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이른 새벽, 센터의 복도에 낯선 소음이 울렸다.휴대폰 진동이 동시에 세 개 울린다.나리, 수경, 제하. 각자의 자리에서 알림창을 올린 순간 모두 같은 문장을 보았다.“‘이별전문가 신나리’, 과거 의뢰 영상 논란.”잠시 정적. 공간이 멎은 듯했다.제하의 손끝이 천천히 굳어갔다.그가 클릭한 링크 안에는 그들이 찍었던 다큐 일부,그중에서도 ‘윤혜린 사건’이 있었다.영상은 짧았지만, 여인의 얼굴과 나리의 목소리가 분명히 담겨 있었다.“이별은 도망이 아니라,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이에요.”그 문장이 반복 재생되었다.나리의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수경은 숨을 멈췄다.“이거… 누가 올린 거예요?”제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그의 목에 묵직한 돌덩이가 걸린 듯했다.오전, ‘RE: 관계의 온도’ 앞엔 이미 기자들이 서 있었다.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였다.“신나리 씨 맞습니까?”“이 영상 진짜입니까?”“사망한 의뢰인의 기록을 다큐로 쓴 이유가 뭐죠?”나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수경이 그녀 앞을 가로막았다.“지금은 답변드릴 수 없습니다.”“언론 공개를 동의한 적 있나요?”“그건 오해입니다.”수경의 목소리는 단단했지만,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제하는 멀리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그의 손엔 카메라가 들려 있었지만, 이번엔 아무것도 찍지 못했다.‘이건 내가 만든 결과잖아.’그 사실이 가슴을 쳤다.한참 뒤, 기자들이 물러나고, 센터 안은 적막에 잠겼다.나리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그녀의 얼굴엔 피로가 깊게 내려앉아 있었다.“제하.”그녀가 낮게 불렀다.“영상 원본, 어디서 새 나갔는지 알아봤어?”“아직…”“시사회용 편집본 중 일부였지?”“응.”“그럼 우리 외엔 접근할 수 있는 사람 없잖아.”그 말에 제하의 눈이 흔들렸다.“나리, 나… 아니야.”“의심하는 게 아니야.”“근데 네 말, 그 ‘아니야’란 말이 너무 늦었어.”그녀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그 안에 담긴 건 분노가 아니라 절망이었다.“이건 단
이른 오전, 센터의 문이 열렸다.봄이 깊어가는 공기 속에 먼지조차 느리게 움직였다.나리는 커피포트를 올려두고 메일함을 열었다.새로운 상담 문의 메일 몇 통이 쌓여 있었다.그중 한 통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故 윤혜린 씨의 가족입니다.”그 이름을 보는 순간, 손끝이 미묘하게 떨렸다.‘혜린…’그녀는 낮게 이름을 되뇌었다.1년 전, 이별전문가로 일하던 시절 그녀가 맡았던 의뢰인이었다.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품위 있는 이별’을 연출해달라던 여인.그녀는 끝내 이별엔 성공했지만, 몇 달 뒤 세상을 떠났다.나리는 그 사실을 들었을 때, ‘직업적 거리’라는 말 뒤에 자신을 숨겼었다.하지만 그 이름을 다시 보는 순간, 그 모든 감정이 되살아났다.메일의 내용은 짧았다.“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선생님께 드리지 못한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전달드리고 싶습니다.”그녀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이제야… 돌아오는구나.”그 목소리는 작았지만, 확실히 떨리고 있었다.오전 11시, 수경은 하연과 함께 현장으로 향했다.이번 상담은 한 커플의 이별 조율이었다.남자는 이미 결정을 내렸지만, 여자는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였다.“오늘은 상황이 조금 복잡해요.”“네.”“무조건 ‘결론’을 내려고 하지 말고, 상대의 반응을 읽는 데 집중해요.”“알겠어요.”하연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입술이 바짝 말라 있었다.