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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가을 제사

Penulis: Jino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11-04 17:00:00

『오늘 일정: 10월 18일 토요일, 본가 제사』

본가 대문 앞에서 가방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휴대폰에 이헌이 보낸 답장이 떠 있었다.

『먼저 들어가요. 조금 늦어요.』

지난 토요일 숙소에서 나온 뒤로 얼굴을 보지 못했다. 달걀을 먹었는지 묻던 문자 아래로 내가 보낸 본가 도착 시간이 남아 있었다. 화면을 끄고 가방 안쪽에 넣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데 주원이 안에서 나왔다.

“일찍 왔네요.”

“도울 일 있을까 해서요.”

주원이 내 가방을 받으려다 손을 내렸다.

“그거 함부로 놓으면 안 되는 거죠?”

“칼 들어 있어요.”

“그래서 안 받는 건 아닌데.”

주원이 신발장 옆을 비켜 줬다. 나는 가방을 들고 들어갔다. 거실에는 향을 꽂지 않은 향로가 놓여 있었다. 식당 쪽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경란은 상 위에 놓인 접시를 살펴보고 있었다. 진주 귀걸이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흔들렸다.

“왔니. 손 씻고 이것 좀 해.”

경란이 밤이 담긴 쟁반을 가리켰다. 옆에는 껍질을 벗긴 밤과 작은 칼이 따로 놓여 있었다.

“모서리만 쳐. 너무 많이 깎지 말고.”

“네.”

앞치마를 받아 허리에 둘렀다. 주원이 맞은편 의자를 당기자 경란이 손을 저었다.

“너는 아버지 오시면 모시고 들어와.”

“문 앞에서 기다리라고요?”

“현관에 구두 널어 놓은 것부터 치우고.”

주원이 의자를 밀어 넣었다.

“제 건 가지런히 뒀는데.”

경란이 쳐다보자 주원이 돌아섰다. 나는 손을 씻고 밤 쟁반 앞에 앉았다.

칼자루에 물기가 남아 있었다. 행주로 닦은 뒤 밤을 집었다. 모서리를 조금씩 잘라 접시 한쪽에 모았다.

곁에서 전을 옮기던 사람이 내 손을 보고 말했다.

“그 칼이 손잡이가 헐거워요. 조심하세요.”

나는 칼날을 내려놓고 자루를 살폈다. 이음새에 틈이 있었다.

“다른 칼 있을까요?”

서랍에서 새 칼이 나왔다. 나는 쓰던 것을 쟁반 밖에 놓았다.

“이건 다시 섞이지 않게 빼 둘게요.”

경란이 접시 수를 세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왜?”

“자루가 빠질 수 있겠어요.”

경란이 칼을 확인하고는 찬장 위로 옮겼다. 나는 새 칼로 밤 하나를 마저 다듬었다.

◈

밤을 담은 접시가 절반쯤 찼을 때 회장이 들어왔다. 한 손으로 문틀을 짚었다가 떼었다. 나는 칼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앉아.”

회장이 내 앞의 밤을 들여다봤다.

“누가 가르쳤어?”

“할머니요. 모서리를 따라 돌리라고 하셨어요.”

“해 봐.”

다시 앉아 밤을 집었다. 둥근 면은 남기고 튀어나온 부분만 잘랐다. 회장은 식탁 끝에 손을 올린 채 지켜봤다.

“손이 곱다.”

나는 밤을 내려놓았다. 왼손 검지의 굳은살에 가루가 묻어 있었다.

“바늘 자국이 많아요.”

“그거 말고.”

회장이 다듬기 전의 밤을 가리켰다.

“버릴 데만 버리네.”

나는 칼끝에 붙은 부스러기를 털었다. 회장이 접시를 당기려 하자 먼저 가까이 밀어 드렸다. 손끝이 떨려 밤 하나가 접시 밖으로 굴렀다.

주워 올리기 전에 회장이 손바닥으로 막았다.

“이것도 올리나?”

“바닥에 안 떨어졌어요. 물로 씻을게요.”

“내가 먹으면 되지.”

회장은 밤을 입에 넣었다. 경란이 돌아보자 빈손을 식탁 아래로 내렸다.

“아버님, 아직 상도 안 차렸어요.”

“하나 먹었다.”

“이가 불편하시면서 생밤을 왜 드세요.”

회장이 대답 없이 의자를 당겼다. 나는 물을 따라 앞에 놓았다. 잔을 잡는 손을 확인하고 나서 손을 뗐다.

“일기는?”

회장이 물었다.

“붙은 종이를 떼기 전에 상태를 기록하고 있어요. 억지로 벌리면 글씨가 같이 떨어질 수 있어서요.”

“서두르지 마.”

“표지 안에서 나온 사진도 따로 넣어 뒀어요. 다음에 가지고 올까요?”

회장은 물을 마신 뒤 잔을 내려놓았다.

“내가 갈 테니 그대로 둬.”

“네. 보관함에 넣어 두겠습니다.”

