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쿵, 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장독들이 낮게 울었다.
명주가 낮은 문을 밀자 뒤뜰에 사내 넷이 서 있었다.
육가의 옷을 입지 않은 자들이었다.
우물가에 있던 하녀가 행주를 떨어뜨렸고, 부엌 뒷문이 소리 없이 닫혔다.
문지방을 넘어온 바람 끝이 아직 찬 삼월이었다.
"나오시오."
명주는 고개를 숙인 채 낮은 방 안을 한 번 돌아보았다.
아침에 들어온 찬밥 덩이가 문지방 안쪽에 손도 대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그녀는 문턱에 앉아 신을 신었다.
사내 하나가 곁으로 다가왔다.
명주가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팔이 등 뒤로 꺾였고, 무릎이 흙바닥에 쿵 부딪혔다.
누군가 안채 쪽으로 달려가다가 다른 사내에게 붙들렸다.
가늘고 낯선 비명이 뒤뜰을 찢었다.
사내들이 눈짓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이 양팔을 잡았고, 한 사람이 턱을 들었다.
마지막 사람이 작은 병의 마개를 뽑았다.
병의 아가리에 맺힌 검은 물이 햇빛을 받아 잠깐 붉게 빛났다.
사내가 명주의 입을 눌러 열었다.
검은 물이 목을 타고 흘러들자 목 안이 불덩어리를 삼킨 것처럼 뜨거웠다.
기침이 나올 것 같았으나 이내 사내의 손이 입을 막았다.
삼키지 않으려 발버둥 칠수록 약은 더 깊이 넘어갔다.
얼마 뒤부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 명주의 흐트러진 머리에서 백옥 비녀를 뽑아 제 소매에 넣었다.
명주는 뒷광으로 옮겨졌다.
흙바닥에서 겨 냄새가 났다.
문이 닫히자 빛은 문틈 한 줄만 남았다.
여러 손이 어깨를 눌렀다.
무릎 위에도 사람의 무게가 실렸다.
처음은 다리였다.
몸 한쪽 끝에서 뜨거운 것이 치솟아 정수리까지 꿰뚫었다.
명주는 비명을 질렀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벌어진 입으로 숨만 새어 나갔고, 눌린 팔다리가 퍼덕이다가 하나씩 조용해졌다.
살 지지는 냄새가 겨 냄새를 덮었다.
사내들은 말이 없었다.
일 사이사이 숫돌 가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났다.
마지막까지 남겨 둔 것은 눈이었다.
명주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천장의 들보였다.
들보에 앉은 먼지가 문틈 빛을 받아 희게 일어서 있었다.
그다음은 계속 밤이었다.
그날 육가의 안채는 정오가 되기 전에 문을 닫았다.
대문간의 종은 한 번도 울리지 않았고, 저녁상에는 탕이 한 그릇 덜 놓였다.
행랑의 하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광에는 사람 키만 한 독이 있었다.
해마다 술을 담그던 것으로, 안쪽 벽에 시고 달고 오래 말라붙은 냄새가 배어 있었다.
명주는 그 안으로 내려졌다.
지진 자리들이 숨을 쉴 때마다 숯불을 묻어 둔 것처럼 욱신거렸다.
명주의 정수리 위로 두 뼘 올라간 곳에 둥근 입구가 있었고 그 너머로 광의 서까래 한 토막이 있었다.
해가 기울면 서까래가 붉어졌다가 사라졌다.
첫날에는 밖에서 발소리가 날 때마다 고개를 들었다.
둘째 날에는 아는 목소리를 골라내려 했다.
셋째 날에는 소리가 가까워져도 움직이지 않았다.
넷째 날, 육정이 광 앞에 섰다.
그는 아침부터 세 차례 이곳까지 왔다.
첫 번째에는 돌계단 아래에서 돌아갔고, 두 번째에는 문고리에 손만 얹었다.
세 번째가 되어서야 빗장을 들었다.
육정이 문을 열었다.
가느다란 빛이 광 안을 가르고 들어갔다.
독 바닥까지는 닿지 않았다.
