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85화. 즐거운 주말“팀장님…….”‘쪽.’갑자기 거리를 좁혀온 동혁의 입술이 하늘의 달아오른 입술 위로 짧고 가볍게 내려앉았다가 떨어졌다.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서늘한 향수 냄새와 함께 뜨거운 온기가 부딪쳤다.“팀장님 금지라고 했을 텐데요.”동혁이 하늘의 코끝을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며 부드럽게 웃었다.사내에서 그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오직 제 연인 앞에서만 무장해제 되는 어여쁜 웃음이었다.남자가 이토록 예쁘게 웃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그의 호선 그린 입매가 저녁 조명 아래서 눈부시게 빛났다.“바, 밥 먹다 말고 진짜 뭐 하시는 거예요! 빨리 밥이나 먹어요.”하늘은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숨기려 허둥지둥 숟가락을 쥐고 국물을 크게 떠 넣었다.뜨거운 국물 때문인지, 방금 전의 입맞춤 때문인지 두 뺨이 새빨간 장미처럼 화사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귀 끝까지 붉어진 채 밥그릇에 고개를 처박은 하늘을 보며, 동혁은 흐뭇한 눈길로 다시 수저를 들었다.“토요일에 같이 장 보러 가요.”동혁이 물컵을 내려놓으며 나직하게 못을 박았다.단순히 흘러가는 말이 아닌, 주말의 일정을 확실하게 고정해 두겠다는 다정한 통보였다.세상 밖으로 나가 적응하겠다던 하늘의 조금 전 결심을, 그는 결코 가볍게 넘기지 않고 곧장 현실의 계획으로 실행에 옮겨준 것이다.“네!”하늘이 기다렸다는 듯 활기차게 대답했다.붉게 물들었던 두 뺨에는 여전히 부끄러운 기색이 남아 있었지만, 대답하는 목소리만큼은 주방의 정적을 단숨에 깨뜨릴 정도로 싱그럽고 청량했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일부러 숟가락으로 밥알을 꾹꾹 누르며 배시시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아냈다.오빠라는 거대한 울타리에서 벗어나 홀로 서는 첫걸음이 구동혁이라는 남자와 함께라는 사실이, 두려움보다는 기분 좋은 설렘으로 가슴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동혁은 밥그릇에 고개를 처박다시피 한 하늘의 정수리를 보며 가볍게 콧노래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저렇게까지 정직하게 반응해 주니, 앞으로 다가올 주말이 벌써 길게 느
84화. 세상에서 가장 멋없는 프러포즈어둠이 밀려든 거실에는 낮게 맞물리는 숨소리와 옷가지가 스치는 서글픈 마찰음만이 간헐적으로 이어졌다.동혁의 입술은 하늘의 도발을 집어삼키듯 집요했고, 허리를 단단히 감싸안은 손길에는 빈틈이 없었다.밀어낼 생각도 없으면서 동혁의 단단한 어깨를 유영하듯 쥐고 있던 하늘의 손가락 끝이 점차 잘게 떨려왔다.얼마나 숨을 나눴을까.입술이 떨어지는 짧은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노골적으로 얽혔다.하늘은 붉게 달아오른 숨을 몰아쉬며, 제 목덜미를 받치고 있는 동혁의 손등 위로 뺨을 살며시 기댔다.“……반응이 너무 정직하신 거 아니에요?”하늘이 자극적인 장난기를 거두고 조금은 물기 어린 음성으로 속삭였다.동혁은 엄지손가락으로 하늘의 젖은 입술 가장자리를 천천히 쓸어내렸다.그의 시선은 하늘의 얼굴을 지나 거실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인 종이 쇼핑백으로 향했다.유바다가 밤새 피를 말려가며 개어놓았을 동생의 흔적들.동혁은 그것이 하늘에게 줄 안도감과 슬픔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정직하지 않으면 잡아두질 못하니까.”동혁이 하늘의 이마 위로 가볍게 입을 맞추며 밀착했던 몸을 한 걸음 물리 시켰다.남자의 품이 떨어져 나가자 차가운 거실 공기가 그새를 메웠다.동혁은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던지며 주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저녁은 먹었습니까.”“아직요. 팀장님 기다리느라.”“구동혁입니다.”동혁이 냉장고 문을 열며 낮게 정정했다.“집에서까지 그 딱딱한 직함으로 불리고 싶진 않군요. 입을 맞추고 싶을 때 부르는 치트키라면서, 방금은 도발치고 너무 진지했습니다.”하늘은 소파에 멍하니 앉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냉철하기로 소문난 남자가 제 호칭 하나에 이토록 예민하게 구는 모양새가 제법 비현실적이면서도 기분이 좋았다.하늘은 소파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은 채, 냉장고에서 식재료를 꺼내 조리대 위에 늘어놓는 동혁의 등판을 가만히 응시했다.완벽하게 재단된 와이셔츠 위로 드
