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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살기 위해서라는 말

last update Veröffentlichungsdatum: 17.07.2026 14:13:11

“살려고.”

그 한마디가 공터 위에 내려앉았다.

바람이 지나가며 먼지를 살짝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려놓았고,

그 사이에서 세 사람의 시선은 서로를 놓지 않았다.

건우는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 말을 곧바로 부정하거나 되묻지 않았다.

대신 아주 잠깐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들었다.

“살려고.”

그가 낮게 되뇌었다.

짧은 침묵.

그는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그래서.”

말은 이어졌지만, 속도는 느렸다.

“죽였습니까.”

김도현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흔들림은 방금 전까지와는 결이 달랐다.

자신이 선택한 이유를 말하는 순간에는 유지되던 균형이,

그 결과를 직접적으로 꺼내는 질문 앞에서 조금 더 크게 흔들렸다.

김도현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선을 옆으로 한 번 흘렸다.

도망칠 곳이 없는 방향으로. 다시 건우를 바라봤다.

“그렇게 단순하게 말하면.”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이전보다 조금 더 거칠어져 있었다.

“편하겠지.”

건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김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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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수의 밤   181. 가장 가까운 사람의 입에서

    짧은 침묵이 흘렀다.그리고 그 정적 한가운데서, 서하는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마치 그 말이 언젠가는 나올 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실제로 들으니 생각보다 더 아프다는 듯한 호흡이었다.그녀는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그래서.”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모르는 게 나아.”건우는 대답하지 못했다.그 문장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조용했고, 그래서 더 무겁게 떨어졌다. 설득하려는 사람의 말투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막아야만 하는 이유를 너무 오래 혼자 알고 있었던 사람의 목소리. 그 안에는 설명보다 피로가 먼저 들어 있었다.건우는 미간을 아주 조금 좁혔다.“왜.”서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기억하면.”그녀가 낮게 말했다.“버티기 힘들거야.”그건 사실상 처음으로 나온 직접적인 말이었다.하지만 그 문장조차 끝까지 열려 있지는 않았다. 무엇을 기억하면, 무엇을 버티기 힘들어지는지, 왜 그 기억이 하나를 무너뜨릴 만큼 위험한지. 서하는 여전히 결정적인 층은 끝까지 열지 않았다. 그런데도 건우는 이상하게 그 말을 쉽게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그녀의 말투 때문이었다.그건 단순한 추측이나 보호 본능의 과장이 아니었다.마치 이미 한 번, 혹은 여러 번,그 무너짐을 아주 가까이서 본 사람의 말처럼 들렸다.건우는 천천히 물었다.“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서하는 이번에는 아주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조명 아래 드러난 눈빛은 차갑다기보다 피곤했고, 피곤하다기보다 오래 참아온 사람 같았다. 건우는 그 얼굴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지금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이 사람은 진실을 쥐고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진실의 대가를 너무 잘 아는 사람에 가까운지도 모른다고. 서하는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하나는 생각보다 약하지 않아.”그 말은 건우의 예상과는 다른 방향이었다.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서하는 아주 천천히, 한 단어씩 고르듯 말을 이었다.“버틸 수 있는 것도 많고,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는 편이야.