명주의 머리 위로 난 둥근 구멍만 희미하게 밝아졌다.
발소리가 다가오다 멎었다.
명주가 고개를 들었다.
독의 입구를 가리며 육정의 얼굴이 나타났다.
수염이 자라 있었고, 관자놀이에 마른 흙이 묻어 있었다.
육정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독 가장자리에 손을 올린 채, 엄지손가락으로 옹기의 거친 면을 문질렀다.
그가 무릎을 굽혔다.
얼굴이 조금 더 가까워졌지만 그의 눈은 독 안이 아니라 가장자리의 오래된 금을 따라 움직였다.
"부인."
명주의 입술이 움직였다.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 뒤로도 몇 번씩 잊게 될 일이었다.
명주는 기다렸다.
"…내가."
말은 거기서 끊겼다.
광 밖에서 하인이 헛기침했다.
명주는 여전히 그쪽을 향해 있었다.
십 년 동안 그가 다음 말을 찾을 때마다 그래 왔듯이,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육정의 손가락이 한 번 오므라들었다.
손톱 밑으로 검은 흙이 끼어 있었다.
그가 일어섰다.
얼굴이 독 위에서 사라졌다.
발소리는 문 앞에서 한 번 멈추었다가 다시 멀어졌다.
광문이 닫혔다.
그날 밤 육정은 서재에서 새벽까지 등불을 켜 두었다.
불은 두 번 꺼졌고 두 번 다시 켜졌다.
아침이 되자 타다 남은 종이 몇 장이 화로에 엉겨 있었다.
글자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닷새째 오후, 안방의 궤가 열렸다.
진분홍 비단으로 지은 치마가 꺼내졌다.
명주가 시집올 때 가져온 것 가운데 가장 아끼던 색이었다.
옷을 받아 든 매향이 잠시 손을 멈추었으나, 곧 치맛자락을 펼쳐 서란의 허리에 둘렀다.
비단은 몸에 잘 맞았다.
서란은 동경 앞에서 옷끈을 고쳐 맸다.
머리에는 작은 진주 장식을 꽂았다.
동경 한쪽에는 명주의 빗이 놓여 있었다.
"너무 붉으냐?"
매향이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그래."
서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광 밖에는 사내 둘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사람은 넓적한 나무 뚜껑을 들었고, 다른 사람의 손에는 젖은 새끼줄이 감겨 있었다.
뒤뜰 화덕에는 큰 솥이 걸렸다.
김이 담장을 넘어 낮게 흩어졌다.
서란이 광으로 들어섰다.
치맛자락이 바닥의 먼지를 쓸었다.
독 안의 명주에게는 보이지 않는 색이었다.
옷 스치는 소리가 가까워지자 명주가 고개를 들었다.
둥근 입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오늘은 좀 어떠셔요, 언니."
명주는 대답하려 했다.
입술만 움직였다.
서란이 몸을 숙였다.
먼저 얼굴이 나타나고, 이어 독 가장자리에 손이 놓였다.
갈라진 데 하나 없는 손이었다.
손톱에는 엷은 분홍빛이 돌았다.
열여섯 살 겨울, 그 손은 매일 터졌다.
서란은 피가 밴 손으로도 물동이를 날랐고, 밤이 되면 명주의 방에 불려 들어갔다.
명주는 화로 옆에 아이를 앉히고 손등에 기름을 발랐다.
글을 가르칠 때에도 그 손을 잡았다.
붓을 주먹처럼 쥐면 손가락을 하나씩 펴 주었다.
서란이 처음 쓴 제 이름은 획 하나가 비뚤어져 있었다.
"말씀을 못 하시니 답답하시겠어요."
명주는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조금 더 들었다.
서란이 웃었다.
명주도 웃으려 했다.
이 아이가 웃으면 따라 웃는 것이 어느새 버릇이 되어 있었다.
서란의 시선이 명주의 입술에 머물렀다.
독 가장자리를 짚은 손가락 하나가 안쪽을 천천히 쓸었다.
손끝에 묻은 검은 가루가 진분홍 치마 위로 떨어졌다.
