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MELDEN거대한 샹들리에가 내뿜는 차가운 빛이 대리석 바닥에 반사되어 눈을 찔렀다. 유람선의 소란스러운 파티장보다, 청운재의 이 정적 흐르는 다이닝 룸이 해인에게는 훨씬 더 숨 막히고 가혹했다.식탁의 상좌에는 권 회장이, 그 옆에는 한 점 흐트러짐 없는 모습의 세 번째 부인, 한 여사가 앉아 있었다. 세 사람은 그 맞은편에 죄인처럼 나란히 섰다.“앉거라. 시장할 게다.”권 회장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떨어지고서야 해인은 조심스럽게 의자 끝에 걸터앉았다. 서우는 피딱지가 앉은 얼굴로 삐딱하게 다리를 꼬았고, 도윤은 그 모든 상황을 통제하려는 듯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다.“파혼 소식은 들었다. 도윤이 네가 워낙 단호하게 밀어붙였다니, 내가 더 보탤 말은 없구나.”한 여사가 우아하게 찻잔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시선이 도윤을 지나, 커다란 남자 셔츠를 걸친 채 잔뜩 움츠러든 해인에게 닿았다.날카로워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한 여사의 속내는 축배라도 들고 싶은 심정이었다.지난번, 서우가 흠씬 두들겨 맞은 얼굴로 비웃듯 흘렸던 말이 사실이었다.피도 눈물도 없는 완벽한 후계자 권도윤의 유일한 역린.그게 바로 저 보잘것없는 계집애, 윤해인이었다.눈치 빠른 한 여사가 이번 Y물산과의 파혼이 누구 때문인지 모를 리 없었다.사실 권 회장에게 ‘기왕 이렇게 된 거, 해인이도 밖으로 돌리지 말고 본가로 들이자’고 은근슬쩍 부추긴 것도 한 여사였다. 가문의 체면을 챙기며 아이를 위하는 척했지만, 진짜 속셈은 달랐다.도윤이 저 여자애한테 완전히 미쳐서 이성을 잃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면?그 틈을 파고들어, 아직 권씨 성조차 얻지 못하고 ‘강서우’라는 이름표를 달고 구르는 핏줄을 기어이 ‘권서우’로, 아니 이 청운재의 진짜 주인으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 여사에게 있어 해인은 도윤의 목을 조를 가장 완벽하고 사랑스러운 밧줄이었다.“그래도 밖에서 무슨 험한 꼴을 당할 뻔했길래, 서우 몰골은 저렇고 해인이 넌 옷차림이 그 모양이니. 이제 본가에 들어왔으니
덜컥.해인은 쫓기듯 602호의 문을 닫고 복도로 나왔다.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댄 채 무너져 내리듯 숨을 몰아쉬었다.귓가에 맴돌던 서우의 자백을 다시 되씹었다.‘그래, 아무것도 아닌거야.’서우의 말대로 어젯밤의 생생한 감각들은 그저 약물이 만들어낸 지독한 환각일 뿐이라고, 그렇게 믿기로 했다.제 몸을 감싸고 있는 도윤의 셔츠를 꽉 틀어쥔 채, 해인은 도망치듯 제 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객실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그 차림으로 어딜 다녀와.”복도 끝에서 들려온 낮고 서늘한 목소리에 해인의 어깨가 흠칫 튀어 올랐다.도윤이 헐렁한 셔츠 차림으로 복도를 서성이는 해인을 서늘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평소라면 잘못을 들킨 아이처럼 변명부터 늘어놓았을 해인이었지만, 지금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온몸이 박살 난 채 애정을 구걸하던 서우의 처참한 얼굴이었다.“서우, 오빠가 그렇게 때렸어?”해인이 입술을 깨물며 되물었다.“……왜?”도윤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아졌다.왜 그렇게 팼냐고?어젯밤 지하 창고의 상황을 떠올렸다.서우의 상처는 자신과 무관했지만, 차마 그 진실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진실을 말하는 순간, 해인은 자신이 지하 창고에서 어떤 취급을 당할 뻔했는지, 어떤 추잡한 카메라 앞에 세워졌었는지 전부 알아야만 하니까.해인의 세상에 얼룩을 만드느니, 차라리 자신이 무자비한 사람으로 남는 쪽을 택하는 게 나았다.“…….”도윤의 묵직한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해인의 눈에 원망이 서렸다.“서우가 나쁜 짓을 하려고 한 건 맞지만, 결론은 아무 일도 없었잖아. 그런데 그렇게까지 심하게 때릴 이유가 있었어?”해인의 가시 돋친 목소리가 도윤의 심장에 박혔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헛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네가 기억조차 못 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널 그 지옥에서 끄집어내기 위해 어떤 짓까지 했는지 안다면, 감히 그런 말이 나올까.“서우도 오빠 동생이잖아. 왜 걔한테는 그렇게 곁을 안 줘? 왜 걔한테는 그렇게 엄
