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Author: 애니

제1화

Author: 애니
사람들은 말한다.

모든 남자의 마음속에는 끝내 이루지 못한 첫사랑 하나쯤은 숨어있다고.

민도하는 예외일거라고 강서이는 늘 생각해 왔다.

어릴 적부터 이어진 시간, 둘 사이의 감정은 가볍지 않았고, 무엇보다 자신과 민도하는 함께 성장해 온 관계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거대한 첫사랑의 무대였다.

그리고 민도하 역시 그 평범한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쪽에 가까웠다.

강서이는 열여덟에 민도하 곁에 섰다.

그로부터 정확히 7년.

2,000일이 넘는 낮과 밤을 함께 보냈고, 서로가 허락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친밀함까지 나누었다.

그런데도, 강서이는 끝내 민도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한 번의 찬란한 시선을 넘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우습기까지 했다.

7년을 함께한 여자가 결국 한 남자의 마음을 끝내 읽지 못했다는 사실이.

도대체 얼마나 사랑했기에, 민도하는 그 사람을 마음 깊숙이 숨겨 둔 채 이렇게 오래 버텨 온 걸까?

강서이의 시선이 흐려진 걸 알아챈 민도하가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강서이, 집중해.”

침대 위의 민도하는 늘 거침없었고, 그 와중에 실수로 협탁 위에 올려져 있던 검은 벨벳 케이스를 건드렸다.

케이스가 떨어지려는 걸 민도하가 급히 받아냈다. 강서이를 다치게 할 뻔했다.

민도하는 처음 보는 물건인 듯 잠시 멈칫하다가 물었다.

“이거 뭐야?”

강서이는 아무 감정도 실리지 않은 얼굴로 케이스를 빼앗듯 가져가 옆으로 던졌다.

그리고 민도하의 목을 끌어안고, 목울대에 입술을 가져갔다.

“이럴 때도 한눈파는 거야?”

“나한테 질린 거 아니고?”

민도하는 더 이상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강서이의 체온과 숨결에 방금 전의 궁금증은 완전히 잊혔다.

민도하가 강서이를 향해 몰두하는 사이, 강서이는 고개를 살짝 돌려 방 한켠에 방치된 검은 벨벳 케이스를 바라봤다.

눈가가 미묘하게 젖어 들었다.

‘민도하, 당신은 영원히 모를 거야.’

‘이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도.’

...

한 달 전, 프라임로드투자가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민도하의 지인들은 작은 축하 자리를 마련했고, 그 자리에 강서이는 가장 단정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날, 강서이는 민도하에게 프러포즈할 계획이었다.

보통 프러포즈는 남자가 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강서이는 민도하를 사랑했고, 그 사랑 앞에서는 자존심도, 체면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무도 몰랐다.

오늘 하루를 위해 강서이가 7년을 기다렸다는 사실을.

민도하가 일에 매달릴수록, 강서이는 그의 곁에서 자기 삶의 방향까지 수정했다.

원래 좋아하던 전공을 포기하고, 흥미도 없던 금융을 선택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해외 명문대로부터 받은 제안을 거절하고, 프라임로드투자로 들어갔다.

말단 직원으로 시작해, 차근차근 올라 지금은 수석비서 자리에 있었다.

그 과정이 얼마나 버거웠는지, 강서이 말고는 아무도 몰랐다.

사랑이 가장 뜨거웠던 시절, 강서이는 여러 번 마음속으로 물었다.

‘나랑 결혼할 생각 있어?’

하지만 끝내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았다.

어머니가 늘 하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랑과 선물은 손 내밀어 받는 게 아니라 상대가 자발적으로 줄 때 받는 것이라고.

요구하는 순간, 그건 호의가 아니라 시혜가 된다고.

게다가 민도하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민도하 곁에는 언제나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강서이만 있었다.

다른 여자는 단 한 번도 끼어든 적이 없었다.

그래서 강서이는 굳게 믿었다.

결혼은 두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결말일 거라고.

그 결말을 위해 강서이는 프라임로드투자에서 누구보다 앞장서서 일했다.