"언니는 눈이 제일 고왔잖아요."
명주는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입술이 한 번 더 움직였다.
서란은 그것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러다 허리를 폈다.
얼굴이 사라지고 손이 떨어졌다.
둥근 입구 위로 서까래가 다시 나타났다.
"가자."
진분홍 치맛자락이 광문을 넘었다.
서란이 마당에 내려설 때까지 문은 열린 채였다.
햇빛 아래로 나온 치마는 광 안에서보다 한층 붉었다.
매향이 뒤따르다 돌아보았다.
사내 둘이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등록방에 화로가 둘 있었고 둘 다 상 밑에 있었다.늙은 서리가 대장을 펴 놓고 한경이 가져온 종이를 그 옆에 놓았다."방을 받으셨으면 여기 한 줄이 오릅니다.방은 사람보다 먼저 적히거든요.""…예.""사람은 나가면 그만인데 방은 안 나갑니다.그래서 방부터 적고 사람을 뒤에 붙입니다."늙은 서리가 붓을 인주 갑 옆에 놓고 손바닥을 화로 위에 잠깐 폈다."이관처를 적어야 하는데 이 종이에는 없습니다.그러면 이관 대장을 봅니다."늙은 서리가 다른 상자에서 두꺼운 묶음을 꺼냈다.실로 꿴 데가 헐거워서 장을 넘길 때마다 위아래가 어긋났다.목이 잠겼는지 한 번 가다듬고 읽었다."초닷샛날 등록방이 광록시에서 받았고, 광록시는 초사흗날 받았고, 그 위는 편전입니다."젊은 서리가 상 건너에서 목을 뺐다."편전에서 태의원 방을 내리는 일이 있습니까.""자네가 볼 대장이 아닐세.""소인은 그저 여쭌 것인데—""자네가 여쭈면 여기 적힌 사람이 대답을 해야 하네!"늙은 서리가 대장을 손등으로 밀었다.묶음이 상 끝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지면서 꿴 데가 벌어졌고 장이 부챗살처럼 퍼졌다.젊은 서리가 일어서서 나갔다.나가면서 문을 안 닫았다.찬 것이 문으로 들어와 화로 위의 재가 한쪽으로 쏠렸다.* * *늙은 서리가 바닥에 앉아 벌어진 데를 손으로 여몄다.여미면서 한경 쪽은 안 봤다."…소인이 스물두 해 이 방에 있었습니다.""어. 저 어른 안 돌아오시겠는데요.""돌아옵니다. 문을 안 닫고 나갔으니 돌아옵니다.닫고 나가면 안 돌아오는 겁니다.여기 사람들은 다들 그렇습니다."한경이 떨어진 장 몇을 주워 결이 같은 쪽으로 맞춰 내려놓았다.한 장은 아래 귀가 접혔고 접힌 자리에 먹이 옮아 있었다."그건 지우면 더 남아요.긁어낸 자리는 먹을 먹으니까 다음에 적는 사람이 알아보거든요.""…예. 그래서 안 지웁니다.""아, 접힌 것도 펴면 자국이 남고요.""…""아이고. 이거 꿴 실이 다 풀렸습니다."늙은 서리가 묶음을 상에