카페 구석 테이블, 여자는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그 사람은 이미 다른 사람이 생겼어요.”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단단했다.“근데… 이상하죠. 그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고 싶다가도,당장 무너뜨리고 싶은 마음이 같이 와요.”수경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자연스러운 감정이에요.”“자연스럽다고요? 지금 이 기분이?”“사람의 사랑엔 항상 모순이 있어요.놓고 싶지만, 붙잡고 싶은 게 동시에 오는 게 사랑이에요.”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그럼 전… 어떻게 해야 돼요?”“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억지로 결론
"그래. 사람.”그 말이 공기 속에 흩어졌다.세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겹쳤다.말보다 확실한 믿음이 그 안에 있었다.오후. 상담실 문이 열렸다.하연은 수경 옆자리에 앉아첫 상담을 관찰하고 있었다.의뢰인은 중년의 남성이었다. 짧은 머리에, 표정은 공허했다.“결혼 20년 차예요. 이젠 아내랑 대화가 없어요.”“대화가 없다는 건, 말이 없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듣지 않는다는 뜻인가요?”“둘 다요.”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엔 포기와 후회가 섞여 있었다.“제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어요.그냥 어느 날부터 서로의 말이 공기처럼 흘러가더라고요.”수경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럼 오늘은, 그 공기 속에 있는 말들을 꺼내볼까요.”“공기요?”“네. 사람은 말보다 ‘침묵’ 안에 진심이 숨어 있어요.”그 말에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 순간, 하연의 눈빛이 미묘하게 바뀌었다.그녀는 몰랐다.누군가의 마음이 이렇게 조용하게 풀리는 순간이 이토록 숨 막히게 아름답다는 걸.상담이 끝난 후, 하연은 조용히 물었다.“선배, 방금 그 말은 즉흥적으로 한 거예요?”“응.”“근데 진짜… 마음을 열게 만드는 말이었어요.”“그게 우리가 하는 일이야. 누군가의 마음을 ‘열게 만드는 순간’을 지켜보는 거.”하연은 고개를 숙였다.“저도 언젠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그건 말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배워야 할 거야.”그녀의 눈빛이 선배를 향했다.수경은 그 눈빛에서 예전의 자신을 보았다.저녁이 되자, 하연은 먼저 퇴근했다.센터 안엔 나리와 제하, 수경만 남았다.조명이 낮게 깔리고, 커피 향이 잔잔히 퍼졌다.제하가 조용히 말했다.“오늘, 새로 시작하는 기분 어땠어?”“묘했어요.” 수경이 대답했다.“처음엔 두려웠는데, 누군가를 가르치다 보니까… 내가 나 자신을 다시 배우는 기분이었어요.”“그게 교육의 본질이지.”“가르치는 게 아니라, 같이 배우는 거.”“그 말, 마음에 든다.”나리는 둘의 대화를 들으며 미소를
서울로 돌아온 첫날, 나리는 센터의 문을 열었다.오랫동안 비워져 있던 공간 안에 햇빛이 깊숙이 스며들고 있었다.먼지 냄새와 커피 향이 섞인 공기가 익숙했다.그녀는 천천히 손끝으로 책상 위를 쓸었다.“돌아왔네.”그 말은 스스로에게 한 인사였다.잠시 후, 문이 열리고 수경이 들어왔다.머리를 질끈 묶고, 한 손엔 종이컵 커피를 들고 있었다.“선배, 오늘 일찍 왔네요.”“이제 다시 시작해야지.”“선배가 없던 사이, 이곳이 조금 달라졌어요.”“좋은 방향으로?”“네. 사람들이 예전보다 많이 찾아와요.”“그래?”“그만큼… 이제 우리가 필요하다는 뜻이겠죠.”그녀의 목소리엔 자부심과 책임이 섞여 있었다.나리는 미소 지었다.“그래, 이젠 진짜 우리가 ‘팀’이네.”“선배는 여전히 중심이에요.”“아니야. 이젠 각자 중심이 있어야 해.”“그게 무슨 뜻이에요?”“모두가 중심에 서야, 누구도 무너지지 않거든.”그녀의 말에 수경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그 말이 낯설지 않게 들렸다.‘이젠 나도 중심이 되어야 하는구나.’며칠 후, 센터 한켠에 새로운 문패가 걸렸다.RE: 관계의 온도 2호점 - 홍대 지점간판이 완성되는 순간,수경은 숨을 들이쉬었다.