일이 크든 작든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고, 가야 하는 술자리는 셀 수 없었으며, 병원에 실려 간 횟수도 기억나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과 유산이 동시에 일어났던 그날, 강서이는 수술대 위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할 뻔했다.

그때 절친 한지수가 물었다.

“너... 민도하 회사를 위해 죽을 고비 넘긴 사람이야. 후회 안 돼? 한 남자 때문에 이렇게까지 망가지는 게 맞아?”

강서이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난 괜찮아.”

한지수는 그런 강서이를 두고 웃으며 말했다.

“넌 진짜 사랑 앞에서는 전사다. 제발... 꼭 지지 말고 이겨라.”

그때의 강서이는 확신에 차 있었다.

“민도하는 나를 지게 안 해!”

그 믿음 하나로, 강서이는 프라임로드투자 상장까지 버텼다.

아무도 몰랐다.

민도하가 G시에서 상장 종을 울리던 날, 강서이는 혼자 방에 틀어박혀 한참동안 울었다.

눈물을 닦고, 강서이는 결심했다.

민도하에게 직접 프러포즈하겠다고.

민도하는 너무 바빴다.

상장 이후 쏟아지는 프로젝트와 축하 인사 속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렸다.

그래서 강서이는 선택했다.

기다리는 대신, 다가가기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날이 다가오자 심장이 좀처럼 가라앉질 않았다.

강서이는 밖에 서서 몇 번이나 호흡을 고르며 손을 비볐다. 멈추지 않고 떨리는 손끝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목이 메어, 외워서 준비한 청혼의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안쪽에서는 이미 술자리가 무르익어 있었다.

웃음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도하 형, 형 아직도 노아리랑 연락해?”

“노아리? 도하 형 첫사랑 아니야? 갑자기 왜 노아리 얘기가 나와?”

“들었는데, 노아리 이번에 귀국한대.”

“그럼 도하 형, 첫사랑이랑 다시 이어질 수도 있는 거 아냐?”

강서이의 손이 공중에서 굳어 버렸다.

조금 전까지 긴장으로 떨리던 손끝이... 그 순간 얼어붙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리 아버지 요즘 정치 쪽으로 꽤 잘 나가잖아. 도하가 아리랑 결혼하면, 도하한테도 프라임로드투자에도 도움 엄청 될 거야. 집안 위상도 걸맞고, 외모도 잘 어울리고.”

“게다가 첫사랑이잖아. 사랑도 잡고, 일도 잡고. 완벽하지.”

그 말을 한 사람은 민도하의 오래된 친구, 서태우였다.

서태우는 늘 자신을 민도하와 친형제처럼 자란 사이라고 말하곤 했고, 그래서인지 그 말에는 이상할 만큼의 확신이 담겨 있었다.

‘민도하에게... 첫사랑이?’

강서이의 심장이 예고 없이 조여 들었다.

“그럼 강서이는?”

누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강서이도 도하 형 옆에서 그렇게 오래 있었잖아. 공이 없다고는 못 하지.”

서태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돈 좀 주고 정리하면 되지.”

“정 그렇게 아까우면, 결혼하고도 옆에 두면 되고.”

서태우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식이었다. 집 안에는 아내를 두고, 밖에서는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게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밖에서 듣고 있던 강서이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끝의 감각이 사라질 만큼 세게 쥐고도 아픈 줄도 몰랐다.

지금 강서이는 민도하의 대답이 필요했다.

민도하가 바로 부정하길 바랐다.

사람들 앞에서 분명히 말해 주길 원했다.

사랑하는 사람은 강서이라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도 강서이라고.

하지만 기다림 끝에 들려온 건, 민도하의 담담한 한마디였다.

“너희 언제부터 그렇게 남 얘기에 관심 많았냐.”

부정도, 명확한 거절도 아니었다.

오히려 인정처럼 들렸다.

“알았다, 알았어. 이런 날에 자극적인 얘기나 하자. 나 술 취해서 졸 뻔했네.”

서태우가 소파에서 일어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서태우는 소문난 바람둥이였다. 여자를 바꾸는 속도가 옷 갈아입는 것보다 빠르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고, 늘 새로운 놀이를 제안하곤 했다.

