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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전무님의 첫경험

작가: 미미안
last update 게시일: 2026-11-04 14:41:27

여울이 고른 곳은 회사에서 두 블록 떨어진 좁은 골목 안쪽이었다.

간판 글자 몇 개가 반쯤 나간 오래된 곱창집.

신입사원 시절, 동기들과 지독한 업무 스트레스를 쏟아내던 곳이었다. 야근에 치이고 상사에게 깨진 날이면 여기서 소주 한잔을 털어 넣고 다시 출근했다.

여울에게는 꽤 오래된 피난처였다.

유리문을 열자 뜨거운 기름 냄새와 소주 냄새가 밀려왔다.

강건의 수트는 낡은 곱창집 안에서 지나치게 반듯했다.

마치 다른 세계에서 잘못 걸어 들어온 사람 같았다.

강건이 입구의 상호를 올려다봤다.

[변강쇠곱창]

“가게 이름이 참.”

여울은 괜히 어깨를 폈다.

“맛은 있습니다.”

그때 사장이 반갑게 다가왔다.

“어이, 하 대리! 오랜만이네. 오늘도 혼자…….”

목소리가 강건에게 닿는 순간 뚝 끊겼다.

“가 아니라, 오늘은 두 분이네.”

“네, 사장님.”

두 사람은 안쪽 자리에 앉았다.

강건은 별다른 기색 없이 재킷을 벗어 등받이에 걸고 셔츠 소매를 천천히 걷어 올렸다.

여울이 그 모습을 슬쩍 봤다.

“전무님, 이런 데 정말 괜찮으세요? 옷에 냄새 다 밸 텐데요.”

강건이 물컵을 들었다.

“냄새보다 하 대리 배에서 나는 소리가 더 시급해 보이던데.”

“전무님.”

여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거는 좀 잊어주시면 안 될까요?”

“검토해 보죠.”

때마침 사장이 메뉴판을 내려놓았다.

“하 대리는 늘 먹던 거?”

“네. 모둠 2인분이랑 소주 하나 주세요.”

강건은 메뉴판을 내려다봤다.

곱창, 대창, 막창, 염통, 특양.

설명 하나 없는 메뉴판을 한참 보는 모습에 여울이 눈치를 챘다.

“혹시 못 드시는 부위 있으세요?”

“없습니다.”

“곱창집은…… 처음이세요?”

강건이 메뉴판을 내려놓았다.

“비슷한 곳은 와봤습니다.”

애매한 대답이었다.

여울은 더 묻지 않았다.

잠시 뒤 둥근 불판 위로 곱창이 올라왔다.

치이익.

여울이 익숙하게 집게를 들었다. 곱창을 하나씩 뒤집고, 염통은 너무 익기 전에 가장자리로 빼냈다.

강건은 그 모습을 말없이 보고 있었다.

“이제 드셔도 돼요.”

여울이 노릇하게 익은 곱창 하나를 강건 앞접시에 올려놓았다.

강건의 시선이 접시로 내려갔다.

별로 내키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냥 드시면 느끼해요.”

여울이 소스를 가리켰다.

“이거 조금 찍고 부추랑 같이 드세요. 양파는 마지막에.”

“먹는 법도 있습니까?”

“그럼요! 이 소스 진짜 맛있어요. 얼른 드셔보세요.”

강건은 잠깐 여울을 보다가 마지못해 젓가락을 들었다.

소스를 찍고, 부추를 올렸다.

한입.

처음에는 표정 변화가 없었다.

여울은 은근히 그의 반응을 살폈다.

기름진 맛이 먼저 퍼졌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부담스럽지 않았다. 겉은 바삭했고 안쪽은 고소했다. 뒤이어 먹은 양파절임이 느끼함도 금방 잡아냈다.

강건이 천천히 씹어 삼켰다.

“어때요?”

“……생각보다 괜찮군요.”

여울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그렇죠?”

이번에는 대창 하나가 그의 접시에 올라왔다.

“이건 더 느끼하니까 부추 많이 드세요.”

강건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여울이 알려준 대로 먹었다.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익숙했다.

세 번째부터는 여울이 챙겨주지 않아도 알아서 소스를 찍고 부추를 곁들였다.

여울이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었다.

“금방 배우시네요.”

“이 정도는 어렵지 않습니다.”

낯선 음식도, 낡은 가게도 처음 들어왔을 때만큼 거슬리지 않았다.