유람선 최상층의 프라이빗 다이닝 룸.최상급 얼그레이의 은은한 향이 감도는 고요한 공간이었지만,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이 회장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그의 덜덜 떨리는 손에 들린 태블릿 피씨 화면에는, 새벽 6시를 기점으로 포털 사이트를 도배한 기사들이 쉴 새 없이 갱신되고 있었다.[단독] Y물산 외동딸 이채영, 은밀한 사생활 논란… 다수의 남성과 부적절한 만남?[속보] 재벌가 약혼 앞둔 이채영, 파티 전후로 만난 남자들 실체 충격.평소 파티를 즐기며 가볍게 어울리던 남자들과의 실제 사진에, 언론의 자극적인 추측과 소문을 교묘하게 덧칠한 결과물이었다. 채영이 스스로 뿌리고 다녔던 불씨였기에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팩트였고, 권도윤은 그저 그것들이 가장 치명적인 불길로 번지도록 완벽한 타이밍을 맞춰 판을 깐 것뿐이었다.딸의 난잡한 스캔들에 뒷목을 잡고 있는 이 회장은, 자신의 딸이 간밤에 무슨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꿈에도 모르는 눈치였다. 그저 눈앞에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 권도윤이 이 사태에 불쾌해할까 봐 두려워할 뿐, 그가 진짜로 분노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도, 도윤아. 이건 명백한 오해다! 채영이가 파티를 좋아하긴 해도 이렇게 막장으로 놀 애는 절대 아니라는 거, 네가 더 잘 알잖니! 이건 누군가 악의적으로…….”“회장님.”도윤이 찻잔을 받침에 소리 없이 내려놓으며 부드럽게 말을 끊었다.“그럼, 제 동생 강서우와 호텔 방에서 뒹굴었던 것도 그저 악의적으로 부풀려진 소문입니까?”“……뭐, 뭣이?”이 회장의 눈이 터질 듯 커졌다. 찻잔을 쥐고 있던 그의 앙상한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도윤은 흠집 하나 없이 매끄러운 얼굴로, 너무나도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제가 언제 진실을 묻기라도 했습니까. 하지만 정 파혼의 책임을 묻는 게 억울하시다면…….”도윤이 테이블 위로 두툼한 서류 봉투 하나를 밀어주며 나직하게 속삭였다.“제 동생이라도 내어드릴까요? 원하신다면 Y물산 사위로 강서우를 기꺼이 포장
“……!”[602호. 안 와도 상관 없어. 사람들은 늘 이런식으로 날 대하니까.]뚝.전화가 끊겼다. 해인은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신음조차 내뱉지 못했다. 귓가에는 서우의 낮고 절박한, 그래서 더 잔인하게 들리던 목소리가 쟁쟁하게 맴돌았다.[먹고 버리기에 제격인 거지?]그 말이 낙인이 되어 해인의 전신을 지져댔다. 자신의 기억 속에 문득문득 떠오르는 서우의 일그러진 얼굴. 모든 정황이 하나의 결론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해인은 미친 듯이 방을 뛰쳐나갔다. 복도에는 이른 아침의 정적만이 감돌았다.타닥, 타닥.도윤의 커다란 와이셔츠 자락이 복도의 찬 공기에 펄럭였다.마침내 도착한 602호 앞.해인은 숨을 들이마시며 문고리를 잡았다.달칵.문이 열리자마자 훅 끼쳐오는 것은 텁텁한 담배 냄새와 비릿한 피 냄새였다.방 안은 어두웠다. 커튼이 쳐진 침대 머리맡에, 서우가 상체를 드러낸 채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었다. 엉망이 된 안면과 어깨의 붉은 멍 자국들. 해인은 그 참혹한 상처들을 마주하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왔어?”서우가 텅 빈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도윤의 커다란 셔츠만 걸친 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해인을 보자, 서우의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눈동자에 희미한 자조가 번졌다.“와…… 그 꼴을 하고 여기까지 달려온 거야? 나 확인하려고?”“강서우…… 너, 왜 이래. 누가 널 이렇게 만든 거야.”해인의 목소리가 젖은 종이처럼 찢어지며 갈라졌다. 서우는 피딱지가 앉은 입술을 비틀어 느릿하게 웃었다.“누구긴. 네 그 잘난 오빠지.”“……뭐?”“내가 그랬거든.”서우가 탁자 위의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툭, 진실을 던졌다.“네 잔에 약 탔거든, 내가. 이채영이랑 짰어. 형한테서 널 뺏어보려고.”해인의 숨이 턱, 막혔다. 머릿속을 강타하는 끔찍한 진실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분노와 배신감이 치밀어 올라야 마땅한데, 시야에 박히는 서우의 몰골이 너무나 처참해 화조차 나지 않았다.“왜…… 대체 왜.”“뺏고 싶