“그럼 진실 게임 가자. 각자 인생에서 제일 짜릿했던 일 하나씩 말하기.”

누군가 툭 던졌다.

“차 안에서.”

서태우가 코웃음을 쳤다.

“그게 뭐가 대단해?”

상대가 말을 덧붙였다.

“고속열차.”

방 안이 한꺼번에 들썩였다.

“야, 너 제법인데?”

서태우는 흥분한 얼굴로, 옆에서 무표정하게 앉아 있던 민도하를 돌아봤다.

“도하, 너는? 너는 뭐 해봤는데 그렇게 조용해?”

민도하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사랑 때문에... 내연남이었던 적 있어.”

그 말이 떨어지자 방 안의 공기가 단숨에 달아올랐다.

민도하였다.

B시에서도 손꼽히는 집안의 후계자, 원하는 게 있으면 손에 넣지 못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그런 선택을 했다는 건, 그만큼 깊은 감정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서태우의 반응이 가장 컸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도 고막이 울릴 만큼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리잖아! 맞지? 역시 아직도 아리 사랑하는 거였어! 그때 도하가 아리 좋아했고, 아리는 한승 좋아했으니까, 너 사랑 때문에 그런 선택한 거잖아! 야, 너 진짜 순정파다!”

쏟아지는 웃음과 함성은 차가운 물처럼 강서이에게 쏟아졌다.

몸속 깊은 곳까지 시려 왔다.

속이 뒤집히는 느낌에 강서이는 벽을 짚고 천천히 주저앉았다.

안에서는 여전히 서태우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봐. 지난 10월 10일에 노아리 만난 거 맞지?”

민도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걸 어떻게 알아?”

“아리가 SNS에 올렸잖아. 재회가 세상에서 제일 낭만적이라고. 딱 봐도 너랑 만난 거더라.”

“그래서 그날 밤에 뭐 좀 있었어? 혹시 그날 다시 불붙은 거 아니야?”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Comments (2)
goodnovel comment avatar
문명림
첫사랑 그렇게 못 잊으면 결혼해야되는거 아니니...무슨 결정장애자들도 아니고..참 고생이 많다 비슷비슷하게 소설쓰느라...복사수준들이 내용들...ㅉㅉㅉ
goodnovel comment avatar
3skl
이것 wepic에서 선택받지 못한 사람하고 내용이 비슷하네요
VIEW ALL COMMENTS

Latest chapter

  •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제404화

    이예수는 질문을 던진 뒤에도 오래도록 답을 듣지 못했다.민도하는 저녁이 되어서야 병원에 왔다.이예수는 두 사람만 남겨 주려고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하지만 노아리는 이예수의 손을 놓지 않고 계속 붙잡았다.결국 이예수는 민도하에게 돌아가 쉬라고 한 뒤 자신이 병원에 남아 노아리를 돌보기로 했다.수액을 다 맞고 난 강서이는 답답한 기분이 들어서 병실 밖으로 나왔다.김설이 원래 병원에 남아 강서이를 돌보려 했지만 강서이가 억지로 돌려보냈다.몸 상태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고, 누군가의 간호가 꼭 필요한 정도도 아니었다.게다가 강서이가 G시에서 다쳐서 며칠 더 머물렀던 탓에 김설의 남자친구도 슬슬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다.김설이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강서이는 두 사람이 전화로 다투며 헤어지자는 말까지 주고받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어둠이 내려앉은 병원은 고요했다. 오랜만에 바람도 불어서 병실 안보다 바깥이 훨씬 시원했다.강서이는 적당한 의자를 찾아 앉은 뒤 휴대전화로 밀린 업무를 처리했다.프로젝트팀에도 다시 보완 작업을 지시했다. 점검단이 더는 어떤 문제도 찾아내지 못하게 철저히 준비하라고 했다.일을 막 끝냈을 때 하장현에게 메시지가 왔다. 쓰러져 입원한 게 맞냐는 내용이었다.강서이는 그렇게 심한 건 아니라고 답했다.그러자 하장현은 어느 병원에 있는지 계속 물으며 꼭 오겠다고 했다.강서이가 말하기 싫어하는 걸 눈치챘는지, 김설에게 전화하면 어차피 알아낼 수 있다고까지 했다.강서이는 어쩔 수 없이 병원 주소를 보내 줬다.하장현은 조금 있다 하정민과 함께 가겠다고 했다. 하정민도 강서이를 무척 걱정해서 직접 봐야 안심할 것 같다고 했다.강서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돌아갔다.그런데 병실 입구에서 안쪽에서 나오던 민도하와 마주쳤다.바쁘게 걷던 민도하는 강서이를 발견하자 걸음을 멈췄다.강서이는 시선을 오래 두지 않았다. 차갑게 시선을 돌린 뒤 그대로 안으로 향했다.두 사람이 서로 스쳐 지나가기 직전, 민도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목소리