서쪽 방에 아침 볕이 들어오는 동안 소하가 걸레를 두 번 빨아 왔다.두 번째로 들어오다가 대야를 발등에 걸어 물을 자리 끝에 쏟았다."아이고. 아이고 이걸 어째.""두고. 마르니까.""안 마르는데요. 여기 볕이 아침에만 든다면서요."소하가 제 치맛단으로 자리를 눌렀다.누르면서 귀가 붉었다."저 창은 아침에만 열어 놓을 거야.오시 지나면 담 그늘이라 열어 두면 방이 더 식거든."한경이 상 위에 어제 떼어 온 종이 귀를 놓고 창 쪽으로 돌려 봤다.손톱만 한 조각이었고 그 위에 획이 반쯤 있었다.세로로 내려오다가 오른쪽으로 꺾이는 데서 끊겨 있었다.끊긴 데가 칼로 자른 것처럼 곧지 않고 결을 따라 뜯겨 있었다.뒷면에 마른 풀이 얇게 앉아 있었고, 손톱으로 긁으니 가루가 되어 떨어졌다.새로 붙은 종이의 석 자와 대 보았다.널에 붙은 것은 획이 서 있었고, 조각의 것은 누워 있었다."물 길어 오면서 뭐 들은 건 없고?""저 물 길으러 갔는데요, 거기 어른이 셋 계셨거든요.제가 서쪽 방 쓰시던 분 안부를 여쭈었더니 한 분은 작년에 들어와서 모른다 하시고, 한 분은 대야를 들고 그냥 가시고, 남은 한 분이 저더러 어느 방 얘기냐고 세 번을 물으셨어요.제가 세 번 다 서쪽 방이라 했는데도요.""…""그 어른이 서쪽 방을 모르시겠어요?바로 저 담 너머신데요.근데 제가 세 번째 말씀드릴 때는요, 그 어른이 두레박을 놓치셨어요."한경이 종이 귀를 등록 사이에 끼워 넣었다.끼워 넣고 나서 그 장 귀를 한 번 접었다가 도로 폈다."소하야. 너 거기 다시 가지 마.""…그럼 물은 어디서 길어 와요?""물은 내가 길을게.아침에 한 번만 나가면 돼."* * *문을 반쯤 닫으니 안쪽 문설주가 볕에 드러났다.나무에 그은 자국이 있었다.위에서부터 내려오면서 짧게 짧게, 손톱이 들어갈 만큼만 파여 있었다.손가락으로 훑으면 걸리는 데가 있고 안 걸리는 데가 있었다.먹으로 그은 것이 아니었다.붓대 끝으로 눌러도 저렇게는 안 되고, 칼
십일월 초순에 태의원 앞마당 흙이 아침마다 얼었다가 사시께 풀렸다.서리 하나가 종이를 들고 와서 늙은 어의 앞에 두 손으로 폈다.늙은 어의가 종이를 팔이 닿는 데까지 뻗어 들고 읽었다.읽고 나서 도로 당겨 한 번 더 읽었다."서쪽 방을 비우라 하였는가.""비우고 의녀에게 내주라 하였사옵니다.""누가.""소인은 등록방에서 받아 왔사옵니다.등록방에서는 어제 저녁에 받았다 하옵고, 위에서 이관된 것이라 하옵니다.""위라니 어느 위인가.""…적힌 것이 없사옵니다."종이 아래쪽에 인이 없었다.봉함을 떼어 낸 자리에 풀 자국만 두 군데 말라붙어 있었고, 종이 결이 그 자리에서만 일어나 있었다."어. 이건 내가 낸 것이 아닐세."늙은 어의가 종이를 한경 쪽으로 밀어 놓았다."태후 마마 처소에서도 아침에 사람이 왔습니다.어느 자리에서 내린 것이냐 물으셨습니다.""근데 물어서 뭐라 하였는가.""모른다 하였사옵니다.그 어른도 모르시겠다 하시고 가셨습니다."한경이 종이를 들여다봤다.열 줄이 안 되었고, 획이 눕지 않고 서 있었다.가로획 끝을 눌러 떼지 않고 그냥 뽑아 놓아서 끝이 가늘었다.늙은 어의가 손등으로 이마를 문질렀다."의녀. 자리는 있으십니다.이번에는 방도 있으시고.""…예.""…예. 그렇습니다."* * *서쪽 방에서 자리 셋 가운데 둘이 걷혀 나갔다.걷어 가는 사람들이 문 앞에서 신을 벗지 않고 팔만 들여 밀어 뺐다.늙은 심약이 뒤에 서서 그것을 보다가 방으로 들어가 창을 두 번에 나눠 밀어 열었다.안에서 마른 종이 냄새와 오래 안 쓴 먹 냄새가 같이 나왔다.방 안 바닥에 상자를 오래 놓아 둔 자국이 넷 있었다.자국 안쪽만 바닥 빛이 밝았고 그중 하나는 다른 셋보다 컸다."자리 셋 중에 둘은 그냥 두시면 돼요.저 혼자 쓸 거 아니거든요.""…의녀 어른. 오늘은 그냥 받으시지요."젊은 의관 하나가 문 앞까지 왔다가 안 들어오고 늙은 심약 쪽을 봤다.늙은 심약이 고개를 반쯤 저었고, 젊은 의관이 도로