83화. 발칙하게자신이 채워주지 못했던 어른의 울타리, 그리고 하늘이가 가질 수 없었던 완벽한 안전지대를 구동혁이라는 남자는 고스란히 쥐고 있었다.동혁은 바다의 감사 인사에 소리 내어 답하지 않았다.그저 옅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고개를 아주 작게 끄덕였을 뿐이었다.그 침묵의 무게가 오히려 어설픈 대답보다 훨씬 더 신뢰가 갔다.“면목 없다는 말은 이제 그만하죠.”동혁이 다시 숟가락을 들며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하늘 씨를 지키는 건 이제 내 몫도 섞여 있으니까, 바다 씨는 본인 몸이나 먼저 챙기세요. 회사에서 기획안 엉망으로 들고 오면 사적인 감정 배제하고 칼같이 반려할 생각이니까.”일부러 공적인 궤도로 대화를 돌리는 동혁의 배려에 바다는 참았던 자그마한 실소를 흘렸다.굳어 있던 어깨의 긴장이 그제야 스르륵 풀려나갔다.바다는 비로소 가벼워진 손짓으로 밥 한 숟가락을 크게 떠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모래 맛 같던 음식이 이제야 겨우 삼켜지기 시작했다.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식당을 나와 빌딩 숲 사이의 짧은 산책로를 걸었다.정오의 볕은 제법 뜨거웠지만, 틈새로 불어오는 바람은 아직 오월 특유의 서늘함을 품고 있었다.테이크아웃 잔에 담긴 아이스 아메리카노 겉면에 맺힌 물방울이 바다의 손가락을 타고 차갑게 흘러내렸다.동혁은 슈트 재킷 단추를 하나 채우며, 걸음을 늦추지 않은 채 덤덤하게 물었다.“쇼핑백은 뭡니까? 식사 내내 발치에 두고 신경 쓰던데.”바다는 제 왼손에 들린 커다란 종이 쇼핑백을 슬쩍 내려다보았다.아침에 자취방을 나오며 하늘이의 방에서 고르고 골라 담은 옷가지들이었다.“아, 이거…… 하늘이 짐입니다. 당장 몸만 빠져나간 애라 갈아입을 옷도 마땅치 않을 것 같아서요.”바다가 멋쩍게 긁적이며 쇼핑백을 동혁 쪽으로 슬며시 내밀었다.직접 전해주기엔 아직 제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숨 막혀 할 동생의 눈빛이 두려웠고, 그렇다고 모른 척 연을 끊고 살기엔 눈에 밟혀 미칠 것 같았다.결국 선택한 것은 상사를 통한 대리 전달이었다.
82화. 구동혁이라는 울타리정오를 알리는 알람과 함께 빌딩 숲에서 쏟아져 나온 직장인들로 식당가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찌개 끓는 냄새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가득한 한식집 안쪽, 유독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테이블이 있었다.동혁과 바다는 마주 앉은 채 정갈하게 차려진 탕 반상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평소라면 업무 이야기로 매끄럽게 흘러갔을 점심시간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가 사뭇 달랐다.사내에서는 완벽한 상사와 부하 직원이었으나, 사적으로는 한 여자를 사이에 둔 복잡한 관계의 파편들이 수면 위로 찰랑거렸다.바다는 숟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뚝배기에서 피어오르는 열기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하늘이는 좀 어떻습니까? 팀장님께 면목이 없습니다.”사적인 질문이었기에 목소리는 한없이 낮아졌다.동혁은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바다를 정면으로 응시했다.초췌해진 부하 직원의 얼굴에는 숨기지 못한 죄책감과 피로가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제 연인을 지옥 같은 고통으로 밀어 넣은 장본인이었지만, 동시에 그 연인이 목숨보다 아끼는 유일한 혈육이기도 했다.“많이 진정됐습니다.”동혁의 음성은 담백하고 차분했다.섣부른 위로나 과장된 안심은 없었다.“마음은 아직 정리가 다 된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제 앞에서는 애써 웃어 보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그렇겠죠…….”바다가 쓰라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제 앞에서 울부짖던 하늘이의 마지막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저를 보며 숨도 쉬지 못하던 아이가, 다른 남자의 곁에서는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 한구석이 아릿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독하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밥도 제때 잘 챙겨 먹고, 잠도 잘 자고 잘 지내고 있으니까.”동혁은 물컵을 쥐며 덧붙였다.“하늘이의 마음이 풀릴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죠……?”바다가 물기를 머금은 눈으로 동혁을 올려다보았다.수십 년 동안 꽁꽁 싸매어 둔 진실의 벽은 너무