  •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제403화

    “강 대표님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계십니다.”배준석은 빈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진심으로 강서이가 잘해 내고 있다고 생각했다.이어 부드럽게 달랬다. “너무 불안해하지 마세요. 작은 문제라면 보완할 기회를 줄 겁니다.”“감사합니다.”“잠깐이라도 쉬세요. 정말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배준석은 돌아가기 전까지도 강서이에게 꼭 쉬어야 한다고 당부했다.배준석이 떠나자 김설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대표님, 배 과장님이 혹시 대표님 좋아하는 거 아닐까요? 제 느낌엔 맞는 것 같은데요. 대표님 볼 때 눈이 반짝반짝하잖아요.”강서이는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울트라맨도 아니고 눈에서 무슨 빛이 나.”“이제 확실히 알겠어요. 대표님은 진짜 연애 감각이 하나도 없어요.”...오후가 되자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었다. B시의 여름 볕은 유난히 따갑기로 유명했다.뙤약볕 아래 서 있던 강서이는 몸에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몸도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은 데다 중등도 뇌진탕까지 있었다. 그런 몸으로 강도 높은 업무를 버티는 건 무리였다.심한 어지럼증이 밀려오더니 발밑이 텅 빈 듯하면서 몸이 휘청했다.의식도 잠깐 끊어졌다.정신을 차렸을 때 강서이는 노장훈의 품에 기댄 채 누워 있었다.노장훈은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다.“강 대표, 괜찮아?”주변에도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장관님이 빨리 받아 주셔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맞아요. 여기서 그대로 넘어졌으면 정말 위험했을 겁니다.”“사람이 무사하면 됐어.” 노장훈은 강서이를 부축해서 일으킨 뒤 비서에게 지시했다. “차 바로 준비해. 강 대표 병원으로 모셔.”검사가 끝난 뒤에도 강서이의 어지럼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강서이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서 노장훈에게 감사 인사를 하려고 했다.노장훈이 바로 막았다. “몸이 안 좋으면 일어나지 마. 회복하는 게 먼저야.”잠깐 생각한 뒤 말을 이었다. “안전점검 쪽도 너무 신경 쓰지 마. 큰 문제는 없어.”“감사합

  •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제402화

    강서이는 그쪽을 한 번 더 바라봤다.민도하와 노아리 일행이 서둘러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노아리는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까지 착용해서 얼굴을 빈틈없이 가린 채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민도하의 한쪽 팔에는 팔걸이 보조기가 걸려 있었다. 생각보다 부상이 심해 보였다.그런 상태에서도 다치지 않은 손으로는 노아리를 감싸듯 보호하고 있었다.시선을 느낀 건지 민도하가 강서이 쪽을 바라봤다.두 사람의 눈이 아주 잠깐 마주쳤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서로를 보는 눈은 이상할 만큼 무심했다.강서이는 아무런 동요 없이 눈을 돌리고 일행과 함께 다른 출구로 빠져나갔다.다음 날 아침 일찍, 강서이는 항만 재개발 프로젝트 현장으로 향했다. 안전점검단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뜻밖에도 배준석까지 현장에 나와 있었다.강서이가 먼저 인사할 틈도 없이 배준석이 먼저 다가와서 물었다.“어디 다쳤어요? 많이 심한 건 아니죠? 안색도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요.”잠시 강서이를 살피더니 덧붙였다. “살도 많이 빠졌어요.”고작 보름 남짓 못 봤을 뿐인데, 배준석은 세심하게 강서이의 변화를 알아차렸다.“G시에서 조금 다쳤어요.” 강서이가 설명했다.배준석의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많이 다친 건가요? 의사는 뭐라고 하던가요?”“괜찮아요. 거의 회복됐어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배준석은 그제야 안도했다. “괜찮다니 다행입니다.”두 사람이 몇 마디 나누기도 전에 안전점검단이 도착했다.급히 맞으러 나갔던 강서이는 선두에 선 책임자를 보고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노장훈이었다.하지만 곧 표정을 정돈하고 노장훈을 비롯한 점검단과 차례로 악수했다.노장훈은 업무 책임자답게 무난한 태도를 보였다. 강서이의 뺨에 남은 상처를 보고는 한마디 물었다. “강 대표, 다친 거야?”“거의 다 나았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관님.”강서이는 예의상 답했다.업무 중인 만큼 노장훈도 그 이상 캐묻지 않았다.안전점검은 순조로운 듯하면서도 묘하게 까다롭게 흘러갔다.