  • 형수의 밤   180. 모르는 편이 나은 밤

    서하가 방으로 들어간 뒤에도, 건우는 한동안 손을 펴지 못했다.방금 전까지 그 안에 남아 있던 차가운 체온이 아직도 손바닥 안쪽에 얇게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손목을 붙잡았을 때마다 늘 비슷한 감각이 남았지만, 오늘은 조금 더 오래 갔다. 차갑다는 표현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종류의 온도였다. 열이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오래 식지 못한 무언가가 천천히 굳어버린 듯한 감촉. 건우는 소파에 앉은 채 손을 한 번 쥐었다 폈다가, 결국 아무 의미 없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뒤로 기댔다.스탠드 조명 아래 드리운 그림자가 천장 가까이 길게 번져 있었다.시간은 이미 새벽 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었고, 집 안은 다시 아주 조용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 밤의 정적은 끝났다는 느낌보다, 아직 어딘가가 덜 닫혔다는 쪽에 가까웠다. 방금 끝난 대화 역시 그랬다. 말은 분명 오갔는데, 정작 중요한 건 여전히 열리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아니, 어쩌면 열리지 않은 게 아니라 열어서는 안 되는 방식으로 닫혀 있는 건지도 몰랐다.건우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머릿속에 남아 있는 건 대화의 내용보다 서하의 말투였다.“넌 항상 나중에 알아.”“늦게 와.”“네가 와야 했던 곳.”짧은 문장들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뒤에 붙지 않은 시간까지 함께 들려오는 것 같았다. 누군가를 처음 상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비슷한 장면을 여러 번 겪어본 사람처럼 말하는 방식. 그 익숙함이 자꾸만 건우의 신경을 긁었다.그는 한참 동안 그대로 앉아 있다가, 결국 다시 몸을 일으켰다.물이라도 마셔야 할 것 같았다. 아니면 그냥 움직여야 했다. 가만히 있으면 생각이 너무 선명해져서, 오히려 더 피곤해질 것 같았다.그가 식탁 쪽으로 걸어가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였다.복도 안쪽에서 아주 미세한 소리가 다시 들렸다.건우는 그대로 멈췄다.그 소리는 문이 완전히 열리는 소리도, 발소리도 아니었다. 누군가가 방 안에서 잠깐 움직였다가 멈춘 정도

  • 형수의 밤   179. 넌 항상 늦게 온다

    가볍게 던진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건우는 그 안에 들어 있는 결을 곧바로 알아챘다. 이건 안부를 묻는 사람의 어조가 아니었다. 이미 대충은 보고 있었고, 그럼에도 직접 한 번 더 확인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건우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봤잖아.”서하는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기울였다.“다 본 건 아니야.”그 말에 건우는 피식 웃었다. 웃음은 짧았지만, 그 안에는 피로와 짜증이 조금씩 섞여 있었다.“어디까지 봤는데.”서하는 잠깐 생각하는 척하더니, 마치 정말 별일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점심 먹다가 젓가락 놓친 거.”건우는 웃음기를 거두었다.그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일이었다. 회사 근처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다가, 순간 손에 힘이 풀려 젓가락이 식판 위로 툭 떨어졌던 일. 별것도 아니고, 그래서 오히려 더 누구한테 꺼낼 이유조차 없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지금 서하는 그걸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었다.건우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너, 어디까지 보고 있는 거야.”서하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짧게 웃었다. 비웃는 것도, 기분 좋게 웃는 것도 아닌, 이미 대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굳이 설명해주진 않겠다는 식의 반응.그 표정이 건우를 더 예민하게 만들었다.그는 더 캐묻지 않았다. 묻는다고 해서 답을 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었다. 오히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건우는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하나는 점점 이상해지고 있어.”이번에는 서하도 웃지 않았다.“오늘도 그랬고.”짧은 침묵이 흘렀다.건우는 그 침묵이 괜히 더 거슬렸다. 다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는 사람 앞에 서면, 사람은 이상하게 목소리부터 조금 더 날카로워진다.“너 다 보고 있으면서, 왜 아무것도 안 하는데.”그 말이 생각보다 조금 더 거칠게 튀어나왔다.서하는 그제야 시선을 건우에게 제대로 맞췄다. 어둠 속에서도 그 눈빛만큼은 이상할 만큼 또렷했다. 차갑다고

