가방에 넣고 다니시면 모서리가 다시 상해요.”

“그보다 부탁이 하나 있네.”

회장이 물컵을 들었다. 물이 컵 안에서 흔들렸다. 나는 손을 내밀지 않고 컵을 내려놓을 자리를 비워 뒀다.

“내용은 보지 말고, 고쳐만 주게.”

나는 기록지 위에 올렸던 펜을 들었다.

“읽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빠진 장을 맞추면서 글씨가 눈에 들어올 수는 있어요. 접힌 곳이나 찢긴 곳도 확인해야 하고요.”

“일부러 들여다보지만 않으면 돼.”

“사진은 겉과 손상된 부분만 찍을게요. 글씨가 있는 부분은 가리고요.”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접수표의 요청 사항에 적었다.

『본문 열람 없이 구조 보강. 촬영 시 글씨 가림.』

종이를 돌려 보여 드리자 회장이 안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냈다.

펜촉이 서명 칸 위에서 잠시 멈췄다.

“이것도 써야 하나?”

“오늘은 성함만 확인해 주시면 돼요. 비용과 작업 범위는 상태 확인 뒤에 다시 말씀드릴게요.”

회장은 펜을 도로 넣었다. 나는 빈 서명 칸에 작은 종이를 얹어 두었다.

◈

계단에서 종이봉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나경아, 아직 따뜻할 때…….”

문을 밀고 들어온 다은이 나를 보다가 회장을 봤다. 봉투를 쥔 손이 허리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먼저 다은에게 말했다.

“일기장 맡기러 오셨어. 고다은 씨예요. 저랑 같이 책 고치고요.”

다은이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이 많군.”

“아니에요. 저, 물 더 드릴까요?”

“아직 있네.”

다은은 들고 온 봉투를 등 뒤로 옮겼다. 회장이 그쪽을 봤다.

“먹던 거 마저 먹게. 나 때문에 치우지 말고.”

“밖에서 사 온 건데요.”

다은이 내게 눈짓했다. 나는 음식 놓는 쟁반을 꺼냈다. 다은은 그제야 봉투를 열어 붕어빵을 접시에 옮겼다.

“팥 든 거 괜찮으세요?”

“하나 주게.”

다은이 온전한 것을 고르려 하자 회장이 손을 들었다.

“반이면 돼.”

나는 접시를 하나 더 가져왔다. 다은이 집게 두 개로 붕어빵을 나눴다. 팥이 조금 흘러나오자 다은이 집게로 주워 접시 안에 놓았다.

“막 사 와서 속이 뜨거워요.”

회장은 붕어빵을 내려다보다가 작게 웃었다.

“그 말은 오랜만에 듣는군.”

나는 일기장 위에 덮개를 씌우고 쟁반을 탁자 반대편으로 옮겼다. 다은이 냅킨을 접시 옆에 놓았다.

회장이 붕어빵 끝을 조금 떼어 먹었다.

다은은 서서 보다가 내가 의자를 가리키자 앉았다.

다은은 자기 몫을 한 입 먹고 입을 다물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에야 웃었다.

회장은 반쪽을 천천히 다 먹었다. 접시에는 부스러기만 남았다.

“아까 그쪽도 먹으려고 산 건데 내가 뺏었군.”

“제 건 봉투에 더 있어요.”

다은이 봉투 안을 벌려 보였다. 회장이 빈 접시 옆에 냅킨을 접어 놓았다.

“그럼 됐네.”

다은이 접시를 거두다가 회장의 소매 끝에 붙은 부스러기를 봤다. 손을 들었다 멈추자 회장이 소매를 내밀었다.

“여긴가?”

“네. 잠깐만요.”

다은이 냅킨으로 털어 냈다. 회장은 그동안 팔을 움직이지 않았다.

◈

다은이 위층으로 올라간 뒤 나는 새 기록지를 꺼냈다.