  •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제401화

    “튼튼한 버섯.”강서이가 다시 물었다. “그럼 나는?”아이는 눈을 깜빡이다가 말했다. “예쁜 버섯.”“그런데 넌 왜 튼튼한 버섯이야?” 강서이가 물었다.아이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래야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못하니까.”강서이의 가슴 한구석이 욱신거렸다. 시고 떫은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면서 마음이 아렸다.강서이는 손을 뻗어 아이의 옷자락을 살며시 건드렸다.아이가 거부할까 봐 조심스러웠다.아이는 움찔하긴 했지만 손길을 피하지는 않았다.강서이는 더 다가가지 않고 물었다. “그럼 내가 너보다 더 튼튼한 버섯이 되어도 될까? 내가 널 지켜 줄 수 있게.”아이는 한참 강서이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언니는 더 튼튼하고 예쁜 버섯 해.”윤성미가 찾아왔을 때, 아이는 강서이의 침대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윤성미는 꽤 놀란 눈치로 강서이에게 어떻게 한 거냐고 물었다.자신은 처음 아이의 신뢰를 얻는 데 거의 일 년이나 걸렸다고 하면서.강서이의 설명을 들은 윤성미는 감탄했다. “역시 강 대표는 방법이 있으시네요.”뒤이어 표정을 엄하게 하고 타일렀다. “의사 선생님이 푹 쉬라고 하셨잖아요. 말 좀 잘 들으세요.”강서이는 금세 얌전해졌다.김설이 그 모습을 보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역시 윤성미 여사님만 저희 대표님을 말릴 수 있네요.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안 들으셨거든요.” “그런데 여사님 한마디에 대표님이 바로 얌전해지잖아요. 앞으로 자주 와 주세요.”강서이는 할 말을 잃었다. 윤성미와 아이가 돌아간 뒤, 김설은 기다렸다는 듯 강서이에게 소문 하나를 풀어놓았다.“대표님! 진짜 대박 소식이에요!”강서이는 별 관심이 없었다. “무슨 대박 소식이 있다고?”“진짜라니까요! 이번 건 완전 대박이에요!” 김설이 신이 나서 말을 쏟아 냈다. “민 대표님이랑 노아리 본부장이 약혼식 올리러 섬에 갔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됐는지 알아요?”강서이가 힐끗 쳐다봤다.시선이 싸늘했다.김설은 헛기침을 하고 얼른 결론부터