태후 처소에 창이 넷 다 닫혀 있었고 문 앞에 발을 두 겹 쳤다.방 가운데 놓인 화로에 숯을 새로 얹었는지 위에 것만 붉었다.서리가 궁첩을 펴서 상 위에 올리고 무릎을 물렸다.펼친 데가 지난달에 적은 장이었고, 아래에서 셋째 줄에 이름 석 자가 있었다.그 옆 칸이 비어 있었다."앉거라.""예."한경이 자리 끝에 앉았다.앉으면서 화로 쪽을 한 번 봤다."숯을 아래부터 놓으셔야 오래가요.위에 것만 붉고 밑에 것은 아직 안 붙었거든요."태후가 호갑을 낀 손을 상 위에 올려놓았다."저 아이가 오늘 아침부터 저 칸 하나를 두고 세 번을 다녀갔다.네 이름 옆에 적을 말이 없다는구나.""예. 예. 소인이 아뢰옵기는, 궁첩은 이름 옆에 소속을 적사옵니다.태의원 의녀는 칙첩이 붙는 자리라, 칙첩 없이 그 칸을 채우면 아래에서 도로 옵니다.""위엣 줄들을 읽어 보아라."서리가 붓대를 놓고 손끝으로 줄을 짚어 가며 읽었다."어선방 궁녀. 상침국 궁녀. 완의국. 상공국. 상복국. 태의원 의녀.""거기서 멎었지.""…예. 거기서 옆이 비었사옵니다.아니, 비운 것이 아니옵고 적을 것이 없어서 비었사옵니다."* * *"그 칸에 태의원이라고만 적으면 되잖아요.""그건 안 된다.""…""적어 놓으면 그 말이 네가 된다.태의원이라 적힌 사람은 태의원이 지키고 태의원이 버린다.나는 아직 너를 그 방에 넣을 생각이 없어."한경이 마른침을 삼켰다."마마.""말해 보아라.""저 위엣 줄 사람들은요, 옆 칸에 적힌 데가 저를 지키는지 아닌지 아나요?""모르지. 모르는 편이 낫고."태후가 궁첩을 제 앞으로 반 치 끌었다.끄는 데 호갑 낀 손가락이 종이 전을 두 번에 걸어 잡았다."넉 달 전에 태의원에 들어온 줄이 있다더구나.한 손을 못 쓰면 못 든다는 것.""…예.""내가 낸 것이 아니다.나도 어제 처음 읽었다.등록을 스무 해 본 사람이 내 앞에 셋인데 셋 다 모른다더라.셋 다 모르는 줄이 어떻게 등록에 앉느냐.""…""나
서문 안쪽 담 밑에 흙이 얼어서 발이 안 들어갔다.한경이 두루마리를 편 채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말아 놓았던 것이라 손을 놓으면 도로 말려서, 아래쪽을 신코로 눌러 놓고 위쪽을 두 손으로 잡았다.손끝이 식어서 종이가 손에 안 붙었다.문지기가 쪽문에서 두 걸음 물러나 창을 고쳐 잡았다."…아까 그것 말입니다.봉이 없어서 소인이 펴 봤습니다.""펴 보셨어요?""폈다가 도로 말았습니다.다음에는 봉을 해서 보내시라 이르십시오.봉이 없으면 소인이 봐야 하고, 보고 나면 소인도 적힙니다.""…예."소하가 쪽문 쪽으로 두 걸음 갔다가 도로 왔다."아! 저 알아요, 저.아까 나리께서 손을 이렇게 하셨거든요. 이렇게요.이게 그, 잘 지내시라는 거 아니에요?""어. 그건 나도 몰라.""아 그리고요, 제가 아까 문지기 어른한테 강 나리 오시면 알려 달라고 아뢰었더니, 그런 건 아뢰는 게 아니고 여쭙는 거라 하시던데요.그럼 저는 누구한테 여쭙고 누구한테 아뢰어요?"