81화. 숙취‘쩍.’메마른 입술이 갈라지며 짧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바다는 암막 커튼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날카로운 아침 햇살에 본능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눈꺼풀이 납을 매단 것처럼 무거웠다.겨우 눈을 뜨자마자 머리통을 도끼로 내리찍는 듯한 가혹한 두통이 관자놀이를 타고 생생하게 번져나갔다.어젯밤 포장마차에서 들이부었던 싸구려 소주의 대가였다.“……으윽.”바다는 깨질 것 같은 머리를 감싸안으며 침대 위로 몸을 뒤틀었다.하지만 움직임과 동시에 위장이 뒤집히는 듯한 지독한 울렁거림이 목구멍까지 치받쳐 올라왔다.신물이 올라오는 불쾌한 감각에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당장이라도 화장실로 뛰어 가 속을 게워 내고 싶었지만, 사지가 침대 시트 밑으로 꺼지는 것처럼 무거워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가 힘들었다.천장이 빙글빙글 돌았다.단순히 알코올 때문만은 아니었다.뇌수가 흔들릴 때마다 어젯밤 시은의 앞에서 피를 토하듯 뱉어냈던 잔인한 고백들이 단편적인 잔상으로 부딪쳐왔다.‘나는 부모를 죽인 살인자야.’제 입으로 확인 사살해 버린 진실의 무게가 숙취의 고통과 한데 뒤섞여 온몸을 난도질했다.방 안에는 여전히 어제의 독한 술 냄새가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다.그는 위장을 쥐어짜는 통증을 견뎌내며, 베개 위로 거칠게 땀이 배어나는 이마를 짓눌렀다.차라리 정신을 잃고 영원히 깨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새벽은 지나갔고, 잔인하도록 맑은 아침은 어김없이 그를 현실의 단두대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부엌 쪽에서 달그락거리는 나직한 마찰음과 함께 맑은 국물이 끓는 냄새가 문틀을 넘어 안방까지 스며들었다.구수한 멸치 육수 베이스에 콩나물의 비릿하면서도 시원한 향이 섞여 있는 냄새였다.바다는 뒤집히는 속을 진정시키려 셔츠 깃을 거칠게 잡아당겼다.이 집에서 이런 냄새를 풍길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은아.”갈라진 목소리가 목구멍을 긁으며 튀어나왔다.바다는 침대 가장자리를 짚고 간신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바닥에 발을 내딛자마자 가
80화. 고래 싸움에 새우 등시은은 가누지 못할 정도로 무거워진 바다의 어깨를 가까스로 짊어졌다.포장마차를 나와 택시를 잡고, 그의 방 침대에 눕히기까지 몇 번이나 중심이 흔들렸는지 모른다.침대 위로 풀썩 쓰러져 이불도 덮지 못한 채 얕은 숨을 몰아쉬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시은은 이마에 맺힌 땀을 거칠게 훔쳐냈다.방 안에는 거칠게 널뛰던 남자의 죄책감이 잔흔처럼 흩어져 있었다.술 냄새와 함께 가라앉은 정적을 응시하던 시은은 바지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화면의 푸르스름한 불빛이 그녀의 굳은 얼굴을 비추었다.연락처 목록을 거슬러 올라가 ‘유하늘’ 세 글자를 찾아 누르는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그 시각, 동혁의 집 침대에 누워 있던 하늘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조금 전 거실 소파에서 나누었던 뜨거웠던 숨결과, 동혁이 남긴 호칭 숙제가 머릿속을 어지럽게 맴돌던 참이었다.‘동혁 씨…….’입안으로 조용히 굴려본 이름이 낯간지러워 이불을 코끝까지 끌어당기는데, 베개 옆에 두었던 휴대전화가 짧고 강한 진동을 울렸다.화면에 뜬 이름은 시은이었다.오빠의 곁에서 제 가족이나 다름없이 지내온 언니.하늘은 가슴팍이 쿵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서둘러 통화 버튼을 밀었다.“여보세요.”최대한 덤덤하게 목소리를 내보려 했지만, 미세한 물기가 섞여 나왔다.수화기 너머로 잠시 거친 숨을 고르는 시은의 음성이 들려왔다.“어, 하늘아. 자고 있었어?”“아니. 무슨 일 있어? 이 늦은 시간에 웬일이야?”하늘이 침대 위로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시은이 제 오빠인 바다와 함께 있을 거라는 직감이 뇌리를 스쳤다.시은은 잠시 말을 고르는 듯하더니, 이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냥…… 잘 지내는지 궁금해서 전화해 봤어.”“…….”“괜찮니?”단순한 안부치고는 지나치게 묵직한 질문이었다.그 짧은 음절 안에 부모의 죽음과 오빠의 기만을 다 알아버린 하늘을 향한 염려가 진득하게 묻어 있었다.하늘은 이불자락을 쥔 손가락에 힘