  • 형수의 밤   178. 늦게 오는 사람

    밤은 어제보다 더 빨리 내려앉았다.해가 완전히 기운 뒤부터 집 안 공기는 조금씩 조용해졌고, 저녁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는 동안에도 말의 수는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하나는 평소처럼 행동하려고 애썼다. 밥을 덜어 건우 앞에 놓아주고, 별 의미 없는 일상적인 질문을 던지고, 건우가 대답하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척도 했다. 겉으로만 보면 특별히 이상한 저녁은 아니었다. 다만 그 모든 장면 위에 아주 얇은 막 같은 것이 씌워져 있는 느낌이 있었다.말과 말 사이가 미묘하게 길었고, 눈을 마주치는 시간이 평소보다 짧았으며, 무언가를 하다가도 문득 멍해지는 순간이 몇 번씩 있었다. 하나는 스스로도 그걸 의식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더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고, 그 애씀은 오히려 건우 눈에 더 또렷하게 들어왔다.건우는 모른 척했다.정확히는 모른 척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지금 이 집 안에는 건드리면 바로 금이 갈 것 같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하나의 불안, 서하의 침묵, 그리고 그 둘 사이에 끼어 있는 자기 자신의 시선까지. 어설프게 말 한마디를 잘못 꺼냈다가는 겨우 유지되고 있는 이 기묘한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질 것 같았다.결국 저녁은 그렇게 조용히 끝났고, 하나는 평소보다 조금 이르게 방으로 들어갔다.“좀 피곤해서.”문을 닫기 직전 그녀가 남긴 말은 짧았고, 건우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도 붙잡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거실은 더 넓고 더 비어 보였다. 그는 한동안 닫힌 방문을 바라보다가 결국 스탠드 조명 하나만 켜둔 채 소파로 돌아왔다.거실은 어제와 거의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조명은 희미했고, 식탁과 소파 사이로 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으며, 커튼 틈 너머의 밤은 창문을 검게 덮고 있었다. 건우는 일부러 천장 등을 켜지 않았다. 집 안이 밝아지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더 또렷한 형태를 갖게 될 것 같아서였고, 어쩌면 자기도 모르게 이 어둠 정도는 있어야 지금의 밤을 버틸 수

  • 형수의 밤   177. 커피 냄새와 이상한 잔흔

    그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잠깐이라도 자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저 너무 많은 생각을 잠시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눈을 감는다고 머릿속까지 멈추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것들이 더 많았다. 서하가 “예전에도 그랬잖아”라고 말할 때의 목소리, 하나가 아침에 메모를 쥔 채 자기가 이상하다고 말했던 얼굴, 그리고 둘 다 같은 입술과 같은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기를 바라보던 순간들까지.건우는 그 생각 속에서 아주 늦게 잠이 들었다.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꽤 올라와 있었다.처음에는 자기가 어디서 잠들었는지조차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소파 등받이에 목이 어색하게 꺾여 있었고, 몸 여기저기가 뻐근했다. 그는 손으로 눈가를 문지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거실은 완전히 아침 얼굴을 하고 있었다. 커튼 사이로 들어온 빛은 밤의 그림자를 거의 밀어냈고, 어젯밤 켜둔 스탠드 조명은 여전히 불이 들어온 채였다.그리고 식탁 쪽에 하나가 서 있었다.하나는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컵에 따르고 있었다. 머리는 느슨하게 묶여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빛은 어젯밤보다 훨씬 흐렸다. 밤이 다 빠져나간 얼굴. 건우는 그걸 보는 순간, 이상하게도 안도보다 더 큰 피로를 느꼈다.하나는 컵을 들고 뒤돌았다가, 소파에서 막 일어나는 건우를 보고 눈을 깜빡였다.“여기서 잤어?”그 말투는 완전히 하나였다.건우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잠깐 졸았나 봐.”하나는 컵을 내려놓고 그를 잠시 바라봤다. 그 시선에는 걱정도 있었고, 어딘가를 더듬는 듯한 낯선 공백도 있었다.“왜 그렇게 자.”“너는.”건우는 무심한 척 되물었다.“괜찮아?”하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녀는 시선을 아주 잠깐 식탁 쪽으로 돌렸다가 다시 건우를 봤다.“잘 모르겠어.”목소리가 낮았다.건우는 가슴 안이 묘하게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어젯밤 서하가 들어간 뒤, 오늘 아침의 하나가 어떤 얼굴로 나올지 그는 이미 여러