더 묻지 않았다. 칼을 잡고 남은 밤을 당겼다. 회장은 잠시 손을 보다가 거실로 나갔다.

경란이 밤 접시를 가져가며 말했다.

“아버님 앞에서는 일 얘기 길게 하지 마. 오늘 피곤하셔.”

“먼저 물으셔서 대답드렸어요.”

“그러니까 대답만 하라고.”

나는 앞치마 끈을 풀지 않고 도마에 남은 가루부터 모았다. 경란이 놓고 간 접시 밑에 물기가 있어 마른 행주로 받쳤다.

현관 쪽에서 주원이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셨어요.”

석진의 웃음소리가 뒤따랐다. 나는 칼을 씻어 서랍에 넣었다. 자루가 헐거웠던 칼은 여전히 찬장 위에 따로 놓여 있었다.

◈

석진은 거실에서 회장과 잠깐 말을 나눈 뒤 식당으로 왔다. 은테 안경 너머로 상과 내 앞치마를 차례로 봤다.

“우리 며느릿감이 벌써 일을 다 했네.”

“밤만 다듬었어요.”

“이런 날 와 주는 게 일이지.”

석진은 손목시계를 보고 소매를 내렸다.

“공장은 좀 돌아가나?”

“소량 생산하고 있어요.”

“돈이 되는 걸 만들어야 할 텐데.”

나는 벗은 앞치마를 접었다.

“주문받은 만큼 만들고 있어요. 다음 납품분도 확인했고요.”

석진이 밤 접시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기환 씨가 무리하면 안 돼. 이제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니까.”

주원이 물병을 들어 석진 앞에 잔을 놓았다.

“아버지, 여기 앉으시면 돼요?”

“상 차리는데 왜 벌써 앉아.”

“그럼 잔만 둘게요.”

주원은 물을 따르고 병을 식탁 가운데에 놓았다. 내 앞에도 잔 하나가 놓였다.

“나경 씨, 손 씻고 와요. 이건 제가 옮길게요.”

주원이 내가 들려던 빈 쟁반을 가져갔다. 석진은 아들의 손을 잠시 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을 씻으러 복도로 나왔을 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검은 구두가 먼저 보였다. 이헌이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왔다. 재킷 단추를 채운 채였다. 가방은 없었다.

나는 세면실 문손잡이를 잡고 멈췄다.

이헌의 시선이 내 손에서 얼굴로 올라왔다. 거실까지 문 하나가 열려 있었다.

“일찍 오셨네요.”

“네, 삼촌.”

호칭을 말하고 손잡이를 눌렀다. 이헌이 바로 지나가지 않아 나는 세면실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갔다.

“손 베인 데는 없어요?”

이헌이 낮게 물었다.

“밤 깎은 거예요.”

앞치마를 벗었는데도 손가락 옆에 가루가 남아 있었다. 나는 손을 등 뒤로 감추지 않고 물었다.

“식사는요?”

“여기서 하려고요.”

거실에서 석진이 나를 불렀다.

“누가 왔니?”

나는 문을 더 열었다.

“삼촌 오셨어요.”

이헌이 나를 지나 거실로 들어갔다. 나는 수도를 틀었다. 물이 손등을 타고 내려갔다. 비누를 문지르는 동안 석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여기 웬일이야?”

“아버지 뵈러 왔습니다.”

수도를 잠그자 다음 말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손을 닦고 수건을 제자리에 걸었다.

◈

거실로 돌아왔을 때 이헌은 회장 곁에 서 있었다. 석진은 안경을 벗어 닦고 있었다.

“언제 들어왔어?”

“지난 토요일입니다.”

“들어왔으면 연락부터 했어야지.”

이헌이 입을 열기 전에 회장이 말했다.

“내가 불렀다.”

석진의 손이 멈췄다. 안경다리 한쪽이 손가락 사이에 걸려 있었다.

“저한테 말씀도 없이요?”

“내 아들 부르는 데 네 허락받나.”

“그런 뜻이 아닙니다. 해외 법인 일이 있으니까 드리는 말씀이죠.”

“그쪽 일은 따로 보고받는다.”

회장이 소파 팔걸이를 짚었다. 이헌이 팔을 내밀었지만 회장은 혼자 일어났다.

“오늘은 제사 지내러 온 거야. 다른 얘기는 밥 먹고 해.”

석진이 안경을 썼다. 웃던 입가가 펴지지 않았다.

나는 식당 입구에서 비켜섰다. 이헌이 회장을 따라가며 내 곁을 지났다. 옷자락도 닿지 않았다. 나는 재킷 안주머니가 있는 쪽을 보지 않으려고 상 위의 촛대를 봤다.

주원이 내 옆에 섰다.

“물 좀 더 가져올게요.”

주원은 이헌에게 아는 척을 더 하지 않고 부엌으로 갔다.

향에 불을 붙이는 동안 나는 뒤쪽에 서 있었다. 경란이 내 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주원 옆, 이헌에게서는 식탁 하나를 건넌 자리였다.