“진짜네요.”“응. 이젠 누군가의 이야기가 이 공간에서 또 시작되겠지.”나리가 문을 열었다.아직 비어 있는 공간이었지만, 그 공백이 주는 가능성이 느껴졌다.벽엔 하얀 페인트 냄새가 남아 있었고,바닥에는 아직 플라스틱 덮개가 깔려 있었다.“여기선 내가 상담하지 않을 거야.”“왜요?”“이건 너희 세대의 공간이니까.”“저희 세대요?”“응. 너랑 제하가 중심이 돼야지.난 그냥… 그림자처럼 옆에서 지켜볼게.”수경은 한참 동안 그 말을 곱씹었다.그녀는 문득, 예전의 자신이 떠올랐다.늘 나리의 뒤를 쫓던 시절.그때의 자신은 그림자였는데,이제는 빛을 받은 사람으로 서 있었다.“선배.”“응?”“그림자도 결국 빛이 있어야 존재하잖아요.그럼 선배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늘 같이 있는
비는 멈췄지만, 공기는 여전히 젖어 있었다.나리는 이른 아침부터 센터 안의 창문을 열었다.차가운 바람이 들어와 커튼을 흔들었다.그 바람 속에 사람들의 말과 눈물이 스며 있는 듯했다.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오늘은 쉬어야겠다.’하지만 쉬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그녀의 손은 여전히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책상 위엔 지난 며칠간의 기록이 쌓여 있었다.거기엔 수경의 글씨가 보였다.조심스러운 획, 망설임이 묻은 문장들.“사람을 돕는 일은 때로는 손을 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리의 심장이 천천히 가라앉았다.그녀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밖을 내다봤다.햇빛이 흐릿하게 번지고 있었다.“수경이가 이제 나보다 더 단단해졌네.”그녀는 혼잣말하듯 말했다.잠시 후, 수경이 들어왔다.눈 밑에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지만,그 얼굴엔 이상한 안정감이 깃들어 있었다.“선배, 오늘은 좀 쉬어요.”“너도 피곤할 텐데.”“전 괜찮아요.”“괜찮다는 말, 이젠 잘 안 쓰기로 했던 거 아니야?”“맞아요. 그래서 그냥… 괜찮은 척할게요.”그 말에 나리가 웃었다.“이젠 네가 나보다 솔직하다.”“솔직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어요.”둘은 잠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공간엔 커피 향만 은은하게 퍼졌다.나리가 천천히 컵을 내려놓았다.“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센터는 네가 맡아.”“제가요?”“응. 난 잠깐 쉬어야 할 것 같아.”“왜요?”“요즘은 내가 말보다 침묵이 많아졌어.그건 아마, 내 마음이 소리를 닫고 있다는 뜻이겠지.”수경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제가 있을게요. 선배 자리는 제가 지킬게요.”“너라면 믿을 수 있어.”“근데… 선배 없으면 허전할 거예요.”“그 허전함이 필요할지도 몰라.”“빈자리요?”“그래. 빈자리는 늘 사람을 가르치거든.”그녀의 말은 담담했지만 묘하게 아팠다.수경은 고개를 숙였다.“그럼, 제가 잘 지켜볼게요.”제하는 그 시각, 창고에 앉아 있었다.조용한 방 안에 빛이
비가 온 지 이틀째. 창문에 맺힌 물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렸다.센터 안은 유난히 조용했다.전화도, 발자국도, 말소리도 없었다.수경은 책상 앞에서 상담 기록을 정리하다가 문득 손을 멈췄다.휴대폰 화면에 낯선 번호가 깜빡이고 있었다.‘박이서.’그 이름을 본 순간, 그녀의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여보세요?”“선생님… 저예요.”목소리는 낮았고, 어딘가 가라앉아 있었다.“이서 씨, 무슨 일 있으세요?”“그냥, 잠깐 얘기하고 싶어서요.”“지금 괜찮으세요?”“괜찮아요. 그냥… 어제 그 사람 집 앞에 갔어요.”그 말에 수경은 손끝이 떨렸다.“집 앞이요?”“그 여자랑 같이 사는 집이요.”“이서 씨, 그러면 안 돼요. 그런 행동은”“근데 문이 열려 있었어요.”“…”“그냥, 안으로 들어가 봤어요.”그 짧은 문장 안에 묘한 긴장이 섞여 있었다.“이서 씨, 지금 어딨어요?”“그 사람 집 앞이에요.”“혹시 그 사람이나… 다른 사람은”“없어요. 지금은 아무도 없어요.”수경의 손에 땀이 났다.“거기서 기다려요. 제가 바로 갈게요.”