  • 형수의 밤   176. 기억하지 못하는 대화

    밤이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서하는 먼저 몸을 일으켰다.그 움직임은 조용했고, 거의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건우는 그 미세한 기척 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둘 사이에 오간 말은 길지 않았고, 끝내 분명한 답으로 닫힌 것도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몇 마디가 남긴 흔적은 길게 이어진 밤보다 더 진했다. 스탠드 조명 아래서 나눴던 시선, 손등 위로 아주 잠깐 겹쳐졌던 체온, 그리고 끝내 문장으로 다 열리지 않은 어떤 오래된 익숙함까지. 건우는 그 모든 것이 아직도 거실 안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처럼 느꼈다.서하는 소파에서 일어나 복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옷 자락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고, 발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건우는 그녀가 문 앞에 멈춰 서는 순간, 그 짧은 정지 안에 담긴 망설임까지 알아차렸다. 돌아볼지, 그대로 들어갈지, 혹은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더 남길지 재는 사람의 침묵이었다.건우는 소파 끝에 앉은 채 낮게 물었다.“그냥 들어가게.”서하는 문고리를 잡은 손을 멈춘 채, 반쯤 돌아보았다. 어둠이 더 짙은 복도 쪽에 서 있는 탓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건우는 그쪽을 향한 시선만으로도 그녀가 웃는지 아닌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서하는 늘 그랬다. 표정을 완전히 읽을 수 없게 만들면서도, 이상하게 상대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또렷하게 남기는 사람.“안 자?”그녀가 물었다.건우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이 상황에 어떻게 자.”서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아주 낮게 말했다.“예전에도 그랬잖아.”그 짧은 한마디가 건우의 가슴 안쪽을 가볍게 긁고 지나갔다.예전에도. 그 말은 둘 사이에 이미 지나간 수많은 밤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불러냈다. 혼자 감당하겠다고 버티는 건우와, 그걸 비웃는 척하면서도 끝내 옆에 남아 있던 서하. 사건 자료를 같이 보다가 해가 뜬 적도 있었고, 아무 대화도 없이 같은 공간에서 새벽을 버틴 적도 있었다. 싸우듯 말을 주고받다가도 어느 순간 둘 다 피

  • 형수의 밤   4. 문장 사이의 공백

    회의실 창밖으로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잔잔했지만, 오래 갈 비였다.유림은 앉지 않았다. 테이블 끝에 서서, 파일을 내려다보는 건우를 바라보고 있었다.“대표님이 어제 저녁, 제게 전화를 하셨습니다.”그녀의 말투는 단정했다.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건우는 파일을 덮지 않았다.통화 기록의 숫자들이 시야에 남아 있었다.저녁 7시 12분.“오늘로 끝내자고 하셨다고요.”그가 되물었다.“네.”“무엇을.”유림은 잠시 침묵했다.답을 고르는 사람의 침묵이 아니라,상대를 재는 사람의 침묵이었다.“업무 관계를요.”

  • 형수의 밤   3. 마지막 통화

    아침은 비가 그친 뒤에야 찾아왔다.창문을 두드리던 소리가 사라지자,집 안은 이상할 만큼 고요해졌다.어젯밤의 대화가 정말 있었던 일인지,건우는 한동안 확신하지 못했다.부엌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났다.그는 잠시 멈춰 서서 그 소리를 들었다.익숙한 소리였다.누군가 이 집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낯설었다.하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서 있었다.머리는 단정하게 묶여 있었고, 어제 젖었던 코트는 의자에 걸려 있었다.“일어났어?”목소리가 차분했다.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어젯밤의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 형수의 밤   2. 문 안쪽의 사람

    시신을 실은 차량이 골목을 빠져나갈 때까지,건우는 비를 맞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경광등 불빛이 젖은 도로 위에 번졌다가 사라졌다.형은 그렇게 떠났다.설명도, 변명도 없이.경찰은 현장을 통제했고, 필요한 절차를 간단히 설명했다.참고인 조사 일정이 잡힐 거라고 했다.말은 또렷했지만, 건우의 귀에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남은 건 한 문장뿐이었다.저녁 8시 전후.그 시간에 그는 집에 있었다.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하나는 경찰의 안내를 받아 현관을 나왔다.비는 여전히 세게 내리고 있었고,그녀의 코

  • 형수의 밤   1. 형이 죽었다.

    그날, 건우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아픈 건 아니었다. 몸은 멀쩡했다.다만, 일어나는 순간 모든 게 진짜가 될 것 같아서.부모님이 돌아가셨다.그 문장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정말로 세상이 굳어버릴 것만 같았다.자신은 살아 있고, 더이상 그의 부모는 없다.-그게 말이 되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1년.건우는 병실 침대 위에서 1년을 보냈다.눈을 떴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나 있었다. 장례도, 화장도.향 냄새를 맡을 겨를도 없었고, 마지막 인사를 할 기회도 없었다. 울지도 못했다.그건 애초에 건우의 몫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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