문지기가 창을 고쳐 잡다가 웃음을 터뜨렸고, 터뜨리고 나서 얼른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어른들은 다 아시나 봐요."두루마리 끝에 봉함을 떼어 낸 풀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떼어 낸 데는 종이 결이 일어나 보풀이 서 있었다.안에 열두 줄이 적혀 있었다.곳간에서 안 나온 약재 셋이 어느 날 어느 등록에서 빠졌는지 날짜만 있었고, 사람 이름은 한 자도 없었다.글씨가 누워 있었다.* * *태의원 서쪽 방에 자리가 셋 펴져 있었고 그중 둘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화로를 가운데 놓고 벼루를 그 전에 올려 두었는데, 먹이 얼어서 갈리지 않아 녹기를 기다리는 참이었다.늙은 서리가 벼루를 불 쪽으로 반 치 더 밀었다.벼루 바닥에서 딱 소리가 났다."어이쿠.""벼루를 불에 바로 올리면 갈라져요.물을 반쯤 붓고 그릇째 데우시면 돼요.""…예. 예. 그리하겠습니다."한경이 자리 끝에 앉았다."등록방에서 어제 본 장을 한 번 더 보고 싶은데요.""어느 장이시겠습니까.""넉
궁 서문 쪽문이 사람 하나 지날 만큼 열려 있었다.문지기 둘이 그 앞에 서 있었고, 문지방 아래로 문 그림자가 안쪽 흙에 금을 하나 그어 놓았다.한경이 그 금 안쪽에 섰다.문 밖은 마른 흙길이고 길 건너에 나무가 셋 있었는데, 잎이 다 떨어져서 가지 사이로 성벽 아랫도리가 보였다.문 밖에 강목이 서 있었다.관복이었고, 왼팔을 몸에 붙이고 오른손에 종이 두루마리를 들고 있었다."…나리.""예. 예."문지기 하나가 두 사람 사이로 반 걸음 들어와 문 밖과 안을 번갈아 봤다."소신이 오늘 아침에 태의원 패를 도로 냈습니다.새 패는 문서고에서 나오는데 아직 안 나왔습니다.패가 없으면 이 문을 못 듭니다.""저도 아직이에요."관복 왼쪽 소매가 팔목에서 두 번 접혀 있었다.접은 자리가 눌려 자국이 났는데 오른쪽 소매는 안 접혀 있었다.한경이 제 흰 명주 겹적삼 소매를 손등 위로 내렸다.강목이 고개를 조금 숙였다.숙이고 나서 두루마리를 오른손에서 왼팔로 옮겨 안았다.한 번에 안 되어서 두 번에 나눠 안았다.* * *"소신이 여쭐 것이 있어 왔습니다.""…""…아닙니다. 여쭐 것이 아니라 드릴 것이 있어 왔습니다."강목이 두루마리를 문지기에게 내밀었다."석 달 치입니다.열이레부터 그제까지고요.곳간 출납을 옮겨 적었습니다.옮겨 적은 것이라 아래에 인이 없습니다.인이 없는 종이는 문서가 아니고, 문서가 아니면 문지기가 들여보내도 적히지 않습니다."문지기가 두루마리를 받아 들었다.받아서 문지방을 넘어 들어와 한경에게 내밀었다."소신이 볼 수 있는 데까지만 적었습니다."소하가 회랑 쪽에서 뛰어왔다.문지기 옆을 지나 쪽문 앞까지 가서 목을 뺐다."나리! 나리 손 어떠세요!요새 비 왔잖아요!"문지기 둘이 다 소하를 봤다.소하가 그 눈을 보고 두 걸음 물러섰다가, 물러선 자리에서 또 소리를 냈다."비 오면 굳는다면서요!"강목의 귀가 붉었다."…예. 예. 소인은 성합니다."문지기 하나가 웃음을 참다가 못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