전화를 끊자마자, 그녀는 코트를 집어 들었다.책상 위에 놓인 물잔이 툭, 쓰러졌다.물방울이 흘러내리며 서류를 적셨다.그 순간 나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무슨 일 있어?”“선배, 그분이… 박이서 씨가 그 사람 집 앞에 있어요.”“뭐?”“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갔다고 해요.”“지금?”“네. 저 가야 될 것 같아요.”나리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목을 잡았다.“혼자 가지 마.”“선배…”“이건 네가 감정적으로 얽혀 있는 일이야.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해.”“근데…”“나랑 같이 가자.”차 안은 무겁게 고요했다.빗소리가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만 들렸다.수경은 운전대를 꽉 잡고 있었다.그녀의 손등이 희게 질릴 정도였다.나리는 옆자리에서 조용히 말했다.“이서 씨, 위험한 상태일 수도 있어.”“저… 어제 상담 때 괜찮다고 했어요. 근데 그 괜찮아요가…그때는 진짜인 줄 알
균열이 사라진 지 오래지 않았는데도 방 안은 여전히 얼어붙은 듯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내 가슴은 거센 파도에 휩쓸린 듯 불규칙하게 요동쳤고, 목울대는 갈증에 메말라 몇 번을 삼켜도 건조했다. 창문으로 스며든 새벽빛이 천천히 바닥을 물들이고 있었지만, 그 밝음마저 차갑게만 느껴졌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손바닥을 펼쳐보았다. 그 안에 남은 열쇠는 고요했지만, 여전히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치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제하는 내 옆에 앉아 있었고, 그의 어깨에 기대자 심장의 박동이 조금은 가라
방 안의 공기는 이미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듯 낯설게 떨리고 있었다. 벽은 더 이상 벽이 아니었고, 균열은 문이라는 형체를 갖추며 검고 은빛의 섞인 빛을 쏟아냈다. 그 빛 속에서 나는 여전히 한 손에 열쇠를 움켜쥔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가 부러질 듯 경직되어 있었고, 심장은 단순한 박동이 아니라 내 몸을 찢어버릴 듯한 굉음을 만들어냈다.나는 속으로 수십 번 외쳤다. 지금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이 빛이, 이 틈이 나를 집어삼켜버릴 거야. 하지만 그 결정을 내리는 게 너무 두려웠다.
저녁 무렵, 거실의 불빛이 흔들리듯 깜박였다. 마치 방 전체가 얇은 막으로 덮여 있고, 그 막을 누군가 바깥에서 계속 두드리는 것 같았다. 나는 소파에 앉아 있었지만, 발밑 바닥이 언제든 갈라질 것 같은 불안에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었다. 균열은 벽을 넘어 천장과 바닥까지 번져 있었고, 그 틈새 사이로 낮게 울리는 진동음이 흘러나왔다.손바닥 위 열쇠는 이제 빛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손을 오므리면 더 뜨거워졌고, 펴면 내 눈앞까지 기운이 번져왔다. 그것은 이미 내 손의 일부가 아니라, 내 운
새벽의 빛이 방 안에 스며들 때까지 나는 한숨도 잘 수 없었다. 균열은 지금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는 잠시 숨을 죽이고 있을 뿐이라는 걸 직감했다. 틈새 속에서 뻗어 나왔던 그림자의 손은 내 안에 깊은 공포를 심어 두었고, 동시에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는 압박을 안겨주었다.열쇠는 여전히 내 손바닥에 남아 있었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아닌, 심장의 일부처럼 뛰고 있었다. 마치 내 숨결에 맞춰 고동치며,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지배하는 것 같았다. 손을 펴고 싶어도 열쇠는 손바닥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주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