맞은편의 여울은 어느새 제법 잘 먹고 있었다.

점심을 거른 탓인지 젓가락이 쉬질 않았다. 창백했던 얼굴에도 조금씩 혈색이 돌았다.

강건은 불판에서 잘 익은 곱창 몇 점을 집어 여울 쪽으로 밀었다.

“드세요.”

여울이 접시를 내려다봤다.

“전무님도 드셔야죠.”

“먹고 있습니다.”

그 말대로 강건의 접시도 더 이상 비어 있지 않았다.

여울은 더 묻지 않고 곱창 하나를 입에 넣었다.

처음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풍경이 어느 순간부터 조금 덜 어색해져 있었다.

강건도 비슷했다.

기름 냄새가 밴 좁은 가게도, 시끄러운 옆 테이블도, 평소라면 굳이 찾지 않았을 음식도 이상하게 불편하지 않았다.

맞은편에서 여울이 소주잔을 비우며 작게 숨을 내쉬었다.

강건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자신의 잔에는 물을 따랐다.

여울이 물었다.

“술 안 드세요?”

“잘 안 마십니다.”

“왜요?”

“좋아할 이유가 없어서.”

짧은 대답이었다.

여울은 더 묻지 않았다.

잠시 잔을 만지작거리다가 다른 질문을 꺼냈다.

“전무님.”

“네.”

“하나 물어봐도 돼요?”

“이미 묻고 있는데.”

여울이 피식 웃었다가 곧 진지해졌다.

“왜 감사실이 아니라 저예요?”

강건의 시선이 멈췄다.

“이 정도면 정식으로 조사해도 되는 일이잖아요.”

“정식으로 움직이는 순간 상대도 압니다.”

여울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누가 보고 있는지부터 확인하려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강건이 물컵을 내려놓았다.

“아직 어느 쪽인지 모르는 사람을 고른 겁니다.”

여울은 그 말을 가만히 받아들였다.

믿어서가 아니다.

아직 누구의 사람도 아니어서.

어쩌면 그게 지금은 더 안전한 이유일지도 몰랐다.

여울은 말없이 소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강건도 더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불판 위에서 가장 잘 익은 곱창 하나를 집어 여울의 앞접시에 올려놓았다.

“이건 지금 먹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여울이 눈을 깜빡였다.

조금 전 자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은 셈이었다.

“맞아요.”

여울은 곱창을 집어 먹었다.

강건은 다시 집게를 들었다.

어느새 그는 여울이 알려준 순서대로 불판을 보고 있었다.

둘 사이에 긴 대화는 없었다.

그런데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침묵이 훨씬 편해져 있었다.

*

계산대 앞에 서자 여울이 먼저 지갑을 꺼냈다.

“제가 낼게요. 제가 데려왔으니까.”

강건이 먼저 카드를 내밀었다.

“오늘 점심도 못 먹게 한 사람이 접니다.”

“그건 제가 안 먹은 건데요.”

“결과는 같죠.”

결제는 이미 끝나 있었다.

여울은 영수증을 받아드는 강건을 보다 그냥 지갑을 넣었다.

밖으로 나오자 골목 공기가 서늘했다.

낡은 곱창집 앞에 세워진 검은 세단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여울은 문득 조금 전까지 같은 불판 앞에 마주 앉아 있던 남자를 봤다.

회사 안에서는 잠깐 잊고 있었다.

이 남자는 자신과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었다.

강건이 차 문을 열었다.

“타요.”

“저 지하철 타면 되는데요.”

“술 마셨잖습니까.”

“두 잔이에요.”

“두 잔도 술입니다.”

여울은 잠시 망설이다 결국 차에 올라탔다.

“주소 말해요.”

“정말 데려다주시게요?”

“오늘부터 같은 쪽을 보기로 했으니까.”

여울이 작게 웃으며 안전벨트를 당겼다.

그 순간이었다.

골목 건너편에 세워진 차 안에서 카메라 렌즈 하나가 움직였다.

찰칵.

강건을 향해 있던 렌즈 안으로 여울이 함께 들어왔다.

찰칵.

곱창집 앞에 나란히 선 두 사람.

강건이 차 문을 잡아주는 모습.

여울이 그를 올려다보며 웃는 얼굴.

차가 골목을 빠져나갈 때까지 렌즈는 천천히 그 뒤를 따라갔다.

잠시 뒤,

몇 장의 사진이 어딘가로 전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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