  •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제400화

    하지만 김설은 다른 부상자는 없다고 말했다.강서이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히 그때 진한 피 냄새를 맡았고, 누군가 통증을 참는 듯한 낮은 신음소리도 들었다.그 소리를 떠올리면서 강서이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익숙했어.’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믿기가 어려웠다.자신이 착각한 게 아닐까 싶었다.그날은 너무 혼란스러웠다. 실제로 듣지 않은 소리를 들었다고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강서이는 머릿속에 떠오른 이상한 생각을 애써 지우려고 했다.그때 서태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필요한 자료를 전부 준비했는데 빠진 게 있는지 확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강서이는 목록을 훑어보고 빠진 게 없는 걸 확인한 뒤 ‘OK’라고 답했다.원래라면 그대로 대화창을 닫았어야 했다. 그런데 잠깐 망설이며 한 가지를 물어보고 싶었다.메시지창에 ‘민도하’라는 이름까지 썼다가 강서이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곧바로 글자를 지우고 대화창에서 나왔다.24시간 전, 서태우는 SNS에 새 게시물을 올렸다.멀리서 민도하와 노아리의 약혼을 축하하는 글이었다.사진 속 노아리는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민도하가 노아리를 바라보는 눈에도 애정이 깊게 담겨 있었다.강서이는 메신저를 닫았다. 마음에 남아 있던 작은 의문도 그제야 완전히 사라졌다.‘역시 내가 너무 앞서갔어.’‘나를 구한 사람이 민도하라고 생각하다니.’혼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 했다....오후에는 윤성미가 다시 강서이를 보러 왔다. 사실 윤성미 쪽이 더 안 좋아 보일 만큼 얼굴은 지쳐 있었다.이번에는 7, 8살쯤 된 여자아이 하나도 곁에 있었다.크고 동그란 눈을 가진 아이의 시선에는 겁이 많고 조심스러운 기색이 배어 있었다.윤성미를 따라다니는 동안 내내 옷자락을 손에 꼭 쥐고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았다.강서이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자 재빨리 윤성미 뒤로 몸을 숨겼다.윤성미는 자신이 후원하고 있는 아동복지시설의 아이라고 설명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다고 했다.자선 갈라가 있던 날 윤성미가

  •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제399화

    “무슨 소리야? 내가 G시에서 밤일 하나는 제일 세기로 유명한 사람이야. 너희는 그냥 기다려.”주변에서 비웃는 웃음소리가 터졌고, 남자는 다시 강서이를 끌고 방 안으로 향했다.두 걸음도 가지 않았을 때 뒤에서 누군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바로 그때, 누군가 강서이의 몸을 옆으로 강하게 당겼다.몸의 중심이 뒤집히면서 휘청거리는 사이에 총성이 울렸다.강서이는 누군가 고통을 참는 듯 낮게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다. 곧 진한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나를 구하러 온 사람이 총에 맞았어.’ 강서이는 바로 알아챘다.“미친 새끼, 아주 죽여 줄게!” 화가 난 광식이 방망이를 휘두르며 달려왔다.강서이는 다시 몸이 크게 흔들리는 걸 느꼈다. 누군가 자신을 품에 감싸고 바닥을 구르며 피했고, 둔탁한 타격음이 여러 번 이어졌다. 방망이가 강서이를 감싼 남자의 팔을 때리는 소리 같았다.그러다 뒤통수가 어딘가에 세게 부딪혔다. 강서이의 의식이 다시 끊겼다....강서이는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 속에서 눈을 떴다. 옆에서는 계속 우는 소리가 들렸다.“왜 아직도 안 일어나요? 이대로 못 깨어나는 거 아니죠? 대표님이 안 일어나면 우리 어떡해요. 흑...”“혹시 식물인간이 돼도 제가 평생 돌볼게요. 진짜로요...”머리가 더 아파오면서, 강서이는 힘을 모아 김설이 잡고 있는 손을 조금 움직였다. 자신이 깼다는 걸 알려 주려고 했다.하지만 김설은 우느라 정신이 팔려서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양정원이 먼저 강서이가 눈을 뜬 걸 발견했다. “김 비서, 얼른 의사 불러요. 강 대표가 깼어요.”김설의 울음이 바로 딱 멈췄다. 급히 눈물을 닦고 강서이가 정말 깨어 있는 걸 확인하자, 얼른 호출 버튼을 눌렀다.병실이 한동안 분주해졌고, 의사가 들어와 강서이의 상태를 확인했다.윤성미도 보호자의 부축을 받으면서 병실로 들어왔다. 목소리는 힘이 없었지만 걱정이 가득했다. “선생님, 상태가 어떤가요?”“중등도 뇌진탕입니다. 당분간은 누워서 충분히 안정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