회장은 덮개가 씌워진 책에 손을 얹었다. 책등을 누르지는 않고 표지 위에 손바닥만 가볍게 두었다.

“이걸 맡기면 언제 다시 볼 수 있겠나?”

“오늘 겉 상태를 확인하고, 다음 주에 작업 방법을 말씀드릴게요. 급히 꿰매면 남아 있는 구멍이 찢어질 수 있어요.”

“읽을 수 있을 정도면 되네. 새것으로 만들 필요 없어.”

“표지도 그대로 둘게요.”

“그게 좋겠어.”

나는 접수표 옆에 책을 묶었던 천을 접어 놓았다. 천 안쪽에는 바느질한 이름표가 있었다. 실이 닳아서 글자 일부가 보이지 않았다.

“싸 오신 천은 같이 보관할까요?”

회장이 천 끝을 잡았다.

“그건 내가 가져가지.”

나는 작은 봉투를 꺼내 드렸다. 회장은 천을 넣고 가방 안쪽에 눕혔다.

가방을 닫는 손가락이 지퍼 고리를 놓쳤다. 다시 잡는 동안 나는 시선을 기록지로 내렸다.

“이헌이는.”

펜 끝이 종이에 닿았다.

회장이 가방에서 손을 떼었다.

“잘 지낸다던가?”

나는 펜을 내려놓았다.

“일하고 있다고 해요.”

“몸은?”

“괜찮다고 했어요.”

회장이 내 앞치마 주머니를 봤다. 휴대폰 위쪽이 조금 드러나 있었다.

나는 주머니를 덮지 않았다. 화면은 꺼져 있었다.

“연락은 하고 있군.”

“가끔요.”

탁자 아래에서 발끝을 당겼다. 의자 다리에 구두 뒤축이 닿았다. 회장은 더 묻지 않고 물컵을 들었다.

나는 접수표를 파일에 넣었다.

회장의 시선이 내 왼손에 머물렀다. 반지가 없는 손가락이었다. 앞치마 안에 넣은 실이 목을 조금 당겼다.

“주원이는 자주 보나?”

“내일 같이 본가에 가기로 했어요.”

“그렇군.”

컵을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나는 내일 저녁 시간을 확인하려고 휴대폰을 꺼내려다 손을 멈췄다. 화면을 켜면 마지막으로 읽은 문자가 그대로 보일 수 있었다.

창가 의자에 앉을 때까지 비워 두라던 문장.

나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기록지 끝을 맞췄다.

“내일 일기장 상태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회장은 내 손에서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얘기는 여기서 하지. 집까지 가져올 필요는 없어.”

“네. 여기서 연락드릴게요.”

“그래 주게.”

위층에서 프레스기 손잡이 도는 소리가 났다. 회장은 천장을 올려다봤다가 지팡이를 당겼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회장은 문 앞에서 가방을 다시 열었다. 안쪽 주머니를 확인하더니 지퍼를 닫았다.

“책을 맡기고 나니 빠뜨린 게 있는 것 같군.”

“접수증 드릴게요.”

“그건 말고.”

회장은 탁자를 돌아봤다. 덮개 아래로 책 모서리가 조금 나와 있었다.

나는 다가가 덮개를 바로 놓았다.

“작업하지 않을 때는 이렇게 두고, 퇴근할 때 보관함에 넣어요. 다른 책하고 섞이지 않게 따로 둘게요.”

“자네가 알아서 하겠지.”

문을 나서기 전에 회장이 내게 물었다.

“고치다가 못 고칠 곳이 있으면?”

“그대로 두는 방법도 말씀드려요.”

“억지로 붙이지는 않나?”

“한번 잘못 붙이면 원래 자리를 찾기 더 어려워요. 확인할 수 없는 곳은 손대지 않고 여쭤볼게요.”

회장이 지팡이를 계단에 짚었다.

“그렇게 해 주게.”