절을 마치고 일어서는데 목에 건 실이 옷깃에 걸렸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안으로 밀어 넣었다. 백금 반지가 손가락 끝에 닿았다.

고개를 들자 이헌이 향로 옆의 불을 확인하고 있었다. 나는 손을 내리고 빈 그릇을 옮겼다.

상을 물릴 때 경란이 접시를 받아 들다 손을 바꿔 잡았다. 뜨거운 국물이 가장자리까지 차 있었다.

“제가 밑을 받칠게요.”

나는 행주를 펴서 그릇 아래에 댔다. 경란은 식탁에 내려놓고 손가락을 폈다.

“괜찮으세요?”

“됐어. 사람들 앉으시라고 해.”

식당 쪽으로 돌아서자 이헌이 의자를 빼고 있었다. 나는 경란이 정해 준 자리에 앉았다. 이헌은 대각선 맞은편에 앉았고 주원은 내 옆에 수저를 놓았다.

내 무릎 위에서 가방이 기울었다. 안쪽 칸의 휴대폰이 가죽에 부딪쳤다. 나는 가방을 발치에 세웠다.

◈

국을 나누는 동안 석진은 이헌에게 해외 법인 매출을 물었다. 이헌은 물은 것에만 답했다. 나는 밥그릇 뚜껑을 열고 식탁 한쪽에 포갰다.

“체류 일정은 어떻게 할 거냐.”

석진이 물었다.

“아버지와 상의하겠습니다.”

“보고 체계를 건너뛰겠다는 거야?”

회장이 수저를 내려놓았다.

“내가 불러들였다고 했다.”

석진은 입을 다물었다. 경란이 회장 쪽으로 생선 접시를 밀었다.

“아버님, 가시 발라 드릴까요?”

“됐다.”

주원이 내 쪽으로 작은 접시를 건넸다.

“나경 씨도 먹어요. 아까부터 옮기기만 했잖아요.”

“먹고 있어요.”

나는 숟가락을 들어 보였다. 주원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 밥을 떴다.

이헌은 물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나는 잔 바닥이 식탁에 닿은 뒤에야 앞을 봤다.

석진이 다시 말을 꺼냈다.

“결혼식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이헌이도 왔으니 집안 일에 손을 좀 보태면 좋겠네요.”

“무슨 일.”

회장의 물음에 석진이 나를 봤다.

“양가 정리할 게 있죠. 해윤 쪽도 그렇고요.”

나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공장 일은 아버지하고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

“내가 다른 사람한테 하겠니.”

“결혼 준비하고는 나눠서 말씀해 주셨으면 해요.”

석진의 시선이 내 옆자리로 옮겨갔다. 주원은 나 대신 대답하지 않았다. 물병을 들어 내 잔을 채운 뒤 뚜껑을 닫았다.

“나경 씨가 그쪽 일은 더 잘 알아요.”

석진은 아들을 보다가 웃었다.

“우리 집안은 같이 책임지는 거야. 선부터 그을 필요 없어.”

“확인할 걸 나누자는 말씀이에요.”

나는 무릎 위에 올려 둔 손을 폈다. 손톱 옆에 남은 밤 가루가 보였다. 엄지로 문지르지 않고 냅킨에 닦았다.

경란이 내 앞으로 빈 접시를 밀었다.

“이거 주방에 줄 때 가져가.”

나는 접시를 받으려고 팔을 뻗었다. 맞은편에서 이헌도 같은 접시를 잡았다. 기울어진 쪽을 받치려던 손이었다.

손끝이 닿았다.

1초였다. 나는 접시 밑으로 손을 옮겼고 이헌은 가장자리에서 손을 뗐다.

“제가 들게요.”

내 말에 이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겁지 않아요?”

“괜찮습니다.”

주원이 물병을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나는 접시를 가슴 쪽으로 당겼다. 경란은 생선 가시를 골라내고 있었고 회장은 국그릇을 당겼다.

석진만 손목시계를 보고 있었다.

나는 접시를 주방에 가져다 놓고 돌아왔다. 빈 의자 앞에서 치맛자락을 정리했다. 이헌의 손은 식탁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앉은 뒤에도 수저를 바로 들지 못했다. 손끝에 묻은 물기를 냅킨으로 눌렀다. 이헌은 나를 보지 않고 회장이 묻는 말에 답했다.

“묵는 곳은 정했냐.”

“네. 당분간 지낼 곳을 구했습니다.”

“짐은?”

“필요한 것만 가져왔습니다.”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밤 접시를 당겼다. 내가 다듬은 밤 하나를 집어 이헌 앞의 접시에 놓았다.

“나경이가 깎았다. 네가 먹어라. 난 아까 먹어서 됐다.”

이헌이 밤을 내려다봤다.

“잘 먹겠습니다.”

나는 밥그릇 뚜껑을 다시 포개 놓았다. 맞지 않는 가장자리를 맞추는 데 손이 두 번 갔다.

석진이 수저를 나란히 내려놓았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었다. 모두의 손이 멈춘 사이 석진이 일어섰다.

“아버지, 서재에서 잠깐요.”

(6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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