눈을 떴을 때, 유람선의 미세한 진동이 머릿속을 울렁거리게 만들었다.해인은 몽롱한 정신으로 제 몸을 살폈다.다리 사이가 묵직하고 나른한 게, 지독하게 질척한 꿈이라도 꾼 것처럼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소름끼치는 웃음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그 얼굴이 도윤의 일그러진 표정으로 바뀌어 눈앞을 덮쳤던 기억이 파편처럼 스쳐 지나갔다.하지만 그 얼굴은 다시금 강서우의 얼굴로 바뀌기 시작했다.‘……서우였나? 아니면 오빠였나.’공포와 쾌락이 뒤섞여 정체를 알 수 없는 뜨거운 열기가 여전히 하반신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해인은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걷어내고 거울 앞에 섰다. 하지만 기대 혹은 걱정과 달리, 몸 어디에도 타인의 손길이 닿은 흔적은 없었다.그때, 침실 문이 열리고 도윤이 들어왔다.“깼어?”도윤은 지나칠 정도로 갖춰 입은 수트 차림이었다. 어젯밤의 소동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는 듯, 그는 평소처럼 무심하고도 다정한 얼굴로 해인을 바라봤다.“내 옷…… 왜 이래? 왜 오빠 셔츠를 입고 있어?”해인이 제 몸에 걸쳐진 헐렁한 셔츠를 움켜쥐며 물었다. 기억나지 않는 공백이 무서워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도윤은 침대맡에 숙취 해소 음료를 내려놓으며 담담하게 대답했다.“너 어제 술 취해서 토했어. 옷이 엉망이라 어쩔 수 없었어.”“……토했다고? 내가?”“기억 안 나? 사람 진 빼놓더니 잘도 자더라.”도윤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건조했다. 그 담백한 태도는 해인을 안심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되려 비참하게 만들었다.어젯밤 제 몸을 헤집던 그 뜨겁고 단단한 감촉이 정말 술기운이 만들어낸 추잡한 망상에 불과했던 걸까.그저 술에 취해 구토나 하는 동생을 수습하느라 고생했을 도윤을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도윤의 눈을 피하려 했다.“미안해. 많이 힘들었겠네…….”“됐어. 씻고 나와. 아침 먹어야지.”도윤이 몸을 돌려 나가려던 찰나였다. 그의 빳빳하게 세워진 와이셔츠 깃 너머로, 가려지지 못한 붉은 울혈
“……읍!”그의 뜨거운 입술이 해인의 벌어진 입술을 탐욕스럽게 집어삼켰다. 얽혀드는 혀뿌리, 타액이 질척하게 섞이는 끈적한 소리가 방안의 정적을 찢었다. 조금 전 지하 창고에서 억눌렀던 시커먼 광기가 그녀의 달아오른 살결에 닿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폭발했다.“하아, 으응, 오빠…… 아앗!”도윤의 굵은 손가락이 거치적거리는 드레스 자락을 한 번에 찢어발기듯 밀어 올렸다. 젖어 든 속옷 위로 노골적인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당장이라도 버클을 풀고 제 안의 짐승을 밀어 넣고 싶은 충동이 이성을 난도질했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아랫도리가 찢어질 듯 아파왔다.하지만 도윤의 손이 벨트에 닿으려던 찰나, 그의 움직임이 돌덩이처럼 굳었다.‘여기서 끝까지 가면. 넌 영원히 날 벌레 보듯 보겠지.’그 빌어먹을 착한 오빠라는 자리.윤해인의 곁에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그 유일한 목줄을 제 손으로 끊어낼 수는 없었다.도윤은 핏발 선 눈으로 제 입술을 짓씹으며, 허리를 뒤로 물러 짐승 같은 충동을 억지로 짓눌렀다.대신, 그의 서늘하고 긴 손가락이 그녀의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하아. 오늘 밤만, 너한테 지는 거야.”도윤의 쇳소리 섞인 음성이 그녀의 귓가에 뜨겁게 얽혀들었다. 그는 자신을 갈구하며 목을 끌어안는 해인의 허리를 으스러질 듯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그러니까 더 가까이 붙어와도 좋아. 맹세컨대…… 다신 이런 짓, 안 할 테니까.”그것은 오만한 지배자의 굴복이자, 내일이면 다시 가면을 써야 하는 사내의 절박한 유언과도 같았다.“아아! 흣, 오, 빠아……!”차갑고 단단한 손마디가 안을 파고들자, 해인이 자지러지듯 허리를 활처럼 꺾었다. 손가락을 흠뻑 적시는 질척한 액체와,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그녀의 격렬한 고동. 해인은 쾌락과 약 기운에 정신을 못 차리고 도윤의 어깨를 물어뜯을 듯 매달렸다.“하아, 윤해인…….”도윤은 비릿한 쾌감에 젖어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녀의 안을 헤집는 제 손끝의 감각에 온 신경이 쏠려, 정작 자신은 숨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