나는 아래층까지 배웅했다. 회장이 난간을 잡을 때마다 멈춰 기다렸다. 건물 입구에 내려서자 회장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내려왔네.”

짧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유리문을 잡고 서 있었다. 골목 끝에서 차가 들어오자 회장이 내게 손을 들었다.

“올라가게. 책 펼쳐 놓고 왔잖나.”

“덮어 뒀어요.”

“그래도.”

회장이 차 문을 여는 것을 보고 돌아섰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앞치마 안의 반지가 가슴 아래에 몇 번 닿았다.

작업실로 들어가서야 실을 꺼내 매듭을 확인했다. 반지에는 이상이 없었다. 나는 다시 앞치마 안으로 넣었다.

◈

다은이 빈 접시를 들고 내려왔다.

“가셨어?”

“응.”

“나 아까 팥 묻은 손으로 악수할 뻔했어.”

다은이 손바닥을 펴 보였다. 나는 접시를 받아 쟁반에 놓았다.

“안 했잖아.”

“그래서 계속 집게 들고 있었어.”

다은은 봉투에서 남은 붕어빵을 꺼내 내 접시에 놓았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붕어빵을 반으로 나눴다.

“너도 반만 먹어?”

“나머지는 이따 먹게.”

“안 먹고 두지 말고. 나 자재 정리하고 내려올게.”

다은이 계단을 올라간 뒤 나는 손을 씻었다. 책을 옮기기 전에 탁자에 남은 부스러기부터 닦았다.

휴대폰을 서랍에 넣으려다 화면을 켰다.

이헌이 보낸 문장 아래에 입력 칸이 비어 있었다. 오늘 보낼 말은 이미 보냈다.

나는 화면을 끄고 서랍을 닫았다.

회장에게 이헌의 말을 얼마나 전할 수 있었을까. 잘 먹고 있는지는 나도 몰랐다. 괜찮다는 짧은 답을 받은 날에는 그 말을 다시 묻지 않았다.

나는 빈 물컵을 치우고 책 받침을 당겼다.

지금은 맡은 책부터 확인해야 했다.

◈

덮개를 걷고 접수 사진을 찍었다. 앞표지, 뒤표지, 책등 순서였다. 글씨가 보이는 안쪽은 무지로 가렸다.

표지 안에 남아 있는 풀을 보려고 작업등을 낮췄다.

바깥 천은 닳았지만 안쪽 모서리는 들떠 있었다. 원래 붙어 있던 면지와 나중에 덧댄 종이가 겹친 자리였다. 나는 얇은 받침을 대고 벌어진 폭만 확인했다.

흰 접지칼을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오늘은 도구를 넣어 떼어 낼 단계가 아니었다.

기록지에 들뜬 위치를 표시하고 책을 조금 돌렸다.

책등 쪽에서 종이 끝이 나왔다.

나는 받침을 멈췄다.

빠진 책장이라면 억지로 밀어 넣으면 안 됐다. 표지가 더 벌어지지 않도록 손으로 받치고, 나온 부분 아래에 종이를 댔다.

얇은 조각이 조금 더 미끄러졌다.

뒷면에 글씨는 없었다. 일기장 종이보다 매끄러웠고 모서리 하나가 접혀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집지 않고 받침 위로 내려오게 했다.

사진이었다.

표지 틈에 끼어 있던 쪽은 색이 남아 있었다. 밖으로 조금 드러나 있던 가장자리는 빛이 바래 있었다.

나는 사진을 돌려놓으려던 손을 멈췄다.

여자의 얼굴을 먼저 알아봤다.

갈월 추모공원에서 이헌과 나란히 서서 보았던 얼굴이었다. 그때보다 젊은 서은숙이 사진 속에 있었다.

옆에는 안경을 쓰지 않은 남자가 서 있었다.

나는 책등을 받친 손에 힘을 뺐다. 사진이 다시 표지 밑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받침을 그대로 뒀다.

서은숙 옆의 젊은 남자는 강석진이었다.

(6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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